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 권터 아이히
by 송화은율꿈 / 권터 아이히
잊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
쾌적하게 누워 잠자며 아무런 꿈도 꾸지 않는 사람들 모두를 나는 부러워
한다.
뜻대로 즐긴 휴가, 북해 해변의 해수욕, 노트르담, 잔에 담긴 부르군트
산 붉은 포도주와 월급 타는 날,
맹목적인 만족의 순간들을 나 자신도 부러워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생각해 보면 선의의 양심만으로는 충족하지 못한 것,
우리들 모두가 안식에 잠기는 잠의 쾌적함을 나는 믿지 않는다.
순수한 행복이란 이제는 없다 ―― 옛날에는 그것이 있었던가? ――,
잠자고 있는 이 사람 저 사람을 내가 깨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에게 말하고 싶다, 깨어 있는 것이 좋다고.
끊임없이 이 세계가 외치고 있는 소리,
그리하여 당신이 보통 빗소리나 바람 소리로 알고 있을지도 모를
이 소리가 당신의 귀에 들려와,
언젠가 당신이 사랑하는 이의 품 속에서 깨어난다면,
보라, 무엇이 있는지, 감옥과 고문,
실명(失明)과 마비(麻痺), 수많은 모습의 죽음,
형체 없는 아픔과 삶을 뜻하는 불안.
수많은 입에서 나오는 한숨이 세상을 뒤덮고,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동자에 놀라움이 가득 찼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당신과 관계가 있는 것이다.
등장인물
할아버지
손자며느리
할머니
아이(프리다)
손자(구스타프)
1948년 8월 1일 밤, 힌터품메른 지방의 뤼겐발데. 그러니까 오늘날의 베스트팔렌 지방의 귀터로오에 사는 철공 기사 빌헬름 슐츠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꿈을 하나 꾸었다. 그 동안 슐츠는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위장병을 앓았었다고 하므로 이 꿈을 별로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위(胃)가 너무 포만하거나 또는 너무 비어 있을 때는 악몽을 꾸게 마련이니까.
첫째 꿈
(천천히 달리고 있는 기차의 화물찻간 속에서)
할아버지 : 그들이 우리를 침대에서 끌어냈을 때가 새벽 네 시였지. 마루의 큰 시계가 네 번 울렸어.
손자 : 또 그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할아버지, 그 이야기는 이제 지겹습니다.
할아버지 : 한데 우리를 끌어 낸 놈이 누구였을까?
손자 : 얼굴을 알 수 없는 네 사람의 사나이들이었잖아요? 할아버지는 지난날을 매일 우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시지요. 그만해 두시고 주무세요!
할아버지 : 하지만 그 사나이들이 누구였을까? 경찰이었을까? 그들은 내가 알 수 없는 제복을 입고 있었어. 사실 제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넷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
할머니 : 내 생각으로는 그들이 틀림없이 소방대였을 거예요.
할아버지 :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말한단 말이야. 그럼 왜 소방대가 우리를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쫓아 내어 화물찻간에다 가뒀겠어?
할머니 : 경찰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소방대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덜 이상하지요.
할아버지 : 시간이 흐르다 보니 모두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어 버린거지. 하기야 그 날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이라는 것이 애당초 퍽 이상했던 거야.
손자며느리 : 누가 알겠어요. 상당히 이상했었는지.
할아버지 : 화물찻간에 갇혀 사는 삶이 마침내 당연한 것으로 되었단 말인가?
할머니 : 조용히 해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요.
손자며느리 : 네, 이제 그만해 두세요! 그것은 어리석은 수다예요! (낮은 목소리로) 구스타프, 좀 가까이 와서 나를 따뜻하게 해 줘요.
손자 : 그래.
할아버지 : 춥군. 할망구, 당신도 좀 가까이 오구려!
할머니 : 나는 이제 당신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는 별로 쓸모가 없게 되었어요.
할아버지 : 우리가 집을 떠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가 이 기차를 타고 달리게 된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할머니 : 시계도 없고 달력도 없으니―― 하지만 아이들이 그 동안 커다랗게 자랐어요. 손자들도 장성했고, 좀 밝아지면――.
할아버지 : 바깥이 낮이라면 말이지.
할머니 : 좀 밝아져서 내가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주름살을 보고 당신이 이젠 늙은이가 되었고 내가 할망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할아버지 : 틀림없이 한 사십 년은 되었을 거야.
할머니 : 그래요, 아마 그만큼은 되었을 거예요. 당신의 머리를 내 팔에 올려 놓아요. 당신은 뻣뻣하게 누워 있군요.
할아버지 : 그래, 그렇게 하지.
할머니 : 당신 생각나요? 그 때는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던 것이 있었지요, 나무라는 것도 있었고.
할아버지 : 우리 집 뒤로는 숲으로 가는 언덕길이 있었지. 사월이면 풀밭에는 민들레꽃이 피었어.
할머니 : 민들레꽃이라고요? 당신은 이상한 말을 쓰시네요!
할아버지 : 민들레꽃을 모르다니, 생각해 봐요, 그 노란꽃 있잖아, 풀밭이 온통 그 꽃들로 노랗게 뒤덮였고, 꽃줄기를 꺾으면 우유처럼 하얀 액즙이 흘러 나왔지. 그리고 이 꽃이 시들고 나면 꽃대궁이 위에 하얀 솜털이 달린 씨앗이 영글었다가 입으로 훅 불면 바람을 타고 날아가지 않았어?
