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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논술15 - 개인과 사회, 무엇이 먼저냐?( 인문, 사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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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사회, 무엇이 먼저냐? - 인문, 사회

 

역사학자 E.H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진술한 부분을 발췌한 글이다. E.H 카아는 이 글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어떤 입장을 보이고 있는지 정리해 보자.


() 어느 것이 먼저인가 - 사회인가 또는 개인인가 하는 문제는 암탉과 달걀에 관한 문제와 같다. 이 문제를 논리적 문제로 다루든 역사적 문제로 다루든 우리들은 정반대의 그리고 똑같이 일방적인 주장에 의해 수정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어느 한쪽 주장을 할 수는 없다. 사회와 개인은 분리될 수 없다. 사회와 개인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고 상보적인 것이며 대립되는 것이 아니다. (John Donne)의 유명한 말에 의하면 어떤 사람도 섬은 아니며 그 자체로 완결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한 부분이다.” 이것은 진리의 한 측면이다.

 

()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세계는 우리들에게 작용하기 시작해서 우리들은 단순한 생물적 단위로부터 사회적 단위로 바꿔 놓는다. 역사 시대든 선사 시대든 모든 단계의 모든 사람은 어떤 사회 속에 태어나서 태어난 직후부터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는 개인의 유산이 아니라 그가 자라난 집단으로부터 받은 사회적 획득물이다. 언어와 환경은 다 그의 사상의 성격 결정에 영향을 준다. 곧 그의 가장 최초의 관념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인 것이다. 흔히 말하는 바와 같이 사회로부터 유리된 개인에게는 언어도 정신도 없을 것이다.

 

() 로빈슨 크루소 신화의 영속적인 매력은 사회로부터 독립된 개인을 상상해 보려고 한 점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좌절된다. 로빈슨은 추상적인 개인이 아니라 요크 출신의 영국인이며 성서를 갖고 다니고 자신의 종족 신에게 기도한다.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는 그의 하인 프라이데이를 등장시킨다. 그리하여 다시 새로운 사회의 건설이 시작된다. 이와 관련된 또 하나의 신화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惡靈)]에 나오는 키롤로프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완전한 자유를 증명하기 위해 자살한다. 자살만이 개인에게 가능한 단 하나의 완전한 자유 행위며, 그 밖의 모든 행위는 어쨌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성격을 포함한다.

 

() 원시인은 문명인에 비교하면 덜 개인적이고 더욱 철저하게 사회에 의해 형성된다고 인류학자들은 흔히 말한다. 이것은 하나의 기본적인 진리를 말해 준다. 보다 단순한 사회는 보다 복잡하고 진보한 사회에 비하면 개인의 기술이나 직업의 다양성을 훨씬 적게 요구하고 또한 그러한 기회도 훨씬 적다는 의미에서, 보다 단순한 사회는 훨씬 더 획일적이다. 이러한 의미에는 개인화의 증대는 발달된 근대 사회의 필연적 산물이고 사회 활동의 구석구석까지 뚫고 들어간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화의 과정과 사회적 힘 및 결합력의 증대 사이에 대립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사회의 발달과 개인의 발달은 병행하며 서로를 계약한다. 사실상 우리가 복잡하고 진보된 사회라고 하는 것은 개인 간의 상호 의존 관계가 진보되고 복잡한 형태를 가진 사회를 말한다. 개별적인 구성원들의 성격과 사상을 형성하는 힘, 그들 사이에 어느 정도의 일치성이나 단일성을 형성하는 근대 국민 사회의 힘이 미개 부족 사회의 그것보다 약하다고 가정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일 것이다.

 

() 생물학적 특성에 바탕을 둔 국민성이라는 낡은 관념은 오래 전에 논파되었다. 그러나 사회나 교육이라는 국민적 배경의 차이로부터 생기는 국민성의 차이는 부정하기 어렵다. ‘인간성이라는 포착하기 어려운 실체는 나라와 시대에 따라 다르므로 인간성을 지배적인 사회적 조건과 관습에 의해 형성된 역사적 현상으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예컨대 미국인, 러시아인, 인도인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의 일부 또는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여러 개인들 사이의 사회관계, 다시 말하면 사회 구성 양식에 대해 다른 형태의 태도를 취한다는 것, 따라서 전체로서의 미국 사회, 러시아 사회, 인도 사회의 차이에 대한 연구는 개별적인 미국인, 러시아인, 인도인의 차이를 연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문명인도 미개인과 마찬가지로 사회에 의해 효과적으로 형성되며 이것은 사회가 문명인에 의해 효과적으로 형성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달걀이 없으면 암탉이 있을 수 없듯이 암탉이 없으면 달걀도 있을 수 없다.

