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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놀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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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두각시놀음

요점 정리

연대 : 미상

작자 : 미상

채록 : 심우성

형식 : 인형극 대본

성격 : 풍자적, 익살적

표현 : 과장법

구성 : 여덟 마당

제재 : 가족 제도의 모순

주제 :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풍자

출전 : 남운룡 구술, 심우성 채록본

기타 : 1. 막과 막 사이에 줄거리상 연관이 없다.

2. 무대밖의 악사나 관중이 등장 인물과 수시로 대화 할 수 있다.

구조 : 2마당 8거리(막) 전체 이야기의 구성은 8막으로 되어 있으며, 크게 제1마당인 '박 첨지 마당'과 제2마당인 '평안 감사 마당'으로 나누어진다.

특징 : 탈춤과 다른 이 연극 양식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연극 공연 장소에 사람이 아닌 '인형'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실린 작품은 전체 8막 중, 제5막 '표 생원'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표생원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본처 꼭두각시를 만나는데 첩인 돌모리집을 상면시키자 싸움이 벌어지고, 박 첨지는 살림을 나누어 준다면서 첩에게만 후하게 나누어 주자, 꼭두각시는 금강산으로 중이 되러 가겠다고 퇴장하는 장면이다. 이 작품 역시 서민들 사이에서 연희되어 왔던 관계로 비속하고 해학적인 표현이 많이 사용되어 있어, 우리 나라 전통 인형극의 특징인 골계미를 엿볼 수 있으며, 또한 주제면에서도 일부 처첩제(一夫妻妾制)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 제도라는 사회적 모순에 대해 신랄하게 풍자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전통 인형극이나 탈춤에서는 주로 대사의 적나라한 표현과 일상성에 의해 등장 인물을 희화화(戱畵化)시키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넓은 의미의 해학 혹은 골계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박 첨지 마당>

제 1 마당

(1) 박 첨지 유람 거리

박 첨지가 팔도 강산을 유람하다가 남사당패 놀이판에 끼어든 이야기를 산받이와 나누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2) 피조리 거리

뒷절의 상좌들이 박 첨지의 질녀와 놀아나는 것을 보고 박 첨지가 노해서 자기 조카인 홍동지를 불러 중을 내쫓는 장으로, 파계승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3) 꼭두각시 거리

박 첨지가 사돈 최영로의 집에 가서 새를 쫓으러 가는데, 사람이 나오는 족족 잡아먹는 용강 이심이에게 막 잡아먹힐 뻔하였을 때 홍동지가 구해 준다.

(4) 이심이 거리

눈을 감고 등장한 이유가 세상을 부정하기 때문이라고 하여 세상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평안 감사 마당>

제 2마당

(5) 표 생원 거리

해남의 양반인 표 생원은 본 마누라와 첩 사이에서 낭패에 처하고 박 첨지는 표생원을 돕는다는 핑계를 꼭두각시에게 불리하게 표 생원의 재산을 분배한다.

(6) 매사냥 거리

평안 감사가 새로 부임해 와서는 매사냥을 하겠다며 포수와 사냥하는 매를 대령하도록 한다.

(7) 상여 거리

평안 감사가 모친상을 당해 상여가 나가는데 상제는 오히려 좋아하며, 향두꾼으로 벌거벗은 홍동지가 불려와 상여를 맨다.

(8) 절 짓고 허는 거리

박 첨지가 나와 장례 후 명당에 적을 짓겠다고 알리며, 중 2명이 나와 조립식 법당을 짓고 다시 헐어 버린다.

내용 연구

제5막 표 생원(表生員)

제5막 ▶ 표 생원의 처(꼭두각시)와 첩(돌모루집)의 다툼 : 표 생원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본처 꼭두각시를 만나는데, 첩인 돌모루집을 소개하자 싸움이 벌어진다. 또한 박 첨지가 살림을 나누어 준다면서 첩에게만 후하게 나누어 주자 꼭두각시는 한탄하며 퇴장한다.

 

표 생원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갈까, 처음으로 관동 팔경[(關東八景):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여덟 명승지.]을 구경하면 우리 부인을 만나 볼까, 관서 팔경[(關西八景): 평안도에 있는 여덟 군데의 명승지.]을 구경하면 우리 부인을 만나 볼까, 전라도라는 곳에 명승지(名勝地)도 있건마는 어느 곳 명승지지(名勝之地)[(名勝之地): 경치가 좋기로 이름난 곳.]가 좋길래 나를 버리고 우리 부인이 구경 갔나, 아서라 이게 모두 쓸데없는 짓이다. 여담은 절각[너의 집 담이 아니었으면 내 소의 뿔이 부러졌겠느냐는 뜻으로, 남에게 책임을 지우려고 억지를 쓰는 말.]이라니 돌모루집 얻어 데리고 살면서 우리 부인을 잠시 돌아보지 않은 까닭이로구나. 방방곡곡 다 찾아보았으나 종내[끝내.] 만날 수가 없으니 다만 한숨뿐이로다.

 

돌모루집 여보 영감 별안간에 그게 무슨 말이오. 그까짓 본마누라를 찾으면 무엇한단 말이오. 나는 명산대찰(名山大刹) 구경하러 나선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까 마누라를 찾아다녔구려. 아이고 속상해 이 팔자가 왜 이렇게 기막힌가.[(명산대찰 구경 다니는 줄 알고 따라다녔는데, 표 생원이 본처를 찾아다니고 있었던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표 생원 (화를 내며) 요사스런 계집이로군. 대장부가 아무려든 무슨 잔말이냐.[가부장적 태도]

 

돌모루집 그렇지 작은집이란 이러기에 서러워. (돌아 다.)[첩의 신분적 제약과 고충에 대한 반발감의 표현]

표 생원 (등을 어루만지며) 여보게 자네가 이다지 노할 줄 알았으면 내가 실수일세.

부인을 찾는 표 생원과 이를 질투하는 돌모루집

표 생원 부인 꼭두각시 등장.

꼭두각시 (창) 어허 이게 웬일인가. 이 세상에 나와 보니 인간 이별 만사 중에 독수공방[여자가 남편 없이 혼자 지냄. 독숙공방.]이 더욱 설워. 인간 만사 마련할 제 이별 빼지 못하였나. 우리 영감 어디 갔노 여보 영감 여보 영감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나.

표 생원 허허 이게 웬 소린가. 날 같은 이 또 있는가. 어디서 마누라 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하네. 나도 한번 불러 볼까 여보 마누라 여보 마누라.

꼭두각시 어디서 영감 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 여보 영감 여보 영감.

표 생원 어디서 마누라 소리가 나는 듯 나는 듯.

