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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태양 마차 / 오비디우스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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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태양 마차 / 오비디우스 지음, 이윤기(李潤基) 옮김

 

오늘날의 이집트를 신화 시대에는 󰡐아이귑토스󰡑라고 불렀다. 이 아이귑토스에 헬리오폴리스라는 도시가 있었는데, 󰡐헬리오스의 도시󰡑 또는 󰡐태양의 도시󰡑라는 뜻이다. 예수 그리스도도 어린 시절에 이 도시에 잠깐 머물러 산 적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도시가 이런 이름을 얻은 것은 태양신 헬리오스가 잠시 이 도시에 들러 클뤼메네라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태양신 헬리오스가 다녀간 뒤에 클뤼메네는 메로프스라는 사람과 혼인했다. 그리고 혼인한 지 10개월이 되지 않았는데도 클뤼메네는 아들을 낳았다. 메로프스는 손가락을 꼽아 보고 나서 자기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메로프스는 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는 클뤼메네에게서 태양신 헬리오스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다는 고백을 듣고는 아들의 이름을 파에톤이라고 지었다. 파에톤은 󰡐빛나는 자󰡑라는 뜻이다.

 

파에톤은 신화의 주인공들이 다 그렇듯이 무럭무럭 자랐다. 그런데 파에톤이 자라 열여섯 살이 되고부터 친구들이 파에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시비하는 일이 잦아졌다.

파에톤이라고? 빛나는 자라고? 네가 태양신의 아들이라도 된다는 것이냐?󰡓

파에톤은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 클뤼메네에게 어째서 이름을 그렇게 어마어마하게 지어 놓았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진상을 밝혀 주었다.

󰡒네 옆에 계시는 네 아버지 메로프스는 실은 너의 양아버지이시다. 너의 친아버지는 태양 마차를 모는 헬리오스신이시다. 태양신의 아들답게 처신하도록 해라.󰡓

파에톤은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말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다른 것으로 또 시비를 걸었다.

󰡒그 말을 믿어? 네가 태양신의 아들이라면, 나는 오시리스신의 아들이다.󰡓

오시리스는 아이귑토스의 신이다. 그것도 그리스의 제우스처럼 신들 중에서 으뜸 가는 신이다.

파에톤은 얼굴을 붉혔다. 너무 부끄러워 차마 화조차 내지 못하고 집에 돌아온 파에톤은 어머니 클뤼메네에게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 정말 견딜 수 없습니다. 저는 태양신의 아들이라고 큰소리를 쳐 놓고도 설명을 해 주지 못하고 왔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모욕을 당했다는 게 부끄럽고, 설명을 해 줄 수 없었다는 게 창피합니다. 어머니, 제가 만일 태양신의 아들이라면, 태양신의 아들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십시오. 그래야 태양신의 아들로서, 땅에서는 물론이고 하늘에서도 제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말한 파에톤은 어머니의 목을 끌어안으면서 자신의 머리와 양아버지 메로프스의 머리를 걸고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혀 줄 것을 요구했다. 그리스 사람들은 무엇을 맹세할 때, 저승 앞을 흐르는 스튁스 강에다 걸고 맹세한다. 스튁스 강을 걸고 한 맹세는 신들도 거두어들이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귑토스에는 자신의 머리와 부모의 머리를 걸고 맹세하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들 파에톤의 말에 마음이 움직였는지, 아니면 아들에 대한 모욕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여겨 화가 나서 그랬는지, 어쨌든 클뤼메네는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작열하는 태양을 우러러보며 이렇게 외쳤다.

󰡒네 머리와 네 양아버지의 머리를 걸고 맹세할 것 없다. 나는 저 찬연히 빛나는 태양을 걸고 맹세하겠다. 나를 내려다보고 계시고 내 말을 듣고 계신 저 태양을 걸고 맹세하겠다. 그렇다. 너는 네가 우러러보고 있는 저 태양, 온 세상을 밝히는 태양의 아들이다. 만일에 내 말이 거짓이면 그분이 내 눈을 앗아가실 것인즉, 내가 세상을 보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네 아버지를 찾아가거라. 네가 네 아버지 처소로 가는 일은 어렵지도 않고, 그리 먼 곳도 아니다. 그분이 솟아오르는 곳, 그 곳이 네 아버지이신 그분이 계시는 곳이다.󰡓

 

어머니의 말을 들은 파에톤은 태양이 솟아오르는 곳을 향하여 곧 길을 떠났다. 파에톤의 가슴은 태양신을 만나게 된다는 희망으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파에톤은 아이티오페이아 땅을 지났다. 아이티오페이아는 오늘날 에티오피아이다. 아이티오프스, 즉 도덕(에토스) 높은 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이어서 그는 힌두스 땅도 지났다. 힌두스는 오늘날의 인도를 말한다. 파에톤은 오랜 세월에 걸친 방황과 좌절을 이겨 내고 태양신 헬리오스의 궁전에 당도했다.

