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꿈의 나라로 - 박영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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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나라로 - 박영희

 

 

꿈 속에 잠긴 외로운 잠이

현실(現實)을 떠난 `빛의 고개'를 넘으려 할 때

비에 무너진 잠의 님 없는 집은

가엾이 깊이 깊이 무너지도다.

 

그리우는 그림자를 잠은 안고서

꽃피는 꿈길을 달아날 때에

바람에 불붙는 잠의 집 속에

`()의 고통(苦痛)'은 붉게 타도다.

 

흩어진 내 가슴, 무너진 잠의 집은

꿈나라로 달아난 잠을 찾으러

굳게 닫은 꿈성을 두드릴 때에

붉은 비는 쏟아져 꿈길을 막도다.

 

`빛의 고개를 내게 주소서'

술 흐르는 제단(祭壇)에서 내가 울면서

`꿈의 나라를 내게 주소서'

누른 향기(香氣) 피우면서 내가 빌도다.

 

잃어버린 꿈나라로 내가 가려고

피 흐르는 진 길을 내가 걸으며

연기(煙氣) 찬 마방(魔房)에 내가 홀릴 때

꿈성을 나는 두드리도다.

 

꿈나라 수풀 속에 몸을 감초인

반가운 잠을 내가 잡고서

행복(幸福)스런 꿈나라로 걸으려 하나

그리우는 그림자를 잠은 놓치다.

 

꿈나라 넓은 길을 내가 다니고

우거진 수풀 속에 찾아서 보나

두려운 비 소리만 꿈길에 차다.

<회월시초, 조선문화사, 1937>


작가 : 박영희(1901-?) 호 회월(懷月)송은(松隱). 서울 출생. 일본 세이소쿠 영어학교 졸업. 1921 백조 동인으로 등단.

처음에는 탐미적 상징적인 서정시를 쓰다가 1924년 경 신경향파 문학으로 전향하여, 소설을 쓰는 한편 프로문학의 지도적 이론가로 활약하였다. 1925년 김기진과 함께 카프(KAPF)를 조직했으나, 1933년 탈퇴를 선언하고 순수문학적 입장을 지켰다.

시집으로는 회월시초(懷月詩抄)가 있고, 평론집인 문학의 이론과 실제(1947) 등도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이 시는 1922 1월에 창간되어 당시의 낭만적 성향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문예잡지 <백조(白潮)> 2(1922. 5)에 실렸다. <백조> 동인들은 감정과 자아의 방만한 표출이라는 낭만적 성격과 현실감각의 결여와 불명확한 언어 사용으로 인한 주정적(主情的) 경향을 함께 보여 주었다. 사랑, 눈물, 절망, 죽음이 넘쳐나는 이른바 감상적 낭만주의를 대변하는 <백조>의 창간호부터 참여한 박영희의 이 시에도 현실과 괴리된 주정적 감상성과 관념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화자는 `생의 고통'이 불타는 현실을 떠나 잠의 세계 즉 꿈의 나라로 가기를 원한다. 고통스런 현실과는 달리 꿈의 나라는 `꽃이 피어 있는' `행복스런'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의 나라로 가는 길목, 즉 현실 세계와 잠의 세계의 경계에는 `빛의 고개'가 있어서 그 곳을 통과해야만 갈 수 있는데,  `빛의 고개'가 화자에게는 주어지지 않아서 화자는 `제단'에서 그 것을 달라고 기원한다. 또 꿈의 나라로 들어가는 `꿈성'이 굳게 닫혀 있고 그 앞에는 `'가 쏟아져 꿈길을 막고 있기 때문에 화자는 `술 흐르는 제단'에서 울면서 `빛의 고개' `꿈성'의 문이 열리기를 갈구하고 있다. 또 화자는 지옥과 같은 `마방(魔房)'을 지나며 꿈성을 두드리며 꿈의 나라로 들어가려 노력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화자가 들어간 꿈의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현실에서 벗어나 꿈의 나라에 오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그리워하던 꿈 나라의 그림자는 잠을 스쳐가기만 하고 `행복스런' 나라는 없었다.

 

`잠의 집'이란 꿈이 있고 그 안에 행복이 있으리라 예상했던 곳이지만, 그곳은 현실을 벗어나 숨으려는 도피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그가 찾고 `그리우는' 나라는 없는 것이다. 화자는 꿈나라의 넓은 길을 다니며 `꿈나라 숲 속에 몸을 감추인 / 반가운 잠을 내가 잡고서 / 행복스런 꿈나라로' 걸어가기 위해 숲 속을 찾지만 그 곳에는 반가운 잠도 그리워하는 그림자도 없었다. 현실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떠나온 꿈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행복은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꿈길은 `두려운 빗소리'에 가득 찬 곳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고통에서 도피하겠다는 시도에 따르는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진취적 기상과 의지가 결여된 이에게 꿈과 현실은 모두 불행할 것이다. 시적 정황이나 이미지와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 이 시에는 꿈과 현실 어디에서도 행복하게 안주할 수 없는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시의 제재로 드러나 있다. [해설: 이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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