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훈가
by 송화은율
교훈가
1.
왈이자질 아이들아 경수차서 하였어라
너희도 이세상에 오행으로 생겨나서
삼강을 법을삼고 오륜에 참예해서
이십살 자라나니 성문고족 이내집안
병수없는 너의거동 보고나니 경사로다
소업없이 길러내니 일희일비 아닐런가
2.
내역시 이세상에 자아시 지낸일을
역력히 생각하니 대저인간 백천만사
행코나니 그뿐이오 겪고나니 고생일세
그중에 한가지도 소업성공 바이없어
흉중에 품은회포 일소일파 하온후에
이내신명 돌아보니 나이이미 사십이오
세상풍속 돌아보니 여차여차 우여차라
아서라 이내신명 이밖에 다시없다
구미용담 찾아들어 중한맹세 다시하고
부처가 마주앉아 탄식하고 하는말이
대장부 사십평생 해음없이 지내나니
이제야 할길없네 자호이름 다시지어
불출산외 맹세하니 기의심장 아닐런가
3.
슬프다 이내신명 이리될줄 알았으면
윤산은 고사하고 부모님께 받은세업
근력기중 하였으면 악의악식 면치마는
경륜이나 있는듯이 효박한 이세상에
혼자앉아 탄식하고 그럭저럭 하다가서
탕패산업 되었으니 원망도 쓸데없고
한탄도 쓸데없네 여필종부 아닐런가
자네역시 자아시로 호의호식 하던말을
일시도 아니말면 부화부순 무엇이며
강보에 어린자식 불인지사 아닐런가
그말저말 다던지고 차차차차 지내보세
천생만민 하였으니 필수지직 할것이오
명내재천 하였으니 죽을염려 왜있으며
한울님이 사람낼때 녹없이는 아니내네
우리라 무슨팔자 그다지 기험할꼬
부하고 귀한사람 이전시절 빈천이오
빈하고 천한사람 오는시절 부귀로세
천운이 순환하사 무왕불복 하시나니
그러나 이내집은 적선적덕 하는공은
자전자시 고연이라 여경인들 없을소냐
세세유전 착한마음 잃지말고 지켜내서
안빈낙도 하온후에 수신제가 하여보세
아무리 세상사람 비방하고 원망말을
청이불문 하여두고 불의지사 흉한빛을
시지불견 하여두고 어린자식 효유해서
매매사사 교훈하여 어진일을 본을받아
가정지업 지켜내면 그아니 낙일런가
4.
이러그러 안심해서 칠팔삭 지내나니
꿈일런가 잠일런가 무극대도 받아내어
정심수신 하온후에 다시앉아 생각하니
우리집안 여경인가 순환지리 회복인가
어찌이리 망극한고 전만고 후만고를
역력히 생각해도 글도없고 말도없네
대저생령 많은사람 사람없어 이러한가
유도불도 누천년에 운이역시 다했던가
윤회같이 둘린운수 내가어찌 받았으며
억조창생 많은사람 내가어찌 높았으며
일세상 없는사람 내가어찌 있었던고
아마도 이내일은 잠자다가 얻었던가
꿈꾸다가 받았던가 측량치 못할러라
사람을 가렸으면 나만못한 사람이며
재질을 가렸으면 나만못한 재질이며
만단의아 두지마는 한울님이 정하시니
무가내라 할길없네 사양지심 있지마는
어디가서 사양하며 문의지심 있지마는
어디가서 문의하며 편언척자 없는법을
어디가서 본을볼꼬 묵묵부답 생각하니
고친자호 방불하고 어린듯이 앉았으니
고친이름 분명하다
5.
그럭저럭 할길없어 없는정신 가다듬어
한울님께 아뢰오니 한울님 하신말씀
너도역시 사람이라 무엇을 알았으며
억조창생 많은사람 동귀일체 하는줄을
사십평생 알았더냐 우습다 자네사람
백천만사 행할때는 무슨뜻을 그러하며
입산한 그달부터 자호이름 고칠때는
무슨뜻을 그러한고 소위입춘 비는말은
복록은 아니빌고 무슨경륜 포부있어
세간중인 부동귀라 의심없이 지어내어
완연히 붙여두니 세상사람 구경할때
자네마음 어떻던고 그런비위 어디두고
만고없는 무극대도 받아놓고 자랑하니
그 아니 개자한가 세상사람 돌아보고
많고많은 그사람에 인지재질 가려내어
총명노둔 무엇이며 세상사람 저러하여
의아탄식 무엇인고 남만못한 사람인줄
네가어찌 알았으며 남만못한 재질인줄
네가어찌 알잔말고 그런소리 말았어라
낙지이후 첨이로다 착한운수 둘러놓고
포태지수 정해내어 자아시 자라날때
어느일을 내모르며 적세만물 하는법과
백천만사 행하기를 조화중에 시켰으니
출등인물 하는이는 비비유지 아닐런가
지각없는 세상사람 원한듯이 하는말이
아무는 이세상에 재승박덕 아닐런가
세전산업 탕패하고 구미용담 일정각에
불출산외 하는뜻은 알다가도 모를러라
가난한 저세정에 세상사람 한데섞여
아유구용 한다해도 처자보명 모르고서
가정지업 지켜내어 안빈낙도 한단말은
가소절창 아닐런가 이말저말 붕등해도
내가알지 네가알까 그런생각 두지말고
정심수도 하였어라 시킨대로 시행해서
차차차차 가르치면 무궁조화 다던지고
포덕천하 할것이니 차제도법 그뿐일세
법을정코 글을지어 입도한 세상사람
그날부터 군자되어 무위이화 될것이니
지상신선 네아니냐
6.