, 태양신이 사는 곳은 어떻게 생긴 궁전일까? 태양신의 궁전은 거대한 원기둥 위에 지어져 있다. 따라서, 산보다 높이 우뚝 솟아 있다. 원기둥의 재료는 붉은 구리다. 그래서 원기둥은 어찌 보면 금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불꽃 같기도 하다. 지붕은 반짝거릴 때까지 오래오래 간 상아로 되어 있다. 궁전 정면에 있는, 은으로 만든 두 짝의 문은 태양신의 빛을 찬연하게 반사하도록 되어 있다. 재료도 좋거니와 그 만든 솜씨는 재료보다 윗길이다. 은으로 만들어진 이 문에는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가 정성스럽게 조각한 돋을새김이 있다. 어떤 것이 새겨져 있을까? 대지의 여신 가이아를 가슴 가득히 안은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 대지 그 자체, 대지 위의 하늘, 그리고 하늘의 신이 새겨져 있다. 바다에는 뿔고둥 나팔을 부는 트리톤, 마음만 먹으면 무엇으로든 몸을 바꿀 수 있어서 󰡐둔갑의 도사󰡑라고 불리는 프로테우스, 두 마리의 거대한 고래를 타고 그 등을 채찍으로 갈기는 에게 해의 신 아이가이온도 새겨져 있다. 바다에서 유유히 헤엄을 즐기고 있는 네레이데스도 새겨져 있다. 네레이데스는 바다의 신 네레우스의 딸들이다. 네레이데스 중에는 물고기의 등을 타고 노는 네레이데스도 있고, 바위에 앉아 파란 머리카락을 말리는 네레이데스도 있다. 무수한 네레이데스들의 얼굴이 똑같지는 않다. 그러나 자매들이 그렇듯이 이들은 서로 비슷비슷하다. 인간과, 인간이 사는 도시도 새겨져 있다. 숲과 짐승, 강과 들의 요정과 정령들도 보인다. 이들 위로는 빛나는 하늘이 펼쳐져 있다.

 

파에톤은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아버지의 궁전으로 들어갔다. 친구들이 그토록 의심해 마지않던 아버지의 궁전으로 파에톤은 당당하게 들어갔다. 파에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마자 조금 떨어진 곳에 우뚝 섰다. 아버지 태양신이 던지는 눈부신 빛줄기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태양신은 보라색 용포를 입고 빛나는 에메랄드 보좌에 앉아 있었다.

보좌의 좌우로는 ’, ‘’, ‘’, ‘세대’, 그리고 ()’를 상징하는 여신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계절의 여신들도 있었다. 머리에 화관을 쓰고 있는 여신은 봄의 여신, 가벼운 차림에 곡식 이삭으로 만든 관을 쓴 여신은 여름의 여신, 포도를 밟다가 나왔는지 발에 보라색 포도즙이 묻은 여신은 가을의 여신, 백발을 흩날리고 있는 여신은 겨울의 여신이었다.

 

파에톤은 이 기이한 광경에 기가 질려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태양신은 시종들에게 둘러싸인 채 만물을 꿰뚫어 보는 눈으로 아들을 보면서 말했다.

 

󰡒내 아들 파에톤아, 왜 여기에 왔느냐? 내 궁전에서 무엇을 얻기를 바라느냐? 내가 너를 내 아들이라고 부른다. 너는 내 아들이다. 아비가 자식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있겠느 냐?󰡓

파에톤이 대답했다.

 

󰡒태양신이시여, 이 넓은 우주에 고루 빛을 나누어 주시는 태양신이시여, 아버지이시여, 저에게 아버지라고 부를 권리를 허락하신다면, 제 어머니 클뤼메네가 허물을 숨기려고 저에게 꾸며서 이르신 것이 아니라면, 징표를 보여 주십시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분명하다는 증거를 보이시어 제 마음에서 의심의 안개를 걷어 주십시오.󰡓

파에톤이 이렇게 말하자, 태양신은 사방팔방으로 쏘던 빛을 잠시 거두고 가까이 다가오라고 말했다. 파에톤이 다가가자, 태양신은 아들을 끌어안고 말했다.

