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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가(雇工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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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가(雇工歌)

 

1

 

제 집의 옷과 밥을 제쳐 놓고 이집 저집 빌어먹는 저 머슴아.

우리 집 소식(내력)을 아느냐 모르느냐? 비 오는 날 일이

없을 때 새끼 꼬면서 말하리라. 처음에 조부모님께서

살림살이를 시작할 때에, 어진 마음을 베푸시니(많이 쓰시니)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 풀을 베고 터를 닦아 큰 집을

지어 내고, 써레, 보습, 쟁기, 소로 논밭을

갈아 일구니(기경하니), 올벼논과 텃밭이 여드레(8일) 동안 갈 만한 큰 땅이 되었도다.

자손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내려오니,

논밭도 좋거니와 머슴들도 근검하였다.

 

 요점 정리

 집안의 내력

 

 내용 연구

 

 요점 정리

 작자 : 허전(許)

 연대 : 조선 선조 때(임진왜란 직후)

 갈래 : 가사(잡가)

 성격 : 교훈적, 계도적, 경세적(警世的), 비판적, 우의적

 주제 : 임진왜란(壬辰倭亂) 직후 관리들의 나태하고 파당적 행위를 하는 이기적인 관리들의 정치적 행태 비판

 

 구성

기 - 집안(나라)의 내력

승 - 머슴들의 반복으로 인한 폐해(벼슬아치들의 탐욕과 무능으로 인한 폐해)

전 - 머슴들의 각성을 촉구(벼슬아치들에 대한 각성 촉구)

결 - 사려 깊은 새 머슴을 기다림(어질고 사려 깊은 새로운 벼슬아치를 기다림)

 

 줄거리 : 시적 화자가 비오는 날 새끼를 꼬는 사이에 머슴(고공)들을 꾸짖고 경계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처음에 조부모가 살림살이를 시작할 때 집 나라를 세울 때 고공들은 다 부지런하고 검소한 일꾼들이었는데, 요즈음 고공들은 밥사발(이권)의 크고 작음과 옷의 좋고 나쁜 것이나 서로 다툴 뿐이지, 강도가 쳐들어와 집안의 재산을 죄다 망쳐 놓았는데도 합심협력하여 도둑을 막고 부지런히 농사를 지을 생각은 않고 옷밥만 다투고 있다고 개탄하다 보니 새끼 한 사리를 다 꼬았다는 것이다.

 

 내용 연구

 

비유어의 원관념

고공 벼슬아치
옷밥, 밥, 사발, 동옷 녹봉, 벼슬아치, 이권
우리집, 큰 집, 전답 우리나라
처음의 한 어버이 이태조(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사롬사리. 세간, 가산 나라살림
녀름 국사
호슈, 나 왕, 임금
화강도, 도적 왜적
한솥 한 조정

 

 이해와 감상

 

 임진왜란 직후에 허전이 쓴 노래로, 국사(國事)를 한 집안의 농사일에 비유하여, 정사에 힘쓰지 않고 사리 사욕만을 추구하는 관리들을 집안의 게으르고 어리석은 머슴에 빗대어 통렬히 비판한 작품이다. 다시 말해서 농사로 나랏일을 비기어 요즈음 백관들은 밥사발의 크고 작기와 동옷의 좋고 궂은 것이나 서로 다툴 뿐이지 화강도(왜적)가 쳐들어와 가산을 망쳐 놓았는데도 화살은 얹어 두고 옷과 밥만 다투고 있다고 개탄하였다.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그렇게 무참히 당하고 유교적 이상이 깨어진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여, 그러한 현실을 수습하려 들지 않는 신하들의 무능하고 부패한 모습을 은유적 수법으로 읊은 경세적인 글이다. . 이 작품에서  지은이가 관료 사회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 이면에 유교적인 이상 사회를 재건하려는 숭고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화답가(和答歌)로 이원익의 <고공답주인가(雇工答主人歌)>가 있는데, 이것은 임진왜란 이후 집권층이 정사(政事)보다는 당파 싸움에 힘쓰자, 작자가‘어른 종(영의정)’의 입장에서, ‘종(신하)’들을 나무라고‘마나님(임금)’을 경계하려는 의도로 지은 작품이다.

 

이해와 감상1

 

 조선 중기에 허전(許)이 지은 가사. 순조 때 필사된 것으로 보이는 잡가 雜歌라는 노래책에 실려 있다. 작품 전체는 110행이다. 이 작품은 임진왜란 직후에 선조가 지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왔으나, 이수광(李光)의 지봉유설에 의하면 이는 잘못 전해진 것이고, 실제의 작자는 허전(許)이라고 한다.


작자는 고공(雇工), 즉 머슴을 내세워 당시 국록을 먹는 신하들의 부패상을 우의적(寓意的)으로 고발함으로써 이를 개선하려는 충정을 펴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작품에는 교술적 성격이 농후하다.
 내용은 처음의 한 어버이가 나라를 연 이래, 여드레갈이의 살림살이를 차려 놓고 인심을 많이 베풀어 국초(國初)의 머슴들은 모두 부지런하고 검소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머슴들은 밥 사발의 크고 작음과 의복의 좋고 나쁨을 다툴 뿐, 얼마 전에 화강도가 쳐들어 와 집안 재물을 모두 망쳐 놓았는데도 합심협력해서 농사를 지으며 도둑을 막을 생각은 않고, 화살을 방치해 두고 의복과 먹는 것만 다투고 있다. 그런 현실을 개탄하다 보니 어느새 새끼 한 사리를 다 꼬았다는 것이다.


 작품에 나타난 우의를 살펴보면, 처음의 한 어버이는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李成桂)를 우의한 것이고, 여드레갈이는 조선의 팔도를, 고공은 조정의 신하들을, 화강도는 임진왜란 때 쳐들어 온 왜적을, 여름짓기  농사는 국사(國事)를, 밥 사발은 나라에서 주는 녹봉을 각각 우의한 것이다. 이처럼 작품 전편이 우의적 수법으로 짜여 있다는 데 특색이 있다.


 작자는 임진왜란의 참화로 유교적 이상이 깨어진 비참한 현실에 직면하여, 이러한 현실을 성실하게 수습하려 들지 않는 신하들의 나태한 모습을 애달픈 심정으로 표현하였는데, 이러한 비극적 감정의 이면에는 유교적인 이상 사회를 재건하려는 숭고한 의지가 내재되어 있다. 이원익(李元翼)은 고공답주인가 雇工答主人歌를 지어 이 노래에 화답하였다.

참고문헌 韓國歌辭選集(李相寶, 集文堂, 1979), 雇工歌解說(金東旭, 文學春秋 創刊號, 1964), 雇工歌 및 雇工答主人歌에 對하여(金東旭, 趙潤濟博士回甲紀念論文集, 1964).(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심화 자료

 허전(許塼)

 진사를 했고, 무과 출신이었다는 기록이 지봉유설에 전한다. 혹은 합종현감을 지냈다고도 한다. 서울 천호동 상류에 그의 묘가 있다.

 

 이해와 감상

 만조 백관의 부패상을 은유적 수법으로 읊은 경세적인 글로 이 노래에 대한 화답가로 이원익이 지은 '고공답주인가', 일명 '고공답가'가 있고, 지은이를 선조로 보는 견해도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집권층이 나라를 위한 정사보다는 당파 싸움을 일삼자 '신하'를 나무라고 마나님(王)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이 부분은 고공가의 시작 부분으로, 집안의 내력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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