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예론(技藝論)
by 송화은율기예론(技藝論)
하늘이 날짐승과 길짐승에게는 발톱과 뿔을 주고 단단한 발굽과 예리한 이빨을 주었으며 여러 가지 독(毒)을 주어서, 각기 하고 싶어하는 것을 얻게 하고 외부로부터의 습격을 막아 낼 수 있게 하였는데, 사람에게는 벌거숭이로 유약(柔弱)하여 제 생명을 보호하지 못할 듯이 하였으니, 어찌하여 하늘은 천하게 하여야 할 금수(禽獸)에게는 후하게 하고, 귀하게 하여야 할 인간에게는 박하게 하였는가. 이는 인간에게는 지혜로운 생각과 교묘한 연구력이 있으므로 기예(技藝)를 익혀서 제 힘으로 살아가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생각으로 미루어 아는 것도 한계가 있고, 교묘한 연구력으로 깊이 탐구하는 것도 순서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하루 아침에 모두 아름답게 하지는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기예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더욱 정묘(精妙)하게 마련이고, 세대가 흘러갈수록 더욱 발전하는바, 이는 형세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읍내에 있는 공장이 솜씨만 못하고, 읍내 사람들은 유명한 성터나 큰 도시에 있는 공장이 솜씨만 못하며, 유명한 성터나 큰 도시의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최신식의 묘한 기계 제작 솜씨만은 못하다. 저 궁벽(窮僻)한 시골 마을에 사는 자가 오래 전에 서울에 왔다가, 처음으로 만들어서 아직 완전하지 못한 방법을 우연히 얻어듣고는, 기쁘게 돌아가서 시험해 본 다음, 속으로 자신만만하여 말하기를 "천하에 이 방법보다 더 우수한 것이 없다. " 하면서 아들과 손자들을 모아 놓고 경계하기를"서울에서 말하는 소위 기예라는 것을 내가 모두 배워 가지고 왔으니, 지금부터는 서울에서도 다시 더 배울 것이 없다. "한다. 이런 사람이 하는 짓이란 거칠고 나쁘지 않은 것이 없다.
우리 나라에 있는 백공(百工)들의 기예는 모두 옛날 중국에서 배워 온 방식인데, 수백 년 이래 칼로 벤 것처럼 딱 잘라 다시는 중국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중국에는 새로운 방식과 교묘한 제도가 나날이 증가하고 다달이 불어나서 수백 년 이전의 옛날 중국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막연하게 서로 묻지도 않고 오직 옛날의 방식만을 편케 여기고 있으니 어찌 그리 게으르단 말인가.
농사짓는 기술이 정교해지면 차지한 농토가 적으면서도 곡식은 소출(所出)이 많으며, 노력이 덜 들면서도 잘 여물 것이다. 밭을 일구어서 갈고 씨뿌리고 김매고 낫질하고 벗기는 것으로부터 키질하고 방아 찧고 반죽하고 밥짓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편리하게 되어 노동력이 절감될 것이다.
베 짜는 기술이 정교해지면 투입되는 물자가 적으면서도 실이 많이 나오고, 작업을 빨리 하면서도 포백(布帛)은 올이 배고 결이 고울 것이다. 물에 담가서 씻고 실을 뽑으며 베를 짜고 표백하는 일로부터 채색으로 물들이고 바느질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편리하게 되어 노동력이 절감될 것이다. 병정(兵丁)의 기술이 정교해지면 공격하고 방어하며 식량을 운반하고 성벽 따위를 수축(修築)하는 모든 일이 속도가 빨라져 위태함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의원(醫員)의 기술이 정교해지면 맥을 짚어서 증세를 살피고 약의 성질을 분별하여 사시(四時)의 기운을 살피는 모든 것이 옛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잘못된 점을 논박(論駁)할 수 있을 것이다.
온갖 공장이의 기술이 정교해지면 궁실(宮室)과 기용(器用)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성곽과 선박, 수레, 가마 따위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편리하고 견고(堅固)하게 될 것이다.
진실로 그 방법을 다 알아서 힘껏 시행한다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 수 있으며, 백성을 잘살고 수(壽)하게 할 수 있을 터인데, 당장 익숙히 보면서도 도모하지 않는다.
수레를 사용하는 데 대하여 말하는 자가 있으면 "우리 나라는 산천이 험하여 사용할 수 없다. " 하며, 양(羊)을 목축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있으면 "조선에는 양이 없다. " 하며, 말은 죽을 쑤어 주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풍토(風土)가 각기 다르다. " 하니, 이런 자들을 난들 또한 어찌하겠는가.