할머니 :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렸었네요, 하지만 이제 생각나요.
할아버지 : 그리고 우리가 외양간에 기르던 염소도 생각나지?
할머니 : 염소는 생각나요. 매일 아침 내가 젖을 짰었죠.
할아버지 : 침실에는 옷장이 있었고, 그 속에는 짙은 청색의 훌륭한 내 양복이 들어 있었지. 왜 하필 그 양복 생각이 날까? 마치 그 짙푸른 색 옷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훌륭한 재산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할머니 : 그것이 가장 좋았던 거였어요?
할아버지 : 모든 것이 좋았지, 집 앞의 아카시아와 울타리의 나무딸기도.
할머니 :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가 행복했었다는 거예요.
할아버지 : 그런데도 우린 그것을 몰랐었지.
할머니 : 당신이 방금 말한 그 꽃이 뭐라고요. 그 노란꽃 말예요!
할아버지 : 민들레.
할머니 : 민들레꽃, 네, 나도 생각나요.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할머니 : 꼬마가 왜 그러지?
손자며느리 : 왜 그러니, 프리다?
아이 :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언제나 노란꽃 이야기만 해.
손자 :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신단다.
아이 : 그 노란꽃을 갖고 싶어.
손자 : 할아버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시니까 그렇잖아요. 얘가 노란꽃을 갖고 싶대요. 우리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말예요.
손자며느리 : 얘야, 노란꽃이란 이 세상에 없어.
아이 :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하시잖아.
손자며느리 : 얘야, 그건 동화란다.
아이 : 동화가 뭐야?
손자며느리 : 동화는 진짜 이야기가 아냐.
할아버지 : 어린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못쓴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건데.
손자 : 그럼 그 노란꽃을 한번 보여 주세요!
할아버지 : 너도 알다시피 그걸 내가 지금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니?
손자 : 그러니까 그건 거짓말예요.
할아버지 : 그렇다고 해서 내 말이 거짓말이란 말이냐?
손자 : 할아버지의 이야기 때문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미칠 것만 같아요. 우리는 그런 동화를 듣고 싶지도 않고 할아버지가 밤낮 꿈꾸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할아버지 :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니깐. 그것은 우리가 옛날에 살아왔던 삶이란 말이다. 그렇지 않소, 할망구?
할머니 : 네, 맞아요.
손자 : 맞는지 틀리는지는 우리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옛날에는 지금보다 아름다웠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어딘가 있다고 자꾸 말씀하시지만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하세요? 할아버지 노란꽃이라고 부르시는 것이 있다고 한들, 동물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들, 또 포도주라고 부르는 것을 잡수셨었다고 한들, 그리고 침대라는 것 위에서 주무셨었다고 한들 그게 무엇입니까? 모두가 말, 말일 뿐예요――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 : 실제의 세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모르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손자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밖에는 아무런 세계도 없습니다.
할아버지 : 우리가 갇혀 살고 있는 이 새장 같은 감옥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이 끝없이 굴러가는 기찻간밖에는 다른 세상이 없단 말이냐?
손자 : 희미하게 뒤바뀌는 밝음과 어둠이 있을 뿐이지요,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머니 : 그러면 이 희미한 광선, 이 빛은 어디서 들어오지?
손자 : 우리에게 빵을 넣어 주는 차입구(差入口)를 통해서 들어오지요.
할아버지 : 그 곰팡이 슨 빵을 넣어 주는 딸깍문 말이지?
손자 : 빵이란 언제나 곰팡이가 슬어 있는 겁니다.
할아버지 : 네가 곰팡이가 슬지 않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다.
할머니 : 얘, 손자야, 좀 들어 봐라, 그럼 누가 그 빵을 이 안으로 넣어 주니?
손자 : 그런 건 난 몰라요.
할머니 : 그러니까 우리가 갇혀 있는 이 공간 밖에도 무엇인가 있는 거지.
손자 :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곳보다 더 좋지는 못할 거예요.
할아버지 : 더 좋단다.
손자 : 우리는 그런 세계에 관하여 아는 바 없고 그런 것에 관한 공상을 듣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우리의 세계니까요. 우리의 세계는 네 개의 벽과 어둠으로 이뤄졌고 어디론가 굴러 가고 있어요. 저 바깥도 암흑 속으로 달려가는 똑같은 공간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손자며느리 : 남편 말이 맞아요.
소리 : 그렇다, 그의 말이 옳다.
손자며느리 : 할아버지 할머니가 늘 이야기하시는 그 세계를 우리는 믿지 않아요. 두 분께선 그 세계를 꿈꾸고 계신 거예요.
할아버지 : 우리가 다만 꿈을 꾸었던 것일까. 할망구?
할머니 : 모르겠어요.
손자며느리 : 주위를 둘러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그런 세계의 흔적이 도대체 없잖아요.
할아버지 : 이 애들 말이 옳다면? 아, 벌써 오래 된 일이니까. 어쩌면 내가 진짜 모든 것을 꿈에서 보았는지도 모르지, 그 파란 양복, 염소, 민들레꽃…….
할머니 : 나는 그런 것을 모두 당신에게서 들은 거예요.
할아버지 :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이 기찻간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그들이 우리를 침대에서 끌어 낸 것이 새벽 네 시가 아니었던가? 그래, 마루의 큰 시계가 네 번 울렸어.
손자 : 이제 그 이야기를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시는군요, 할아버지.
