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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 소설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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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리(金東里, 1913-1995, 본명 시종·始鍾)

 

· 경북 경주 생.

· 1927년 [조선일보]에 시 <白鷺(백로)>입선.

· 1935년 [중앙일보]에 <화랑(花郞)의 후예(後裔)>로 등단.

· 초기작품경향 : 토속적 소재를 운명론적 인생관으로 다룸.

· 후기작품경향 : 종교를 배경, 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다룸.

 

 유적지

1) 생가(경북 경주시 성건동 186번지)

2) 묘(경기도 광주군 신현2리) : 부인인 소설가 손소희(1917-1987)씨의 묘 옆

 

* 묘비 후면 : ‘김동리찬金東里讚’ 무슨 일에서건 지고는 못견디던 한국문인 중의 가장 큰 욕심 꾸러기, 어여쁜 것 앞에서는 매양 몸살을 앓던 탐미파 중의 탐미파, 신라 망한 뒤의 폐도廢都 에 떠오른 기묘하게는 아름다운 무지개여 1996년 6월 1일 미당 서정주 글

---  소설 <무녀도>, <바위>, <잉여설>, <황토기>, <까치소리>

---  < 서정인>

 

- 관련기사

 

한국 현대 소설사의 거인이자 산 증인인 김동리(82세) 지난 90년 지병으로 쓰러져 언제부터인가 일반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것 같던 김씨가 되돌아 왔다. 병세가 호전된 것은아니지만(87년 부인 손소희 타계, 90년 김씨 뇌졸증) 그의 분신이랄 수 있는 생애 전 작품들이 [김동리 문학전집]이란 이름으로 3월말부터 민음사에서 출간되는 것이다.

 

지난 35년 단편소설 <화랑의 후예>로 등단한 그는 올해로 작가 생활 60주년을 맞이한 현역 작가이다. 그러나 90년 병으로 쓰러진 서울 청담동 자택에서 병마와 싸우고 있다.

 

한국적 샤머니즘의 세계를 파고든 <무녀도> 등 그의 주요 소설들의 인물들이 거대한 운명의 힘에 휩슬려 일상과 신내림(神降)의 경지를 왕복하듯, 그는 현재 자신의 운명과 정면으로 대치하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를 넘나들고 있다 닷새에 한 번꼴로 의사로부터 검진을 받고 매일 물리치료를 받는 그는 거의 의식을 잃고 지내지만, 간혹 찾아온 사람을 알아보고 눈빛으로 무언의 대화를 건넨다고 한다.

 

장남 김재홍씨는 “솔직히 별 차도가 없다”면서도 “상태가 좋으신 날에는 가족들도 알아 보고 하시니까 의식 불명이라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80년대 초 어느 문학강연회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내 단편 소설들을 모두 외고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짜놓은 소설의 구조를 잊어 먹을 리 없고, 문장의 리듬감각을 살리기 위해 여러 번 고쳐 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외게 된다.”

 

지난 해 가을 대하소설 [토지]를 완성한 박경리 씨가 찾아와 “선생님 제가 왔습니다. [토지]가 완간됐습니다.”고 외치자 고개를 끄덕였다고 했다.

 

[김동리 문학전집]에 수록될 단편 소설은 모두 1백 17편이다. 그는 지난 79년 단편 <曼字銅鏡(만자동경)>을 발표한 뒤 신작 발표를 중단한 상태에서 병석에 누웠던 것이다. 이 전집에는 <사반의 십자가>부터 그가 단편<무녀도> 이후 40년 동안 구상햇던 <을화(乙火)>에 이르는 장편 소설들이 들어간다. 소설 외에 발표했던 문학 평론과 에세이 등고 수록한다. 따라서 전집의 총분량의 20여 권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3월 말에 출간될 1차분은 중단편설 5권과 장편 소설 1권으로 구성됐다. 평론가 유종호, 김치수, 이동하, 진정석씨 등이 김동리 문학을 초기, 중기, 후기별로 나누어 쓴 작가론도 각 권뒤에 붙는다.

 

󰏐 연보 개략

48년 첫 평론집 [문학과 인간] 펴냄.

49년 창작집 [황토기] 펴냄.

50년 6.25 발발 때 서울에 숨어 지냄.

51년 한국문총 사무국장 피선, 문총구국대 부대장 지냄.

56년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57년 [사반의 십자가] 간행.

58년 [사반의 십자가]로 예술원 문학부문 작품상 수상.

61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피선. [등신불] 발표.

65년 민족문화중앙협의회 부이사장, 민족문화추진위원회 이사 피선.

67년 [까치소리]로 3.1문화상 예술부문 본상 수상.

