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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장편소설 / 줄거리 및 해석 / 최인훈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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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최인훈(1936)

 

함북 회령 출생. 1950년 월남 후 목포고교를 거쳐 서울법대에서 수학하다가 4학년 중퇴. 육군에서 통역 장교로 근무. 1959󰡔자유문학󰡕그레이(GREY) 구락부 전말기를 발표하면서 등단. 1960가면고광장을 발표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얻게 됨. 그 뒤 구운몽(1962), 서유기(1966,1971), 소설가 구보씨의 1(1969, 70), 총독의 소리(1967, 68)를 발표하였고 1966웃음소리로 동인문학상 수상. 그의 작품 세계는 주로 지식인의 의식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현재 서울예전 교수.

 

광장

 

밀실에서 광장까지, 그리고 다시 밀실로 가는 여로

 

“1960년은 최인훈의 해이기도 했으며 그것은 다시 말해 󰡔광장󰡕의 해이기도 했다

발표 당시에 󰡔광장󰡕은 굉장한 화제가 된다. 419 이후 짧은 기간이지만 자유로운 풍토 속에서 쓰여질 수 있었으므로 더욱 그러했다는 말은 이미 한 세대를 뛰어넘은 시대를 살고 있는 독자가 느끼기엔 화석처럼 굳어 버린 옛 이야기로 느껴지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우선 '광장'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철학과 3학년인 명준은 815 해방이 되던 그 해 아버지가 월북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세상을 뜨자, 아버지의 친구인 변선생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한다. 명준은 시를 쓰고 책도 많이 읽고 변선생의 아들 태식과 딸 영미와 가까이 지내면서도 스스로의 삶이 아직까지 그럴싸한 맺음말 없이, 그리고 소극적인 자기의 행동에 못마땅해하고 남한의 모순된 정치현실을 비판한다.

 

5월 어느 날, 저녁에 그립다는 생각조차도 갖지 않았던 아버지의 일로 오후에 형사가 은행으로 찾아 왔었다는 이야기를 변선생으로부터 듣게 된다. 그 후, 명준은 남로당 계열 공산주의자로 월북한 아버지가 요즈음 평양 방송의 대남 방송에 자주 나온다는 이유로 경찰서 사찰계의 취조를 받는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는 한 사람이 아닌 여러 형사에게 취조를 당하면서 새삼 아버지의 사랑이 다시 태어남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믿고 있었던 변선생도 이 일에 대해서는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음을 느끼고 실망하게 된다.

 

명준은 형사로부터 두 차례의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은 후, 영미의 소개로 만난 윤애를 만나기 위해 인천으로 간다. 불쑥 찾아온 명준을 윤애는 따뜻하게 보살펴준다. 그리고 명준에게 여름을 자기 집에서 보내길 권유한다. 여름방학을 윤애의 집에서 보내는 동안 명준은 그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그녀의 순결 콤플렉스로 인해 자기 자신을 윤애와의 사랑 속에서 찾으려던 명준은 방황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인천 부두의 선술집 주인으로부터 북으로 가는 배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의 나라로 갈 것을 결심한다.

 

북으로 가서 명준이 만난 것은 자신이 꿈꾸어 왔던 유토피아 세상이 아닌 잿빛 공화국이었다. 아버지는 명준이 나이 또래의 젊은 여자와 재혼하고 중류 부르조아의 생활을 누리며 살고 있었고 아버지는 결코 혁명의 투사가 아니었다. 명준은 아버지의 주선으로 󰡔노동신문󰡕의 편집기자가 되지만, 그의 기사는 늘 간부들의 비판 대상이 되고 만다. 그는 월북한 지 반년이 지난 이듬해부터 이곳에 스스로 발을 디딘 것을 저주스럽게 생각한다. 그는 다시 밀실의 꿈을 꾸게 된다. 신문 기자 생활에 실증을 느낀 명준은 몸의 움직임이 있는 곳에 가기로 결심을 하고 야외극장 건설 현장에 지원하여 일을 하다가 다리를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어느 날, 국립극장에서 무용단원들이 병 문안을 오게 된다. 이때, 국립극장 소속 발레리나 은혜를 만나게 되어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댄 것은 은혜와의 사랑이었다. 윤애에게 느끼지 못한 사랑의 믿음을 은혜에게 느끼지만, 은혜가 얼마 후 모스크바 순회공연의 일원으로 평양을 떠나게 됨을 안다. 명준은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없으리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은혜의 모스크바행을 끈질기게 반대하고 설득을 한다. 그러나, 순회공연 차 들른 원산 해수욕장 휴양소에서의 만남 뒤에 순회 공연에서 돌아온 후의 만남을 끝으로 은혜는 명준의 의식 속에 배신만을 남기고 떠나고 만다.