 

󰡒너에게는 그럴 권리가 있다. 네가 내 아들이 아닐 리가 있겠느냐? 네 어머니 클뤼메네가 네 출생의 비밀을 제대로 일러 주었다. 의심의 안개를 걷고 싶거든 내게 네 소원을 하나 말해라. 내가 이루어지게 하겠다. 신들이 기대어 맹세하는 강, 아직 내 눈으로는 보지 못한 강, 저승을 돌며 흐르는 스튁스 강에 맹세코 네 소원이 이루어지게 하겠다. 그러니 두렵게 여기지 말고 말해 보아라.󰡓

󰡒정말 소원이 이루어지게 해 주시겠습니까?󰡓

󰡒그렇다. 네가 내 아들임을 보증하겠다는 약속이다. 스튁스 강에 걸고 한 맹세는 제우스신도 거둘 수 없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단 하루만 빌려 주십시오. 날개 달린 말 네 마리가 끈다는 태양 마차를 하루만 몰아 보고 싶습니다.󰡓

󰡒뭐라고? 네가 지금 뭐라고 했느냐?󰡓

󰡒태양 마차를 하루만 몰아 보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뿔싸…….󰡓

그제야 아버지 태양신은 스튁스 강에 맹세한 것을 후회했다. 그는 세 번이나 그 빛나는 머리를 가로젓고는 아들을 타일렀다.

 

󰡒네 말을 듣고 보니 내가 경솔하게 말했다는 것을 알겠다. 내가 어쩌다 이런 약속을 했을꼬? 무슨 까닭인지 잘 들어라. 이것만은 내가 이루어 줄 수 없는 소원이구나. 바라노니, 네가 취소하여라. 네가 말하는 소원은 더할 나위 없이 위험하다. 네가 소원하는 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권리다. 태양 마차는 나 아니면 아무도 몰 수 없다. 네 힘, 네 나이로는 되는 것이 아니다. 너는 때가 되면 죽어야 할 운명을 가진 인간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은 인간에게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네 소원은 다른 신들에게도 이루어질 수가 없다. 신들이 각기 저희 권능을 뽐내지만, 이 마차를 몰 수 있는 신은 오직 나뿐이다. 저 무서운 벼락을 던지시는 올림포스의 지배자, 전능하신 제우스신도 이 마차만은 몰지 못한다. 너도 알다시피 제우스신보다 더 위대한 신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그런 제우스신도 이 태양 마차만은 어림도 없다.

 

태양 마차가 달릴 길목은 가파르기가 한이 없다. 그래서 아침에는 원기가 하늘을 찌를 듯한, 날개 달린 나의 천마들도 오르는 데 애를 먹는다. 길은 여기에서 하늘로 아득히 솟는다. 거기에서 대지를 내려다보면 늘 지나다니는 나도 겁을 먹는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공포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다. 막판에 이르면 길이 아래로 급경사를 이루는데, 여기에서는 있는 힘을 다해 고삐를 잡아야 한다. 물 속으로 나를 받아 주시는 저 바다의 지배자 테튀스 여신께서도 혹 내가 거꾸로 떨어질까 봐 가슴을 졸이신다더라. 어디 그뿐이냐? 별 박힌 하늘은 엄청난 속도로 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돈다. 그냥 도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박힌 별을 싸잡아 안고 도는 것이다. 여기에서, 궤도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으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돌고 도는 하늘 저 쪽으로 마차를 몰고 나갈 수 있는 자는 오직 나뿐이다.

 

내가 너에게 태양 마차를 빌려 주었다고 치자. 네가 장차 어쩌려느냐? 돌고 도는 하늘축에 휘말리는 걸 피할 수 있을 성싶으냐? 빙글빙글 도는 하늘에 휩쓸리지 않고 무사히 빠져 나올 성싶으냐? 너는 하늘에도 신들의 숲, 신들의 도시, 신들의 신전이 있으리라고 생각할게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짐승과 무서운 괴수들 사이로 길을 찾아 빠져 나가야 한다. 요행히 궤도를 제대로 잡아 여기에서 이탈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하늘의 별자리에는 황소자리가 있다. 그 황소를 네가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윗도리는 사람, 아랫도리는 말인 저 켄타우로스의 발길질을 네가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하늘에는 황소자리와 켄타우로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자자리도 있고 전갈자리도 있다. 네가 사자의 이빨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으냐? 전갈의 무시무시한 집게발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하늘에는 전갈자리뿐만 아니라 게자리도 있다. 한쪽에서 전갈이 집게발을 휘두르며 너를 위협할 게고, 다른 한쪽에서는 게가 집게발을 휘두르며 너를 공격할 게다. 네가 이것을 견딜 수 있을 성싶으냐?