68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상. [월간문학] 창간.

70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피선. 서울시 문화상 문학부문 본상 수상. 국민훈장 모란장 수상.

72년 서라벌 예술대학장 취임.

73년 중앙대 예술대학장 취임. [한국문학] 창간.

78년 장편 [을화] 발표.

79년 한국소설가협회장 피선. 중앙대 정년퇴임.

81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장 피선.

83년 5.16 민족문화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피선.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회원 추대.

89년 한국문인협회 명예회장 추대.

90년 소설가협회장 피선. 7월 30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투병.

95년 타계

 

󰏐 [김동리문학] 타계한 김동리씨 삶과 작품세계

 

장기간의 투병 끝에 17일 작고한 작가 김동리는 반공주의적 순수주의라는 한국소설의 한 흐름을 창작과 이론 두 분야에서 주도한 인물이다. 샤머니즘과 토속성을 기조로 삼아 시간의 진행 속에서도 변치 않는 민족적 정체성을 추구하는 그의 문학은 가장 민족적이며 따라서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찬사와, 팍팍한 현실에 등 돌린 몽환과 주술의 포로라는 극단적인 평가를 수반하고 있다.

 

1935년 <중앙일보>에 단편 `화랑의 후예'가, 그 이듬해에 <동아일보>에 `산화'가 당선되어 등단한 동리(본명 김시종)는 `무녀도' `바위' `황토기' 등의 문제작을 잇달아 발표하면서 30년대에 이미 나름의 문학세계를 확고히 했다. 그 자신 󰡒세계의 여율과 작가의 인간적 맥박이 어떤 문자적 약속 아래 유기적으로 육체화하는(것)󰡓이라고 표현한 그 세계란 인간과 섭리 사이의 치열한 대결 또는 조화를 축으로 삼는 것이었다.

 

중학교 4학년 중퇴라는 최종학력에도 불구하고 일찍부터 세계문학전집과 동서의 철학 및 사상․종교서적 등을 섭렵한 그는 나름의 뚜렷한 문학관을 수립해 자신의 창작을 안받침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창작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사회 전체의 혼란과 대립이 문학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던 해방공간에 그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는 해방 직후 좌익계 문인들이 발빠르게결성한 문학가동맹에 맞서 1946년 서정주, 박두진, 조지훈, 박목월 등과 함께 반공문학단체인 한국청년문학가협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에 취임한다. 이 단체는 남한 단독정부 수립 뒤인 1949년 12월 이념적 색깔이 비슷한 문필가협회와 합해 한국문학가협회로 발전하며 동리는 이 단체의 소설분과위원장에 피선된다.

 

동리 자신 대한민국 정부와 `정신적 내지 역사적 성격'을 공유한다고 밝힌 바 있는 한국문학가협회는 지금의 한국문인협회의 전신으로 이후 이땅의 제도권 문학을 대표하게 된다. 동리는 나중에 두번에 걸쳐 한국문인협회의 이사장으로 뽑히기도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한 사실은 그가 이들 단체와 그 소속 문인들의 창작의 지도원리가 되기도 한 문제적 평론을 거듭 발표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들 평론이 자신과 문학적 대척점에 놓인 작가․평론가들과의 논쟁 과정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그 문학적 의의는 지대하다.

 

일찍이 30년대 말의 선배 작가 유진오와 벌인 논전에서 시작해 해방 공간에는 좌익계 소장 평론가인 김동석․김병규와, 50년대 말에는 당시의 젊은 평론가 김우종․이어령 등을 상대로 펼친 불꽃 튀는 논쟁에서 동리가 이룩하고 지켜낸 문학적 화두는 `구경(究境)적 삶의 형식'이라는 것으로 요약된다. `구경적 삶의 형식'이란 달리 말하면 인간의 원형적 조건 또는 운명에 대한 탐구라 할 수 있다. 일제 말기인 30년대 후반과 해방공간, 그리고 민족적 분단의 세월을 통과하면서 많은 수의 동료 문인들이 문학과 현실의 불가분의 관련성을 강조할 때에도 동리는 역사와 현실이휘발해 버린 어떤 민족의 원형적 공간을 상정하고 그 안에서 운명이라는 이름의 알 수 없는 힘에 맞서고자 했다. 그 대결의식은 `역마' ‘사반의 십자가’ `등신불'과 같은 기념비적 작품으로 구현되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 중의 문총구국대 부대장, 5․16민족문화상, 국정자문위원 등으로 미끄러지기도 했다.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에서 많은 후배들을 키우기도 한 동리는 두 번째 부인이었던 작가 손소희가 먼저 세상을 뜬 뒤 30년 연하의 작가 서영은씨와 결혼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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