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김동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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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보호를 위해서 일부의 글만 교육용으로 올립니다.

그리고 일부 자료는 주로 전집류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작가론 또는

작품론으로 출처가 부정확합니다.


김동인과 그의 문학 세계

 

 

 

생애와 문학관

김동인은 1900년 10월 2일에 평양의. 진선동에 사는 거부인 김대윤(金大潤)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고 한다. 15세 때에는 일본에 유학하여 명치학원의 중학부에 입학하고 나중에 청산학원의 중학부로 전학하여 졸업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학 작품에 관해 쓴 여러 사람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의 성격은 오만했고 독선적인 사람이고 옷을 잘 입고 멋도 부릴 줄 아는 사치한 댄디즘의 일면도 지녔었다고 한다.

 

그러나 특기할 것은 오만이나 독선이나 사치성보다는 사재를 들여 문학지 《창조(創造)》를 출간한 점이다. 이러한 측면은 김동인의 문화사업가적인 측면과 창작가적인 요소가 결합괸 것으로 높이 찬양할만한 점이 된다. 그는 1917년에 부친상을 당하고, 같은 해에 혼인을 했으나, 10년 후에는 부인과 헤어진다. 그 사이에 《창조》지를 통하여 많은 단편들을 빨표하고 중요한 작가적 지위를 얻고 어느 정도의 명성도 얻었지만, 개인적인 생활에서는 결코 행복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철(白鐵)의 <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신천지》8권 2호), 정비석(鄭飛石)의 <김동인의 예술과 생애>(《자유세계》1권5호) 등의 기록에는 아편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보이고있으나, 실제로 어느 정도 심각했는지, 그것을 알 수는 없다. 27세가 되던 1926년에 토지관개사업에 실패한 다음의 심경을, 그는 다음과 같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적고 있다.

 

 관개사업이 실패에 돌아간 뒤의 나의 생활은 순전한 자포적 생활이었다. 어제는 군산, 오늘은 대구, 내일은 신의주, 이와 같이 방향없이 지향없이 헤매었다. 파산! 눈앞에 당도한 이런 무서운 그림자에 위협되어 잠시도 한 곳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아아! 나는 그 때 아편이 얼마나 그리웠으랴. 이전에 병고시대에 경험하여 본 아편의 꿈, 그것은 이 세상의 온갖 괴롭고 쓰린 자취를 잊어버리는 거짓말 같은 도취경이었다. 불안과 공포에 얼뜬 나의 마음은 그것을 속이기 위하여 아편으로 아편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방면의 길을 모르는 나는 아편을 구할 길이 없었다. 둘째 방책으로 나는 그 괴로운 생각이 머리에 떠오를 기회를 할 수 있는 데껏 적게 하기 위하여 이곳저곳으로 낯설은 땅을 방황하였다.

  이런 때에 받는 공포와 불안을, 무인 고도에 혼자 버리움을 받은 사람의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그 따위에는 비길 종류가 아니었다. 자활책과 처세술이라는 것을 아직 배우지 못한 내가 당연한 결과로서 그 때 나의 앞에서 발견한 커다란 두 가지의 그림자는 '죽느냐','거랑벙이냐'하는 것이었다.

(《김동인전집》2권·396∼397면)

 

 

이러한 그의 술회에 의하면 그가 27세 때에 파산을 경험했던 바, 그의 충격이 매우 심각했던 것으로 짐작이 간다. 아편의 사용을 지적하여 단순히 그의 쾌락적 성향을 비난하는 것은 온당한 비판이라고만 말하기는 어렵다. 비록 권장할 일은 못 된다고는 하지만 파산의 지경에 이른 젊은 사람으로서 심한 불안과 절망에서 야기되는 도피증은 있음직한 일로 보인다. 또 일부의 논자들 중에는 김동인의 여인 섭렵과 방탕을 들어 가혹하게 비난하는 말투로 언급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도 김동인의 복잡한 생애와 시대와 교육이라는 얼크러짐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냉철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독교 신자로 자랐고, 교양 있는 젊은 신사로 통했지만, 사회적 훈련과 여성에 대한 건전한 교육이 없었으므로 기녀에 빠진 후로는 거의 헤어나지 못하게 되고, 나중에는 실처(失妻)까지 하기에이른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술회에 보인 바와 같이, 그는 훌륭한 문인과 예술인으로서의 꿈을 가꾸어 온 사람이었다. 또 우리 문학사에서는 하나의 독자적 봉우리를 형성하는 큰 업적도 세웠다고 생각된다.

