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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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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거래사(歸去來辭) / 도연명

 

 

歸去來兮 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田園將蕪胡不歸 전원장무호불귀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旣自以心爲形役 기자이심위형역

지금까지는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而獨悲 해추창이독비

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할 것인가.

悟已往之不諫 오이왕지불간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 없음을 깨달았다.

知來者之可追 지래자지가추

앞으로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實迷塗其未遠 실미도기미원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覺今是而昨非 각금시이작비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舟遙遙以輕  주요요이경양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風飄飄而吹衣 풍표표이취의

바람은 한들한들 가볍게 흔들리고,

問征夫以前路 문정부이전로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 보며,

恨晨光之熹微 한신광지희미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乃瞻衡宇 내첨형우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載欣載奔 재흔재분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僕歡迎 동복환영

머슴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稚子候門 치자후문

어린 것들의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三徑就荒 삼경취황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松菊猶存 송국유존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携幼入室 휴유입실

어린 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有酒盈樽 유주영준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引壺觴以自酌 인호상이자작

술단지 끌어당겨 나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眄庭柯以怡顔 면정가이이안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倚南窓以寄傲 의남창이기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 양양해하니,

審容膝之易安 심용슬지이안

무릎 하나 들일 만한 작은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園日涉以成趣 원일섭이성취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門雖設而常關 문수설이상관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策扶老以流憩 책부노이류게

지팡이에 늙은 몸 의지하며 발길 멎는 대로 쉬다가,

時矯首而遐觀 시교수이하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雲無心以出岫 운무심이출수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鳥倦飛而知還 조권비이지환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以將入 영예예이장입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撫孤松而盤桓 무고송이반환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歸去來兮 귀거래혜

돌아왔노라.

請息交以絶遊 청식교이절유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된 생활을 하겠다.

世與我而相違 세여아이상위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復駕言兮焉求 복가언혜언구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悅親戚之情話 열친척지정화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樂琴書以消憂 낙금서이소우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農人告余以春及 농인고여이춘급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將有事於西疇 장유사어서주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或命巾車 혹명건차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或棹孤舟 혹도고주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旣窈窕以尋壑 기요조이심학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亦崎嶇而經丘 역기구이경구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木欣欣以向榮 목흔흔이향영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있게 자라고,

泉涓涓而始流 천연연이시류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善萬物之得時 선만물지득시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感吾生之行休 감오생지행휴

나의 생이 머지 않았음을 느낀다.

已矣乎 이의호

아, 인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寓形宇內復幾時 우형우내복기시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曷不委心任去留 갈불위심임거류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胡爲乎遑遑欲何之호위호황황욕하지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富貴非吾願 부귀비오원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帝鄕不可期 제향불가기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懷良辰以孤往 회양진이고왕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或植杖而耘

  혹식장이운자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登東皐以舒嘯 등동고이서소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臨淸流而賦詩 임청류이부시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聊乘化以歸盡 요승화이귀진

잠시 조화의 수레를 탔다가 이 생명 다하는 대로 돌아가니,

樂夫天命復奚疑 낙부천명복해의

주어진 천명을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망설이랴. (박일봉 옮김)

귀거래혜 : 돌아가자. '래·혜'는 어조사

무 : 잡초가 우거져 황폐한 모양.

호 : 어찌. '何'와 같다.

기 : 지금껏

이심위형역 : 마음이 육체의 노예가 되는 것

해 : 어찌 '何'과 같음

추창 : 슬퍼하여 탄식함

불간 : 후회할 수 없다.

래자 : 장래, 이제부터의 인생

도 : 인생의 길. '途'와 같음

금 : 고향에 돌아가려는 지금

작 : 관리 생활을 하던 지난날의 자기

요요 : 가볍게 흔들리는 모양

양 : 물결로 배가 가볍게 흔들림.

표표 : 바람에 옷자락이 가볍게 나부끼는 모양

정부 : 길손, 나그네

내 : 마침내

담 : 자세히 보다.

형우 : 대문과 처마

재 : 가락을 고르게 하는 말로, '則'과 같음. - 하며 또 - 하다

후 : 기다리다

삼경 : 마당의 새 오솔길. 대문과 집 뒤의 우물로 가는 오솔길

취황 : 잡초가 무성해짐.

휴 : 데리고

호상 : 항아리와 술잔

면정가 : 뜰의 나뭇가지를 바라 봄

이안 : 웃음 짓는 얼굴

기오 : 의기 양양해함.

심 : 잘 알았다.