19506.25가 터지고 정치보위부의 간부가 되어 서울로 온 명준은 8월에 우연히 간첩 혐의로 잡혀온 태식과 만나게 된다. 태식은 소형 사진기를 가지고 서울 둘레의 시설물을 촬영하다가 붙잡힌 것이다. 명준과 태식은 서로 변한 모습에 당황해 하고 명준은 옛날 은인의 외아들에게 자기 자신이 철저한 악인과 공산당원이 되기 위해서 폭행을 하고, 이미 태식의 아내가 되어 버린 옛 애인 윤애를 겁탈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몸 한 구석에서 막혔던 무언가가 터지면서 눈물이 흘러 내린다. 죄악의 기쁨을 느끼려 한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태식과 윤애를 놓아준다.

 

그 후, 전세가 기울어져가는 낙동강 싸움터에 배치 명령을 받는다. 날마다 인민군에게 불리해져 가는 속에서 뜻밖에도 명준은 사단 사령부에서 그를 만나기 위해 간호병으로 지원해서 온 은혜를 만난다. 명준이 싸움터에서 발견한 반달 모양의 자연 굴에서 그들은 재회의 기쁨과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동굴에서의 만남은 삶에 진 명준의 마지막 몸짓이었다. 은혜는 명준의 아이를 가지게 되었음과 딸을 낳겠다고 수줍게 고백하면서 죽기 전에 부지런히 만나자고 한 다짐을 어기고 그 이튿날 전사하였다.

 

명준은 포로가 되어 거제수용소에 갇히게 된다. 판문점에서 송환심사가 시작 되었을 때 명준은 이미 은혜가 없는, 전쟁에서 설혹 아버지가 살아 계시더라도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는, 적에게 붙잡혀서 돌아온 사람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닌 북을 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탈을 쓴 부패 조직의 모습을 가진 남으로 가기엔 싫었다. 이 두 사회가 명준에게 안겨준 것은 절망과 불신뿐이었다. 그의 마지막 유일한 구원이라고 믿은 사랑도 실패했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짐승처럼 갈팡질팡하다가 남과 북의 권유를 뿌리치고 아무도 자기 자신을 알지 못하는 제3국을 택하여 인도로 가는 선박 타고르호에 몸을 싣는다.

 

명준은 타고르호가 인천항을 떠날 때부터 자신을 줄곧 멈추지 않고 엿보고 있는 두개의 눈을 의식한다. 그리고 배를 탄 이후 그를 괴롭히던 그림자는 배 주위를 돌던 두 마리의 크고 작은 갈매기임을 알게 된다. 그는 이 갈매기가 은혜와 자신의 딸의 모습으로 보였고 그 큰 새와 꼬마 새가 마음껏 날아다니는 푸른 광장을 처음으로 알아보게 된다. 명준은 타고르호가 남지나해의 크레파스보다 진한 바다 위를 지날 때 사라져 버린다.

 

그 이튿날, 한 사람의 손님을 잃어버린 타고르호는 계속해서 남지나 바다를 헤치고 미끄러져 가고 흰 바다새들은 다른 데로 가 버린 양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최인훈의 대표작인 󰡔광장󰡕의 줄거리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어떠한 상황 배경 속에서 발표되었기에 그토록 많은 평자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것일까?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1960년대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보기로 하자.

