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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놀음 대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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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놀음

 

<제1마당> 박 첨지 마당

 

곡예장

 

박첨지 : 떼루 떼루 떼루 떼루.(새면에서 꽹매기를 꽹친다. 박이 놀래어) 이게 무슨 소리냐?

새면 : 여보, 영감!

박첨지 : 어 -.

새면 : 웬 영감이 아닌 밤중에 요란히 구느냐?

박첨지 : 날더러 웬 영감이랬느냐?

새면 : 그랬소.

박첨지 : 나는 살기는 웃녘 산다.

새면 : 웃녘 살면, 웃녘이 어디란 말이오?

박첨지 : 나 사는 곳을 저저이 이를 터이니 들어 보아라.

새면 : 자세히 일러 보시오.

박첨지 : 서울로 일러도 일간동, 이목골, 삼청동, 사직골, 오궁터, 육조앞, 칠관악, 팔각제, 구리개, 십자가, 광명주리, 만리재, 아래벽동, 웃벽동, 다 젖혀 놓고, 가운데 벽동 사시는 박 사과라면 세상이 다 알고, 장안 안에서는 뜨르르하시다.

새면 : 그래, 무엇하러 나왔어?

박첨지 : 날더러 왜 나왔느냐고?

새면 : 그래서

 

박첨지 : 내가 나오기는 있던 형세 패가(敗家)하고, 연로다빈하여 집에 들어 앉았을 길이 없어서, 강산박람차로 나왔다가, 날이 저물어 주막을 찾아 주인에게 저녁 한 상 시켜 먹고, 긴 장죽 물고 가래침 곤두리고 가만히 누웠노라니, 어디서 별안간 뚱 뚱 뚱 뚱 하길래, 밖에를 나와 보니 어른은 두런두런, 어린 아이는 도란도란, 지껄덤벙하기로 "너희들 무엇을 이리 지껄대냐?"고 물으니 "이 동리에 남녀 사당이 놀음 놀기로 구경하려고 합니다." 어린애들은 이렇게 대답을 하나, 젊은 사람들은 "심한 잡늙은이, 길 가다 잠이나 일찍 잘 것이지, 닷 곱에도 참녜, 서 홉에도 참녜는 무엇인가?"하기로, 나도 현선 백결에 늙었으나 노염이 더럭 나서, "이놈들! 신로심불로(身老心不老)라 하였거든, 늙은이는 눈과 귀가 없느냐?"고 호령 반 꾸짖었더니 다 물러가더라.

새면 : 욕을 했으면, 무엇이라고 훈계를 했습나?"

박첨지 : 양반이 지식 있게 꾸짖었겠지 상없이 말했겠느냐?

새면 : 그래서

 

박첨지 : 네 에미 궁둥이와 네 애비 궁둥이와 마주 대면 양장구 똥구멍이 될 놈아! 이렇게 꾸짖었네.

새면 : 예끼! 심한 잡늙은이! 그리고 어떻게 했어?

박첨지 : 꾸짖고 보니 새면 소리는 신명을 돋우기로 차아 찾아오니 이 곳을 당도했네. 많이 모인 사람 중에 넘성 기웃 넘어다보니, 어여쁜 미동(美童)과 미색(美色)이 긴 장단 군복에 남전대 띠를 띠고 오락가락 춤추는 양을 보니, 내가 길 가던 늙은이일망정 어깨가 으쓱하기로 늙은 체모에 말 못할 말이나, 주머니 귀퉁이를 들여다보니 쓰던 돈이 조금 남았기로…

새면 : 그래서?

 

박첨지 : (아무 말없이 눈을 감는다. 밑에서 치는 꽹매기 소리에 놀래어) 어! -

새면 : 얘, 박첨지! 그간 이야기하다가 잠을 자나, 꿈을 꾸나?

박첨지 : 얼마, 얼마, 얼마, 얼마, (타령조) 날더러 얼마를 가지고 나왔느냐고?

새면 : 그래서

 

박첨지 : 잔뜩 칠 푼이더라.

새면 : 칠 푼을 가지고 어디어디 썼단 말이오?

