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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 전문 / 안국선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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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서언(序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일월과 성신이 천추의 빛을 잃지 아니하고, 눈을 떠서 땅을 굽어보니 강해와 산악이 만고의 형상을 변치 아니하도다. 어느 봄에 꽃이 피지 아니하며, 어느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아니하리요.

 

우주는 의연히 백대(百代)에 한결같거늘, 사람의 일은 어찌하여 고금이 다르뇨? 지금 세상 사람을 살펴보니 애달프고, 불쌍하고, 탄식하고, 통곡할 만하도다.

 

전인의 말씀을 듣든지 역사를 보든지 옛적 사람은 양심이 있어 천리(天理)를 순종하여 하느님께 가까웠거늘, 지금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지고 헤어나올 줄 몰라서 온 세상이 다 악한 고로, 그름?옳음을 분별치 못하여 악독하기로 유명한 도척(盜甁)이 같은 도적놈은 청천백일에 사마(士馬)를 달려 왕궁 극도에 횡행하되 사람이 보고 이상히 여기지 아니하고, 안자(顔子)같이 착한 사람이 누항(陋巷)에 있어서 한 도시락밥을 먹고 한 표주박물을 마시며 간난을 견디지 못하되 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니, 슬프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거꾸로 되고 충신과 역적이 바뀌었도다. 이같이 천리에 어기어지고 덕의가 없어서 더럽고, 어둡고, 어리석고, 악독하여 금수(禽獸)만도 못한 이 세상을 장차 어찌하면 좋을꼬? 나도 또한 인간의 한 사람이라, 우리 인류사회가 이같이 악하게 됨을 근심하여 매양 성현의 글을 읽어 성현의 마음을 본받으려 하더니, 마침 서창에 곤히 든 잠이 춘풍에 이익한 바 되매 유흥을 금치 못하여 죽장망혜(竹杖芒鞋)로 녹수를 따르고 청산을 찾아서 한곳에 다다르니, 사면에 기화요초는 우거졌고 시냇물 소리는 종종하며 인적이 고요한데, 흰 구름 푸른 수풀 사이에 현판(懸板) 하나가 달렸거늘, 자세히 보니 다섯 글자를 크게 썼으되 '금수회의소'라 하고 그 옆에 문제를 걸었는데, '인류를 논박할 일'이라 하였고, 또 광고를 붙였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물건이든지 의견이 있거든 의견을 말하고 방청을 하려거든 방청하되 각기 자유로 하라' 하였는데, 그곳에 모인 물건은 길짐승?날짐승?버러지?물고기?풀?나무?돌 등물이 다 모였더라. 혼자 마음으로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대저 사람은 만물지중에 가장 귀하고 제일 신령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우며 하느님을 대신하여 세상 만물의 금수?초목까지라도 다 맡아 다스리는 권능이 있고, 또 사람이 만일 패악(悖惡)한 일이 있으면 천히 여겨 금수 같은 행위라 하며, 사람이 만일 어리석고 하는 일이 없으면 초목같이 아무 생각도 없는 물건이라고 욕하나니, 그러면 금수?초목은 천하고 사람은 귀하며 금수?초목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은 신령하거늘, 지금 세상은 바뀌어서 금수?초목이 도리어 사람의 무도패덕함을 공격하려 하니, 괴상하고 부끄럽고 절통(切痛) 분하여 열었던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섰더니,

 

개회 취지(開會趣旨)

 

별안간 뒤에서 무엇이 와락 떠다밀며,

"어서 들어갑시다. 시간 되었소."

하고 바삐 들어가는 서슬에 나도 따라 들어가서 방청석에 앉아 보니, 각색 길짐승?날짐승?모든 버러지?물고기 등물이 꾸역꾸역 들어와서 그 안에 빽빽하게 서고 앉았는데, 모인 물건은 형형색색이나 좌석은 제제창창(濟濟璽璽)한데, 장차 개회하려는지 규칙 방망이 소리가 똑똑 나더니, 회장인 듯한 한 물건이 머리에는 금색이 찬란한 큰 관을 쓰고, 몸에는 오색이 영롱한 의복을 입은 이상한 태도로 회장석에 올라서서 한 번 읍하고,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형용이 단정하게 딱 서서 여러 회원을 대하여 하는 말이,

 

"여러분이여, 내가 지금 여러분을 청하여 만고에 없던 일대 회의를 열 때에 한마디 말씀으로 개회 취지를 베풀려 하오니 재미있게 들어주시기를 바라오.

 

대저 우리들이 거주하여 사는 이 세상은 당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조화로 만드신 것이라. 세계 만물을 창조하신 조화주를 곧 하느님이라 하나니, 일만 이치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께서 세계를 만드시고 또 만물을 만들어 각색 물건이 세상에 생기게 하셨으니, 이같이 만드신 목적은 그 영광을 나타내어 모든 생물로 하여금 인자한 은덕을 베풀어 영원한 행복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런고로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초목이든지 무슨 물건이든지 다 귀하고 천한 분별이 없은즉,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다 할 이치가 있으리요. 다 각각 천지의 기운을 타고 생겨서 이 세상에 사는 것인즉, 다 각기 천지 본래의 이치만 좇아서 하느님의 뜻대로 본분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제 몸의 행복을 누리고,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낼지니, 그 중에도 사람이라 하는 물건은 당초에 하느님이 만드실 때에 특별히 영혼과 도덕심을 넣어서 다른 물건과 다르게 하셨은즉, 사람들은 더욱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여 천리정도(天理正道)를 지키고 착한 행실과 아름다운 일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할 터인데, 지금 세상 사람의 하는 행위를 보니 그 하는 일이 모두 악하고 부정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하느님의 영광을 더럽게 하며 은혜를 배반하여 제반 악증이 많도다.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여 벼슬만 하려 하고, 제 나라가 다 망하든지 제 동포가 다 죽든지 불고(不顧)하는 역적놈도 있으며,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해롭게 하여 나랏일을 결딴내는 소인놈도 있으며, 부모는 자식을 사랑치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를 효도로 섬기지 아니하며 형제간에 재물로 인연하여 골육상잔(骨肉相殘)하기를 일삼고, 부부간에 음란한 생각으로 화목지 아니한 사람이 많으니, 이 같은 인류에게 좋은 영혼과 제일 귀하다 하는 특권을 줄 것이 무엇이오. 하느님을 섬기던 천사도 악한 행실을 하다가 떨어져서 마귀가 된 일이 있거든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있소. 태고적 맨 처음에 사람을 내실 적에는 영혼과 덕의심을 주셔서 만물 중에 제일 귀하다 하는 특권을 주셨으되 저희들이 그 권리를 내어 버리고 그 성품을 잃어버리니 몸은 비록 사람의 형상이 그대로 있을지라도 만물 중에 가장 귀하다 하는 인류의 자격은 있다 할 수가 없소. 여러분은 금수라, 초목이라 하여 사람보다 천하다 하나, 하느님이 정하신 법대로 행하여 기는 자는 기고, 나는 자는 날고, 굴에서 사는 자는 깃들임을 침노치 아니하며, 깃들인 자는 굴을 빼앗지 아니하고, 봄에 생겨서 가을에 죽으며, 여름에 나와서 겨울에 들어가니,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천지 이치대로 행하여 정도에 어김이 없은즉, 지금 여러분 금수?초목과 사람을 비교하여 보면 사람이 도리어 낮고 천하며, 여러분이 도리어 귀하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할 수 있소. 사람들이 이같이 제 자격을 잃고도 거만한 마음으로 오히려 만물 중에 제가 가장 귀하다, 높다, 신령하다 하여 우리 족속 여러분을 멸시하니 우리가 어찌 그 횡포를 받으리요.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찬성하여 하느님께 아뢰고 본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회의에서 결의할 안건은 세 가지 문제가 있소.

 

제일,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론하여 분명히 할 일,
제이,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론할 일.
제삼,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인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할 일.

 

이 세 가지 문제를 토론하여 여러분과 사람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하여 회개치 아니하면 그 동물의 사람이라 하는 이름을 빼앗고 이등 마귀라 하는 이름을 주기로 하느님께 상주(上奏)할 터이니, 여러분은 이 뜻을 본받아 이 회의에서 결의한 일을 진행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회장이 개회 취지를 연설하고 회장석에 앉으니, 한 모퉁이에서 우렁찬 소리로 회장을 부르고 일어서서 연단으로 올라간다.

 

 

제1석, 반포의 효(反哺之孝 : 까마귀)

 

프록코트를 입어서 전신이 새까맣고 똥그란 눈이 말똥말똥한데, 물 한 잔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한다.

 

"나는 까마귀올세다. 지금 인류에 대하여 소회(所懷)를 진술할 터인데 반포의 효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잠깐 말씀하겠소. 사람들은 만물 중에 제가 제일이라 하지마는, 그 행실을 살펴볼 지경이면 다 천리(天理)에 어기어져서 하나도 그 취할 것이 없소. 사람들의 옳지 못한 일을 모두 다 들어 말씀하려면 너무 지리하겠기에 다만 사람들의 불효한 것을 가지고 말씀할 터인데, 옛날 동양 성인들이 말씀하기를 효도는 덕의 근본이라, 효도는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 효도는 천하를 다스린다 하였고, 예수교 계명에도 부모를 효도로 섬기라 하였으니, 효도라 하는 것은 자식 된 자가 고연(固然)한 직분으로 당연히 행할 일이올시다. 우리 까마귀의 족속은 먹을 것을 물고 돌아와서 어버이를 기르며 효성을 극진히 하여 망극한 은혜를 갚아서 하느님이 정하신 본분을 지키어 자자손손이 천만 대를 내려가도록 가법(家法)을 변치 아니하는 고로 옛적에 백낙천(白樂天)이라 하는 분이 우리를 가리켜 새 중의 증자(曾子)라 하였고,『본초강목(本草綱目)』에는 자조(慈鳥)라 일컬었으니, 증자라 하는 양반은 부모에게 효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요, 자조라 하는 뜻은 사랑하는 새라 함이니,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함이 하느님의 법이라. 우리는 그 법을 지키고 어기지 아니하거늘,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보면 낱낱이 효자 같으되, 실상 하는 행실을 보면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혹하여 부모의 뜻을 어기며, 형제간에 재물로 다투어 부모의 마음을 상케 하며, 제 한 몸만 생각하고 부모가 주리되 돌아보지 아니하고, 여편네는 학식이라고 조금 있으면 주제넘은 마음이 생겨서 온화?유순한 부덕을 잊어버리고 시집 가서는 시부모 보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물건같이 대접하고, 심하면 원수같이 미워하기도 하니, 인류사회에 효도 없어짐이 지금 세상보다 더 심함이 없도다. 사람들이 일백 행실의 근본 되는 효도를 알지 못하니 다른 것은 더 말할 것 무엇 있소. 우리는 천성이 효도를 주장하는 고로 출천지효성(出天之孝誠) 있는 사람이면 우리가 감동하여 노래자(老萊子)를 도와서 종일토록 그 부모를 즐겁게 하여 주며, 증자의 갓 위에 모여서 효자의 아름다운 이름을 천추에 전케 하였고, 또 우리가 효도만 극진할 뿐 아니라 자고 이래로『사기(史記)』에 빛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니 대강 말씀하오리다.

 

우리가 떼를 지어 논밭으로 내려갈 때 곡식을 해하는 버러지를 없애려고 가건마는 사람들은 미련한 생각에 그 곡식을 파먹는 줄로 아는도다! 서양책력 일천팔백칠십사년의 미국 조류학자 피이르라 하는 사람이 우리 까마귀 족속 이천이백오십팔 마리를 잡아다가 배를 가르고 오장을 꺼내어 해부하여 보고 말하기를 까마귀는 곡식을 해하지 아니하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를 잡아먹는다 하였으니, 우리가 곡식밭에 가는 것은 곡식에 이가 되고 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은 분명하고, 또 우리가 밤중에 우는 것은 공연히 우는 것이 아니요, 나라에서 법령이 아름답지 못하여 백성이 도탄에 침륜(沈淪)하여 천하에 큰 병화가 일어날 징조가 있으면 우리가 아니 울 때에 울어서 사람들이 깨닫고 허물을 고쳐서 세상이 태평무사하기를 희망하고 권고함이요, 강소성(江蘇省) 한산사(寒山寺)에서 달은 넘어가고 서리친 밤에 쇠북을 주둥이로 쪼아 소리를 내서 대망에게 죽을 것을 살려 준 은혜를 갚았고, 한나라 효무제(孝武帝)가 아홉 살 되었을 때에 그 부모는 왕망(王莽)의 난리에 죽고 효무제 혼자 달아날새,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거늘 우리들이 가서 인도하였고, 연(燕) 태사 단이 진(秦)나라에 볼모 잡혀 있을 때에 우리가 머리를 희게 하여 그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고, 진문공(晉文公)이 개자추(介子推)를 찾으려고 면상산〔恥山〕에 불을 놓으매 우리가 연기를 에워싸고 타지 못하게 하였더니, 그 후에 진나라 사람이 그 산에 '은연대'라 하는 집을 짓고 우리의 은덕을 기념하였으며, 당나라 이의부는 글을 짓되 상림에 나무를 심어 우리를 준다 하였었고, 또 물병에 돌을 던지니 이솝이 상을 주고, 탁자의 포도주를 다 먹어도 프랭클린이 사랑하도다. 우리 까마귀의 사적(事蹟)이 이러하거늘, 사람들은 우리 소리를 듣고 흉한 징조라 길한 징조라 함은 저희들 마음대로 하는 말이요, 우리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라. 사람의 일이 흉하든지 길하든지 우리가 울 일이 무엇 있소? 그것은 사람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저희들이 좋지 아니한 때에 흉하게 듣고 하는 말이로다. 사람이 염병이니 괴질이니 앓아서 죽게 된 때에 우리가 어찌하여 그 근처에 가서 울면, 사람들은 못생겨서 저희들이 약도 잘못 쓰고 위생도 잘못하여 죽는 줄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울어서 죽는 줄로만 알고, 저희끼리 욕설하려면 염병에 까마귀 소리라 하니 아, 어리석기는 사람같이 어리석은 것은 세상에 또 없도다. 요?순(堯舜) 적에도 봉황이 나왔고, 왕망이 때도 봉황이 나오매 요?순적 봉황은 상서라 하고, 왕망 때 봉황은 흉조처럼 알았으니, 물론 무슨 소리든지 사람이 근심 있을 때에 들으면 흉조로 듣고, 좋은 일 있을 때에 들으면 상서롭게 듣는 것이라. 무엇을 알고 하는 말은 아니요, 길하다 흉하다 하는 것은 듣는 저희에게 있는 것이요, 하는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니어늘, 사람들은 말하기를, 까마귀는 흉한 일이 생길 때에 와서 우는 것이라 하여 듣기 싫어하니, 사람들은 이렇듯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 책망하여 무엇 하겠소. 또 우리는 아침에 일찍 해뜨기 전에 집을 떠나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여 부모 봉양도 하고,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집도 짓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도 잡아서 하느님 뜻을 받들다가 저녁이 되면 반드시 내 집으로 돌아가되, 나가고 돌아올 때에 일정한 시간을 어기지 않건마는, 사람들은 점심때까지 자빠져서 잠을 자고, 한번 집을 떠나서 나가면 혹은 협잡질하기, 혹은 술장보기, 혹은 계집의 집 뒤지기, 혹은 노름하기, 세월이 가는 줄을 모르고 저희 부모가 진지를 잡수었는지, 처자가 기다리는지 모르고 쏘다니는 사람들이 어찌 우리 까마귀의 족속만 하리요. 사람은 일 아니하고 놀면서 잘 입고 잘 먹기를 좋아하되, 우리는 제가 벌어 제가 먹는 것이 옳은 줄 아는 고로 결단코 우리는 사람들 하는 행위는 아니하오. 여러분도 다 아시거니와 우리가 사람에게 업수이 여김을 받을 까닭이 없음을 살피시오."

손뼉 소리에 연단에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아리땁고도 밉살스러운 소리로 회장을 부르면서 강똥강똥 연설단을 향하여 올라가니, 어여쁜 태도는 남을 가히 호릴 만하고 갸웃거리는 모양은 본색이 드러나더라.

 

 

제2석, 호가호위(狐假虎威 : 여우)

 

여우가 연설단에 올라서서 기생이 시조를 부르려고 목을 가다듬는 것처럼 기침 한 번을 캑 하더니 간사한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한다.

 

"나는 여우올시다. 점잖으신 여러분 모이신 데 감히 나와서 연설하옵기는 방자한 듯하오나, 저 인류에게 대하여 소회가 있삽기 호가호위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말씀을 하려 하오니, 비록 학문은 없는 말이나 용서하여 들어 주시기 바라옵니다.

 

사람들이 옛적부터 우리 여우를 가리켜 말하기를, 요망한 것이라 간사한 것이라 하여 저희들 중에도 요망하든지 간사한 자를 보면 여우 같은 사람이라 하니, 우리가 그 더럽고 괴악한 이름을 듣고 있으나 우리는 참 요망하고 간사한 것이 아니요, 정말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사람이오. 지금 우리와 사람의 행위를 비교하여 보면 사람과 우리와 명칭을 바꾸었으면 옳겠소.