 

그뿐만이 아니다. 날개 달린 천마를 다루는 것도 너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천마는 자기들 가슴에 불길을 간직하고 있다가 코로 내뿜고 입으로 내뿜는다. 천마가 이 불길에 스스로 흥분하면 다루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꾀가 나면 내가 고삐를 채는데도 이를 모르는 체하고 애를 먹이는 게 바로 이 천마들이다. 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냐? 이 아비가 어떻게 자식의 소원을 들어 준답시고 자식 죽일 일을 시킬 수 있겠느냐? 그러니 지금, 그래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다른 소원, 이보다 나은 소원을 말해 보아라. 너를 내 아들로 인정하는 징표를 보이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보여 주마. 보아라, 자식이 위태로운 지경에 이를까 봐 이렇듯이 속을 태우는 이 아비를 보아라. 이 아비의 마음, 이것이 너를 아들로 인정하는 확실한 징표가 아니겠느냐? , 이리 와서 아비의 얼굴을 보아라. 네 눈으로 내 속을 들여다보고, 아비의 마음이 근심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아 주려무나. , 그러면 좀 좋으랴!

 

살펴보아라. 이 세상에는 이보다 귀한 것이 얼마든지 있다. 하늘, 바다, 어디에 있어도 좋다. 네가 바라는 것이면 무엇이든 너에게 주겠다. 그러나 이것만은 어쩔 수가 없구나. 너는 태양 마차 몰아 보는 것을 명예롭게 여길 것이다만, 이것은 명예가 아니고 파멸의 씨앗이다. 네가 소원하는 것이 은혜가 아니고 파멸이라는 것을 왜 모르느냐? , 거두어 주겠느냐? 소원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 주겠느냐?󰡓

 

󰡒그럴 수 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아버지의 태양 마차를 몰아 보는 것입니다.󰡓

󰡒네가 바라는 것이 정말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아직도 이렇게 조르고 있는 것이냐?󰡓

󰡒조르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것 하나밖에는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구나. 네 소원대로 해 보려무나. 내 이미 스튁스 강에 맹세했으니, 내가 무슨 수로 이 약속을 번복하겠느냐? 네가 이보다 조금만 더 지혜로웠으면 얼마나 좋겠느냐?󰡓

 

태양신의 경고도 이것으로 끝이었다. 아버지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들은 끝내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파에톤은 기어이 태양 마차를 몰아 보겠다는 것이었다. 힘닿는 데까지 아들을 타이르다 지친 아버지는 태양 마차가 있는 곳으로 아들을 데려갔다. 올림포스의 재간꾼 헤파이스토스가 온갖 재주를 다 부려서 만든 마차였다. 이 태양 마차는 굴대도 황금, 뼈대도 황금, 바퀴도 황금이었다. 바퀴살만 은이었다. 마부석에는 󰡐포이보스 헬리오스(빛나는 태양신)󰡑가 쏘는 빛을 반사할 감람석과 보석이 나란히, 그리고 촘촘히 박혀 있었다.

 

파에톤이 벅찬 가슴을 안고 태양 마차를 만져 보며 찬탄하고 있을 즈음, 새벽잠에서 깬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장미꽃 가득 핀 방의 눈부시게 빛나는 방문을 활짝 열었다. 별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금성을 당시에는 루키페로스라고 불렀다. 󰡐빛나는 별󰡑이라는 뜻이다. 그 루키페로스가 기나긴 별의 대열을 거느리고 하늘의 제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태양신은 이 루키페로스가 떠나는 것과 하늘이 붉어지면서 이지러진 달빛이 여명에 무색해지는 것을 보고는 󰡐󰡑의 여신 호라이 자매에게 명령했다.

 

󰡒이제 마구간으로 가서 천마를 몰고 나오너라. 때가 된 것 같구나.󰡓

호라이 세 자매는 천장이 높은 마구간에서 암브로시아(불로초)를 배불리 먹은 천마를 끌어 내어 마구를 채웠다. 천마들은 숨쉴 때마다 불을 토했다.

 

태양신 헬리오스는 아들의 얼굴에다 불길에 그슬리는 것을 예방하는 약을 발라 주고, 바른 것이 살갗에 고루 묻도록 문질러 주기까지 했다. 그런 다음에는 아들의 머리에다 빛의 관을 씌워 주었다. 아버지는 이러면서도 걱정스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던지 자주자주 한숨을 쉬었다. 오래지 않아 자식에게 닥칠 재앙과 이로 인한 자신의 슬픔을 예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 헬리오스는 이렇게 말했다.

