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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호총마행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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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호총마행

 

고도호마총행

안서도호호청총

성가훌연래향동

차마림진구무적

여인일심성대공

공성혜양수소치

표표원자유사지

웅자미수복력은

맹기유사전장리

완촉제고여북철

교하기축증빙열

오화산작운만신

만리방간한류혈

장안장아불감기

주과체전경성지

청사락두위군로

하유각출횡문도

안서대도호 고선지 장군의 애마인 대완산의 푸르스름한 총이말이

높아진 명성과 가치를 싣고 갑자기 동쪽으로 장안을 향해 오도다.

이 말이 싸움터에 이르러 오랫동안 대적할 것이 없으니

사람(고선지)과 더불어 한 마음이 되어 큰 공을 이루었도다.

공을 이루고 은혜로운 사랑을 입어 주인이 입조하는데 따라오니

세차고 재빠르게 멀리 유사로부터 오도다.

웅장한 모습은 마구간에 그냥 엎드려서 은혜를 받지 아니하리니,

용맹한 기운은 오히려 싸움터에서 날카로이 달림을 생각하고 있도다.

발목이 짧고 발굽이 높아 쇠를 밟는 듯하니

교하에서 몇 번이나 층층으로 겹쳐진 얼음을 밟아 깨어버렸느냐?

다섯 가지 빛이 흩어져 구름을 만들어 몸에 가득하니

만리를 뛰어가매, 바야흐로 땀을 피 흘리듯 함을 보리로다.

장안의 크고 힘센 젊은 사내들도 구태여 (감히)타지 못하니,

후려치는 번개를 지나 달림을 성중이(장안에 사는 이들이)빠짐없이 다 알고 있다.

푸른 실로 머리를 동여매어 그대(주인)를 위해 늙고 있으니,

어느 인연으로 도로 광문의 길로(옛싸움터로) 나가리오?

요점 정리

지은이 : 두보

연대 : 두보가 38세 때(749)

갈래 : 칠언고시

성격 : 예찬적

구성 :

기왕의 집 안에서 (이구년을) 늘 보았더니

최구의 집 앞에서 (명창을) 몇 번을 들었던가? (1-2행 화려했던 시절 회상)

참으로 이 강남의 풍경이 좋으니 (봄 경치에 대한 애상)

꽃 지는 시절에 또 너를 만나 보는구나. (늙어버린 이구년을 만남)

제재 : 고선지 장군과 총마

주제 : 고선지 장군과 그의 총마의 용맹과 전공을 찬양함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천보 8년 38 세 때 장안에서, 고구려 사람으로 당 나라에 들어와 서역의 오랑캐를 치고 돌아온 고 선지 장군을 찬양하면서 그 애마를, 칭송한 7언 고시의 영마시다.

전반에서는 안서 도호의 명성 높은 총마가 장안으로 오게 된 경위를, 후반에서는 그 총마의 안타까운 심정을 그린 시이지만, 그 이면에는 총마를 통해서 그 주인 고 선지 장군의 무공과 용맹을 기리는 점도 아울러 엿볼 수 있다.

1·2행은 총마가 오게 된 경위와 성가를 한 마디로 제시한 것이며, 3·4행은 고도호와 총마가 이룬 무공을 표현하고, 7~14행은 무공을 세운 총마의 웅장함과 용맹스러움을 묘사하여 칭송하고, 15·16행은 이 글의 끝부분으로 총마가 돌아와서 쉬고 있어 언제 다시 옛날처럼 큰 공을 세울까 하며, 총마의 역량을 드러내지 못한 아쉬움이 나타나 있다.

여기에 이 작품을 의역한 이 병주씨의 글을 소개한다.