용슬 : 무릎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방

이안 : 편안히 있을 수 있다.

일섭 : 날마다

유게 : 거닐다가 마음내킬 때 쉰다.

교수 : 고개를 듦

하관 : 먼하늘을 바라봄

수 : 산골짜기

예예 : 어스름한 모양

반환 : 슬슬 거닐다.

식교, 절유 : 교제를 끊음

상위 : 서로 잊음. '忘'의 뜻

가 : 벼슬길에 오름

언 : 가락을 고르게 하는 말

금서 : 음악과 독서

유사 : 밭갈이를 함

서주 : 서쪽의 밭

건거 : 장식이 달린 수레

요조 : 구불구불하고 속이 깊숙한 모양

학 : 골짜기

흔흔 : 기뻐함. 초목이 생기 있음

영 : 초목이 무성함

연연 : 샘이 졸졸 흐르는 모양

선 : 기뻐함

득시 : 시기를 얻음

생지 행휴 : 곧 죽게 됨

이의호 :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어쩔 수 없으며

임거류 ; 가거나 있거나 맡긴다. 모든 것을 대자연의 섭리에 따름

호위호 : 어찌 - 인가

황황 : 덤비는 모양

욕하지 :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제향 : 신선이 사는 나라

회량신 ; 좋은 때라 생각되면

식장 : 지팡이를 세워 놓음

운자 : 김매다

동고 : 동쪽 언덕

서소 : 조용히 읊조리는 것

부시 : 시를 지음

요 : 잠시, 잠깐

승화 : 변화를 타다. 즉 자연 현상의 변화에 따르는 것

귀진 : 다함으로 돌아감. 자연의 변화에 따라 죽음으로 돌아감

부해의 : 또 무엇을 망설이고 의심할 것인가

 

돌아가자. 전원에 장차 묵으려 하거니. 어찌 돌아가지 않으랴.

이미 스스로 마음으로써 몸에 사역(使役)하였으니, 어찌 근심하여 홀로 슬퍼할 것이 있으랴.

지난 일은 고칠 수 없음을 깨달아, 장래에는 좇아서 틀리지 않을 것을 알았노라.

실로 길을 미(迷)하였으나 그리 멀지는 않았으니 이제부터는 옳고, 어제까지는 글렀음을 알겠더라.

 

배는 흔들려 가볍게 드놓이고.

바람은 옷자락을 날리누나.

나그네에게 앞길을 물어서 가니.

새벽빛이 희미한 것이 한스러워라.

 

이에 처마를 쳐다보고, 기쁜 마음으로 내 집으로 달려간다.

동복(童僕)은 기꺼이 맞이하고. 어린 아들은 문에서 기다린다.

삼경은 거칠어지고. 송국(松菊)은 아직도 남았구나.

어린 것을 이끌고 방으로 들어가니, 술이 통에 찼다.

단지 와 술잔을 잡아당겨 스스로 잔질을 하고, 정원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얼굴에 기쁜 표정을 드러냈다.

남창(南窓)에 기대어 태연히 앉았으니, 무릎을 용납할 만한 작은 방이지만 평안키만 하더라.

 

정원은 날로 거칠어도 언제나 아취 있는 전망을 이루고 있고, 문을 달아 놓았지만 늘 닫긴 채 그대로다.

지팡이로 늙은 몸을 붙들어 아무 데서나 마음대로 쉬고, 때로 머리를 높이 들어 자유로이 근방을 둘러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짝 굴속을 돌아나오고, 새는 날다가 지쳐서 다시 산으로 돌아올 줄 아는구나.

일광은 엷은 어둠에 가리면서 장차 서쪽으로 기울어 드는데,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그 주위를 맴돈다.

 

돌아가야지. 청컨대 교제를 쉬고 노는 것을 끊으리라.

세상과 나와는 서로 잊어버리자. 다시 수레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냐.

친척의 정화를 즐겨 듣고, 금서(琴書)를 즐기며 우수를 녹이리라.

농사꾼은 나에게 봄이 닥친 것을 알린다. 장차 서주에 일을 나야 하겠구나.

혹은 수레를 타고, 혹은 또 배를 저어,

저 구불구불한 깊은 골짜기를 찾아가고, 또는 높고 낮은 오르막길로 언덕을 지나서 산수의 경치를 즐기리.

나무들은 흐드러지게 생기가 돋아 꽃이 피려 하고, 샘은 퐁퐁 솟아 물이 넘쳐흐른다.