 

(창) 거기 누가 날 찾나. 날 찾을 이 없건마는 거 누가 날 찾아. 기산영수(箕山穎水) 별건곤(別乾坤)[인간 세계와 다른, 소부 허유가 살던 기산과 영수.]에 소부 허유(巢夫許由)[중국 고대의 전형적인 은사(隱士) 두 사람]가 날 찾나. 채석강(採石江) 명월(明月)하[이백이 놀던 채석강의 밝은 달 아래]에 이적선(李謫仙)[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인 이백(李白)의 미칭(美稱).]이 날 찾나. 상산사호(商山四皓)[중국 진시황 때에 난리를 피하여 산시 성(陝西省) 상산(商山)에 들어가서 숨은 네 사람. ‘호(皓)’란 본래 ‘희다’라는 뜻으로, 이들이 모두 눈썹과 수염이 흰노인이었다는 데서 유래함.] 늙은이가 바둑 두자고 날 찾나.[표 생원 자신의 낙천적이고 호방한 기질을 과시하고자 하는 말이다.]

 

꼭두각시 아이고 이게 웬 소린가 (차차차 표 생원에게 가까이 오면서) 아이고 이게 웬 소린가 거 영감이오.

표 생원 거 마누라인가.

꼭두각시 네, 영감이면 내가 해 입힌 옷을 만져 봐야 할 걸이요.

표 생원 마누라가 해 입힌 옷이 어떻길래 만져 보고 안단 말이오.

꼭두각시 내가 해 입힌 옷은 영감 양 소매에 불알이 달렸소.

표 생원 마누라 음성과 말을 들으니 마누라는 분명한데, 그간 어디를 갔다 언제 왔나.

꼭두각시 영감을 찾으려고 강원도 금강산, 충청도 계룡산, 전라도 지리산, 경상도 태백산, 함경도 백두산, 황해도 구월산, 평양 연광정(鍊光亭), 어리빗[얼레빗. 빗살이 굵고 성긴 큰 빗.] 사이 어리빗 사이 참빗[빗살이 아주 가늘고 촘촘한 빗.] 사이 참빗 사이 틈틈이 찾아다니고 [굵고 촘촘한 빗 사이사이까지 찾아다녔다는 뜻]이제 해남 관머리로 갈 차로 왔다가 영감을 만났소.

표 생원 허허 도리어 부끄러우며 할 말 없네. 그러나 자네 얼굴에 우툴두툴한[고르지 못한] 게 뭔가.

표 생원과 꼭두각시의 만남

꼭두각시 내 얼굴 말이오?

표 생원 그래서.

꼭두각시 내 얼굴은 뉘 탓이오? 강원도 가서 영감 찾느라고 깊은 산중에 도토리묵을 먹어서 그렇게 되었소.

표 생원 뭐 어쩌고 어째여? 산골에서 묵을 먹고 얼굴이 저 조격[모양새.]이 되었으면 나는 함경도 백두산에 다녀서 삼수갑산(三水甲山)[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산골이라 이르던 삼수와 갑산. 조선 시대에 귀양지의 하나였음.]으로 나올 제 강냉이와 상수리를 통째로 삶아 먹었는데 우툴두툴커녕 내 얼굴엔 네가 나막신을 신고 다녀 봐라. 해고 망측스러운 년 요사스런 계집도 많다[꼭두각시의 외모에 대해 표 생원이 불평하는 말]. (사이) 그러나 생각하니 개천에 나도 용은 용이요, 짚으로 만들어도 신주(神主)는 신주라니 돌모루집한테 훈계하여 큰마누라에게 상우례[신랑이나 신부가 처가나 시가의 친척과 정식으로 처음 만나 보는 예식.]나 시켜 보자[표 생원이 자신의 축첩을 기정 사실화하고 합리화하려는 속셈이 나타나 있다. 이는 축첩 제도의 모순을 통해 가부장적인 가족 제도의 잘못을 비판하려한 의도가 숨어 있음.], 여보게 돌모루집네.

- 표 생원이 돌모루집과 꼭두각시를 상면시키려함

(돌모루집을 불러 앞에 세우고 꼭두각시에 대하여)

여보 부인 그러나저러나 객담(客談)[객쩍은 말]은 그만두고 살아갈 이야기나 합시다. 부인이 어느덧 환갑이 넘고, 내가 연만(年滿)[나이가 아주 많음] 팔십에 연로 다빈(年老多貧)[나이가 들어서 늙고 가난함.]하고, 따라서 일점혈육(一點血肉)이 슬하에 없으니[자식이 하나도 없음] 이런 낭패[일이 실패로 돌아가 매우 딱하게 됨]가 어디 있나? 그러므로 부인도 근심이 되지요?

 

꼭두각시 여러 해포[한 해가 조금 넘는 동안] 만에 만나긴 만났으나 그도 또한 나 역시 근심이오.

표 생원 부인의 말이 그러하니 말이오. 내가 그전에 작은집[첩, 소실]을 하나 얻었소.

꼭두각시 아이고 듣던 중 상쾌한 말이오. 이 형편에 큰 집 작은 집을 어찌 가리겠소[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언어유희]. 집을 얻었으나 재목(材木)이나 성하며, 양지바르고 또 장인들 담가 놨겠소.[‘집’의 의미를 오해하는 말로, 표 생원의 축첩 행위에 대한 비판적인 어조를 보이고 있다.]

표 생원 어으? 아 이게 무슨 소리여. 장은 무슨 장이며, 재목은 무슨 재목? 떡 줄 놈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 먼저 마시네. 소실(小室)[첩(妾). 정식 아내 외에 데리고 사는 여자.]을 얻었단 말이여.

꼭두각시 아이고 영감, 이게 무슨 소리요. 이날껏 찾아다니면서 나중에 이런 험한 꼴[남편이 소실을 얻은 일]을 보자고 영감을 찾았구려.

표 생원 잔말 말고 주는 거나 먹고 지내지.[표 생원 자신의 입장만을 내세우는 강압적 태도]

 

꼭두각시 그러나저러나 적어도 큰마누라요, 커도 작은마누라니 인사나 시키오.[현실을 인정하고 본부인으로서의 권위와 체통을 찾으려고 하는 행위]

표 생원 여보게 돌모루집네 법은 법대로 하세.[본처가 윗사람임을 인정하는 가부장제에 순응할 것을 요구함]

돌모루집 무얼 말이오?

표 생원 큰 부인한테 인사나 하게.

돌모루집 멀지 않은 좌석(座席)에서 들어도 알겠소[공연의 장소와 극 장소가 일치함이 드러나는 말]. 내가 적어도 용산 삼개[오늘날의 마포.] 돌모루집이라면 장안이 다 아는 터인데[돌모루집이 여염의 평범한 아낙이 아님을 알 수 있음], 유명한 표 생원이기로 가문을 보고 살기어든 날더러 작은집이라 업신여겨 큰 부인에게 인사를 하여라, 절을 하여라 하니 잣골 내시 댁 문 앞인가 절은 웬 절이여?[권력을 휘두르는 내시에 대한 풍자] 인사도 싫고 나는 갈 터이니 큰마누라하고 잘 사소. (돌아선다.)

 

표 생원 돌모루집네 여즉 살던 정리(情理)[인정과 도리]로 그럴 수가 있나. 오뉴월 불도 쬐다 물러나면 서운하다네. 마음을 돌려 인사하게.[필요 없는 것도 있다가 없으면 섭섭하다는 뜻]

돌모루집 그러면 인사해 볼까요? (아무 말 없이 화가 나서 꼭두각시한테 머리를 딱 들이받으며)[꼭두각시를 큰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 인사 받으우.