(아이가 다시 울기 시작하다.)
손자며느리 : 왜 그러니, 우리 아기?
아이 : 저기, 저기 좀 봐, 바닥 위에!
손자 : 환하게 빛나는 막대기같이 생긴 것이 있구나. 그런데 ―― 붙잡을 수가 없네. 보이기는 하는데 아무것도 없어.
할아버지 : 빛이 새어 들어온 거다. 벽에 어딘가 구멍이 뚫려 그리로 햇빛이 비쳐 들어오는 거야.
손자며느리 : 햇빛이라구요, 햇빛이 뭔가요?
할아버지 : 이제야 너희들은 바깥이 여기와는 다르다는 내 말을 믿겠니?
할머니 : 벽에 구멍이 뚫렸으면 밖을 내다볼 수 있겠구나.
손자 : 잘 됐어요, 내가 바깥을 내다보겠어요.
할머니 : 뭣이 보이니?
손자 : 무엇인가 보이는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손자며느리 : 어떻게 생겼나 말해 봐요.
손자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손자며느리 : 왜 더 내다보지 않아요?
손자 : 싫어, 겁이 나.
손자며느리 : 당신 눈에 보이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이 아녜요?
손자 : 무서워.
할아버지 :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지.
손자 : 우리 이 구멍을 막아 버려요
할아버지 : 뭐라고? 실제 모습 그대로의 세계를 너희들은 보고 싶지 않단 말이냐?
손자 : 싫어요, 나는 겁이 나요.
할아버지 : 어디 내가 좀 내다보자.
손자 : 내다보세요, 이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노상 말씀하시던 그 세계인지.(사이)
할머니 : 무엇이 보여요?
할아버지 : 바깥의 세계야. 바깥 세상이 막 지나가고 있어.
할머니 : 하늘이 보여요? 나무가 보여요?
할아버지 : 민들레꽃이 보이는군. 풀밭이 민들레로 노랗게 뒤덮였어. 저쪽으로는 산과 숲이 있고 ―― 저런!
손자 :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시는 것이 두렵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 한데 ―― (머뭇거리며) ――한데 무엇인가 달라졌어.
손자며느리 : 왜 더 내다보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 사람들이 달라졌어.
할머니 :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어요?
할아버지 : 어쩌면 나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어. 당신이 한 번 내다봐!
할머니 : 그래요.
할아버지 : 무엇이 보여?
할머니 : (놀라며)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사람들이 아녜요.
할아버지 : 당신에게도 그렇게 보이지?
할머니 : 네, 나는 이상 더 내다보지 않겠어요. (속삭이듯) 거인들예요. 사람들이 나무들처럼 커다래요. 겁나요.
할아버지 : 우리 이 구멍을 막아 버리자.
손자 : 그래요, 우리 이 구멍을 막아 버려요. 자, 되었어요.
손자며느리 : 다시 전과 같이 되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할아버지 : 이젠 전과 같지는 않다.
할머니 : 노란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요.
할아버지 : 이제 우리는 무엇을 더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할머니 : 회상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워져요.
손자 : 쉿 조용해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요? <후략>
기차 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소리도 더욱 커지면서 모두들 커다란 교통 사고의 불안한 징조를 느낀다. 동시에 열차 속의 가족들은 그 누구도 자기네를 도와 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다. 열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멀어져 가며 아득하게 사라지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고, 이어서 사랑과 평화의 인간애를 주장하는 시구가 낭송되면서 '첫째 꿈'이 끝난다.
요점 정리
지은이 : 권터 아이히(Gunter Eich)
갈래 : 라디오 드라마 극본
성격 : 상징적. 몽상적
배경 : 1948년 8월 1일 밤의 힌터품메른 지방의 뤼겐발더
주제 : 실제 세계에서 인간이 겪는 억압과 부자유 현상, 세계 대전 직후 기존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회에 대한 고발
특징 : 이 작품은 라디오 드라마의 극본으로, 꿈이 상실된 현대의 공간에서 꿈의 가치를 음미하게 한다. 작자의 인본적 정신이 극적 상징의 세계를 통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① 음향 효과나 음악, 나레이터 등의 드라마의 장치를 잘 활용했다. 첫째 꿈이 시작되기 전에 해설이나 작품 앞뒤에 사용된 시에서 내용을 암시하고 있다.
② 대화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자유가 억압된 인물들의 심리를 표출할 때나, 자유의 억압이 지속됐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상징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③ 인물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할아버지의 의구심, 할머니의 믿음, 손자의 두려움, 가정의 평화를 이어 가려는 며느리의 태도 등에서 인물의 성격이 잘 부각되어 있다.
④ 억압의 폐해를 고발하여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있다. 실제 생활을 체험한 할머니, 할아버지조차도 부자유(不自由)에 적응되어 문틈으로 드러난 실제 사물들을 '거인'으로 인식한다. 이를 통해 자유의 억압이 가져올 수 있는 심각한 폐해를 고발한다.