 

사람들이 우리를 간교하다 하는 것은 다름아니라『전국책(戰國策)』이라 하는 책에 기록하기를, 호랑이가 일백 짐승을 잡아먹으려고 구할새, 먼저 여우를 얻은지라, 여우가 호랑이더러 말하되, 하느님이 나로 하여금 모든 짐승의 어른이 되게 하였으니, 지금 자네가 나의 말을 믿지 아니하거든 내 뒤를 따라와 보라. 모든 짐승이 나를 보면 다 두려워하느니라. 호랑이가 여우의 뒤를 따라가니, 과연 모든 짐승이 보고 벌벌 떨며 두려워하거늘, 호랑이가 여우의 말을 정말로 알고 잡아먹지 못한지라. 이는 저들이 여우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 아니라 여우 뒤의 호랑이를 보고 두려워한 것이니,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서 모든 짐승으로 하여금 두렵게 함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빙자하여 우리 여우더러 간사하니 교활하니 하되, 남이 나를 죽이려 하면 어떻게 하든지 죽지 않도록 주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호랑이가 아무리 산중 영웅이라 하지마는 우리에게 속은 것만 어리석은 일이라. 속인 우리야 무슨 불가한 일이 있으리요.

 

지금 세상 사람들은 당당한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야 할 터인데, 외국의 세력을 빌려 의뢰하여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어 하려 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여 제 나라를 망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결단코 우리 여우만 못한 물건들이라 하옵네다. (손뼉 소리 천지 진동)

 

또 나라로 말할지라도 대포와 총의 힘을 빌려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속국도 만들고 보호국도 만드니, 불한당이 칼이나 육혈포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 있소? 각국이 평화를 보전한다 하여도 하느님의 위엄을 빌려서 도덕상으로 평화를 유지할 생각은 조금도 없고, 전혀 병장기의 위엄으로 평화를 보전하려 하니 우리 여우가 호랑이의 위엄을 빌려서 제 몸의 죽을 것을 피한 것과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그르오? 또 세상 사람들이 구미호(九尾狐)를 요망하다 하나, 그것은 대단히 잘못 아는 것이라. 옛적 책을 볼지라도 꼬리 아홉 있는 여우는 상서라 하였으니,『잠학거류서』라 하는 책에는 말하였으되, 구미호가 도(道) 있으면 나타나고, 나올 적에는 글을 물어 상서를 주문에 지었다 하였고, 왕포『사자강덕론』이라 하는 책에는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구미호를 응하여 동편 오랑캐를 돌아오게 하였다 하였고,『산해경(山海經)』이라 하는 책에는 청구국(靑丘國)에 구미호가 있어서 덕이 있으면 오느니라 하였으니, 이런 책을 볼지라도 우리 여우를 요망한 것이라 할 까닭이 없거늘, 사람들이 무식하여 이런 것은 알지 못하고 여우가 천 년을 묵으면 요사스러운 여편네로 화한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옛적에 음란한 계집이 죽어서 여우로 태어났다 하니, 이런 거짓말이 어디 또 있으리요. 사람들은 음란하여 별일이 많되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우리는 분수를 지켜서 다른 짐승과 교통하는 일이 없고, 우리뿐 아니라 여러분이 다 그러하시되 사람이라 하는 것들은 음란하기가 짝이 없소. 어떤 나라 계집은 개와 통간한 일도 있고, 말과 통간한 일도 있으니, 이런 일은 천하 만국에 한두 사람뿐이겠지마는, 한 숟가락 국으로 온 솥의 맛을 알 것이라. 근래에 덕의가 끊어지고 인도(人道)가 없어져서 세상이 결딴난 일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사람의 행위가 그러하되 오히려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짐승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대갓집 규중 여자가 논다니로 놀아나서 이 사람 저 사람 호리기와 각부아문(各部衙門) 공청에서 기생 불러 놀음 놀기, 전정(前程)이 만리 같은 각 학교 학도들이 청루(靑樓) 방에 다니기와, 제 혈육으로 난 자식을 돈 몇 푼에 욕심나서 논다니로 내어놓기, 이런 행위를 볼작시면 말하는 내 입이 다 더러워지오. 에 더러워, 천지간에 더럽고 요망하고 간사한 것은 사람이오. 우리 여우는 그렇지 않소. 저들끼리 간사한 사람을 보면 여우라 하니, 그러한 사람을 여우라 할진댄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여우 아닌 사람이 몇몇이나 있겠소? 또 저희들은 서로 여우 같다 하여도 가만히 듣고 있으되, 만일 우리더러 사람 같다 하면 우리는 그 이름이 더러워서 아니 받겠소. 내 소견 같으면 이후로는 사람을 사람이라 하지 말고 여우라 하고, 우리 여우를 사람이라 하는 것이 옳은 줄로 아나이다."

 

 

 

제3석, 정와어해(井蛙語海 : 개구리)

 

여우가 연설을 그치고 할금할금 돌아보며 제자리로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회장을 부르고 아장아장 걸어와서 연단 위에 깡충 뛰어올라간다. 눈은 톡 불거지고 배는 똥똥하고 키는 작달막한데 눈을 깜작깜작하며 입을 벌죽벌죽하고 연설한다.

"나의 성명은 말씀 아니하여도 여러분이 다 아시리다. 나는 출입이라고는 미나리논밖에 못 가본 고로 세계 형편도 모르고, 또 맹꽁이를 이웃하여 산 고로 구학문의 맹자왈 공자왈은 대강 들었으나 신학문은 아는 것이 변변치 아니하나, 지금 정와의 어해라 하는 문제로 대강 인류사회를 논란코자 하옵네다.

 

사람들은 거만한 마음이 많아서 저희들이 천하에 제일이라고, 만물 중에 저희가 가장 귀하다고 자칭하지마는, 제 나랏일도 잘 모르면서 양비대담(攘臂大談)하고 큰소리 탕탕 하고 주제넘은 말 하는 것들 우습디다. 우리 개구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우물 안 개구리와 바다 이야기 할 수 없다 하니, 항상 우물 안에 있는 개구리는 우물이 좁은 줄만 알고 바다에는 가보지 못하여 바다가 큰지 작은지, 넓은지 좁은지, 긴지 짧은지, 깊은지 얕은지 알지 못하나 못 본 것을 아는 체는 아니하거늘, 사람들은 좁은 소견을 가지고 외국 형편도 모르고 천하 대세도 살피지 못하고 공연히 떠들며, 무엇을 아는 체하고 나라는 다 망하여 가건마는 썩은 생각으로 갑갑한 말만 하는도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제 나라 안에 있어서 제 나랏일도 다 알지 못하면서 보도 듣도 못한 다른 나라 일을 다 아노라고 추척대니 가증하고 우습도다. 연전에 어느 나라 어떤 대관이 외국 대관을 만나서 수작할새 외국 대관이 묻기를,

 

'대감이 지금 내부대신으로 있으니 전국의 인구와 호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한데 그 대관이 묵묵히 무언하는지라, 또 묻기를,

 

'대감이 전에 탁지대신(度支大臣)을 지내었으니 전국의 결총(結總)과 국고의 세출?세입이 얼마나 되는지 아시오?'

한데 그 대관이 또 아무 말도 못하는지라, 그 외국 대관이 말하기를,

 

'대감이 이 나라에 나서 이 정부의 대신으로 이같이 모르니 귀국을 위하여 가석하도다.'

 

하였고, 작년에 어느 나라 내부에서 각 읍에 훈령하고 부동산을 조사하여 보아라 하였더니, 어떤 군수는 보하기를, '이 고을에는 부동산이 없다' 하여 일세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이같이 제 나라 일도 크나 작으나 도무지 아는 것 없는 것들이 일본이 어떠하니, 아라사가 어떠하니, 구라파가 어떠하니, 아메리카가 어떠하니 제가 가장 아는 듯이 지껄이니 기가 막히오. 대저 천지의 이치는 무궁무진하여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밖에 아는 이가 없는지라,『논어(論語)』에 말하기를 하느님께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 하였는데, 그 주(註)에 말하기를, 하느님은 곧 이치라 하였으니 하느님이 곧 이치요, 하느님이 곧 만물 이치의 주인이라. 그런고로 하느님은 곧 조화주요, 천지만물의 대 주제시니 천지만물의 이치를 다 아시려니와, 사람은 다만 천지간의 한 물건인데 어찌 이치를 알 수 있으리요. 여간 좀 연구하여 아는 것이 있거든 그 아는 대로 세상에 유익하고 사회에 효험 있게 아름다운 사업을 영위할 것이어늘, 조그만치 남보다 먼저 알았다고 그 지식을 이용하여 남의 나라 빼앗기와 남의 백성 학대하기와 군함?대포를 만들어서 악한 일에 종사하니, 그런 나라 사람들은 당초에 사람 되는 영혼을 주지 아니하였더면 도리어 좋을 뻔하였소. 또 더욱 도리에 어기어지는 일이 있으니, 나의 지식이 저 사람보다 조금 낫다고 하면 남을 가르쳐 준다 하고 실상은 해롭게 하며, 남을 인도하여 준다 하고 제 욕심 채우는 일만 하여, 어떤 사람은 제 나라 형편도 모르면서 타국 형편을 아노라고 외국 사람을 부동하여, 임금을 속이고 나라를 해치며 백성을 위협하여 재물을 도둑질하고 벼슬을 도둑하며 개화하였다 자칭하고, 양복 입고, 단장 짚고, 궐련 물고, 시계 차고, 살죽경 쓰고, 인력거나 자행거 타고, 제가 외국 사람인 체하여 제 나라 동포를 압제하며, 혹은 외국 사람 상종함을 영광으로 알고 아첨하며, 제 나라 일을 변변히 알지도 못하는 것을 가르쳐 주며, 여간 월급냥이나 벼슬낱이나 얻어 하느라고 남의 나라 정탐꾼이 되어 애매한 사람 모함하기, 어리석은 사람 위협하기로 능사를 삼으니, 이런 사람들은 안다 하는 것이 도리어 큰 병통이 아니오?

 

우리 개구리의 족속은 우물에 있으면 우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미나리논에 있으면 미나리논에 있는 분수를 지키고, 바다에 있으면 바다에 있는 분수를 지키나니, 그러면 우리는 사람보다 상등이 아니오니까. (손뼉 소리 짤각짤각)

 

또 무슨 동물이든지 자식이 아비 닮는 것은 하느님의 정하신 뜻이라. 우리 개구리는 대대로 자식이 아비 닮고 손자가 할아비를 닮되, 형용도 똑같고 성품도 똑같아서 추호도 틀리지 않거늘, 사람의 자식은 제 아비 닮는 것이 별로 없소. 요 임금의 아들이 요 임금을 닮지 아니하고, 순 임금의 아들이 순 임금과 같지 아니하고, 하우 씨와 은왕 성탕(成湯)은 성인이로되, 그 자손 중에 포학하기로 유명한 걸(桀)?주(紂) 같은 이가 났고, 왕건(王建) 태조는 영웅이로되 왕우(王偶)?왕창(王昌)이 생겼으니, 일로 보면 개구리 자손은 개구리를 닮되 사람의 새끼는 사람을 닮지 아니하도다. 그러한즉 천지 자연의 이치를 지키는 자는 우리가 사람에게 비교할 것이 아니요, 만일 아비를 닮지 아니한 자식을 마귀의 자식이라 할진대 사람의 자식은 다 마귀의 자식이라 하겠소.

 

또 우리는 관가 땅에 있으면 관가를 위하여 울고, 사사(私私) 땅에 있으면 사사를 위하여 울거늘, 사람은 한 번만 벼슬자리에 오르면 붕당(朋黨)을 세워서 권리 다툼하기와, 권문세가에 아첨하러 다니기와, 백성을 잡아다가 주리 틀고 돈 빼앗기와 무슨 일을 당하면 청촉 듣고 뇌물 받기와 나랏돈 도적질하기와 인민의 고혈을 빨아먹기로 종사하니, 날더러 도적놈 잡으라 하면 벼슬하는 관인들은 거반 다 감옥서 감이요, 또 우리들의 우는 것이 울 때에 울고, 길 때에 기고, 잠잘 때에 자는 것이 천지 이치에 합당하거늘, 불란서라 하는 나라 양반들이 우리 개구리의 우는 소리를 듣기 싫다고 백성들을 불러 개구리를 다 잡으라 하다가, 마침내 혁명당이 일어나서 난리가 되었으니, 사람같이 무도한 것이 세상에 또 있으리요? 당나라 때에 한 사람이 우리를 두고 글을 짓되, 개구리가 도의 맛을 아는 것 같아여 연꽃 깊은 곳에서 운다 하였으니, 우리의 도덕심 있는 것은 사람도 아는 것이라. 우리가 어찌 사람에게 굴복하리요. 동양 성인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는 것은 안다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 하는 것이 정말 아는 것이라 하였으니, 저희들이 천박한 지식으로 남을 속이기를 능사로 알고 천하 만사를 모두 아는 체하니, 우리는 이같이 거짓말은 하지 아니하오. 사람이란 것은 하느님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악한 일만 많이 하니 그대로 둘 수 없으니, 차후는 사람이라 하는 명칭을 주지 마는 것이 대단히 옳을 줄로 생각하오."

 

넙죽넙죽 하는 말이 소진?장의가 오더라도 당치 못할러라. 말을 그치고 내려오니 또 한편에서 회장을 부르고 나는 듯이 연설단에 올라간다.

 

 

 

제4석, 구밀복검(口蜜腹劒 : 벌)

 

허리는 잘록하고 체격은 조그마한데 두 어깨를 떡 벌리고 청랑(淸朗)한 소리로 머리를 까딱까딱하면서 연설한다.

"나는 벌이올시다. 지금 구밀복검이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잠깐 두어 마디 말씀할 터인데, 먼저 서양서 들은 이야기를 잠깐 하오리다.

 

당초에 천지개벽할 때에 하느님이 에덴 동산을 준비하사 각색 초목과 각색 짐승을 그 안에 두고 사람을 만들어 거기서 살게 하시니, 그 사람의 이름은 아담이라 하고 그 아내는 하와라 하였는데,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의 조상이라. 사람은 특별히 모양이 하느님과 같고 마음도 하느님과 같게 하였으니, 사람은 곧 하느님의 아들이라 하는 뜻을 잊지 말고 하느님의 마음을 본받아 지극히 착하게 되어야 할 터인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지라, 우리 벌의 조상은 죄도 아니 짓고 하느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각색 초목의 꽃으로 우리의 전답을 삼고 꿀을 농사하여 양식을 만들어 복락을 누리니, 조상 적부터 우리가 사람보다 나은지라, 세상이 오래되어 갈수록 사람은 하느님과 더욱 멀어지고, 오늘날 와서는 거죽은 사람의 형용이 그대로 있으나 실상은 시랑(豺狼)과 마귀가 되어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고, 서로 잡아먹어서, 약한 자의 고기는 강한 자의 밥이 되고, 큰 것은 작은 것을 압제하여 남의 권리를 늑탈하여 남의 재산을 속여 빼앗으며, 남의 토지를 앗아 가며,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망케 하니, 그 흉측하고 악독함을 무엇이라 이르겠소? 사람들이 우리 벌을 독한 사람에게 비유하여 말하기를, 입에 꿀이 있고 배에 칼이 있다 하나 우리 입의 꿀은 남을 꾀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양식을 만드는 것이요, 우리 배의 칼은 남을 공연히 쏘거나 찌르는 것이 아니라 남이 나를 해치려 하는 때에 정당방위로 쓰는 칼이요, 사람같이 입으로는 꿀같이 말을 달게 하고 배에는 칼 같은 마음을 품은 우리가 아니오. 또 우리의 입은 항상 꿀만 있으되 사람의 입은 변화가 무쌍하여 꿀같이 단 때도 있고, 고추같이 매운 때도 있고, 칼같이 날카로운 때도 있고, 비상같이 독한 때도 있어서, 마주 대하였을 때에는 꿀을 들어붓는 것같이 달게 말하다가 돌아서면 흉보고, 욕하고, 노여워하고, 악담하며, 좋아 지낼 때에는 깨소금 항아리같이 고소하고 맛있게 수작하다가, 조금만 미흡한 일이 있으면 죽일 놈 살릴 놈 하며 무성포(無聲砲)가 있으면 곧 놓아 죽이려 하니 그런 악독한 것이 어디 또 있으리요. 에, 여러분, 여보시오, 그래, 우리 짐승 중에 사람들처럼 그렇게 악독한 것들이 있단 말이오? (손뼉 소리 귀가 막막)

 

사람들이 서로 욕설하는 소리를 들으면 참 귀로 들을 수 없소. 별 흉악망측한 말이 많소. '빠가', '갓뎀' 같은 욕설은 오히려 관계치 않소. '네밀 붙을 놈', '염병에 땀을 못 낼 놈' 하는 욕설은 제 입을 더럽히고 제 마음 악한 줄을 모르고 얼씬하면 이런 욕설을 함부로 하니 어떻게 흉악한 소리오. 에, 사람의 입에는 도덕상 좋은 말은 별로 없고 못된 소리만 쓸데없이 지저귀니 그것들을 사람이라고? 그것들을 만물 중에 가장 귀한 것이라고? 우리는 천지간의 미물이로되 그렇지는 않소. 또 우리는 임금을 섬기되 충성을 다하고, 장수를 뫼시되 군령이 분명하여, 다 각각 직업을 지켜 일을 부지런히 하여 주리지 아니하거늘, 어떤 나라 사람들은 제 임금을 죽이고 역적의 일을 하며 제 장수의 명령을 복종치 아니하고 난병도 되며, 백성들은 게을러서 아무 일도 아니하고 공연히 쏘다니며 놀고 먹고 놀고 입기 좋아하며, 술이나 먹고, 노름이나 하고, 계집의 집이나 찾아다니고, 협잡이나 하고, 그렁저렁 세월을 보내니, 집이 구차하고 나라가 간난하니 사람으로 생겨나서 우리 벌들보다 낫다 하는 것이 무엇이오? 서양의 어느 학자가 우리를 두고 노래를 지었으니,

 

아침 이슬 저녁 볕에
이꽃 저꽃 찾아가서
부지런히 꿀을 물고
제 집으로 돌아와서
반은 먹고 반은 두어
겨울 양식 저축하여
무한 복락 누릴 때에
하느님의 은혜라고
빛난 날개 좋은 소리
아름답게 찬미하네

 

그래, 사람 중에 사람스러운 것이 몇이나 있소? 우리는 사람들에게 시비 들을 것 조금도 없소. 사람들의 악한 행위를 말하려면 끝이 없겠으나 시간이 부족하여 그만둡네다."

