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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소설의 민중적 성격 및 해학미, 현실 인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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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소설의 민중적 성격

 

김유정의 소설은 주로 사상이나 내용의 무게보다 형식적인 면, 즉 기교나 구성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고 평가된다. 기교 가운데는 특히 반어와 해학이 돋보이며, 구성은 반복적이고 회귀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또 전통 계승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도 김유정 소설의 문체와 구성 같은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중시되는 일이 많다. 실제로 이런 연구들은 그 자체로서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런 접근 방법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김유정의 작품들은 문학의 기교나 형식만 거론할 가치가 있고 사상이나 이념 같은 것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그의 작품들에는 사상과 유리된 기교나 형식미만 살아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문학 작품이란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대상 작품의 정체가 과연 제대로 밝혀질 수 있는 것인가.

 

한편 수적으로 약세이긴 하지만 김유정 소설의 사상성, 특히 당시 농촌 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을 주목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 중에는 김유정 문학의 현실인식을 높이 평가한 경우와 그 한계성을 주로 비판한 경우도 있긴 하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그런 현실 인식에 대한 평가의 적절성 문제를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논자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문제시하는 것은 앞에 지적한 바와 같이 양자가 모두 내용을 형식과의 관계 아래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작품의 이념이나 사상을 기교나 구조와 같은 형식미와는 상관없이 다루고 있다는 데 이런 글들이 가진 문제로도 지적된다는 말이다. 작가에게 현실인식이나 세계관은 형식이나 미학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들 역시 형식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도외시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김유정 자신은 이런 문제들에 관해서 정작 어떤 입장을 보여왔을까. 그동안 논자들의 관심과 견해의 대세를 중심으로 본다면 그는 의당 문학의 기교나 형식을 강조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병상의 생각이라는 서간체 수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의 생명을 잃은 그들(신심리주의 문학가인용자)에게 가장 중요한 간판(看板)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형식(形式), 즉 기교(技巧)입니다.()그들은 괴망히도 치밀한 묘사법(描寫法)으로 인간심리를 내공(內攻)하야, 이내 산사람으로 하여금 유령(幽靈)을 만들어 놓은 걸로 그들의 자랑을 삼습니다.

 

이것은 물론 심리주의 작가의 기교 위주의 태도를 비판한 말이지만, 김유정이 문학에서 기교나 묘사보다 이념이나 사상을 더 강조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그가 연애를 위한 연애나,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형식주의기교주의 예술 등을 부정하는 대신, 연애는 인류 상호 결합의 근본 윤리이며, 사랑은 많은 대중(문맥으로 보아 민중이라는 편이 더 어울림)을 한 끈에 꿸 수 있을 때 위대한 생명을 갖게 되며, 예술은 그런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등의 진술로도 알 수 있다. 또 그런 견지에서 개인주의를 비롯하여 니체의 초인설(超人說)과 말더스의 인구론보다는 크로포트킨의 상호 부조론이나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훨씬 새로운 운명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김유정의 진술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남녀간 애정의 사회적 역할을 과대 평가한다든가, 그가 말하는 사랑의 개념이 어떤 맥락과 범주를 가지고 있는지가 모호하다든가, 크로포트킨과 마르크스를 함께 수용하는 태도가 이념이나 세계관의 면에서 석연치 않다는 점들을 문제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뒤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하고, 여기서 우선 명백히 해둘 것은 김유정의 핵심적인 문학 예술관이 민중에 대한 폭넓은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예술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맥락에서 김유정 작품의 뛰어난 기교와 형식 문제도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특히 그가 예술의 목적이 전달에 있는가, 표현에 있는가에 대하여 표현이란 원래 전달을 전제로 하고야 비로소 그 생명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진술은 문학에서 사상, 즉 메시지를 중시하는 그의 입장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시각과 주장은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 부분 작품에 반영되어 있으며, 또 그것은 적어도 그의 창작의 기본방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점들을 고려하여 김유정의 언어적 실천(작품)이 당대 현실과 어떤 연결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혀보고자 한다. 이를테면 그의 작품의 서사나 문체가 당시의 현실, 정치사적 지평과 사회사적 지평 그리고 생산 양식사적 지평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를 고찰해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사상 중시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표현그 자체가 아니라 전달을 전제한 표현에 강조를 두기도 한 김유정 소설의 본질 구명에 더욱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선영, <선청 어문> 23


김유정 소설의 해학미

 

봄봄193512<조광>이란 잡지에 발표된 김유정의 대표적인 단편 소설이다. 이 작품의 훌륭한 점은 그 뛰어난 해학성에 있다. 그의 소설들 대부분은 이러한 해학에 바탕을 둔 것들이다.