만물은 때를 얻어 즐기는데, 나의 생명은 갈수록 끝이 남을 느끼게 되는구나.

 

끝났구나. 형체를 세상에 붙임이 다시 몇 때나 되겠는가.

어찌 마음에 맡겨 가고 머무는 것을 자연에 맡기지 않는가. 어찌 황황히 어디를 가고자 하는가.

부귀는 나의 원하는 것이 아니며, 선국(仙國)은 기약하지 못하리라.

좋은 시절을 알아서 혼자서 가고, 혹은 지팡이를 세워 밭에 김 매고 흙을 북돋운다.

동쪽 언덕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청류(淸流)에 임(臨)하여 시를 짓는다.

얼마 동안 자연의 조화(造花)를 따르다가 마침내 돌아가면 되는 것이니, 천명(天命)을 즐기면 그만이었지 무엇을 의심하랴. (최기호 옮김)

귀거래사 : 벼슬을 그만 두고 시골로 돌아가는 노래

사역하였으니 : 일을 하도록 시켰으니

미하였으나 : 잘못 들었으나

동복 : 사내 아이종

송국 : 소나무와 국화

이미 스스로 마음으로써 몸에 사역(使役)하였으니, : 이미 스스로 마음으로써 육체의 부림을 당하게 하였으니, 어찌 근심하거나 슬퍼할 것이 있겠는가?

이는 한때 배고픔으로 인하여 지조를 꺾고 벼슬살이를 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설의법

단지 : 조그마한 항아리의 한 가지

잔질 : 잔에 술을 따르는 짓

아취 : 아담한 정취. 시적 운치

금서 : '금'은 현악기의 한 가지로서, 모양은 거문고와 비슷하나, 일곱 줄을 걸고 앞판 한쪽에 열세 개의 휘를 박았음

우수 : 근심과 걱정

서주 : 서쪽 두둑. '두둑'은 밭과 밭 사이에 경계를 이루는 언덕

무릎을 용납할 만한 작은 방이지만 평안키만 하더라. : 몹시 좁은 곳이지만, 스스로 만족하여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상과 나와는 서로 잊어버리자. 다시 수레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냐. : 세상의 속된 것을 나에게 떠나게 하리라. 다시 벼슬 자리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인가? 당시 관리들의 부패상을 볼 때,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함에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흐드러지게 : 썩 탐스럽게

형체 : 사물의 모양과 바탕

황황히 : 허둥거리며 정신이 없이

선국 : 신선의 나라. 태평스럽게 잘 사는 나라.

만물은 때를 얻어 즐기는데, 나의 생명은 갈수록 끝이 남을 느끼게 되는구나. : 모든 생물은 제 철을 만나 즐거운 모습인데, 자신은 점점 나이들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는 뜻으로서, 자연과 인생을 대조하여 나타냄.

돌아가리라!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니 어떻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이미 마음을 형체의 使役으로 삼았으니 어찌 실심하여 홀로 슬퍼하고만 잇으리요? 지난 일은 바로잡을 수 없음을 깨닫고 오는 일은 따를 수 있음을 알겠도다. 참으로 길을 잃었으나 그래도 멀지 않아서 오늘이 옳고 어제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도다.

배는 흔들흔들 가벼이 떠오르고 바람은 살랑살랑 불어 옷깃을 흩날리도다. 나그네에게 앞길을 물으니 새벽빛이 희미함을 한스러워하도다. 이윽고 내 집이 눈에 들어와 기뻐서 뛰어가노니, 심부름하는 아이는 반갑게 맞이하고 어린 것은 문 앞에서 기다리는도다. 세 가닥 뜰안 길은 황폐해져 가나 소나무와 국화는 오히려 예와 같구나.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방안으로 들어가니 술이 있어 할아리에 가득하여 술병과 잔을 가져와 혼자서 잔질하다가 뜨락의 나뭇가지를 보고 웃음을 머금는다. 남쪽 창에 기대어 오만함을 부치니 무릎이나 펼 만한 방이 오히려 편안함을 알겠도다.

매일같이 정원을 거니는 것으로 취미를 삼고, 문이야 달았으되 언제나 잠겨있다. 지팡이를 짚고서 거닐다가 쉬다가 가끔 머리를 들어 멀리 바라보니 구름은 무심히 산등성이에서 피어 오르고, 새는 날기에 지치면 돌아올 줄을 아는구나. 햇빛은 가물가물 막 어두워지려 하는데 외로이 선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대도다.