 

꼭두각시 (놀라며) 이게 웬일이여? 여보 영감 이게 웬일이오. 시속 인사(時俗人事)[요사이의 인사 예절]는 이러하오? 인사 두 번만 받으면 내 머리는 간다봐라[머리가 깨어지겠다는 말.] 하겠구나. 인사도 싫으니 세간을 나눠 주오[처첩간의 화해를 거부하고 경제적인 보상으로 갈등을 해결하려는 꼭두각시의 태도를 나타냄과 동시에 비애를 드러냄].

표 생원 괘씸스런 계집들은 불 같은 욕심은 있구나. 나의 집은 해남 관머리요, 몸 지체는 한양 성중인데 무슨 세간 무슨 재물을 나눠 주니? 짚은 몽둥이로 한 번 치면 다 죽으리라.[처첩 갈등을 보면서도 자신의 지체를 내세우며 화를 내는 표 생원의 가부장적 성격을 알 수 있다.]

 

표 생원이 화를 내고 있는데 박 첨지가 나온다.

박 첨지[여러 과장에 걸쳐 등장하여 해설자 등의 역할을 하여 극 전체에 통일성을 줌] 실례 말씀이오마는 잠시 지내다 보니 남의 가관사(家關事)[가정과 관계된 일. 집안 문제.]나 내 몸은 일개 구장(區長)[한 지역을 맡고 있는 책임자.]으로 모른 체할 수 없어 물어보니 허물치 마오.

 

표 생원 네, 구장이십니까. 판결 좀 하여 주시오. 제가 해남 사는 표 생원으로 부부 이별하고 그간 소실을 얻어 이곳에 왔다가 저기 선 저 화상[꼭두각시를 못마땅하게 여겨 낮잡아 부름](꼭두각시를 가리키며)은 나의 큰마누라인데 작은집으로 감정을 내어 세간을 나눠 달라 하오니 백계무책(百計無策)[어려운 일을 당하여 온갖 계교를 다 써도 해결할 방도를 찾지 못함.]이오. 어찌할는지요.

 

박 첨지 그러면 세 분이 다 객지(客地)오?

표 생원 여기는 객지나 다름없습니다.

박 첨지 재산이 있으면 나눠 줄 마음이오?

표 생원 다시 이를 말씀이오.

박이 한참 생각한다.

 

박 첨지 내가 일동(一洞) 구장으로 잘 처리하겠으니 염려 마우. (창) 돌모루집은 왕십리에 구실 은(銀) 두 되 하는 논 네 마지기를 주고, 꼭두각시는 남산 봉우제 재실 재답 구실 닷 마지기 고초밭 하루갈이 주고, 용산 삼개 들어오는 뗏목〔筏木〕은 모두 다 묶어다가 돌모루집 가져가고, 꼭두각시 널랑은 명년(明年) 장마에 떠밀리는 나무뿌리는 너 다 갖고 은장[나비 모양 무늬의 쇠 장식으로 꾸민 장(欌).] 봉장[봉황의 모양을 새겨 꾸민 옷장.], 자개 함롱[금조개 껍데기를 썰어 낸 조각으로 장식한 큰 함처럼 생긴 농.], 반닫이[앞의 위쪽 절반이 문짝으로 되어 아래로 젖혀 여닫게 된, 궤 모양의 가구.]는, 글랑 모두 돌모루집 주고 뒤꼍에 돌아가 개똥밭 하루갈이와 매운 잿독 깨진 걸랑 꼭두각시 너 다 가져라.[분쟁을 객관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돌모루집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박 첨지로 대변되는 관료의 위선적인 면모를 풍자하고 있다. 또 이렇게 젊은 여인을 우대하고 늙은 여인을 홀대하는 양상은 민속극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생산을 중시하는 농경사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꼭두각시 (창) 허허 나는 가네. 나 돌아가네. 덜덜거리고 그 돌아가네. (춤추며 나간다.)[꼭두각시의 현실적 고통과 한풀이의 심정을 춤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춤’은 민중의 한풀이의 표현으로, 대립과 갈등의 해소, 후속 사건과의 단절, 비판과 풍자의 태도를 표출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박 첨지의 세간 나누기

- “조선 연극사”

 

 

언어유희(言語遊戱)

1. 동음이의어(同音異議語)를 통한 언어유희 :

 

예) "져 농군 여봅시. 검은 소로 밧츨 가니 컴컴하지 아니한지?“

농부 대답하데,

“그러키의 밝으라고 볏 다랏지오.”

“볏 다라시면 응당 더우려니?”

“덥기의 셩에장 붓쳐지오.”

“셩에장 붓쳐시니 응당 차지?”

“차기의 쇠게 양지머리 잇지오.” /

네 서방인 남방인지 이몽룡씨 영락없이 비렁거지 신세 되어와버렸다

 

[서방(남편의 의미)의 방은 房(방 방) 남방(서방을 서쪽 방향의 의미로 해석)의 방은 方(모 방)으로써 같은 음이지만 다른 뜻인 동음이의어를 통해서 언어유희함]

운봉의 갈비(사람의 갈비뼈)를 직신, "갈비(소갈비) 한 대 먹고 지고.“["갈비 한 대 먹고 지고"의 의미는 운봉의 갈비나(신체부위)를 뜻하며 갈비나 맞아라. 혹은 아니면 상위에 놓인 갈비(음식)나 먹어라 이러한 의미로 이것 역시 음은 같으나 다른 뜻을 지닌 동음이의어를 통한 언어유희가 됨.]

 

- 춘향전에서

예) “내가 그 전에 작은집()을 하나 얻었소.” / “이 형편에 큰 집 작은 집(규모가 작은 사람이 사는 집)을 어찌 가리겠소. - 꼭두각시 놀음

유(선비)라 함은 유(아첨하다)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동음인 유에서 선비와 아첨하다라는 다른 뜻인 ‘ ’를 통한 언어유희]

2. 유사 음운(音韻)의 반복을 통한 언어유희 :

 

예) 아, 이 양반이 허리 꺾어 절반인지, 개다리소반인지, 꾸레미전에 백반인지.

3. 언어 도치(倒置)를 통한 언어유희 :

 

예) "어 추워라, 들어온다, 바람 닫아라. 마른다, 들여라.“

어이구, 그만 정신없다 보니 말이 빠져서 이가 헛 나와 버렸네.(원래는 ‘이’가 빠져서 ‘말’이 헛 나왔네)

4. 발음의 유사성(類似性)을 이용한 언어유희 :

 

예) 올라간 도령인지 도령인지, 그 놈의 자식은 일거 후 무소식하니, 인사가 그렇고는 사람 구실도 못 하지.