 

옛날 이야기와 고대 소설을 거쳐 근대 소설로 이어지는 우리 이야기 문학의 미적 전통 중에서 골계(익살)미는 주요한 흐름의 하나이다. 이러한 골계미를 바탕으로 한 풍자와 해학은 우리에게 웃음과 지혜를 주며, 반어적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경우에 쓰이는 수법이다. 곧 웃음을 매개로 하여 상대의 불합리한 점을 찌르는 수법이다. 이러한 수법을 사용한 소설은 조선시대, 특히 영정조 시대에 이르러 많이 나타났는데, 그 중 박지원의 한문 단편 소설인 양반전’, ‘허생전’, ‘호질등과 배비장전’, ‘옹고집전’, ‘이춘풍전등의 한글 소설들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전’, ‘심청전등에서도 그러한 풍자와 해학이 돋보인다.

 

물론 풍자와 해학은 그 수법에 있어 다른 점이 있다. 해학웃음을 수반하면서 부드럽고 포용력이 있는 반면, 풍자는 대상의 잘못을 비판하는 차갑고 냉소적이며 경색된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 둘은 어긋난 가치나 그 대상에 대하여 증오나 원한으로써 보복하고 파괴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입장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비판하며 그릇된 것을 일깨우는 지혜의 소산이라 말할 수 있다. , 낙천적인 세계관에 의하여 만들어진 문예상의 특질로서 우리 문학의 한 전통이 되고 있다. 1930년대 작가들 중에서 이러한 문예미를 그대로 계승한 대표적인 작가가 김유정이다.

 

봄봄도 예외는 아니다. 먼저 그가 우리로 하여금 웃음을 일으키게 만드는 요소는 등장 인물에 있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인 와 장인될 봉필두 인물이 갈등을 일으키며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우선 는 순진하면서 약간 어리석게 그려지고 있다. ‘봉필이 역시 무식하고 상스럽지만 한편으론 교활하게 그려지고 있다.

 

어린애들이 장난치듯이 행동하는 그들의 모자란 듯한 모습에서 우리는 웃음을 짓게 된다. 특히 우리는 주인공의 우직하고 바보스러운 모습을 보면서, 그러한 어리석은 행위를 연민의 감정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해학이 풍자와는 달리 부드럽고 따뜻하게 포용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와 같이, 이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우리로 하여금 연민과 애처러움의 감정을 갖게 만든다.

 

또한 김유정은 강원도 산골 농민의 생활에 밀접한 토속적인 언어를 자유로이 사용하고 있다. 특히 사투리나 비어, 속어를 구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장인과 나와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극한으로 치닫게 하기보다는 토속적인 애정을 갖게 만든다. 그것은 농촌에서 일하는 소박한 농민의 토속적인 감각과 일치하는 일종의 진실성을 지닌 것임을 알 수 있다.

 

http://hanlover.new21.org/bombom.htm


김유정의 현실 인식

 

봄 봄은 한국 농촌을 무대로 지난 한 시대의 농민의 삶이 어떤 문제,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를테면, 그 당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 즉 당시의 소작 제도 아래에서 마름의 횡포가 얼마나 심했고, 그 횡포 앞에서 소작인의 생활이 어떻게 농락되고 유린되었는지를 잘 말해 주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농촌 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일면을 주로 데릴사위와 마름인 장인과의 대립 관계를 통해서 그려내고 있다. , 땅 임자가 젊은 농부를 데릴사위라고 하는 정략적 약혼의 희생물로 삼아, 그 노동력을 무보수로 착취하는 모습을 통해 당시 농촌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이런 사회 의식은 농촌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비판하기보다, 그것을 해학적으로 다룸으로써 일정한 한계에 머물고 있다. , 심각한 자기 반성과 함께 당시의 농촌 현실에 대한 개혁 의지 같은 것을 주장하고 보여 주지 못함으로써, 농민들의 가난하고 찌든 삶을 단지 웃음의 소재로만 썼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당시의 농촌 현실에 대한 인식을 구체적으로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문학사적인 면에서는 눈부신 평가를 받을만하다 하겠다.

 

그것은 이 작품 구조의 기본 요소들 가운데 와 장인과의 갈등, 즉 지주와 소작인 또는 주인과 머슴과의 갈등 자체가 심각하게 다루어지기보다는 늘 한편으로 독자의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 해학적 표현 속에 깔려 있는 낙천적인 면은 우리 서민이 지닌 일종의 전통적인 감수성, 이를테면, 판소리 사설에서 나타나는 슬픔 속에서도 웃음을 머금게 하는 우리 문예면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 오고 있는 점이라 하겠다.

 

http://hanlover.new21.org/bombom.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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