박첨지 : 비록 늙었을망정 비면이 썼겠느냐? 돈 쓴 데를 말할 터이니 자세히 들어 보아라. 사당 아이는 손목 잡고 돌리고 주기와, 어여쁜 미색(美色)은 좋고 좋은 상평통보(常平通寶)를 입에 물고 주기와, 거사 불러 거사전 주고, 모개비 불러 행하해 주고 나서, 한쪽이 무끈하기로 주머니 구석을 들여다 보니, 칠 푼 가지고 행하해 준 본전이 삼칠은 이십일에 두 냥 한 돈이 남았더라.

새면 : 예끼 심한 잡늙은이! 본전은 칠 푼인데, 행하해 주고도 두 냥이 한 돈이 남았다니, 행하 주러 나온 게 아니라 여러 손님 주머니를 떨지 않았는가?

박첨지 : 얘 이놈아! 네 그게 무슨 소리냐? 늙은이를 말 시키고 술은 대접 못할망정 고왕금래(古往今來)로 법이 있어서 이 곳에도 번화한 곳이라 관리가 있거든, 늙은 박가를 포도청에다가 넣고 싶어서 무죄한 사람한테 그게 무슨 말이냐?

새면 : 그러면 어째서 칠 푼 가지고 실컷 썼는데, 두 냥 한 돈이 남았단 말이오?

박첨지 : 네가 늘고 주는 목을 모르는구나.

새면 : 늘고 줄다니요?

박첨지 : 세상 만물이 번성하여질 제, 나는 짐승은 알을 낳고 기는 짐승은 새끼를 치는 줄을 모르느냐? 이 잡놈들아! 내 돈도 그렇게 번성했다는 말이다.

새면 : 내가 잡것이 아니라 박노인이 늙은 심한 잡것이오. 그러나 무엇을 하려고 나와 우뚝 섰소?

박첨지 : 날더러 말이냐?

새면 : 그래서

 

박첨지 : 몸은 늙었을망정 마음에 신명이 나서 어깨가 으쓱하니, 춤 한 번 추자고 나오셨다.

새면 : 그러면 한 식 추어 보시우.

박첨지 : 나는 이렇게 한 식 추었으나, 뒷절에 소무당녀들이 쌍쌍이 짝을 지어 나물을 캐다가 이 장단 소리를 듣고 춤추러 나온다네.

새면 : 나오라게 하게.

박첨지 : 그러면 나는 육모초 들어가네. - 막-

 

(중략)

 

넷째, 이시미 거리

 

박첨지 : 아 하 여보게 우리 한상 노세. 저 청국땅 청노란새가 우리 곳은 풍년들고 저희 곳은 흉년들었다고 양식 됫박이나 축내려 나온다네.

산받이 : 그럼 나오라게 그러게.( 새소리. 청노새가 나와서 까불면 미리 나와 있던 용강 이시미가 잡아먹는다.)

박첨지 손지 : 우여 우여.

산받이 : 넌 누구여.

박첨지 손자 : 내가 박영감 손자다.

산받이 : 왜 그리 오종종하게 생겼나.

박첨지 손자 : 내가 나이가 많아서 그렇다.

산받이 : 너 나이가 몇인데.

박첨지 손자 : 내 나이 여든두 살.

산받이 : 그럼 니 할애비는.

박첨지 손자 : 우리 할아버지는 열두 살, 우리 아버지는 일곱살, 우리 어머니는 두 살.

산받이 : 이 망할 자식.

박첨지 손자 : 우여 우이여 애개개개.(이시미에게 잡혀 먹힌다.)

피조리 : 내가 비생이여.

산받이 : 야, 기생이면 기생이지 비생은 뭐여.

피조리 : 참 기생이여.

산받이 : 너 그간 어디 갔다 왔니?

피조리 : 나 거울 갔다 왔어요.

산받이 : 서울이면 서울이지 거울이 뭐여. 그래 뭣하러 갔었나?

피조리 : 권반에 갔다 왔어요.

산받이 : 고럼 너 소리 잘 하겠다. 한 번 해봐라.

피조리 : 내가 소리하면 당신 똥구녁 쳐.

산받이 : 허 허 미친단 말이지. 그럼 한 번 해봐라.