 

 

제5석, 무장공자(無腸公子 : 게)

 

벌이 연설을 그치고 미처 연설단에 내려서기 전에 또 한편에서 회장을 부르고 나오니, 모양이 기괴하고 눈에 영채(映彩)가 있어 힘센 장수같이 두 팔을 쩍 벌리고 어깨를 추썩추썩하며 하는 말이,

 

"나는 게올시다. 지금 무장공자라 하는 문제로 연설할 터인데, 무장공자라 하는 말은 창자 없는 물건이라 하는 말이니, 옛적에 포박자(抱朴子)라 하는 사람이 우리 게의 족속을 가리켜 무장공자라 하였으니 대단히 무례한 말이로다. 그래, 우리는 창자가 없고 사람들은 창자가 있소. 시방 세상 사는 사람 중에 옳은 창자 가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소? 사람의 창자는 참 썩고 흐리고 더럽소. 의복은 능라주의로 지를 흐르게 잘 입어서 외양은 좋아도 다 가죽만 사람이지 그 속에는 똥밖에 아무것도 없소. 좋은 칼로 배를 가르고 그 속을 보면,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오. 지금 어떤 나라 정부를 보면 깨끗한 창자라고는 아마 몇 개가 없으리다. 신문에 그렇게 나무라고, 사회에서 그렇게 시비하고, 백성이 그렇게 원망하고, 외국 사람이 그렇게 욕들을 하여도 모르는 체하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오? 그 정부에 옳은 마음 먹고 벼슬하는 사람 누가 있소? 한 사람이라도 있거든 있다고 하시오. 만판 경륜(經綸)이 임금 속일 생각, 백성 잡아먹을 생각, 나라 팔아먹을 생각밖에 아무 생각 없소. 이같이 썩고 더럽고 똥만 들어서 구린내가 물큰물큰 나는 창자는 우리의 없는 것이 도리어 낫소. 또 욕을 보아도 성낼 줄도 모르고, 좋은 일을 보아도 기뻐할 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소. 남의 압제를 받아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되 깨닫고 분한 마음 없고, 남에게 그렇게 욕을 보아도 노여워할 줄 모르고 종 노릇 하기만 좋게 여기고 달게 여기며, 관리에 무례한 압박을 당하여도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라 하겠소? 우리는 창자가 없다 하여도 남이 나를 해치려 하면 죽더라도 가위로 집어 한 놈 물고 죽소. 내가 한번 어느 나라에 지나다 보니 외국 병정이 지나가는데, 그 나라 부인을 건드려 젖통이를 만지려 하매 그 부인이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한즉, 그 병정이 발로 차고 손으로 때려서 행악(行惡)이 무쌍한지라, 그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서 그것을 구경만 하고 한 사람도 대들어 그 부인을 도와 주고 구원하여 주는 사람이 없으니, 그 사람들은 그 부인이 외국 사람에게 당하는 것을 상관없는 줄로 알아서 그러한지 겁이 나서 그러한지 결단코 남의 일이 아니라 저의 동포가 당하는 일이니 저희들이 당함이어늘, 그것을 보고 분낼 줄 모르고 도리어 웃고 구경만 하니, 그 부인의 오늘날 당하는 욕이 내일 제 어미나 제 아내에게 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는가? 이런 것들이 창자 있다고 사람이라 자긍(自矜)하니 허리가 아파 못 살겠소. 창자 없는 우리 게는 어찌하면 좋겠소? 나라에 경사가 있으되 기뻐할 줄 알지 못하여 국기 하나 내어 꽂을 줄 모르니 그것이 창자 있는 것이오? 그런 창자는 부럽지 않소. 창자 없는 우리 게의 행한 사적을 좀 들어 보시오. 송나라 때 추호라 하는 사람이 채경에서 사로잡혀 소주로 귀양 갈 때 우리가 구원하였으며, 산주구세라 하는 때에 한 처녀가 죽게 된 것을 살려 내느라고 큰 뱀을 우리 가위로 잘라 죽였으며, 산신과 싸워서 호인의 배를 구원하였고, 객사한 송장을 드러내어 음란한 계집의 죄를 발각하였으니, 우리의 행한 일은 다 옳고 아름다운 일이오. 사람같이 더러운 일은 하지 않소. 또 사람들도 우리의 행위를 자세히 아는 고로 '게도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 아니한다'는 속담이 있소. 참 그러하지요. 우리는 암만 급하더라도 들어갈 구멍이라야 들어가지, 부당한 구멍에는 들어가지 않소. 사람들을 보면 부당한 데로 들어가는 사람이 많소. 부모 처자를 내버리고 중이 되어 산 속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고, 여염(閭閻)집 부인네들은 음란한 생각으로 불공한다 핑계하고 절간 초막으로 들어가는 이도 있고, 명예 있는 신사라 자칭하고 쓸데없는 돈 내버리러 기생집에 들어가는 이도 있고, 옳은 길 내버리고 그른 길로 들어가는 사람, 옳은 종교 싫다 하고 이단으로 들어가는 사람, 돌을 안고 못으로 들어가는 사람, 섶을 지고 불로 들어가는 사람,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당연히 들어갈 데와 못 들어갈 데를 분별치 못하고 못 들어갈 데를 들어가서 화를 당하고 패를 보고 해를 끼치니, 이런 사람들이 무슨 창자 있노라고 우리의 창자 없는 것을 비웃소? 지금 사람들을 보면 그 창자가 다 썩어서 미구(未久)에 창자 있는 사람은 한 개도 없이 다 무장공자가 될 것이니, 이 다음에는 사람더러 무장공자라 불러야 옳겠소."

 

 

제6석, 영영지극(營營之極 : 파리)

 

게가 입에서 거품이 부걱부걱 나오며 수용산출(水湧山出)로 하던 말을 그치고 엉금엉금 기어 내려가니, 파리가 또 회장을 부르고 나는 듯이 연단에 올라가서 두 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을 한다.

 

"나는 파리올시다. 사람들이 우리 파리를 가리켜 말하기를, 파리는 간사한 소인이라 하니, 대저 사람이라 하는 것들은 저의 흉은 살피지 못하고 다만 남의 말은 잘하는 것들이오. 간사한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가진 것들은 사람들이오. 우리는 결단코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가진 것이 아니오.『시전(詩傳)』이라 하는 책에 말하기를, 영영한 푸른 파리가 횃대에 앉았다 하였으니, 이것은 우리를 가리켜 한 말이 아니라 사람들을 비유한 말이오. 옛글에 '방에 가득한 파리를 쫓아도 없어지지 않는다' 하는 말도 우리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사람 중의 간사한 소인을 가리켜 한 말이오. 우리는 결코 간사한 일은 하지 아니하였소마는, 인간에는 참 소인이 많습디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여 임금을 속인 것이 비단 조고 한 사람뿐 아니라, 지금 망하여 가는 나라 조정을 보면 온 정부가 다 조고 같은 간신이요, 천자를 끼고 제후에게 호령함이 또한 조조(曹操) 한 사람뿐 아니라, 지금은 도덕은 떨어지고 효박한 풍기를 보면 온 세계가 다 조조 같은 소인이라 웃음 속에 칼이 있고 말 속에 총이 있어, 친구라고 사귀다가 저 잘되면 차버리고, 동지라고 상종타가 남 죽이고 저 잘되기, 누구누구는 빈천지교(貧賤之交) 저버리고 조강지처 내쫓으니 그것이 사람이며, 아무아무 유지지사(有志之士) 고발하여 감옥서에 몰아넣고 저 잘되기 희망하니, 그것도 사람인가? 쓸개에 가 붙고 간에 가 붙어 요리조리 알씬알씬하는 사람 정말 밉기도 밉습디다. 여러분도 다 아시거니와 그래 공담(公談)으로 말하자면 우리가 소인이오, 사람들이 간물(奸物)이오? 생각들 하여 보시오. 또 우리는 먹을 것을 보면 혼자 먹는 법 없소. 여러 족속을 청하고 여러 친구를 불러서 화락한 마음으로 한가지로 먹지마는, 사람들은 이(利) 끝만 보면 형제간에도 의가 상하고 일가간에도 정이 없어지며, 심한 자는 서로 골육상쟁하기를 예사로 아니, 참 기가 막히오. 동포끼리 서로 사랑하고, 서로 구제하는 것은 하느님의 이치어늘 사람들은 과연 저의 동포끼리 서로 사랑하는가? 저들끼리 서로 빼앗고, 서로 싸우고, 서로 시기하고, 서로 흉보고, 서로 총을 놓아 죽이고, 서로 칼로 찔러 죽이고, 서로 피를 빨아 마시고, 서로 살을 깎아 먹되 우리는 그렇지 않소. 세상에 제일 더러운 것은 똥이라 하지마는, 우리가 똥을 눌 때 남이 다 보고 알도록 흰 데는 검게 누고, 검은 데는 희게 누어서 남을 속일 생각은 하지 않소. 사람들은 똥보다 더 더러운 일을 많이 하지마는 혹 남의 눈에 보일까, 남의 입에 오르내릴까 겁을 내어 은밀히 하되,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신 하느님은 먼저 아시고 계시오. 옛적에 유형이라 하는 사람은 부채를 들고 참외에 앉은 우리를 쫓고, 왕사라 하는 사람은 칼을 빼어 먹을 먹는 우리를 쫓을새, 저 사람들이 그렇게 쫓되 우리가 가지 아니함을 성내어 하는 말이, 파리는 쫓아도 도로 온다 미워하니, 저희들이 쫓을 것은 쫓지 아니하고 아니 쫓을 것은 쫓는도다. 사람들은 우리를 쫓으려 할 것이 아니라, 불가불 쫓아야 할 것이 있으니, 사람들아, 부채를 놓고 칼을 던지고 잠깐 내 말을 들어라. 너희들이 당연히 쫓을 것은 너희 마음을 수고롭게 하는 마귀니라. 사람들아 사람들아, 너희들은 너희 마음속에 있는 물욕을 쫓아 버려라. 너희 머릿속에 있는 썩은 생각을 내어 쫓으라. 너희 조정에 있는 간신들을 쫓아 버려라. 너희 세상에 있는 소인들을 내어 쫓으라. 참외가 다 무엇이며, 먹이 다 무엇이냐? 사람들아 사람들아, 우리 수십억만 마리가 일제히 손을 비비고 비나니, 우리를 미워하지 말고 하느님이 미워하시는 너희를 해치는 여러 마귀를 쫓으라. 손으로만 빌어서 아니 들으면 발로라도 빌겠다."

 

의기가 양양하여 사람을 저희 똥만치도 못하게 나무라고 겸하여 충고의 말로 권고하고 내려간다.

 

 

제7석,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호랑이)

 

웅장한 소리로 회장을 부르니 산천이 울린다. 연단에 올라서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좌중을 내려다보니 눈알이 등불 같고 위풍이 늠름한데, 주홍 같은 입을 떡 벌리고 어금니를 부지직 갈며 연설하는데, 좌중이 종용하다.

 

"본원의 이름은 호랑인데 별호는 산군이올시다. 여러분 중에도 혹 아시는 이도 있을 듯하오. 지금 가정이 맹어호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할 터인데, 이것은 여러분 아시는 것과 같이, 옛적 유명한 성인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라. 가정이 맹어호라 하는 뜻은 까다로운 정사(政事)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함이니, 양자(楊子)라 하는 사람도 이와 같은 말이 있는데 혹독한 관리는 날개 있고 뿔 있는 호랑이와 같다 한지라, 세상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일 포악하고 무서운 것은 호랑이라 하였으니, 자고 이래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를 받은 자가 몇 명이나 되느뇨? 도리어 사람이 사람에게 해를 당하며 살륙을 당한 자가 몇억만 명인지 알 수 없소. 우리는 설사 포악한 일을 할지라도 깊은 산과 깊은 골과 깊은 수풀 속에서만 횡행할 뿐이요, 사람처럼 청천백일지하에 왕궁 국도에서는 하지 아니하거늘, 사람들은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며 죄 없는 백성을 감옥서에 몰아넣어서 돈 바치면 내어 놓고 세 없으면 죽이는 것과, 임금은 아무리 인자하여 사전(赦典)을 내리더라도 법관이 용사(用事)하여 공평치 못하게 죄인을 조종하고, 돈을 받고 벼슬을 내어서 그 벼슬한 사람이 그 밑천을 뽑으려고 음흉한 수단으로 정사를 까다롭게 하여 백성을 못 견디게 하니, 사람들의 악독한 일을 우리 호랑이에게 비하여 보면 몇만 배가 될는지 알 수 없소. 또 우리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더라도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발톱과 이빨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 천성의 행위를 행할 뿐이어늘, 사람들은 학문을 이용하여 화학이니 물리학이니 배워서 사람의 도리에 유익한 옳은 일에 쓰는 것은 별로 없고, 각색 병기를 발명하여 군함이니 대포니 총이니 탄환이니 화약이니 칼이니 활이니 하는 등물(等物)을 만들어서 재물을 무한히 내버리고 사람을 무수히 죽여서, 나라를 만들 때의 만반 경륜은 다 남을 해하려는 마음뿐이라. 그런고로 영국 문학박사 판스라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에게 대하여 잔인한 까닭으로 수천만 명 사람이 참혹한 지경에 들어갔도다 하였고, 옛날 진회왕이 초회왕을 청하매 초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려 하거늘, 그 신하 굴평이 간하여 가로되, 진나라는 호랑이 나라이라 가히 믿지 못할지니 가시지 말으소서 하였으니, 호랑이의 나라가 어찌 진나라 하나뿐이리요. 오늘날 오대주(五大洲)를 둘러보면, 사람 사는 곳곳마다 어느 나라가 욕심 없는 나라가 있으며, 어느 나라가 포악하지 아니한 나라가 있으며, 어느 인간에 고상한 천리를 말하는 자가 있으며, 어느 세상에 진정한 인도를 의론하는 자가 있느뇨? 나라마다 진나라요 사람마다 호랑이라.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랑이는 포악무쌍한 것이라 하되, 이것은 알지 못하는 말이로다. 우리는 원래 천품이 은혜를 잘 갚고 의리를 깊이 아나니, 글자 읽은 사람은 짐작할 듯하오. 옛적에, 진나라 곽무자라 하는 사람이 호랑이 목구멍에 걸린 뼈를 빼내어 주었더니 사슴을 드려 은혜를 갚았고, 영윤 자문을 나서 몽택에 버렸더니 젖을 먹여 길렀으며, 양위의 효성을 감동하여 몸을 물리쳤으니, 이런 일을 보면 우리가 은혜를 감동하고 의리를 아는 것이라. 사람들로 말하면 은혜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몇몇이나 되겠소? 옛적 사람이 말하기를, 호랑이를 기르면 후환이 된다 하여 지금까지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 하는 문자를 쓰지마는, 되지 못한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것이 도리어 정말 후환이 되는지라. 호랑이 새끼를 길러서 덕을 모으는 사람은 있으되 사람의 자식을 길러서 덕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소. 또 속담에 이르기를, 호랑이 죽음은 껍질에 있고, 사람의 죽음은 이름에 있다 하니, 지금 세상 사람의 정말 명예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소? 인생 칠십 고래희라, 한세상 살 동안이 얼마 되지 아니한데 옳은 일만 할지라도 다 못 하고 죽을 터인데 꿈결같은 이 세상을 구구히 살려 하여 못된 일 할 생각이 시꺼멓게 있어서, 앞문으로 호랑이를 막고 뒷문으로 승냥이를 불러들이는 자도 있으니 어찌 불쌍치 아니하리요. 옛적 사람은 호랑의 가죽을 쓰고 도적질하였으나, 지금 사람들은 껍질은 사람의 껍질을 쓰고 마음은 호랑이 마음을 가져서 더욱 험악하고 더욱 흉포한지라, 하느님은 지공무사(至公無私)하신 하느님이시니, 이같이 험악하고 흉포한 것들에게 제일 귀하고 신령하다는 권리를 줄 까닭이 무엇이오? 사람으로 못된 일 하는 자의 종자를 없애는 것이 좋은 줄로 생각하옵네다."