줄거리 : 이 작품은 각기 다른 다섯 편의 꿈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꿈은 어떤 철공 기사의 꿈으로, 삼대가 기차 안에 갇혀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요란한 철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기차 안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늘 어떻게 자신들이 이 기차에 잡혀오게 되었는지를 생각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들의 자손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로부터 바깥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그 자손들은 기차 밖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했고, 그 세계를 직접 보는 것조차 무서워한다. 그러다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기차 밖을 내다보게 되는데, 예전에 비해 사람들이 무척 커져서 거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이제 바깥 세계는 그들이 알던 세계가 아닌 것이다. 기차 소리가 점점 커지고, 가족들은 불안에 빠진다. 그리고 사랑과 평화의 인간애를 전하는 시가 낭송되면서 드라마가 끝난다. 이런 식으로 나머지 대본도 각각 터어키 세무서 직원 , 호주 기술자, 모스크바 화가, 뉴욕 여자 등의 꿈을 다루고 있는데 모두 충격과 불안, 몰락 등을 보여 준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빌헬름 슐츠는 꿈속에서, 부인과 손자와 손자며느리와 함께 어느 날 새벽 네 시에 정체 모를 사나이들에게 현행되어 기차 화물칸에 갇힌다. 화물칸에 40년간 갇혀 있으면서 조그만 문을 통해 음식을 제공받으며 생명을 연장한다. 할아버지인 슐츠는 실제 생활을 체험하지 못한 손자와 손자며느리 그리고 그 아들에게 하늘과 4월을 비롯한 실제 세계를 이야기해 주지만 그들은 그 이야기를 동화로만 인식하고 있다. 어느 날, 구멍을 통해 실제 모습을 보게 되지마 그들 모두는 이미 억압된 생활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여 불안에 떨게 되고 빌헬름 슐츠 자신도 실제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그들을 태운 기차가 무서운 속력으로 점차 멀어져 가며 아득히 사라지면서 사랑과 평화의 인간애를 주장하는 시구가 낭송된다.
내용 연구
1948년 8월 1일 밤, 힌터품메른 지방의 뤼겐발데. 그러니까 오늘날의 베스트팔렌 지방의 귀터로오에 사는 철공 기사 빌헬름 슐츠는 별로 유쾌하지 못한 꿈을 하나 꾸었다. 그 동안 슐츠는 세상을 떠났는데, 그가 위장병을 앓았었다고 하므로 이 꿈을 별로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위(胃)가 너무 포만하거나 또는 너무 비어 있을 때는 악몽(불길한 꿈. 나쁜 꿈)을 꾸게 마련이니까.[1948년 8월 1일 ~ 마련이니까 : 꿈의 내용이 철공 기사 슐츠의 꿈에서 나온 것이라 설명하는 부분으로 상징적 의미를 높이기 위한 드라마상의 장치이다. 방송극이므로 나레이터에 의해 서술된다.]
첫째 꿈
(천천히 달리고 있는 기차의 화물찻간 속에서)[천천히 달리고 ~ 화물찻간 속에서 : 자유와 인권이 유리된 밀폐된 공간을 상징하며 드라마를 전개해 나갈 배경을 의미한다. 방송극이므로 음향 효과를 사용해야 한다.]
할아버지 : 그들이 우리를 침대에서 끌어냈을 때가 새벽 네 시였지.[그들이 우리를 ~ 네 시였지.: 인간이 향유할 수 있는 안식의 순간이 파괴됨을 뜻하며, 가족들을 끌어 내는 행위가 비인도적임을 강하게 고발하고 있다.] 마루의 큰 시계가 네 번 울렸어.
손자 : 또 그 이야기를 하시는군요. 할아버지, 그 이야기는 이제 지겹습니다.[또 그 이야기를 ~ 지겹습니다.: 억압된 상황의 지속으로 저항과 거부 자체도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며 또 무감각해진 심리를 나타내고 있다.]
할아버지 : 한데 우리를 끌어 낸 놈이 누구였을까?
손자 : 얼굴을 알 수 없는 네 사람의 사나이들이었잖아요? 할아버지는 지난날을 매일 우리에게 그렇게 이야기하시지요. 그만해 두시고 주무세요!
할아버지 : 하지만 그 사나이들이 누구였을까? 경찰이었을까? 그들은 내가 알 수 없는 제복을 입고 있었어. 사실 제복(학교, 관청, 회사 등에서 규정에 따라 정한 옷차림.)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그들은 넷이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
할머니 : 내 생각으로는 그들이 틀림없이 소방대였을 거예요.
할아버지 : 당신은 언제나 그렇게 말한단 말이야. 그럼 왜 소방대가 우리를 한밤중에 잠자리에서 쫓아 내어 화물찻간에다 가뒀겠어?
할머니 : 경찰이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소방대였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덜 이상하지요.
할아버지 : 시간이 흐르다 보니 모두들 그런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어 버린거지. 하기야 그 날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이라는 것이 애당초(맨 처음. '애초'의 힘줌말) 퍽 이상했던 거야.[그 날까지 ~ 이상했던 거야.: 경찰을 자유와 정의를 수호하는 존재로 인식해 온 삶의 자세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상하다는 의미이다. 즉 자유와 정의가 잘못된 권력에 의해 유린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손자며느리 : 누가 알겠어요. 상당히 이상했었는지.
할아버지 : 화물찻간에 갇혀 사는 삶이 마침내 당연한 것으로 되었단 말인가?
할머니 : 조용히 해요, 그런 말을 하면 안 돼요.
손자며느리 : 네, 이제 그만해 두세요! 그것은 어리석은 수다예요! (낮은 목소리로) 구스타프, 좀 가까이 와서 나를 따뜻하게 해 줘요.[구스타프, 좀 가까이 ~ 해 줘요.: 화물찻간에 갇힌 이유를 더 이상 생각하지 않고, 억압에 대해 저항하기보다는 체념으로 그러한 상황을 수긍하고 서로의 체온을 의지하며 새롭게 적응하려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손자 : 그래.