1960년대 벽두 미완의 혁명으로 이름지어진 419혁명으로 탈바꿈한 사회가 변화의 몸살을 앓던 시기인 그해 10월부터 이 작품은 󰡔새벽󰡕지에 발표된다. 󰡔광장󰡕은 다른 무엇보다도 48년 이후 감히 엄두도 낼 수 없었던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부터 주목받기 시작하는데, 이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는 분단과 전쟁과 후진국이라는 비참한 역사 앞에 선 한 지식인의 오뇌를 다루고 있기에 문제작으로 부각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남북 분단에 의한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선택의 강요라는 상황, 밀실만 충만하고 광장은 죽어버린남한에 구토를 느끼고 또한 끝없이 복창만을 강요하는잿빛 지옥 북한 어느 곳에서도 안식처를 발견하지 못한 이명준이란 지식인의 삶의 궤적에서 그가 보여주는 것은 바로 민족의 비극 그 자체였다. 이러한 문제 의식은 419 열풍 후 젊은 층에 대두한 새로운 문제 의식을 표면화시킨 것으로 작품에 짙게 배어 있는 관념성마저도 탈출구를 분명하게 발견하지 못한 시대 의식의 반영이었다.

 

󰡔광장󰡕에서 드러나고 있는 객관 현실 상황을 중시하지 못하는 개인의 관념의 세계에 갇혀 있는 주인공 이명준과 작품을 이루고 있는 형식에서의 관념 세계, 산뜻한 감성의 세계, 세련된 언어 구사 등을 중시하면서 문제 자체의 충격파가 갖는 시대적 의미를 중시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주의적 작품이라고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최인훈의 소설을 통해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주인공 부류는 󰡔광장󰡕의 이명준과 󰡔회색인󰡕의 독고준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지식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신분계층으로서, 현실 속에서 느끼는 불화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인식하면서도 그 해소의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게 되는, 그래서 회색주의자로 분류될 수밖에 없는 사변 인물들로 그려지게 되고 그런 이유 때문에 끊임없이 행동하지 못하는 자의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회색주의자적인 분위기를 구체적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볼 수 있다. 곧바로 말하자면 그것은 최인훈 소설의 구조적 특징인 잘 짜여진 플롯(plot)에 의한 결과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대부분의 소설들은 스토리(story) 위주로 쓰여졌기 때문에 내용의 전달이 직접적인 반응 양상을 띠게 된다. 간혹 회고형 플롯의 양상으로 쓰여진 작품도 많이 접할 수 있으나 최인훈의 플롯은 그 기본적 성격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그의 플롯은 복잡하고 섬세하며 하나의 사건이 여러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분산되어 있는 구조를 지닌다. 때문에 그의 소설을 읽으려면 기억력과 상호 연관의 순발력이 필요하다. 이렇게 복잡한 플롯은 작가 최인훈이 부산으로 거처를 옮겨 대학 1학년 때 쓰기 시작한 사실상 처녀작인 󰡔두만강󰡕을 그 시작점로 하여 나타나고 있다. 작가는 그 때의 회상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영도 쪽을 향해서 난 창문 바로 밑에 벽에 붙박이로 달아놓은 긴 송판 한 장 넓이의 책상 위에서 나는 H을 썼다. 그러니까 작품 속에는 그렇게 표현될 길이 없지만 내 의식을 기준 삼는다면, 북쪽의 H읍의 생활은 눈앞이 부산 범일동, 부민동의, 위에서 엇비슷이 내려다 보이는 모습과, 자갈치시장의 지붕들을 지나 영도 섬과 그 근처 바다와 섞여 있었다.

나중 안 일이지만 이 소설 후에 쓴 소설에서 나는 되레 과거와 현재, 사실과 기억이 뒤섞여 있는 의식의 그런 방식을 선호하였고- 󰡔화두󰡕 434-435-

 

위의 내용은 작가 자신의 육체는 부산의 판자집에 고스란히 남겨 놓고 멀리 H읍에 아주 가서 몇해 전 자신의 삶을 살면서, 현장 기록을 하면서 그런 집필의 시간을 살고 있었다는 말로 풀이될 수 있으며 작가는 마침내는 이러한 방법이 예술로서는 정당한 화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독특한 화법 내지는 플롯의 구성은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그 과도기적 형태를 지니고 창작된 것이 󰡔광장󰡕이라는 작품이라고 작가는 회고한다.

