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김성동 - 만다라

by 송화은율
반응형

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만다라

 

 

 

최초의 악수

金哲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쓰여진 詩」중에서)

 

 

 

 자기를 둘러싼 세계가 거짓된 것이며 모든 가치가 왜곡된 것임을 발견한 인간에게 삶은 언제나 비극이며, 존재는 끝없는 고통이다. 이 고통은, 그 고통의 원인인 거짓된 세계가   참모습을 드러내고 왜곡된 가치가 바로잡히기 전에는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것일 터인데, 그러나 세계의 참모습이 드러나고 진실 된 가치가 구현된다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쉬운 일은 물론 아니며, 또 그렇다고 쉽사리 포기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진실 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의 노력이 끊임없이 방해를 받는 상황, 그리하여 현실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희망과 보장도 얻을 수 없는 듯이 암담해 보이는 상황에서는 그러한 노력조차 허망한 것으로 보이기가 쉽다. 이러한 허망함은 바로 인간다운 삶의 터전을 위한 현실에서의 일체의 노력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는바, 사회가 병들면 개인도 병든다는 말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병든 사회 속에서 개인은 고립되고 전제를 이루지 못한다. 병든 사회는 현실과 초 현실,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형식과 내용, 부분과 전체, 특수와 보편의 엄격한 이원론(二元論)을 신화(神話)처럼 강요한다. 이 강요의 효과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려는 헛된 노력에 몸을 바치느니, 차라리 세계와 완전히, 절연된 공간 ― 그것이 종교든, 예술이든, 또는 섹스든 ― 속으로 후퇴하게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사적(私的)인 영역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이 타락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유일한 길인 것처럼 생각된다. 개인적 삶의 진실, 또는 소시민적 양심에 충실하는 것이 언젠가는 세계의 개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막연한 희망은 강요된 이원론의 효과에 의하여 더욱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대체 세계와 단절된 사적인 영역이란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그리고 병든 사회가 이미 개인적 삶의 진실을 진실로서 보장해 주지 못할 때에, 그 진실은 거짓된 세계의 질서를 강화시키는 방패의 역할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물론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병든 사회 속에서 개인이 고립되고 전체를 이루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 구조의 각 부분들은 부분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부분은 부분으로 유리되어 전체유기체의 원활한 활동에 기여하지 못한다. 정치·종교·경제·학문·예술·문화·교육 따위는 엄격히 분리되고, 또 분리되는 것이 당연하고도 필요하다는 이원론적 신화에 의하여 저마다의 세계에 안주한다. 길은 두 가지 ― 세속의 질서와 강력하게 밀착하거나 그것을 철저히 부정하고 초월적 세계로 은둔하거나 하는 것 밖에는 없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든 그것이 거짓된 세계의 질서를 강화시키는 방편임은 자명한 이치이며, 이러한 양자택일적 사고방식이야말로 병든 사회가 안겨준 가장 큰 환상의 생생한 실례인 것이다.

 

 오늘날 한반도에서의 우리들의 삶이 척박하고 뿌리뽑힌 것이라는 자각은, 그러므로 위에서 발한바. 병든 사회가 강요한 이원론적 신화로 인하여 어떠한 개인적 진실, 부분적 진실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비극적 인식에 토대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세속의 질서와 밀착하거나. 그것을 부정하고 초월적 세계로 은둔하거나 하는 이원론적 사고를 거부한 인간에 게 있어서, 현실의 삶은 고통이며, 비극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부끄러움〉일 수밖에 없다. 부끄러움이야말로, 개인의 진실이 ― 자기가 몸답고 있는 부분의 진실이 참된 공동체의 삶의 질서와 아무런 관계도 맺지 못하고 있음을 간파한 인간이 느끼는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한 감정인 것이다. 그리고 김성동의 소설을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고 있다. 「만다라」를  비롯해서, 그의 불교 체험을 바탕으로 한 일련의 소설들이 결코 〈종교소설〉,또는 〈불교소설〉이 아닌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의 소설이 주는 공감도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입산으로부터 10년간의 승려생활, 그리고 환속(還俗)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적은 장편「만다라」에서 그는 그이 거의 노골적으로 자기를 내보이고 있다. 참으로 성불(成佛)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이름도 없고, 소리도, 빛깔도, 냄새도 없는, 시공(時空)이 끊어진 절대의 그 자리를 한 손에 거머쥐는 것이라면 그것은〈갈비와 갈비가 맞부딪치는〉 〈저 더럽고 냄새나는 저자의 뒷골목〉을 버리고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만다라」에서 작가는 이러한 질문으로 계속되는 방황과 혼돈의 기록을 아무런 꾸밈없이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섬세하고 잘 짜여진 소설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오히려 당혹스러운 정도의 투박함이 그러나 실은 그의 저력인지도 모른다.

