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by 송화은율길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나오는 사람들 :
잠파노
제르소미이나
얼간이
곡마단장
미망인
젊은 수도녀
해안 F.I
(소녀 제르소미이나가 대나무를 지고 걷고 있다. 거기에 어린아이들이 달려온다.)
아이(1) : 제르소미이나! 빨리 와, 엄마가 불러요.
아이(2) :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왔어요.
(제르소미이나를 따라서 바다 쪽으로 달려간다.) DIS.
집 앞
(제르소미이나, 울음을 머금은 듯한 표정, 그녀 앞에서 나이 많은 어머니가 어린 애를 품에 안고 울부짖고 있다. 둘러싸는 어린이들, 이러한 정경(情景)을 담배를 피우면서 넌지시 바라보는 거한(巨漢), 잠파노다.)
제르소미이나 : 로자가 죽었다고요?
어머니 : 로자를 데리고 갔던 잠파노를 알지? 로자는 죽었어. 글쎄 꽃도 무덤에 놓을 수 없다니……. 가엾게 죽어 버렸어. 귀여운 애였는데 ……. 그 앤 무엇이든지 잘 했어……. 잠파노, (제르소미이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얘도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우? 로자하고 말야, 우린 정말 불행해 잠파노, 이 앤 로자와는 딴판으로 아주 얌전하고 말도 잘 들어요. 조금 이상한 애지만 매일 먹으면 달라질 거예요. (제르소미이나에게) 너 로자 대신에 가겠니? 돈을 벌 수 있고 집에서도 식구가 한 사람 주는 셈이야……. 잠파노는 친절하고, 여기저기 구경을 할 수 있고, 노래하며 춤도 출 수 있고……. (돈을 꺼내서 보인다.) 게다가 이렇게 내게 일만(一萬) 리라나 줬어. (제르소미이나 눈을 크게 뜬다.) 봐, 일만 리라야. 지붕도 고칠 수 있고 한참 동안은 먹을 수 있어. (그녀의 어깨를 품는 듯이 하고) 헌데, 아버진 어딜 갔을까? 넌 아무 일도 못하지만 너를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어밀 도와 주겠지? (잠파노에게) 길을 들여 주겠지, 잠파노?
잠파노 : 걱정 없어. 개도 길들일 수 있는데 ……. (어린애들에게 돈을 꺼내며) 자 너희들 창자 조림 한 킬로하고 치즈 반(半) 킬로를 사 와. 그리고 포도주 두 병하고……. 이 모양이야 난. (제르소미이나가 말없이 해변으로 걸어가려는 것을 보고) 어딜 가는 거야?
어머니 : 왜 그러니, 제르소미이나?
(제르소미이나 혼자 바다로 향하다. 조금 전에 울던 그 얼굴은 눈물에 젖은 채, 그런데도 무엇인지 기쁜 듯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DIS. <중략>
들판(밤)
(미망인에게 얻은 양복으로 바꿔 입고 있는 잠파노. 곁에 멍청히 서 있는 제르소미이나 울 듯한 모습이다. 언뜻 어떤 멜로디를 입가에 띠운다. 그러면서 갑자기 얼굴이 밝아진다.)
제르소미이나 : 저 노래, 알고 있어요? 비가 오는 날 들은 노래예요……. 왜, 나팔은 배워 주지 않아요? ……로자에겐 배워 주지 않았어요?
(잠파노 그녀의 말 같은 건 귀담아 듣지도 않고 양복을 다 입고 일어선다.)
잠파노 : 어울리지? (제르소미이나 또 갑자기 울기 시작하며 곁의 벽에 기대어서 어깨에 파도를 치고 있다.) 어떻게 된 셈이야? 왜 우는 거야? (이 때 그녀는 발밑의 커다란 구멍에 빠져 버린다.) 올라와. (대답이 없다. 위에서 그 안으로 내려다보며) 올라오래도, 안 올라오는 거야?
제르소미이나 : 여기서 자겠어요. (운다.) DIS.
(아침이 되었다. 제르소미이나는 구멍에서 기어 나온다. 위에서 자고 있는 잠 파노를 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제르소미이나 : 가 버리겠어요.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시시해요. 일하는 게 싫은건 아니예요.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예요. 일은 재미있지만 당신이 싫어요. (잠파노를 쿡쿡 찌르며) 가겠어요. 집으로 가요.
잠파노 : (눈을 뜨며) 바보 같은 소리 마.
제르소미이나 : (신발이며 외투를 벗어서 차에 던져 버린다.) 신발도 놓고 가요. 외투도…… 전부 놓고 가요. 이런 건 싫어요. 참을 수 없어요. 싫어요. 가 버릴 테에요.
(눈이 채 떠지지 않는 잠파노를 놓고 그냥 걸어가 버린다.) <중략>
숲의 어귀
(차가 멎어 있다.
밖에 잠파노가 서 있고 안에 제르소미아나가 누워 있다. 그녀는 여전히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잠파노 차 안에 들어가려고 하며―)
잠파노 : 추워지는군. 차차.
제르소미이나 : 싫어요. 들어오지 말아요.
잠파노 : (체념하며) 좋아, 밖에서 잘게. F.O
들판 F. I.
(반합에 마카로니를 끓이고 있는 잠파노.
차에서 제르소미이나가 내려온다. 전에 없이 웃는 낯으로 ―)
제르소미이나 : 여긴 좋아요.
잠파노 : 추워, 추워. 거기 양지에 앉아서 햇볕이나 받아. 밥을 먹는 게 좋을걸.
제르소미이나 : 내가 할게요.
(제르소미이나 반합을 받아들고, 두 사람분으로 나눈다.
잠파노는 오래간만에 식사 같은 것을 차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마간 안심한 듯한 모양이다.)
잠파노 : 다행이었지. 벌써 열흘이야…… 죽일 생각은 없었지. 때렸을 뿐인데.
아무것도 아냐. 코피가 났을 뿐야. 죽을 줄은 몰랐어. 나는 평생 감옥에서 살 순 없어. 나도 세상에서 살고 싶어. 구질구질해도 별 수 없단 말야…….
이제부터 축제(祝祭)가 있어 벌어야지. 안 그래, 일할 수가 있거든.
(제르소미이나 또 울기 시작한다.)
잠파노 : 왜 그래?
제르소미이나 : 죽어요, 죽어요.