 

󰡒아비의 말을 잘 듣고 마음에 새기도록 하여라. 되도록이면 채찍은 쓰지 않도록 하여라. 고삐는 힘껏 잡도록 해야 한다. 천마는 저희가 알아서 잘 달릴 게다만, 이들의 조급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늘에는 권역이 없는 것 같지만, 엄연하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하늘에는 다섯 권역이 있다. 그 다섯 권역을 곧장 가로질러 가려고 해서는 안 된다. 자세히 보면 세 권역의 경계선 안으로 조금 휘어진 샛길이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남극 권역과 북극 권역을 피해 갈 수가 있다. , 마차의 바큇자국이 보일 게다. 하늘과 땅에 고루 따뜻한 빛을 나누어 주려면 너무 높게 몰아서도 안 되고, 너무 낮게 몰아서도 안 된다. 너무 높게 몰면 하늘덮개에 불이 옮겨 붙을 것이고, 너무 낮게 몰면 대지가 그슬리고 만다. 그 중간이 안전하니 명심하여라. 오른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거기에는 똬리를 튼 별자리인 뱀자리가 있다. 왼쪽으로 너무 치우쳐 바로 아래 있는 신들의 제단을 태워서도 안 된다. 이 사이를 조심해서 지나가도록 하여라.

 

내 이제 너를 행운의 여신 튀케의 손에 붙이고 빌 수밖에 없겠구나. 튀케가 나 이상으로 너를 자상하게 돌보아 주기를 기원하는 수밖에 없구나. 서둘러라. 벌써 밤이 저 멀리 서쪽 해변에 이르렀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이제 태양 마차가 나타날 차례다.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어둠을 몰아 내고 있지 않느냐? , 이제 마차에 올라 고삐를 힘있게 잡아라.

 

혹 내 말을 듣고 네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느냐? 변했거든 천마의 고삐를 놓고 내 말을 따라라. 따를 수 있을 때에 따라라. 네 발이 이 단단한 태양신궁의 바닥에 닿아 있을 때에 내 말을 따라라. 하늘로 오르는 일은 미숙한 너에게 맞지 않는다. 네가 이 위험한 일을 해 보겠다고 우기기는 한다만, 대지에 빛을 나누어 주는 일은 나에게 맡기고, 너는 그 빛을 누리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그러나 파에톤은 제 젊음과 힘만 믿고 태양 마차 위로 올라가 아버지가 건네주는 고삐를 받았다. 그러고는 마부석에 앉아, 어려운 청을 들어준 아버지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태양 마차를 끄는 네 마리의 날개 달린 천마는 불을 뿜어 주위의 대기를 뜨겁게 달구면서 가로장을 밀쳐 냈다. 파에톤에게 할머니가 되는 바다의 버금 여신 테튀스는 손자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까맣게 모른 채 그 가로장을 치웠다. 그러자 네 마리의 천마 앞으로 하늘이 펼쳐졌다. 네 마리 천마는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앞길을 막은 구름의 장막을 찢었다. 그러고는 단숨에 그 권역에서 이는 동풍을 저만치 앞질렀다.

 

네 마리의 천마는 태양 마차가 엄청나게 가벼워진 데 놀랐다. 멍에에서 느껴지는 무게가 그 이전에견주어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가볍게 느껴졌던 것이다. 파에톤이 태양신 헬리오스보다 훨씬 가벼웠으니 당연했다. 태양 마차와 거기에 타고 있던 파에톤이 어찌나 가볍게 느껴졌는지, 네 마리의 천마는 자기들이 마차를 끌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바닥에 짐을 싣지 않은 배가 거친 파도에 휩쓸려 바다 위를 이리저리 떠다니듯이, 마부의 무게가 전 같지 않은 태양 마차도 하늘을 누비며 흡사 빈 마차처럼 흔들렸다.

 

이렇게 되자, 네 마리의 천마는 오랫동안 달려 봐서 잘 알고 있던 궤도까지 이탈하여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마부석에 앉은 파에톤은 기겁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삐로 천마를 다룰 재간이 없었다. 그에게는 어디가 어디인지 위치 분간도 되지 않았다. 설사 분간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천마를 다루는 기술이 없었으니, 결국은 분간이 되나 안 되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북두칠성은 평소에 차갑기 짝이 없는 별이다. 하지만, 이 북두칠성이 태양 마차가 내뿜는 열기에 처음으로 달아올랐다. 북두칠성은 금단의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했다. 북극 권역에 바싹 붙은 채 혹한의 하늘에 똬리를 틀고 있어서 평소에는 별로 위험한 존재로 알려지지 않았던 별자리인 뱀자리가 태양 마차의 열기에 똬리를 풀고, 일찍이 볼 수 없었던 포악을 부리기 시작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목동자리의 목동도 기절초풍, 그 자리를 떠나려 하다가 쟁기자리에 걸려 쓰러졌다고 한다.