할아버지 : 춥군. 할망구, 당신도 좀 가까이 오구려!
할머니 : 나는 이제 당신의 몸을 따뜻하게 하는 데는 별로 쓸모가 없게 되었어요.
할아버지 : 우리가 집을 떠난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 우리가 이 기차를 타고 달리게 된 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할머니 : 시계도 없고 달력도 없으니―― 하지만 아이들이 그 동안 커다랗게 자랐어요. 손자들도 장성했고, 좀 밝아지면――.
할아버지 : 바깥이 낮이라면 말이지.
할머니 : 좀 밝아져서 내가 당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주름살을 보고 당신이 이젠 늙은이가 되었고 내가 할망구가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할아버지 : 틀림없이 한 사십 년은 되었을 거야.
할머니 : 그래요, 아마 그만큼은 되었을 거예요. 당신의 머리를 내 팔에 올려 놓아요. 당신은 뻣뻣하게 누워 있군요.
할아버지 : 그래, 그렇게 하지.
할머니 : 당신 생각나요? 그 때는 우리가 하늘이라고 부르던 것이 있었지요, 나무라는 것도 있었고.
할아버지 : 우리 집 뒤로는 숲으로 가는 언덕길이 있었지. 사월이면 풀밭에는 민들레꽃이 피었어.
할머니 : 민들레꽃이라고요? 당신은 이상한 말을 쓰시네요!
할아버지 : 민들레꽃을 모르다니, 생각해 봐요, 그 노란꽃 있잖아, 풀밭이 온통 그 꽃들로 노랗게 뒤덮였고, 꽃줄기를 꺾으면 우유처럼 하얀 액즙이 흘러 나왔지. 그리고 이 꽃이 시들고 나면 꽃대궁이 위에 하얀 솜털이 달린 씨앗이 영글었다가 입으로 훅 불면 바람을 타고 날아가지 않았어?
할머니 : 나는 그것을 까맣게 잊어버렸었네요, 하지만 이제 생각나요.
할아버지 : 그리고 우리가 외양간에 기르던 염소도 생각나지?
할머니 : 염소는 생각나요. 매일 아침 내가 젖을 짰었죠.
할아버지 : 침실에는 옷장이 있었고, 그 속에는 짙은 청색의 훌륭한 내 양복이 들어 있었지. 왜 하필 그 양복 생각이 날까? 마치 그 짙푸른 색 옷이 가장 중요하고 가장 훌륭한 재산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할머니 : 그것이 가장 좋았던 거였어요?
할아버지 : 모든 것이 좋았지, 집 앞의 아카시아와 울타리의 나무딸기도.
할머니 : 가장 좋았던 것은 우리가 행복했었다는 거예요.
할아버지 : 그런데도 우린 그것을 몰랐었지.
할머니 : 당신이 방금 말한 그 꽃이 뭐라고요. 그 노란꽃 말예요!
할아버지 : 민들레.
할머니 : 민들레꽃, 네, 나도 생각나요.
(아이가 울기 시작한다.)
할머니 : 꼬마가 왜 그러지?
손자며느리 : 왜 그러니, 프리다?
아이 :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언제나 노란꽃 이야기만 해.
손자 : 할아버지 할머니는 이 세상에 없는 것들을 이야기하신단다.
아이 : 그 노란꽃을 갖고 싶어.
손자 : 할아버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시니까 그렇잖아요. 얘가 노란꽃을 갖고 싶대요. 우리는 아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말예요.
손자며느리 : 얘야, 노란꽃이란 이 세상에 없어.
아이 : 하지만 할아버지 할머니는 언제나 그 이야기를 하시잖아.
손자며느리 : 얘야, 그건 동화란다.
아이 : 동화가 뭐야?
손자며느리 : 동화는 진짜 이야기가 아냐.
할아버지 : 어린애한테 그렇게 말하면 못쓴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건데.
손자 : 그럼 그 노란꽃을 한번 보여 주세요!
할아버지 : 너도 알다시피 그걸 내가 지금 어떻게 보여 줄 수 있니?
손자 : 그러니까 그건 거짓말예요.
할아버지 : 그렇다고 해서 내 말이 거짓말이란 말이냐?
손자 : 할아버지의 이야기 때문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미칠 것만 같아요. 우리는 그런 동화를 듣고 싶지도 않고 할아버지가 밤낮 꿈꾸고 계신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할아버지 :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니깐. 그것은 우리가 옛날에 살아왔던 삶이란 말이다. 그렇지 않소, 할망구?
할머니 : 네, 맞아요.
손자 : 맞는지 틀리는지는 우리하고 아무런 상관도 없어요. 옛날에는 지금보다 아름다웠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어딘가 있다고 자꾸 말씀하시지만 그런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우리가 더 행복해지리라고 생각하세요? 할아버지 노란꽃이라고 부르시는 것이 있다고 한들, 동물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한들, 또 포도주라고 부르는 것을 잡수셨었다고 한들, 그리고 침대라는 것 위에서 주무셨었다고 한들 그게 무엇입니까? 모두가 말, 말일 뿐예요――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어요?
할아버지 : 실제의 세상이 어떤 것이라는 것을 모르면 사람은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손자 :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밖에는 아무런 세계도 없습니다.
할아버지 : 우리가 갇혀 살고 있는 이 새장 같은 감옥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이 끝없이 굴러가는 기찻간밖에는 다른 세상이 없단 말이냐?