 

그가 동경에서 만났던 여인 중에 메리라는 소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은 매우 귀중한 것인데, 그 스스로의 자유 의사에 의하여 선택된 귀중한 소녀에의 사랑이 짝사랑인 채 끝나는 아쉬움이 얼마나 컸기에, 그는 나중에 <여인>이라는 자전적 소설에서 다시 생생하게 회상하고 있느냐 하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만약 그 스스로 선택한 소녀와 일생을 약속했을 때 과연 무절제한 기녀와의 사귐이 가능했을까 하는 점이다. 그는 나중에 김옥엽이라는 기녀와 깊은 사랑에 빠지지만, 그의 심정은 순정을 다하는 연정의 감정으로 그녀를 사귀고 있고, 나중에도 '세미마루'라는 일본 소녀와의 정신적 사랑을 고백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사실은 적어도 구세대층의 남성이나 여성들에 있어서는 사회 문제로서 큰 비중을 차지한 공통적 주제였다. 자주적인 사고와 행동의 일치를 미덕으로 교육받은 새로운 지식인들이, 의연히 완고하고 또 풍속화 된 옛날식의 혼인에 만족하고 승복했을 리가 없다. 어른들의 권에 못 이겨 혼인은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상의 신여성을 사모했을 터이므로 가정이 행복의 보금자리로 느껴지질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번 빠진 기녀와의 사랑은 다시 또 다른 선택에로 방황하게 된다. 왜냐하면, 늦게나마라도 양가의 이상적인 신식 규수와 연애를 했다면 모르거니와, 모든 주당(酒黨)의 노리개인 기녀를 사랑했으므로, 이상적 여성의 일면을 지닌 기생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추한 일면을 지닌 상품적 특질도 지녔으므로 김동인에게는 애증의 복합이 급기야는 기쁨과 번뇌는 김옥엽과의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서 선명하게 노출되고 있다.

 

그런데다가 그는 친구로부터의 작은 나무람까지도 용서할 수 없는, 말하자면 오만보다도 더 심한 결벽증을 지니고 있었던 것같이 보인다. 김옥엽과 연애 행각을 하다가 돈을 탕진한 그는 잠시 친구들의 하숙방에 신세를 지게 되었던 듯 다음과 같은 술회도 보인다.

 

 어떤 날 밤, 이 날도 하루 종일의 방황에 노곤한 몸을 쉬이려 비슬비슬 안서(岸曙)의 하숙을 찾아갔다. 예에 의지하여 안서는 하숙에 없었다. 나는 빈 방에 들어가서 몸을 커다랗게 내어던졌다. 그리고 곧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의 곤한 잠은 조금 뒤에 다시 깨지 않을 수가 없었다. 등등등등! 무슨 사람의 소리를 처음에는 꿈결같이 듣다가, 마침내 정신이 들면서 들으니까, 그것은 안서의 목소리였다. 밤이 깊어서 술이 취하여 돌아온 그는 자기 방에 침입하여 정신 모르고 자는 나에게, 자리가 좁다고 무슨 나무렴을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몸을 떨었다. 사소한 일에라도 몹시 신경질이 된 나는, 그 때 폭발하려는 성을 삭이기 위하여 숨소리까지 죽였다. 그냥 자는 체하였다.

 

  안서는 몇 마디 응얼응얼 나무렴을 하다가 그만 쓰러져서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러나 자존심을 상한 노여움으로 흥분된 나는 잠을 들 수가 없었다. 이것을, 이것을! 나는 몇 번을 주먹을 부르쥐며 성을 내다가, 종내 참지 못하여 몰래 저고리를 뒤집어쓰고 그 집을 뛰쳐나왔다.

 

  그러나 갈 곳은 어디? 깊은 밤, 주머니에 한 푼의 돈도 없는 이 젊은이는 몸을 쉴 곳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는, 마지막에 할 일 없이 남산 공원으로 갔다.(《김동인전집》2권·355면)

 

이와 같은 기록에서 김동인의 결벽성이 분명하게 보인다. 오만이란 것도 그 스스로의 삶의 자세로서 시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남의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려는 노력은 스스로를 지키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의 성격적 특질은 문학을 창작하고 비평하는 데도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깊게 관여된 것으로 짐작된다. 김동인은 그의 선배 작가인 이인직이나 이광수의 문학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고 모범적인 것으로 바라보지도 않았고 심지어는,

 

 일본 문학 따위는 미리부터 깔보고 들었으며 '빅토르 유고'까지도 통속 작가라 경멸할이만치 유아독존의 시절이었다.…(略)레오 톨스토이야말로 나의 경모하여 마지않는 작가였다.(《김동인전집》8권·393면)

 

