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어야 좋은 재목감
by 송화은율굽어야 좋은 재목감
장 유 지음
조동영 번역
이웃에 장씨(張氏) 성을 가진 자가 산다. 그가 집을 짓기 위하여 나무를 베려고 산에 갔는데, 우거진 숲속의 나무들을 다 둘러보아도 대부분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쓸만한 것이 없었다. 그러다 산꼭대기에서 한 그루의 나무를 발견하였는데, 정면에서 바라보나 좌우에서 바라보나 분명히 곧았다. 쓸 만한 재목이다 싶어 도끼를 들고 다가가 뒤쪽에서 바라보니, 형편없이 굽은 나무였다. 이에 도끼를 버리고 탄식하였다.
"아, 재목으로 쓸 나무는 보면 쉽게 드러나고, 가름하기도 쉬운 법이다. 그런데 이 나무를 내가 세 번이나 바라보고서도 재목감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러니 겉으로 후덕해 보이고 인정 깊은 사람일 경우 어떻게 그 본심을 알 수 있겠는가. 말을 들어보면 그럴듯하고 얼굴을 보면 선량해 보이고 세세한 행동까지도 신중히 하므로 우선은 군자(君子)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막상 큰 일을 당하거나 중대한 일에 임하게 되면 그의 본색이 드러나고 만다. 국가가 패망하는 원인도 따지고 보면 언제나 이러한 사람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리고 나무가 자랄 때 짐승들에게 짓밟히거나 도끼 따위로 해침을 받은 일도 없이 오로지 이슬의 덕택에 날로 무성하게 자랐으니, 마땅히 굽은 데 없이 곧아야 할 텐데 꼬부라지고 뒤틀려서 이다지도 쓸모 없는 재목이 되고 말았다. 황차 요즘 같은 세상살이에 있어서랴.
물욕(物慾)이 진실을 어지럽히고 이해(利害)가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때문에 천성을 굽히고 당초에 먹은 마음에서 떠나고 마는 자가 헤아릴 수 없으니, 속이는 자가 많고 정직한 자가 적은 것을 괴이하게 여길 일도 아니다."
이 생각을 내게 전하기에 나는 이렇게 말해 주었다.
"그대는 정말 잘 보았다. 그러나 나에게도 할 말이 있다. 「서경(書經)」홍범(洪範)편에 오행(五行)을 논하면서, 나무를 곡(曲)과 직(直)으로 설명하였다. 그렇다면 나무가 굽은 것은 재목감은 안 될지 몰라도 나무의 천성으로 보면 당연한 것이다. 공자는 '사람은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게 살아가는 자는 요행히 죽음만 모면해 가는 것이다.' 하였다. 그렇다면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 또한 요행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보건대, 이 세상에서 굽은 나무는 아무리 서투른 목수일지라도 가져다 쓰지 않는데,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잘 다스려지는 세상에서도 버림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그대는 큰 집의 구조를 살펴보라. 들보와 기둥, 서까래와 각목이 수없이 많이 얽혀서 구조를 이루고 있지만 굽은 재목은 보지 못할 것이다. 반면 조정 대신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라. 공(公)과 경(卿)과 대부(大夫) 그리고 사(士)가 예복을 갖추어 입고 낭묘(廊廟)에 드나드는데, 그중 정직한 도리를 간직하고 있는 자는 보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보면 굽은 나무는 항상 불행을 겪고 사람은 정직하지 않은 자가 항상 행운을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옛 말에 '곧기가 현(絃)과 같은 자는 길거리에서 죽어가고 굽기가 구(鉤)와 같은 자는 공후(公侯)에 봉해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굽은 나무보다 많다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장 유 (1587∼1638) 자는 지국(持國), 호는 계곡(谿谷)ㆍ묵소(默所), 본관은 덕수(德水), 시호는 문충(文忠),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 광해군 원년에 문과에 급제하고 인조반정 이후 문형(文衡) 등의 중임을 역임함. 한유(韓愈)ㆍ구양수(歐陽脩)에 비견될 만큼 뛰어난 문장 솜씨로 고문대책(高文大策)을 많이 지었으며, 청렴한 성품으로도 이름이 남. 저술로는 「계곡만필(谿谷漫筆)」「계곡집(谿谷集)」이 있다. 위 글은 그의 시문집 「계곡집」권4 설조(說條)에 실려 있으며, 원제(原題)는 <곡목설(曲木說)>이다.
출처 : 한국민족문화추진위원회 국역연수원교양강좌 자료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