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생이문록(琴生異聞錄)
by 송화은율금생이문록(琴生異聞錄)
1591년(선조 24) 최현(崔晛)이 지은 한문소설. 필사본. 처음 제목은 ‘ 금생전(琴生傳) ’ 이다. 1591년에 작품의 초를 잡아 박순백(朴純伯)에게 보여주고 나서 임진왜란 중에 초고를 잃어버렸다. 그러나 순백이 기록하여둔 것을 뒷날 ≪ 일선지 一善志 ≫ 를 편찬하면서 부록으로 싣게 되었다고 작품 말미에 전한다.
작품 끝에는 이준 ( 李埈 )의 발문이 있다. 몽유록계의 작품으로 금생이 꿈에 영남 금오산 ( 金烏山 )을 중심으로 한 충신과 의사를 만난 일을 서술하여 영남사림파의 전통을 옹호하고자 하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금생은 늘 큰 이상을 품었다. 그래서 유적과 명산을 두루 돌아보고, 충신 · 열사의 사당을 만나면 경배하고 시를 지어 그 뜻을 기리리라 생각하였다. 어느날 서책을 베개삼아 누웠다가 꿈의 세계로 가게 된다. 그윽한 곳에 이르니 세 기둥을 한 집이 있었다. ‘ 청풍입나지문(淸風立懦之門) ’ 이라 쓴 현판이 있어 들어간다.
안에는 길재 ( 吉再 ) · 김종직 ( 金宗直 ) · 정붕 ( 鄭鵬 ) · 박영 ( 朴英 ) 등이 있었다. 금생이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에 정몽주 ( 鄭夢周 )가 이르자 모두 나가 맞이하고 제자의 예를 올렸다. 뒤에 네 선생이 노사(老師) 4인과 처사(處士) 2인을 청하자 김주 ( 金澍 ) · 하위지 ( 河緯地 ) · 이맹전 ( 李孟專 ) · 김숙자 ( 金叔滋 ) · 박운(朴雲) · 김취성(金就成)이 이른다.
각각 정좌하고 난 뒤 정몽주가 학문과 수양의 도를 설하였다. 모두 머리 수그려 재배하고 다시 도덕과 나이순으로 자리를 정하여 앉았다. 술을 두어 차례 마시니 금생이 자청하여 〈 풍입송 風入松 〉 한 결을 켜자 정몽주가 시로 화답하였다. 그 가사는 문왕과 무왕을 그리워하고 후세인에게 공도(公道) 회복을 기대하는 내용이었다.
시회를 마치자 모두 흩어져 가고 금생만이 방황하다가 깨어보니 배 안이었다. 산 아래에 충신묘가 있다고 하여 가보니 사당 안에 네 선생의 위차(位次)가 있어, 꿈에 본 것과 같았으나, 네 노사와 두 처사는 없었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이해와 감상
〈 금생이문록 〉 은 〈 원생몽유록 元生夢遊錄 〉 과 같이 소설적인 구성을 갖추고 있지는 못하였다. 그러고 선산 지방의 인물을 부각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영남사림파의 전통을 옹호하고자 하였으므로 다른 몽유록계 소설에 비해 주제가 약화되었다. 유가적 도덕률과 수양과 학문을 제재로 하여 등장인물을 통해 그 교훈성을 설파하도록 만드는 등의 소설적인 면모에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작품이다.
≪ 참고문헌 ≫ 一善志, 韓國古典小說硏究(金起東, 敎學社, 1981), 琴生異聞錄-夢遊錄系小說의 新資料-(洪在烋, 경북대학교사범대학국어연구 2, 1971).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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