잠파노 : (부드럽게) 집에 데려다 주지 집에 가고 싶지? 어머니한테 가고 싶지?
제르소미이나 : 그렇지만 내가 없으면 누가 당신 곁에 있어요?
잠파노 : 나는 애보기는 할 수 없어. 일을 해야지. 너는 병이야. 병이란 말야. 차에 들어가 감기 들겠어.
제르소미이나 : 당신이 죽인 거예요. 당신과 같이 살라고 말해 준 것이 그이인데…….
(제르소미이나 그 자리에 쓰러지듯이 누워 버린다. 이제는 심신이 피로하고 지친 모양이다. DIS.
같은 정경(情景) 한 시간 쯤 지났을 무렵.
제르소미이나는 잠이 잘 들은 모양이다. 그 곁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잠파노.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 허나 이윽고, 차에서 모포를 꺼내다가 제르소미이나의 몸에 덮어 주고 몇 장의 지폐를 그녀의 머리맡에 놓는다. 슬그머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니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그녀는 포근한 웃음을 띤 낯으로 잠자고 있다.
잠파노는 그녀에게 떨어져 오토바이에 타려고 하다가 언뜻 그녀가 언제나 불고 있던 나팔에 생각이 미치자 그것을 그녀의 베게 밑에 놓아 준다. 차를 밀고 그 자리를 멀리 떠나서 운전대에 탄 잠파노는 그냥 제르소미이나를 남겨 놓고 달려가 사라져버린다.) F.O.
항구 거리 F.I.
(수년 후 ― 지방의 작은 항구 거리다.
때마침 서커스가 들려서 그 선전차가 악대 소리도 요란스레 달리고 있다. 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차 위에서 애교를 부리고 있다.
그것을 쫓아가는 아이들. 잠파노는 기운 없는 낯으로 혼자 거리를 걷고 있다. 선전 걸이 그에게 다가와서―)
여자 : 어디 가세요?
잠파노 : 산보가는 거야.
여자 : 같이 안 가요?
잠파노 : 곧 돌아와.
(잠파노 붙일맛 없이 지나간다. DIS.
할 일 없이 걷고 있는 잠파노.
판자 아이스크림 집을 지나친다.)
잠파노 : 하나 줘. 레몬이야.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는 그걸 빨면서 걸어간다.
이 때 어디선가 여자의 노랫소리가 들려 온다. 아름다운 목소리. 그것은 언제나 제르소미이나가 사랑하고 있던 그 반가운 멜로디에 틀림없었다. 섬뜩! 서버린 잠파노, 잠시 그 근방을 두리번거리고 살폈으나 다시 들리지 않으므로 헛귀소린가 하고 그냥 걷기 시작한다.
그러자 또 같은 목소리가―
멎어 버린 잠파노의 눈에 근처의 빈터에서 빨래감을 말리고 있는 젊은 여자의 모습이 눈에 띤다. 목소리의 주인은 이 여자다.)
잠파노 : 그 노래를 어디서 배웠수? (여자는 이상스럽게 보는 눈치다.) 노래말이요. 이제 막 부른 노래말이요.
여자 : 전에 있던 여자가 부르던 걸요.
잠파노 : 언제쯤?
여자 : 사 년인가 오 년 전에요. 언제나 나팔로 불고 있었어요.
잠파노 : (깜짝 놀라며) 지금 어디 있소?
여자 : 죽었어요. 당신은 서커스 하는 사람이군요. 그 여자도 그랬어요. 그래도 아무 소리도 안 하더군요. 바보처럼 …… 처음에는 그 여자가 바닷가에 넘어져 있는 걸 봤어요. 대단한 열이었어요. 집에 데려와도 울고만 있잖아요. 기분이 좋으면 양지밭에서 나팔을 불곤 했지만……. 어느 날 아침에 죽었어요. 동장이 신분을 조사했어요…….
(잠파노 여자의 말을 들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손가락으로 가볍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난다.) DIS.
바닷가
(천막을 치고 쇼가 벌어진다.
여자들의 춤, 곡예 등.
그것이 끝나자 잠파노의 차례다.)
사회 : 박수를 바랍니다. 강철의 사나이 잠파노입니다. 계속해서 희극도 보여 드리겠습니다.
(잠파노 나온다. 언제나처럼―)
잠파노 : 여러분 여기에 반 센티짜리 사슬이 있습니다. 끄트머리에 고리가 달려 있습니다. 가슴의 근육을 부풀게 해서 고리를 벗겨 보이겠습니다. 이 헝겊은 아파서 하는 것이 아니라 피를 보이지 않게 하는 겁니다. 마음이 약한 분은 안 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슬을 가슴에 감는다.) DIS.
주점
(고중망태가 된 잠파노.)
주인 : 이제 그만두오. 어지간히 마시오.
(잠파노 더 술을 달라고 요구하며 다른 손님들과 싸움이 시작된다.)
객(1) : 더 좋은 술집이 있어.
(잠파노 화가 나서 그를 밀어 제치고 거칠게 밖으로 나간다.)
주점 앞 광장
(잠파노 무턱대고 수명의 사나이와 싸움을 벌리고 있다.)
잠파노 : 놔 주게, 내버려 둬 주게.
(잠파노도 술에 만취하고 보니 별 재간 없어 수 명의 사나이에게 걸려서
매를 맞는다.
도로에 냅다 던져진 잠파노, 일어나자 홧김에 드럼통을 발길로 찬다.)
해변
겹겹이 밀려오는 파도.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잠파노, 바다에 들어가서 얼굴을 적시고 온다. 그리고 모래밭에 주저앉아서 허덕이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한다 ―.
잠파노 : 외톨이야……. 내겐 아무도 없어!
(눈물이 치솟아 오른다. 흐느껴 운다. 이윽고 참을 수가 없어서 모래 위에 쓰러져 몸부림치며 운다.
캄캄한 해변에 고독하고 덩치 큰 사나이가 쓰러져서 몸부림치고 있는 그 모습을 잡은 채 카메라는 고요히 트랙 백 한다.