거리 노중[길 가운데]이냐 보리 망중[원래는 망종(까끄라기가 있는 곡식《벼·보리 따위》)임]이냐 7월 백중[명일(名日)의 하나로 음력 칠월 보름날《허물을 대중 앞에 들어 말하여 참회를 구하며, 여름 동안 안거(安居)를 마치고 절에서 재를 올림》]이냐, 네가 무슨 중이냐

 

마구간에 들어가 노새원님을 끌어다가 등에 솔질을 솰솰하여

개잘량이라는 '양' 자에 개다리소반이라는 '반' 자 쓰는 양반[양반(兩班)이라는 의미를 비꼬는 말]이 나오신단 말이오.[개잘량 : 털이 붙어 있는 개가죽 방석. 곧 양반을 개가죽에 비유. / 개다리 소반 : 개의 뒷다리처럼 구부러진 다리를 가진 상, 양반의 팔자걸음을 풍자한 표현. / 본디 양반이란 兩(두 량)班(나눌 반)이란 글자이나 이와 발음은 같으나 다른 뜻이 들어가 있는 개잘량이란 글자에서 량, 그리고 개다리소반이란 글자에서 반을 써서 양반을 비꼬는 언어유희]

 

"---- 객사(客舍)에 봄이 들어 이화 춘풍 날 살린다. ----"

이해와 감상

작자 미상의 이 작품은 조선 후기 유랑 연예인 집단인 남사당패에 의해 공연된 현전하는 유일한 민속 인형극으로, ‘박첨지놀음’, ‘홍동지놀음’으로 불리기도 한다. 내용은 채록본에 따라 다소 다르나 대동소이하며, 보통 7?10막으로 나뉜다. 교과서에서는 총 8막으로 이루어진 김재철 채록본을 수록하였다.

수록 부분은 모두 8막으로 구성된 인형극 가운데 제5막 ‘표 생원 거리’로 처첩 갈등이 중심 내용이다. ‘꼭두각시놀음’은 유랑 연예인 집단인 남사당이 공연한 민속 인형극으로 조선 후기의 사회상과 민중의 언어, 정서가 잘 나타나 있다. 인형극은 서구의 연극과는 달리 막과 막 사이에 줄거리 상의 연관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각 막은 저마다 독립된 하나의 작품으로 내용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다. 또 공연 시 무대 밖의 악사, 관중 등이 수시로 끼어들어 무대 안의 인물들과 대화할 수 있는 개방성도 이 인형극의 특징이다. 인형극은 보통 양반에 대한 풍자, 일부처첩제(一夫妻妾制)로 인한 처첩 간의 갈등과 가부장적 제도라는 사회적 모순 등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을 담고 있다. 본문에 제시된 부분은 제5막 ‘표 생원’으로 처첩 간의 갈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2

우리 나라 전통극은 가면극과 인형극으로 대별되는데, 꼭두각시놀음은 유일한 인형극이다. 서구의 연극과 달리, 막과 막 사이에 줄거리상 연관이 없이 독자적인 내용을 가지는 것이 특색이다. 또한, 무대 밖의 악사나 관중이 무대 안의 인물들과 수시로 대화하는 방식을 취하여 거리를 없애고 있다.

꼭두각시놀음의 이름은 여러 가지로 불린다. 남사당패는 '덜미' 라고 부르고, 구경꾼들은 '꼭두각시놀음', '박 첨지놀음', '홍동지 놀음' 등 세 가지로 부른다. 꼭두각시는 인형을 뜻하는 보통명사인데 , 인형극에서는 극중 인물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되었다. 이 글에서는 표 생원과 대화 상대호 박 첨지가 등장한다. 표 생원은 꼭두각시의 남편인 허름한 영감으로, 그 모습을 바가지로 만들었다 하여 성이 박가라 한다. 여기에 붙은 이름이 박첨지놀음이다. 홍동지는 박 첨지의 조카인데 벌거벗고 다니므로 홍(紅)과 같은 음인 홍(洪)으로 성을 삼아 홍 동지라고 하였다.

여기에 실린 작품은 전체 여덟마당중 다섯 번째 마당인 '표 생원' 마당이다. 표 생원이 팔도 강산을 유람하느라고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본처 꼭두각시를 만나, 첩인 돌모리집을 상면시키는 대목이다. 이 마당에서 처첩간의 싸움이 벌어지자, 박 첨지는 재산을 나누어 준다면서 첩에게만 후하게 나누어 주자, 꼭두각시는 금강산으로 중이 되러 간다고 나가버린다. 이 작품에서는 일상적인 언어가 아닌 비속하고 해학적인 표현으로 기존의 질서에 대한 저항을 나타내고 있다. 인형극의 본래의 주제는 양반에 대한 풍자, 일부 처첩제(一夫妻妾制)로 인한 처첩간의 갈등과 가부장적 제도라는 사회적 모순 등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이었지만, 차츰 소극(笑劇)으로 변모해 갔다. 꼭두각시놀음에서 '거리'란 탈춤의 장면과 같은 구실을 한다.

미당 넷째 거리는 거대한 지배자를 상징하는 이시미가 나와서 등장하는 인물들을 차례로 잡아먹는다. 박첨지마저 그에게 물리지만 가장 낮은 민중의 모습인 홍동지를 불러 구원을 요청한다. 홍동지가 이시미를 퇴치하고 그 껍질을 팔아 옷 좀 해입는다고 퇴장한다. 살아난 박첨지는 홍동지가 자시을 구해준 것이 아니고, 명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하며 부자가 되었음을 홍동지를 찾아서 재물을 빼앗을 생각을 한다.

각각 '거리'는 서로 연관 관계가 없지만 서민의 질박한 삶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인간의 이중성을 교묘하게 표현하여 웃음을 자아내는가 하면 인생을 깨닫게도 해준다. 천둥벌거숭이로 등장하여 지배 계급을 우롱하는 홍동지는 가진 것을 다 빼앗기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는 민중의 대변자이다.

심화 자료

꼭두각시

꼭두각시놀음에 등장하는 이상 야릇하고 기괴한 탈을 씌운 인형. 꼭두각시는 중국에서 괴뢰(傀儡)를 뜻하는 곽독(郭禿)에서 '꼭두'가 나왔다는 설이 있는데, 꼭두각시가 연희자의 조종에 의해 움직ㅇ니다 하여, 주체성 없이 남의 조정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이나 정부를 이에 비유하여 꼭두각시·괴뢰라고 한다.

