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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은 가치중립적인가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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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기술은 가치중립적인가  

 

오펜하이머는 태평양 전쟁중 원폭 제조의 책임을 맡았던 미국의 핵물리학자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였으며,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을 거쳐 독일의 괴팅겐 대학에서 1927년 박사학위를 마쳤다. 귀국 후 그는 12년 동안 학문활동에 전념하였으며 1942년에 미국 정보부로부터 원폭 제조 연구소를 설립하도록 위촉받아 1945년에 세 개의 원자폭탄을 만들게 된다.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얻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오펜하이머는 1946년에 다시 국가 원자력기구의 일반자문회의 의장으로 추대되면서 미국의 핵정책에 깊이 개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는 과연 어떤 생각으로 원폭 제조에 참여하게 되었으며 미국의 전후 핵정책에 어떤 입장을 표명하였을까? 이 물음은 전후의 미국 핵정책에 있어서 수소폭탄 제조와 관련하여 그가 배제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오펜하이머의 사상이 핵물리학의 정치적 중립성과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주의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물리학자가 원자폭탄을 제조하는 연구와 발명의 사실을 그 전술적 사용을 고려하는 정치인의 결단과 구분하려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학문활동은 정치인의 히로시마 결행과 아무런 관계도 없으며, 따라서 그 정치적 사건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제조한 원자폭탄의 가공할 만한 파괴력에 충격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무차별 살상을 하게 되는 대형 핵무기보다는 전술적인 소형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건의하면서,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에서 추진하는 전술용 핵무기 개발계획(비스타)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오펜하이머의 의도와는 반대로 미국의 핵전략 책임자들은 1950년부터 'shake down' 또는 '오픈 태클'이라 불리는 소련 공격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것은 바로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발진한 미국의 핵폭격기들이 소련의 곳곳에 4백에서 6백 개의 핵폭탄을 투여하는 제3차 대전의 시나리오이다. 결국 이 계획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다시 한번 미국의 핵정책에 경악하게 되었고, 그의 의도와는 반대로 엄청난 살상력과 파괴력을 지닌 수소폭탄이 개발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의 제조 계획에서 배제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학계로 복귀하게 된다.

   오펜하이머의 사상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그의 강연 모음집이 {원자력과 인간의 자유(1955)}라는 책으로 독일에서 간행되었다. 여기에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의 강연들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글들을 통하여 우리는 과학의 임무, 핵물리학과 정치의 관계, 그리고 과학자의 책임 등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일별할 수 있게 된다. 먼저 학문과 기술의 진보에 대한 과학자의 역할이 문제될 수 있다. 오펜하이머는 어떤 과학자도 자신의 연구와 실험결과가 인류의 복지에 얼마나 기여할 것인가 또는 유해할 것인가를 측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가치판단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과학자는 자신의 연구를 통하여 발견한 진리를 공표할 책임만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 학문적 성과가 인류복지에 이용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인류의 절멸과 범죄행위에 악용될 것인가의 문제는 이미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과학적 발견은 인류의 복지증진에 있어서 적극성과 부정성의 양면을 가진다. 그런데 이러한 과학적 발견을 실제생활에 적용하는 데 있어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집단은 정치인들이다. 예를 들면 원자폭탄의 제조행위는 과학자와 기술인들의 행위이다. 그와 같은 행위는 가치중립적이며 순수학문적이기 때문에 과학자들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이루어진 행위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바로 원자폭탄을 제조하도록 정책을 입안하고 그 연구결과를 전쟁 수행에 이용하려는 정치인들의 의도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폭 제조와 그 실제적 내용을 고려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고유한 임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정치적 결정은 일회적이며, 학문에서처럼 반복실험을 통하여 오류를 수정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핵물리학의 성과를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적 결정의 책임은 막중하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학문과 문명의 관계를 통하여 현대의 핵물리학이 수행하는 종말론적 역기능을 반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계몽시대 이후 과학기술의 진보에서 오는 발달된 문명에 대한 희망을 키워 왔으며, 그리하여 지금까지 서구인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낙관론과 발전이론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은 핵시대를 맞이하게 되면서 근본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면 핵무기는 인류의 절멸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따라서 과학기술의 발전은 오히려 낙관주의적 발전이론을 파기하는 결과를 야기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핵물리학의 연구 성과에 대한 부정적인 측면이 다시 확대되기에 이른다. 그리고 전쟁과 혼돈의 위협 속에서 핵물리학의 부정적 역할은 더욱 더 가중된다. 한마디로 핵물리학은 전쟁의 부산물인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경우에 과연 제한된 공간과 그리고 특정한 목적 아래에서 이루어진 학문정신이 인간의 자유를 완성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는 이 물음을 대답하지 않고 남겨 두려고 한다. 예를 들면 전쟁의 부산물인 핵물리학의 발전은 파괴적인 원자폭탄과 평화적인 원자력발전소를 인류에게 가져다 주었다. 여기에서 일단 핵에너지의 파괴적 사용은 제외시킨다 할지라도, 그 평화적 사용인 원전이 실제로 인류의 복지증진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펜하이머는 과학이 우리에게 주는 양면성은 절대로 분리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핵무기나 원전에는 같은 우라늄이 원료로 사용되고 있으며, 일단 유사시에는 원전이 핵무기 체제로 전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핵에너지가 건설적 또는 파괴적인 목적으로 사용되는 데에는 전혀 기술적인 차이가 없으며,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실질적인 평화협상을 가능하게 하고, 인류가 다시 전면전을 일으키게 되는 오류를 범하지 않게 하는 요건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오펜하이머는 원자력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속적인 평화의 성취는 오직 우리들의 가슴 속에 있다고 말하게 된다.      <철학의 현실 문제들/김진>        출처: http://www.gulnar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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