피조리 : 그럼 할께요. (창(唱) 날좀 보소. 날좀 보소, 동지 섣달 꽃본듯이 날좀 보소. 아리 아리랑 스리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보내주, 우이여 우이여 아이구구… (이시미에게 잡혀 먹힌다.)

작은 박첨지 : 우이여 우이여

산받이 : 건 누구여.

작은 박첨지 : 내가 박첨지 동생이여.

산받이 : 그래, 뭣하러 나왔나.

작은 박첨지 : 오조밭에 새 보러 나왔네.

산받이 : 그럼 보게나.

작은 박첨지 : 우이여 우이여 애구구 …(이시미에게 잡아 먹힌다.)

꼭두각시 : 우이여 우이여.

산받이 : 건 또 누구여. 왜 그리 못생기고 비틀어지고 찌그러졌나.

꼭두각시 : 왜 내 얼굴이 어때서요. 이래 뵈도 내 궁둥이에 건달만 졸졸 따라 다닙니다.

산받이 : 아이구 그 꼴에 건달들이 따라 다녀.

꼭두각시 : 한 번 해 볼까요.( 창(唱) 시내 강변에 고깔집을 짓고요 너하고 나하고 단둘이만 살잔다. 어랑 어랑 어허이야 어허이야 데헤이야 모두 다 연이로구나. 애개개개…)

(이시미에게 잡아 먹힌다.)

 

 

(중략)

 

동방석이 : 어흠 어흠

산받이 : 건 누구요?

동방석이 : 내가 삼천 년을 산 삼천갑자 동방석이다.

산받이 : 아, 그럼 당신이 삼천갑자 동방석이란 말이지?

동방석이 : 그렇지요.

산받이 : 그럼 왜 나왔소.

동방석이 : 이리 저리 다니다 보니 이곳에 사람이 많아서 한 번 나와봤지. 나 시조나 한 수 할까. (시조) 이나마 늙었으니 다시 젊어지지는 못히리로다.…아야야 …(이시미에게 잡혀 먹힌다.)

묵대사 : 어흠 어흠

산받이 : 아 당신은 뭣하는 사람인데 눈을 딱 감고 나왔소?

묵대사 : 내 눈을 딱 감고 다니는 것은 세상에 모두 고약한 것만 보여서 이렇게 감고 다니네.

산받이 : 여보시오 대사님. 여기는 신성한 곳이고 좋은 사람만 모였으니 한 번 떠 보시오.

묵대사 : 그럼 당신 말이 좋아 한 번 떠 보겠소. 뜬다뜬다 떴다.

산받이 : 어디 떴소?

묵대사 : 아 그런가. 그럼 뜬다 뜬다 떴다.

산받이 : 하 그렇게 좋은 눈을 가지고 왜 감고 다니셨소?

묵대사 : 아 하 여기는 좋은 분들만 계시니 내 눈을 뜨고 있어야겠소.

산받이 : 대사님 기왕 눈을 뜨신 바에야 춤이나 한상 추시오.

묵대사 : 허 내 회심가(때로는 염불)나 한 자락 부르지요. (회심가 또는 염불을 하는 중 이시미에게 잡혀 먹히기도 하나 때로는 살아 돌아가기도 한다.)

박첨지 : 우 우 우 우여 우여. 아 여보게 우리 딸. 조카, 머슴, 손자, 새 보러 나왔는데 다 어디 갔나?

산받이 : 영감네 식구 새 보러 나오는 족족 저용강 이시미가 다 잡아 먹고 나 나오면 마저 잡아 먹는다고 외뚝에 넙죽 업드려 있다고, 아이고 어디로 가나.

 

(중략)

 

(박첨지 이시미에게 물렸다)

산받이 : 잘 됐다.

박첨지 : 아이구 여보게 우리 조카 좀 불러주게.

산받이 : 산너머 진둥아

홍동지 : (안에서) 똥눈다.

산받이 : 야 이놈아 빨리 나오너라.

홍동지 : (나오며) 어

산받이 : 네 외삼촌이 저 용강 이시미에게 낯짝 복판을 물려서 다 죽어간다. 빨리 가봐라.

홍동지 : 뭐 우리 외삼촌이, 아따 그 망할 자식 잘 됐다.

