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뿌리로 만든 베개
by 송화은율나무뿌리로 만든 베개
홍우원 지음
정필용 번역
나무가 길옆이나 밭두둑에서 자라 소, 양에 시달리고 도끼가 찍어 가지가 밖으로 뻗지 못하고 뿌리가 땅 속에서 뭉치고 얽혀 구불구불 구부러져 해가 지날수록 더욱 울퉁불퉁한 혹이 달리고 상하 좌우로 꺾기고 구부러졌다. 농부가 밭두둑을 개간하다 파서 뽑아 길 가운데로 던져 버렸다.
이것을 내가 우연히 발견하여 특이한 것으로 생각하여 간직할 만한 것이라고 여기고 끌고 집으로 가져 왔다. 칼로 깎아 다듬고 좀 먹은 부분은 파서 도려내고 썩은 부분은 깎아내어 베개를 만들었다. 이 베개를 뒤로 물러나 앉아서 바라보니 넘어지지 않게 버티는 것은 발 같고 뾰족하게 솟은 것은 뿔 같고, 높으면서도 평편한 것은 등 같아, 돌이 많이 쌓여 있는 것 같으면서 울퉁불퉁하고 앙상한 모양을 한 기이하게 생긴 물건이었다. 나는 웃으면서 이 물건은 산촌(山村)에 있는 집의 기이한 노리개가 아닌가 여겼다.
매양 사립문으로 손님이 떠난 후 초당이 낮에 고요하면 책을 읽고 시를 읊다가 기력이 차츰 떨어져 고달픔을 느끼게 되면, 혹 비스듬이 이 베개에 기대기도 하고 혹 고이고 눕기도 하면서 펄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어 꿈속에서 남가(南柯)와 화서(華胥)의 사이에서 인생을 즐기면서 자적(自適)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 베개를 매우 소중하게 여겨 호박으로 꾸미거나 무늬를 수놓은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베개와도 바꾸고 싶지 않았다.
아, 나는 일찍이 대개 행복과 불행이 그 사이에 있다고 나름대로 생각하였다. 무릇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가운데서 자라나서 소·양과 도끼의 재난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번성한 가지와 조밀하게 난 나뭇잎이 무럭무럭 자라 무성하고 빽빽하게 우거져 드높은 하늘처럼 높고 그 그늘은 소를 가릴 수 있을 만큼 크게 자라나 천수를 다하게 된 것은 곧 나무의 행복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무는 길 옆 밭두둑에 나서 도끼가 가지와 줄기를 상하게 하고 소·양이 가지와 뿌리에서 돋아난 싹을 해쳐 마침내는 파서 뽑아서 던져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그 불행이 어떠하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가령 이 나무가 길 옆 밭두둑에서 자라지 않아서 소·양과 도끼의 재난을 입지 않았다면 뭉치고 얽혀 구불구불 구부러져서 울퉁불퉁 혹이 달리고 상하 좌우로 꺾이고 굽어 기이한 모양의 뿌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생김새가 기이한 뿌리가 되었더라도 파서 뽑아 내어 던져진 환란을 당하지 않았다면 그 기아한 형체와 특이한 모양을 필시 스스로 밖으로 드러내 보였더라도 진실로 나같은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또한 거두어져 베개가 되지 못하고 마침내는 썩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니 이른바 행복이라는 것은 과연 행복이며 이른바 불행이라는 것은 과연 불행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 이 또한 불행 중 다행으로 나를 만나게 된 것이다.
문득 나는 여기에서 마음에 느낀 바 있다. 바야흐로 이 뿌리가 길 가운데 내버려졌을 때 이것을 본 사람 중에 누가 쓸 데 없다고 하지 않으랴! 그러나 나에게 한번 거두어져서 마침내는 유용한 기물이 될 수 있었으니, 이로부터 천하에 애당초 버릴 수 있는 물건이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이 세상에서 탁월하고 훌륭한 선비로서 큰 도(道)를 품고 재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알아주는 이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어찌 한정이 있겠는가. 그러나 매우 불우하고 곤궁하고 뜻을 이루지 못한 때를 만나면 빈천(貧賤)에 허덕이고 우환이 밀려들어 용렬한 사람과 비루한 사람까지도 그를 눌러 움츠리게 하고 학대하며 욕보인다.
이 때문에 훌륭한 선비는 기세가 꺾여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재덕(才德)을 감추어 두고 두각을 나타내지 않고 용이 서리고 있는 듯이 자벌레가 움츠리고 있는 듯이 깊이 숨고 깊숙한 곳에 엎드려 있어 재주는 당대에 나타나지 못하고도 도(道)는 세상에 쓰여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훌륭하고 탁월한 기(氣)는 꽉 막혀 몸 가운데 축적되어 있다가 혹 원망과 불평에 격동되어 때로 밖으로 발로되는 경우가 있는데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으로 여겨 모른 체 한다.
아, 현명한 임금과 어진 재상이 알아주어 등용하지 않는다면, 위에서 말한 길 가운데 버려진 나무와 같이 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되겠는가! 무릇 만물은 사람과 더블어 그 이치가 한가지이니 국가를 소유한 사람이 진실로 나의 이 설(說)을 얻어 간직한다면 생민의 심신을 거의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홍우원(洪宇遠)
1605년(선조38)∼1687년(숙종13).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 자는 군징(君徵), 호는 남파(南坡)이다. 홍가신(洪可臣)의 손자로서, 학문이 고명(高明)하고 품성이 직절(直節)하였다는 평이 있다. 1654년 소현세자빈 옥사 때에 직언으로 장살된 김홍욱(金弘郁)의 신원과 1663년 조대비 복상문제로 유배된 윤선도의 석방을 주장하는 등 직언으로 인해 수차 파직되었고, 말년에는 허적(許積)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문천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망했다. 이글은 한국문집총간 제106집 남파집(南坡集) 권10 잡저에 실려 있으며 원제는 <목근침설(木根枕說)> 이다.
심화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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