돌아가리라! 사귐을 그만두고 교유를 끊어야지 세상이 나와 서로 맞지 않으니 다시금 수레를 타고 무엇을 구하리요? 친척간의 정담을 기뻐하고 거문고와 책을 즐기면서 시름을 녹이노라. 농부가 내게 봄이 왔다고 일러주니 이제부터 서쪽 밭에서 일을 하게 되었구나. 혹은 휘장을 친 수레를 타고, 때로 언덕을 넘으니, 나무는 즐거운 듯 꽃이 피려 하고 샘물을 졸졸졸 비로소 흘러내린다. 만물이 제 철 맞음을 부러워하면서 나의 삶이 끝나감을 느끼는도다.

그만두어라. 몸뚱이를 우주 안에 붙여둠이 다시 몇 때나 되겠는가. 어찌 마음대로 가게 내버려두고 머무는 대로 맡기지 않고 어찌하여 서둘러 어디로 가없도다. 좋은 시절 생각하며 외로이 걷기도 하고, 혹은 지팡이를 세우고서 김매고 북돋기를 하노라.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을 불고, 맑은 물에 다달아서 시도 짓노라. 애오라지 자연의 조화에 따라 돌아가니 무릇 천명을 즐기되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조수익 옮김)

이미 마음을 삼았으니 : 육체, 즉 먹고 살기 위해서 정신을 쓴다는 뜻. 도연명이 다섯 말 쌀의 녹봉을 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벼슬의 심사를 밝히고 있다.

남쪽 창에 편안함을 알겠도다. : 자기 집에 오니 비록 좁은 방이긴 하지만 편안함 심사를 밝히고 있다.

세상이 무엇을 구하리요 : 세상 벼슬살이가 자신에게는 맞지 않으니 더는 벼슬을 구하지 않겠다는 뜻.

몸뚱이를 몇 해나 되겠는가 : 형체(육체)를 세상에 두는 것이 몇 해나 되겠는가? 즉 살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

어찌 마음대로 맡기지 않고 : 어찌 마음에 맡겨 가고 머무는 것을 자연에 맡기지 않으랴?

자연의 조화에 따라 의심하랴 : 자연 법칙에 의해 죽는 것이니 사는 날까지 즐겁게 지내야지 서운하게 여길 것이 없다.

요점 정리

작자 : 도연명(陶淵明)

갈래 : 한시. 사부(辭賦)

연대 : 진나라 말기 ∼ 송나라 초기

성격 : 전원적. 낭만적

표현 : 운문과 산문이 합쳐진 낭송체

구성 : 시간적, 순차적 구성

제1문단(1-12구)은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결의와 귀로, 전원으로 돌아가려는 결심

제2문단(13-24구)은 집에서 마중하는 모양과 집에서의 편안한 상태, 고향에 돌아와 편안함을 느낌

제3문단(25-32구)은 집 주위의 자연 묘사와 작자의 동작, 전원 생활의 즐거움

제4문단(33-48구)에서는 작자의 즐거움과 기쁨에 찬 생활 묘사, 세속의 삶과 전원 생활의 대조

제5문단(49-60구)은 전원 생활의 즐거움과 작자의 인생관에 대한 강조이다. 전원으로 귀환한 생활과 작자의 인생관 제시

제재 : 자연과 고향의 정취

주제 : 전원 생활의 풍취와 즐거움, 자연으로 돌아가 전원 생활에서 만족을 느낌, 자연 회귀와 전원 생활의 만족감.

출전 : <고문진보(古文眞寶)>

의의 : 전원시(田園詩)의 대표작이며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 이 작품은 노장사상에 영향을 받아 자연 복귀의 인생관을 나타내고 있는데, 관직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자연을 즐기는 정취가 잘 드러난, 유교와 노장 사상(老莊思想)을 바탕에 깔고 있는 전원시이다.

내용 연구

귀거래혜 : 돌아가자. '래·혜'는 어조사

무 : 잡초가 우거져 황폐한 모양.

호 : 어찌. '何'와 같다.

기 : 지금껏

이심위형역 : 마음이 육체의 노예가 되는 것

해 : 어찌 '何'과 같음

추창 : 슬퍼하여 탄식함

불간 : 후회할 수 없다.

래자 : 장래, 이제부터의 인생

도 : 인생의 길. '途'와 같음

금 : 고향에 돌아가려는 지금

작 : 관리 생활을 하던 지난날의 자기

요요 : 가볍게 흔들리는 모양

양 : 물결로 배가 가볍게 흔들림.