 

마침내 이 가엾은 파에톤은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대지를, 아득히 먼 하계에 펼쳐진 대지를 보고 말았다. 대지를 보는 순간, 파에톤은 자기가 얼마나 높은 곳을 달리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그의 무릎은 갑자기 엄습한 공포에 걷잡을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강렬한 태양 마차의 빛줄기 때문에 그는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제야 파에톤은 천마를 탄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친아버지를 찾아 낸 것을 후회했다. 스튁스 강에 맹세한 친아버지를 원망했다. 그 친아버지에게서 소원 성취의 약속을 받아 낸 것 자체를 후회했다. 태양 마차를 몰겠다고 우긴 것을 후회했다. 그는 메로프스의 양아들로 그저 평범하게 살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는 태양 마차에 실려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른 채 네 마리의 천마에 끌려갔다. 고삐도 쓸모 없고 밧줄도 하릴없어서, 신들의 자비에 몸을 맡기고 허망한 기도에 희망을 건 쪽배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저 그렇게 북풍에 운명을 맡긴, 소나무로 만든 한 척의 쪽배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로서는 손을 쓸 수도, 손을 쓸 여지도 없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거리가 적지 않았지만, 가야 할 거리는 이보다 훨씬 더 멀었다. 그는 도저히 도달할 가망이 없을 듯한 서쪽 하늘과 두고 온 동쪽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그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갈 수도 없고 물러설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그렇다고 고삐를 늦출 수도 없었다. 고삐를 잡고 있을 힘도 없었다. 허둥대다가 천마들의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하늘의 도처에 널려 있는 거대한 괴물에 대한 공포까지도 그를 견딜 수 없게 했다. 실제로 하늘에는 전갈이 두 개의 집게발로 두 별자리를 싸안듯이 하고 있는 데가 있었다. 파에톤은 무서운 독을 품은 전갈이 꼬부랑한 독침을 겨누고 있는 것을 보자, 그만 기겁을 하고는 고삐를 놓치고 말았다. 고삐는 그의 손아귀를 벗어나 천마의 잔등을 때렸다. 이것을 채찍질로 여긴 천마는 또 한 번 궤도를 벗어나 질풍같이 내달았다. 이 때부터 천마를 다스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 마리의 천마는 생면부지의 공간을 누비며, 그 때까지 달려온 것만 가늠해서 그저 진동한동 달리기만 했다. 높디높은 곳에 있는 하늘덮개에 박힌 별자리 쪽으로 달려가는가 하면, 길도 없는 곳으로 태양 마차를 끌고 가기도 했다. 하늘덮개에 닿을 듯이 솟구치는가 하면, 갑자기 대지의 사면에 닿을 만큼 고도를 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태양신의 누이동생인 달의 여신 셀레네는 오라버니의 태양 마차가 자기보다 낮게 날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깜짝 놀라 낯빛을 바꾸었다. 구름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대지는 높은 곳부터 불길에 휩싸였다. 습기가 마르자 대지가 여기저기 터지고 갈라지기 시작했다. 푸른 풀빛은 잿빛 벌판으로 변했다. 나무, 풀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다 익은 곡식은 대지의 파멸을 재촉하는 거대한 산불의 불쏘시개 같았다.

 

그런데 이런 자연의 피해는 다른 피해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거대한 도시의 성벽은 무너져 내렸고, 인간이 모여서 모둠살이를 하던 수많은 마을과 함께 나라가 잿더미로 변했다. 산의 수목도 불길에 휩싸였다.

 

파에톤은 불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열기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뜨거웠다. 그의 숨결도 풀무에서 나온 공기처럼 뜨거웠다. 마차는 빨갛게 달아오른 것 같았다. 열기와 함께 올라온 재와 하늘을 날아다니는 불똥도 그를 괴롭혔다. 뜨거운 연기로 주위가 칠흑 같은 어둠이라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발빠른 천마가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늘날 에티오피아로 불리는 아이티오페이아 사람들의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 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열기 때문에 피가 살갗으로 몰려서 그렇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오늘날의 리비아가 사막이 된 것도 이 때였고, 열기 때문에 물이 말라 버리자 물의 요정들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샘과 호수가 없어진 것을 애통해한 것도 이 때였다.

대지가 곳곳에서 입을 벌리자, 그 틈으로 무간지옥인 타르타로스까지 햇빛이 비쳐 들어갔다. 저승의 신 하데스와 그의 아내 페르세포네도 기겁을 했다. 바다가 마르자, 바다였던 곳에 넓은 사막이 나타났다. 물 속 깊이 잠겨 있던 산들이 드러나자, 퀴클라데스 섬무리에 새 섬들이 엄청나게 불어났다. 물고기는 바다의 밑바닥으로 내려갔고, 돌고래는 물 위로 솟구치지 못하고 수면에 등을 대고 가만히 떠다녔다. 물개의 시체가 뒤집힌 채 무시로 물결 위로 떠올랐다. 전해지기로는, 바다의 버금 신인 네레우스와 그의 아내인 도리스 여신, 그리고 3천 명에 이르는 그들의 딸들은 바닷속의 동굴에 숨어서도 열기 때문에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바다의 지배자 포세이돈은 세 번이나 물 밖으로 팔을 내밀어 보려다가 세 번 다 너무 뜨거워 팔을 거두어들였다고 한다.