손자 : 희미하게 뒤바뀌는 밝음과 어둠이 있을 뿐이지요, 그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할머니 : 그러면 이 희미한 광선, 이 빛은 어디서 들어오지?
손자 : 우리에게 빵을 넣어 주는 차입구(差入口)를 통해서 들어오지요.
할아버지 : 그 곰팡이 슨 빵을 넣어 주는 딸깍문 말이지?
손자 : 빵이란 언제나 곰팡이가 슬어 있는 겁니다.
할아버지 : 네가 곰팡이가 슬지 않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거다.
할머니 : 얘, 손자야, 좀 들어 봐라, 그럼 누가 그 빵을 이 안으로 넣어 주니?
손자 : 그런 건 난 몰라요.
할머니 : 그러니까 우리가 갇혀 있는 이 공간 밖에도 무엇인가 있는 거지.
손자 : 그럴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 곳보다 더 좋지는 못할 거예요.
할아버지 : 더 좋단다.
손자 : 우리는 그런 세계에 관하여 아는 바 없고 그런 것에 관한 공상을 듣고 싶지도 않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우리의 세계니까요. 우리의 세계는 네 개의 벽과 어둠으로 이뤄졌고 어디론가 굴러 가고 있어요. 저 바깥도 암흑 속으로 달려가는 똑같은 공간일 것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믿습니다.
손자며느리 : 남편 말이 맞아요.
소리 : 그렇다, 그의 말이 옳다.
손자며느리 : 할아버지 할머니가 늘 이야기하시는 그 세계를 우리는 믿지 않아요. 두 분께선 그 세계를 꿈꾸고 계신 거예요.
할아버지 : 우리가 다만 꿈을 꾸었던 것일까. 할망구?
할머니 : 모르겠어요.
손자며느리 : 주위를 둘러보세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그런 세계의 흔적이 도대체 없잖아요.
할아버지 : 이 애들 말이 옳다면? 아, 벌써 오래 된 일이니까. 어쩌면 내가 진짜 모든 것을 꿈에서 보았는지도 모르지, 그 파란 양복, 염소, 민들레꽃…….
할머니 : 나는 그런 것을 모두 당신에게서 들은 거예요.
할아버지 : 그러나 우리가 어떻게 이 기찻간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그들이 우리를 침대에서 끌어 낸 것이 새벽 네 시가 아니었던가? 그래, 마루의 큰 시계가 네 번 울렸어.
손자 : 이제 그 이야기를 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시는군요, 할아버지.
(아이가 다시 울기 시작하다.)
손자며느리 : 왜 그러니, 우리 아기?
아이 : 저기, 저기 좀 봐, 바닥 위에!
손자 : 환하게 빛나는 막대기같이 생긴 것이 있구나. 그런데 ―― 붙잡을 수가 없네. 보이기는 하는데 아무것도 없어.
할아버지 : 빛이 새어 들어온 거다. 벽에 어딘가 구멍이 뚫려 그리로 햇빛이 비쳐 들어오는 거야.
손자며느리 : 햇빛이라구요, 햇빛이 뭔가요?
할아버지 : 이제야 너희들은 바깥이 여기와는 다르다는 내 말을 믿겠니?
할머니 : 벽에 구멍이 뚫렸으면 밖을 내다볼 수 있겠구나.
손자 : 잘 됐어요, 내가 바깥을 내다보겠어요.
할머니 : 뭣이 보이니?
손자 : 무엇인가 보이는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무엇인가∼모르겠어요.: 새로운 바깥 세계가 갑자기 눈에 보일 때, 그 세계를 제대로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은 없어지고, 차라리 두려움을 느끼게 죄는 절망적인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손자며느리 : 어떻게 생겼나 말해 봐요.
손자 :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는걸.
손자며느리 : 왜 더 내다보지 않아요?
손자 : 싫어, 겁이 나.
손자며느리 : 당신 눈에 보이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이 아녜요?
손자 : 무서워.
할아버지 : 처음 보는 것이기 때문이지.
손자 : 우리 이 구멍을 막아 버려요..[우리 이 구멍을 막아 버려요.: 밀폐된 공간에 순응하게 된 손자는 오히려 열린 공간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다. 오랜 억압을 겼고 나면 스스로 소극적이고, 순응적인 자세가 굳어지게 됨을 보여준다.]
할아버지 : 뭐라고? 실제 모습 그대로의 세계를 너희들은 보고 싶지 않단 말이냐?
손자 : 싫어요, 나는 겁이 나요.[싫어요, 나는 겁이 나요.: 억압과 부자유와 폐쇄의 세계에 살았던 사람이 자유와 진리의 실제 세계에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모습인 것이다.]
할아버지 : 어디 내가 좀 내다보자.
손자 : 내다보세요, 이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노상 말씀하시던 그 세계인지.(사이)
할머니 : 무엇이 보여요?
할아버지 : 바깥의 세계야. 바깥 세상이 막 지나가고 있어.
할머니 : 하늘이 보여요? 나무가 보여요?
할아버지 : 민들레꽃이 보이는군. 풀밭이 민들레로 노랗게 뒤덮였어. 저쪽으로는 산과 숲이 있고 ―― 저런!