표표 : 바람에 옷자락이 가볍게 나부끼는 모양

정부 : 길손, 나그네

내 : 마침내

담 : 자세히 보다.

형우 : 대문과 처마

재 : 가락을 고르게 하는 말로, '則'과 같음. - 하며 또 - 하다

후 : 기다리다

삼경 : 마당의 새 오솔길. 대문과 집 뒤의 우물로 가는 오솔길

취황 : 잡초가 무성해짐.

휴 : 데리고

호상 : 항아리와 술잔

면정가 : 뜰의 나뭇가지를 바라 봄

이안 : 웃음 짓는 얼굴

기오 : 의기 양양해함.

심 : 잘 알았다.

용슬 : 무릎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방

이안 : 편안히 있을 수 있다.

일섭 : 날마다

유게 : 거닐다가 마음내킬 때 쉰다.

교수 : 고개를 듦

하관 : 먼하늘을 바라봄

수 : 산골짜기

예예 : 어스름한 모양

반환 : 슬슬 거닐다.

식교, 절유 : 교제를 끊음

상위 : 서로 잊음. '忘'의 뜻

가 : 벼슬길에 오름

언 : 가락을 고르게 하는 말

금서 : 음악과 독서

유사 : 밭갈이를 함

서주 : 서쪽의 밭

건거 : 장식이 달린 수레

요조 : 구불구불하고 속이 깊숙한 모양

학 : 골짜기

흔흔 : 기뻐함. 초목이 생기 있음

영 : 초목이 무성함

연연 : 샘이 졸졸 흐르는 모양

선 : 기뻐함

득시 : 시기를 얻음

생지 행휴 : 곧 죽게 됨

이의호 :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어쩔 수 없으며

임거류 ; 가거나 있거나 맡긴다. 모든 것을 대자연의 섭리에 따름

호위호 : 어찌 - 인가

황황 : 덤비는 모양

욕하지 :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제향 : 신선이 사는 나라

회량신 ; 좋은 때라 생각되면

식장 : 지팡이를 세워 놓음

운자 : 김매다

동고 : 동쪽 언덕

서소 : 조용히 읊조리는 것

부시 : 시를 지음

요 : 잠시, 잠깐

승화 : 변화를 타다. 즉 자연 현상의 변화에 따르는 것

귀진 : 다함으로 돌아감. 자연의 변화에 따라 죽음으로 돌아감

부해의 ; 또 무엇을 망설이고 의심할 것인가

 

귀거래사 : 벼슬을 그만 두고 시골로 돌아가는 노래

사역하였으니 : 일을 하도록 시켰으니

미하였으나 : 잘못 들었으나

동복 : 사내 아이종

송국 : 소나무와 국화

이미 스스로 마음으로써 몸에 사역(使役)하였으니, : 이미 스스로 마음으로써 육체의 부림을 당하게 하였으니, 어찌 근심하거나 슬퍼할 것이 있겠는가?

이는 한때 배고픔으로 인하여 지조를 꺾고 벼슬살이를 했다는 것을 보이고 있다. 설의법

단지 : 조그마한 항아리의 한 가지

잔질 : 잔에 술을 따르는 짓

아취 : 아담한 정취. 시적 운치

금서 : '금'은 현악기의 한 가지로서, 모양은 거문고와 비슷하나, 일곱 줄을 걸고 앞판 한쪽에 열세 개의 휘를 박았음

우수 : 근심과 걱정

서주 : 서쪽 두둑. '두둑'은 밭과 밭 사이에 경계를 이루는 언덕

무릎을 용납할 만한 작은 방이지만 평안키만 하더라. : 몹시 좁은 곳이지만, 스스로 만족하여 살아가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세상과 나와는 서로 잊어버리자. 다시 수레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냐. : 세상의 속된 것을 나에게 떠나게 하리라. 다시 벼슬 자리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인가? 당시 관리들의 부패상을 볼 때, 자신의 뜻을 펴지 못함에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흐드러지게 : 썩 탐스럽게

형체 : 사물의 모양과 바탕

황황히 : 허둥거리며 정신이 없이

선국 : 신선의 나라. 태평스럽게 잘 사는 나라.

만물은 때를 얻어 즐기는데, 나의 생명은 갈수록 끝이 남을 느끼게 되는구나. : 모든 생물은 제 철을 만나 즐거운 모습인데, 자신은 점점 나이 들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는 뜻으로서, 자연과 인생을 대조하여 나타냄.

 

이미 마음을 삼았으니 : 육체, 즉 먹고 살기 위해서 정신을 쓴다는 뜻. 도연명이 다섯 말 쌀의 녹봉을 받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벼슬의 심사를 밝히고 있다.