그 귀에 익은 멜로디를 가득히 부우면서 ―. )
요점 정리
지은이 :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 이봉래 옮김
갈래 : 시나리오
성격 : 사실적, 교훈적, 휴머니즘적, 은유적
배경 : 이탈리아의 시골마을
경향 : 리얼리즘에 기초한 휴머니즘
문체 : 간결체, 구어체, 대화체
제재 : 떠돌이 서커스 생활
주제 :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영혼의 모습, 인간의 순수함과 본질적인 고독
구성 : 펠리니의 실제 유년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된 인간의 순수함을 회상하는 로드 무비(road movie)의 형식
표현 : 당대 사회의 변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면서 서로 대조되는 두 주인공의 성격을 통하여 인간의 순수성을 부각시켰다. 가련한 한 여인의 아름다운 마음씨가 무식하고 이기적이며 야만적인 차력사의 힘에 의해 좌초하고 마는 이 비극적인 이야기는 전후 이탈리아의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다시 말해서 떠돌이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여 사회의 변혁을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음.
줄거리 : 제르소미이나는 가난한 해변 마을에 사는 소녀이다. 거의 백치와 같이 순진하고 여린 그녀를 어머니는 유랑하는 차력사 잠파노에게 만 리라를 받고 보낸다. 두 사람은 판이한 성격 차이로 유랑 중에 숱하게 갈등하지만 제르소미이나의 끝없이 무구한 심성에 난폭한 잠파노도 서서히 달라진다. 그러던 중 실수로, 다른 유랑자 마또를 죽인 잠파노는 결국 제르소미니아의 곁을 떠난다. 몇 년 후, 잠파노는 우연히 제르소미이나가 자신을 기다리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해변에서 절규한다.
내용 연구
( 이 작품은 네오-리얼리즘의 직접적이고 객관적인 틀에서 이탈리안 뉴 시네마의 주관적이고도 개인적인 심리로 넘어가는 교두보적 작품이다. 펠리니는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고찰을 그의 실제 유년 시절의 체험인 서커스와 결부시켜 표현하고 있다.)
나오는 사람들 :
잠파노 / 제르소미이나 / 얼간이(됨됨이가 모자라고 덜된 사람) / 곡마단장 / 미망인(남편이 죽고 홀로 남아 사는 여자. 과부.) / 젊은 수도녀(천주교의 수녀원에서 도를 닦아 수양하는 여자. 금욕, 독신, 순종, 검소를 굳게 지키는 계율이 있음)
해안 F.I.
(소녀 제르소미이나가 대나무를 지고 걷고 있다. 거기에 어린아이들이 달려온다.)
아이(1) : 제르소미이나! 빨리 와, 엄마가 불러요.
아이(2) : 오토바이를 탄 사람이 왔어요.(잠파노는 유랑 차력사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이 마을에서 데려 간 로자의 죽음을 알리려 다시 찾아온 것이다.)
(제르소미이나를 따라서 바다 쪽으로 달려간다.) DIS.
집 앞
(제르소미이나, 울음을 머금은(눈물이나 웃음빛을 지닌.) 듯한 표정, 그녀 앞에서 나이 많은 어머니가 어린애를 품에 안고 울부짖고 있다. 둘러싸는 어린이들. 이러한 정경(情景)을 담배를 피우면서 넌지시 바라보는 거한(巨漢 : 몸집이 큰 사나이), 잠파노다)
제르소미이나 : 로자가 죽었다고요?(로자는 제르소미이나의 자매로 잠파노를 따라 곡마단원이 됐었다.)
어머니 : 로자를 데리고 갔던 잠파노를 알지? 로자는 죽었어. 글쎄 꽃도 무덤에 놓을 수 없다니······. 가엾게 죽어 버렸어. 귀여운 애였는데······. 그앤 무엇이든지 잘 했어······. 잠파노, (제르소미이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얘도 닮았다고 생각하지 않우? 로자하고 말야, 우린 정말 불행해. 잠파노, 이 앤 로자와는 딴판으로 아주 얌전하고 말도 잘 들어요, 조금 이상한 애지만 매일 먹으면 달라질 거예요.[우린 정말 불행해. ~ 달라질 거야. : 제르소미이나의 아버지는 일찍 죽었고 가난한 살림을 이끌어 가는 어머니는 현재의 궁핍한 삶에 힘들어 한다. 제르소미이나는 순수하지만 백치이다.] (제르소미이나에게) 너 로자 대신에 가겠니? 돈을 벌 수 있고 집에서도 식구가 한 사람 주는 셈이야······. 잠파노는 친절하고, 여기저기 구경을 할 수 있고, 노래하며 춤도 출 수 있고······. (돈을 꺼내서 보인다.) 게다가 이렇게 내게 일만(一萬)리라(이탈리아의 화폐단위.)나 줬어.[게다가 이렇게 ~ 리라나 줬어. : 가난한 삶에서 제르소미이나를 잠파노에게 주고 받은 일만 리라를 몹시 자랑스러워 한다.] (제르소미이나 눈을 크게 뜬다.) 봐, 일만 리라야. 지붕도 고칠 수 있고 한참 동안은 먹을 수 있어. (그녀의 어깨를 품는 듯이 하고) 헌데, 아버진 어딜 갔을까? 넌 아무 일도 못 하지만 너를 나쁘다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어. 이 어밀 도와 주겠지? (잠파노에게) 길을 들여 주겠지, 잠파노?
- 로자의 죽음과 가난한 제르소미이나의 집
잠파노 : 걱정 없어. 개도 길들일 수 있는데······. (어린이들에게 돈을 꺼내며) 자, 너희들 창자 조림 한 킬로하고 치츠 반(半) 킬로를 사와. 그리고 포도주 두 병하고······. 이 모양이냐 난. (제르소미이나가 말없이 해변으로 걸어가려는 것을 보고) 어딜 가는 거야?
어머니 : 왜 그러니, 제르소미이나?
(제르소미이나 혼자 바다로 향한다. 조금 전에 울던 그 얼굴은 눈물에 젖은 채, 그런데도 무엇인지 기쁜 듯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DIS.
- 잠파노에게 팔리는 제르소미이나
들판 (밤)
(미망인에게 얻은 양복으로 바꿔 입고 있는 잠파노, 곁에 멍청히 서 있는 제르소미이나 울 듯한 모습이다. 언뜻 어떤 멜로디를 입가에 띠운다. 그러면서 갑자기 얼굴이 밝아진다.)
제르소미이나 : 저 노래, 알고 있어요? 비가 오는 날 들은 노래예요 .......
왜 나팔은 배워 주지 않아요? .....로자에겐 배워 주지 않았어요?