손자 : 할아버지는 그것들을 똑바로 바라보시는 것이 두렵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 한데 ―― (머뭇거리며) ――한데 무엇인가 달라졌어.[한데 무엇인가 달라졌어 :할아버지는 외부의 실제 세계에 대한 체험도 가지고 있고, 열린 공간을 향해 뛰쳐나갈 용기도 아직 잃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외부 세계의 모습이 그에게조차 크게 보이는 까닭은 오랜 격리로 인해 외부 세계에 대한 공포감과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손자며느리 : 왜 더 내다보지 않으세요?
할아버지 : 사람들이 달라졌어.
할머니 :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어요?
할아버지 : 어쩌면 나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어. 당신이 한 번 내다봐!
할머니 : 그래요.
할아버지 : 무엇이 보여?
할머니 : (놀라며)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사람들이 아녜요.
할아버지 : 당신에게도 그렇게 보이지?
할머니 : 네, 나는 이상 더 내다보지 않겠어요. (속삭이듯) 거인들예요. 사람들이 나무들처럼 커다래요. 겁나요.
할아버지 : 우리 이 구멍을 막아 버리자.
손자 : 그래요, 우리 이 구멍을 막아 버려요. 자, 되었어요.
손자며느리 : 다시 전과 같이 되니까 마음이 놓이네요.
할아버지 : 이젠 전과 같지는 않다.
할머니 : 노란꽃을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요.
할아버지 : 이제 우리는 무엇을 더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할머니 : 회상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워져요.
손자 : 쉿 조용해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어요? <후략>
기차 바퀴 돌아가는 소리가 점점 빨라지고 소리도 더욱 커지면서 모두들 커다란 교통 사고의 불안한 징조를 느낀다. 동시에 열차 속의 가족들은 그 누구도 자기네를 도와 줄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진다. 열차는 무서운 속력으로 멀어져 가며 아득하게 사라지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고, 이어서 사랑과 평화의 인간애를 주장하는 시구가 낭송되면서 '첫째 꿈'이 끝난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에서 한 가족의 넋두리를 통해 묘사되는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적 모습을 갖춘 세계라기보다는, 상징성이 강한 세계이다. 즉, 작자는 인간 소외와 상실의 현대를 꿈이라는 극적 장치를 빌려서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 일가족이 오랜 세월 동안 갇혀서 달리는, 밀폐된 기차 안은 참다운 삶의 모습이 차단된 세계를 의미한다. 안온하고 행복했던 실제의 세계에 대한 추억과 꿈을 가지고 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불행하게추락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등장 인물의 대사와 나레이터를 통해 상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다시 말해서 2차 대전 직후, 독일인에게 경종을 울린 이 작품은 즉, 소외와 상실의 현대를 상징하기 위하여, 극적 장치를 빌려서 상징성이 강한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꿈에서 일가족이 오랜 세월 동안 갇혀 있는 밀폐된 기차 안은 삶의 참다운 모습이 상실된 세계를 의미한다. 참세계에 대한 추억과 꿈을 가지고 살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절망하게 되는, 그리하여 마침내 불행하게 추락하는 현대인의 모습이 드러난다.
심화 자료
권터 아이히
독일 시인. 그는 자신을 <시대에 뒤떨어진 표현주의자인 동시에 자연시인>으로 자처하였다. 오더강레부스에서 태어나 라이프치히, 베를린, 파리의 소르본느 대학에서 법학과 중국학을 연구. 2차 대전 때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가 귀환하였다. 일찍이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지만, 나치스시대에는 절필하고 제 2 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였다. 포로수용소 안에서 시인으로서 재출발하고, <그룹 47>에 가담하였다. 그가 1948년에 발표한 시집 '변두리의 농장'은 전쟁 뒤 독일 시의 한 기점이 되었고, 자연과의 관계 속에 실현된 독특한 자기경험을 통해 사물의 불가시(不可視)적인 수수께끼를, 나아가서는 인간존재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 '비의 소식(1955)'은 독일 현대시의 한 정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에르크베트에 가지 말라(1950)'를 비롯한 많은 방송극을 통해서이고, 그는 방송극을 순문학의 장르로 끌어올렸다. 60년 뷔히너상을 수상하였으며, 만년에는 산문집 '두더지(1968)'를 발표,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추구하여 문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경향 : 순수한 생의 동경을 바탕으로 깔고 있으며 동양적 분위기를 풍긴다. 그의 문학은 염세적 성향이 짙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비극적 세계 인식 속에서도 가장 인본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또 전후의 독일 방송극은 그에 의해서 높은 예술성과 풍부한 바리에이션(변주곡)을 지닌 매력적인 장르가 되었다.
작품 : 시집 <시집>(1930), <멀리 떨어진 농가>(1948), <지하철>(1949), 등, 방송극 '꿈'(1951), '소리'(1958), '제토발의 파도'(1960), '베아트리체와 유아나'(1962) 등이 있다.
방송극의 특징과 위치
방송극은 표현 수단으로 보면 음악과 같은 계열의 청각 예술이다. 등장 인물의 행동과 정경 등은 눈으로 볼 수가 없고 사건은 단지 소리로만 전개된다. 따라서, 방송극은 암흑 속에서 소리만으로 연기자들의 연기를 상상하여 효용을 얻는 것이다. '라디오 드라마'는 연극과 영화의 시각적인 이미지를 어떻게 청각적으로 표현하느냐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 그러므로 시각을 청각 표현으로 단순히 대체하는 데 만족해서는 안 되고 연극이나 영화가 거둔 만큼의 예술성에 접근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연극이나 영화가 추구할 수 없는, 라디오극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방송극은 주제, 구성, 사건이 진행되는 일정한 시간과 공간, 등장 인물, 대사가 있다는 점에서는 희곡과 유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사건과 등장 인물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해야 하므로 상당한 수준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방송극은 카메라에 의존하는 영화나 무대에서 표현되는 희곡보다 상상력이 훨씬 중시된다.