산받이 : 야 이놈아 너 외삼촌을 보고 그러면 돼, 빨리 가 봐라.

홍동지 : 이리로 가나, 이리?

산받이 : 이리는 전라도 이려, 저리

홍동지 : 저리?

산받이 : 그 쪽으로

홍동지 : 옷 좀 벗고, 벗었다.

산받이 : 야 이눔아, 어디 무슨 옷을 벗어?

홍동지 : 아주머니 바지 저고리를 입어서 그렇지. 아 차거워. (이시미에게 간다) 이 이게 뭐야.

산받이 : 그거다 그거.

홍동지 : 아 거 외삼촌이요.

박첨지 : 낼쎄.

홍동지 : 어 다 파먹고 퍽퍽한다. 외삼촌 내 말 좀 들으시오. 외삼촌이 한 살이오. 두 살이오. 내일 모레 팔십을 넘어 사십줄에 들어갈 분이 그저 집안에서 애나보고 나락 멍석에 새나 보고 계시면 오뉴월 염천에 솜바지 저고리 벳길기요, 그저 잔치집이라면 오르르, 제사집이라면 쪼르르, 딸랑하면 한푼, 바싹하면 한 되, 에이 심한 개 영감.

박첨지 : 할 말 없네, 살려 주게.

홍동지 : 어 할 말 없다고 살려 달라네.

산받이 : 암 살려 주고 봐야지.

홍동지 : 그럼 살려 놓고 봐야 하나. 어리치 어리차.

(이시미와 싸워 이긴다.)

산받이 : 야 이놈아 죽었다.

홍동지 : 야 거 떨어졌구나, 야 그놈 참 대단하구나. 저놈 벗겨서 야광주 빼가지고 인천 제물에 가 팔아가지고 옷 좀 해입고 부자 좀 돼야겠다.(퇴장)

산받이 : 그럼 그래라.

박첨지 : 아하 여보게 나 살 뻔했다.

산받이 : 살 뻔한 게 뭐여 죽을 뻔했지.

박첨지 : 아 그놈이 그걸 잡았나. 그놈 참 일곱 동네 장사지. 내가 그놈 걸 죄다 뺏어야겠다.

산받이 : 살려 준 공으로도 뺏어서야 되나.

박첨지 : 아니 그놈이 날 살렸나. 내 명이 길어서 살았지.

산받이 : 이 사람아 그러면 되나, 어서 들어가서 따뜻이 막걸리나 한 사발 받어 주게.

박첨지 : 아 그러면 내 그러겠네.

 

(중략)

 

 

다섯째, 표 생원 거리

 

다섯째, 표 생원 거리

 

표 생원 :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처음으로 관동 팔경(關東八景)을 구경하면 우리 부인을 만나 볼까, 관서 팔경(關西八景)을 구경하면 우리 부인을 만나 볼까, 전라도라는 곳에 명승지도 있건마는 어느 곳 명승지지(名勝之地)가 좋길래 나를 버리고 우리 부인이 구경갔나. 아서라, 이게 모두 쓸데없는 짓이다. 여담은 절각이라니 돌모리집 얻어 데리고 살면서 우리 부인을 잠시 돌아보지 않은 까닭이로구나. 방방곡곡 다 찾아보았으나 종내 만날 수가없으니 다만 한숨뿐이로다.

돌모리집 : 여보, 영감, 별안간에 그게 무슨 말이오. 그까짓 본마누라를 찾으면 무엇 한단 말 이요. 나는 명산 대찰(名山大刹) 구경하러 나선 줄 알았더니 인제 보니까 마누라 찾아 다녔구려. 아이고, 속상해. 이 팔자가 왜 이렇게 기막힌가.

표 생원 : 요사스런 계집이로군. 대장부가 아무려든 무슨 잔말이냐. (화를 내며)

돌모리집 : 그렇지. 작은집이란 이러기에 서러워. (돌아선다.)