남쪽 창에 편안함을 알겠도다. : 자기 집에 오니 비록 좁은 방이긴 하지만 편안함 심사를 밝히고 있다.

세상이 무엇을 구하리요 : 세상 벼슬살이가 자신에게는 맞지 않으니 더는 벼슬을 구하지 않겠다는 뜻.

몸뚱이를 몇 때나 되겠는가 : 형체(육체)를 세상에 두는 것이 몇 해나 되겠는가? 즉 살 날이 그리 많지 않다는 뜻.

어찌 마음대로 맡기지 않고 : 어찌 마음에 맡겨 가고 머무는 것을 자연에 맡기지 않으랴?

자연의 조화에 따라 의심하랴 : 자연 법칙에 의해 죽는 것이니 사는 날까지 즐겁게 지내야지 서운하게 여길 것이 없다.

이해와 감상

도연명은 자연을 좋아하여 자연미를 노래한 시가 많고, 인간의 이상향을 자연 속에서 발견하려는 시를 많이 썼다. 이로부터 중국의 서경시가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중국 육조 시대의 수사법을 존중하면서도 평이한 언어로 시를 즐겨 썼다. 이 시는 작가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잃고 생활 때문에 팽택의 영이 되었으나 당시 관리들의 생활이 부패하고 타락하여 더 이상 참지 못하여 관직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지은 시다. 쉬운 언어 속에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나타내고 있으며, 농촌 생활의 흥겨움을 꿈꾸며, 인생 무상 속에 자연 귀의의 사상이 함께 나타나 있다.

이 작품은 도연명이 41 세 때 평택 현령으로 있을 때, 상급 기관에서 행정 시찰을 나오자 '내 어찌 쌀 다섯 말의 봉급을 위하여 그에게 허리를 굽힐소냐?'하고 사직하며 자신의 심정을 읊은 것이다. 도연명은 집안이 가난하여 다섯 번이나 관리에 생활을 해 보았으나, 어지러운 사회가 그에게 맞지는 않았다. 그래서 전원 속에 자신을 묻고 자기 본성에 맞는 세계를 찾아 나선다. 이 작품의 첫 부분에서는 하루 바삐 돌아가고픈 심정과 함께 집에 돌아온 만족감, 한적한 생활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자연과 하나가 되면서 천명에 안주하며 사는 데서 오는 삶의 즐거움이 잘 나타나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인 '애로라지 자연의 조화에 따라 돌아가니 무릇 천명을 즐기되 다시 무엇을 의심하랴.'에서는 도연명의 자연애와 인생관이 잘 응축되어 있다.

심화 자료

도연명(陶淵明 365~427.)

중국의 대표적 시인으로 이름은 잠(潛). 호는 오류선생(五柳先生). 연명은 자이다. 동진(東晉) 말기부터 남조(南朝)의 송(宋:劉宋이라고도 함) 초기에 걸쳐 생존했다.

생애

강주(江州) 심양군(尋陽郡:지금의 장시 성[江西省] 주장[九江]) 시상현(柴桑縣:지금의 싱쯔 현[星子縣])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대대로 남방의 토착 사족(士族)으로, 북조로부터 내려온 귀족이 절대적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당시의 남조 사회에서는 영달의 길에서 소외된 압박받는 계층이었다. 그러나 도연명이 평생 동경했던 증조부 도간(陶侃:259~334)은 동진 초에 장사군공(長沙郡公)·대사마(大司馬:최고군사령관)까지 승진했고, 할아버지 도무(陶茂)도 무창(武昌)의 태수(太守)로 재임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은둔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름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어머니는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 환온(桓溫)의 장사(長史:막료장)였던 맹가(孟嘉)의 넷째 딸이었다. 도연명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외동아들이었던 것 같다. 도연명의 첫번째 관료생활은 29세 때 자기가 살고 있던 강주의 좨주(祭酒:州의 교육장)로 취임한 것이었으나 곧 사임했다. 2번째 관료생활은 35세 때 당시 진(晉)나라 최대 북부군단(北府軍團)의 진군장군(鎭軍將軍)인 유뢰지(劉牢之)의 참군(參軍:참모)으로 취임한 것인데 이것 역시 곧 그만두었다. 3번째는 유뢰지의 휘하를 떠난 직후, 36~37세 무렵 형주(荊州:지금의 장링[江陵]) 자사(刺史) 환현(桓玄)의 막료로 취임한 것이다. 그러나 며칠 안되어 모친상을 당해 고향인 심양으로 돌아가 3년상을 치렀다. 이후 강주자사·참군 및 팽택(彭澤) 현령(縣令) 등의 관료생활은 고향에서 가까운 심양군 안에서 지냈다.