 

 

제8석, 쌍거쌍래(雙去雙來 : 원앙)

 

호랑이가 연설을 그치고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형용이 단정하고 태도가 신중한 어여쁜 원앙새가 연단에 올라서서 애연(哀然)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나는 원앙이올시다. 여러분이 인류의 악행을 공격하는 것이 다 절당한 말씀이로되 인류의 제일 괴악한 일은 음란한 것이오. 하느님이 사람을 내실 때에 한 남자에 한 여인을 내셨으니, 한 사나이와 한 여편네가 서로 저버리지 아니함은 천리(天理)에 정한 인륜(人倫)이라. 사나이도 계집을 여럿 두는 것이 옳지 않고 여편네도 서방을 여럿 두는 것이 옳지 않거늘, 세상 사람들은 다 생각하기를, 사나이는 계집을 많이 두고 호강하는 것이 좋은 것인 줄로 알고 처첩을 두셋씩 두는 사람도 있으며, 어떤 사람은 오륙 명 두는 자도 있으며, 혹은 장가 든 뒤에 그 아내를 돌아다보지 아니하고 두번 세번 장가 드는 자도 있으며, 혹은 아내를 소박하고 첩을 사랑하다가 패가망신하는 자도 있으니 사나이가 두 계집 두는 것은 천리에 어기어짐이라. 계집이 두 사나이를 두면 변고로 알고 사나이가 두 계집 두는 것은 예사로 아니, 어찌 그리 편벽되며, 사나이가 남의 계집 도적함은 꾸짖지 아니하고, 계집이 남의 사나이를 상관하면 큰 변인 줄 아니, 어찌 그리 불공하오? 하느님의 천연한 이치로 말할진대 사나이는 아내 한 사람만 두고 여편네는 남편 한 사람만 좇을지라. 무론 남녀 하고 두 사람을 두든지 섬기는 것은 옳지 아니하거늘, 지금 세상 사람들은 괴악하고 음란하고 박정하여 길가의 한 가지 버들을 꺾기 위하여 백년해로하려던 사람을 잊어버리고, 동산의 한 송이 꽃을 보기 위하여 조강지처를 내쫓으며, 남편이 병이 들어 누웠는데 의원과 간통하는 일도 있고, 복을 빌어 불공한다 가탁(假託)하고 중서방 하는 일도 있고, 남편 죽어 사흘이 못 되어 서방해 갈 주선 하는 일도 있으니, 사람들은 계집이나 사나이나 인정도 없고 의리도 없고 다만 음란한 생각뿐이라 할 수밖에 없소. 우리 원앙새는 천지간에 지극히 작은 물건이로되 사람과 같이 그런 더러운 행실은 아니하오. 남녀의 법이 유별하고 부부의 윤기(倫紀)가 지중한 줄을 아는 고로 음란한 일은 결코 없소. 사람들도 우리 원앙새의 역사를 짐작하기로 이야기하는 말이 있소. 옛날에 한 사냥꾼이 원앙새 한 마리를 잡았더니 암원앙새가 수원앙새를 잃고 수절하여 과부로 있은 지 일 년 만에 또 그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얻은 바 된지라, 사냥꾼이 원앙새를 잡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와서 털을 뜯을새, 날개 아래 무엇이 있거늘 자세히 보니 거년(去年)에 자기가 잡아온 수원앙새의 대가리라. 이것은 암원앙새가 수원앙새와 같이 있다가 수원앙새가 사냥꾼의 화살을 맞아서 떨어지니, 그 창황중에도 수원앙새의 대가리를 집어 가지고 숨어서 일시의 난을 피하여 짝 잃은 한을 잊지 아니하고 서방의 대가리를 날개 밑에 끼고 슬피 세월을 보내다가 또한 사냥꾼에게 얻은 바 된지라, 그 사냥꾼이 이것을 보고 정절이 지극한 새라 하여 먹지 아니하고 정결한 땅에 장사를 지낸 후에 그때부터 다시는 원앙새는 잡지 아니하였다 하니, 우리 원앙새는 짐승이로되 절개를 지킴이 이러하오. 사람들의 행위를 보면 추하고 비루(鄙陋)하고 음란하여 우리보다 귀하다 할 것이 조금도 없소. 사람들의 행사를 대강 말할 터이니 잠깐 들어 보시오. 부인이 죽으면 불쌍히 여기는 남편이 몇이나 되겠소? 상처한 후에 사나이 수절하였다는 말은 들어 보도 못 하였소. 낱낱이 재취(再娶)를 하든지 첩을 얻든지, 자식에게 못할 노릇 하고 집안에 화근을 일으키어 화기(和氣)를 손상케 하고, 계집으로 말하면 남편 죽은 후에 수절하는 사람은 많으나 속으로 서방질 다니며 상부한 지 며칠이 못 되어 개가할 길 찾느라고 분주한 계집도 있고, 또 자식을 낳아서 개구멍이나 다리 밑에 내버리는 것도 있으며, 심한 계집은 간부에게 혹하여 산 서방을 두고 도망질하기와 약을 먹여 죽이는 일까지 있으니, 저희들의 별별 괴악한 일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소. 세상에 제일 더럽고 괴악한 것은 사람이라, 다 말하려면 내 입이 더러워질 터이니까 그만두겠소."

원앙새가 연설을 그치고 연단에서 내려오니, 회장이 다시 일어나서 말한다.

 

 

폐 회

 

"여러분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다 옳으신 말씀이오. 대저 사람이라 하는 동물은 세상에 제일 귀하다 신령하다 하지마는, 나는 말하자면, 제일 어리석고 제일 더럽고 제일 괴악하다 하오. 그 행위를 들어 말하자면 한정이 없고, 또 시간이 진하였으니 그만 폐회하오."

 

하더니 그 안에 모였던 짐승이 일시에 나는 자는 날고, 기는 자는 기고, 뛰는 자는 뛰고, 우는 자도 있고, 짖는 자도 있고, 춤추는 자도 있어, 다 각각 돌아가더라.

 

슬프다! 여러 짐승의 연설을 듣고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세상에 불쌍한 것이 사람이로다. 내가 어찌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욕을 보는고! 사람은 만물 중에 귀하기로 제일이요, 신령하기도 제일이요, 재주도 제일이요, 지혜도 제일이라 하여 동물 중에 제일 좋다 하더니, 오늘날로 보면 제일로 악하고 제일 흉괴하고 제일 음란하고 제일 간사하고 제일 더럽고 제일 어리석은 것은 사람이로다. 까마귀처럼 효도할 줄도 모르고, 개구리처럼 분수 지킬 줄도 모르고, 여우보담도 간사한, 호랑이보담도 포악한, 벌과 같이 정직하지도 못하고, 파리같이 동포 사랑할 줄도 모르고, 창자 없는 일은 게보다 심하고, 부정한 행실은 원앙새가 부끄럽도다. 여러 짐승이 연설할 때 나는 사람을 위하여 변명 연설을 하리라 하고 몇 번 생각하여 본즉 무슨 말로 변명할 수가 없고, 반대를 하려 하나 현하지변(懸河之辯)을 가지고도 쓸데가 없도다. 사람이 떨어져서 짐승의 아래가 되고, 짐승이 도리어 사람보다 상등이 되었으니, 어찌하면 좋을꼬? 예수 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느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자매는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출전 : 황성서적조합(1908.1)]


 요점 정리

 

 작자 : 안국선
 갈래 : 신소설, 단편소설, 우화소설
 성격 : 풍자적, 우화적, 비판적[인간에 대한 비판, 정치 현실에 대한 비판]
 제재 : 동물 회의
 문체 : 산문체, 연설문체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내부 이야기), 일인칭주인공 시점(외부 이야기)[이 작품은 각종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 사회와 인간' 이란 논제를 통해 인간 사회의 부조리와 현실을 비판, 풍자하는 우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소설이 다른 신소설과 다른 점은 '나' 라는 1인칭 관찰자의 시점을 통하여 인간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관찰자인 '나' 가 꿈속에서 인간의 비리와 인간의 간사한 현실 사회를 성토하는 동물들의 회의장에 들어가 동물들의 회의 내용을 기록하여 전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 작품은 꿈속에서 현실을 비판한 후 꿈을 깬다는 식의 서사적 구조를 갖고 있는데 이는 액자 소설의 형태와 몽유록계 고대 소설의 전통을 계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 : 인간 세계의 모순과 비리와 타락상에 대한 비판과 풍자, 개화기의 혼란한 세태를 비판한 우화, 정치 소설
 구성 : 이 작품의 구성을 이루는 시사토론체 형식은, 비록 대화식의 토론 진행은 아닐지라도 단상에 나와 발언할 때에는 반드시 회장으로부터의 발언권을 얻고 나오는 것이라든지, 합당한 발언(현실에 대한 비판이 절정에 이르는)에 이르러서는 '손뼉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공명을 얻는 광경 등 일련의 회의 진행이 근대의 정견 발표회를 방불하게 한다. 우리나라 최초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이 소설은 동물들의 연설을 통하여 개화기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정치적 자립, 민권 사상 및 도덕의 정화와 정치적 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즉 우화 소설이며 또한 정치 소설로서 계몽성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 소설은 몽유록계 소설에서 흔히 활용하는 꿈을 전체 소설의 액자로 삼고, 서언을 포함한 9개의 내부 이야기를 전개한다. 즉, 결말에서 다시 나의 관찰 내용이 종결 액자가 되는 액자 소설의 구성법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구성

내용

서언(序言)

서술자가 인간 세상의 타락을 한탄하다가 잠이 들고 ‘나’는 꿈 속에서 배회하다가 ‘금수회의소’에 도착해서 방청을 하게 됨. 글쓰는 의도가 담김 - 금수 회의소 입장해서 방청-꿈

개회 취지(開會趣旨)

여러 동물들이 모여 인간 세상의 문제를 의논함. 作意(작의)가 드러남 - 인간의 행동을 비판하는 의제 제시

제1석, 반포지효(反哺之孝 - 까마귀)

도리어 먹이는 효도란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함을 이르는 말로 인간들의 불효를 비판함 - 인간의 근본적인 윤리적 성정면을 강조

제2석, 호가호위(狐假虎威 - 여우)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어 다른 짐승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실력이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림을 이르는 말 - 외세에 의존하려는 정치 의식을 비판함

제3석, 정와어해(井蛙語海 - 개구리)

우물 안 개구리가 바다를 말한다는 말로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소견 좁은 인간이나 자기 분수를 모르고 행동하는 것을 비판함 - 바깥 세상의 정세에 어두운 경륜없는 인간을 비판함

제4석, 구밀복검(口蜜腹劍 - 벌)

입에는 꿀을 담고 있으면서 뱃속에는 칼을 숨기고 있다는 말로 겉으로는 친한 체하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해칠 생각을 품고 있음을 비유한 말 - 서로 미워하고 속이는 인간들을 비판함.

제5석, 무장공자(無腸公子 - 게)

창자가 없는 게로 줏대 없는 지조와 절개 없는 인간들을 비판하고, 지배 계급의 부패상을 풍자(공자 : 상대를 높이는 말)

제6석, 영영지극(營營之極 - 파리)

여기저기 왕래하는 모양 또는 악착같이 이익을 추구하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로 목적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인간들의 간사함을 비판 - 인간의 윤리적 성정면과 동포애를 강조함 [영영지극(營營之極) :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바쁘게 왔다갔다 하는 모습의 절정.(출전-시전)]

제7석,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호랑이)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말로 포악한 정치와 폭력을 비판함

제8석, 쌍거쌍래(雙去雙來 - 원앙)

어디를 가거나 올 때 항상 함께 다닌다는 말로 인간의 불건전한 남녀 관계와 음란함을 비판함(부부간의 윤리와 애정을 강조함)

폐회(閉會)

‘나’가 다시 등장하여 동물보다 못한 인간 세상의 타락을 한탄함.

결언

인간의 반성과 회개 촉구 - 현실

 

 의의 : 당시의 사회와 정치 및 인간의 부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개화기 우화소설의 대표적 작품자, 정치 소설이기도 하다. 또한, 동물들의 회의를 중심으로 소설을 끌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토론체 소설로 분류된다.


 줄거리 : '나'는 악에 빠진 인간의 모습을 한탄하다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우연히 금수 회의를 방청하게 된다. 금수회의에서는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등이 나와서 인간의 간사함과 포악성,비 윤리적인 태도등을 비난한다. 끝으로 사회자는 인간이야 말로 가장 어리석고 더러운 존재라고 결론을 내리면서 금수 회의를 폐회한다. 이를 지켜 본 '나'는 인간의 반성과 회개를 촉구한다


 개관 : '금수회의록'은 개화기 대표적인 산문 문학인 신소설로서 개화기 문학의 흐름을 특징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에 선정되었다. 이 작품은 8가지의 동물이 인간의 제반 악증을 성토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인간 사회의 정치의 비리를 풍자하고 있으며 각각의 주제를 가지고 인간을 논박한다. 제재에서는 먹이를 씹어 부모를 공양하는 까마귀의 효도를 통해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참여 문학적인 성격이 강하며 '나'라는 1인칭 관찰자가 꿈 속에서 인간의 비리를 성토하는 회의장에 들어가 동물들의 연설을 기록한 내용으로 되어 있다.
 출전 : '금수회의록'(1908년 황성서적업 조합)

 

 

(1) 작품 선정의 취지

 이 작품은 문학 작품이 가치 지향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이다. '문학의 가치'는 앞 단원에서 학습한 '문학의 기능'과 절대로 무관할 수 없다. 그리고 기능이나 가치에 대한 평가는 시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이제까지의 학습을 통해서 학생들이 문학의 본질적 특성을 바탕으로 그 기능을 확인하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보편적이고 타당한 기준에 의하여 작품이 담고 있는 가치를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는 단계에 이르도록 한다.

 특히 '금수회의록'은 우화적 기법을 사용하여 당대 현실을 신랄하게 풍자한 작품이다. 학생들은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가 당대 현실에 대하여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등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2) 지도의 핵심

'금수회의록'은 당대 현실에 대한 작가의 계몽적 의도가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므로, 이 작품의 교수·학습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들로 하여금 문학이 당대 현실에 대한 문제 제기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물론, 제기된 문제 의식의 가치를 현재적인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3) 작품 연구

 이 작품은 신소설의 하나로 1908년에 '황성서적업조합'에서 간행한 우화(寓話) 소설이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연설회의 형식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참여 문학적인 성격이 강하며, '나'라는 1인칭 관찰자가 꿈속에서 인간의 비리를 성토하는 회의장에 들어가 보고 들은 동물들의 연설을 기록한, 액자 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언(序言)에 이어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 등의 동물이 등장하여 연설을 통해 각자 자기 입장을 변호하면서 인간 세계의 전근대적인 모순과 비리를 비판, 풍자하면서 국권 수호와 자주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재래적 윤리관과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근본적 정신 자세를 문제삼고 있는 데서 나온 것이다.

 이 작품의 구성을 이르는 회의 형식은, 비록 대화식의 토론 진행은 아닐지라도 단상에 나와 발언할 때에는 반드시 회장으로부터의 발언권을 얻고 나오는 것이라든지, 합당한 발언(현실에 대한 비판이 절정에 이르는)에 이르러서는 '손뼉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정도로 공감을 얻는 광경 등 일련의 회의 진행이 근대의 정견 발표회(政見發表會)를 방불하게 된다. 이 소설은 1909년 5월 치안 방해를 이유로 판매 금지를 당하기도 하였다.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은 까마귀가 발언하는 대목으로, 백행(百行)의 근본인 효(孝)마저 소홀히 하고 있는 인간 세태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회의에서 발언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렇다 할 줄거리가 없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내용 연구

 

서언(序言)

 

머리를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니 일월과 성신이 천추의 빛을 잃지 아니하고, 눈을 떠서 땅을 굽어보니 강해와 산악이 만고의 형상을 변치 아니하도다. 어느 봄에 꽃이 피지 아니하며, 어느 가을에 잎이 떨어지지 아니하리요.

 

우주는 의연히 백대(百代)에 한결같거늘, 사람의 일은 어찌하여 고금이 다르뇨? 지금 세상 사람을 살펴보니 애달프고, 불쌍하고, 탄식하고, 통곡할 만하도다.