(잠파노 그녀의 말은 건 귀 담아 듣지도 않고 양복을 다 입고 일어선다.)
잠파노 : 어울리지? (제르소밍이나 또 갑자기 울기 시작하며 곁의 벽에 기대어서 어깨에 파도를 치고 있다.) 어떻게 된 셈이야? 왜 우는 거야? (이 때 그녀는 발 밑의 커다란 구멍에 빠져 버린다.) 올라와 (대답이 없다. 위에서 그 안으로 내려다 보며) 올라오래도, 안 올라오는 거야?
제르소미이나 : 여기서 자겠어요(운다.) DIS.
(아침이 되었다. 제르소미이나는 구멍에서 기어 나온다. 위에서 자고 있는 잠파노를 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한다.)
제르소미이나 : 가 버리겠어요. 집으로 돌아가겠어요. 시시해요. 일하는 게 싫은건 아니에요.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예요. 일은 재미있지만 당신이 싫어요. (잠파노를 쿡쿡 찌르며) 가겠어요. 집으로 가요.
잠파노 : (눈을 뜨며) 바보 같은 소리 마
제르소미이나 : (신발이며 외투를 벗어서 차에 던져 버린다.) 신발도 놓고 가요. 외투도 ....전부 놓고 가요. 이런 건 싫어요. 참을 수 없어요. 싫어요. 가 버릴 테예요. (눈이 채 떠지지 않은 잠파노를 놓고 그냥 걸어가 버린다.)
-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두 사람
(줄거리 : 어느 날 가난한 해변가 동네에 잠파노라는 차력사가 등장한다. 때마침 가난에 허덕이던 제르소미이나의 어머니는 백치인 그녀를 일만 리라에 잠파노에게 판다.) - 핵심 내용 : 잠파노와 제르소미이나의 만남 구성 : 발단
숲의 어귀
(차가 멎어 있다. 밖에 잠파노가 서 있고 안에 제르소미이나가 누워 있다. 그녀는 여전히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그녀는 ∼ 터뜨리고 있다. : 마또의 죽음으로부터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잠파노 차 안에 들어가려고 하며)
잠파노 : 추워지는군. 차차.
제르소미이나 : 싫어요. 들어오지 말아요.
잠파노 : (체념하며) 좋아, 밖에서 잘게.
들판 FJ
(반합에 마카로니를 끓이고 있는 잠파노. 차에서 제르소미이나가 내려온다. 전에 없이 웃는 낯으로――.)
제르소미이나 : 여긴 좋아요.
잠파노 : 추워, 추워. 거기 양지에 앉아서 햇볕이나 받아. 밥을 먹는 게 좋을걸.
제르소미이나 : 내가 할게요.[제르소미이나는 오랜 충격에서 헤어나 일시적으로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제르소미이나 반합[알루미늄으로 만들어져 밥을 지을 수도 있게 만들어진 그릇.]을 받아들고, 두 사람분으로 나눈다. 잠파노는 오래간만에 식사 같은 것을 차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얼마간 안심한 듯한 모양이다.)
잠파노 : 다행이었지. 벌써 열흘이야……. 죽일 생각은 없었지. 때렸을 뿐인데. 아무것도 아냐. 코피가 났을 뿐야. 죽을 줄은 몰랐어. 나는 평생 감옥에서 살 순 없어. 나도 세상에서 살고 싶어. 구질구질해도 별 수 없단 말야……[다행이었지. ∼ 없단 말야…….: 마또를 일부러 죽이려 한 것은 아니고, 마또와의 삶의 방식 차이로 사고가 나게 되었다는 변명이다. '감옥에서 살 수 없다'는 말에서 잠파노가 달아날 것이 암시된다.]. 이제부터 축제(祝祭 : 축하의 제전)가 있어 벌어야 지. 안그래, 일할 수가 있거든. / (제르소미이나 또 울기 시작한다.)
잠파노 : 왜 그래? / 제르소미이나 : 죽어요, 죽어요.
잠파노 : (부드럽게) 집에 데려다 주지. 집에 가고 싶지? 어머니한테 가고 싶지?
제르소미이나 : 그렇지만 내가 없으면 누가 당신 곁에 있어요?[그렇지만 ∼ 곁에 있어요? : 잠파노의 떠돌이 삶에 대한 연민과 동정의 표현이다]
잠파노 : 나는 애보기는 할 수 없어. 일을 해야지. 너는 병이야. 병이란 말야. 차에 들어가 감기 들겠어.
제르소미이나 : 당신이 죽인 거예요. 당신과 같이 살라고 말해 준 것이 그이인데……[당신이 ∼ 그이인데……. : 잠파노가 싫어한 마또도 떠돌이인 잠파노를 동정하고 있었다. 제르소미이나는 잠파노가 마또를 죽인 것에 대한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 - 시비 끝에 마또를 죽인 잠파노
(제르소미이나는 그 자리에 쓰러지듯이 누워 버린다. 이제는 심신이 피로하고 지친 모양이다. / 같은 정경(情景). 한 시간쯤 지났을 무렵. / 제르소미이나는 잠이 잘 들은 모양이다. 그 곁에서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잠파노.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 허나 이윽고, 차에서 모포를 꺼내다가 제르소미이나의 몸에 덮어 주고 몇 장의 지폐를 그녀의 머리맡에 놓는다. 슬그머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니 무엇을 꿈꾸고 있는지 그녀는 포근한 웃음을 띤 낯으로 잠자고 있다. / 잠파노는 그녀에게 떨어져 오토바이를 타려고 하다가 언뜻 그녀가 언제나 불고 있던 나팔에 생각이 미치자 그것을 그녀의 베개 밑에 놓아 준다. 차를 밀고 그 자리를 멀리 떠나서 운전대에 탄 잠파노는 그냥 제르소미이나를 남겨 놓고 달려가 사라져 버린다[제르소미이나는 ∼ 사라져 버린다. : 인생 자체가 고독하고 독립적이며 외롭다는 주제 의식을 대사 없이 행동으로 보여 주고 있다. 모포를 덮어 주는 행위, 나팔을 챙겨 주는 행위에서 잠파노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 떠나는 잠파노
(줄거리 : 잠파노는 같은 떠돌이인 마또를 죽인다. 제르소미이나는 이를 몹시 슬퍼하고 울기만 한다. 그녀가 잠든 사이에 잠파노는 지폐 몇 장을 놓고 도망치듯 떠나간다.)
