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 희곡 / 해설 및 분석 / 이강백
by 송화은율결혼(結婚)
이 작품은 한 빈털터리 남자의 결혼을 제재로 하여, 소유의 본질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희곡이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실험적 기법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기법들을 찾아보고, 그 효과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감상해 보자.
앞부분의 줄거리
젊고 잘생겼으나 빈털터리인 ‘남자’는 결혼이 하고 싶어진다. ‘남자’는 약속한 시간이 지나면 되돌려 주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집과 부자로 보일만한 여러 가지 물건들, 그리고 하인을 빌린다. 그리고 부자 행세를 하며 여성 잡지 ‘사교란’에 주소를 낸 ‘여자’와 맞선을 보기로 한다. ‘남자’는 ‘여자’를 기다리는 동안, 그리고 ‘여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빌렸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하인에게 빼앗긴다.
여자 넥타이를…….
남자 그것엔 관심 없습니다.
여자 왜 빼앗기셨죠? (옆에 와 부동자세로 서 있는 하인을 흘겨보며) 그것두 난폭하게.
남자 그렇지요. 난폭하게 주인을 덮치는 그런 하인에게 난 전혀 관심 없어요. 오히려, 당신 어머니의 성품이 너그러우신지…….
여자 하지만요, 저는…….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남자 알았어요. 문제는 빼앗긴 물건인가 본데, 그야 되돌려 받기 어렵지는 않
습니다. (하인에게 큰 소리로) 여봐, 가져와! (묵묵부답인 하인. 까치발을 딛고 일어나서 그의 귀에 속삭인다.) 여봐! 그 가져간 것 오 분만 더 빌려 주게.
하 인 (대답이 없다.)
남자 딱 오 분만 더. 사정해도 안 되겠나, 응?
하 인 (반응이 없다.)
남자 좋아, 좋다구.
여자 뭐래요, 하인이?
남자 네. 날더러 잘해 보라구 그럽니다.
남자, 관객석을 투덕투덕 걸어 다니다가 넥타이를 맨 남성 관객 앞에 앉는다.
남자 물론 그래요. 저 인정사정도 없는 하인이 나더러 잘해 보라구 그런 말한마디 하진 않았지요. 하지만 말입니다, 나도 그래요, 기죽을 필요야 없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도대체 지가 뭐라구 겨우 심부름이나 하는 주제에……. 속 좀 상합니다만, 그야 뭐 그건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니까 말해 보나마나겠구……. 저어, 당신 넥타이 참 좋습니다. 정말 좋아요. 아름다운 색깔, 기막히게 멋진 무늬. 딱 오 분만 빌립시다. 정확하게 오 분만. 더 이상은 어기지 않겠습니다. 빌려 주시렵니까? (남성 관객으로부터 넥타이를 빌려 착용하며) 고맙습니다. 빌린 동안에는 소중히 다룰 겁니다. 사실 이건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인데……. 혹시 모르지요, 당신도 누구에게서 빌려 온 건지는. 아무튼 잘 사용하고 돌려 드리겠어요. 자아, 그럼 당신은 시간을 재고, 난 이만.
남자, 급한 걸음으로 여자에게 돌아간다.
남자 어때요, 이젠?
여자 네, 당신은 멋진 분이세요.
남자 (웃으며) 뭘요.
여자 아니, 정말 그래요.
남자 (넥타이를 빌려 준 남성 관객을 향하여) 이 영광을 당신에게 돌려 드립니다. (여자에게) 그건 그렇구요, 우리 하다 만 이야기, 그것 좀 계속해 봅시다.
여자 어디까지 이야길 했죠, 우리?
남자 당신의 어머니에 대해서, 아직은 거기까지입니다.
여자 (작게 한숨을 쉬고) 그럼 저 자신에 대한 건 아직 멀었군요.