 

전인의 말씀을 듣든지 역사를 보든지 옛적 사람은 양심이 있어 천리(天理)를 순종하여 하느님께 가까웠거늘, 지금 세상은 인문이 결딴나서 도덕도 없어지고, 의리도 없어지고, 염치도 없어지고, 절개도 없어져서, 사람마다 더럽고 흐린 풍랑에 빠지고 헤어나올 줄 몰라서 온 세상이 다 악한 고로, 그름?옳음을 분별치 못하여 악독하기로 유명한 도척(盜甁)이 같은 도적놈은 청천백일에 사마(士馬)를 달려 왕궁 극도에 횡행하되 사람이 보고 이상히 여기지 아니하고, 안자(顔子)같이 착한 사람이 누항(陋巷)에 있어서 한 도시락밥을 먹고 한 표주박물을 마시며 간난을 견디지 못하되 한 사람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니, 슬프다! 착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거꾸로 되고 충신과 역적이 바뀌었도다. 이같이 천리에 어기어지고 덕의가 없어서 더럽고, 어둡고, 어리석고, 악독하여 금수(禽獸)만도 못한 이 세상을 장차 어찌하면 좋을꼬? 나도 또한 인간의 한 사람이라, 우리 인류사회가 이같이 악하게 됨을 근심하여 매양 성현의 글을 읽어 성현의 마음을 본받으려 하더니, 마침 서창에 곤히 든 잠이 춘풍에 이익한 바 되매 유흥을 금치 못하여 죽장망혜(竹杖芒鞋)로 녹수를 따르고 청산을 찾아서 한곳에 다다르니, 사면에 기화요초는 우거졌고 시냇물 소리는 종종하며 인적이 고요한데, 흰 구름 푸른 수풀 사이에 현판(懸板) 하나가 달렸거늘, 자세히 보니 다섯 글자를 크게 썼으되 '금수회의소'라 하고 그 옆에 문제를 걸었는데, '인류를 논박할 일'이라 하였고, 또 광고를 붙였는데, '하늘과 땅 사이에 무슨 물건이든지 의견이 있거든 의견을 말하고 방청을 하려거든 방청하되 각기 자유로 하라' 하였는데, 그곳에 모인 물건은 길짐승?날짐승?버러지?물고기?풀?나무?돌 등물이 다 모였더라. 혼자 마음으로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대저 사람은 만물지중에 가장 귀하고 제일 신령하여 천지의 화육(化育)을 도우며 하느님을 대신하여 세상 만물의 금수?초목까지라도 다 맡아 다스리는 권능이 있고, 또 사람이 만일 패악(悖惡)한 일이 있으면 천히 여겨 금수 같은 행위라 하며, 사람이 만일 어리석고 하는 일이 없으면 초목같이 아무 생각도 없는 물건이라고 욕하나니, 그러면 금수?초목은 천하고 사람은 귀하며 금수?초목은 아무것도 모르고 사람은 신령하거늘, 지금 세상은 바뀌어서 금수?초목이 도리어 사람의 무도패덕함을 공격하려 하니, 괴상하고 부끄럽고 절통(切痛) 분하여 열었던 입을 다물지도 못하고 정신없이 섰더니,

 

개회 취지(開會趣旨)

 

별안간 뒤에서 무엇이 와락 떠다밀며,

"어서 들어갑시다. 시간 되었소."

하고 바삐 들어가는 서슬에 나도 따라 들어가서 방청석에 앉아 보니, 각색 길짐승?날짐승?모든 버러지?물고기 등물이 꾸역꾸역 들어와서 그 안에 빽빽하게 서고 앉았는데, 모인 물건은 형형색색이나 좌석은 제제창창(濟濟璽璽)한데, 장차 개회하려는지 규칙 방망이 소리가 똑똑 나더니, 회장인 듯한 한 물건이 머리에는 금색이 찬란한 큰 관을 쓰고, 몸에는 오색이 영롱한 의복을 입은 이상한 태도로 회장석에 올라서서 한 번 읍하고, 위의(威儀)가 엄숙하고 형용이 단정하게 딱 서서 여러 회원을 대하여 하는 말이,

 

"여러분이여(연설 형식), 내가 지금 여러분을 청하여 만고에 없던 일대 회의(금수회의)를 열 때에 한마디 말씀으로 개회 취지를 베풀려 하오니 재미있게 들어주시기를 바라오.

 

대저 우리들이 거주하여 사는 이 세상은 당초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지극히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조화로 만드신 것(기독교적 세계관)이라. 세계 만물을 창조하신 조화주를 곧 하느님이라 하나니, 일만 이치의 주인 되시는 하느님께서 세계를 만드시고 또 만물을 만들어 각색 물건이 세상에 생기게 하셨으니, 이같이 만드신 목적은 그 영광을 나타내어 모든 생물로 하여금 인자한 은덕을 베풀어 영원한 행복을 받게 하려 함이라. 그런고로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은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초목이든지 무슨 물건이든지 다 귀하고 천한 분별이 없은즉, 어떤 것은 높고 어떤 것은 낮다 할 이치가 있으리요[귀천의 차이가 없다. 만민평등사상]. 다 각각 천지의 기운을 타고 생겨서 이 세상에 사는 것인즉, 다 각기 천지 본래의 이치만 좇아서 하느님의 뜻대로 본분을 지키고, 한편으로는 제 몸의 행복을 누리고,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낼지니, 그 중에도 사람이라 하는 물건은 당초에 하느님이 만드실 때에 특별히 영혼과 도덕심을 넣어서 다른 물건과 다르게 하셨은즉, 사람들은 더욱 하느님의 뜻을 순종하여 천리정도(天理正道 : 하늘의 이치와 바른 도리)를 지키고 착한 행실과 아름다운 일로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어야 할 터인데[사람들은 더욱 하느님의 - 영광을 나타내야 할 터인데 : 개화기에 기독교는 개화 사상의 대표적인 새로운 사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금수회의록은 기독교적 세계관과 전통적인 윤리관이 혼재해 있다.], 지금 세상 사람의 하는 행위를 보니 그 하는 일이 모두 악하고 부정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기는 고사하고 도리어 하느님의 영광을 더럽게 하며 은혜를 배반하여 제반 악증[여러 가지 나쁜 증세]이 많도다.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여 벼슬만 하려 하고, 제 나라가 다 망하든지 제 동포가 다 죽든지 불고(不顧 : 돌아보지 아니하는, 아랑곳하지 않는)하는 역적놈도 있으며,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해롭게 하여 나랏일을 결딴내는 소인놈도 있으며, 부모는 자식을 사랑치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를 효도로 섬기지 아니하며 형제간에 재물로 인연하여 골육상잔(骨肉相殘)하기를 일삼고, 부부간에 음란한 생각으로 화목지 아니한 사람이 많으니[외국 사람에게 - 사람이 많으니 :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을 보여줌], 이 같은 인류에게 좋은 영혼과 제일 귀하다 하는 특권을 줄 것이 무엇이오. 하느님을 섬기던 천사도 악한 행실을 하다가 떨어져서 마귀가 된 일이 있거든 하물며 사람이야 더 말할 것 있소. 태고적 맨 처음에 사람을 내실 적에는 영혼과 덕의심[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상의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주셔서 만물 중에 제일 귀하다 하는 특권을 주셨으되 저희들이 그 권리를 내어 버리고 그 성품을 잃어버리니 몸은 비록 사람의 형상이 그대로 있을지라도 만물 중에 가장 귀하다 하는 인류의 자격은 있다 할 수가 없소. 여러분은 금수라, 초목이라 하여 사람보다 천하다 하나, 하느님이 정하신 법대로 행하여 기는 자는 기고, 나는 자는 날고, 굴에서 사는 자는 깃들임을 침노치 아니하며, 깃들인 자는 굴을 빼앗지 아니하고, 봄에 생겨서 가을에 죽으며, 여름에 나와서 겨울에 들어가니, 하느님의 법을 지키고 천지 이치대로 행하여 정도에 어김이 없은즉, 지금 여러분 금수·초목과 사람을 비교하여 보면 사람이 도리어 낮고 천하며, 여러분이 도리어 귀하고 높은 지위에 있다 할 수 있소. 사람들이 이같이 제 자격을 잃고도 거만한 마음으로 오히려 만물 중에 제가 가장 귀하다, 높다, 신령하다 하여 우리 족속 여러분을 멸시하니 우리가 어찌 그 횡포를 받으리요. 내가 여러분의 마음을 찬성하여 하느님께 아뢰고 본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이 회의에서 결의할 안건은 세 가지 문제가 있소. [금수회의의 사회자가 인간을 성토하는 발언을 한다]

제일, 사람 된 자의 책임을 의론하여 분명히 할 일,
제이,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론할 일.
제삼, 지금 세상 사람 중에 인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할 일.

 

이 세 가지 문제를 토론하여 여러분과 사람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하여 회개치 아니하면 그 동물의 사람이라 하는 이름을 빼앗고 이등 마귀라 하는 이름을 주기로 하느님께 상주(上奏)할 터이니, 여러분은 이 뜻을 본받아 이 회의에서 결의한 일을 진행하시기를 바라옵나이다."

회장이 개회 취지를 연설하고 회장석에 앉으니, 한 모퉁이에서 우렁찬 소리로 회장을 부르고 일어서서 연단으로 올라간다.

 

제1석(第一席), 반포지효(反哺之孝) ― 까마귀

[ 반포지효(反哺之孝) : (까마귀가 자라서 그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하는 데서 나온 말로) 자식이 자라서 어버이의 은혜에 보답하는 효성.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에 의하면 새끼가 어미를 먹여 살리는 데는 까마귀만한 놈도 없다고 하여, 이름도 '자오'라고 한다고 했다. 곧 까마귀의 되먹이는 습성에서 '반포'라는 말이 나왔다.]

 

프록코트[무릎까지 내려오는 남자의 양복 저고리 / 까마귀의 외모하고 비슷하다는 점에서 착안]를 입어서 전신이 새까맣고 똥그란 눈이 말똥말똥한데, 물 한 잔 조금 마시고 연설을 시작한다.

 

"나는 까마귀올시다. 지금 인류에 대하여 소회(所懷 : 마음에 품고 있는 회포)를 진술할 터인데 반포의 효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잠깐 말씀하겠소. 사람들은 만물 중에 제일이라 하지마는, 그 현실을 살펴볼 지경이면 다 천리(天理)에 어기어져서 하나도 그 취할 것이 없소[본받을 것이 없소]. 사람들의 옳지 못한 일을 모두 다 들어 말씀하려면 너무 지리하겠기에[재미 없어 하겠기에] 다만 사람들의 불효한 것을 가지고 말씀할 터인데, 옛날 동양 성인들이 말씀하기를 효도는 덕의 근본이라, 효도는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 효도는 천하를 다스린다 하였고, 예수교 계명에도 부모를 효도로 섬기라 하였으니, 효도라 하는 것은 자식 된 자가 고연(固然 : 본디부터 그러한)한 직분으로 당연히 행할 일이올시다. 우리 까마귀의 족속은 먹을 것을 물고 돌아와서 어버이를 기르며 효성을 극진히 하여 망극한 은혜를 갚아서 하나님이 정하신 본분을 지키어 자자손손이 천만 대를 내려가도록 가법(家法 : 가정에서 지켜야할 법)을 변치 아니하는 고로, 옛적에 백낙천(白樂天 : 중국 당나라 때의 이름난 시인.)이라 하는 분이 우리를 가리켜 새 중의 증자(曾子 : 중국 춘추 시대 노나라 사람. 효행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짐)라 하였고, 본초강목(本草綱目 : 중국 명나라 이시진이 지은 본초학(本草學)의 연구서)에는 자조(慈鳥)라 일컬었으니, 증자라 하는 양반은 부모에게 효도 잘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요, 자조라 하는 뜻은 사랑하는 새라 함이니, 부모는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함이 하느님의 법이라.

 

우리는 그 법을 지키고 어기지 아니하거늘, 지금 세상 사람들은 말하는 것을 보면 낱낱이 효자 같으되[표리부동(表裏不同)], 실상 하는 행실을 보면 주색잡기(酒色雜技 : 술과 여자와 노름을 아울러 이르는 말.)에 침혹하여(어떤일이나 물건을 몹시 좋아하여 정신을 잃을 정도로 빠져) 부모의 뜻을 어기며, 형제간에 재물로 다투어 부모의 마음을 상케 하며, 제 한 몸만 생각하고 부모가 주리되 돌아보지 아니하고[지금 세상 사람들이 - 부모가 주리되 돌아보지 아니하고 : 인간의 위선적인 면과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세태를 까마귀가 직접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모습], 여편네는 학식이라고 조금 있으면 주제넘은 마음이 생겨서[여성들에 대한 교육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을 드러내고 있다] 온화, 유순한 부덕(여자가 지켜야 할 떳떳하고 옳은 도리)을 잊어버리고 시집가서는 시부모 보기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물건같이 대접하고, 심하면 원수같이 미워하기도 하니, 인류 사회에 효도 없어짐이 지금 세상보다 더 심함이 없도다. 사람들이 일백 행실의 근본 되는 효도를 알지 못하니 다른 것은 더 말할 것 무엇 있소[인간사회의 모순을 풍자하려려는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남 /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지만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쉬움]. 우리는 천성이 효도를 주장하는 고로 출천지효성(出天之孝誠 : 천성적으로 타고난 효성 / 하늘이 낸 지극한 효성)있는 사람이면 우리가 감동하여 노래자(老萊子 : 중국 춘추 시대 초나라의 현인. 중국 24효자의 한 사람으로 이름이 났음)를 도와서 종일토록 그 부모를 즐겁게 하여 주며, 증자의 갓 위에 모여서 효자의 아름다운 이름을 천추에 전케 하였고[유방백세(流芳百世) : 꽃다운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함 / 반대어로 유취만년(遺臭萬年) : 더러운 이름을 후세에 오래도록 남김], 또 우리가 효도만 극진할 뿐 아니라 자고 이래로 사기(史記 : 중국 한나라 사마천이 황제(皇帝)로부터 한나라 무제(武帝)까지의 역대 왕조의 사적을 기전체로 적은 역사책)에 빛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오니 대강 말씀하오리다.

 

우리가 떼를 지어 논밭으로 내려갈 때 곡식을 해하는 버러지를 없애려고 가건마는 사람들은 미련한 생각에 그 곡식을 파먹는 줄로 아는도다! 서양 책력 일천팔백칠십사년의 미국 조류학자 피루라 하는 사람이 우리 까마귀 족속 이천이백오십팔 마리를 잡아다가 배를 가르고 오장을 꺼내어 해부하여 보고 말하기를, 까마귀는 곡식을 해하지 아니하고 곡식에 해 되는 버러지를 잡아먹는다 하였으니[개개의 구체적 사실로부터 일반적인 명제 및 법칙을 유도해 내는 귀납적 추리], 우리가 곡식밭에 가는 것은 곡식에 이가 되고 해가 되지 아니하는 것은 분명하고, 또 우리가 밤중에 우는 것은 공연히 우는 것이 아니요, 나라에서 법령이 아름답지 못하여 백성이 도탄(몹시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침륜(沈淪 : 가라앉거나 빠짐)하여 천하에 큰 병화(전쟁이나 난리로 말미암은 재앙)가 일어날 징조가 있으면, 우리가 아니 울 때에 울어서 사람들이 깨닫고 허물을 고쳐서 세상이 태평 무사하기를 희망하고 권고함이요 강소성(江蘇省) 한산사(寒山寺)에서 달은 넘어가고 서리친 밤에 쇠북을 주둥이로 쪼아 소리를 내서 대망(이무기. 아주 큰 구렁이)에게 죽을 것을 살려 준 은혜를 갚았고, 한나라 효문제(孝文帝)가 아홉 살 되었을 때에 그 부모는 왕망(王莽 : 중국 전한(前漢) 말기의 정치가)의 난리에 죽고 효문제 혼자 달아날새,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거늘 우리들이 가서 인도하였고, 연(燕)태사 단이 진(秦)나라에 볼모 잡혀 있을 때에 우리가 머리를 희게 하여 그 나라로 돌아가게 하였고, 진문공(晉文公)이 개자추[介子推 : 중국 춘추 시대의 은사(隱士)]를 찾으려고 면산(綿山)에 불을 놓으매 우리가 연기를 에워싸고 타지 못하게 하였더니, 그 후에 진나라 사람이 그 산에 '은연대'라 하는 집을 짓고 우리의 은덕을 기념하였으며, 당나라의 이의부는 글을 짓되 상림에 나무를 심어 우리를 준다 하였었고, 또 물병에 돌을 던지니 이솝[고대 희랍의 우화 작가. 동물에 빗대어 인간 세계를 풍자한 우화를 많이 남김]이 상을 주고, 탁자의 포도주를 다 먹어도 프랭클린이 사랑하도다. 우리 까마귀의 사적(事蹟 : 지금까지 행해진 일들)이 이러하거늘, 사람들은 우리 소리를 듣고 흉한 징조라 길한 징조라 함은 저희들 마음대로 하는 말이요[주관적이고 객관성이 결여된 비과학적 판단], 우리에게는 상관없는 일이라. 사람의 일이 흉하든지 길하든지 우리가 울 일이 무엇 있소? 그것은 사람들이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저희들이 좋지 아니한 때에 흉하게 듣고 하는 말이로다. 사람이 염병이니 괴질(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니 앓아서 죽게 된 때에 우리가 어찌하여 그 근처에 가서 울면, 사람들은 못생겨서 저희들이 약도 잘못 쓰고 위생도 잘못하여 죽는 줄은 알지 못하고 우리가 울어서 죽는 줄로만 알고, 저희끼리 욕설하려면 염병에 까마귀 소리라 하니(염병은 무서운 전염병으로 염병을 앓고 있을 때 까마귀가 우는 것은 죽을 징조로 몹시 불길하게 여겼다는 의미로, 몹시 귀에 거슬리거나 듣기 싫은 소리를 의미함) 아, 어리석기는 사람같이 어리석은 것이 세상에 또 없도다. 요순[堯舜 : 고대 중국의 성군(聖君)인 요(堯)임금과 순(舜)임금] 적에도 봉황이 나왔고, 왕망의 때도 봉황이 나오매 요순 적 봉황은 상서[복되고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음.]라 하고 왕망 때 봉황은 흉조처럼 알았으니, 물론 무슨 소리든지 사람이 근심 있을 때에 들으면 흉조[상서와 흉조는 반어관계]로 듣고 좋은 일 있을 때에 들으면 상서롭게 듣는 것이다. 무엇을 알고 하는 말은 아니요, 길하다 흉하다 하는 것은 듣는 저희에게 있는 것이요[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 :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로 어떤 사실이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되는 것을 말함)], 하는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 아니어늘, 사람들은 말하기를, 까마귀는 흉한 일이 생길 때에 와서 우는 것이라 하여 듣기 싫어하니, 사람들은 이렇듯 이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동물이라[사람들이 까마귀 울음 소리를 흉한 징조라고 여기는 것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님을 지적한 말로, 화자는 인간들의 미신적인 사고나 태도를 비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책망하여 무엇하겠소. 또 우리는 아침에 해뜨기 전에 집을 떠나서 사방으로 날아다니며 먹을 것을 구하여 부모 봉양도 하고,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집도 짓고, 곡식에 해되는 버러지도 잡아서 하느님 뜻을 받들다가 저녁이 되면 반드시 내 집으로 돌아가되, 나가고 돌아올 때에 일정한 시간을 어기지 않건마는, 사람들은 점심 때까지 자빠져서 잠을 자고 한 번 집을 떠나서 나가면 혹은 협작질하기[그릇된 짓으로 남을 속이기], 혹은 술장[술마당. 술자리가 베풀어진 마당]보기, 혹은 계집의 집 뒤지기[기생집 찾아다니기], 혹은 노름하기, 세월이 가는 줄을 모르고 저희 부모가 진지를 잡수었는지, 처자가 기다리는지 모르고 쏘다니는 사람들이 어찌 우리 까마귀의 족속만하리요, 사람은 일 아니 하고 놀면서 잘 입고 잘 먹기를 좋아하되, 우리는 제가 벌어 제가 먹는 것이 옳은 줄 아는 고로 결단코 우리는 사람들 하는 행위는 아니하오[인간과 까마귀를 대조적으로 드러내면서 인간의 행위를 비판하고 있음]. 여러분도 다 아시거니와 우리가 사람에게 업수이 여김[업신여김]을 받을 까닭이 없음을 살피시오."