표 생원 : (등을 어루만지며) 여보게, 자네가 이다지 노할 줄 알았으면 내가 실수일세. (표 생원 부인 꼭두각시 등장)

꼭두각시 : (唱) 어허, 이게 웬 일인가. 이 세상에 나와 보니 인간 이별 만사중에 독수공방 (獨守空房)이 더욱 슬어. 인간 만사 마련할 제, 이별 빼지 못하였나. 우리 영감 어디갔노. 여보 영감, 여보 영감.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표 생원 : 허허, 이게 웬 소린가. 나 같은 이 또 있는가. 어디서 마누라 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 하네. 불러 볼까. 여보 마누라, 여보 마누라.

꼭두각시 : 어디서 영감 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 여보 영감, 여보 영감.

표 생원 : 어디서 마누라 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

(唱) 거기 누가 날 찾나. 날 찾을 이 없건마는 거 누가 날 찾아. 기산영수별건곤(箕山潁水別乾坤)에 소부 허유(巢父許由)가 날 찾나. 채석강 명월하(採石江明月下)에 이적선(李謫仙)이날 찾나. 상산사호(商山四誥) 늙은이가 바둑 두자고 날 찾나.

꼭두각시 : 아이고, 이게 웬 소린가. (차차 표에게 가까이 오면서) 아이고, 이게 웬 소린가. 거 영감이요.

표 생원 : 거 마누라인가.

꼭두각시 : 네, 영감이면 내가 해 입힌 옷을 만져 봐야 할 것이요.

표 생원 : 마누라가 해 입힌 옷이 어떻길래 만져 보고 안단 말이요.

꼭두각시 : 내가 해 입힌 옷은 영감 양소매에 불알이 달렸소.

표 생원 : 마누라 음성과 말을 들으니 마누라는 분명한데 그간 어디를 갔다 인제 왔나.

꼭두각시 : 영감을 찾으려고 강원도 금강산, 충청도 계룡산, 전라도 지리산, 경상도 태백산, 함경도 백두산, 황해도 구월산, 평양 연광정, 어리빗 사이, 참빗 사이 틈틈이 다 찾아 다니고 이제 해남 관머리로 갈 차로 왔다가 영감을 만났소.

표 생원 : 허허, 도리어 부끄러우며 할 말 없네. 그러나 자네 얼굴에 우툴두툴한 게 먼가.

꼭두각시 : 내 얼굴 말이오.

표 생원 : 그래서.

꼭두각시 : 내 얼굴은 뉘 탓이오? 강원도 가서 영감 찾느라고 깊은 산중에 도토리묵을 먹어서 그렇게 되었소.

표 생원 : 머 어째고 어째여? 산골에서 묵을 먹고 얼굴이 저 조격이 되었으면 나는 함경도 백두산에 다녀서 삼수 갑산으로 나올 제, 강낭이와 사수리를 통채로 삶아 먹었는데 우툴두툴커녕 내 얼굴엔 네가 나막신을 신고 다녀 봐라. 해고 망칙스런 년. 요사스런 계집도 많다. (사이) 그러나 생각하니 개천에 나도 용은 용이요, 짚으로 만들어도 신주는 신주라니. 돌모리집한테 훈계하여 큰마누라에게 상우례나 시켜보자. 여보게 돌모리집네. (돌모리집을 불러 앞에 세우고 꼭두각시와 대하야) 여보, 부인. 그러나 저러나 객담은 고만 두고살아갈 이야기나 합시다. 부인이 어느덧 환갑이 넘고 내가 연만 팔십에 연로 다빈(年老多貧)하고 따라서 일점 혈육이 슬하에 없으니 이런 낭패가 어디 있나? 그러므로 부인도 근심이되지요?

꼭두각시 : 여러 해포만에 만나긴 만났으나 그도 또한 나 역시 근심이오.

표 생원 : 부인의 말이 그러하니 말이요. 내가 그 전에 작은집을 하나 얻었소.

꼭두각시 : 아이고, 듣던 중 상쾌한 말이오. 이 형편에 큰 집, 작은 집을 어찌 가리겠소. 집을 얻었으나 재목이나 성하며 양지 바르고 또 장인들 담거 놨겠소.

표 생원 : 어오? 아 이게 무슨 소리여. 장은 무슨 장이며 재목은 무슨 재목?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네. 소실을 얻었단 말이여.

꼭두각시 : 아이고, 영감, 이게 무슨 소리요. 이날껏 찾아 다니면서 나중에 이런 험한 꼴을 보자고 영감을 찾았구려.