라디오 드라마의 구성
1. 극적 구성 : 그려지는 인물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환경 같은 것은 필요로 하지 않으며, 다만 보편적인 인간이 싸우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또는 위기에 부딪친 장면의 것으로 구성된 것을 말한다.
2. 설화적 구성 : 극적인 클라이맥스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고 줄거리의 흥미, 사건의 발생으로부터의 전개·결말에 이르기까지의 경과가 중점이 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즉 인물에 따른 조건, 자라 온 환경이나 성격, 현재의 처지 등이 극히 복잡하며 그 복잡한 환경에 놓여 있는 어느 사건의 경과를 그리려고 할 때 사용된다.
라디오 '극본'에 대하여
극본을 쓰는 사람은 심사숙고하여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구성한다. 그 결과 이야기의 극적인 짜임새 자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구성의 원칙처럼 될 수 있다. 드러나 처음과 중간과 끝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완벽하게 '완전한 하나의 것'이 되지 못하는 작품이 많다.
극본 속의 실제 사건 그 자체는 복잡한 것이라든지 또는 이상한 흥분을 유인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물론, 멜로드라마나 추리극에서는 서스펜스(극적 긴장)가 중요시되며, 사건 그 자체의 흥미의 중심이 된다.
그러나 많은 라디오 극본에 있어서 이야기의 줄거리는 단순 명확하다. 시청자(청중)에게 라디오 극본으로서 호소력을 주기 위해서는 이야기 전개를 쉽게 하고, 배우의 육성을 들의 성격에 게 배치하며, 적절한 음향 효과를 활용하여 그 장면에 구체적인 현실감을 부여해야 한다.
우상(偶像/idol)
명석한 사고를 가로막는 그릇된 정신 경향을 가리키는 철학 용어로 프랜시스 베이컨은 같은 시대에 활동한 조르다노 브루노의 개념을 빌려 〈신기관 Novum Organum〉(1620)에서 우상을 4종류로 나누었다. 인간에게 공통적인 편견인 '종족의 우상', 개인에게 특유한 편견인 '동굴의 우상', 사회집단과 모국어에 의해 조장되는 편견인 '시장의 우상', 다양한 학파가 가르치고 조장하는 편견이나 잘못된 관념인 '극장의 우상'이 그것이다.
보다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종족의 우상은 인류라는 종이 지닌 보편적인 선입관이라고 할 수 있다. 베이컨은 모든 현상을 인간적인 것에 견주어, 즉 의인화시켜서 해석, 설명하려는 경향을 종족의 우상의 대표적인 경우로 들고 있다. 다시 말해서 종족의 우상(idola tribus)이란, 인간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선입관으로서, 우리는 이 선입관을 통해 객관적인 것을 주관화하게 된다.
동굴의 우상은 개인의 특성이나 개인이 받은 교육, 개인이 지닌 신념이나 의지하는 권위 따위에 의해 발생하는 선입관이다. 한 개인이 자기만의 동굴 안에 갇혀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을 뜻하는 셈이다. 다시 말해서 동굴의 우상(idola specus)이란, 개인이 좋아하는 그런 견해인데, 사람들은 이런 견해에 사로잡혀, 꼼짝도 못하고, 기껏해야 자기의 안경으로 사물을 보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시장의 우상은 언어의 부적당한 사용에서 비롯되는 선입관이다. 넓게는 사람들 사이의 상호 교류와 사회 생활에서 생겨나는 선입관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우상(idola fori)은, 사람들이 말들을 믿고, 그 말만 추종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어, 이 말이 뜻하는 것, 즉 개념(정의)과 사실은 생각해보지 않는 데서 생기는 우상이다.
극장의 우상은, 잘못된 논증 규칙이나 철학의 그릇된 체계 또는 학설에서 비롯되는 선입관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연기자들이 말하는 대사가 허구인 것처럼, 학문의 세계라는 극장에 등장하는 학자들의 말이 잘못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극장의 우상(idola theatri)이란, 한 학파의 전통이라고 해서, 그것만을 고집하는 그런 견해다. 즉 사실에 따라 결정을 하지 않고, 이어져 내려오는 전통에 따라 그 어떤 것을 판단하는 것이다.
동굴의 비유(洞窟-比喩 Allegory of The Cave)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국가(Politeia)' 제 7 권에서 사용한 비유. 이데아계(idea 界;관념세계)를 태양의 세계라 할 때 가시계(可視界)는 지하의 동굴 속 세계와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불빛에 의해 동굴의 벽에 투사된 형태들의 그림자는 인간에 의해 형성된 실재(實在)에, 형태들 자체는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상의 세계에, 동굴 밖에 있는 생명체와 사물들은 이데아의 세계에 각각 비유된다. 이로써 플라톤은, 인간이 생산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시공적(視空的)인 세계는 참되고 진정한 이데아의 세계에 대한 불완전한 묘사이며 그림자일 뿐이라는 그의 <객관적 관념론>의 기본사상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세계들간의 연관이 이데아 세계에 대한 현실세계의 참여라는 가정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믿었다.(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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