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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축일기 / 일명 서궁록 / 요점정리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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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축일기(癸丑日記) : 일명 [서궁록(西宮錄), 서궁일기] : 인목대비 혹은 광해군 때 어느 나인(內人)(?)


* 감상 : 광해군이 선조의 계비인 인목왕후의 생부 김제남이 왕후의 8세된 아들 영창대군을 추대 하여 모반한다는 무고(誣告)를 듣고 김제남 부자를 죽이고, 대비를 폐모하여 서궁에 가두고 영 창대군을 살해한 비극으로부터 인조가 반정(反正, 광해군 15)을 일으킬 때까지의 궁중사건을 기록한 글이다.

* 갈래 : 일기체 수필, 궁중 수필

* 문체 : 단아한 궁중의 말 사용

* 주제 : 궁중 내의 권력 투쟁과 그 비극

* 판본 : 21, 필사본

* 출전 : 낙선재 문고 필사본

 

역사적 기록

선조의 아들 13명은 모두 후궁의 소생이었다. 마지막으로 난 영창대군만이 정궁 소생이었다. 선조는 세자로 책봉한 광해군을 싫어하며 영의정 유영경 이하 몇 신하들과 영창을 세자로 책봉할 것을 몰래 의논했는데, 이 눈치를 챈 이이첨, 정인홍 등은 세자를 바꾸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다 선조의 비위를 거슬려 무근한 소리를 퍼뜨린다는 이유로 귀양을 보내게 되는데 이때 선조가 갑자기 세상을 뜨자 광해군은 당일로 즉위하여 귀양가게 된 둘을 조정으로 불렀다.

 

광해군은 형 임해군을 죽이고, 인목왕후를 서궁에 잡아 가두고, 인목왕후의 아버지 김제남을 반역죄로 몰아 서소문 밖에서 사형에 처하는 한편, 영창대군도 같은 죄목으로 庶人으로 만들어 강화에 끌려가서 갇혔다가 14세 어린 나이에 정항의 손에 참혹한 죽음을 당한다.

 

그후 인목대비는 서궁에 유폐되었다가 광해군 15(1623) 살제폐모사건을 이유로 서인 이귀 등이 의거하여 인조 반정이 이루어져 능양군이 왕위에 추대되어 인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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