표 생원 : 잔말 말고 주는 게나 먹고 지내지.

꼭두각시 : 그러나 저러나 적어도 큰마누라요, 커도 작은마누라니 인사나 시키오.

표 생원 : 여보게 돌모리집네, 법은 법대로 하세.

돌모리집 : 무얼 말이오?

표 생원 : 큰부인한테 인사나 하게.

돌모리집 : 머지 않은 좌석에서 들어도 알겠소. 내가 적어도 용산삼계(龍山三界) 돌모리집이라면 장안 안이 다 아는 터인데 유명한 표 생원이기로 가문을 보고 살 기어든 날더러 작은집이라 업신여겨 큰부인에게 인사를 하여라, 절을 하여라 하니 잣골내 시댁 문 앞인가 절은 웬 절이여? 인사도 싫고 나는 갈 터이니 큰마누라 하고 잘 사소. (돌아선다)

표 생원 : 돌모리집네 여직 사던 정리로 그럴 수가 있나. 오뉴월 불도 쬐다 물러나면 서운하다네. 마음을 돌려 인사하게.

돌모리집 : 그러면 인사해 볼까요? (아무 말없이 화가 나서 꼭두각시한테 머리를 딱 들여받으며) 인사 받으우.

꼭두각시 : (놀래며) 이게 웬 일이여? 여보 영감, 이게 웬일이요. 시속 인사는 이러하오? 인사 두 번 받으면 내 머리는 간다봐라 하겠구나. 인사도 싫으니 세간을 나눠 주오.

표 생원 : 괘씸스런 계집들은 불 같은 욕심은 있고나. 나의 집은 해남 관머리요, 몸 지체는 한양 성중인데 무슨 세간, 무슨 재물을 나눠 주니? 짚은 몽둥이로 한 번 치면 다 죽으리라.

(표가 화를 내고 있는데 박이 나온다.)

박 첨지 : 실례 말씀이요마는 잠시 지내다 보니 남의 가관사나, 내 몸은 일개 구장으로 모른 체 할 수 없어 물어 보니 허물치 마오.

표 생원 : 네, 구장이십니까. 판결 좀 하여 주시오. 제가 해남 사는 표 생원으로 부부 이별하고 그간 소실을 얻어 이 곳에 왔다가 거기 선 저 화상(꼭두각시를 가리키며)은 나의 큰마누라인데 작은집으로 감정을 내어 세간을 나눠 달라 하오니 백계무책이오. 어찌할는지요.

박 첨지 : 그러면 세 분이 다 객지(客地)요?

표 생원 : 여기는 객지나 다름없습니다.

박 첨지 : 재산이 있으면 나눠 줄 마음이오?

표 생원 : 다시 이를 말씀이오. (박이 한참 생각한다)

박 첨지 : 내가 일동 구장으로 잘 처리하겠으니 염려마우.

(唱) 돌머리집은 왕십리에 구실 은(銀) 두 되 하는 논 너 마지기를 주고, 꼭두각시는 남산봉우제 재실재 답 구실 닷 마지기 고초밭 하루갈이 주고, 용산삼개 들어오는 뗏목(筏木)은 모두 다 묶어다가 돌모리집 가져가고 꼭두각시 널랑은 명년 장마에 떠밀리는 나무 뿌리는 너 다 갖고 은장봉장, 자개함농, 반닫이는, 글랑 모두돌모리집 주고 뒤곁에 돌아가 개똥밭하루갈이와 매운 잿독 깨진걸랑 꼭두각시 너 다 가져라.

꼭두각시 : (唱) 허허, 나는 가네. 나 돌아가네. 덜덜거리고 그 돌아가네. (춤추며 나간다)

(자료 출전 : 남운룡 구술, 심우성 채록본)

권반 : 일제 시대 때 기생들이 기적(妓籍)을 둔 조합

오조 : 일찍 익는 조

연 : 인연

동방석이 : 서민들의 오래 살고 싶은 소망이 들어 있다.

묵대사 : 세상이 불합리함을 암시함.

나락 : 벼

염천 : 몹시 더운 날씨.