핵심 내용 : 제르소미이나의 슬퍼함과 잠파노의 떠남 구성 : 절정에 해당
(전체 줄거리 : 제르소미이나는 가난한 해변 마을에 사는 소녀이다. 거의 백치와 같이 순진하고 여린 그녀를 어머니는 유랑하는 차력사 잠파노에게 만 리라를 받고 보낸다. 두 사람은 판이한 성격 차이로 유랑 중에 숱하게 갈등하지만 제르소미이나의 끝없이 무구한 심성에 난폭한 잠파노도 서서히 달라진다. 그러던 중 실수로, 다른 유랑자 마또를 죽인 잠파노는 결국 제르소미이나의 곁을 떠난다. 몇 년 후, 잠파노는 우연히 제르소미이나가 자신을 기다리다 죽었다는사실을 알고, 해변에서 절규한다.)
이해와 감상
이 지문은 이 작품의 끝부분이다. 제르소미이나와 헤어진 몇 년 후 우연히 그녀의 죽음을 알 게 된 잠파노는 인간으로서의 고독을 뼈저리게 느낀다. 제르소미이나에게 아무 관심도 없는 듯 보였던 잠파노는 어쩌면 그녀의 죽음은 잠파노에게는 드물게 정들었던 사람을 다시 볼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강철 같은 사나이', 세파에 시달려 삶에의 애착만을 간직하고 있는 메마른 잠파노에게도 감정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이다. 물론 잠파노는 '언제나처럼……'이라는 지시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제르소미이나의 죽음을 듣고도 자신의 생업인 쇼를 계속한다. 그러나 술을 마시고 해변가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잠파노는 생활인 잠파노가 아닌 인간 잠파노인 것이다. 제르소미이나는 죽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던 순수한 마음은 그녀가 자주 나팔로 부르던 곡조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해졌다. 제르소미이나가 즐겨 불던 나팔은 그녀가 유일하게 세계와 소통하던 도구였고, 그 곡조는 이제 순수함, 고독 등을 함축적으로 담아 관객에게 전달하는 기능을 한다. 그것은 잠파노가 엎드려 우는 해변가 마지막 장면의 배경 음악으로 이 곡조가 깔리면서 가능한 일인데, 이 때 관객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기는 이 곡조를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해와 감상1
'길'은 볼품 없는 쇼를 하면서 도시에서 도시로 떠도는 남녀의 이야기로 여주인공의 순수함과 슬픈 운명이 특히 기억되는 작품이다.
작자가 '길'을 통해 그려 내고 있는 인간의 세계는 광대의 밑바닥 생활과 그 배후에 흐르는 구제의 이미지인 인간 본래의 고독, 방황, 개인주의 등의 분위기이다.
물질적인 성향이 강했던 리얼리즘 시대의 흐름을 박차고 펠리니가 표현 한 것은 바로 인간의 순수성에 대한 고찰이었다. 따라서, 시대적 성향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은 절제되어 있다. 대신에 떠돌이의 삶을 그대로 표현하여 펠리니 자신의 뇌리 속에 담겨 있는 신에 대한 구원의 갈망과 당대 사회의 변혁을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작품은 밑바닥 인생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는 경향에서 일단 벗어나서, 인간이면 으레 가지기 마련인 삶의 본질적인 고독, 연민 등을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다.
심화 자료
페데리코 펠리니(Federico Fellini)
1920. 1. 20 이탈리아 리미니~1993. 10. 31 로마.
신사실주의 물결을 일으키는 데 참여했지만, 나중에는 회화적 형상과 환상에 관심을 쏟았다. 특히 〈길 La strada〉(1954) 〈카비리아의 밤 Le nottidi Cabiria〉(1956)·〈달콤한 인생 La dolce vita〉(1960)·〈8½ Otto e mezzo〉(1963)·〈나는 기억한다 Amarcord〉(1974)로 잘 알려져 있다.
가족과 어린시절의 영향
펠리니는 아드리아 해 연안의 피서지에서 태어났다. 이곳에서 보낸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을 연상시키는 인물과 장면 및 사건들이 그의 영화 곳곳에 암시되어 있다. 그의 아버지는 중산층의 순박한 식료품 판매상이었는데, 1956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영화 〈달콤한 인생〉과 〈8½〉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나타나 있다.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 아주머니들도 〈나는 기억한다〉를 비롯해 몇몇 작품에 재현되어 있는 그의 어린시절의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파노에서 가톨릭 기숙학교에 다닌 경험이 〈8½〉에서 그의 풍부한 상상력을 통해 아이들끼리의 심술궂은 행동과 예배의식의 겉치레를 결합한 모습으로 재현되어 있다. 그밖에도 그는 어린시절에 영화와 특히 서커스에서 두드러진 영향을 받았다. 서커스에 대한 현란한 기억은 그가 1970년에 제작한 텔레비전용 영화 〈어릿광대들 I clowns〉에서 엿볼 수 있다. 펠리니는 청소년시절에 급우들을 이끌고 철없는 장난을 자주 했는데, 이 시절은 〈작은 악당들 I vitelloni〉(1953)이라는 영화에 재현되어 있다.
그림에 소질이 있었던 펠리니는 뚜렷한 목적이 없는 리미니에서의 생활에 싫증을 느껴 1938년 피렌체로 갔다. 여기서 그는 풍자주간지와 공상과학 연재소설에 삽화를 그렸다. 1939년에 그는 언론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고 로마로 가서,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며 풍자만화를 팔았다. 이무렵에 알도 파브리치라는 배우를 만났는데, 펠리니는 나중에 이 삼류 희극배우의 고된 생활체험을 몇몇 작품에 담아냈다. 1940년 펠리니는 인기 있는 풍자주간지 〈마르크 아우렐리오 Marc'Aurelio〉의 편집자가 되었다. 1943년 그는 여배우 줄리에타 마시나가 출연하는 라디오 연속극을 썼는데, 줄리에타 마시나는 그해에 펠리니의 아내가 되었다. 1944년 연합군이 로마를 점령하자 풍자만화를 그려주는 가게를 내고 지나가는 군인들의 얼굴을 풍자적으로 그리거나 목소리를 녹음해주었다.
