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까마귀와 학의 다툼

by 송화은율
반응형

까마귀와 학의 다툼

유 의 건 지음

윤 승 준 번역

 

까마귀는 검고 학은 희니, 까마귀는 검은 것이 옳다 하고 학은 흰 것이 옳다고 하였다. 둘은 서로 자신이 옳다고 하다가 마침내 희유조(希有鳥)에게 송사를 하였다. 학은 견백(堅白)의 변설(辨說)을 펴며 자신이 옳음을 주장하기를,

"[희다고 말하지 않겠는가. 검은 물을 들여도 검어지지 않으니]라고 하였으니, 이는 공자님 말씀이 아닙니까?"

라고 하였다. 그러자 까마귀는 태현(太玄)의 대지(大旨)를 논하며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기를,

"[현(玄)의 또 현(玄)함, 그것이 곧 만물(萬物)을 낳는 문(門)이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노자의 설이 아닙니까?"

라고 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둘의 변론은 다음과 같이 계속되었다.

 

"오행(五行)으로 보면 백(白)은 금(金)에 해당하고 흑(黑)은 물(水)에 해당하는데, 금(金)이 곧 물(水)를 낳으니, 흑(黑)은 바로 백(白)이 낳은 것입니다."

"오행(五行)으로 보면 금(金)은 그대로 따르고 변하며, 물(水)는 윤택하고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런데 그대로 따르고 변하는 것은 위로 뛰어오르고 녹여버리는 괴이함이 있는 반면, 윤택하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강과 바다의 커다란 풍도가 있습니다. 또한 더러운 진흙에서 연꽃이 피고 늙은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니, 연꽃이나 진주를 일러 진흙이나 조개만 같지 못하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옥(玉)은 그 빛이 희니 사람들이 귀하게 여기는 것이고, 숯은 그 빛이 검으니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검은머리를 좋아하지 하얗게 세어버리는 것은 싫어합니다."

둘이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데 그 증거를 들이댐이 매우 많았다.

희유조가 판결하기를,

"분식(賁飾)함을 백(白)하면 허물이 없다는 것은 역경(易經)에 밝혀져 있고, 흑(黑)이 재앙이 됨은 전기(傳記)에 실려 있느니라. 어찌 희디흰 백(白)으로 검디검은 더러움을 뒤집어 쓸 수 있겠느냐."

하고, 마침내 나씨(羅氏)에게 명하여 까마귀를 몰아내도록 하였다.

 

까마귀는 이로써 흑(黑)이 백(白)만 같지 못함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허무맹랑한 것을 꾸며내고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자신이 희고 학이 검다고 주장하니, 둘은 다시금 희유조에게 송사를 하였다.

마침 날이 저물어 흑백을 분간하기 힘든 때였다. 학이 말하기를,

"시(詩)에 [검지 않다고 까마귀가 아니랴] 하였으니, 까마귀가 검은 것은 이로써 알 수 있고, 또 포소부(鮑昭賦)에 [옥처럼 흰 깃을 떨치며 노을 속으로 날아가는구나]라고 하였으니, 학이 흰 것을 알 수 있다."

하였다. 그러자 까마귀가 말하기를,

"학에도 현학(玄鶴), 황학(黃鶴)이 있으니, 학이 반드시 흰 것은 아니고, 시황제(始皇帝) 때 백오(白烏) 수천 마리가 있었고 연단(燕丹) 때 까마귀 머리가 또한 희었으니, 까마귀라고 반드시 검은 것만도 아니다."

라고 하였다.

"일전에 네 스스로 검다고 주장하였던 것은 송안(訟案)에도 갖추어 있거늘, 지금에 와서 다시 말을 바꾸어 나를 검다고 무고(誣告)하니 그 정상(情狀)을 가히 알 만하구나."

