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계간지 문학사상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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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상 : 1972 10월 창간, 이어령 주간

 

[문학사상]의 문인들

79 39일 문학평론가 이어령(李御寧)씨는 소설가 오영수(吳永壽)를 서울 우이동 자택으로 찾아갔다. 그날 씨는 70회 생일을 맞았으나 고희(古稀)를 즐길 여유가 없었다. 그해 "문학사상"(이하 "문학") 1월호에 권두 소설로 발표한 "특질고(特質考)"가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던 것.

 

사라져가는 지방의 특성과 사투리를 살려나가자는 의도로 썼던 이 작품의 한 부분이 전라도를 모독했다고 큰 물의를 일으켜 "문학" 3, 4월호를 자진 휴간하고, 일간지에 사과문까지 발표해 야 했다. 그 사과문 문구가 마음에 안 든다고 진노한 씨를 달래려고 "문학" 주간의 입장으로서 씨가 자택을 찾아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씨는 문인협회와 펜클럽으로부터 제명당하고, 절필 선언까지 해야 했으며 그 충격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그해 5 15일 타계했다. "문학"은 두 달 휴간에 "특정지역의 감정과 그 명예를 손상케 한 "특질고"를 게재하여 긍지와 선의로써 살아가는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 일을 저질렀습니다"며 다시한번 사과하고 5월호로 복간됐다.

72 10월호로 창간, 고전에서 최첨단 해외문학까지 다양한 편집으로 문학 독자층을 확장해 나가던 "문학"으로서는 최대의 시련을 맞은 것이었다. "문학" "문단의 문학을 철저히 파괴하여 만인의 문학이 될 수 있게 함으로써 문학 자체의 지위와 영향력을 강화시키겠다" 씨에 의해 창간됐다.

 

56년 한국일보에 "우상의 파괴"를 발표하며 평단에 나온 씨는 서정주(徐廷柱), 김동리(金東里), 조연현(趙演鉉) 등으로 대표되는 한국문단의 "우상"을 패배주의와 은둔주의자의 문학이라고 맹공하며 입지를 넓혀갔다. 순수문학에 반기를 들고 참여문학론을 내세운 것이다. 그러나 씨의 참여문학론은 68년 시인 김수영(金洙暎)과의 논쟁에서 "문화를 정치의 일부로 생각하는 오늘의 "오도된 사회참여론자들"이야말로 예술 본래의 창조적 생명에 조종(弔鐘)을 울리는 사람들"이라고 밝혔듯 운동으로서의 참여문학과는 대척점에 서 있다.

 

이러한 씨가 직접 만든 "문학"은 일체의 정실주의와 파벌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실력제일주의를 고수할 것을 내세웠다. 또 문인 위주의 필진을 탈피, 타분야 전문가들의 글도 실어 문학의 인접분야로의 확산을 꾀했다. 또 세계문학의 흐름과 발맞추기 위해 20여명의 해외특파원을 두고 현지르포, 논문, 번역 작품 등을 속도있게 실었다.

 

특히 매호 "자연의 재발견"등 신선하고 유익한 특집과 고전 발굴등 발굴논문 등을 실어 대학생, 직장인 등 폭넓은 독자층을 열어 나갔다. 창작품 위주의 기존의 문예지 편집 방침에서 "문예지 도 잡지다"며 잡지 편집방침을 도입, 다양한 교양도 섭취할 수 있게 꾸민게 "문학"의 특장이다.

 

"문학" 74년부터 "신인상"이라는 문단등용제를 통해 지금까지 80여명의 신인을 문단에 내보냈다. "신인상"은 추천제와는 달리 작품을 응모받아 일시에 심사, 단 한번으로 당선작을 내 등단시키는, 일간지의 신춘문예와 같은 제도다.

 

 "문학"의 신인상을 통해 시에서는 75 "산문에 기대어"로 송수권(宋秀權)씨를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70년대 홍영철(洪榮鐵), 손종호(孫鍾浩)씨 등을 등장시켰다. 80년대에는 이사라, 성석제(成碩濟), 원희석, 김완하(金完河), 배진성, 정끝별 씨 등이 시단에 나왔다. 90년대 들어서는 김중식, 강희안, 정해종, 이진숙, 정호성, 이홍림씨 등이 나오고 있다.

 

소설에서는 "불칼", "내일은 비"의 작가 김병총(金竝總)씨와 "숲속의 방" "가까운 골짜기" 80년대 독자를 사로잡았던 강석경(姜石景)씨가 74년 나란히 나왔다. 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박기동(朴起東)씨도 77 "문학"을 통해 재등단했으며 이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양귀자(梁貴子)씨도 78년 신인상을 통해 나왔다.

 

국민회의에 입당, 대변인으로서 지난 총선을 치른 김한길씨도 "바람과 박제" 81년 등단했다.시인 김형경씨도 85년 신인상에 당선돼 소설가로 변신했으며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의 작가 이순원씨도 88년 나왔다.90년대 들어서는 현재 가장 촉망받는 작가 윤대녕씨를 시작으로 이청해,이나미, 서혜림, 민혜숙씨 등이 신인 작가로 데뷔하고 있다.

 

평론 부문에서는 정현기(鄭顯琦), 최윤, 이태동(李泰東), 한기, 최혜실, 김종회씨 등 15명을 내보냈다. 이같이 주목할 만한 신인들을 배출했을 뿐 만 아니라 "문학"은 다양한 기획으로 문학의 독자층을 개발해 나갔다는데서 큰 의의를 찾을수 있다. "아이디어 뱅크"로서의 이어령씨의 기지가 완전히 발휘됐던 곳이 바로 "문학"이었던 것이다.

 

숨겨져 있던 고전과 문학사료의 발굴, 게재는 대학생 등 문학전공자들을 흡인해 들였다. 순수문학의 엄숙주의를 탈피하고 전위적이며 감성적인 문학을 추구해 신세대 직장인들을 문학독자로 끌어들였다. 또 문학과 연관된 인접학문의 광범한 교양을 제공해 지적 교양에 목말라하는 일반인들에게도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잡지다운 다양한 읽을거리의 편집이 문학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상문학상과 소월시문학상등 소설, 시 전문문학상을 제정, 매호 가장 우수한 작품들을 한권의 책으로 엮어 독자에게 선보임으로 써 본격문학의 대중화에도 앞장섰다. 한편 청소년문학상을 제정, ·고생 문학을 일구며 내일의 문학을 예비해나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잡지다운 편집"과 대중추수주의가 순수 문예지로서의 "문학"의 한계로 지적된다. 너무 대중만 좇다보니 문학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 잡다한 편집이 오히려 문학의 지위를 낯추게 하고 또 대중을 향한 "문학"의 기업형 경영이 문인을 소외시킨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읽힐 가치가 충분한 작품만 엄선, 게재하고 보급시켜 달라는 주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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