이와 같이 그의 문학의 기준은 세계 문학의 정상에 드는 톨스토이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그의 문학관에는 최고의 것으로서 누구나 함부로 추종할 수 없는 독자적인 것에 두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춘원 연구>에서 그의 견해를 피력한 바와 같이, 도덕적 가치나 사회교화로서의 문학의 효용적 가치를 거부하고, 문학 자체의 아름다움과 흥미에 문학의 가치를 두고 있다. 문학에서는 사회적 교화 사상이나 권선징악을 다루기보다는 예술성이 높은 '내용의 미'나 '조화의 정도','작자의 사상','작자의 독창성','작중 인물의 각 개성에 대한 묘사','심리와 동작과 언어에 대한 묘사','작중 인물의 사회에 대한 분투' 등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1920년 7월달의 《창조》에 개재된 <자긔의 창조한 세계>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를 비교하고, 도스토예프스키는 그가 창조한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하여 톨스토이는 창조한 인물을 자유자재로 다루어 매우 능숙한 예술적 솜씨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견해에 미루어 그는 예술의 기교적 우수성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이러한 그의 관심은 아마도, 춘원과 달리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존하여 새롭고도 대담한 일련의 작품들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예술의 위대가 자연의 위대보다 생명이 있고 더 큰 것은 정한 일이 아니냐? 사람의 힘은 위대한 것'(《김동인전집》10권·139면)으로 이해한 것 같다. 그는 춘원의 도학자적 관념론에 반기를 들고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써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훨씬 자유스런 상상의 세계에 몰입하여, 기상(奇想)이나 환상의 신비경까지도 대담하게 창출해 낸 것같이 보인다.

 

  예술은 인생을 위하여서도 아니고 예술 자신을 위하여서도 아니요, 다만 예술가 자신이 막지 못할 예술욕 때문의 예술입니다.(《김동인전집》10권·221면)

 

이와 같이 대담한 자기 견해를 말하고 있다. 김동인의 비평관이나 방법에 관한 연구는 《한국 현대 비평사》1975년 한국일보사)를 참고하면 펀리할 것으로 보인다.

 

 

단편소설과 자연주의의 한계

김 동인의 첫 작품은 <약한 자의 슬픔>으로 1919년 《창조》의 창간호와 두 번째호의 책에 수록된 것으로서 어린 가정교사인 강 엘리자베드의 비참한 곤경을 묘사하여 사회적으로 약한 사람을 비교적 차갑게 묘사하고 있다. 문학사가들이 말하는 바와 같이 자연주의적인 작풍을 짙게 풍기고 있다.

 

1921년 《창조》 9호에 발표한 <배따라기>를 김동인은 스스로 매우 뜻깊은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젊은 작가로서는 그 당시까지에 있어서의 한국의 단편 소설들과 비교해 볼 때, 예술적 가치가 뛰어났다고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작품에는 형제간의 우애와 형수와 아우 사이의 우애를 두루 다루고 있다. 작품의 시작에서 작자는 모란봉과 대동강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야기를 보여 주는 화자는 봄의 풍경에 취한 상태를 말하면서 '유토피아'를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화자는 진시황을 '위대한 인격의 소유자'로 말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작품의 주화와는 일단 구분되는 외화에 속한다. 그런데 외화의 주관적 시점은 실상 내화 또는 주화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제한하는 구실을 담당하는 듯이 보인다. 외화의 시점이 내화를 보여 주는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내화는 배따라기의 노래를 매개로 하여 뱃사람의 어려움의 운명적인 측면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다음에 노래의 주인공이자 내화의 주인공인 형을 만나서 오해로 인한 형제와 부부 사이의 비극적 종말을 가져온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작가는 다소간 부자연스럽기는 하지만 주인공의 아내와 아우 사이를 의심할 만큼 이야기의 타당성을 조종하고 있다. 형보다 아우가 미남자이고 아내는 웃음이 많고 애교가 있는 데다가 사교적이기도 하다. 반면에 형은 못나고 과묵하여 항상 아내와 알력이 있어 왔다. 장에 갔다 온 형의 눈에 비친 아내와 아우의 쥐 잡는 장면은 그럴싸한 오해의 자료가 된다. 그런데 이러한 오해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너무 조작적이기 때문에 어색하다고 하여 만약 독자가 그것을 거부한다면 이 소설도 거부되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작가는 오히려 이 오해의 장면을 중심으로 하여 두 형제의 운명적인 분리상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하여 비창감(悲愴感)을 창조하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친형제간이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불륜적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가정에 기조하여, 보이지 않는 힘에 조종되는 운명적 인간상을 나타내고 있는 듯하다.