로셀리니 및 라투아다와 제휴
펠리니는 로베르토 로셀리니 감독의 친구이며 조감독이 되어, 당시 로셀리니가 만들고 있던 〈무방비 도시 Roma citta aperta〉(1945)를 제작하는 데 협력했다. 파브리치가 주연한 이 영화는 이탈리아 신사실주의의 이정표가 된 작품이다. 펠리니는 로셀리니의 다음 영화 〈파이사 Paisa〉(1946)에서는 훨씬 더 큰 몫을 했다. 이무렵에 이미 영화를 깊이 사랑하게 되어 〈기적 Il miracolo〉(1948)을 비롯해 몇몇 신사실주의 영화 작품들의 대본을 썼다. 〈기적〉은 로셀리니가 감독한 〈사랑 L'Amore〉의 제2부로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미국 대법원은 그뒤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이 영화의 상영을 금지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펠리니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계기를 이루었던 해는 1950년이었다. 이해에 그가 시나리오 작가로서 함께 일한 적이 있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영화 감독 알베르토 라투아다와 함께 〈다양한 빛 Luci del varieta〉을 감독·제작했다. 그의 아내는 이 영화뿐만 아니라 남편이 독자적으로 감독한 영화 〈하얀 미남자 Lo sceicco bianco〉(1952)에서도 단역을 맡았다. 〈하얀 미남자〉는 신혼여행을 떠난 신부가 매우 사실적인 연재만화 주인공에게 반해버린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가 만든 영화는 모두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듬해에도 그는 시골에서 어머니의 치마폭에 싸여 자란 게으른 사내아이들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꾸짖은 〈작은 악당들〉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일부 비평가들은 아직도 이 영화를 펠리니의 대표작으로 꼽고 있다.
원숙기
1954년에 펠리니는 예전에 기획했던 〈길〉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줄리에타 마시나와 앤서니 퀸이 주연한 이 영화는 남루한 모습으로 방랑하는 남녀 야바위꾼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는 비테르보와 아브루초 사이에 있는 황량한 시골에서 야외촬영으로 제작되었는데, 이곳에는 두 주인공 사이의 비정한 관계를 반영하는 빈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탈리아의 좌익 언론은 이 영화를 비난했지만,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고 미국의 영화예술과학 아카데미가 주는 오스카상(아카데미상)을 받았으며, 1956년에는 최우수 외국영화로 뉴욕 영화비평가상을 받았다.
펠리니의 다음 작품인 〈속임수 Il bidone〉(1955)는 사기꾼들을 다룬 영화였다. 〈카비리아의 밤〉(1956)은 더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줄리에타 마시나는 이 영화에서 미래에 대한 신념을 끝내 잃지 않는 순박한 로마 창녀로 출연했다. 이 영화는 펠리니에게 또다시 아카데미상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그는 다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할 때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내용이 혼란스럽고 당시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배우(마르첼로 마스트로이안니)를 주연으로 기용했다는 이유로 제작자들이 참여를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이해한 출판업자 안젤로 리촐리가 마침내 제작을 맡아주었다. 펠리니는 그뒤 7년 동안 리촐리와 함께 일했다. 〈달콤한 인생〉을 만들 때는 로마의 중심가 중 하나인 베네토 거리를 세트로 새로 지었다. 완성된 영화는 시대의 파노라마, 즉 냉혹한 언론인들, 유명인사들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텔레비전 사진기자들, 영화배우에 미친 사람들, 퇴폐적인 지식인과 귀족들에 대한 주목할 만한 고발장이었다. 이 영화는 개봉되자마자 그때까지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 가장 중요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고, 칸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달콤한 인생〉과 마찬가지로 펠리니의 다음 작품도 결론이 없는 영화이지만, 종래의 틀에 박힌 제약에서 벗어난 이야기이다. 펠리니가 그때까지 만든 작품 수를 따서 〈8½〉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 영화는 창작력이 마비 상태에 빠져 단 한 편의 영화도 만들지 못하는 한 유명한 영화감독의 곤경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는 상징주의와 사실주의가 완벽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 영화는 논쟁과 찬탄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는 역시 줄리에타 마시나가 주연을 맡은 〈정령들의 줄리에타 Giulietta degli spiriti〉(1965)에서도 환상의 세계를 탐구했다. 그가 처음으로 만든 천연색 장편영화인 이 작품은 흥행에 실패했다. 몇 가지 오해가 잇따라 제작자 리촐리는 결국 펠리니와 결별했다. 펠리니는 그뒤 몇 년 동안을 새로운 착상과 새로운 재정 후원자를 찾았다. 그가 다음에 착수한 영화는 〈펠리니 사티리콘 Fellini Satyricon〉(1969)이었다. 이 작품은 주로 고대 로마의 작가 페트로니우스에게 영감을 얻었지만, 아풀레이우스를 비롯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에도 의존하고 있다. 이 영화는 고대를 무대로 목적이 없는 젊은이들의 방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펠리니는 역사적 정확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그리스도교 신앙과 원죄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전의 인간 조건을 탐구하려고 애썼다. 〈펠리니 사티리콘〉의 화려하고 다채로운 영상은 매혹적이지만, 내용 자체는 기괴한 경우가 많다. 아마 그 반작용이겠지만, 이탈리아·프랑스·독일 텔레비전이 후원한 텔레비전용 영화인 다음 작품 〈어릿광대들〉에서 그는 다시 자서전으로 돌아갔다. 서커스 세계에 바치는 감동적 찬사인 이 영화는 그 단순함과 응집성 때문에 〈길〉의 시적인 매력을 생각나게 한다. 〈로마〉(1972)는 영원한 도시 로마를 인상주의적으로 묘사한 영화로서 1930년대말에 펠리니가 로마를 처음 보았을 때의 자화상이 옛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영화 곳곳에 뒤섞여 있다. 구경거리와 환상이 점점 고조되는 이 영화는 성직자들의 패션 쇼와 텅 빈 밤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모터사이클들의 무시무시한 발레에서 절정에 이른다. 펠리니는 1930년대초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면서 풍부한 회화적 영상으로 가득 차 있는 시골 생활의 화려한 행렬 〈나는 기억한다〉를 만들어 3번째로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후기 영화는 많은 비평가들을 실망시켰다. 〈카사노바 Casanova〉(1976)는 몇 개의 눈부신 세트가 있을 뿐 분명한 형태가 없는 단순한 이야기로, 여자를 기계적으로 정복하는 불한당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 주인공의 여자에 대한 자랑스러운 정복은 너무 기계적이어서 그는 언젠가 베네치아에서 만난 적이 있는 로봇을 가장 완벽한 짝으로 기억하고 있다. 〈오케스트라의 예행연습 Prova d'orchestra〉(1979)은 관객을 속이는 단순함 뒤에 짓궂은 애매모호함을 숨겨놓은 은유적 영화로서, 일부 관객을 분노케 했다. 이 영화에서 오케스트라의 예행연습은 외부의 위협을 받아 해체되어 가부장제와 독재로 후퇴하는 사회 조직을 상징한다. 남성과 여성의 전쟁을 다룬 성적 환상이 가득한 장편영화 〈여자들의 도시 La citta delle donne〉(1980)를 발표한 뒤 펠리니는 몇몇 남녀 비평가들로부터 지루하고 방종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리고 배는 계속 항해한다 E la nave va〉(1983)는 1914년에 아드리아 해를 순항하는 호화 정기여객선을 무대로 하고 있다. 오페라 배우들과 그들의 부유한 친구들은, 죽으면서 자기 시신을 화장하여 그 재를 아드리아 해에 뿌려달라고 부탁한 유명한 오페라 프리마돈나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영화에는 무대 예술가들의 잘난 체하는 몸짓과 다가오는 세계대전의 공포가 대조를 이루고 있다.