대지의 여신은 물이 자기 발 밑으로 흘러와 고이는 것을 자주 보았다. 바다의 물, 샘의 물이 열기를 피해 대지의 품 안으로 스며들어와 잔뜩 몸을 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지의 여신은 목이 타 들어가는 듯한 갈증을 느끼고는 잿더미 위로 고개를 들었다. 대지의 여신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부르르 떨자 만물이 모두 부르르 떨었다. 여신은 머리를 조금 낮추고 위엄 있는 음성, 노기 띤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제우스신이여, 이것이 운명의 여신이 정한 길인가요? 나에게 이토록 죄가 많은가요? 내 가 이 같은 파멸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죄를 지었다면, 나를 벼락으로 쳐서 단번에 끝내지 않고 어째서 이토록 욕을 보이세요? 전능한 제우스여, 불로써 나를 치려거든 그대의 불로 치세요. 같은 파멸의 불이라도 그대가 내리는 파멸의 불이 차라리 견디기 쉽겠어요. , 몸 이 타는 듯하여 말을 더 할 수가 없어요…….󰡓

 

지상의 열기가 대지의 여신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대지의 여신은 힘겹게 말을 이었다.

󰡒…… 그슬린 이 머리카락을 보세요. 빨갛게 충혈된 이 눈, 머리에 앉은 이 그을음을 보세요. 이 땅을 풍요롭게 하면서 그대를 섬겨 온 나에게 내리는 상, 나에게 베푸는 은혜가 겨우 이것인가요? 괭이에 긁히고 보습에 찢기면서까지 참아 온 보람이 겨우 이것인가요? 한 해 내내 마음놓고 쉬어 보지도 못한 나를 이렇게 대접해도 되는 것인가요? 뭇 가축한테 나뭇잎과 부드러운 풀을 대어 주고, 인간에게는 곡물을 베풀고, 신들을 위해서는 향나무를 기른 나를 이렇듯이 대접해도 되는 것인가요?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고 칩시다. 저 물을 다스리는 바다의 신, 그대의 형제인 포세이돈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지요? 그대의 형제가 다스리는 물이 왜 바다를 등지고 땅 밑으로 스며드는 것이지요? 내가 말해도 소용 없고 그대의 형제가 말해도 소용 없다면, 그대가 사는 천궁을 걱정하세요. 둘러보세요. 남극 권역과 북극 권역에서 뜨거운 연기가 오르고 있어요. 이 불길을 잡지 않으면 다음으로 무너질 것은 그대의 천궁일 것입니다. 하늘축을 떠받치고 있는 아틀라스를 보세요. 불길과 연기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지 않나요? 어깨로 떠받치고 있는 하늘축을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 같지 않나요? 대지와 바다와 천궁이 무너져 내린다면 우리는 옛날의 카오스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이 무서운 불길에서 건지세요. 우주의 안위를 생각하세요.”

 

이 말을 마치자, 대지의 여신은 땅 위의 열기를 도저히 더는 견딜 수 없었던지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갔다. 대지의 여신은 저승 가까운 곳에 있는 동굴 속으로 그 모습을 감추었다.

 

신들의 지배자인 제우스신은 자기가 손을 쓰지 않으면 천지만물이 비참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서둘러 신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파에톤에게 태양 마차를 맡긴 태양신 헬리오스도 그 회의에 참석했다. 신들은 헬리오스와 파에톤을 두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아비가 자식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저 꼴이 되지.󰡓

이렇게 말한 것은 제우스의 아내이자 정식 결혼의 수호 여신인 헤라였다.

󰡒티탄신들의 권리가 다 올림포스신들에게 넘어왔는데, 헬리오스와 셀레네 남매만은 아직도 권력을 틀어쥐고 있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것 아닌가요?󰡓

이렇게 투정을 부린 것은 그 뒤를 이어 각각 태양의 신과 달의 여신 자리에 오르게 되는 아폴론과 아르테미스 남매였다.

󰡒제가 다시 만들 테니, 벼락을 던지시어 저 태양 마차를 부숴 버리십시오.󰡓

제우스신에게 이렇게 청한 것은 태양 마차를 만든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였다.

 

제우스는 천궁의 지붕 꼭대기로 올라갔다. 천궁 꼭대기는 그가 대지 위로 구름을 펼 때와 천둥이나 벼락을 던질 때마다 올라가는 곳이었다. 그러나 천궁 꼭대기에는 대지 위에 펼 구름도, 대지에 쏟을 비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벼락을 하나 집어, 오른쪽 귀 위까지 들어올렸다가 태양 마차의 마부석을 향해 힘껏 던졌다.