도연명이 10여 년에 걸친 관료생활을 최종적으로 마감하고 은둔생활에 들어간 시기는 의희(義熙) 원년(405) 11월 41세 때였다. 그는 팽택 현령이 된 지 겨우 80여 일 만에 자발적으로 퇴관했다. 퇴관의 결정적인 동기에 관해서는 다음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해말에 심양군 장관의 직속인 독우(督郵:순찰관)가 순찰을 온다고 하여 밑의 관료가 "필히 의관을 정제하고 맞이 하십시오" 하고 진언했더니, 도연명은 "오두미(五斗米:월급) 때문에 허리를 굽혀 향리의 소인을 섬기는 일을 할 수 있을손가"라고 말한 뒤 그날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갔다고 한다(〈宋書〉 隱逸傳). 또 한편으로 이때의 사퇴 동기에 관해서 도연명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취임해서 어느 정도 되자 집에 돌아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럭저럭 벼가 익거든 빠져나가려고 생각하던 차에 누이의 부음이 들려오자 조금도 참을 수 없게 되어 스스로 사임하고 집에 돌아왔다"(〈歸去來辭〉 序). 이때 나온 작품이 유명한 〈귀거래사〉·〈귀전원거오수 歸田園居五首〉이다.

이리하여 도연명은 이후 죽을 때까지 20여 년 간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고향에 은거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갑작스런 화재로 생가가 타버리자 그는 일가를 거느리고 고향을 떠나 주도인 심양의 남쪽 근교에 있는 남촌(南村:또는 南里)으로 이사해서 그곳에서 만년을 보내게 되었다. 이사한 후 술을 좋아하던 그는 차츰 빈궁한 생활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사를 함으로써 잃어버린 것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강주의 장관 왕홍(王弘)을 비롯해서 은경인(殷景仁)·안연지(顔延之) 등 많은 관료·지식인과 친교를 맺을 수 있었다. 그가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후에 남조 송의 내각과 문단의 지도자가 된 왕홍과 안연지를 친구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연명의 시문으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4언시(四言詩) 9수, 5언시 115수, 산문 11편이다. 이중 저작연대가 명확한 것이나 대강 알 수 있는 것은 80수뿐이다. 그밖의 것은 중년기 이후, 즉 그가 은둔생활을 보낸 약 20여 년 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작품

도연명의 작품으로 가장 특색있고 후세까지도 중시되고 있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5언시이다. 우선 5언이라는 형태는 육조시대를 통해 시인들이 특히 애호한 보편적인 형식이었고 그의 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시가 특히 주목되고 애송되는 까닭은 고요하고 자연스러운 읊조림과 멀리 세속의 티끌을 넘어서서 맑고 깊은 운치를 칭송하는 시의 경지 때문이다. 예부터 특히 유명한 〈 음주이십수 飮酒二十首〉 중의 제5수를 예로 들어보자.

"마을 안에 엮어 놓은 오두막집, 그래도 시끄러운 수레소리 들리지 않네/어떻게 하면 이렇게 되는가요? 마음이 멀면 사는 곳도 외진다오/동쪽 울타리 밑에서 국화를 꺾어 드니 그윽이 보이는 남산(南山)/산기운이 석양에 아름답고 나는 새들도 무리지어 돌아가누나/이 가운데 있는 참뜻, 설명하려고 하나 이미 말을 잊었도다."

여기에서는 자연의 경치와 하나로 융합되는 마음속에서 대자연의 진실 가운데로 침잠하는 도연명의 담담한 자태를 엿볼 수 있다. 시의 표현에 있어서도 당시 궁정 문단에서 유행하던 화려한 기교와는 정반대로 거의 기교라고 할 만한 것 없이 자기의 감회를 자연스럽게 읊조리고 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표현을 지향하며 자연스러움과 순박함을 동경한 도연명의 문학은 그의 시에서만 표출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귀거래사〉·〈도화원기 桃花源記〉·〈오류선생전 五柳先生傳〉 등의 산문도 역시 같은 표현방식으로 지어진 주옥 같은 작품들이다. 이들 산문 가운데 특히 〈오류선생전〉은 후세에 도연명 상(像)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자전적인 작품이다.