인형극과 탈춤의 차이

구분

인형극

탈춤

도구

인형

성격

공격적

풍자적

단위

거리

과장

전승

전문적

대중적

공통점

해학적, 봉건적이고 불합리한 세상에 대한 저항 의식. 서민층에 의해 창조, 향유, 전승된 일종의 희곡 문학

등장 인물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물은 박첨지·꼭두각시(박첨지의 본처)·덜머리집(박첨지의 첩), 작은 박첨지(박첨지의 아우), 2명의 소무당(박첨지의 조카딸과 조카 며느리), 홍동지(박첨지의 조카), 상좌중들, 평안 감사, 관속(사령)·포수·영노·마을 사람 등인데, 이 중에서 마을 사람은 무대에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악사석에서 반주하는 악사가 박첨지와 대화를 한다. 이 밖에 이시미, 매, 꿩, 상여, 명정, 만사, 절 부처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노는 하늘에 산다는 가상 동물로서 이 세상의 무엇이라도 잡아 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등장 인물의 유래

박첨지의 박(朴)은 그 인형이 바가지인 박으로 만들어지고, 또는 나무를 파서 만들어진데서 바가지의 박과 그 음(音)이 같으므로 그 인형을 인격화하여 성(姓)의 박(朴)에다 벼슬 이름의 첨지(僉知)를 붙여 박첨지라 부른 것이고, 홍동지의 홍(洪)은 그 인형이 붉은 홍(紅)과 성씨의 홍(洪)이 그 음이 같으므로 이것 역시 그 인형을 인격화하여 벼슬 이름의 동지(同知)를 붙여 홍동지라 부른 것이다.

'꼭두각시놀음'의 공연 형식과 등장인물

꼭두각시놀음은 경기, 충청, 전라, 경상도등 주로 남부지방 일대에서 남사당패에 의해 연행

(演行)되었으며, 풍물, 버나(접시돌리기), 살판(땅재주), 어름(줄타기), 덧뵈기(탈춤)와 함께 맨 마지막 순서에 주로 공연되었다. 전체 이야기의 구성은 제 1 마당 박 첨지 마당(박 첨지 유람거리, 피조리 거리, 꼭두가시 거리, 이심이 거리, 표생원 거리)과 제 2 마당 평안 감사 마당(매사냥 거리, 상여 거리, 절 짓고 허는 거리)으로 이루어져 있다. 등장하는 인형·인물들은 박 첨지, 꼭두각시, 홍동지, 돌모리집, 이심이, 평안 감사, 피조인, 상좌, 홍 백사, 표 생원, 묵대사, 영노, 귀팔이등 다채로우며, 소도구로 절, 불상, 상여, 명정, 요령, 부채 등도 사용된다. 장구, 북, 꽹과리, 호적 등을 반주 악기로 사용하여 타령곡, 굿거리곡 등을 연주한다.

'꼭두각시놀음'의 마당구성

연극의 공연은 3m 안팎의 기둥을 세워 앞면에 가로 약2.5m, 세로 약1.2m의 무대 공간을 남겨두고 나머지 부분은 포장을 쳐서 가린 다음, 그 안쪽에서 인형 주조종자인 '대잡이'와 부조종자인 '대잡이보'기 앉아서 인형들의 동작과 대사를 조종하고, 그 무대 앞에 인형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삳받이가' 장고를 들고 관중석과 거의 분리되지 않은 자리에 앉고, 그 바로 옆에 꽹과리·징·북·날라리를 연주하는 '잽이'들이 마주보고 앉아 연희하고, 이들 뒤에 관중들이 무대를 마주보고 앉아 이루어진다.

꼭두각시놀음

우리 나라 전래의 민속인형극. 현재까지 전래된 민속인형극으로서는 유일한 것이다. 일명 〈박첨지(朴僉知놀음)〉·〈홍동지(洪同知)놀음〉 등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주인공들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꼭두각시놀음〉은 과거 봉건시대부터 개화기까지 떠돌아다니던 직업적 유랑예인집단(流浪藝人集團)인 남사당패(男寺黨牌)에 의하여 연희되었으며, 그 유래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다. 삼국시대에 대륙으로부터 전래되었을 것이라는 주장과 농경의식의 하나인 농악굿놀이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인형극의 발생에 대해서는 일찍이 독일학자 피셸(Pischel)이 ≪인형극의 고향≫(1900)을 쓴 이래 인도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류모채(Liu Mau-Tsai) 등 중국학자들에 의해서 중국의 장례의식(葬禮儀式)에서도 인형을 썼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인도와 중국에서 각각 발생했다는 학설도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꼭두각시놀음〉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인형극의 영향을 받았으며, 그 인형극은 이미 삼국시대의 고구려악(高句麗樂)에 있었고, 그것은 중국을 거쳤거나 혹은 직접 북방을 거쳐 수입된 서역악(西域樂)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점은 고구려 악무(樂舞) 중 서역악에서 유래된 가면무악(假面舞樂)과도 서로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연내용〕

원래 〈꼭두각시놀음〉은 주로 경기·충청·전라·경상 등 중남부일대에서 남사당패에 의해 많이 공연되었는데, 현존하는 연희자들의 본적도 대부분 경기·충청·전라도이다.

그러나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물 중에 평안감사, 용강 이심이, 황해도 영노 등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놀이가 해서와 관서지방과도 관련이 깊음을 알 수 있다.

이 극본이 만들어진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근까지는 산대도감계통극(山臺都監系統劇)의 하나로서 조선 후기로 추정해왔다. 그러나 이규보 ( 李奎報 )의 〈관극시 觀劇詩〉에 인형극의 내용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이미 고려시대에 어느 정도의 극본이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패가 하는 여섯 종목의 놀이(풍물·버나·살판·어름·덧뵈기·덜미) 중 끝놀이이며, 이들 연희자들은 인형극을 ‘덜미’라고 부르는데, 이 명칭은 인형의 목덜미를 잡고 노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남사당패가 직업적인 유랑예인집단이었으므로 관람료를 받았고, 포장막을 치고 공중무대를 세워서 공연하였다.

〈꼭두각시놀음〉의 내용은 채록본(採錄本)에 따라 다소 다른데, 이는 민속극의 구전성(口傳性)이라는 점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그 내용은 보통 7∼10막으로 나뉘는데, 최고(最古)의 채록본인 김재철본(金在喆本)에 의하면 8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막은 ‘곡예장’으로, 박첨지가 팔도강산을 유람하다가 남사당패 놀이판에 끼어든 이야기를 산받이(인형과의 대화자)와 나누면서 자기 소개를 한다.

제2막은 ‘뒷절’로서, 뒷절의 상좌들이 박첨지의 질녀와 놀아나는 것을 보고 박첨지가 노해서 자기 조카 홍동지를 불러 중을 내쫓는 것으로, 파계승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다.

제3막은 ‘최영로(崔永老)의 집’으로서, 박첨지가 사돈 최영로의 집에 가서 새를 쫓으러 가는데 사람이 나오는 족족 잡아먹는 용강 이심이에게 막 잡아먹힐 뻔했을 때 홍동지가 와서 구해준다.

제4막은 ‘동방노인’으로서, 눈을 감고 등장한 까닭은 세상이 부정 ( 不淨 )하기 때문이라고 하여, 어지러운 세상에 대한 풍자를 볼 수 있다.

제5막은 ‘표생원(表生員)’으로서, 표생원이 오랫동안 헤어져 있던 본처 꼭두각시를 만나는데, 첩인 돌머리집을 상면시키자 싸움이 벌어지고, 박첨지는 첩에게만 살림을 후하게 나누어주자 꼭두각시는 금강산으로 중이 되러 가겠다고 퇴장하는 것으로, 일부처첩제(一夫妻妾制)로 인한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모순과 서민층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제6막은 ‘매사냥’으로서, 평안감사가 새로 부임해오자마자 매사냥을 하겠다며 포수와 사냥하는 매를 대령하도록 하는데, 지배계급의 횡포와 그에 대한 풍자를 보여준다.