손뼉소리에 연단에서 내려가니, 또 한편에서 아리땁고도 밉살스러운 소리로 회장을 부르면서 강똥강똥[조금 짧은 다리로 계속해서 가볍게 뛰는 모양] 연설단을 향하여 올라가니, 어여쁜 태도는 남을 가히 호릴[사람을 끌어 정신을 흐리게 할] 만하고 갸웃거리는 모양은 본색이 드러나더라. - 까마귀가 인륜을 저버린 인간의 행위를 비판하고 부모에 대한 효도를 강조함

 

<중략>

 

제7석,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호랑이)[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뜻으로 정치인의 악행을 경계함, [출전] <禮記> <檀弓記>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사납다는 뜻으로,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는 말. 춘추 시대(春秋時代) 말엽, 공자(孔子:B.C 551∼479)의 고국인 노(魯)나라에서는 조정의 실세(實勢)인 대부(大夫) 계손자(季孫子)의 가렴 주구(苛斂誅求)로 백성들이 몹시 시달리고 있었다. 어느 날, 공자가 수레를 타고 제자들과 태산(泰山) 기슭을 지나가고 있을 때 부인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 왔다. 일행이 발길을 멈추고 살펴보니 길가의 풀숲에 무덤 셋이 보였고, 부인은 그 앞에서 울고 있었다. 자비심이 많은 공자는 제자인 자로(子路)에게 그 연유를 알아보라고 했다. 자로가 부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부인, 어인 일로 그렇듯 슬피 우십니까?" 부인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더니 이윽고 이렇게 대답했다. "여기는 아주 무서운 곳이랍니다. 수년 전에 저희 시아버님이 호환(虎患)을 당하시더니 작년에는 남편이, 그리고 이번에는 자식까지 호랑이한테 잡아 먹혔답니다." "그러면, 왜 이곳을 떠나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여기서 살면 세금을 혹독하게 징수 당하거나 못된 벼슬아치에게 재물을 빼앗기는 일은 없지요." 자로에게 이 말을 전해들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잘 들 기억해 두어라.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苛政猛於虎]'는 것을…‥." ]

 

웅장한 소리로 회장을 부르니 산천이 울린다. 연단에 올라서서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좌중을 내려다보니 눈알이 등불 같고 위풍이 늠름한데, 주홍 같은 입을 떡 벌리고 어금니를 부지직 갈며 연설하는데, 좌중이 종용하다[조용하다/ 호랑이의 등장을 말함].

 

"본원[공식적인 자리에서 자기를 이름]의 이름은 호랑인데 별호[별명]는 산군[산속의 임금]이올시다. 여러분 중에도 혹 아시는 이도 있을 듯하오. 지금 가정이 맹어호라 하는 문제를 가지고 두어 마디 할 터인데, 이것은 여러분 아시는 것과 같이, 옛적 유명한 성인 공자님이 하신 말씀이라. 가정이 맹어호라 하는 뜻은 까다로운 정사(政事)가 호랑이보다 무섭다 함이니, 양자(楊子)[양주의 존칭으로 양주는 중국 전국 시대의 학자]라 하는 사람도 이와 같은 말이 있는데 혹독한 관리는 날개 있고 뿔 있는 호랑이와 같다 한지라, 세상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제일 포악하고 무서운 것은 호랑이라 하였으니, 자고 이래로[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우리에게 해를 받은 자가 몇 명이나 되느뇨? 도리어 사람이 사람에게 해를 당하며 살륙을 당한 자가 몇억만 명인지 알 수 없소[인간의 포악함을 강조]. 우리는 설사 포악한 일을 할지라도 깊은 산과 깊은 골과 깊은 수풀 속에서만 횡행[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행동함]할 뿐이요, 사람처럼 청천백일지하에 왕궁 국도에서는 하지 아니하거늘[드러내놓고 잘못을 저지르지 않음], 사람들은 대낮에 사람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으며 죄 없는 백성을 감옥서에 몰아넣어서 돈 바치면 내어 놓고 세 없으면 죽이는 것과, 임금은 아무리 인자하여 사전(赦典 : 사면, 죄를 면하게 해 줌)을 내리더라도 법관이 용사(用事)하여[일을 어긋나게 조정하여] 공평치 못하게 죄인을 조종하고, 돈을 받고 벼슬을 내어서 그 벼슬한 사람이 그 밑천을 뽑으려고 음흉한 수단으로 정사를 까다롭게 하여 백성을 못 견디게 하니, 사람들의 악독한 일을 우리 호랑이에게 비하여 보면 몇만 배가 될는지 알 수 없소. 또 우리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더라도 하느님이 만들어 주신 발톱과 이빨로 하느님의 뜻을 받아 천성의 행위를 행할 뿐이어늘, 사람들은 학문을 이용하여 화학이니 물리학이니 배워서 사람의 도리에 유익한 옳은 일에 쓰는 것은 별로 없고, 각색 병기를 발명하여 군함이니 대포니 총이니 탄환이니 화약이니 칼이니 활이니 하는 등물(等物)[등등의 물건]을 만들어서 재물을 무한히 내버리고 사람을 무수히 죽여서, 나라를 만들 때의 만반[모든 일] 경륜[일정한 포부를 가지고 조직한 일. 계획]은 다 남을 해하려는 마음뿐이라[학문을 이용하여 ~ 해하려는 마음뿐이랴  : 학문과 지혜의 악용, 곡학아세(曲學阿世  : 바른 길에서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 사람에게 아첨함).]. 그런고로 영국 문학박사 판스라 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이 사람에게 대하여 잔인한 까닭으로 수천만 명 사람이 참혹한 지경에 들어갔도다 하였고, 옛날 진회왕이 초회왕을 청하매 초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려 하거늘, 그 신하 굴평이 간하여[윗사람에게 잘못을 고치라고 말함] 가로되, 진나라는 호랑이 나라이라 가히 믿지 못할지니 가시지 말으소서 하였으니, 호랑이의 나라가 어찌 진나라 하나뿐이리요. 오늘날 오대주(五大洲 : 전세계)를 둘러보면, 사람 사는 곳곳마다 어느 나라가 욕심 없는 나라가 있으며, 어느 나라가 포악하지 아니한 나라가 있으며, 어느 인간에 고상한 천리를 말하는 자가 있으며, 어느 세상에 진정한 인도를 의론하는 자가 있느뇨? 나라마다 진나라요 사람마다 호랑이라.[오늘날 ~ 사람마다 호랑이라 : 현재의 상황을 비판] 세상 사람들이 말하기를, 호랑이는 포악무쌍한 것이라 하되, 이것은 알지 못하는 말이로다. 우리는 원래 천품[타고난 기품]이 은혜를 잘 갚고 의리를 깊이 아나니, 글자 읽은 사람은 짐작할 듯하오. 옛적에, 진나라 곽무자라 하는 사람이 호랑이 목구멍에 걸린 뼈를 빼내어 주었더니 사슴을 드려 은혜를 갚았고, 영윤 자문[영윤의 자리에 오른 자문이]을 나서 몽택[더러운 집, 어지러운 세상]에 버렸더니 젖을 먹여 길렀으며, 양위의 효성을 감동하여 몸을 물리쳤으니[호랑이의 보은과 의리를 통해 호랑이보다 은혜를 모르는 인간을 비판하고 있음], 이런 일을 보면 우리가 은혜를 감동하고 의리를 아는 것이라. 사람들로 말하면 은혜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몇몇이나 되겠소? 옛적 사람이 말하기를, 호랑이를 기르면 후환이 된다 하여 지금까지 양호유환(養虎遺患 : 범을 길러서 화근을 남긴다는 뜻으로, 화근이 될 것을 길러서 후환을 당하게 됨을 이르는 말)이라 하는 문자를 쓰지마는, 되지 못한 사람의 새끼를 기르는 것이 도리어 정말 후환이 되는지라. 호랑이 새끼를 길러서 덕을 모으는 사람은 있으되 사람의 자식을 길러서 덕을 보는 사람은 별로 없소. 또 속담에 이르기를, 호랑이 죽음은 껍질에 있고, 사람의 죽음은 이름에 있다 하니[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어서 명예를 남겨야 함을 이르는 말로 사람의 삶이 헛되지 아니하면 그 이름이 길이 남음을 이르는 말,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지금 세상 사람의 정말 명예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소? 인생 칠십 고래희[예로부터 사람이 칠십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는 뜻. (古來稀)]라, 한세상 살 동안이 얼마 되지 아니한데 옳은 일만 할지라도 다 못 하고 죽을 터인데 꿈결같은 이 세상을 구구히 살려 하여 못된 일 할 생각이 시꺼멓게 있어서, 앞문으로 호랑이를 막고 뒷문으로 승냥이를 불러들이는 자도 있으니[겉으로는 공명정대한 체하나, 뒷구멍으로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경우를 비꼬아 이르는 말] 어찌 불쌍치 아니하리요. 옛적 사람은 호랑의 가죽을 쓰고 도적질하였으나, 지금 사람들은 껍질은 사람의 껍질을 쓰고 마음은 호랑이 마음을 가져서 더욱 험악하고 더욱 흉포한지라, 하느님은 지공무사(至公無私)[지극히 공정하여 사사로움이 없음.]하신 하느님이시니, 이같이 험악하고 흉포한 것들에게 제일 귀하고 신령하다는 권리를 줄 까닭이 무엇이오?[기독교적 세계관이 드러남] 사람으로 못된 일 하는 자의 종자를 없애는 것이 좋은 줄로 생각하옵네다."[알려진 고사와 권위자의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하고 있다] (하략)<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

 

 

1. 이 작품에서 풍자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학생들이 작품의 내용을 개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평소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주어 보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풀이  :  이 작품은 '금수 회의소'라는 모임 장소에서 8종류의 동물들이 인간(혹은 인류)의 온갖 악을 성토하는 내용으로, 교과서 수록 부분에서는 '인간의 불효'를 다루었다.

 

 

도우미

 

 풍자(satire) :

 개인, 사회 정치 등의 악덕, 모순, 부조리, 허세 등을 비판적 또는 조소적으로 빈정대는 표현기법을 말한다. 어원은 일반적으로 '가득히 담긴 접시'라는 뜻의 라틴 어 'lanxsatura'에서 유래한다고 알려져 있다. 문학, 음악, 미술, 무용, 영화 등 예술 분야뿐 아니라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표현 형태의 대부분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풍자는 언제나 현실에 대한 부정적, 비평적 태도를 취하므로 아이러니와 비슷하지만, 아이러니보다는 날카롭고 노골적인 공격의도를 지닌다. 또한 대상의 약점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데 있어 직접저인 공격을 피하고 간접적으로 빈정거리거나 유머의 수단을 이용한다. 그러나 냉소주의처럼 소극적인 태도로 인생을 백안시하고 냉소하는 행위에 그치거나 파괴를 위한 파괴 또는 단순한 비난과는 달리 공격 뒤에 교정과 개량의 목적을 가진다. 이 밖에 풍자가 자아내는 웃음은 소박한 웃음에 비해 내공적(內攻的) 음험성(陰險性)과 복잡성을 띠고 첨예화하는 특징이 있다.[출처 : 한메 파스칼 대백과사전]

 

꼼꼼히 읽기

동물들을 등장시켜 인간 사회를 풍자 비판한 우화 소설로, '나'라는 1인칭 관찰자가 꿈 속에서 인간들을 성토하는 회의장에 들어가, 동물들의 연설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몽유록에서 흔히 활용하는 꿈을 전체 소설의 액자로 삼고, 서언을 포함한 9개의 내부 이야기를 전개한다. 즉, 결말에서 다시 '나'의 관찰 내용이 종결 액자가 되는, 액자 소설의 구성을 취하고 있다.

1. 까마귀가 자신의 장점으로 가장 강하게 부각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의 개요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수록된 부분은 까마귀가 발언한 부분으로서, 인간의 불효를 비판한다는 내용이 중심이 되고 있다는 점에 유의한다.

풀이 : 까마귀는 '반포의 효'를 내세워 자신이 얼마나 부모에게 극진히 효를 행하는가를 자랑한 후에 인간의 불효함을 대조하고 있다.

 

2. 본문에서 비판하고 있는 당시 사회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풍자의 대상이 되는 당대 현실이 무엇인지 확인해 봄으로써 문학이 현실 사회에 문제를 제기하는 성격을 띠고 잇다는 점을 확인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학생들 가운데 발표 내용으로 '사람들은 점심 때까지 자빠져서 잠을 자고 한 번 집을 떠나서 나가면 혹은 협잡질하기, 혹은 술장보기∼'등으로 지엽적인 내용을 지적하게 되면 그것들이 결국은 '부모에게 불효하는 세태'와 관련된다는 점을 설명하면서 가급적 포괄적인 답변을 하도록 유도한다.

풀이 : 본문에서는 사람들이 점심 때까지 늦잠을 자고 집을 나가서는 계집과 노름에 빠져 집에 돌아오지 않음으로써 '부모를 봉양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 탐구 -

 우화(寓話) 형식과 교훈적 가치

'우화'는 인간이 아닌 특정한 사물에 정신과 인격을 부여하여 쓴 소설을 가리킨다. 대체로 우화는 현실 비판적 의식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작가가 그 교훈적 의도를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도 여덟 가지 동물들을 동참시켜 인간 사회의 불의를 비판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개화기의 시급한 과제인 정치적 자립, 민권 사상 및 도덕의 정화와 정치적 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 우화(寓話) : 교훈적인 내용을 동물이나 식물 등에 빗대어 표현한 이야기

- 우화를 사용하는 이유

 ① 작가가 현실 비판 의식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② 천진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면 교훈적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므로

- 대표적인 우화 : 이솝 이야기, 라퐁텐 우화집, 인도의 '자타카' 등

지도 방법 :  만약 현실에 대해서 강한 비판 의식을 지닌 작가가 문학 작품을 쓸 때, 인간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면 흔히 답답한 설교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천진한 동물을 주인공으로 할 때에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간명하게 표현될 수 있으며, 더욱이 어딘지 모르게 유머러스한 느낌마저 더해져 은연중에 듣는 사람을 유인하는 매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설교에는 권태를 느끼지만 우화에는 기꺼운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즐기면서 배운다."라고 프랑스 우화 작가 J. 라퐁텐은 말하였다. 때로는 직접적인 비판보다 우화를 통한 간접적인 비판이 훨씬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점을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3.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가 어떤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는지 파악해 보자.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우화를 사용한 표현 방식을 학생들이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기 위한 활동이다. 교과서에 수록된 부분에서 작가가 추구하려는 가치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독자에게 전달되고 있는지를 정리해 보도록 유도한다. 학생들이 '우화'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답을 밝혀도 좋고, '우화'의 의미를 풀어서 밝혀도 좋다는 점에 유의한다.

풀이 :  의인화된 동물들의 발언을 통해서, 우화의 기법으로

4.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윤리관과 외래적인 가치관이 함께 나타나 있다. 본문에서 각각의 가치관이 드러나 있는 부분을 찾아보자.