평가
펠리니는 30년에 걸쳐 만든 일련의 중요한 영화를 통하여 영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지위를 확보했다. 그는 자신이 감독한 모든 영화 대본의 일부를 직접 썼는데, 가장 훌륭한 작품들은 꿈과 현실, 자서전과 환상이 상징의 세계 속에서 뒤섞이는 자유로운 구성을 보여준다. 그는 전통적인 영화 제작 기법을 버리고 영화를 지극히 개인적인 표현수단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기 때문에, 그의 특유한 창조력과 개인적 문제는 하나의 전설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현대 세계에서 인간이 느끼는 극적인 고독을 강조함으로써 영화라는 표현 수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A.Solmi 글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시나리오의 특성
1. 화면에 의하여 다시 표현되므로 촬영을 고려해야 하고, 전문적인 시나리오 용어가 사용된다.
2. 시간적·공간적 배경, 등장 인물 수의 제한 등을 희곡보다 적게 받는다. 장면(scene)을 단위로 한다.
3. 장면과 대사에 의하여 간접적으로 묘사된다.
시나리오의 종류
·오리지날 시나리오 : 처음부터 영화 제작을 위해 창작한 시나리오
·각색 시나리오 : 소설, 희곡, 수기 등을 원작으로 하여 영화의 특수성에 맞게 변형시킨 시나리오
·레제 시나리오 : 영화 제작이 목적이 아닌 문학 작품으로서의 시나리오.
희곡과 시나리오의 차이점
구 분 |
희 곡 |
시나리오 |
목 적 |
연 극 상 연 |
영 화 상 영 |
내용 단위 |
막(幕)과 장(場) |
시퀀스와 신(scene) |
시간·공간·인물의 표현 |
제약이 많음. |
자유로움. |
영화의 구성 단위
시나리오(scenario)는 시퀀스(sequence)의 배열로 구성된다. 시퀀스는 용명(溶明, Fade In)과 용암(溶暗, Fade Out)에 의해 묶여진 단위로, 작은 에피소드를 구성한다. 이 시퀀스는 여러 개의 장면(scene)으로 나누어지며, 장면은 몇 개의 컷(cut)으로 이루어진다. 카메라의 연속적인 움직임을 한 단위로 삼은 것이 컷이며, 몇 개의 컷이 모여 동일한 인물과 배경 내에서 이루어지는 작은 에피소드를 만드는 것이다.
'길'의 구조와 상징성
'길'이 작품의 플롯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호머의 '오딧세이'는 집을 떠나 전장터에 나갔던 오딧세이가 집으로 귀환하기까지의 여로를 다룬다. 또, 고전 소설 '춘향전'도 이 도령이 한양에 올라갔다가 다시 춘향이 있는 공간으로 돌아올 때까지의 여로를 소설의 구조로 차용하고 있다. 염상섭의 '만세전'은 동경에 있는 유학생이 아내의 위독 소식을 접하고 경성으로 왔다가 다시 동경으로 돌아가는 내용을 취한다. 우리 문학에서 '길'은 '가시리'와 '정읍사'처럼 이별의 슬픔을 보여 주며, 이러한 유랑민의 슬픔은 이 작품에서도 잔잔히 묘사되고 있다.
'길'의 영화화
원작자인 펠리니가 직접 메가폰을 잡고, 그의 아내 줄리에타 마시니와 세계적 명배우 앤소니 퀸이 각각 주연을 맡아, 1954년 이탈리아 필름사에서 영화로 제작하였다.
이 영화는 주로 야외 촬영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곳에는 두 주인공 사이의 비정한 관계를 반영하는 빈 공간이 넓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빈 공간은 이 작품에 시적인 서정성과 사색적인 관조를 가능하게 하는 공간이다. 이 작품은 당시 소외계층의 빈곤과 절망만을그린 게 아니라, 이러한 시대적 고민을 인간의 근원적인 본질에 대한 문제로 바꾼 셈이다. 이탈리아 좌익 언론은 리얼리즘 시각에서 이 영화를 비난했지만, 해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54년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과 미국의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가 주는 오스카상(아카데미상)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받았다. 원제는 '라스트라다(La Strada)'이고, 로드 무비(road movie)의 명작으로 평가받는다.
길의 의미
세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떻게 이야기 소재의 핵심과 감독의 예술적 통찰력을 구체화하는가의 문제다. 영국의 다자이너인 로버트 말렛 스티븐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영화의 세트가 좋은 것이 되려면 세트 역시 일종의 연기를 해야 한다. 사실적이든 표현적이든, 현대적이든 고전적이든, 세트는 그 역할을 다해야만 하는 것이다. 세트는 한 인물이 등장하기 전에 그 인물을 이미 묘사하는 것처럼 보여야만 한다. 세트는 인물의 사회적 지위, 취향, 습관, 생활 양식, 개성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야 한다." 가령, '길'에서 첫 장면의 세팅은 거칠고 쓸쓸한 바닷가 갈대밭에서 제르소미이나가 너절한 옷차림으로 갈대를 뽑고 있는 것인데, 그 세팅은 제르소미이나가 집안이 가난하여 빈약한 유랑 극단에 팔려 가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또 외롭고 불행했던 그녀의 생애를 암시하고 있다. <L. 쟈네티 저, 김진해 옮김 '영화의 이해'>
신사실주의(新寫實主義/ Neorealismo)(영)Neorealism.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에서 꽃핀 문학·영화 운동으로 전쟁의 원인이 된 사건과 전쟁 전후에 생겨난 사회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루고자 했다.