제7막은 ‘평안감사 상여’로서, 평안감사가 모친상을 당해 상여가 나가는데 상제는 오히려 좋아하며, 향두꾼으로 벌거벗은 홍동지가 불려와서 상여를 메는 내용으로, 지배계급에 대한 신랄한 풍자와 조롱을 보여준다.

제8막은 ‘건사(建寺)’로서, 박첨지가 나와 장례 후 명당에 절을 짓겠다고 알리면 중 2명이 나와 조립식 법당을 짓고는 다시 헐어버린다.

절을 짓는 것은 주인공의 종교에의 귀의로 해석할 수 있으며, 마지막에 다시 절을 허는 것은 토속사상과 외래종교인 불교와의 상극이라는 해석으로, 또는 종교마저 뛰어넘는 주인공의 초월사상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꼭두각시놀음〉은 탈춤과 함께 우리 고전극의 한 종류이면서도 주인공 박첨지의 일대기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 색다르다. 즉, 박첨지 일가의 파탄과 구원이라는 줄거리를 일관적으로 지니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꼭두각시놀음〉은 삶의 덧없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격조 높은 인형극이다.

〈꼭두각시놀음〉의 등장인물은 채록본에 따라 다소 다르나, 대체로 박첨지·꼭두각시·홍동지·돌머리집·표생원·소무당(2명)·상좌(2명)·동방노인·평안감사·작은박첨지·홍백가·잡탈·이시미·매·꿩 등이다.

인형의 재료는 나무와 종이 등이며, 반주악기는 풍물〔農樂〕에 쓰이는 꽹과리·북·징·장구·날라리이고, 장단은 염불·타령·굿거리 등이며, 주로 굿거리장단에 맞추어 인형의 양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상반신을 흔드는 춤을 춘다.

〈꼭두각시놀음〉의 무대라든가 연출방식, 인형조종법 등은 중국 인형극과 대체로 비슷하고, 일본 민속인형극과는 너무 비슷한데, 이는 세 나라 인형극이 동일계통임을 나타내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꼭두각시놀음〉은 중국 인형극의 줄인형(marionette)·장두괴뢰(杖頭傀儡)·포대괴뢰(布袋傀儡, puppet) 방식을 혼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대는 사방에 기둥 네 개를 세우고 까만 포장을 친 것으로, 인형조종자는 포장 안에 들어앉아 인형의 하반신을 잡고 조종하며, 인형들은 상반신만 포장 위로 올라와 관객들에게 모습을 보인다. 악사들은 포장 밖에 앉아 연주하면서 조종자의 이야기를 받는데, 그를 산발이역이라 부른다.

이 놀음은 민족항일기에 명맥이 거의 끊어질뻔하다가 1964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1988년 꼭두각시놀음이 남사당놀이로 명칭 변경되면서 남사당놀이의 종목에 꼭두각시놀음이 포함되었다. 현재는 ‘사단법인 민속극회남사당’이 그 전수사업을 벌여오고 있다.

역대 기능보유자로는 남운룡(南雲龍:인형조종 및 제작)·양도일(梁道一:받는 소리, 악사)·송복산(宋福山:악사, 호적) 등이 있으며, 현재는 박계순(朴季順:산발이)과 남기환(南基煥)이 지정되었다.

채록본은 김재철채록본(전광식·박영하 구술, 1937)·최상수채록본 Ⅰ(崔常壽採錄本Ⅰ, 노득필 구술, 1954)·최상수채록본 Ⅱ(남운룡 구술, 1954)·박헌봉채록본(朴憲鳳採錄本, 남운룡 구술, 1964)·이두현채록본(李杜鉉採錄本, 남운룡·송복산 구술, 1964)·심우성채록본(沈雨晟採錄本, 남운룡·양도일 구술, 1970)의 여섯 가지가 있다. →인형극

≪참고문헌≫ 朝鮮演劇史(金在喆, 학예사, 1939), 韓國民俗考(宋錫夏, 일신사, 1960), 韓國假面劇(李杜鉉, 문화재관리국, 1969), 韓國의 民俗劇(沈雨晟, 창작과 비평사, 1975), 韓國人形劇의 硏究(崔常壽, 정동출판사, 1981), 傳統劇과 現代劇(柳敏榮,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4).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민속극의 특성

민속극은 서민들에 의해 주도되고, 서민들을 관중으로 삼았기 때문에 서민들의 언어와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민속극은 춤, 대사, 음악으로 연회되며 구전(口傳), 세습(世襲)된다.

① 민중성 : 지배 계층의 의식을 거부하며, 민중들에 의해 창조되고 향유되었다.

② 비판성 : 서민 정신을 바탕으로 불합리한 세상을 풍자하였다.

③ 골계성 : 비판 정신을 내포한 해학과 골계로 이루어졌다.

④ 오락성 : 건전한 오락으로 애환을 풀어 준다.

⑤ 축제성 : 서민들의 축제 마당이다.

⑥ 개방성 : 탈춤은 극중 장소와 공연 장소가 일치되며 무대와 객석의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민속극(民俗劇)의 종류

민속 집단 생활의 전반에 걸친 민족의 기반적 생활 양태를 연극적으로 표현, 형상화한 것. 민속극은 농경의례나 장례의식 등 각종 원시 종교 의식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풍농·풍어제(동제 등)와 상제례 등에서 발생되어 예능으로 발전한 연극 양식을 그러한 예로 꼽을 수 있다. 즉, 가면극을 위시하여 민속인형극·그림자극·판소리 등이 그러한 민속극에 속한다.

이 밖에도 민속극에 포함시킬 만한 것이 더 있는데, 가령 농악이라든가 굿의 난장이나 잡색놀이 같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의 굿은 예능적 측면이 강해서 탈놀이가 끼어 있다든가 주제가 뚜렷한 묵극적(墨劇的)인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민속극은 일종의 초기 형태의 제의성이 강한 연극 양식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학성(희곡)보다는 춤·마임 등 표현성에 치중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민속극을 구비문학에 포함시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민속극은 모두가 축제의 일환으로 연행되어 왔으므로 놀이성이 강하다.

① 탈춤

② 인형극

③ 무극

④ 그림자극

인형극(人形劇)

배우 대신 사람이 조종하는 인형이 연극을 하는 드라마의 한 양식.

〔개 설〕

일반적으로는 대체로 인형을 연상하고, 또 어린이 장난감을 생각해서 인형극을 마치 어린이극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일찍부터 어린이만을 위한 연극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인형극 또한 당초 어린이극이 아님은 자명하다. 그만큼 연극의 표현수단으로 쓰는 인형은 인간을 축소하고 환상화한 것으로서 완구 아닌 예술작품이라 볼 수 있다. 일찍이 우리 조상들이 인형을 환(幻)으로 표현했던 것은 매우 적절하다.

