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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落花巖)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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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화암(落花巖)

 

國破山河異昔時 국파산하이석시

獨留江月幾盈虧 독류강월기영휴

落花巖畔花猶在 낙화암반화유재

風雨當年不盡吹 풍우당년부진취

나라는 깨어지고 산하도 옛날과 다르니,

홀로 강에 머문 달은 그 몇번을 차고 이지러졌음이오.

낙화암 언덕에 꽃은 아직 피었으니,

비바람 치던 당년에 모두 날리지는 않았음이라.

 

요점 정리

지은이 : 홍춘경

형식 : 칠언절구

운자 : 시, 휴, 취

주제 : 백제의 옛일을 회고함

내용 연구

국파산하이석시 : 나라는 깨어지고, 국토도 옛날과 다름

기영휴 ; 몇 번을 차고 이지러짐 '기'는 '차례'(의문 부사)

화유재 : 꽃은 아직도 있음. '유'는 부사. '화'는 죽은 삼천 궁녀

풍우당년 : 비바람치던 그 해

이해와 감상

 

낙화암에서 백마강에 드리운 달을 보며 망해 버린 옛 백제를 회고함

심화 자료

홍춘경(洪春卿)

 

1497(연산군 3)∼1548(명종 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 ( 南陽 ). 자는 명중(明仲), 호는 석벽(石壁). 동지사 ( 同知事 ) 경손(敬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봉상시부정 윤덕(潤德)이고, 아버지는 대교 계정(係貞)이며, 어머니는 언양김씨(彦陽金氏)로 현감 기수(期壽)의 딸이다.

1522년(중종 17) 사마를 거쳐, 152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저작·정자를 지내고, 1536년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사성·보덕·집의를 거쳐 예조참의에 올랐다. 1541년 성절사 ( 聖節使 )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좌승지·한성부우윤·이조참의를 지내고, 1545년(인종 1) 중종의 지문(誌文)을 짓기도 하였다. 성품이 강직하여 권세에 굽히지 않았고, 또한 권세가의 집을 찾은 일이 없었다 한다. 글씨에 뛰어나 김생체(金生體)에 능하였다.

≪참고문헌≫ 中宗實錄, 仁宗實錄, 國朝榜目, 拙翁集, 樂全堂集, 鶴谷集, 國朝人物考.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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