 

   세상사의 이치를 안다는 것은 또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견성일 것입니다. 견성이며 성불일 것입니다.

「만다라」의 끝부분에 장황하게 인용된 지산(智山)의 잡기장의 한 구절이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이 잡기장 부분 전체는 오히려 법운(法雲)의 몫이라고 짐작되는데, 아무튼 작가는 일단 여기서 지산의 죽음과 법운의 환속을 위한 장을 열었다. 지산의 죽음은 법운의 말을 빌면,〈허무와의 피나는 싸움 끝에 쓰러진〉것이었고 〈당당하게 싸우다 장렬하게 옥쇄한〉것이었다. 문제는 남은 법운이다.

 

 그를 생각하면 정면 대결을 회피하고 비실비실 외곽으로 돌며 비겁하게 살아 있는 나는 부끄럽다. 살아 있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고 치욕이다. 그러나 법운이 부끄러워하고 있는 것은 실은 지산의 죽음 그 자체는 아니다. 그는 견성(見性)이 회신멸지(灰身滅智)의 고행(苦行)을 통하여 어느 날 문득 손에 잡히는 고정된 실체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는 지산에게 필요했던 것이(또는 그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있던 것이)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은 말로 명료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가(지산이-필자) 싸늘한 냉소를 따뜻한 미소로 바꾸고, 절망에만 부여했던 뜨거운 열정을 희망으로 바꿔서, 스스로 패배했다고 믿고 있는 생(生)과의 재회가 이루어질 수 있기를 바라는…… 기대,

 

 지산의 죽음을 통하여, 그리고 법운의 환속을 통하여 작가는 지산도 버리고 법운도 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저 〈둘이되 둘이 아닌(二而不二) 이치와의 힘겹고 피나는 싸움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우선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이러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은 「만다라」이후의 같은 소재의 소설들에서 다시 집요하게 추구되고 있다. 그는 승려로서의 자기의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삶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에서 머뭇거리기만 하던 나는 마침내는 그리하여 억겁(億劫)을 두고 구만리 장천을 헤매는 중유(中有)의 넋인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는 〈한번도 내 손으로 내 밥을 벌어 보지 못한 자〉(「먼산」)이며, 〈한번도 정식(正式)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황야에서」),〈이 세상 사람들이 땀흘려 벌어 공양드린 시줏  물을 받아먹고, 헛된 욕망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워할 자격이 없는 중생이었다.〉(「먼산」). 거의 자학에 가까운 이러한 준열한 자기 반성이야말로 뿌리뽑힌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의 한 전형인 것이다. 그가 느끼는 가장 원초적이고 솔직한 감정은 앞에서 말한 대로 〈부끄러움〉이다.

 

 내가 진실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백결(百結) 천결(千結)로 기워진 누더기 승복에 값하지 못하는 내 엉터리 중노릇이었다.

  적어도 이 시기에 있어서 나는 <흰 얼굴과 가느다란 뼈를 부끄러워하던>자였고, <삿된 음성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단지 슬픔에 젖게 할 뿐>인 <목탁 노동자>였고, 그리하여 <철두철미하게 혼자일…… 비정한 개체(個體)> 였다.

 

  그러나 부끄러움이 부끄러움으로만 그친다면 그것은 과도한 자기 연민이나 자학에 지나지 않는다. 심하게 말하면, 그것은 교묘하게 위장된 자기 과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김성동은 그것이 <더러운 땅을 여의고는 어디서도 깨끗한 땅을 찾을 길이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자신있게 말하기 위한 치열한 자기 다짐이었음을「만다라」이후의 작품들에서 입증하고 있다.

 