풀이 :

(1) 전통적인 윤리관 :   "효도는 덕의 근본이라, 효도는 일백 행실의 근원이라."(유교의 효사상)
(2) 외래적인 가치관 : "서양 책력 일천팔백칠십사년의 미국 조류학자 피루라 하는 사람이 ∼ 곡식에 해 되는 버러지를 잡아 먹는다 하였으니,"(서구의 합리주의)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작품 속에 어떤 가치관들이 형상화되어 있는지 직접 확인해 보도록 하는 활동이다. 여기서 말하는 외래적 가치관이라는 것은 서구의 가치관을 가리키는 것이며, 각각의 가치관이 드러난 부분이 여러 곳이므로, 어느 특정한 구절만 답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시야 넓히기

다음의 시조와 '금수회의록'에서 까마귀를 대하는 태도상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 이직의 시조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주변의 사물에서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을 탐색해 보는 활동이다.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사물에서도 가치를 발견해 내는, 참신한 발상이 무학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학생들 스스로 이해하도록 유도한다.

풀이  :  까마귀의 내면적인 가치를 중시하여 대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표현하기

고전 소설 '춘향전'을 우화(寓話)로 각색하고자 한다. 모둠별로 다음 사항에 대해 토의해 보고 아래의 표를 완성해 보자.

 등장 인물들은 각각 어떤 동(식)물로 표현하는 것이 좋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도 방법  :  이 활동은 본격적인 창작 활동에 앞선 준비 단계로서 작품의 얼개를 구상하는 단계에 해당하는 활동이며, 작품을 통해서 학습한 '우화'의 개념을 실제로 적용해 보는 활동이기도 하다. 모둠별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발휘해 가면서 창작의 즐거움을 느껴 보도록 배려한다.

예시 답안 :

등장 인물

동물 또는 식물

선정 이유

성춘향

고고하고 절개가 굳다

이몽룡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변학도

늑대

욕심이 많고 포악하다.

월매

고슴도치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다.

향단

주인에게 헌신적이다.

방자

원숭이

익살스럽게 행동한다.

 

더 읽을거리

 

김광용 편, '신문학과 시대 의식', 새문사, 1981

이용남, '신소설 바로 읽기', 국학자료원, 2001

이용남 외, '한국 개화기소설 연구', 태학사, 2000

안국선, '인력거꾼', '우리 소설 50선', 성림, 1992(출처 : 김윤식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 지도서)

 

 

1 이 작품의 기법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은 우화 형식을 빌려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이솝 우화를 예로 들어 우화가 무엇인지, 우화기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어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을 통해 우화적 기법의 특성과 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 우화란 인간 이외의 동물 또는 식물에 인간의 생활 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꼭 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는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설화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전적 정의에 기대어 우화의 기법에 대해 토의해보도록 유도한다. 우화가 어린 아이를 독자로 하는 아동 문학에 특히 많다는 사실과 연관시키는 것도 우화의 상징적 특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예시답안 :

 우화가 의도하는 바는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약점을 풍자하고 처세의 길을 암시하려는 데에 있다. 우화의 주인공은 한 마리의 쥐일 수도 있고 까마귀일 수도 있으나, 일단은 일상적으로 친숙한 동물 혹은 식물이어야 한다. 이들 주인공들은 인간의 모든 기능을 구비한 인격으로서 자유스럽게 지껄이며 행동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 자유스러움이 인간의 일상적 상식을 뛰어넘는 데서 도덕적인 깨달음을 주는 효과가 강해진다. 이것이 우화의 기교상 특징이다. 가령 이솝 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에는 인간 심성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깔려 있다. 길을 가던 여우가 목을 말라 물을 찾던 중 나무에 매달려 있는 포도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너무 높이 매달려 있는 바람에 아무리 높이 뛰어올라도 포도를 따 먹을 수 없었다. 이에 여우는 그 포도가 제대로 익지 않아서 시어빠졌을 거라고 위안하며 다시 길을 떠난다. 이 이야기에서 여우는 자신의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을 보상하고 억지로라도 자위하기 위해서 엉뚱한 이유를 들이댄다. 그런데 이것은 여우의 교활함을 드러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대체로 이런 식으로 자신의 실패를 애써 무마하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통찰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읽힌다. 이 이야기는 심리학의 주요한 용어인 합리화의 기제를 설명하는 예화로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보편적인 인간 심리의 작동방향을 적절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처럼 우화는 동물이나 식물 등의 형태를 통해 인간의 심리가 운동하는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 주는 데 효과적이다. 그만큼 상징적이고 상징적인 만큼 인간의 형태에 비유될 수 있는 폭이 넓기 때문에 이러한 기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2) 이 작품에서 우화기법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당대의 정치적 상황, 작자의 의도와 관련하여 설명해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은 문학의 당대의 사회·문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데 그 취지가 있다. 이 작품이 발표 당시에 판매 금지 처분을 당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그만큼 표현의 자유가 제약된 시절이었음을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한다.

 

예시답안 :

 당시에는 사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제약이 심하여 검열과 판매 금지 처분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 작품도 강한 주제의식 때문에 발표 당시에 금서 조처가 취해져 회수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작자가 인간의 비리를 고발하되 동물의 소리를 빌릴 수밖에 없는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우화적 형식은 작가가 내용의 강렬함을 의식하고, 첨예한 반응을 다소나마 둔화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미물에 불과한 금수가 인간 사회를 비판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우화 형식을 취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2. 작품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윤리관과 외래적인 가치관이 함께 나타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을 통해 당대의 정신 문화가 문학에 반영됨을 이해시킬 수 있다. 교과서에 실린 지문을 중심으로 근대적 가치와 중세적 가치가 충동하는 부분을 찾게 한다.

 

예시답안 :

 교과서에 실린 부분은 혼란한 개화기에 인륜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까마귀의 입을 빌어 개탄하고 있다. 근대 국가의 국민으로서 필요한 윤리 의식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근대적 가치를 지니지만, 이 작품에서 여성에 대해서 `학식이라고 조금 있으면 주제넘은 마음이 생겨`라고 하며, 여성 교육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윤리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동물의 입을 빌어 인간을 풍자하고 있다. 인간의 어떤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이 활동을 통해 문학이 사회에 참여하는 활동임을 이해시킨다. 즉, 작자는 문학을 통해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 활동을 통해 학생들은 확인해야 할 것이다. 까마귀가 무엇을 비판하고있는지를 주목하게 한다.

 

예시답안 :

 이 작품은 인간이 부모에 대한 효마저도 행하지 않고 인륜을 저버리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3) 우화 소설은 대체로 추상적인 시'공간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개화기의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비판하고 있는 당대의 사회상에 대해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2)에서 학습한 내용을 개화기 현실에 적용하여 생각하게 한다. 이를 통해 문학에 반영된 사회상을 추출할 수 있다.

 

예시답안 :

 개화기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변혁기로서 많은 사람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인륜을 저버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민족이 근대 국민으로서 윤리 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4) 이 작품에서 비판하고 있는 사회상을 현대 사회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지적되는 것을 하나만 골라, 이 소설의 문체와 우화 형식을 사용하여 짧은 글을 지어 발표해보자.

 

이끌어주기 :

 우화 형식을 통해 글을 쓰는 활동을 통하여 우화 형식이 비판에 적합함을 학생들이 확인 할 수 있도록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각각의 짐승들은 고사 속에서 형성된 고유한 이미지나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다소 예스러운 문체를 구사하되, 연설문임을 감안하여 구어체의 분위기를 지니는 글이 되도록 지도한다.

 

예시답안 :

 토사구팽(兎死狗烹) - 개

 나는 개올시다. 듣자 하니 세상에 간사하고 간악한 것이 인간인 듯하오. 내 그래서 인간들한테 할 말이 있어 이렇게 나왔소. 사실 우리처럼 족속들이 많은 동물도 없을 것이오. 살구가 맛이 없으면 개살구요, 나리꽃에도 못 끼면 개나리요, 망신도 큰 망신이면 개망신이요, 망나니도 큰 망나니면 개망나니요, 지랄도 큰 지랄이면 개지랄이요, 뻔뻔한 얼굴은 개가죽이요, 번지르르한 기름은 개기름이요, 보잘 것 없으면 개떡이라, 개씨 집안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門前成市)요 도리(桃李)만당(滿堂)이라. 도대체 우리 개들이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천대를 당하고 산단 말이오. 필요할 때엔 언제나 가까이 두고 이용해 먹는 가축이 바로 우리들이라 더욱 기막힌일이라오. 돼지가 도둑을 지켜 줄 수 없고, 소가 주인을 반기는 법이 없고, 염소가 주인을 도와 사냥을 할 수 없고, 닭이 식구와 같이 놀아주지 않는데, 왜 우리 개들은 인간들이 분풀이할 때마다 단골로 회자되는지 모를 일이오.

 

 따지고 보면 우리처럼 충직하고 의리 있는 동물은 없을 것이오. 그 옛날 전라도 오수라는 동네에서는 우리 조상 한 분은 불에 타 죽을 주인을 살리려고 냇가에 가서 물을 묻혀 잔디를 흥건히 적시고는 장렬하게 순사하신 적이 있소. 또 어떤 동포는 물에 빠진 어린애를 구해내기도 했다오.

 

 인간이야말로 의리를 모르는 족속들이라오. 돈 때문에 아들 손가락을 자르는 애비도 있고, 유산을 받으려고 부모를 불에 태워 죽이는 자식놈도 있고, 노부모 모시기 싫다고 양로원에 갖다 버리는 놈도 많지요. 출세를 하려고 친구를 배반하고 모함하는 놈, 권력을 얻으려고 어제는 한솥밥 먹던 동료를 오늘은 정적으로 나서서 깔아뭉개는 정치 모리배, 어려운 살림살이에 같이 고생하다가 돈을 좀 모으니까 조강지처 버리는 놈, 모두 모두 의리를 모르는 인간들이오. 필요할 때는 친구하다가 쓸모 없어지니까 매정하게 돌아서는 게 인간이라는 족속이라오.

 

 모든 인간은 결국 세 가지 부류 중의 하나일 것이오. 개보다 더한 놈이거나 개보다 못한 놈이거나 개같은 놈 중의 하나일 것이오.

 

->사냥개가 토끼를 잡고 나니까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의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를 통해 인간 사회의 불의를 고발하고자 하였다. 원전의 문체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였으나 다소 현대적인 문체로 변화시켜 가독성을 높였다. 장황한 열거와 구어체적인 문장을 통해 연설 분위기를 살리고자 하였다.

 

 

 이해와 감상

 안국선 ( 安國善 )이 지은 신소설. 1908년 황성서적업조합(皇城書籍業組合)에서 출간하였다. 1909년 언론출판규제법에 의하여 금서 조치가 내려진 작품 중 하나로, 동물들을 통하여 인간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풍자한 우화소설(寓話小說)이다. 서언(序言)에서 화자(話者)가 금수의 세상만도 못한 인간세상을 한탄한 뒤, 꿈속에 금수 회의소에 들어가 그들의 회의를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금수회의의 개회 취지에서는 이 세상 인간들의 부패함을 언급한 뒤, 사람된 자의 책임, 사람들 행위의 옳고 그름, 현재 인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가려낼 일을 논의하자고 제시한다. 제일 석에서는 반포지효(反哺之孝)를 들어 까마귀가 인간들의 불효를 규탄하고, 제이 석에서는 여우가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들면서, 현재 세상 사람이 외국 세력을 빌려 제 동포를 압박하는 것과 남의 나라를 무력으로 빼앗는 것 등에 대해 비난한다.

 

제삼 석에서는 개구리가 정와어해(井蛙語海)를 들어 분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규탄하며, 제사 석에서 벌은 구밀복검(口蜜腹劍)으로써 사람의 말과 마음이 다른 표리부동을 비난하고, 제오 석에서는 무장공자(無腸公子)로써 게가 사람들의 썩은 창자 및 부도덕을 풍자한다.

 

제육 석에서는 파리가 영영지극(營營之極)으로써 인간이란 골육상쟁을 일삼는 소인들이라고 매도하며, 제칠 석에서 호랑이는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로써 탐관오리 및 험악하고 흉포한 인간들을 비난한다. 제팔 석에서 원앙은 쌍거쌍래(雙去雙來)로써 문란해진 부부의 윤리를 규탄한다. 그리고 폐회에서 이들의 말은 모두 옳게 긍정되고, 화자는 이를 듣고 인간의 잘못을 깊이 깨닫는다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짐승과 곤충들이 개화기 당대의 인간사회를 비판하고 인간의 행위에 신랄한 규탄을 가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주로 불효 · 사대조성 · 부정부패 · 탐관오리 · 풍속문란 등 사회나 가정의 풍속적 타락에 대한 비판 외에도, ‘ 외국 사람에게 아첨하는 역적놈 ’ 이나 ‘ 무기로써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빼앗는 불한당 ’ 과 같이 외국을 규탄함으로써 당시 일본 침략의 위기에 대한 민족의식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물론, 이들은 모두 강렬한 주제의식에 지배되어 연설적 토로 이상의 소설적 형상화가 미흡하지만, 우화소설이나 몽유록 양식을 차용하여 개화기의 당면 과제였던 개화와 근대화라는 두 가지 명제를 함께 수용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가진다.

 

≪ 참고문헌 ≫ 新文學과 시대의식(金烈圭 · 申東旭, 새문社, 1981), 新小說硏究(全光鏞, 새문社, 1986), 禽獸會議錄과 共進會(尹明求, 牛山 창간호, 尙志實業專門大學, 1975), 開化期討論體小說硏究(金重河, 白史全光鏞華甲紀念論叢, 197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금수회의록'의 근대 소설로서의 성격

1) 주제 : '권선징악'에서 탈피,인간의 본질을 통하여 인생을 보려는 태도가 보임
2) 인물 : 성격과 심리에서 비교적 리얼리티를 획득
3) 사건과 배경 : 취재의 현실성과 사건의 현장성
4) 구성 : 단일 스토리의 연대기적 전개, 한 시기를 집중적으로 다룸, 복수의 사건의 병행적 전개
5) 문체 : 언문 일치에 접근, 산문체, 묘사위주

 

 의인 소설의 사적 전개 양상

① 고려때 '삼국사기'의 화왕계'와 '구토지설'은 의인 설화로 서 현재 한국 의인 문학의 효시이다.
② 고려때 가전체 소설로 '동문선'에 임춘의 '국순전', '공방 전', 이규보의 '국선생전', '청강사자현부전', 이곡의 '죽부 인전', 이첨의 '저생전', 석식영암의 '정시자전' 등이 실려 있다.
③ 조선 초기부터는 허구성과 작가의 창의성이 더 가미된, 현실을 반영한 의인 소설이 나왔다. 식물을 의인화 한 작 품으로 남성중의 '화사'(임제, 노극 작자설도 있음), 이이 순의 "화왕전', 정수강의 '포절군전', 등이 있다. 마음을 의 인화한 것에는 김우옹의 '천군전', 임제의 '수성지', 정태 제의 '천군연의' 등이 있다. 동물을 의인화 한 작품으로는 작자, 연대 미상의 '장끼전', '별주부전', '서동지전', '섬동 지전' 등이 있다. 그 밖에 작자와 연대 미상인 '규중 칠우 쟁론기', '꼭두각시 실기' 등이 있다.

 

 우화 정치 소설

 우화 소설은 주로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행위의 우매함과 타락함을 풍자, 비판하고 이를 계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특이한 기법의 서사 문학이다. 이런 양식의 소설은 부조리한 현실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의도된 저항 정신의 발로이자 건강한 도덕심을 제창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정치 소설은 정치 사상이 지배적 역할을 맡고 있거나 정치적 환경이 지배적인 배경으로 되어 있는 소설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국민의 정치적 계몽과 개인적 정견 발전 내지 사회 개량 수단으로 나타나거나, 국권신장의식을 반영하고 부패 관료의 학정을 폭로하는 풍자적 무기로 이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소설을 포함시킬 수 있다.

 

 금수회의록에 드러난 작자의 태도

 이 작품은 당시 사회와 국민들에 대한 강렬한 풍자와 비판 정신이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이제까지 제기된 문제를 기독교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안이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러한 말은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을 침탈하고 내정의 부패가 극심하던 시기에 전혀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역사발전에 대한 이해와 현실의 문제점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못했던 안국선은 그가 친일파로 변절하여 '공진회'를 쓴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개화기 시대적 요구의 반영

 개화기는 우리 민족사에서 격동과 충격의 시기였다. 안으로는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의 갈등이 심화되고 개화파와 수구파의 대립이 첨예화되어 통치 질서의 안정을 기할 수 없는 상태였고, 그로 인해 급격히 밀려드는 열강의 세력들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의 타개를 위하여 개화, 계몽 운동이 전개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며, 문학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그 대열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신소설의 경우, 이러한 시대적 사명을 망각한 채, 대중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대중 문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작품은 다른 신소설과는 달리 당대의 시대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하고, 동서 고금을 뛰어넘는 해박한 지식을 통하여 민중 계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인정된다.