 

이 오해로 아내는 죽고 아우는 집을 떠나 버린다. 이들의 행복은 마침내 모두 깨어져 버린 셈이다. 형은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자신을 발견하고 아우를 찾으려 방랑의 길을 떠난다. 이 두 형제는 그 후 한 번 만나게 되지만, 작가는 아주 우연히 두 사람의 만남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도 서로 어둠 속의 악한 불빛 속에서 어렴풋이 바라볼 뿐으로 직접 오랜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다시 우애를 이을 수 있게 하지는 않고 있다. 이러한 사건의 배치와 행동의 조직은 어차피 작가의 뜻하는 바 자의적이고 독단적인 운영에  전적으로 의존되기 마련이다. 만약 작가의 이러한 우연의 설정과 독단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작품을 거부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서편으로 바다를 향한 마을이라 다른 곳보담은 늦게 어둡지만, 그래도 술시쯤 되어서는 깜깜하니 어두웠다. 그는 불을 켜려고 바람벽에서 떠나서 석냥을 차지려 도라갔다. 석냥은 늘 잇던 다리에 잇지 아낫다. 그래서 여긔저긔 뒤적이노라니가 어떤 낡은 옷 뭉치를 들칠 때에 쥐 소리가 나면서 무엇이 후덕덕 뛰여나온다.

 

이와 같은 장면은, 아우와 아내가 떡상을 받고 있다가 쥐 때문에 한바탕 소란을 치른 다음의 장면이다. 주인공인 형이 나타나 아내를 때린 후, 작자는 주인공이 어두운 방에서 성냥불을 찾는 행동을 보여 부면서 그의 의식이 어둠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를 암시하고 있는 것 같다. 주인공이 성냥을 찾는데 헌 옷 뭉치에 숨어 있었던 쥐가 뛰어 도망가는 것을 작자는 보여 주고, 그런 다음에 주인공이 오해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있다.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성냥불을 찾는 행위는 상당히 뜻깊은 묘사로 보인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어리석음을 벗어나려고 무의식적으로 밝음을 갈구해 마지않는 일종의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은 암시성이 엿보인다고 하겠다. 질투와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 소박한 촌부의 의식은 일종의 어둠의 상태로 볼 수 있으며, 그것만으로써 이미 비극적 의미를 지녔다고 하겠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두 형제의 방랑 길에서 두 번의 독특하면서도 시적인 수사적 표현을 시도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아우와 같이 생긴 사람이 5,6일 전에 맷산자 봇짐을 하여 진 뒤에, 싯벌건 저녁해를 등으로 밧고, 더벅더벅 동편으로 가더라 한다.

 

 그가 겨우 정신을 차린 때는 밤이었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는 뭇우에 올라 고, 그를 말리우노라고 샛밝아케 피어 노은 불비츠로 자긔를 간호하는 아우를 보았다.

 

위의 인용에서와 같이 '싯벌건','샛밝아케'의 수식어는 어둠과 대조되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두 빛은 어둠을 완전히 물리치고 세계를 밝게 그리고 탁 트이게 하는 힘을 상실한 빛으로 나타나 있다. 첫 번째의 전격 해는 '시벌건' 빛이기는 하지만 기울어져 가는 빛이며, 곧 어둠이 찾아온다는 함축적 의미가 있다. 두 번째의 불빛은 완전히 어둠에 둘러싸인 불빛이다. 정지되고 정태적인 빛이며, 이미 기울어진 빛으로서 작품의 주인공들의 행복과 정상적 삶이 깨어지고 흠이 생긴 상태를 잘 암시하고 있다. 아마도 이 두 형제와 그리고 온 가족의 잃어버린 귀중한 것은 회복될 수 없고, 암담한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분위기 전체를 암시하는 듯이 보인다.

 

작가는 이 두 형제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운명적인 힘을 사라져 가는, 그리고 기울어져 가는 불빛에 의해 조명해 냄으로써 작품 전체의 의미를 조종하고 있는 것같이 보인다. 이러한 삶의 모습을 문제삼는 김동인의 미의식은 상승적인 인생의 도정에 근거를 두기보다는 하강적인 것에 깊이 관여된 듯이 생각된다. 배따라기의 애절한 노래와 어울려 있는 이 두 형제의 방랑은 영원과 무한의 뜻을 내포한 바다 위를 헤매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의 바다는 이 작품 속에 설정된 인물의 정처없음의 의미를 결정하고, 소설 밖에서 소설을 읽는 우리에게도 삶의 길고도 불확정적인 의미를 간접적으로 일깨우는 하나의 상징으로 나타난다고 하겠다. 불확정적인 것의 인식은 불안과 모험과 관계되지만, 이 작품에서는 상실의 불안과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감이 바다로 집약되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두 형제의 우애의 당위적인 회복과 망망한 바다 위를 표랑하는 행위 사이에서 의미의 대조적 긴장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세속적 삶의 건실한 면, 즉 도덕적 건전성과 생활 의지의 건전성을 모두 응집적으로 수렴해 주지는 못한다. 퇴락적인 하강성을 통한 삶의 인식의 한 방식이라고 생각된다.