  「산란(山蘭)」과「하산(下山)」은 그가 오랜 동안의 각고와 번민을 통하여 자기의 목소리에 얼마나 자신을 갖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산란」은 매우 깔끔한 작품이다. <님만이 님이 아니라 그리운 것은 다 님>이라는 것은 한 용운의 말인데, 아무튼 가장 그립고 절실한 대상 그것이 부처이며 그 대상을 확연히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리는 것이 곧 견성(見性)임을「산란」은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사미승 <능선>에게 가장 그리운 대상은 <어머니>이며 그 어머니는 창호지에 뚫어 놓은 바늘  구멍을 통해서만 보이게 되어 있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눈이 열리고, 마침내는 그리던 그것을 보게 되고, 그러나 그것마저도 허상(虛像)임을 깨닫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서, 불교에서의 견성에 이르는 피나는 수도(修道)의 과정과 그 본질을 밝히고 있는데, 그러나「산란」에서 <능선>은 끝내<어머니>를 보지 못한다. 이것은 물론 <능선>이 그만한 깨달음을 얻기에는 아직 나이가 어리다는 점을 배려한 것이겠지만, 그보다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한 가지만은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서 <스스로 근기(根基) 따라 찾아 볼 일>이 라는 뜻을 암시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래지(如來地)에 이르는 길이 수만 갈래가 있을 것인즉, 헛된 언어와 문자보다는 더럽고 냄새나는 세간의 이치를 아는 것이 더욱 훌륭한 공부일 수도 있음을, 작가는 산사(山寺)에 숨어 든 한 남녀의 정사(情事)를 <능선>이 목격하는 장면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산(下山)」「이인(異人)을 기다리며」, 「등」과 같은 일련의 작품에서 그는 머뭇거리던 태도를 버리고 훨씬 소박하고 진솔한 목소리로 <예토(穢土)와 정토(淨土)가 둘이 아님>을 말하고 있다.

 

  깊은 산중 어딘가에 있다는 <진인(眞人)>을 찾아 헤매다. 산중에서 우연히 한 노인을 만나고 (정작 그가 진인이든 아니든 이미 그것은 문제가 아니다) 서둘러 산을 내려오는 「하산」의 마지막 장면에서의 주인공은, 예컨대 「만다라」의 <법운>에 견주면 훨씬 당당하고 자신에 차 있다.

 

  진실로 진인이 진인이랄 것 같으면 세상에 할 일이 태산 같은 터수에 산간에 서 이나 잡고 있겠는가.

  순간, 나는 명치께를 누르고 있던 돌덩이가 쑥 내려가면서 갑자기 천지가 환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서둘러 하산(下山)을 재촉하였다. 늙은이의 한 마디에 몰록 깨달음을 얻은 것이었다. 깨달음이라고 하지만 실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산을 내려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산을 내려가서 천하고 추한 저자 거리의 중생들과 함께 살을 섞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보리와 번뇌가 본래 둘이 아니며 예토(穢土)와 정토(淨土)가 본래 둘로 나뉘어진 별세계가 아니라는 여래(如來)의 말씀이 진실로 진언(眞言)인 것일진대, 팔풍오욕(八風五慾) 속에 끝없이 윤회(輪廻)하는 이 예토를 여의고는 다른 어느 곳에서도 정토를 구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불법(佛法)과 세간법(世間法)이 다르지 않다면, 세간의 법에 충실하는 것이 곧 보리(菩提)를 얻는 이치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세계는 병들어 있고 일체(一切)는 미몽(迷夢)이다. 그러나 또 미몽을 떠나서는 어디에서도 참이 없다. 그러니 상(相)에 붙들려도 안 되고 상이 아님(非相)에 빠져도 안 된다. 이치는 자명하나 실천은 어렵다. 실천이 결여된 부정적(否定的)사고는 끝없는 동어반복(同語反覆)의 악순환 속에서 삶을 황폐하게 하고 지치게 한다.

 

  「황야에서」는 이러한 쓸쓸하고 황폐한 삶의 기록이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마음의 정처(定處)를 잃고 승속(僧俗)을 넘나들며 비틀거리던> 청년이다. 그에게 있어서 위안은 공원 벤치에서의 나이 어린 소녀와의 쓸쓸한 <축제>, 그리고 타락한 절망 속에서 혼자서 하는 <문학>이 전부이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위안이 되지 못함은 그 자신이 더욱 잘 알고 있다. 밀실의 세계는 개인의 삶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으로부터의 소외를 일으킨다. 절망의 끝에서 주인공은 <죽고 싶다. 이승을 떠나 어디 다른 별나라나 달나라로 가고 싶다>고 외친다.

 

  이러한 절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그것은 그가 승속(僧俗)의 어느 곳에서도 안주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승속의 어느 곳에서도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고월(古月)>의 소승적 아름다움에 주인공은 깊이 매료되면서도 끝내 다가가지 않는다.

 

  개인과 집단의 문제도, 같은 뜻에서, 주인공의 삶을 힘들게 한다. <능선>과 김(金)이라는 여대생이 만나는 장면은 이 작품의 큰 전기(轉機)를 이루는 동시에, 이 작품이 만만치 않은 문제를 제기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개인의 슬픔이나 고민이 단순히 개인적인 슬픔과 고민으로 그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보는데, 스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개인을 떠난 전체가 있을 수 있습니까?"