 

 

국내학자가 日 작품 번안물 제기

 

<금수회의록>의 원작 소설로 추정되는 <금수회의인류공격>의 삽화 가운데 하나. <금수회의록> 표지와 상당히 유사하다. | 서재길 교수 제공

 

서재길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는 지난달 일본 시코쿠섬 도쿠시마현에 있는 나루토교육대학의 도서관에서 <금수회의인류공격>을 발견했다. 서 교수는 “ ‘서언’을 읽으면서 그 내용이 <금수회의록>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금수회의인류공격>은 일본 메이지 37년(1904년) 6월 초판이 간행됐다. 작가는 사토 구라타로로 ‘기구테이 고스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신문기자 겸 소설가다. <금수회의인류공격>은 까마귀·개구리·벌·게·박쥐·닭 등 44가지 동물들의 연설이 이어지는 구조로 돼 있다.

<금수회의록>이 일본 소설의 번안이라는 주장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70년대 중반 일본 학자 세리카와 데츠요가 <금수회의록>이 메이지 시기 정치소설인 <인류공격금수국회>(1885)를 번안한 것이라는 내용의 석사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등장 동물이 한 마리밖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표현상 표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금수회의인류공격>에는 <금수회의록>에 나오는 8가지 동물이 모두 등장하는 데다 표현의 상당 부분이 일치하는 등 두 작품의 영향관계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서 교수는 “일본인 유학자 관련 부분이 생략된 것을 빼면 <금수회의록> 서언은 <금수회의인류공격>의 번역에 가깝다”고 말했다.

번안 소설은 번역 소설과 달리 ‘현지화’ 과정을 거친다. 외국소설에서 스토리만 따오고 장면과 인물을 한국 으로 바꾸어 개작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금수회의록>은 어떤 ‘현지화’ 과정을 거쳤으며 안국선 자신의 창작적 요소는 얼마나 들어갔을까.

<금수회의인류공격>은 회의가 의회의 성격을 띠고, 각 동물이 지역적·공간적 대변자로 나온다. 그러나 당시 대한제국에는 의회가 없었기 때문에 <금수회의록> 회의는 의회적 성격이 약화된다. 또 원작과 달리 순한글로 쓰인 <금수회의록>은 고사성어나 역사적 인물에 대해 추가로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한국 독자에게 생소한 일본의 인명이나 역사적 사건과 관련된 내용은 생략했다.

안국선은 또 당대의 윤리적 타락을 비판하고 정치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보태는데, 이는 그의 창작의도가 개입된 것으로 보인다. 서 교수는 그러나 “<금수회의록>의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은 심정적 차원에 머물고 실질적 국면이 미흡하다. 원작이 지녔던 정치성을 잃어버렸다”고 평가했다.

<금수회의록>은 18종의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 가운데 12종에 수록돼 해방 이전 소설 작품 중에서 <메밀꽃 필 무렵>(14종), <태평천하>(13종), <동백꽃>(12종)과 더불어 세 번째로 많이 실려 있다. 현재 새 교과과정의 문학 교과서 검정 절차가 진행 중이며 올해 상반기 최종 확정돼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이라는 점에서 <금수회의록>이 번안 소설로 확인된다면 검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 교수는 “<금수회의록>을 교과서에 싣는다고 해도 번안물임을 인정하는 것과 창작물로 싣는 것은 서술방법에서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2240329155&code=960201

 


 개화기 문학 중 시사토론체 소설에 대한 이해

 애국계몽기 문학계에는 토론체 형식으로 된 독특한 서사 문학이 출현하였다. 이 시기에 시사토론체 소설이 성행한 것은 무엇보다 그 형식의 간편함과 단순함이 작자의 사상을 전달하거나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데 손쉬웠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독립협회 이래로 각지에서 정치연설회·토론회 등이 개최되었는데, 안자산에 따르면 ‘연설하고 토론하는 기풍이 도처에서 일어나니 열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능히 만인 가운데 우뚝서서 열변은 토할’정도였다고 한다. 시사토론체 소설의 형성에는 이러한 당시의 시세도 일정한 몫을 했을 것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문학 본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시사토론체 소설은 진정한 소설로서는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작품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인물과 환경이 작자의 의도에 따라 편의적으로 결정되었으니 결국 정치계몽을 위해 문학의 외피를 빌린 것이었다. 이와 같은 창작동기의 측면에서는 역사전기문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시사토론체 소설은 <대한매일신보>에 연제된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1905)과 ‘거부오해', 이해조의 '자유종'(광학서포, 1908)처럼 두 사람 이상이 참여하는 직접적인 대화, 토론의 형식을 취하거나, 우화의 형식을 빈 안국선(1854~1924)의 '금수회의록'(1908), 김필수의 '경세종'(1908), 몽유록의 형식을 차용한 유원표의 '몽견제갈량, 박은식의 '몽배금태조' 등이 있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우화 형식으로 된 시사토론체 소설의 대표작이다. 세상에 사는 여러 동물들이 회의를 열고 인류의 부패와 타락을 논박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애국계몽기를 전후한 사회의 비판, 풍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화는 이 작품에 대해 '노골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고취하지 않고 유머와 풍자로 시세를 폭로하고 새로운 정신을 취입하여 흥미와 실익과 다분의 예술미를 겸비한 작품'이라 높이 평가했다.

 

 처음에 등장한 까마귀는 세간에 효도의 양속이 점점 없어짐을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고사를 들어 비판하고, 여우는 외국의 세력을 빌어 벼슬을 얻고 제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와 무기를 앞세워 남의 나라를 약탈하는 제국주의를 싸잡아 호가호위(狐假虎威)라 꾸짖는다. 개구리는 천하의 대세는 알지 못하면서 무엇인가 아는 체하며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의 고혈을 빠는 데만 전심하는 지배세력과 발전된 문명을 이용하여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강대국의 형태를 비판하고, 벌은 조그마한 이익에도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아첨하다가도 약간의 손해만 끼칠 듯하면 사납게 표변하는 인심의 부동함과 제 본분에 열심이기보다 놀고 먹는 데 전념하는 인간의 게으름을 성토한다. 게는 사람들이 자신을 창자 없는 동물이라 업신여기나 사람들이야말로 온갖 압제를 받아도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창자 있는 사람이 자랑할 것이 없다고 야유한다. 파리는 더럽다는 핑계로 자신을 쫓아내기보다는 인간들 마음에 있는 물욕과 조정의 간신배들과 세상의 소인배를 쫓아내라 충고하며, 호랑이는 관리의 가렴주구(苛斂誅求)와 온갖 무기로 인류를 죽이는 인간의 잔인함을 개탄한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원앙은 축첩제도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편 절개를 잃은 여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도 잘못된 것이라 비판한다.

 

 이 소설은 동물들의 입을 빌려 봉건지배층의 타락상이나 제국주의 세력의 부당성, 그리고 일반 시정의 흐트러진 세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현실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제기에 대한 해결의 방도를 치밀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회개로 그것을 대신하였으니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시기에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담화나 토론체로 된 독특한 소설양식이 등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망국을 목전에 둔 급박한 상황에서 민중을 계몽, 각성시키려는 의식의 소산이다. 따라서 당시에 발표된 어느 서사양식보다도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형태로 현실의 모순을 풍자, 비판, 고발하였다. 그러나 시사토론체 소설은 인물과 사건의 형상을 통해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 본래의 모습과는 부합되지 못한 일종의 과도기적 소설양식이었다. 한일합방 이후 그 양식 자체가 소멸된 것은 일제의 탄압에 의해 금서처분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작가가 자신의 현실관을 근대 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출처 : 나병철, '서사문학의 양상과 성격')

 

 

 우화소설(寓話小說)

우화의 수법을 구사한 소설.

〔개 설〕

 흔히는 전승우화 특히 동물우화를 모태로 하여 발전한 소설을 이르지만, 우화의 개념을 보다 넓게 잡으면 우화소설의 개념이나 범위도 확대될 수 있다. 통용되고 있는 개념으로서 협의의 우화는 동(식)물의 가면을 쓴 유형(전형)적 인물을 통하여 보편적인 인간본성과 행위원리를 예시해 주는 이야기로서, 본시 윤리적·교훈적 목적의식이 강하며, 반어(反語)를 통하여 인간성의 결함이나 부조리를 비판하려는 풍자성을 수반하고 있다.


우화소설은 이와 같은 우화의 전통으로부터 인물·사건의 전형성, 풍자성, 윤리적 목적의식을 물려받고 있으나 당대 생활의 재현을 지향하는 소설의 장르적 성격상 특정한 사회제도와 이념·풍습과 문화, 혹은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개인의 삶의 문제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윤리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화의 전통은 오래된 것이어서 일찍이 신라의 설총(薛聰)도 〈화왕계 花王戒〉라는 창작우화를 남긴 바 있으나 우화소설은 소설이 본격적으로 발흥되던 조선 후기의 소산이다. 봉건사회가 모순을 드러내고 그를 지탱하고 있던 가치관이나 윤리·이념의 획일적 권위가 현실 경험에 의하여 부정되던 이 시대에, 전형적 차원에서 현실을 재현하면서 풍자를 무기로 삼아 그릇된 인간 의식과 행태를 비판해온 우화는 소설 장르로 쉽게 전화, 이행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작품 및 내용〕

  한글로 쓰여졌으며, 대개 우화에서 우화소설로 전성한 것으로 보이는 이 시기의 우화소설로는 〈토끼전〉·〈장끼전〉·〈서동지전 鼠同知傳〉·〈녹처사연회 鹿處士宴會〉·〈까치전〉 등이 있는데 그 중 판소리로 연창(演唱)되었던 〈토끼전〉·〈장끼전〉이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토끼전〉은 전형적인 봉건군주와 관료로 행세하는 용왕과 자라의 형상을 통하여 봉건이념과 관료사회의 풍속을 조소·비판하는 한편, 미천한 하층인 토끼로 하여금 인간성의 해방을 주장하게 하여 그의 불안과 욕망을 현실의 문제로 부각시킨 작품이다.


〈장끼전〉은 장끼로 표상되는 봉건 가부장의 맹목적 권위의식과 몽매한 남자의 탐욕을 징계하는 한편, 부조리한 사회로부터 고난과 순종을 강요당하는 미천한 여인의 비극적 운명과 이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까투리의 ‘개가(改嫁)’라는 사건을 통하여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주인공의 행태가 이농 유랑민의 애환을 담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한문으로 된 작품으로는 〈서대주전 鼠大州傳〉·〈와사옥안 蛙蛇獄案〉·〈서옥기 鼠獄記〉 등 옥기(獄記 : 재판기록)의 형식으로 된 작품들이 있는데, 이 중 〈서옥기〉는 작가의 독창성이 두드러지는 우화소설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창고를 털어먹은 큰 쥐의 범행에 대소 80여 종의 동식물이 연루되어 있는 옥사(獄事)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봉건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지배층의 수탈로 인하여 파탄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 후기 농촌사회의 실상을 풍자적인 비유와 반어·역설·패러디(parody) 등 우화가 동원할 수 있는 갖가지 수법을 통하여 예리하게 묘파, 고발하고 있다.


〈서대주전〉·〈서동지전 鼠同知傳〉·〈황새결송(決松)〉·〈녹처사연회 鹿處士宴會〉·〈두텁전〉 등 향촌사회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에서는 빈농과 부농 간의 대립·갈등이 작가의 계층적 이해에 따라 상이한 시각으로 그려져 있으며, 이를 통해 부농층의 탐욕과 착취 또는 수령과 판관의 부패와 무능이 고발되고 있다.

 


〔특 징〕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우화소설은 우화 특유의 표현방식 즉 반어와 비유에 의한 우회적인 표현을 통하여 타락한 기성사회의 윤리·이념을 신랄하게 비판, 풍자하는 한편, 민중층의 새로운 가치와 윤리의식을 제시하며 그들이 겪는 고통과 갈등을 심각한 현실적 문제로 제기할 수 있었다. 우화소설은 이 밖에도 인생과 사회의 단면을 압축과 비유를 통하여 극적으로 제시한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화적 특성은 복잡하게 변화하는 현실의 구체적·역동적 실상을 총체적으로 인식, 반영하는 데 장애로 작용하며, 따라서 우화소설은 제기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그와 같은 현실의 관찰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검증해 가기에는 역부족인 면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우화소설의 형식이 지니는 소설 장르의 한계는 명백하다.


 중세 후기의 낡은 세계와 세계관에 대한 풍자, 또는 낡은 문학·소설에 대한 패러디로 기능하던 우화소설류는 근대의 여명기 즉 애국계몽기에 접어들면서 우화 고유의 교훈적 목적의식을 강화하며 다시금 등장하게 되고, 이후 경향파 이래의 근·현대소설로도 간간히 출현하게 된다.


꿈속에서 본 동물들의 정치토론회를 보고하는 형식으로 서술된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은 우화에 토론의 형식을 가미한 애국계몽기의 우화소설로서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계몽기의 우화류 작품들은 현실을 비판적으로 조망하려는 시대적 요청에 부응한 현상이었으나, 앞에서 말한 한계로 인하여 기왕의 우화소설 전통을 넘어서는 새로운 문예적 성공을 거두기는 어려웠다.


 이제까지 좁은 의미의 우화(beast fable) 개념에 기초한 우화소설에 대하여 주로 논급하였으나, 우화 개념을 넓게 잡아 우언(寓言) 또는 우의(寓意)로 이루어진 이야기(서구문학의 용어 allegory가 이에 해당한다) 일체를 우화라고 볼 때 우화소설의 개념은 좀더 확대될 수 있다.


이 경우 가전(假傳)이나 가전체작품인 〈수성지 愁城誌〉·〈화사 花史〉, 나아가서는 환상적 구도 속에 역사와 현실을 접맥시키며 풍자적·상징적 의미를 부각시키고 있는 〈호질〉이나 몽유록계(夢遊錄系) 소설 등속으로까지 우화소설의 발달사는 넓게 추적해 갈 수 있다.


이들 작품은 현실세계의 보편적 양상에서 관련을 맺는 포괄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지향의 구도 및 환상과 자유로운 말의 진술, 당대의 지배적 담론과 충돌하는 심각한 역사철학의 문제의식, 혹은 비판적인 주제의식과 사상을 직설과 비유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표출해내고 있다. 현대의 우화소설도 이 같은 넓은 의미의 우화소설인 경우가 많다.


≪참고문헌≫ 朝鮮小說史(金台俊, 學藝社, 1939), 한국문학통사(조동일, 지식산업사, 1982), 조선후기 우화소설연구(민찬, 태학사, 1995), 동물우언의 전통과 우화소설(유증준, 월인, 1999), 寓話小說硏究(鄭學城, 國文學硏究 17, 서울大學校, 1972), 寓話小說 鼠獄記의 小說史的 價値(鄭學城, 張德順先生還甲記念 韓國古典散文硏究, 東亞文化社, 1981), 朝鮮後期寓話小說의 社會的 性格(鄭出憲, 高麗大學校博士學位論文, 199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국선(安國善 )  

 1878(고종 15)∼1926. 신소설가. 호는 천강(天江). 경기도 고삼(古三) 출생. 일본 유학을 한 개화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 1895년 관비유학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전문학교(東京專門學校)에서 정치학을 수학하였다. 귀국 후 독립협회에 가담하여 국민계몽운동에 헌신하다가 1898년 독립협회 해산과 함께 체포, 투옥되어 참형의 선고를 받았다가 진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907년부터 강단에서 정치·경제 등을 강의한 그는 교재로 ≪외교통의 外交通義≫·≪정치원론 政治原論≫ 등을 저술하였으며, ≪연설법방 演說法方≫은 당시 유행하던 사회계몽 수단인 연설 토론의 교본으로 저술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야뢰 夜雷≫·≪대한협회보 大韓協會報≫·≪기호흥학회월보 畿湖興學會月報≫ 등에 정치·경제·시사 등의 시사적인 논설도 발표하였으며, 대한협회의 평의원도 역임하였다.

 

그가 관계에 몸을 담게 된 것은 1908년 탁지부 ( 度支部 ) 서기관에 임명되면서부터이다. 1911년부터 약 2년간 청도 군수를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는 형무소에 수감 중 기독교에 귀의하였고 계명구락부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금광·개간·미두·주권 등에 손을 대었으나 실패하고 일시 낙향하여 생활하였으나 자녀의 교육을 위하여 다시 상경하였다.

 

그의 소설로는 〈금수회의록 禽獸會議錄〉·〈공진회 共進會〉 등이 있으며, 그 외에 필사본으로 〈발섭기 跋涉記〉 상·하 2권과 〈됴염전〉이 있다 하나 전하여지지 않고 있다. 그의 소설과 저술물의 기저를 이루는 사상으로 유교적 윤리와 기독교적 윤리사상을 들 수 있다.

 

이는 당대의 혼란한 국가와 사회를 바로잡고자 한 그의 현실관에서 나온 것으로 판단된다. 정신개조를 통한 자주독립과 국권회복을 이루려는 그의 태도는 동도서기론(東道西器論 : 우리의 전통적인 제도와 사상, 즉 동도(東道)는 지키면서 근대 서양의 과학기술, 즉 서기(西器)는 받아들이자는 이론.)의 개화파와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開化期小說의 理解(尹明求, 仁荷大學校出版部, 1986), 韓國小說發達史 下(全光鏞, 韓國文化史大系 Ⅴ, 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67), 安國善硏究(尹明求, 서울大學校碩士學位論文, 1974), 安國善의 生涯와 作品世界(權寧珉, 冠嶽語文硏究 2,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977).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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