 

김동인의 <이 잔을>(《개벽》1923년 1월)에서도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겪는 삶과 죽음의 고비를 중심으로 한 결단을 요청받고 있는 운명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의 붓은 상당히 정치(精緻)한 묘사를 보이고 있으며, 예수가 번민하는 장면도 실감있게 제시하고 있다. 예수는 희생을 요구하는 민중들에게 스스로 희생당함으로써 하느님의 높은 뜻을 보여 주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도 작가는 예수로 하여 삶을 택할 것이냐 죽음을 택할 것이냐를 심각하게 촛점화하여 문제로 의식되게 묘사하고 있다. 그가 말했듯이 '귀신 울릴 만한 기묘한 사실 묘사'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하더라도 박진감이 있는 묘사의 솜씨를 보이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잠과 깨임의 되풀이는 암시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잠들어 있는 민중을 깨임에로 이끌기 위한 예수의 결단은, 횃불을 들고 어둠 속에서 음모하고 예수를 죽이려고 뒤따르는 제사장들의 행동에 의해 더욱 선명해진다. 희생을 통한 성취를 이 이야기는 보여 주고 있지만, 이야기의 짜임은 예수의 번민과 현실적인 죽음이라는 하강적 상황을 널리 주지로 한 작품이다.

 

<감자>는 널리 읽혀진 작품이므로 누구나 그 내용을 쉽사리 알 수 있으리라고 짐작되지만, 논의를 위하여 이야기의 전개를 좇아서 살피려 한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복녀이고 복녀는 나이가 15세 때에 게으른 노총각에게 80원에 팔려서 출가했다. 그녀는 '딴 농민보다는 좀 똑똑하고 엄한 가율이 그의 집에 그냥 남어 있었다.'와 같이 정상적인 도덕 의식을 지닌 소녀였다는 것을 도입부에서 알려 주고 있다. 남편의 게으름은 심한 편이어서, 소작의 전답도 떨어지고, 장인의 신용도 떨어져서, 막벌이 지게꾼 일조차도 못 하게 되고, 행랑살이도 떨어져 결국에는 칠성문 밖의 도둑과 거지질과 매음이 '정업'으로 된 특수한 마을로 들어간다. 그렇지만 칠성문 밖의 주민들이 하듯이 복녀는 비정상적인 삶을 살 수가 없었다는 것을 작가는 '선비의 집안에서 자라는그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었다.'와 같이 제시하고 있다. 그 다음에는 송충이를 잡는 장면이 제시되고, 여기서 복녀의 도덕 의식이 결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감독과 정을 통한 후 복녀도 일을 하지 않고 품삯을 더 받게 되었는데, 작가는 복녀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그는 아지껏 싼 사내와 관계를 한다는 것을 생각하여 본일도 없었다. 그것은 사람의 일이 아니오 짐생의 하는 즛으로만 알고 잇섯다. 혹은, 그런 일을 하면 탁 죽어지는지도 모를 일로 아럿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일이 어듸 다시 잇슬가, 사람인 자긔도 그런 일을 한 것을 보면, 그것은 결코 사람으로 못 할 일이 아니었었다. 게다가 일 안하고도, 돈 더 받고. 긴장된 유쾌가 잇고, 비러먹는 것보다 점잔코……' 이 서술은 그 동안 작가가 복녀를 한정했던 바 보통 사람의 도덕 의식을 가졌다는 사실과는 크게 위배되는 갑작스런 변모라고 생각됨직하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도덕 의식의 변모를 위해서 요긴하게도 '그들 부처는 역시 가난하게 지낫다. 굶는 일도 흔히 잇섯다.'와 같이 그럴 만한 구실을 미리 설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복녀의 도덕의식의 변모는 문자 그대로 갑작스러운 것은 아니고, 굶을 지경으로 가난한 사람으로서는 그런 일도 있을 수도 있겠다는 뜻을 감안하게 하고 있다. 이 장면의 다음에서 복녀의 나이는 20세가 되고, 복녀는 거리의 여인처럼 매음도 하고 도둑질도 하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다음에는 복녀와 왕서방의 거래를 제시하고, 복녀 부처가 빈민굴 마을에서는 부자가 된 것도 아울러 말해 준다. 그런데, 왕서방이 새 장가를 들게 되자. '복녀는 집 모퉁이에 숨어서 눈에 살긔를 띄고, 방안 동정을 듯고'있다고 묘사하여, 마치 복녀와 왕서방은 매음의 관계가 아니라 애정의 관계로 맺어졌던 사이인 듯이 다루고 있다. 이 점은 분명히 인물의 심리적 동향의 타당성에 비추어 볼 때 약간의 무리가 있을 것같이 보인다. 복녀와 왕서방의 관계라면, 오히려 복녀는 왕서방을 꼬여서 더 돈을 얻어 내거나 또는 다른 곳에 가서 유객을 함직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인물 설정상의 조건을 도외시하고 복녀가 애정을 잃은 분풀이로 왕서방에게 질투를 느끼어 낫을 들고 덤비다가 죽는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이 장면은 확실히 인물이 지닌 성격적 일관성에 어긋나는 행동을 제시한 것같이 보인다.