이말씀 들은후에 심독희 자부로다
그제야 이날부터 부처가 마주앉아
이말저말 다한후에 희희낙담 그뿐일세
이제는 자네듣소 이내몸이 이리되니
자소시 하던장난 여광여취 아닐런가
내역시 하던말이 헛말이 옳게되니
남아역시 출세후에 장난도 할것이오
헛말인들 아니할까
요점 정리
지은이 : 최제우
형식 : 4.4조의 동학가사
성격 : 개화적, 교훈적
제재 : 개화 사상
출전 : 동경대전
주제 : 천부 인권을 내세워 인간 평등을 주장
내용 연구
한울님 : 천도교에서의 신앙의 대상. 우주를 맡아 다스리는 최고의 신. 한국의 민족 신으로 여기는 하느님
순환 : 쉬지 않고 이어 돎
무왕불복 : 옛일을 다시 반복하지 않음이 없음
이해와 감상
교훈가는 동경대전에 전하는 동학가사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제각기 복록을 주어 태어나게 했기 때문에, 장차 부귀하게 될 사람은 지금 빈천하고, 지금 세상에서 빈천한 사람은 오는 세상에서 부귀하게 되도록 천운이 순환한다는 종교적인 가르침을 담고 있다. 빈천하고 어려운 민중들에게, 내세를 위해 준비하도록 계몽하는 내용이다.
심화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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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제우 (崔濟愚 [1824~1864])
동학(東學)의 창시자로 호 수운(水雲)·수운재(水雲齋). 초명 복술(福述)·제선(濟宣). 어려서부터 경사(經史)를 공부하여 학문에 정진하다가 1844년(헌종 10) 구도행각에 나선 지 10년 만에 울산(蔚山) 유곡(裕谷)에 은거, 수도에 들어갔다. 1856년(철종 7) 천성산(千聖山) 내원암(內院庵)에서 49일간 기도하고, 1857년 천성산 적멸굴(寂滅窟)에서 49일간 기도했으며, 1859년 다시 경주 용담정(龍潭亭)에서 수도한 끝에, 그리스도교적 영향과 유불선(儒佛仙)의 장점을 융합하여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핵심으로 한 ‘인내천(人乃天)’의 교리를 완성하고 동학을 창시했다.
천(天)·인(人)을 대도(大道)의 근원으로, 성(誠)·경(敬)·신(信)을 도행(道行)의 본체로, 수심정기(守心正氣)를 수도의 요결로 삼고 포교를 시작하여 도를 천도(天道)라 하고, 농민·천민·유생에 이르는 광범한 계층에 전파했다. 1862년 도수사(道修詞)·권학가(勸學歌)를 짓고 동학론(東學論)을 집필하며 포교에 전심, 각 지방에 접소(接所)를 설치하고 접주(接主)를 두어 관내의 교도를 관장하게 하였는데, 1863년에는 교인 3,000여 명, 접소 14곳에 이르렀다.
같은 해 최시형(崔時亨)을 북접(北接) 대도주로 앉히고 8월에 도통(道統)을 계승하여 교주로 삼았다. 1864년(고종 1) 각 접소를 순회하다가 용담정에서 동학을 사학(邪學)으로 단정한 정부에 의해 체포되어, 사도난정(邪道亂正)의 죄목으로 3월에 대구장대(大邱將臺)에서 순도하였다. 1907년(융희 1) 신원되었다. 저서에 《용담유사(龍潭遺詞)》 《동경대전(東經大全)》 등이 있다.