〔유 래〕

당초 인형극이 어느 때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며, 다만 그에 대한 학자들의 무성한 주장만 있을 뿐이다. 그 첫째가 19세기 독일 연극학자 피셸(Pischel,R.)의 주장으로, 기원전에 인도 북부에 살던 집시가 처음 하였다는 학설이다. 그들이 인형을 처음 만들어 연극을 하였는데 그것이 동서로 퍼져서 아시아와 유럽, 지중해 주변국에 분포되었다는 주장이다.

둘째는 인도와 중국에서 각각 발생하여 인도인형극은 주로 서쪽으로 흘렀고, 중국인형극은 대만·한국·일본 등 극동으로 퍼졌다는 주장으로, 중국의 류모재(Lu Mau Thai)라든가 나금당(羅錦堂) 같은 학자가 대표적이다. 지중해 주변국에서 나왔다는 주장도 있다. 어쨌든 인형극이 서력기원 전에 발생한 것은 확실하며그 종류 또한 많았다.

〔종 류〕

가령, 인도의 인형극만 하더라도 라자스탄(Rajasthan)·오릿사(Orissa)·약사가나인형극(Yakshaghanapuppets)·장대인형극·장갑인형극 등 6종류가 있었는데, 이는 중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즉, 중국의 ≪몽화록 夢華錄≫이라는 책을 보면 현사괴뢰(懸絲傀儡)·주선괴뢰(走線傀儡)·장두괴뢰(杖頭傀儡)·약발괴뢰(藥發傀儡)·육괴뢰(肉傀儡)·수괴뢰(水傀儡) 등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게 많은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기교가 발달해서 표현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체로 서양에서는 줄인형극과 장갑인형극이 발달하였고, 동양에서는 손인형극과 그림자인형극이 발달하였다. 이들 가운데 그림자인형극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남부와 이란·이라크·터키 등 중동에서 성행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은 자기들이 400여년 전에 만들어낸 분라쿠(文樂)라는 대형 인형극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9세기까지만 하여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유랑예인들이 인형극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형극은 자연 민속적일 수밖에 없었고, 조종자들은 천대받고 가난하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인형극도 하나의 연극으로 크게 발전함으로써 직업화의 길을 걸었고 유랑 아닌 정착을 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동양에서보다도 서양에서 특히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그리하여 프랑스·소련·캐나다·미국 및 동구권 여러 나라들에서는 수십 개 내지 수백 개의 직업적인 인형극단들이 생겨나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전승되는 민속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 한 종류만 있었으나 1970년대에 접어들어 서양에서 유행하는 줄인형극의 실험이 있었던 바, 조용수(趙容秀)가 그 첫번째로 시도한 인형극인이었다. 그 뒤로 심우성(沈雨晟)·이경희(李京嬉)·안정의(安正義) 등이 줄인형극 또는 재래방식의 창작인형극을 시도하였다.

따라서, 현재는 10여 개에 가까운 인형극단이 활동하고 있으며, 인형극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소극장도 생겨났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현대인형극단들은 여러 면에서 초보수준에 머물러 있다. 우선 인형제작기술이 낙후되어 있다. 한 나라의 예술인형은 민족의 이미지를 지녀야 하는데, 우리의 현대인형들은 미학적으로 세련되지 못하고 조종술이 서툴며, 창작극본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설화나 고전소설이 아니면 외국동화가 주내용이 되다 보니 자연 인형극은 어린이용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 강원도 춘천시가 국제인형극제를 해마다 실시하여 우리 나라 현대인형극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중이다.

프랑스나 구미 선진국 인형극이 인간의 존재문제에까지 파고들 정도로 심오하면서도 예술적으로 정교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음에 비하여 우리 인형극은 매우 낙후되어 있는 실정이다.

≪참고문헌≫ 朝鮮演劇史(金在喆, 朝鮮語文學會, 1933), 韓國假面劇(李杜鉉, 文化財管理局, 1969), 男寺黨牌硏究(沈雨晟, 同和出版公社, 1974), 韓國人形劇의 硏究(崔常壽, 正東出版公社, 1981), 傳統劇과 現代劇(柳敏榮, 단국대학교 출판부, 1984).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꼭두각시놀음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지방에 따라서 ‘박첨지(朴僉知) 놀음’ 또는 ‘홍동지(洪同知) 놀음’이라고도 한다. 이 명칭은 이 극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들이며 모두 인형의 이름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박첨지의 박(朴)은 그 인형이 바가지인 박[瓠]으로 만들어지고, 또는 나무를 파서 만들어진 데서 바가지의 박과 그 음(音)이 같으므로 그 인형을 인격화하여 성(姓)의 박(朴)에다 벼슬 이름의 첨지(僉知)를 붙여 박첨지라 부른 것이고, 홍동지의 홍(洪)은 그 인형이 늙은 홍(紅)인 데서 홍(紅)과 성씨의 홍(洪)이 그 음이 같으므로 이것 역시 그 인형을 인격화하여 벼슬 이름의 동지(同知)를 붙여 홍동지라 부른 것이다.

【등장인물】

꼭두각시놀음에 나오는 인물은 박첨지 ·꼭두각시(박첨지의 본처) ·덜머리집(박첨지의 첩), 작은 박첨지(박첨지의 아우), 2명의 소무당(박첨지의 조카딸과 조카며느리), 홍동지(박첨지의 조카), 상좌, 평안감사 ·관속(사령) ·포수 ·영노 ·마을 사람 등인데, 이 중에서 마을 사람은 무대에 직접 나오는 것이 아니고, 악사석에서 반주하는 악사가 박첨지와 대화를 한다. 이 밖에 이시미 ·매 ·꿩 ·상여(喪輿) ·명정(銘旌) ·만사(輓詞) ·절[法堂] ·부처가 등장한다. 그리고 영노는 하늘에 산다는 가상동물(假想動物)로서 이 세상의 무엇이라도 잡아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내용 줄거리】

꼭두각시놀음은 모두 8막으로 되어 있으나, 8막 그 전부가 연관된 것이 아니고, 일부 막을 예외로 하고는 각 막이 독립성을 띠고 있다. 내용 줄거리에는 큰 변화가 없으나 지방과 조종사(操縱師)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다.

① 팔도강산 유람 막:박첨지는 팔도강산의 유람 길을 떠나 경치 좋은 명승지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하루는 날이 저물어 여인숙에 들어가 머무르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있는데 둥둥하는 소리가 나므로, 풍류를 즐기는 그는 지팡이를 짚고 그 소리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그 곳은 남사당들의 놀이터였다. 그는 음악 소리에 신이 나 놀이터에 나와서 한바탕 재담을 하고, 또 팔도강산 유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 들어간다.

② 상좌(上佐)중 막:마을 뒷산에 있는 절의 상좌중들과 소무당들이 나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것을 본 박첨지는 신이 나서 자기도 한바탕 춤을 추다가 보니, 그 두 사람의 소무당은 자기의 조카딸과 조카며느리였다. 그는 이래서는 안되겠다 생각하고 중을 꾸짖었으나, 중은 들은체도 안하고 춤만 춘다. 그래서 일곱 동네에서 힘세기로 이름난 조카 홍동지를 부르러 들어간다. 그러자 조금 있다가 홍동지가 나와서 중들을 꾸짖어 쫓아내고 소무당들도 후려쳐 쫓아 들여 보낸 뒤에 자기도 한바탕 춤을 추고 들어간다.