  "출발이야 물론 개인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지만, 그러나 개인을 넘어서 우리 또는 전체로 확산될 때 개인의 문제 또한 비로소 바람직하게 해결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중략)…

 

  "책에 있는 말은 그만둡시다. 그런 말이라면 경전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짐짓 흥미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면서도 나는 속으로 격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번민에 집착하여 있는 나>는 그 여대생에게서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과 김 지하의 시집을 받고 <처음으로 <문학>이라는 고통>과 만난다. 그러나 그것은 <지옥의 길>이었고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고 그저 슬프기만 할 뿐>인 고통이었다. 어디에서도 안주할 터전을 찾지 못한 주인공에게 있어 남은 것은 오직 부끄러움, 슬픔, 자기 연민 등의 감정뿐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괴로운 것은 그 모든 번민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는 자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살이란 어쩌면 그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부정의 부정이 긍정이라는 것은 논리의 차원에서일 뿐이지 현실의 삶이 끝없는 부정의 악순환일 뿐일 때에 그가 <아무래도 금생(今生)에는 틀린 것이라면 하루 빨리 몸을 바꾸어 내생(來生)에서나 좋은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는 생각……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먼저 죽어야 할 것> 이라고 내뱉는 그 처절한 비통은 오히려 아름답기조차 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어떠한 직접적인 진술―예컨대, 예토와 정토가 둘이 아니라든가, 개인과 집단이 하나이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든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작품은 그러한 진술을 위한 피나는 정신적 분투(奮鬪)의 기록인 것이다.

 

    병든 세계가 강요한 이원론적 질서를 거부하고 진실된 가치를 추구하는 인간이 성찰의 시선을 내면으로 돌리고, <살아 있음을 부끄러워함>은 가장 기본적이고도 <실천적인> 세계 인식의 태도이다. 우리 문학에서 저 식민지의 어둡고 쓰라린 세월과 식민지 청년의 참담한 삶을 극명하게 표현한 윤 동주의 경우가 바로 이 <부끄러움의 미학>을 잘 나타낸다고 하겠는데, 그가 그것을 무분별한 자학이나 사물에 대한 냉소로 연결시키지 않았던 것은 그가 지닌 기독교적 경건성을 뒷받침으로 하여 더욱 깊이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할 수 있었던 것 때문이었다. 숨막힐 정도의 결벽증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둠을 밝음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고통을 열정으로 승화시키는 절창(絶唱)을 토했다.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라는 결연하고도 당당한 독백에서 우리는 병든 세계 속에서 분열된 자아(自我)의 파탄을 극복하려는 식민지 청년의 눈물겨운 노력을 읽는다.

 

  병든 세계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거기서 끝없는 부끄러움과 자기 연민을 느끼고, 바로 거기에서 문학을 출발하고 있는 데에서 윤동주와 김성동의 정신적 궤적은 매우 비슷하다. 그러나 윤동주에게 있어서는 그의 짧은 생애가 미처 자아와 세계와의, 또는 관념과 현실과의 원융(圓融)한 합일(合一)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미완성의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김성동은 훨씬 행복하다.

 

  윤 동주의 삶을 황폐하게 한 것은 물론 식민지의 현실이었다. 김성동의 삶을(그리고 물론 우리의 삶을) 무겁게 내리누르는 조건은 저 식민주의의 잔재와 분단의 현실이다. 전쟁을 체험했든 체험하지 않았든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든 개인의 아픔은 참혹한 동족 상잔의 전쟁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김성동이 처음부터 6·25에 눈을 돌린 것도 그러므로 우연이 아니다. 그가 그리고 있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에게 있어 전쟁은 <구만리 장천을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고 계실 아버지의 외로운 영혼>을 달래야 할 숙제를 남겨 주었고, 어머니의 까닭 모를 복통에 함께 아파해야 하는 일을 던져 주었다. 「엄마와 개구리」, 「별」, 「잔월(殘月)」등의 연작 소설에서는 6·25의 상처가 바로 어머니의 혹심한 복통 또는 어머니의 참담한 수난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리고 성장기를 다룬 다른 소설들에서의 주인공의 쓰라린 아픔과 절망은 바로 어린 시절의 가정의 파멸로부터 얻어진 것이었다. 읽기가 거의 고통스러울 지경인 그로테스크한 복통 장면의 묘사와 아울러, 어린 소년의 고통스러운 삶의 기록들은 오늘날 우리들의 피폐한 삶의 근원에 도사리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6·25와 분단 상황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과 해명(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에 대한 끈질긴 접근)이 오늘날 이 땅의 작가들에게 주어진 가장 무거운 짐이라면, 김성동은 그 짐을 기꺼이 떠맡음으로써, 끝없이 반복되던 처절한 자기 연민과 자괴감(自愧感)의 굴레를 벗고 <나와 중생이 하나가 되는> 해방(解放)의 도정(途程)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이 나라 한 많은 중생에게 그의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일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