글씨를 배우는 데 미불(米#)과 동기창(董其昌)의 체를 쓰는 자가 있으면 "왕희지(王羲之의 순수함만 같지 못하다. " 하며, 벽생백(#生白)과 장원소(張元素)의 방법을 쓰는 자가 있으면 "단계(丹溪)나 하간(河間)의 옛 법만 같지 못하다. " 하면서, 은연중 빗대어서 성세(聲勢)를 만들어 한 세상을 호령하려고 한다.
저 희지(羲之)와 단계(丹溪), 하간(河間) 등의 무리는 과연 계림국(鷄林國)의 안동부(安東府) 사람들인가. 항간에서 말하는 왕희지의 글씨란, 곧 우리 나라에서 목판에 새긴 필진도(筆陣圖)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도리어 미불이나 동기창의 진짜 필적만 못하다.
옛날, 소식(蘇軾)은 경적(經籍)을 고려에 하사하지 말고 아울러 구입해 가는 것도 금지하도록 주청(奏請)하면서 "이적(夷狄)이 글을 읽으면 그 지식이 진보될 것이다. " 했으니, 어찌 그리도 마음이 좁고 인정이 적었던가. 그러나 이런 논의가 때로는 중국에 통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경적도 서로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기능을 배우게 하여 그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을 하겠는가.
옛날에는 외국 오랑캐로서 중국에 자제를 보내어 입학시킨 자가 매우 많았다. 근세에도 유구(琉球) 사람들은 중국의 태학(太學)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전문적으로 새로운 문물과 기예를 배웠으며, 일본은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을 왕래하면서 온갖 공장이들의 섬세하고 교묘한 기술을 배워 가기를 힘썼다.
이 때문에 유구와 일본은 바다의 한복판인 먼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기능이 중국과 대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백성은 부유하고 군대는 강하여 이웃 나라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나타나는 효과가 이처럼 뚜렷하다. 마침 지금은 중국의 규칙이 탁 트여서 좁지 않은데, 이런 기회를 놓쳐 버리고 도모하지 않았다가 만일 하루 아침에 소식과 같은 자가 나와서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의 한계를 엄격히 하여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도록' 건의한다면, 비록 예물을 가지고 폐백을 받들어 그 기술의 찌꺼기나마 배우려 하더라도 어찌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효도와 우애는 타고난 천성에 원래 있는 것이며, 성현들의 책에 자세히 밝혀져 있으니, 진실로 넓혀서 확충(擴充)하고 잘 실천하여 밝힌다면 예의의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게 될 터이니, 이는 참으로 외부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또한 후세 사람들에게 의뢰할 것도 없다. 그러나 백성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온갖 공장이들의 기능으로 말하면 중국에 가서 나중에 새로 나온 제도를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고 고루한 것을 깨뜨리지 못하여 이익을 펼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국사를 맡은 자가 마땅히 강구하여야 할 문제이다.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 권 Ⅱ, 논(論)>
요점 정리
연대 : 조선 후기
작자 : 정약용(丁若鏞)
문체 : 번역체, 건조체, 만연체
배경 : 사상적 - 이용 후생설의 영향
시대적 - 성리학 비판, 실생활과 관련된 과학기술 경시
구성 : 병렬식 구성(기예의 발전과 수용 - 기예의 이용과 수용 - 기예의 수용과 효과 -> 기예의 적극적 수용
문종 : 논설문, 논(論)
성격 : 논리적, 예증적, 설득적, 비판적, 계세적
주제 : 중국의 새로운 기예 수용 필요성
중심 화제 : 기예 습득
표현상의 특징 : 진술 방식은 논증이고, 인과적 분석을 취하고 있고, 구체적 사례에서 일반적 사실로 접근하는 귀납법을 사용하고 있다.(개별적인 특수한 사실이나 원리를 전제로 하여 일반적인 사실이나 원리로서의 결론을 이끌어 내는 연구 방법을 이른다. 특히 인과 관계를 확정하는 데에 사용된다. 베이컨을 거쳐 밀에 의하여 자연 과학 연구 방법으로 정식화되었다. 반대는 연역법)
내용 연구
구성 :
'일반론 - 예시 - 주장'의 미괄식 구성
1. 중국의 새로운 방식과 제도를 배우지 않는 현실(일반론)
2. 정교하고 새로운 방식을 시행하지 않는 현실(예시)
3. 중국의 새로운 제도 습득의 대책 강구(주장)
1.