 

그렇게 때문에 인물에게 주어진 성격적 조건을 도외시한 작가의 사건 처리를 비판적으로 말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는 분명히 타당성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작품의 전체적 문맥 속에서만 살아가는 인물의 성격적 조건은 실상은 작가가 그의 소설의 목적에 필요한 정도로, 또는 요구되는 어떤 한계 안에서 한정된 것이지, 읽는 사람측에서 임의로 획득된 기준에 의하여 주장하는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설정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감자>라는 소설의 의미 영역을 떠난 감상의 기준이나 비평의 취미는 <감자>와는 별도로 존재할 수 있다. 이 문제를 더 논의하기 위하여 김동인이 배치한 맨 끝의 삽화를 먼저 거론하는 것이 순서상 편리할 것 같다. 복녀가 죽자, 그의 남편이 원하는 금액을 받고 나자 복녀의 시체는 장사지내게 되며, 소설도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은 지금까지 배치한 다른 사건과 함께 작가가 목적을 가지고 제시한 것이다.

 

그것은 요약적으로 말한다면 가난하기는 했지만 보통 사람으로서 정상적인 도덕 의식을 지닌 젊은 여자가, 게으른 남편과 극도의 가난으로 인하여 도둑질과 매음을 하게 되었고 그것으로 하여 죽게 되었으며, 끝내는 억울한 죽음까지도 금전으로 환산되는 매우 비정적이며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는 한 가련한 삶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복녀의 성격적 타당성을 왕서방과의 관계에서 비추어 볼 때, 복녀의 질투가 만약 애정을 뜻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김동인은 인물의 심리적 요소로 포함한 것 같이 생각된다. 솔버그는 <초창기의 세 소설>(《현대문학》1963년 3월)에서 복녀의 태도에 애매성이 있다고 했는데, 이 애매성은 삶의 조건이 도덕 의식을 마멸케 한 다음에도 오히려 그 잔재가 적절하게 제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덕적으로 완전히 퇴락되었다고 생각되는 한 여성 속에 잔재로 숨어 있었던 도덕 의식이 남아 있어서 왕서방과의 관계가 단순한 거래의 의미 이상의 애정이 숨어 있었다고 가정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작가는 게으른 남편과 비정한 왕서방과 한의사를 제시하여 복녀의 죽음의 의미를 비정적으로 조명하여 도덕 의식의 결정적 패배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복녀는 정상적인 도덕 의식을 버리고 목숨을 연명하다가 끝내 완전히는 버리지 못한 그 잔재로 하여 목숨을 잃었다는 심각 한  반어적 의미를 보여 준다. 솔버그는 '방관자적 스타일은 일체의 도덕적 가정을 배제하고 단순한 사실을 제시하는 데 그치는 환경 철학'을 내세우며, 동시에 '작자가 말참견할 때의 스타일'을 채용하여 이야기의 시점에 통일을 잃었으므로 애매한 작품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애매성은 소설가의 실수로 인한 애매성이기보다는 이 시기까지에 있어서의 우리 삶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복합성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현실을 냉엄하게 바라보는 것과 현실을 전통적인 눈으로 보는 이중성이 이 작품에는 나타나 있다.

 

김동인의 이러한 두 의식이 이 이야기에 투영되어 1920년대의 가난한 사람들의 세계가 보인다. 이러한 도덕 의식 문제는 복녀 한 사람만의 문제는 아니며 모두의 문제로 의식케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정적인 냉엄함이 이 작품의 의미를 더 지배하고 있을 뿐이다. 김동인에 의하면 이미 이 시대는 매우 냉엄한 삶의 투쟁의 세계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복녀의 죽음은 그녀의 일방적이면서도 철저한 패배인데, 그만큼 세계의 힘은 비정적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는 뜻을 천명했다고 볼 수 있다. 솔버그는 작가가 시점의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 작품의 의미가 통일적으로 나타날 만큼 일관성을 못 가졌다고 탓하고 있지만, 비평의 기준은 시대의취미의 하나일 수도 있으므로 모두가 작품의 본질이나 가치를 설명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작품의 가치는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으로 믿는다. 부분은 부분의 논리를 갖지만 그것들은 전체적 의미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의 문화 행위를 총체성으로 볼 때 문학 작품은 그 하나의 부분이 된다. 시점의 이론은 형식 이론에 의존되어 있는 하나의 비평적 기준이므로, 그 형식 논리를 용납하지 못하는 작품에 적용했을 때는 적절한 효과를 얻기가 어렵다고 생각된다. 미의 세계에서는 논리적 조화만이 아니라 비약적인 균형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이다. 관례화된  조화 의식이나 균형 의식을 깨뜨리는 경우도 미적 가치는 있기 마련이다.

