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기초논술5 - 요약하기(실전편)

by 송화은율
반응형

1. 요약문의 요건

 

글쓴이의 주요 논의점(주장)이 요약되어 제시되었는가?

글쓴이의 주요 논의점을 지지할 수 있는 증거 사항(논거)이 요약되어 제시되어 있는가?

요약문이 전체적으로 긴밀성과 통일성을 보이고 있는가?

지문 내용의 순서를 따르고 있는가?

글쓴이의 의도를 왜곡시키지 않았는가?

 

2. 실전 연습

 

다음 제시문을 요약하시오. (300자 이내)

전통은 문화적 개념이다. 문화는 복합 생성을 그 본질로 한다. 그 복합은 질적으로 유사한 것끼리는 짧은 기간에 무리없이 융합되지만, 이질적일수록 그 혼융의 역사적 기간과 길항이 오래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통이 그 주류에 있어서 이질적인 것의 교체가 더디다 해서 전통을 단절된 것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오늘은 이미 하나의 문화적 전통을 이룬 서구적 전통도, 희랍, 로마 이래 장구한 역사로서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의 이질적인 전통이 융합된 것임은 이미 다 아는 상식이 아닌가. 지금은 끊어졌다는 우리의 고대 이래의 전통도 알고 보면 샤머니즘에, 선교에, 불교에, 도교에, 유교에, 실학파를 통해 받아들인 천주교적 전통까지 혼합된 것이고, 그것들 사이에는 유사한 것도 있었지만 상당히 이질적인 것이 교차하여 겯고 튼 끝에 이루어진 전통이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 우리화시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의 전통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오늘날 일시적 전통의 혼미를 전통의 단절로 속단하고 그것으로써 전통 부정의 논거로 삼는 것이 얼마나 허망된 논리인가를 알 것이다.

핵심어 :

주제문 :

 

<요약하기>

 

 

 

 

다음 제시문을 요약하시오. (300)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텔레비전을 보게 된다. 텔레비전은 우리에게 신속한 정보를 전해 주고, 정신적 휴식 공간을 제공해 줄 뿐만 아니라, 올바른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텔레비전이 이처럼 우리 생활에 유익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 글에서는 주로 텔레비전이 주는 나쁜 영향을 비판하고 그 극복방안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텔레비전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가장 나쁜 영향으로는 가족 간의 대화를 단절시킨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현대의 생활 속에서 사람들은 모처럼 가족이 모이는 시간에 따뜻한 대화를 하기보다 텔레비전을 봄으로써 가족 간의 대화 시간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텔레비전은 시청자를 수동적인 인간형으로 만든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텔레비전은 그 일방적인 전달성으로 인해 능동적인 인간상 형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넓은 사고 영역에 걸쳐 본다면, 텔레비전 문화가 이론적 사고, 계열적 사고, 심층적 사고, 추상적 개념화의 힘을 둔화시키며, 심지어 개성까지도 파괴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리고 시청자의 상상력 발달을 저해한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텔레비전은 영상 화면을 그대로 보여 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상상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텔레비전 화면은 생생하기는 하지만 만사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사소하고 말단적인 것에 집착하게 한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이라고 하면 슈퍼마켓의 진열대와 주유소 정도를 연상하며, 전쟁이란 즐비한 시체 아니면 멀리 흩어지는 폭탄 연기의 이미지로 생각될 뿐이다. 그 앞, , , 속을 이어가며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지 않는다.

요컨대, 텔레비전은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해 준 점도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우리의 생활에 악영향을 미친 것이 더 많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텔레비전을 보지 않을 수는 없다. 텔레비전을 시청하기는 하되 능동적인 자세로 선택, 수용하여 소화시킬 수 있는 능력과 여유를 가지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극복 방법은 확고한 가치관의 정립에 있다 할 것이다.

 

<요약하기>

 

 

 

 

 

 

다음 제시문을 300자 내외로 요약하시오.

 

나는 인생의 허무와 무가치를 느낀다. 나는 좀더 충실하고, 좀더 가치 있는 생을 체험하고 싶다. 그럴 때에 나는 베토벤의 교향악을 듣고, 혹은 밀턴의 시를 읽고, 혹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읽는다. 이 글을 읽을 독자는 대개 이십 전의 청년들임을 나는 알고 있다. 여러분은 아직 인생을 회고할 필요는 없다. 다만 앞을 내다보며 기쁨과 슬픔을 다 같이 희망의 품 안에 포옹하면서 전진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여러분이 앞으로 간혹 문학작품을 읽어, 인생에 대해서 그 무엇을 반성하게 될 때에, 이 글이 약간의 도움이 될까 해서 붓을 든다.

옛날부터 시는 자연의 모방이라 일컬어 왔고, 연극은 인생을 거울에 비추어 보이는 일이라고 말해 왔다. 비교적 현대에 발달한 소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이 자주 되풀이된다. 그만큼 모든 문학 작품이 자연과 인생을 모방하고 반영하여, 현실의 이모저모를 보여 준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의 일면이고 전면은 아니다. 어느 작품을 보아도, 거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는 않다. 마치 사진기가 풍경이나 인물을 촬영하듯이, 문학이 현실을 그대로 모사하지는 않는다. 문학에서 현실을 모사하는 일은 가능한 일도 아니며, 또 필요한 일도 아니다. 문학의 목적은 좀더 별다른 데 있다. 그것은 자연과 인생에서 소재를 선택해다가 그들의 모양을 다소 수정하고 혹은 다시 결합해서 한 예술품을 만들어 내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문학 작품은, 현실적이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니다. 작품 세계는 현실 세계와 따로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해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인생을 떠나서 예술이 독립할 수는 없다. 예술가는 그의 소재들을 인생 체험 속에서 구해 올 뿐만 아니라, 만약 그가 진정한 천재라면 그 소재들을 결합하고 조직하는 독특한 방법과 원리까지도 자연에서 배워 온다. 그러니까 예술 세계는 현실 세계를 기반으로 해서만 성립된다.