하늘이 날짐승과 길짐승에게는 발톱과 뿔을 주고 단단한 발굽과 예리한 이빨을 주었으며 여러 가지 독(毒)을 주어서, 각기 하고 싶어하는 것을 얻게 하고 외부로부터의 습격을 막아 낼 수 있게 하였는데, 사람에게는 벌거숭이로 유약(柔弱)하여 제 생명을 보호하지 못할 듯이 하였으니, 어찌하여 하늘은 천하게 하여야 할 금수(禽獸)에게는 후하게 하고, 귀하게 하여야 할 인간에게는 박하게 하였는가. 이는 인간에게는 지혜로운 생각과 교묘한 연구력이 있으므로 기예(技藝)를 익혀서 제 힘으로 살아가도록 한 것이다.
- 인간의 자활 능력(도입)
- 신체적 약점을 타고 났지만 지혜로운 생각과 교묘한 연구력을 바탕으로 기예를 익혀서 제 힘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다는 인간의 본성을 해명한 도입 문단이다. 이 글은 뒤에서 다루게 될 기예 학습과 도입의 필요성을 말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2.
그러나 지혜로운 생각으로 미루어 아는 것도 한계가 있고, 교묘한 연구력으로 깊이 탐구하는 것도 순서가 있다. 그러므로 비록 성인(聖人)이라 하더라도 하루 아침에 모두 아름답게 하지는 못한다.
- 생각과 연구력의 한계(전개)
- 인간의 생각과 연구력이 한계가 있고 순서가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결국 다른 사람이나 나라로부터 기예를 배워야 함을 말하기 위한 전제가 된다.
3.
그렇기 때문에, 기예는 사람이 많이 모이면 더욱 정묘(精妙)하게 마련이고, 세대가 흘러갈수록 더욱 발전하는바, 이는 형세가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예의 발전 조건(전개)
- 앞 단락을 바탕으로 기예가 정묘하게 발전해 나갈 수 있는 필연적 조건을 말한다.
4.
그러므로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읍내에 있는 공장이 솜씨만 못하고, 읍내 사람들은 유명한 성터나 큰 도시에 있는 공장이 솜씨만 못하며, 유명한 성터나 큰 도시의 사람들은 서울에 있는 최신식의 묘한 기계 제작 솜씨만은 못하다.
- 지역에 따른 기예의 발달의 차이(전개)
- 시골, 읍내, 성터와 큰 도시로 갈수록(사람들이 많이 사는 곳일수록) 기예가 더 많이 발달했음을 확인한 것이다. 2,3,4는 '대전제 - 소전제 - 결론'의 연역적 추론에 의해 전개되고 있다.
5.
저 궁벽(窮僻)한 시골 마을에 사는 자가 오래 전에 서울에 왔다가, 처음으로 만들어서 아직 완전하지 못한 방법을 우연히 얻어듣고는, 기쁘게 돌아가서 시험해 본 다음, 속으로 자신만만하여 말하기를 "천하에 이 방법보다 더 우수한 것이 없다. " 하면서 아들과 손자들을 모아 놓고 경계하기를"서울에서 말하는 소위 기예라는 것을 내가 모두 배워 가지고 왔으니, 지금부터는 서울에서도 다시 더 배울 것이 없다. "한다. 이런 사람이 하는 짓이란 거칠고 나쁘지 않은 것이 없다.
- 시골 사람의 어릭석음(예시)
- 4.의 예시문단으로 완전하지 못한 기예로써 자신만만해 하는 시골 사람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있다. '좌정관천(坐井觀天)'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6.
우리 나라에 있는 백공(百工)들의 기예는 모두 옛날 중국에서 배워 온 방식인데, 수백 년 이래 칼로 벤 것처럼 딱 잘라 다시는 중국에 가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중국에는 새로운 방식과 교묘한 제도가 나날이 증가하고 다달이 불어나서 수백 년 이전의 옛날 중국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막연하게 서로 묻지도 않고 오직 옛날의 방식만을 편케 여기고 있으니 어찌 그리 게으르단 말인가.
- 중국의 새로운 방식과 제도를 배우지 않는 우리나라의 현실 비판(주지)
-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는 중국의 새로운 방식과 교묘한 제도를 배우지 않고, 옛날의 방식에 안주하는 우리 나라의 현실을 개탄하고 있다. 이 문단은 중국의 기예를 받아들여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소결론의 성격을 가진다.