 

() 우리는 자유와 평등, 또는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정의 사이의 긴장을 추상적 용어로 말하다 보면 이 싸움이 추상적 관념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잊기 쉽다. 그것은 개인 자체와 사회 자체의 싸움이 아니라 사회 속의 개인들의 집단과 집단 사이의 싸움이고 각 집단은 그 집단에 유리한 사회 정책을 촉진시키려고 하며 자기에게 불리한 k회 정책을 저지하려고 한다. 개인주의는 이미 커다란 사회 운동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 사이의 허구적 대립이라는 의미에서 오늘날은 어떤 이익 집단의 구호로 변했으며 그 논쟁적 성격 때문에 세계의 움직임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걸림돌이 되었다. 개인을 수단으로 보고 사회 또는 국가를 목적으로 보는 도착현상에 대한 항의로써의 개인숭배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사회 밖에 서 있 는 추상적 개인이라는 관념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과거나 현재에의 참된 이해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 여기서 나의 긴 탈선은 마침내 끝에 이르렀다. 역사에 대한 상식적 견해는 역사를 개인에 의해 쓰인 개인에 관한 기록으로 생각한다. 이 견해는 확실히 19세기 역사가들에 의해 받아들여졌고 또한 장려되었으며 본질적으로 좀 더 깊이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의 지식은 그의 배타적인 개인적 소유물이 아니다. 아마도 많은 세대에 걸쳐 여러 나라의 사람들이 역사적 지식의 축적에 참여했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연구대상이 되는 행위를 했던 사람들도 진공 속에서 행동한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사회의 문맥 속에서 또 그 충동을 밑에서 행동했던 것이다.

 

 


'평준화' 반대와 찬성

교육 평준화에 대한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래 자료를 읽고, 교육 평준화에 대한 찬성과 반대 입장 가운데 하나를 택하여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 (800자 내외)


고교 평준화 지지자들은 불평등 구조 타파에 관심이 많고, 못 가진 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인가. 평준화 반대자들은 불평등에 무관심하고, 가진 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평준화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정리하기에 앞서 평준화 고수파나 반대파에 대한 선입관부터 정리해야 한다. 교육 제도는 그 사회가 지향하는 이념의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만, 논의 자체가 흑백논리로 차단되는 우리 현실은 잘못된 것이다. 최근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누가 서울대에 오는가󰡑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30년 동안의 서울대 입학생을 분석한 그 보고서에 의하면 평준화이후 고소득층 자녀의 입학 비율이 다른 계층 자녀에 비해 17배나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평준화로 우수학생들을 따로 교육할 수 없게 되면서 저소득층의 일류대 진학이 어려워졌다는 분석이다. 그 보고서에 대한 반응은 정치논쟁을 방불케 한다. 평준화 고수파들은 서울대가 그 같은 보고서를 발표한 배경을 의심하고, 평준화 반대자들은 일부 내용을 확대하여 평준화 철폐를 주장하는 자료로 삼고 있다. 교육적인 접근 대신 찬반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안병영 교육부총리는󰡒학력 세습 심화현상과 평준화간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준화를 하지 않았다면 사교육이 더 기승을 부리고 고소득층 자녀의 서울대 입학 비율도 결코 낮아지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평준화 폐지론을 서둘러 진화했다.

 

그는 또󰡒평준화 고수론에도 문제가 있지만 평준화가 모든 재앙의 근원이라는 생각도 문제다. 공교육을 먼저 내실화하고 사교육비 경감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옳은 말이지만 공자님 말씀에 불과하다. 평준화가 모든 재앙의 근원이 아닌 것은 확실하지만, 평준화가 입시지옥과 사교육의 폐단을 완화시킬 것이라는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 또한 확실하다.

그리고 공교육의 내실화는 사학의 자율권 보장 없이 불가능하다. 사립학교들의 활성화가 공립학교에 영향을 미치고, 공사립이 경쟁하여 공교육의 내실화를 앞당겨야 한다. 명문고들을 죽이고 사립학교들까지 평준화로 묶어서 결국 하향평준화가 되고만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한다. 1970년대 후반 평준화라는 이름아래 정부가 명문고들을 없앤 것은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불 태운 것과 다를 게 없다. 평준화가 기여한 것은 중학생들의 고교 입시 부담을 덜어줬다는 것인데, 오늘 날 초중고를 가리지 않는 사교육 열풍을 보면 그 효과를 평가하기도 어렵다.