도연명의 시문에는 확실히 고요하고 맑은 심경을 읊조린 작품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세속을 초월한 작품이 그의 시문 전부를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편수가 그다지 많지 않고 또 후세에 그렇게 유명한 작품이 되지는 못했어도 그의 시문 가운데에는 쇠락한 운명의 슬픔을 읊은 것이라든가 가난한 생활의 괴로움을 호소한 것, 행복한 세상사람들을 부러워한 것, 죽음의 공포를 두려워한 것 등 세속적인 작품도 적지 않다. 도연명이 그 생애를 통해서 스스로 정신생활의 이상으로 여긴 것은 앞에 들은 〈음주이십수〉의 시에도 나오는 ' 진'(眞)의 경지였다. 이 '진'이라는 개념은 도연명의 경우 철학적·사상적인 것이라기보다 문학적·감성적 색채가 강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내용적으로는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하는 '순'(淳)이라든가 '박'(朴)이라는 개념으로 바꿔도 좋을 것이다. 더욱 구체화해서 말하면 하늘 높이 자유로이 나는 '새'나 깊은 물 밑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물고기'의 경지가 이에 해당한다. 이는 '지교'(智巧)나 '대위'(大僞)와는 정반대의 개념이기도 하다. 요컨대 도연명이 말하는 '진'은 개인의 완전한 자유를 의미하는 것이며, 복희(伏羲)·신농(神農)이 다스리던 이상적 상고시대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도연명은 중국 역사상 거의 유일한 본격적인 은일시인이었으므로 그에 대한 후세의 평가는 매우 높다. 그의 친구였던 안연지의 〈도징사뢰 陶徵士〉는 그의 고결한 인품을 칭찬한 것이었고, 〈송서〉 은일전을 비롯한 각 정사(正史)에 있는 도연명의 전기와 양(梁)나라 소통(簫統)의 〈도연명전 陶淵明傳〉 등도 마찬가지였다. 또 이상하게도 화려한 남조 문학의 극치라고도 할 수 있는 '궁체'(宮體)의 시종(詩宗)이었던 양나라의 간문제(簡文帝:503~551)도 형인 소통과 마찬가지로 열렬한 도연명 숭배자였다. 도연명의 인품과 시문은 이미 육조시대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양나라 강엄(江淹:444~505)이 한(漢)부터 진송(晉宋)까지의 시인 30명의 시를 모방해서 지은 〈잡체시 雜體詩〉 30수(〈文選〉 권31)에서는 도연명을 조식(曹植)·육기(陸機) 등의 유명한 시인과 나란히 열거하고 있다. 같은 양나라 사람 종영(鍾嶸)의 〈시품 詩品〉에서도 도연명의 5언시에 중품(中品)의 품격을 매겨놓고 또 "고금 은일시인의 으뜸"이라고 판정하고 있다. 그러나 특히 도연명을 중국 역사상 최고의 시인이라고까지 절찬하여 결정적으로 높이 평가한 사람은 북송(北宋)의 위대한 시인 소식(蘇軾:1037~1101, 호는 東坡)이었다. 이렇게 하여 은일의 성자(聖者), 세속을 초월한 대시인으로서의 이상적 도연명 상은 확립되었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귀거래사(歸去來辭)

405년(진나라 의회1) 그가 41세 때, 최후의 관직인 팽택현(彭澤縣)의 지사(知事) 자리를 버리고 고향인 시골로 돌아오는 심경을 읊은 시로서, 세속과의 결별을 진술한 선언문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4장으로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른 각운(脚韻)을 밟고 있다. 제1장은 관리생활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정신 해방으로 간주하여 읊었고, 제2장은 그리운 고향집에 도착하여 자녀들의 영접을 받는 기쁨을 그렸으며, 제3장은 세속과의 절연선언(絶緣宣言)을 포함,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담았으며, 제4장은 전원 속에서 자연의 섭리에 따라 목숨이 다할 때까지 살아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작자는 이 작품을 쓰는 동기를 그 서문에서 밝혔는데, 거기에는 누이동생의 죽음을 슬퍼하여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했으나, 양(梁)의 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도연명전(陶淵明傳)》에는, 감독관의 순시를 의관속대(衣冠束帶)하고 영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오두미(五斗米:5말의 쌀, 즉 적은 봉급)를 위해 향리의 소인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하며, 그날로 사직하였다고 전한다. 이 작품은 도연명의 기개를 나타내는 이와 같은 일화와 함께 은둔을 선언한 일생의 한 절정을 장식한 작품이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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