"안서의 부도호고 선지장군의 애마는 대완의 명마 청총이다. 말의 성예와 가치는 이미 짐작한 바이지만 이번 큰 공을 세운 고 장군을 태워 모시고 문득 동방인 장안으로 왔다. 이 말은 일찍이 전진에 나가면 다시 대적할 적이 없어 기수와 더불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마침내 무공을 쟁취한 말이다. 이 청총은 진작 서역에서 공을 세웠으므로 주인인 고 장군은 이를 은혜로 대접해서 이번 장군이 입조하는 바람에 주인을 따라 세차고 재빠르게 달리어 멀리 유사로부터 온 것이다. 웅장한 모양은 아직 마굿간 마판에 누워 엎드려서, 주인의 은총만을 받고자 하는 늙은 말이 아니니, 그 용맹한 기운은 아직도 전장에서 날래게 달리던 일을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 말은 발목이 짤룩한데다 발굽은 두텁고 묵직해서 마치 무쇠를 밟는 듯하니, 몇 번인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겹겹이 얼어 붙은 교하의 얼음판을 밟아 짜갠 사나운 말이다. 이 말의 털빛은 오화의 문양이 온통 전신에 흩어져 있어, 흡사 구름이 몸에 가득 찬 듯이 보이는 정도다. 본시 '천리마'라 좀처럼 피로를 모를 테지만 만 리 떨어진 대완에서 온 호마이므로 땀이 앞의 땀구멍에서 치솟듯이 쏟아져 나오는 오혈의 천리마이고 보니, 장안에서 판을 치는 건장한 망나니들도 감히 함부로 타고자 엄두도 내지 못하는 처지다. 그래서 가로채는 번개와 같이 달리는 것을 성중엔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성가가 대단하다. 이러한 명마가 지금은 청사로 머리를 매어 끈을 느리우고 임(고선지장군)을 위하여 늙고 있으니, 언제 무슨 연유로 다시 북문인 광문을 나서, 익숙한 서역의 길을 달릴 것인가. 총마의 사나운 기개가 그지없이 안타깝기만 하다."[출처 : 오태현, 변재호, 유준기 공저 고전문학(동아출판사간)]

심화 자료

고선지(? ~755)

고구려 출신의 당(唐)나라 장수로 고구려가 망하자 아버지 사계(舍鷄)를 따라 당나라 안서(安西)에 가서 음보(蔭補)로 유격장군(遊擊將軍)에 등용되고, 20세 때 장군(將軍)에 올랐으며, 안서 절도사(安西節度使) 부몽영찰(夫蒙靈樽)의 신임을 얻어 언기진수사(焉耆鎭守使)가 되었고, 740년경 톈산산맥[天山山脈] 서쪽의 달해부(達奚部)를 정벌한 공으로 안서 부도호(安西副都護)에 승진하고, 이어 사진도지병마사(四鎭都知兵馬使)에 올랐다.

747년 토번(吐蕃:티베트)과 사라센제국이 동맹을 맺고 당을 견제하려고 동진(東進)하자,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에 발탁되어 군사 1만을 인솔, 파미르고원을 넘어 사라센제국과 동맹을 맺은 72개국의 항복을 받고 사라센제국의 동진을 저지, 그 공으로 홍려경어사중승(鴻'A卿御史中丞)에 오르고 이어 특진 겸 좌금오대장군동정원(特進兼左金吾大將軍同正員)이 되었다. 750년 제2차 원정에 나가 사라센과 동맹을 맺으려는 타슈켄트[石國]를 토벌하고 국왕을 잡아 장안(長安)에 호송한 공로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가 되었으나, 장안의 문신들이 포로가 된 타슈켄트 국왕을 참살했기 때문에 이듬해 서역 각국과 사라센이 분기하여 연합군을 편성, 탈라스의 대평원으로 쳐들어왔다.

이를 막기 위해 다시 7만의 정벌군을 편성, 제3차 원정에 나갔다가 크게 패하고 후퇴, 귀국 후 밀운군공(密雲郡公)에 봉해졌다. 755년 안녹산(安祿山)이 반란을 일으키자 정토군 부원수로 출전, 선발군으로 나가, 패전한 우군을 구원하기 위해 방어 담당지역을 무단이동한 사실에 대하여, 평소 사원(私怨)을 품고 있던 부관이 과장하여 밀고(密告)함으로써, 진중에서 참형되었다.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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