7.
농사짓는 기술이 정교해지면 차지한 농토가 적으면서도 곡식은 소출(所出)이 많으며, 노력이 덜 들면서도 잘 여물 것이다. 밭을 일구어서 갈고 씨뿌리고 김매고 낫질하고 벗기는 것으로부터 키질하고 방아 찧고 반죽하고 밥짓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편리하게 되어 노동력이 절감될 것이다.
- 정교한 농사 기술의 효능(예시)
8.
베 짜는 기술이 정교해지면 투입되는 물자가 적으면서도 실이 많이 나오고, 작업을 빨리 하면서도 포백(布帛)은 올이 배고 결이 고울 것이다. 물에 담가서 씻고 실을 뽑으며 베를 짜고 표백하는 일로부터 채색으로 물들이고 바느질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편리하게 되어 노동력이 절감될 것이다.
- 정교한 방직 기술의 효능(예시)
9.
병정(兵丁)의 기술이 정교해지면 공격하고 방어하며 식량을 운반하고 성벽 따위를 수축(修築)하는 모든 일이 속도가 빨라져 위태함을 보호하게 될 것이다.
- 정교한 군사 기술의 효용(예시)
10.
의원(醫員)의 기술이 정교해지면 맥을 짚어서 증세를 살피고 약의 성질을 분별하여 사시(四時)의 기운을 살피는 모든 것이 옛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고 잘못된 점을 논박(論駁)할 수 있을 것이다.
- 정교한 의술의 효용(예시)
11.
온갖 공장이의 기술이 정교해지면 궁실(宮室)과 기용(器用)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성곽과 선박, 수레, 가마 따위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모두 편리하고 견고(堅固)하게 될 것이다.
- 정교한 공장이 기술의 효용(예시)
12.
진실로 그 방법을 다 알아서 힘껏 시행한다면 국가를 부유하게 만들 수 있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 수 있으며, 백성을 잘살고 수(壽)하게 할 수 있을 터인데, 당장 익숙히 보면서도 도모하지 않는다.
- 정교한 기예를 익히지 않는 현실 비판(요약)
- 7에서 11의 내용을 일반화하여 요약적으로 진술한 다음, 우리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7-11-12는 귀납적 추론에 의한 내용의 전개라고 할 수 있다.
13.
수레를 사용하는 데 대하여 말하는 자가 있으면 "우리 나라는 산천이 험하여 사용할 수 없다. " 하며, 양(羊)을 목축하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있으면 "조선에는 양이 없다. " 하며, 말은 죽을 쑤어 주는 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풍토(風土)가 각기 다르다. " 하니, 이런 자들을 난들 또한 어찌하겠는가.
- 우리의 자연 환경을 핑계로 삼아 새로운 것을 시행하지 앟는 자에 대한 비판(부연·예시)
- 새로운 방식을 소개하여도 우리의 자연 환경을 핑계 삼아 이를 시행하지 않는 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현실 여건을 극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책임을 전가하는 나약한 삶의 자세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있는 대목이다.
14.
글씨를 배우는 데 미불(米#)과 동기창(董其昌)의 체를 쓰는 자가 있으면 "왕희지(王羲之의 순수함만 같지 못하다. " 하며, 벽생백(#生白)과 장원소(張元素)의 방법을 쓰는 자가 있으면 "단계(丹溪)나 하간(河間)의 옛 법만 같지 못하다. " 하면서, 은연중 빗대어서 성세(聲勢)를 만들어 한 세상을 호령하려고 한다.
- 옛법을 준거로 하여 새로운 방식을 비난하는 자에 대한 비판(부연·예시)
- 중국의 옛 법을 고집하여 새로운 방식을 거부하는 행위를 보여주고 있다.
미블 : 송나라 사람으로, 문장이 뛰어났고, 서화에 특히 능함.
동기창 : 명나라 사람으로 시문과 서화에 아주 훌륭함
왕희지 : 진나라 사람으로, 초서와 예서가 특히 뛰어 났으며, 그의 필진도첩은 더욱 유명하여 서체의 대명사로 일러 온다.
벽생백 : 청나라 사람으로 서화와 의술이 뛰어남
장원소 : 금나라 사람으로 의술에 능함
15.
저 희지(羲之)와 단계(丹溪), 하간(河間) 등의 무리는 과연 계림국(鷄林國)의 안동부(安東府) 사람들인가.
