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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의 눈보라: 하나 ― 강설(降雪) / 강우식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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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강우식(1941- ) 강원도 명주군 주문진 출생. 한양대 석사과정, 성균관대 박사과정 이수. 문학박사. 1966년 『현대문학』지에 「박꽃」, 「사행시초(四行詩抄)」가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 문학예술사 주간, 성균관대 교수,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역임.

전통적인 운율과 토속적인 색감에다 관능적인 요소를 결합시켜 우리 시의 전통적 자수율 34조와 44의 음악성에 대한 향수를 애틋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나타내고 있다.

시집으로는 『사행시초』(현암사, 1974), 『고려의 눈보라』(창작과비평사, 1977), 『꽃을 꺾기 시작하면서』(문학예술사, 1979), 『벌거숭이 방문』(문장, 1983), 『시인이여 시여』(시인사, 1986), 『물의 혼』(예전사, 1986), 『설연집(雪戀集)(청맥사, 1988) 등이 있고, 그 외 저서로 『육감과 혼』(민족문화사, 1983), 『한국 현대시의 존재성 연구』(성대출판부, 1986), 『한국 현대시의 상징성 연구』(문화생활사, 1988) 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눈이 내릴 때,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한 송이 한 송이 떨어지는 눈꽃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가 있다. 그렇게 막막한 공간을 가득 수놓고 있는 눈을 이 시인은 흙을 일구며 살다간 이름 없는 백성들의 영혼으로 본다.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그들의 삶이 한 송이 눈으로 환생하여 다시 이 땅을 찾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분노할 줄도 절규할 줄도 모른 채 묵묵히 살다 간 이 땅의 평범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눈물이 눈으로 화하여 조용히 내리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살다 간 그때와 마찬가지로 천지는 여전히 오랜 잠 속에 있고, 그들의 영혼은 조용히 허공을 수놓으며 땅에 내려와 서서히 녹으며 사라진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간 민초(民草)들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시인의 마음에 다가오고 있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점점이 이어지는 눈의 `분노도 절규도 없는 / 이 조용한 / 하강'은 말 없는 웅변으로 시인의 마음을 울리는데 그것은 `얼었던 마음도 / 눈물로 풀릴 줄 밖에 모르던 / 이웃들의' 모습, 바로 그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제목에 들어 있는 `고려'는 고유명사로 고착시킬 필요가 없다. 고구려로 바꾸어도 좋고 조선으로 대치시켜 놓아도 그만이다. 이때의 `고려'는 그냥 과어일 뿐이다. 시인은 바로 앞에서 이야기했던 `얼었던 마음도 / 눈물로 풀릴 줄 밖에 모르던 / 이웃들의' 순박하며 정에 넘치는 마음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마음들만이 이 땅에 진정으로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시인은 가슴을 적시면서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이랴. 이 시에서는 삶의 슬픔이랄까 잔잔한 허무감도 느낄 수 있다. [해설: 조남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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