"지난번에는 검었더라도 지금 흰 것이 내게 해될 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헐뜯고 다투기를 오래 계속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까마귀 떼에 곤욕을 당한 학이 분을 참지 못하고 알연( 然)히 길게 울면서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까마귀가 희유조에게 이르기를,

"학은 자신이 검은 것을 감출 수 없게 되자 먼저 가 버렸습니다. 또한 알연( 然)히 울어대니 이는 원망하는 소리입니다. 응당 그 죄를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희유조는 마침내 수리를 보내어 학을 잡아오게 하였다. 붙들려 온 학은 스스로 죄 없음을 말하고, 내일 날이 밝기를 기다려 흑백을 분명히 해달라고 청하였다. 그러나 희유조는 학이 속인다고 여기고 노여워하며 학을 죽이라고 명하고, 죄안(罪案)을 작성하여 새들에게 공포하였다. 죄안(罪案)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지난번에 시비(是非)가 뒤섞이고 상벌(賞罰)이 잘못되어, 함부로 양공(羊公)의 학(鶴)을 포창하고 그릇되게도 증삼(曾參)의 새를 견책하였으니, 이것이 실로 무슨 마음에서였던가. 이는 내가 뼈에 사무치도록 아프게 생각하는 바이니라. 필부필부도 이미 그 흰 것을 알고 있으니, 지엄한 법을 피할 수 없느니라. 그 검은 것이 인용한 시부(詩賦)의 말은 모두 교묘한 거짓이 아님이 없으며, 또한 원망하고 헐뜯으며 가 버렸으니 이는 곧 간악한 소리로다. 더욱이 날개를 치고 높은 수레에 올랐어도 녹을 먹는 효과를 보지 못했을 뿐 아니라, 왕의 숲에 알을 낳고 살면서 멋대로 패도(敗道)의 말만을 일삼고 순전히 허명(虛名)만을 도적질함으로써 마침내 커다란 죄를 범하는 데 이르렀도다. 그러나 저 까마귀는 마당에 모여 노닐지라도 순우(舜虞)의 효(孝)를 지녔으며, 지붕 위를 떠다닐지라도 주(周)나라 희씨(姬氏)의 창성(昌盛)함을 드러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다리 긴 놈의 무고(誣告)로 말미암아 나뭇가지 하나 빌리지 못하고 말았으니, 그 가슴 속 원통함이야 오죽했겠는가. 다행히도 밝게 설욕할 날이 있게 되었으니, 이에 학의 죄를 바로 잡고 아울러 까마귀의 훌륭함을 포상하노라."

이에 마침내 서호(西湖)가에서 학을 죽였다. 죽음에 임하여 학은 슬피 울며 노래하였다.

세혼탁혜(世혼濁兮) 세상의 혼탁함이여

변백이위흑(變白以爲黑) 백을 바꾸어 흑이라 하는구나.

장해무고혜(장害無辜兮) 무고한 이를 죽이고 해침이여

수지오지음특(誰知烏之陰慝) 누가 저 까마귀의 음험하고 간특함을 알리오.

안처선생(安處先生)이 이를 듣고 혀를 차며 탄식하였다.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是非가 현혹되었도다. 사물을 분별하는 것 가운데 쉬운 것으로는 흑백(黑白)을 가리는 것만한 것이 없거늘, 오히려 이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으니, 하물며 가리기 어려운 것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유의건(柳宜健) 1687(숙종 13)∼1760(영조 36) 자는 순겸(順兼), 호는 화계(花溪), 본관은 서산(瑞山)이다. 부친의 휘(諱)는 태서(泰瑞)이며 모친은 오천정씨(烏川鄭氏) 사인(士人) 영의 딸이다. 본래 오암(鰲庵) 기서(起瑞)와 학성이씨(鶴城李氏) 정의(廷義)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부친이 무자(無子)하여 양자(養子)로 들어왔다. 숙종 정묘년(1687) 경주(慶州) 신계리(新溪里)에서 태어나 영조 11년 을묘(1735)에 진사(進士)가 되었다. 비록 벼슬을 하지는 않았지만, 효성이 지극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하였다. 특히 시(詩)와 역(易)에 남다른 재주를 가지고 있어 시집(詩集)과 <괘변의(卦變疑)>·<선후천(先後天)> 등의 설(說)을 담은 역서(易書)를 남기고 있다. 이 글은 {화계선생문집(花溪先生文集)} 권 11에 수록된 <오학상송설(烏鶴相訟說)>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