③ 꼭두각시 막:박첨지는 그의 본처인 꼭두각시를 찾으려 하였으나 만나지 못하고, 그의 첩인 덜머리집을 데리고 나온다. 그런데 그 곳에서 우연히 본처를 만나게 되어 반갑기 한량없었으나, 본처와 첩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자 본처는 박첨지에게 가산(家産)을 나누어 달라고 한다. 이리하여 박첨지는 가산을 나누어 주는데, 첩에게는 좋은 것만 주고 본처에게는 나쁜 것만 준다. 그래서 본처는 너무나 원통하고 서러워서 눈물을 흘리며 금강산으로 들어가 중이 되려고 길을 떠난다.

④ 이시미 막:용강(龍江) 이시미는 배가 고파 조밭에 곡식을 먹으러 오는 새들을 모두 잡아먹는다. 그때 새를 보러 나온 박첨지를 이시미가 물어 죽이려 하는데, 홍동지가 대활약을 하여 이시미를 때려 죽이고 박첨지를 구출한다.

⑤ 영노 막:하늘에 산다고 하며, 이 세상의 무엇이라도 잡아먹을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영노가 박첨지 일족을 잡아먹으려고 찾아다니다가 만난다. 그리하여 잡아 먹겠다고 하자 박첨지는 “너의 할아버지도 잡아먹느냐”고 하니 영노는 “할아버지는 못 먹는다”고 하자 박첨지는 “내가 너의 할아버지다”라고 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⑥ 매사냥 막:새로 부임한 평안감사(平安監司)는 평양에 도임(到任)하자 매사냥을 시작하여 꿩을 여러 마리 잡는다.

⑦ 평안감사 대부인(大夫人) 행상(行喪) 막:평안감사 대부인이 죽었으므로 그의 상여가 나가는데, 뒤따라 가는 상주인 감사는 애고애고 하는 곡(哭)을 하지 않고, 조금도 슬퍼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으며 기쁜 일을 당한 사람 같으므로, 조상(弔喪) 온 사람들은 그 모양을 보고 모두 욕을 한다. 마침 상도군(喪徒軍)이 발병이 나서 상여가 가지 못하게 되자, 힘센 장사 홍동지가 상여를 메게 되어 다시 떠난다.

⑧ 절짓기 막:평안감사 대부인이 죽어 49일재(齋)를 올리기 위하여 명산에 절을 짓고 축원한다.

【무대】

꼭두각시놀음은 종래 주로 각 농촌 부락으로 돌아다니면서 하였으므로 그 장소는 대체로 시골 동네 타작마당, 또는 시골 장터에 가설(假設)한다. 무대는 넓은 장소 한 부분의 귀퉁이에 길고 굵은 기둥 4개를 1개씩 세우고, 포장(布帳)으로 막을 삥 둘러치는데, 무대는 비교적 높게 되어 있으며, 인형 조종사는 그 포장 막 속에 들어가서 인형을 조종한다. 극을 연출할 때는 4∼5명의 인형조종사가 포장으로 가린 막 속에 숨어서 그 막 위쪽에 각기 맡은 인형을 등장시키고 끄나풀을 잡아당기어 인형을 조종하면서 서로 대화하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데, 대화(재담) 중 몇몇 등장인물은 죽관(竹管)을 통한 가성(假聲)을 내어 마치 각 인형이 제각기 발음하는 것같이 특이한 효과를 낸다. 무대는 높게 되어 있으므로 관객들은 고개를 들어 쳐다보면서 구경을 하게 된다.

【악사 ·악기 ·악곡】

꼭두각시놀음의 악사들은 인형 조종사들과 마찬가지로 대개는 반농반예인(半農半藝人)들로서 악기 사용 외에도 곡예를 한다든지 단가(短歌)를 잘 부른다든지, 또는 춤을 잘 춘다든지 하는 한두 가지의 장기(長技)를 가지고 있다. 꼭두각시놀음의 일단이 연희(演戱)를 할 때에는 악사들은 무대 앞에 늘어 앉아 등장한 인물이 소리와 춤에 맞추어 음악을 연주하고, 또 무대를 쳐다보며 조종사들의 인형과 대화를 한다. 이들 악사는 대개 세 사람이며, 사용하는 악기는 장구 ·꽹과리 ·날라리(호적)이고, 연주곡조는 타령 ·염불 ·굿거리 등이다.

【연희시간】

꼭두각시놀음은 대체로 1시간 정도로 끝마치는데, 다소간 신축성이 있다. 이것은 조종사의 그때그때의 형편에 따라 연희 시간을 길게도 하고 짧게도 하는데, 내용 줄거리에는 별로 변함이 없다. 짧은 시간에 빨리 연출을 마치려 할 때에는 몇 막을 줄이기도 하고, 또 내용 재담을 대강대강 말하여 줄이기도 한다. 그리고 길게 할 때에는 우스갯소리와 잔소리를 다소 집어넣기도 하지만, 음악 반주에 따라 추는 춤을 오래 추게 하거나 소리를 오래하여 시간을 늘이기도 한다. 이것은 그때 형편도 형편이지만 조종사의 장기, 즉 재담보다도 소리를 잘 한다든지, 또는 소리보다는 재담을 잘 한다든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다.

【의의와 변천】

꼭두각시놀음은 파계승(破戒僧)의 풍자, 농촌 사회상의 일면, 일부(一夫) 대 처 ·첩(妻妾)의 삼각관계, 양반에 대한 조롱과 모욕, 그리고 죽은 이를 위한 축원으로서 불사(佛寺)의 건립 등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꼭두각시놀음은 무대의 구조, 연출방식 및 그 명칭에 있어서 중국 ·일본의 인형극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보아, 원래는 동일한 계통임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한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문화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수수관계(授受關係)에 있었고, 일본은 과거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항상 피수적(被受的)인 지위에 있었다. 이 세 나라 사이에는 적어도 초기 인형극에서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동일한 계통으로 보여지는데, 이것은 우연의 일치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무대와 인형 조종방식 외에 명칭까지도 비슷한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라고만 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인형극인 꼭두각시놀음은, 우리와 가장 깊고 복잡한 관계를 가졌으며 또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던 중국계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각 민족 간에는 각 민족 공통의 유희 본능에 기인한 연극적 요소에서 자연히 발생한 각자의 인형놀음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꼭두각시놀음은 처음에 단순했던 것에서 여러 시대를 지나 오는 동안에 차차 그 내용이 하나 둘씩 막(幕)으로 부가(附加)되어 왔고, 그 시대에 있어서도 뚜렷한 사회상을 풍자적으로 표현 ·반영시켰으므로 대다수 민중의 지지를 받아 최근년까지 전승되어 왔다고 본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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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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