 

나의 작품 밀실은 내 의식의 구성이 H에서 썩 나중의 것으로 옮아가는 과도기쯤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었다. 그것은 그 작품을 전후한 의식의 성향을 적당히 섞어 가진 그런 요령으로 씌었다.

- 󰡔화두󰡕 436-

 

간단하게나마 지금까지 살펴본 것은 󰡔광장󰡕이라는 작품의 형식 측면을 이해하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의 소설 형식을 살폈으니 이제는 그의 소설에 담겨져 있는 내용으로 관심을 돌려보도록 하자.

 

위에서 간단하게나마 언급했던 주인공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분모는 현실의 부조리를 알고 있지만 꿈쩍못하는 생활이며, 세상에 맞서지 못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지니고 있는 암울한 어조와 침체된 분위기는 관념 성향을 지니고 있으며, 사회와의 거리가 폐쇄되고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들은 작가의 생애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어떤 경험들이 그의 소설들을 사회와 단절되어 있는 폐쇄적 자아의 몸부림으로 몰아갔으며 그 근본 사건은 어떤 것이었을까? 있다면 그것은 어떠한 사건이었고, 그것은 언제 어떤 계기로 발생하게 되었으며 그 결과는 어떻게 증폭되어 왔는가? 이런 부분들에 대한 물음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만 간다. 이런 점을 살펴가며 그의 작품을 읽어보면 그 해답으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는 부분들을 추출할 수 있다.

 

그의 소설들은 대부분이 자전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 따라서 그의 소설 속에서 등장하고 있는 주인공은 작가 자신이 될 수 있으며 주인공이 체험한 상황들은 작가가 체험했던 사실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공식의 원리를 대입시켜 보면 그의 의식 속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가늠할 수 있다. 먼저 최인훈의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공통점과 작가와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가 성장기에 있었던 1947년에서 1950년 동안에 그의 가족에게 다가선 공산이데올로기와의 충돌에 의한 집안의 음울한 분위기를 꼽을 수 있다

 

우리집은 해방 전에는 개인 경영의 병원을 내고 있었으나, 해방 후에는 당국의 압력 때문에 부득이 문을 닫고, 부친은 도립병원 외과에 월급쟁이로 일하고 있었다. 집안의 분위기는 늘 음울했고, 그것은 밖에서 당하는 일 때문에 어두워진 부친의 마음이 절로 집안을 그러한 공기 속으로 몰아 놓은 것 같다. <중략>

어느 달무리가 진 늦은 봄날에 아버지는 집에서 사라졌다. - 󰡔우상의 집󰡕 pp.89-90. -

 

이러한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그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또 한번의 시련을 당하게 된다. 중학교 때 벽보 주필로 활동하던 도중 벽보의 내용 때문에 자아비판에 끌려가게 된 것이다.

 

학급 소년단 간부 세 사람과 학교 총소년단 간부 한 사람이 나를 마주보고 교탁 바로 앞 책상에 옆으로 한 줄 앉아 있고 두어 줄 뒤에 지도원 선생이 앉아 있다. <중 략> 비판회를 시작하고 도중에 전기가 나갔을 때 중지되는 줄 알았다가 촛불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은 더 죄어든다. <중략> 사고 원인은 벽보에 쓴 글이었다 <중략> 벽보 주필이고 집회에서 열렬한 토론을 할 망정 믿을 수 없는 계급의 가정에서 온 학생이 소년단 사업에서 지나치게 평가받아서는 안 되었다 <중략> ‘비판회에서의 은 쓰는 사람에게는 자유무애하고 쓰이는 사람에게는 자아의 해체를 경험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중략> 그 밤이 지나고 얼마 후 나는 분단 벽보 주필 자리에서 해임되었지만 아직까지 두번째의 자아비판은 없었다. 벽보 주필 자리에서 해임된 것은 아쉽지 않았다. <중략> 말을 가지고 말을 지어내는 식으로 쓰게 되는 벽보 원고는 쓰면 쓸수록 글을 쓰는 재미도 줄어들고 그 글때문에 화를 입고부터는 엄청나게 힘이 들고 조마조마하였다 - 󰡔화두󰡕 25-37-