동학(東學)
1860년(철종 11) 경주(慶州) 사람 최제우(崔濟愚)에 의하여 창도된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신흥종교로 최제우는 전통적인 유교(儒敎)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유교 경전을 배워, 성년이 되어서는 지방의 유학자로 이름이 나 있었다. 당시 한국은 어린 헌종왕의 즉위로 외척(外戚)의 세도정치가 계속되면서 정권다툼으로 지배층의 알력이 극도에 달하였고, 양반과 토호(土豪)들은 백성들에 대한 횡포와 착취를 자행함으로써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각지에서 농민봉기를 일으키는 등, 사회는 매우 불안한 상황에 있었다. 더구나 일본을 비롯한 외세(外勢)의 간섭이 날로 심해져 국운이 위기에 처하는 한편, 국민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유교 ·불교가 극도로 부패하여 조정은 민중을 제도(濟度)할 능력을 상실하였다. 게다가 새로 들어온 서학(西學:천주교)의 세력이 날로 팽창하여 그 이질적인 사고(思考)와 행동이 우리의 전통적인 그것과 서로 충돌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 때 최제우는 서학에 대처하여 민족의 주체성과 도덕관을 바로 세우고, 국권을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서는 새로운 도(道)가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구세제민(救世濟民)의 큰 뜻을 품고 양산(梁山) 천수산(千壽山)의 암굴 속에서 수도하면서 도를 갈구(渴求)한 지 수년 만에 ‘한울님(上帝)’의 계시를 받아 ‘동학’이라는 대도(大道)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동학은 서학에 대응할 만한 동토(東土) 한국의 종교라는 뜻으로, 그 사상의 기본은 종래의 풍수사상과 유(儒)·불(佛)·선(仙:道敎)의 교리를 토대로 하여, ‘인내천(人乃天) 천심즉인심(天心卽人心)’의 사상에 두고 있다. ‘인내천’의 사상은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지상천국(地上天國)의 이념과 만민평등의 이상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기에는 종래의 유교적 윤리와 퇴폐한 양반사회의 질서를 부정하는 반봉건적이며 혁명적인 성격이 내포되어 있었다. 최제우가 ‘한울님’으로부터 받았다는 계시는 ‘동학’이란 교명(敎名)과 영부(靈符)와 주문(呪文)이라고 한다. 영부란 백지(白紙)에 한울님의 계시에 따라 그린 일종의 부적(符籍)으로, 궁을형(弓乙形)으로 되어 있고 때로는 태극부(太極符)·궁을부(弓乙符)라고도 부른다. 주문은 13자로 된 시천주조화정 영세불망만사지(侍天主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의 본주(本呪)와 8자로 된 지기금지 원위대강(至氣今至願爲大降)이라는 강령주(降靈呪) 등이 있다. 이 영부와 주문은 동학을 포교하는 데 중요한 방편으로 사용되었는데, 예컨대 주문을 외면서 칼춤을 추고 영부를 불에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면 빈곤에서 해방되고, 병자는 병이 나아 장수하며 영세무궁(永世無窮)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동학은 신분 ·적서(嫡庶)제도 등에도 반기를 들어 이를 비판하였으므로, 그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교리는 당시 사회적 불안과 질병이 크게 유행하던 삼남지방에서 신속히 전파되었다. 포교를 시작한 지 불과 3,4년 사이에 교세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이같은 추세를 지켜보던 조정에서는 동학도 서학과 마찬가지로 불온한 사상적 집단이며 민심을 현혹시키는 또 하나의 사교(邪敎)라고 단정하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863년에는 최제우를 비롯한 2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체포되어, 최제우는 이듬해 대구에서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최제우를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순교한 후에도 조정의 탄압이 계속되자 교인들은 지하로 숨어들어가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었고, 한편 최제우의 뒤를 이은 2세 교조 최시형(崔時亨:海月)은 태백산과 소백산 지역에서 은밀히 교세를 정비 ·강화하였다. 전부터 내려오던 접주(接主)제도를 확대 개편하여, 교인들의 일단(一團)을 ‘포(包)’라 하고 여기에 포주(包主)를 두었다. 포주 위에는 접주 ·대접주, 그 위에 도주(道主)·대도주를 두는 한편, 포주 ·접주 밑에는 ‘육임(六任)’이라 하여 교장(敎長)·교수(敎授)·교집(敎執)·교강(敎綱)·대중(大中)·중정(中正)을 두었다. 이와 같이 대중 속에 조직된 동학은 94년(고종 31)에 발생한 동학농민전쟁의 주체가 되었고, 이 때 사형을 당한 최시형의 뒤를 이은 3세 교주 손병희(孫秉熙)는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여 계속 교세확장에 힘쓰게 되었다. 한편 동학은 이 때 시천교(侍天敎)라는 또 하나의 교파가 분리되었다. (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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