- 14의 부연
- 낡고 소용없이 된 옛 것만을 추종하는 사람들은 필요와 요구에 따라 새로운 관점과 방법을 취하는 이들을 비난하기만 할 뿐 그들의 기득권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작자는 '과연 그들이 오늘날 조선의 국익을 생각하는 지배층이라는 말인가?"하여 부정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다.
단계 : 원나라 때의 명의 주진형
하간 : 금나라 때의 명의 유완소
소식 : 중국 북송의 문인. 호는 동파.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적벽부'로 유명함.
16.
항간에서 말하는 왕희지의 글씨란, 곧 우리 나라에서 목판에 새긴 필진도(筆陣圖)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도리어 미불이나 동기창의 진짜 필적만 못하다.
- 15의 첨가
17.
옛날, 소식(蘇軾)은 경적(經籍)을 고려에 하사하지 말고 아울러 구입해 가는 것도 금지하도록 주청(奏請)하면서 "이적(夷狄)이 글을 읽으면 그 지식이 진보될 것이다. " 했으니, 어찌 그리도 마음이 좁고 인정이 적었던가.
- 경적 전수에 인색한 소식(도입)
- 주변국의 지식이 진보할까 염려하여 소식이 경전의 유출을 금지할 것을 주청하였다는 내용이다.
18.
그러나 이런 논의가 때로는 중국에 통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경적도 서로 보여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기능을 배우게 하여 그 나라가 부강해지는 일을 하겠는가.
- 기능 전수에 인색한 중국(전개)
- 17에 이어 기능 전수에 인색하였던 중국의 실상을 밝힌 것이다. 경적은 지식 진보, 기능은 국가 부강과 관련되므로 각각 이론적, 현실적인 효용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19.
옛날에는 외국 오랑캐로서 중국에 자제를 보내어 입학시킨 자가 매우 많았다. 근세에도 유구(琉球) 사람들은 중국의 태학(太學)에 들어가서 10년 동안 전문적으로 새로운 문물과 기예를 배웠으며, 일본은 강소성(江蘇省)과 절강성(浙江省)을 왕래하면서 온갖 공장이들의 섬세하고 교묘한 기술을 배워 가기를 힘썼다.
- 유구와 일본의 기예 습득 노력(전개)
- 문물과 기예를 중국으로부터 받아들이려고 노력한 유구와 일본의 예를 중점적으로 서술하였다. 이와 같은 구체적 사례는 뒤에 이어질 주장의 근거가 된다.
유구 : 중국 차오저우(潮州), 취안저우(泉州)의 동쪽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나라. 지금의 대만(臺灣)
또는 류큐(琉球)라는 설이 있다.
20.
이 때문에 유구와 일본은 바다의 한복판인 먼 지역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그 기능이 중국과 대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백성은 부유하고 군대는 강하여 이웃 나라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나타나는 효과가 이처럼 뚜렷하다.
- 기예 습득의 효과 (전개)
- 19의 결과로서, 기예 습득의 구체적인 효과를 상세화한 것이다. 결론을 내세우기 위한 전제·논거의 성격을 지닌다. 지리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유구와 일본이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여 부강한 국가를 이룬 사실은 중국과 근접해 있는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고취하려는 뜻이 숨어 있다.
21.
마침 지금은 중국의 규칙이 탁 트여서 좁지 않은데, 이런 기회를 놓쳐 버리고 도모하지 않았다가 만일 하루 아침에 소식과 같은 자가 나와서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의 한계를 엄격히 하여 금지하는 명령을 내리도록' 건의한다면, 비록 예물을 가지고 폐백을 받들어 그 기술의 찌꺼기나마 배우려 하더라도 어찌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 중국의 기술을 받아들일 좋은 기회(전개)
- 지금은 17. 18과 달리 중국이 기술 전수에 인색하지 않는 상황이므로,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중국의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실호기(勿失好機)'나 '유비무환(有備無患)'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중화(中華)와 이적(夷狄)의 한계를 엄격히 하여 : 중국 민족이 자국을 세계의 중앙에 위치한 문명국이라고 자부하여 '중화'라고 하였고, 중국을 둘러싸고 있는 동서남북의 주변국을 일컬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고 하였다. 이는 자문화 중심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22.