 

위의 내용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독고준과 지도원의 대화로 더욱 자세하고 상세히 드러나고 있다. 위의 인용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면 작가 최인훈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글쓰기에 대한 자세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인훈은 중학 시절에 벽보에 쓴 내용 때문에 자아비판회에 소집되어 간다. 그러나 그 근본적인 이유는 최인훈이 타고난 계급에 있었으며, 그는 그 계급으로 인하여 그의 의견이 곡해(曲解)당하게 된다. 자아비판의 경험은 그에게 자아의 해체 경험을 주었으며, 그는 그런 경험의 바탕을 씻어버리지 못한 채 자아의 해체 경험을 무의식 중에 그의 소설 속에서 플롯의 해체로 대입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한 동심이 글쓰기 때문에 다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보상심리에 의거한 것이며 이러한 보상심리의 작용으로 그는 소설가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속에 숨어 있는 자아의 불만스런 욕구 충족뿐만 아니라 상처받았던 동심에 대한 보상으로써 자신의 삶을 재배열해가며 소설 쓰기 행위를 진행하지만, 그의 무의식 속에는 자신이 경험했던 자아의 해체를 자신의 소설에 대한 플롯의 해체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깊은 상처를 지닌 채 그는 우울과 권태를 씹으며 자라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는 가족, 사회, 사회의 보편적 윤리에서 소외되었고 그는 책 속으로 망명하게 된다.

 

사과꽃이 피기 전 梅雨의 계절에 준은 밤 늦도록 안방에서 책을 읽으면서 세웠다. 그 방에는 아버지와 형님, 누나 세 사람이 읽어온 책들이 그득했다. …… 그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누나가 밭일 속으로 망명한 것처럼 그는 책 속으로 망명했다. - 󰡔회색인󰡕, p.29. -

 

책에 탐닉하고 내면적 인간으로 성장할 무렵, 그에겐 커다란 충격을 준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는데, 그가 그 여름의 회상이라고 자주 표현하는 첫 의 경험이다.

 

바로 그 여자였다. 찢어지는 쇳소리가 머리 위를 달려갔다 …… 준과 여자가 가까운 방공호에 다다랐을 때에는 와랑거리는 폭격기의 엔진소리가 하늘을 덮었다. …… 사람의 훈김과 한 여름의 열기로 굴속은 숨이 막혔다. 폭음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때 부드러운 팔이 그의 몸을 강하게 안았다. …… 준은 놀라움과 흥분으로 숨이 막혔다. 살 냄새, 멀어졌던 폭음이 다시 들려왔다. …… 가슴과 어깨로 밀려드는 뭉클한 감촉이 그를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지게 만들었다…… 준은 금방 까무러칠 듯 한 정신 속에서 점점 심해져가는 폭음과 그럴수록 그의 몸을 덮어 누르는 따뜻한 살의 압력 속에서 허덕였다.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 - 󰡔회색인󰡕 58-59-

 

이 충격은 대단한 것이어서 그 자신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었고, 에 대해 그 자신은 늘 죄의식 속에 살게 했다.

