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by 송화은율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 모윤숙
― 나는 광주 산곡을 헤매이다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
<감상의 길잡이 1>
이 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6․25 때 광주 산곡에서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어느 국군 소위를 발견한 화자가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 그의 애국․애족심을 명확한 시어와 강한 호소력의 남성적 어조로 노래한 계몽시이다.
일찍이 시원 동인으로 시작 활동을 시작했던 모윤숙은 일제하에서 한때 민족적 색채가 강한 시를 발표하기도 하고, 창씨개명에도 반대하는 등 저항적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으나, 결국엔 일제의 압력과 회유에 굴복하여 친일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해방 후에는 철저한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당시 최대의 문학지인 문예를 창간하고 민족주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 의식이 짙은 작품을 발표하게 된다. 6․25가 발발하자 모윤숙은 김윤성, 공중인 등과 함께 비상국민선전대에 참가하여 많은 격시(檄詩)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모윤숙은 문학뿐 아니라, 정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여 유엔 총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여 국제 무대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큰 공헌을 했으며, 1972년에는 공화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기도 하였다.
이 시는 전 12연의 자유시로 기(起)․서(敍)․결(結)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즉, 죽은 국군 소위가 말하는 대목을 중심으로 하여 그 앞뒤에 서사와 결사를 결합한 형식이다.
1연~3연의 기(起)단락에서 화자는 외따른 골짜기에서 발견한 국군 소위의 시신에서 아직 식지 않은 피를 바라보며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고 있다.
4연~11연의 서(敍)단락은 죽어가는 국군 소위가 남기는 유언이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가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죽은 시신에게서 화자가 떠올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25세의 대한민국 아들로 숨을 마친다. 나는 용감하게 원수의 하늘까지 진격하고 싶었다. 나는 내 부모, 동생, 사랑하는 소녀 등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이 땅에서 살고 싶어 용감하게 싸웠다. 그러나 나는 군복을 입은 채 이름 모를 골짜기에서 죽어 나이팅게일의 영원한 벗이 되었다. 바람이나 새들에게도 이르고 싶다. 내 나라의 동포들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내가 이루지 못한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를 갚기 위하여 무덤도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겠다.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내 나라의 한 줌 흙이 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마지막 12연의 결(結)단락은 3개 연으로 이루어진 기(起)단락을 하나의 연으로 만들어 재배치함으로써 수미상관의 구성으로 극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전쟁터의 죽음은 피아(彼我)가 없이 가련하다. 모든 전쟁은 아무리 고귀한 명분을 가진 것이라 하더라도 쇠붙이를 만든 살의와 획책된 죽음의 비인간성으로 인해 단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채 전쟁에 말려들기도 하며, 증오의 화신이 되어 총칼을 들고나설 수도 있다. 폭력을 거부하는 것은 이성적 인간의 마땅한 태도이지만 복잡한 세상의 일은 항상 이성을 유지하도록 하지 않는다. 오래지 않은 과거에 우리의 땅에는 대규모의 전쟁이 있었다. 동족이 서로를 죽인 이 전쟁은 대량살육의 끔찍함과 함께 동족간의 증오에서 시작되어 그 증오를 증폭, 재생산하였다는 데에 돌이킬 수 없는 뼈아픔이 있다. 양쪽 모두에게 양보하지 못할, 서로 다른 명분이 주어진 이 피비린내 속에 이성(理性)을 유지하는 일은 난망한 것이었으리라.
난리 중에 시인은 젊은 군인의 시신을 보았다. 전쟁터에서 숨져간 스물 다섯 살의 젊은이가 평화로운 시절이였더라면 가질 수 있었던 인생의 화려한 시절을 떠올리며 시인은 그의 죽음이 고귀한 죽음이며 헛된 희생이 아니라는 위로의 말을 남긴다. 이와 같은 `고귀한 희생'은 또 얼마나 많았을 것인가. 겨레를 `오랑캐'의 흉악한 손에서 지켜내기 위해 의연히 총칼을 든 자랑스러움과 후회 없는 희생은 무릇 전쟁이 남기는 영광이자 상처이지만, 이 시가 소재를 얻고 있는 전쟁은 일말의 서글픔이 없는 것도 아니다. 서로가 오랑캐로 보고 증오의 총탄을 쏘아댄 그들이 모두 한 핏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었던 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것을 요구할 수는 없으리라. 그래서 시인이 찾아낸 위로의 시구들 또한 아름답고 눈물겨운 것이다. [해설: 이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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