문학
1920년대에 뿌리를 둔 신사실주의 문학운동은 20년 가까이 파시스트 지배로 억압당하다가, 제2차 세계대전말 파시스트 정권이 몰락하자 다시 힘차게 등장했다. 신사실주의는 그 바탕이 된 이탈리아 초기 사실주의 운동과 전체적인 목표는 비슷하지만, 파시스트 정권의 탄압·저항·전쟁 등이 재능 있는 작가들에게 심어준 격렬한 감정·경험·확신을 원동력으로 삼아 힘차게 솟구쳐올랐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1930, 1940년대에 날카로운 사회의식을 가진 미국과 영국의 작가들이 이탈리아 문학작품을 번역한 것도 이 운동을 더욱 촉진하는 추진력이 되었다. 신사실주의의 뛰어난 작가들로는 노벨상 수상자인 시인 살바토레 콰시모도와 소설가인 알베르토 모라비아, 이그나치오 실로네, 카를로 레비, 바스코 프라톨리니, 카를로 베르나리, 체사레 파베세, 엘리오 비토리니, 카를로 카솔라, 이탈로 칼비노, 쿠르치오 말라파르테(전쟁 이후의 작품), 카를로 에밀리오 가다 등이 있다.
파시스트 시절에도 신사실주의 작품이 이따금 있었으며, 그러한 경향을 대변하는 최초의 작품은 아마도 모라비아의 〈무관심한 사람들 Gli indifferenti〉(1929)일 것이다. 이그나치오 실로네는 〈폰타마라 Fontamara〉(1930)를 위시하여 스위스 망명 때 쓴 반(反)파시스트 작품들로 구체적인 명성을 얻었다. 엘리오 비토리니는 헤밍웨이풍의 훌륭한 작품 〈시칠리아에서 나눈 대화 Conversazione in Sicilia〉(1941)에서 파시스트 정권에 대해 간접적으로 비판을 가하고 있다. 많은 신사실주의 작가들은 숨거나(모라비아), 감옥에 갇히거나(파베세·비토리니), 추방당하는(실로네·레비)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들(비토리니·칼비노·카솔라)이 저항운동에 가담했으며, 일부는 헤르메티시즘(콰시모도) 같은 내성적(內省的) 운동이나 다른 사람들(파베세·비토리니)의 작품을 번역하는 데서 피난처를 찾았다.
전쟁이 끝나자 신사실주의 운동은 힘차게 일어났다. 바스코 프라톨리니는 자전적인 작품을 뒤로 하고 피렌체 빈민들의 삶을 감동적으로 생생히 묘사한 〈거리 Il quartiere〉(1944)와 신사실주의 작품의 정수로 손꼽히는 〈가난한 연인들의 이야기 Cronache di poveri amanti〉(1947)를 발표했다. 쿠르치오 말라파르테는 초기에는 파시스트당에 충성을 바쳤지만, 얼마 후 그들과 관계를 끊고 전쟁에 대한 2편의 힘찬 소설 〈카푸트 Kaputt〉(1944)와 〈피부 La pelle〉(1949)를 썼다. 엘리오 비토리니는 자신의 저항운동 경험을 〈인간과 비인간 Uomini e no〉(1945)에서 솔직히 적고 있다. 카를로 레비는 〈에볼리에서 멈추신 그리스도 Cristo si e fermato a Eboli〉(1945)에서 이탈리아 남부(그가 추방당한 곳) 농민들의 참상을 따뜻한 마음으로 묘사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다른 작가들도 그당시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또는 있던 그대로 전달해야 한다는 충동을 느꼈다. 살바토레 콰시모도는 헤르메티시즘에서 빠져나와, 〈하루 또 하루 Giorno dopo giorno〉(1947)를 시작으로 전쟁과 사회 문제에 대한 시집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모라비아도 다시 글을 쓰기 시작하여 뛰어난 신사실주의 소설을 많이 발표했다. 체사레 파베세는 파시스트 감옥에서 겪었던 생활을 2권의 소설로 묶었고, 현대의 절망을 다룬 내향적인 소설을 많이 썼다. 이탈로 칼비노는 〈거미집속의 오솔길 Il sentiero dei nidi di ragno〉(1947)에서, 카를로 카솔라는 〈목재 자르기 Il taglio del bosco〉(1959)·〈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1960)에서 자신들의 저항운동 경험을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영화
영화에서의 신사실주의 운동은 이탈리아 문학운동과 병행하여 일어났다. 신사실주의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객관적인 표현 양식을 갖고 있었다. 배우들은 평범한 상황에 처한 보통 사람이거나 또는 그렇게 보였다. 신사실주의 영화는 서둘러서 조잡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전통적인 영화제작이 갖고 있던 현실도피적인 이상주의에서 과감히 벗어나 현실의 주제를 대담하게 다룸으로써 전세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이런 류의 영화로 처음 나온 것은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 Open City〉(1945)로, 나치 점령시 이탈리아인들에게 강요된 난폭한 행위를 보여주는 반파시스트 작품이다. 로셀리니의 〈전화(戰禍)의 저편 Paisan〉(1946)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을 6개의 짧은 사건으로 구성한 영화로, 〈무방비 도시〉와 비슷한 종류의 비참한 내용이다. 다른 중요 작품으로는 이탈리아 노동자계급의 일상 생활을 다룬 비토리오 데 시카의 〈구두닦이 Shoeshine〉(1946)·〈자전거도둑 The Bicycle Thief〉(1948)과 시칠리아의 가난한 어부 이야기를 다룬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 La terra trema〉(1948)가 있는데, 이 작품에는 직업배우가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1950년 이후 이탈리아 영화는 사실주의에서 환상적이고 상징주의적이며 문학적 주제를 다루는 경향으로 넘어갔다.(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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