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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돌아오시니 ―재외 혁명동지에게 / 정지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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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들 돌아오시니 재외 혁명동지에게 /  정지용

 

 

백성과 나라가

이적(夷狄)에 팔리우고

국사(國祠)에 사신(邪神)

오연(傲然)히 앉은지

죽음보다 어두운

오호 삼십육년!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허울 벗기우고

외오* 돌아섰던

()! 이제 바로 돌아지라

자휘* 잃었던 물

옛 자리로 새소리 흘리어라

어제 하늘이 아니어니

새론 해가 오르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밭 이랑 문희우고*

곡식 앗어가고

이바지 하올 가음*마저 없어

금의(錦衣)는커니와

전진(戰塵) 떨리지 않은

융의(戎衣)* 그대로 뵈일밖에!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사오나온 말굽에

일가 친척 흩어지고

늙으신 어버이, 어린 오누이

낯서라 흙에 이름 없이 구르는 백골!

 

상기 불현듯 기다리는 마을마다

그대 어이 꽃을 밟으시리

가시덤불, 눈물로 헤치시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시집 󰡔해방기념시집󰡕, 1945.12)

 

* 외오 : ‘잘못의 옛말.

* 자휘(字彙) : 글자의 수효, 여기서는 이름을 의미함.

* 문희우고 : 무너뜨리고.

* 가음 : . 재료나 바탕.

* 융의 : 옛날 군복의 한 가지.


<감상의 길잡이>

19484󰡔문학󰡕의 지면을 빌어 국토와 인민에 흥미가 없는 문학을 순수하다고 하는 것이냐? 남들이 나를 부르기를 순수시인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나는 스스로 순수시인이라고 의식하고 표명한 적이 없다.”고 하면서 정치적인 시대에 시를 쓰지 못하는 심경의 일단을 드러내 보이기도 한 정지용은, 해방 직후 문학가동맹아동문학부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해방 전의 시작(詩作)과는 전혀 다른 문단 활동을 보여 준다.

 

이 시는 해방의 감격을 노래한 당대의 대표적 작품의 하나로 해방을 맞아 처음으로 간행된 앤솔로지(anthology : 시모음집)󰡔해방기념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우익문학 단체인 중앙문화협회의 주관으로 194512월 발간된 󰡔해방기념시집󰡕은 좌우익의 구별 없이 전 문단권을 망라하여 24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찬가(讚歌)나 헌사(獻詞)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만, 위의 정지용의 시를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해방을 맞는 감격의 직접성과 내면화된 서정성이 잘 조화되어 있는 뛰어난 수준을 보여 준다.

 

이 시는 그 부제에서 보듯 해방을 맞아 귀환하는 재외 혁명동지에게 바치는 헌사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그 귀환의 감격을 2469연에 동일한 어구로 직설적으로 반복함으로써 표제시(標題詩)의 의미를 직접 드러내 준다. 재외 혁명동지의 피 흘리신 보람은 상대적으로 죽음보다 어두운 삼십육년의 고초가 클수록 그 빛을 발휘하는 것이어서, 2469연의 그대들 돌아오시니 /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의 어구는 1357연으로 표현된 삼십육 년 간의 지난 현실과 적절한 대응을 이룸으로써 그 귀환의 감격을 배가시켜 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89연에서 보듯 7연의 고난의 현실 묘사에 이어 해방의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구조의 단조로움을 피하는 한편, 재외 혁명동지들의 귀환이 그저 금의환향이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것은 그러한 과거의 죽음보다 어두운 삼십육년의 세월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꽃을 밟을 수가 없고 가시덤불, 눈물로 헤치면서 귀환해야만 하는 조국의 현실로 상징된다.

 

이렇듯 귀환의 감격이 클수록 지난 과거의 고초에서 오는 회한과 비극의 강도가 거세지지만, 정지용은 그러한 아픈 상처를 적절히 위무(慰撫)할 줄 안다. 그것은 외오새론사오나온등의 조어법과 로 끝나는 아어형(雅語形) 어미의 적절한 배합에서 기인한다. 이 점에서 이 시는 직접적 감동과 서정성을 동시에 획득하는 시인 정지용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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