예술이 현실과 동일하지도 않고 독립되어 있지도 않다면, 그들의 관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병립의 관계이다. 현실세계가 있고, 그 곁에 혹은 그 위에 예술 세계가 있다. 예술은 현실을 모방하고 반영하면서도, 독자적인 원리 밑에서 자체의 세계를 창조하여 독특한 목적을 수행한다.

 

 

<요약하기>

 

 

 

 

 

 

다음 제시문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자기 자식에게 잔심부름을 시킬 때에도 돈을 주어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소리를 가끔 듣게 된다. 집 안에서 구두를 닦고도 대가를 요구하고 자동차를 타고 심부름을 가야할 거리면 으레 교통비에 수고료를 얹어 주어야 움직이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하기야 심부름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만 할 수는 없다. 또 자녀에게 용돈을 줄 때에는 어떤 일을 시키고 그 대가로서 돈을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도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심부름을 시키면서 돈을 주어야 하는 현실을 무턱대고 한탄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 삼으려는 것은 가정이나 사회를 막론하고 모든 보상 체제가 물질 위주로 되어 가고 있는 현상이다. 물질만이 보상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는 세상이 되어서 정신적인 보상의 가치가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오늘의 상황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일이다.

우리 사회의 앞날을 염려하는 많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질 지상과 황금 만능의 가치 의식이 일반화되어 가고 있는 것을 걱정스럽게 지적하고 있다. 물질만이 삶의 가치가 될 때에 오는 공허와 인간 존엄의 상실을 염려하는 것이다. 물질 위주의 가치 의식이 어느 정도 일반화되어 있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으나 감각적으로 느끼기에 분명한 것은 물질적인 가치가 정신적인 가치를 압도하는 상태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가치관이 형성되고 그것이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결정적인 작용을 하게 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사회를 은연중에 지배하는 보상 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동기를 촉발시키는 유인가로서의 보상이 물질 중심으로 되어 있으면 자연히 물질 지상의 가치 의식이 일반화되고, 반면에 정신적인 보상이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면 정신적인 가치가 존중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어린이들의 가치관 형성 과정을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이 점을 이해하기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린이들은 어른이 제시하는 보상 체제에 의해서 가치관을 습득하게 된다.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보여 주는 행동이나 어른들로부터 받게 되는 보상에 의해서 이 세상에서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며 어떤 행동이 올바른 행동인가를 배우는 것이다. 아주 일반적으로 말해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행동이나 의식은 더욱 조장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쇠퇴하거나 소멸된다고 할 수 있다. 이토록 보상은 의식의 형성에 있어서 중요한 작용을 하고 그 보상의 내용은 가치 의식의 내용에 직접 관련된다.

어린이가 어떤 일을 했을 때에 돈으로 보상하는 일을 계속하면 그 어린이는 자기가 하고 있는 그 일이 착한 일이라는 의식을 가지게 될 뿐만 아니라 돈의 가치를 절대시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생각해 보면 지금의 물질 지상적인 가치관은 가치관의 형성기에 주어지는 물질 중심의 보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물질 중심의 보상만을 경험하게 될 때에 물질만이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보상이 될 수 있고 물질이 지고의 가치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형성된다고 보아도 지나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므로 오늘의 물질 지상적인 가치 의식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물질적인 보상보다는 정신적인 보상의 경험을 가지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물론 사람들의 의식을 개혁하는 일이 그렇게 손쉬운 일은 아니다. 더욱이 우리 사회의 구석 구석에 은연중에 만연되어 있는 물질 지상의 가치관을 개혁하는 일은 대단히 어려운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기에 의식을 개혁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일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에서부터 어떤 제도적인 장치를 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다각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어린 시절에 바른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지도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물질의 효용성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정신적인 가치를 인식하고 그것을 소중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기본적인 자세를 형성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대하는 과정에서, 또는 그들을 지도하고 교육하는 과정에서 항시 유념해야 하고 또 개선해야 할 일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주는 보상을 물질 중심에서부터 정신적인 보상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노력의 대가를 꼭 물질로 받지 않더라도 정신적인 보상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길러 주는 일이다. 부모님의 일을 거들어 드리고 꼭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기보다는 부모님의 일을 도울 수 있었다는 사실에서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보상체제가 좀더 강조되어야 할 것이다. 남을 도와 주고 대가를 구하기보다도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나 도움을 주는 행위 자체에서 정신적인 보상을 찾을 때 우리 사회는 물질 만능의 풍조에서 벗어나 정신적으로 좀더 고양되리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 서울대 실험 평가 문제에서 발췌

 

제시문을 세부분으로 나누고 각 부분의 중심내용 쓰기

 

첫째 부분 :

 

둘째 부분 :

 

셋째 부분 :

 

 

 

제시문 요약하기 (600자 정도)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