 

 <감자>에서는 분명히 복녀의 짧은 일생이 다루어지고는 있지만, 작가는 복녀만을 문제삼지 않고 복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집단을 몬제삼고 있음을 쉽사리 이해하게 될 것이다. 칠성문 밖의 빈민굴의 생활을 복녀를 대표 인물로 설정하여 보여 주고 있다. 복녀가 송충이잡이를 할 때의 감독과의 만남도 다른 여인들이 이미 그러한 경로를 밟았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여 주었고, 복녀가 왕서방네 밭에서 감자를 훔쳤을 때에도, 왕서방과 관계된 다른 여인을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배려는 복녀와 같은 인생들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고, 그러한 사람들의 생활과 생태를 보여 주면서 비정스럽게도 사회의 일각에 버려진 빈민 집단을 문제삼은 것이다. 여기서는 복녀 한 사람의 성격적 타당성만의 미적 문제는 아닌 것 같다. 그러한 복녀들의 사회적 문제를 인도적 수준에서 이야기라고 하는 표면적 구조로 문제삼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복녀는 복녀(福女)라고 쓰이는 이름이지만, 그 이름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또 작가가 언뜻 소묘하고 지나갔듯이 '복녀의 얼굴은 더욱 입버젓다.'와도 상관없이 비참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버려진 상태로 죽어 갔다. 이러한 반어적 삶의 현상에 대하여 김동인은 민감했던 것같이 보인다. 복녀가 겪고 죽어 간 생애의 경로는 정상적인 삶으로부터 출발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하강적 곡선을 긋고 있다. 그 중요한 원인은 가난이었다. 이 가난의 문제는 1920년대의 문학적 주제로서는 매우 일반적인 것이었으며, 다른 많은 작가들에 의하여 되풀이되어 다루어졌다. 그만큼 가난의 문제는 그 당시의 사회적 문제로서도 심각한 것이었다. 그것이 문학의 제재로 다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김동인은 1930년에 <광화사>와 <광염소나타>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들은 흔히 심미주의적인 작품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두 작품에서 다루어진 이야기의 소재가 지니 충격적 성격과 기상은 놀라운 바가 있다. 소설은 본질적으로 꾸며 낸 이야기이므로 작품 속의 소재를 작품 밖의 세계에서 인식하는 소재와 동일시하거나 혼동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소설의 의미는 만들어진 것이면서도 결국에는 우리의 삶 일반에 관여하는 사회적 의미가 있고, 우리의 삶 일반과 비교되는 일면도 있다고 보통은 생각되어 왔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시체에 가해한다든지, 광적으로 흥분된 상태에서 미모의 여인을 살해한다는 행위는 좀처럼 쉽사리 수긍되기는 어렵다. 독창성은 언제나 비관례적 성질을 띠거나. 기존적인 것에 반역하거나 낡은 가치와 질서보다 더 고차적이고 더 보편적인 가치를 획득할 때 시인될 것이다. 단순한 기성적인 것의 파괴만으로 새로운 가치가 획득된다고 말할 수 없다. 김동인의 심미주의는 그의 독특한 미의식의 소산임은 틀림없겠지만, 차원 높은 가치를 얻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 두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하강적인 미의식에 의하여 사건과 인물을 설정, 제시함을 알 수 있다.

 

석순옥과 안 빈은 육체적인 사랑을 초극하여 정신주의적 가치를 지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광수 문학은 상승적 일면을 지니고 있고, 상승적 문화 양식에서는 가치의 발견이 이상화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그러나, 하강적 문학 양식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또는 관계적으로는 감추어졌거나 잠재해 있는 특질들이 퇴락화 과정에서 나타나며 이상화를 거부하고 현실을 현실답게 냉엄하게 보이려는 경향을 지닌다. 그러나, 상승적이기 때문에 작품이 이유 없이 이상화된 세계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며, 하강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냉엄함을 일관하여 퇴락적인 세계만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닌 성싶다.

 

하강적 구조 양식에서는 은폐된 내면적 본질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는 장점이 있고, 상승적 구조 양식에서는 고상한 것에의 성취를 위한 인간적 노력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김동인의 심미주의는 자연주의 문학이 추악한 면을 숨김없이 폭로하는 데 주력한 한 측면만을 과장적으로 왜곡한 말기적 징조를 받아들인 것 같다. 이광수의 문학에 있어서의 도덕성을 비판한 입장을 취한 김동인은 오스카 와일드가 취한 극도의 개인주의와 허무주의를 용인하고 예술을 위한 미적 목적을 만족시키는 어떠한 허구도 만들어 낼 수 있었을 것처럼 생각된다. <배따라기>의 첫 장면에서 유토피아를 생각하는 대목은 흡사 오스카 와일드의 그것과 상통하는 듯하다. 이렇게 볼 때, 김동인 문학이 도덕 의식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보아 온 작품들이 모두가 정상적인 도덕 의식의 허약함을 다룬 문제들이었다.