벳길기요 : 벗기겠는가

외삼촌 ~ 개 영감 : 나이에 걸맞지 않게 주책없이 행동함을 뜻함.

제물 : 인천의 제물포

명승지지 : 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곳.

여담은 절각 : '네 집에 담이 없었으면 내 소의 뿔이 부러졌겠느냐'는 뜻으로, 남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억지쓰는 말

대장부가 아무려면 무슨 잔말이냐 :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에서 하는 말로, 남자가 하는 일에 여자가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것. 남성 중심적 가족 제도의 모순을 드러낸 말

작은 집이란 이러기에 서러워 : 첩(妾)의 신분적 제약과 고충에 대한 반발감의 표현

독수공방 : 여자가 남편없이 혼자 밤을 지냄.

슬어 : 슬퍼.

기산영수별건곤 : 인간 세계와 다른 소부 허유가 살던 기산과 영수

소부 허유 : 중국 고대의 전형적인 은사 두 사람

채식강명월하 : 이백이 놀던 채석강의 밝은 달 아래.

이적선 :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인 이백의 미칭. 두보와 함께 시종(詩宗)이라 일컬어짐.

상산사호 : 중국 진시황 때 국란을 피하여 섬서성 상산에 들어가 숨은, 눈썹과 수염이 흰 네 사람의 은사.

거기 누가 ∼ 날 찾나. : 표 생원 자신의 낙천적이고 호방한 기질을 과시하고자 하는 말.

조격 : 모양새

삼수 갑산 : 함경남도 삼수군과 갑산군의 군청 소재지. 교통이 불편하고 다른 지방과 풍습과 습관이 다르며, 고립된 곳.

신주 : 죽은 사람의 위(位)를 베푸는 패

상우례 : 신랑이 처가의 친척과, 또는 신부가 시가의 친척과 처음 만나는 예식

객담(客談) : 쓸데없는 말. 객설(客說)

해포 : 1년이 넘는 동안

작은집 : 첩, 작은 마누라

생각하니 개천에 나도 용은 용이요, ∼큰 마누라에게 상우례나 시켜 보자. : 표 생원이 자신의 축첩을 기정 사실화하고 합리화하려는 속셈이 나타나 있다. 이는 축첩 제도의 모순을 통해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의 잘못을 비판하려한 의도가 숨어 있다고 보여진다.

집을 얻었으나 ∼장인들 담거 놨겠소 : '집'의 의미를 오해하고 하는 말로, 표 생원의 축첩 행위에 대한 비판의 어조를 암시한다. 언어 유희가 사용됨.

잔말 말로 주는 게나 먹고 지내지. : 본처에 대한 표생원의 횡포가 나타나 있다.

소실(小室) : 첩, 작은 부인

그러나 저러나 ~ 인사나 시키오 : 현실을 인정하고 본 부인으로서의 권위와 체통을 찾으려는 행위

정리 : 정과 의리

시속 : 당시의 풍속

오뉴월 불도 ~ 서운하다네 : 필요없는 것도 있다가 없으면 섭섭하다는 말.

간다봐라 하겠구나 : 머리가 깨어지겠다는 말.

인사도 싫으니 세간을 나눠 주오 : 처첩 간의 화해를 거부하고 경제적인 보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꼭두각시의 현실적 태도와 비애를 표현함.

가관사 : 가정과 관계된 일. 집안 문제

구장 : 한 지역을 맡고있는 책임자

화상 : 상대방이 마땅하지 못해 꾸짖을 때 쓰는, 상대방을 일컫는 말

백계무책 : 백 가지 방법이 전혀 소용이 없음

돌모리집은 왕십리에∼꼭두각시 너 다 가져라 : 분쟁을 객관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돌모리집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여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는 말.

구실 : 온갖 조세

은장봉장 : 은으로 봉황의 모양을 새겨 꾸민 옷장

자개함농 : 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으로 꾸민 함과 장롱

허허, 나는 가네.∼돌라가네(춤추며 나간다.) : 꼭두각시의 현실적 고통과 한의 심정을 춤추는 행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민중들에게 가해진 억압과 사회 구조의 모순에서 오는 그들의 한, 억눌린 현실에서 풀어 헤치는 감정의 매듭이 나타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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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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