 

벼락 하나에 파에톤은 마차를 잃고, 이승을 하직했다. 파에톤은 자신이 불덩어리가 됨으로써 우주의 불길을 잡은 것이다. 천마는 벼락 소리에 몹시 놀라 길길이 뛰다가 멍에에서 풀려나고 고삐에서 풀려나 뿔뿔이 흩어졌다. 마구와 마차의 바퀴, 굴대, 뼈대, 바퀴살의 파편이 사방으로 날았다. 아주 먼 곳까지 날아가는 파편도 있었다.

 

파에톤은 금발을 태우는 불길에 휩싸인 채 연기로 된 긴 꼬리를 끌면서 거꾸로 떨어졌다. 별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누가 보았다면 마른 하늘에서 별이 떨어지는 것으로 여겼을 터였다. 그의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던 에리다노스 강의 신이 벼락의 불길에 그슬린 파에톤의 주검을 받아 주었다. 에리다노스는 클뤼메네와 남매간이었으니 파에톤에게는 외숙이 되는 셈이다. 밤의 나라 요정들은 불길에 까맣게 그슬린 파에톤의 주검을 수습하여 묻고 비석을 세웠다. 비석에 새겨진 글귀는 다음과 같다.

 

아버지의 마차를 몰던 파에톤, 여기에 잠들다.

힘이야 모자랐으나 그 뜻만은 가상하지 아니한가.

밤의 나라 헤스페리아의 요정들이 나서서 파에톤의 장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파에톤의 아버지인 태양신이 얼굴을 가린 채 숨어 버렸기 때문이다.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 날 하루만은 태양이 그 모습을 나타내지 않아 타오르던 불길이 세상을 비추었더란다. 세상을 태우던 불길이 하룻동안이나마 세상을 비추었다는 것은 얼마나 기묘한 아이러니인가? 그러고 보면, 재앙이라고 해서 반드시 유익한 바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모양이다.

 

파에톤의 어머니 클뤼메네가 슬퍼하는 모습은 눈뜨고는 못 볼 지경이었다. 클뤼메네는 비통한 심사를 이기지 못해 눈물로 가슴을 적시면서 아들의 주검, 아들의 뼈를 찾으러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클뤼메네는 아들의 시신이 먼 나라 강둑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들의 무덤을 찾아간 클뤼메네는 무덤을 내려다보며 대리석에 새겨진 이름에 눈물을 떨어뜨리다가 맨가슴으로 그 비석을 끌어안았다.

 

헬리아데스, 즉 태양신 헬리오스의 딸들의 슬픔도 클뤼메네의 슬픔에 못지않았다. 이들 역시 죽은 아우의 무덤에 애간장 끊어지는 슬픔과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밤이고 낮이고 파에톤의 무덤 위로 몸을 던지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파에톤의 이름을 불렀다. 파에톤이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이들은 달이 네 번 차고 기울 동안 무덤 앞에서 우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그런데 헬리아데스 중에서 맏이인 파에투사가 일어서서 걸으려다 말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는다고 비명을 질렀다. 아름다운 람페티에가 언니를 도우려 했다. 그러나 람페티에는 갑자기 발에 뿌리가 생기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셋째는 머리를 손질하려다 말고 비명을 질렀다. 머리에 잎이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 명이 다리가 나무 둥치로 변한다고 비명을 지르면, 다른 한 명은 팔이 나뭇가지로 변한다고 고함을 지르는 식이었다. 헬리아데스 다섯 자매의 이 놀라운 변신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동안, 나무 껍질이 이미 이들의 허벅지를 덮고 어깨와 손을 덮으며 올라오고 있었다. 이들은 입이 껍질로 덮이기 직전에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인들 무슨 수로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어머니인 클뤼메네는 달려가 자신의 입술을 느낄 수 있을 동안만이라도 입을 맞추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클뤼메네는 입맞춤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나무에서 껍질을 벗겨 내려고 애쓰면서 아직은 부드러운 나뭇가지를 꺾어 보았다.

 

그러자 꺾인 자리에서 수액 대신 상처에서 흐르는 피와 너무나 흡사한 액체가 흘렀다. 가지를 꺾인 딸이 외쳤다.

󰡒어머니, 저를 다치게 하지 마세요. 제발 꺾지 마세요. 나무로 변신했으니 인제 가지가 제 팔이고 다리랍니다. , 안녕히…….󰡓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나무 껍질이 딸들의 입을 막았다. 이 나무 껍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 태양빛에 굳으면서 호박 구슬이 되어 가지에서 강물로 떨어졌다. 강물은 이 호박 구슬을 물 밑에 간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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