그러면 지금까지 나열된 부분들을 인식하고 다시 󰡔광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주인공 이명준은 아버지가 월북 후 행한 대남방송 때문에 경찰서로 끌려가 구타당하게 되는데, 이 점은 최인훈이 어렸을 때의 경험, 다시 말해서 그의 가족들이 기존의 이데올로기에 부응되고 있던 계급이었기에 상반된 이데올로기의 집단으로부터 물질적 정신적 구타를 당한 것에 대한 무의식적 표출로 대치될 수 있으며, 작품의 이명준과 최인훈은 같은 맥락에서 책읽기에 탐닉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최인훈이 이명준을 통하여 찾고자 했던 밀실광장의 의미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도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게 된다. 이명준이 최초로 지니고 있던 그만의 밀실은 어머니의 자궁이며 모든 이의 밀실이 된다. 그는 태어나서 가족의 구성원이 되지만 가족이란 것은 그가 밀실로 만들기엔 부족한 면이 너무 많았다. 제 모습을 갖춘 밀실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아버지의 월북과 어머니의 사망으로 그의 꿈은 깨어지고 그는 그만의 밀실으로 만들게 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확실치 않은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 으로 만든 밀실도 오래지 않아 내던져 깨뜨려 버리고 그는 광장을 찾아 떠난다. 하지만 이명준은 광장에서 다시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그곳에 은혜와 밀실을 만들려고 했으나 그것마저 실패하자 제3국을 향하는 배에 오르게 된다. 정리해보면 밀실의 범위는 자궁>가족>>(은혜의 육체를 통한)은혜와의 사랑으로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소설의 결말을 작가 최인훈은 어떻게 매듭짓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주인공인 명준이 자살했다는 단어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단지 명준의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던 갈매기 두 마리가 사라진 채 그도 함께 사라진 것이다. 물론 이론적인 추이를 따지자면 그는 자살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 자살이란 단어를 쓰기엔 합당치 않은 점이 있다. 흔히 자살이란 패배주의의 상징으로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이명준의 실종을 이해하기 위해 케익스와 알키오네의 그리스 신화를 도입해 보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금성의 아들 케익스와 풍신(風神)의 딸인 알키오네는 금슬 좋은 부부였다. 그런데 케익스에게 계속해서 일어나는 여러 안 좋은 일 때문에 그는 아폴론의 신탁을 받겠다고 결심하고 아내에게 말한다. 알키오네는 좋지 않은 예감 때문에 극구 말리지만 기어이 케익스는 떠났고 결국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이 사실을 모른 채 날을 헤아리며 애타게 남편이 돌아오길 바라며 신들에게 끊임없는 기도를 올린다. 헤라는 이 여인의 기도에 사건의 전말을 꿈을 통해 그녀에게 알린다. 다음날 아침 바닷가로 나가 울부짖던 알키오네는 남편의 시체가 떠밀려 온 것을 보고 그 시체를 안으려 하자 날개가 생기고 부리가 생겨 남편에게 접근할 수 없었다.

 

이를 불쌍히 여긴 여신들이 죽은 케익스에게도 날개를 달아 갈매기로 만들어 주었고 그들은 다시 부부가 되어 새끼도 낳았다.

 

이 신화와 󰡔광장󰡕의 내용은 그 구조면에 있어서 서로 대칭되는 점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은혜가 모스크바로 떠난다고 했을 때 이명준이 다시 못 만날 것같은 불길한 예감으로 극구 말렸던 것과 그것을 무시하고 떠난 점이다. 이것은 알키오네가 이명준과 케익스와 은혜가 서로 대칭되는 성으로 바뀌었을 뿐 그 구조는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얻을 수 있었던 결론은 이명준이 자살했다고 인정하여 그를 패배주의자로 만드는 것보다, 그가 실종된 것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던 은혜와 그의 딸로 생각되는 갈매기들과 함께 동화되어 버렸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최인훈은 이 신화의 내용을 통해서 그런 설정을 해 두지 않았나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신화의 결말은 갈매기가 알을 품고 있는 동안은 어부들이 맘을 놓고 출항할 수 있다고 하며 갈매기는 길을 인도하는 새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명준, 그는 모든 길을 상실한 채 타고르호에 몸을 싣고 제3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어떤 목적지에 대한 희망이 사라져 버렸고 그는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방황하는 그의 심리적 갈등에 갈매기들은 새로운 길을 제시해 준 것이다. 이명준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들과 합일된 것이며 그들의 인도를 따라 새로운 길로의 여로를 다시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작가 최인훈이 지니고 있는 뿌리 혹은 근원으로 대치될 수 있는 고향에 대하여 실향민이 느끼고 있는 귀향으로서의 날개짓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곳에 적을 두고 정착할 수 없었던 그의 삶의 궤적은 갈매기의 날개짓을 따라 이리 저리로 아직도 헤메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큰 비약이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와 이명준이 함께 찾고자 했던 밀실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는 한 마리의 애벌레로 남아 또 다른 부활을 꿈꾸고 있었던 것일까? 아마도 그가 도달하려고 몸부림치던 밀실은 사랑을 태동시킬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갈구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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