 

1931년 1월에는 <발가락이 닮았다>가 《삼천리》에 발표되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내용도 욕망 때문에 훼손된 한 남자의 고뇌를 다루고 있다. 그런 다음 1936년 3월에는《문장》지에 <김연실전>을 발표하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한 김동리의 비판은 널리 알려진 바 있다. 그런데 김동리는 상당히 격렬한 어조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 때 이미 그(김동인)에게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상도 꿈도 취미도 아무것도 그에게는 있는 것이 없고, 간신히 그에게 약간의 자극을 주는 것은 '음란'과 '쌍말'뿐이었다. 이것만이 간신히 그에게 자극을 남긴 것은 그만치 그가 완전히 따라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김동리저《문학과 인간》10면)

 

 이와 같은 비판은 그럼직한 일면을 가지고는 있으나 <김연실전>을 읽고 났을 때 이 작품이 우리에게 뜻하는 것의 총체적 의미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 같다. 왜냐 하면 <김연실전>에서 주인공의 행동이 보여 주는 내용은 분명히 부도덕적인 일면을 포함한 채 무엇인가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또는 원하는 대로 교육되지 못한 1920년대의 삶의 일각에 대한 재평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실전>을 말해 주는 화자는 3인칭 객관적 시점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 화자는 연실이의 부모와 연실이의 환경을 보여 주면서 구시대의 사회적 폐습과 가족제도의 한 특징을 적절히 다루어 주는 연실이가 자라나는 과정을 서술해 간다. 신시대의 학교와 기생과의 관계, 적서의 문제, '쌍것'으로서의 피해 의식, 그에 따른 연실이의 반항 의식, 연실에 대한 적모의 학대, 연실이 아버지와 첩 사이에 벌어지는 성유희, 일어 선생과의 정사 관계 등이 전작품 11장 중에서 5장을 차지하고 있다. 작가는 구시대의 한 가정을 택하여 소설화 했는데, 연실이를 통하여 빗나간 신시대의 인물상을 보이려고 한 것 같다. 그러므로 화자는 분명히 연실이가 정을 통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연실이'(《한국단편문학전집》1권·109면 백수사간)로 나타나도록 조건을 부여해 왔다. 김동리가 지적하듯이 이 작품은 부도덕한 장면이 두세 곳 나타나지만, 연실이를 여성의 선각자로 다룬 것은 반어적 사태에 떨어진 인물로서 설정된 것으로 이해된다. 연실이는 동경의 여학교에 들어가 괴테와 단테의 소설을 읽고, '조선 여자 유학생 친목회'에 나아가고, 최 명애를 만나고 하여 문학·연애·성교의 3일치 속에서 빗나간 선각을 얻는 이야기를 펼쳐 보인다. 부인이 있는 창수가 연실이와 동침한 다음 기혼자라는 것을 말하자 작가는 연실이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그게 무슨 관계가 있어요, 두 사람의 사랑만 굳으면 그만이지. 사랑 없는 본댁이 있으면 어때요.' 명랑히 이렇게 대답할 때는 연실이는 자기를 완전히 명작 소설의 주인공으로 여겼다.

 

이 장면에서 보통 상식 있는 모든 독자들은 연실이의 도덕 의식이 얼마나 허약하고 잘못 방향지어졌는가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게다가 연실이가 동경에 온 것을 무슨 선각자로서의 대단한 목적이 있어 온 것이 아니라. '동경도 단지 가정에 있기가 싫어서 온 것이지 무슨 큰 희망이 있어서 온 바가 아님을 분명히 말하여 주고 있다.

 

작가는 연실의 불행한 한 생애를 보여 주면서 한국의 근대화에 나섰던 여러 선각자들 중에는 연실이와 같은 빗나간 예도 있었다는 비판을 시도한 것 같이 보인다. 화자는 여러 군데서 연실이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이로 그리고 있다. 그러다가 동경에 와서 최 명애와 같은 단정치 못한 학생과 사귀고 결국 바로 잡힌 삶의 길을 발견하지 못한 채, '갈 길을 몰라서 헤매는 일천만의 조선 여성에게 광명을 보여 주기로 단단히 결심을 하였습니다.'와 같이 웃음거리로서의 선각자가 된 모습을 독자들에게 보여 준다. 이 작품의 전체적인 의미는 바로 웃음거리가 된 근대화의 과정의 한 측면을 연실이로 하여 실연하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 투영된 작가의 야유적 태도를 미처 못 느꼈을 때 김동리와 같은 비판이 나옴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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