효도와 우애는 타고난 천성에 원래 있는 것이며, 성현들의 책에 자세히 밝혀져 있으니, 진실로 넓혀서 확충(擴充)하고 잘 실천하여 밝힌다면 예의의 아름다운 풍속을 이루게 될 터이니, 이는 참으로 외부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또한 후세 사람들에게 의뢰할 것도 없다. 그러나 백성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나 온갖 공장이들의 기능으로 말하면 중국에 가서 나중에 새로 나온 제도를 배우지 않으면 어리석고 고루한 것을 깨뜨리지 못하여 이익을 펼 수 없을 것이다.
- 중국 제도의 습득의 필요성(주지)
- 중국에서 새로운 제도를 배워 이익을 도모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다. 효도(우애)와 기능을 대비시켜 각각 천성적인 것과 후천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기능 '습득'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다.
23.
이것은 국사를 맡은 자가 마땅히 강구하여야 할 문제이다.
- 국사 경영자에 의한 대책 강구(강조)
- 국사를 맡은 지배층이 기예 습득의 방책을 강구해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어 22에 대한 요약과 강조의 구실을 한다.
<여유당 전서(與猶堂全書) 권 Ⅱ, 논(論)>
이해와 감상
우리 나라에서 중국의 최신 기예를 수용하지 않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기예가 정교해지면 국가가 부강해지는데, 우리는 여러 이유를 들어 새로운 기예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새로운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유구와 일본이 중국의 기예를 배워 부강한 국가를 이루었으니 이를 교훈으로 삼아 중국의 새로운 제도를 배워야 할 것이고, 이 문제는 국사를 경영하는 자가 강구해 나가야 하는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 이 글의 요지이고, 정약용의 현실 개혁론이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서 세 편으로 짜여져 있다. 중국의 선진 기술을 받아들여 백성들의 편리하고 풍족한 생활을 도모할 것을 주장한 논설문이고, 인간은 짐승과 달리 불리한 신체 조건을 타고 태어났지만,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중국의 최신 기예를 받아들어 우리 나라도 유구나 일본처럼 강대하고 부유한 국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연역의 추론 방식과 귀납의 추론을 적절히 구사하고 있다.
심화 자료
정약용(丁若鏞/1762~1836)
조선 후기의 학자·문신. 본관 나주(羅州). 자 미용(美鏞)·송보(頌甫). 초자 귀농(歸農). 호 다산(茶山)·삼미(三眉)·여유당(與猶堂)·사암(俟菴)·자하도인(紫霞道人)·탁옹(翁)·태수(苔)·문암일인(門巖逸人)·철마산초(鐵馬山樵). 가톨릭 세례명 요안. 시호 문도(文度). 광주(廣州) 출생. 1776년(정조 즉위)남인 시파가 등용될 때 호조좌랑(戶曹佐郞)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가환(李家煥) 및 이승훈(李昇薰)을 통해 이익(李瀷)의 유고를 얻어보고 그 학문에 감동되었다. 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經義進土)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고, 84년 이벽(李蘗)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假注書)를 거쳐 검열(檢閱)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같은 남인인 공서파(功西派)의 탄핵을 받고 해미(海美)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持平)으로 등용되고 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水原城) 수축에 기여하였다. 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徐龍輔)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周文謨)사건에 둘째 형 약전(若銓)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金井道察訪)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의 부사직(副司直)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自明疏)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99년 다시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그를 아끼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순조 1) 신유교난(辛酉敎難) 때 장기(長?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黃嗣永帛書事件)에 연루되어 강진(康津)으로 이배되었다. 그 곳 다산(茶山) 기슭에 있는 윤박(尹博)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柳馨遠)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朴趾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北學派)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시재(詩才)에 뛰어나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1910년(융희 4) 규장각제학(提學)에 추증되었고, 59년 정다산기념사업회에 의해 마현(馬峴) 묘전(墓前)에 비가 건립되었다. 저서에 《정다산전서(丁茶山全書)》가 있고, 그 속에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 《흠흠신서(欽欽新書)》 《마과회통(麻科會通)》 《모시강의(毛詩講義)》 《매씨서평(梅氏書平)》 《상서고훈(尙書古訓)》 《상서지원록(尙書知遠錄)》 《상례사전(喪禮四箋)》 《사례가식(四禮家式)》 《악서고존(樂書孤存)》 《주역심전(周易心箋)》 《역학제언(易學諸言)》 《춘추고징(春秋考徵)》 《논어고금주(論語古今注)》 《맹자요의(孟子要義)》 등이 실려 있다.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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