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만무방' 해설
by 송화은율김유정 '만무방' 해설
작가 : 김유정(1908-1937), 서울(강원도 춘성?) 출생. 아명은 멱설이. 1916년부터 약 4년간 한문 수업. 휘문 고보를 거텨 1927년 연희 전문 문과 입학하였으나 다음 해 중퇴. 1931년 실레마을에 야학을 열었고 그후 얼마 동안 금광을 전전했으나 1932년부터 실레마을에 금병의숙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계몽운동에 나섰다. 1935년부터 본격적인 작품 활동. 순문예 단체인 ‘9인회’ 회원. 1937년 지병인 결핵성 치질과 폐결핵으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상산곡리에서 요절(夭折).
문단 생활은 2년여밖에 안 되지만 30여 편의 단편을 남겼다. 토착적 유머와 함께 농민의 생활 감정과 습속을 사실적으로, 해학(골계)적으로 그려 낸 작가로 평가된다. 대표작으로 <금 따는 콩밭>, <만무방>, <봄․봄>, <동백꽃>, <따라지>(1937) 등
* 만무방 : ‘염치없이 막돼먹은 사람’이란 뜻
<줄거리.
깊은 산골에 가을은 무르녹았다. 응칠은 한가롭게 송이 파적을 나왔다. 전과자요 만무방인 그는 송이 파적이나 할 수밖에 없는 유랑인의 신세다. 응칠은 시장기를 느끼며 송이를 캐어 맘껏 먹어 본다. 고기 생각이 나서 남의 닭을 잡아 먹는다.
숲 속을 빠져 나온 응칠은 성팔이를 만나 응오네 논의 벼가 도둑맞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성팔이를 의심해 본다. 응칠도 5년 전에는 처자가 있었던 성실한 농군이었다. 그러나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야반 도주한 응칠은 동기간이 그리워 응오를 찾아왔다. 진실한 모범 청년인 응오는 벼를 베지 않고 있다. 그런데 베지도 않은 논의 벼가 닷 말쯤 도적을 맞은 것이다.
응칠은 주막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송이로 값을 치른다. 동생 응오는 병을 앓아 반송장이 된 아내에게 먹일 약을 달이고 있다. 아내 병은 낫게 하기 위해 산치성을 올리려 하자 극구 말렸으나 그는 대꾸도 않고 반발한다. 응칠은 오늘 밤에는 도둑을 잡은 후 이곳을 뜨기로 결심한다.
응칠은 도둑을 잡으러 논으로 산고랑 길을 오른다. 바위 굴 속에서 놀음판이 벌어졌다. 응칠도 노름에 끼었다가 서낭당 앞 돌에 앉아 덜덜 떨며 도둑을 잡기 위해 잠복한다. 닭이 세 홰를 울 때, 흰 그림자가 눈 속으로 다가든다. 복면을 한 도적이 나타나자 응칠은 몽둥이로 허리깨를 내리친다. 놈의 복면을 벗기고 나서 응칠은 망연자실한다. 동생 응오였던 것이다.
눈을 적시는 것은 눈물뿐이다. 응칠은 황소를 훔치자고 동생을 달랬지만, 부질없다는 듯 형의 손을 뿌리치고 달아나는 동생을 보고 응칠은 대뜸 몽둥이질을 한다 땅에 쓰러진 아우를 등에 업고 고개를 내려온다.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1930년대 가을, 강원도 산골 마을
<성격> : 반어적(응오 논에 도둑 = 응오 자신)
<시점> : 작가 관찰자 시점
<문체> : 간결체
<주제> : 식민지 농촌 사회에 가해지는 상황의 가혹함과 그 피해
※ 등장 인물들의 타락상 ← 타락한 사회상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냄.
※ 소작농(동생 응오)이 제 논의 벼를 도둑질하는 사건(벼를 수확해 봤자 남는 것은 빚과 식은땀뿐이라는 절망감 때문)은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 의식을 보여 준다.
※ 모범 농군이 도둑이라는 모순된 상황을 통하여 일제 식민지 시대의 농촌 현실이 갖는 비극성을 표출.
※ 마지막 응칠의 응오에 대한 매 ⇒ 모순된 현실에 대한 분노?
※ 응오도 만무방이 됨 : 소작농이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남는 것이 없었다. 지주들에게 모두 착취당하기 때문이다. 응오는 추수를 해 보았자 빚만 늘어날 것이니 벼를 베지 않았고, 자기 논의 벼를 훔쳤다. 결국, 응오는 자신의 벼를 훔치는 만무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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