 

과거의 명문고들이 학벌이나 부의 세습에 기여했다는 지적도 과장된 면이 있다. 명문고들은 계층이동에도 크게 기여했다. 명문고에는 어려운 집 아이들이 많았고, 그들 중 상당수가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장학금을 늘린다면 명문고야말로 세습을 깨는 확실한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세습 문제는 2차적인 논란에 불과하다.

 

교육의 본질을 생각한다면 현재의 평준화 제도를 바꾸거나 보완해야 한다. 능력에 맞는 교육으로 학생 개개인의 잠재력을 최대한 키워주는 것이 좋은 교육이다. 실력차가 심한 학생들을 한 교실에 수용하여 죽도 밥도 아닌 교육을 해서는 안 된다. 공부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에게󰡐다리 묶고 함께 뛰기󰡑를 시키는 것이 평등은 아니다.

 

일류만이 살아 남는다고 외치고 일류상품을 선호하면서 일류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정책에 반감을 갖는 것은 모순이다. 오늘의 󰡐일류󰡑란 과거처럼 단순하지 않다. 과거에는 공부 잘하는 학생만이 일류였지만 오늘은 각자 다양한 특성으로 다방면에서 일류가 될 수 있다. 그 다양한 교육을 평준화로 묶으면서 국가 경쟁력을 키울 수 있겠는가.

 

교육은 계층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문제다. 국가 경쟁력이 뒤떨어지면 모든 계층이 타격을 입고 특히 저소득층의 타격이 커진다. 고교 교육을 평준화하던 70년대와 오늘은 상황이 다르다. 이념 문제가 아닌 교육 문제로 평준화를 재검토해야 한다. 교육엔 평준화가 있을 수 없다.[한국일보 2004-02-01]

 


남녀 간의 성차

 

아래 글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최근 미국의 한 대학 총장이 여성은 선천적으로 수학 능력이 떨어진다. ”라고 발언했다가 거센 반발을 샀다. 이처럼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남녀 사이의 특성 차이를 거론한다. 지능 지수의 평균 점수는 차이가 없지만, 검사 결과를 유행별로 분석해 보면 의미 있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은 언어적 능력에서, 남성은 수학적 능력과 공간 지각 능력에서 우수하다는 증거들을 제시한다. 그리고 지적인 능력은 아니지만 공격성이라는 특성에서도 성차(性差)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남녀 간에 성차가 존재한다고 보는 이들은 그 원인을 환경적 요인이나 유전적 요인으로 설명한다. 유전적 설명에서는 남녀가 몇 가지 특성에서 차이를 보이는 유전적인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환경적 설명에서는 성차가 사회적교육적 환경 때문에 생긴다고 주장하면서 유전적인 설명 자체에 강하게 반발한다.

 

그러나 적어도 평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성차에 대한 유전적 설명이 옳은가 환경적 설명이 옳은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 대신 이런 설명들이 평등이라는 이상에 대하여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유전적 설명이 그른 것으로 드러난다면 성차에 근거한 차별은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유전적 설명이 옳다고 하더라고 이것이 남녀 간의 차별을 옹호라고 평등의 원칙을 거부하는 근거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물론 유전적 설명이 옳다고 가정한다고 해서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다. 유전적 설명이 차별을 정당화한다는 이유로 그 시도 자체에 반대할 경우, 뜻밖에도 유전적 증거들이 확인된다면 아주 당황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유전적 설명이 옳다고 가정해서 그 의미를 검토해 보는 것이다.

 

성차의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차이는 오직 평균적으로 존재할 뿐이다. 남성의 공간 지각 능력의 우월성을 설명하기 위해 제시된 유전적 가설까지도 여성의1/4이 남성의 절반보다 공간 지각 능력이 더 뛰어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재로 주변에서 남성보다 공간 지각 능력이 뛰어난 여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므로 유전적 설명이 맞든 안 맞든 간에, 너는 여자니까 엔지니어가 될 수 없다든지 너는 남자니까 아기를 돌볼 수 없다든지 하는 단정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람들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남성이나 여성이라고 한 덩어리로 뭉뚱그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 각각을 하나의 개별체로 보고 접근해야 한다. 성차가 유전적으로 존재한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입증된다고 해도 그렇다. 하물며 단순히 편견에 의존해서 집단 간에 차이를 부여하는 경우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1> 밑줄 친 남녀 간의 성차에 대한 단순한 편견에 해당되는 구체적 사례를 두세 가지 더 지적하여 써 보자. (, 위 글에서 언급된 것은 제외할 것, 문장으로 서술할 것)

 

 

 

2> 위 글에서 남녀 간의 성차를 설명하는 두 가지 견해를 지적하고, 이 글을 참고하여 성차에 대한 올바른 접근 방법에 대해 논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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