남자 그렇죠. 나도 직접 당신의 이야길 듣고 싶습니다만, 어머니 다음 딸, 이런 순서니까 계속 진행해 봅시다. 의무적으로 묻겠습니다. 당신 어머니 성품은 어떻습니까? 난폭하십니까? 상냥하십니까?
여자 글쎄요…….
남자 의무적으로 대답하십시오.
여자 (잠시 생각하더니) 난폭에다 상냥을 겸하신 분이에요.
남자 (자기 이마에 손을 얹는다.)
여자 왜 그러시죠?
남자 뭐, 별건 아닙니다. 벽에 부딪쳤다고나 할까요. 뭔가 어려워서요. 하긴 당신을 얻는다는 것이 그렇게 쉽지는 않겠지요. 첫눈에 반한 사람들도 결혼에 이르기까진 험난한 과정을 겪는다고들 합디다만. 그런데 우리는, 겨우 처음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것 같거든요. 아직 이야기도 당신의 어머니에게서 머물구 있구…….
여자 용기를 내셔야 해요.
남자 네, 어디 힘 좀 내 보겠습니다.
여자 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놀라시겠지만요…….
남자 말해 봐요, 뭐든지.
여자 저는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남자 놀랐습니다, 갑자기.
여자 네. 태어난다는 건 언제나 갑자기죠. 그래서요, 저는 태어날 때 제 기분이 어떠했는지 그걸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냥 그렇게 이 세상에 나온 거죠. 그리구, 어렸을 때 제 별명이 뭔지 아시겠어요? 덤이에요, 덤.
남자 덤?
여자 네. 왜 조금 더 주는 것 있잖아요. 그거래요, 제가. 아버진 사랑을 주구, 그리고 또 덤으로 저를 어머니에게 주었죠. 그러니까 덤 아니겠어요? 덤, 이 말 속엔 뭔가 그리운 게 있어요. 덤, 덤, 덤……. 아버진 덤이 태어나자 달아나셨대요. 말하잠 뺑소닐 치신 거죠. 나중에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구 어머니에게 보여 줬던 그 많은 재산은 모두 다 잠시 빌렸던 거래요.
남자 덤, 덤, 덤.
여자 하지만요, 저는 아버질 미워 안 해요. 그분에겐 뭔가 덤이라는 옛 이름처럼 그리운 데가 있어요. 덤, 혹시 그분도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셨던 건 아
닐지……. 안 그래요?
남자 덤, 덤, 덤…….
여자 어머니에겐 안됐지만요, 덤이라는 그 점이 저에겐 좋아요. 왠지 홀가분하더군요. 이런 말을 하면 어머닌 화를 내시곤 한답니다. 하긴 그렇죠. 고생 많으셨어요. 홀로 덤을 낳아 키운다는 건……. 그만둘까요? 제 이야기?
남자 덤, 더 해 주세요.
여자 그래서 어머니는요, 단단히 벼르시는 거예요. 이 덤을 키워서는 결코 사기꾼에겐 주지 않겠다구요. 전 어머니 말을 이해해요.
남자 나두 알 만합니다.
여자 고마워요.
남자 뭘요, 고맙기는요.
여자 사실 이런 덤 이야긴 처음인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답니다. 그냥 가슴속에 덮어 두었었죠. 그러고 보면 당신은 참 친절하신 분이에요.
남자 덤.
여자 네?
남자 아, 아뇨. 그저 불러 본 겁니다.
여자 그 목소린 그저 불러 본 건 아닌데요?
남자 저어, 아닙니다.
남자는 일어나 넥타이를 풀어 그것을 빌렸던 남성 관객에게 가서 되돌려 준다. 그의 눈은 물기에 젖어 있다.
남자 빌린 걸 돌려 드립니다. 시간은 정확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슬퍼진 건 무슨 까닭일까요? (관객석을 거닐며 그는 자기에게 들려주듯 중얼거린다.) 덤, 덤, 덤, 난 당신을 사랑해. 덤, 덤, 난 당신을 사랑해…….
여자 거기서 뭘 하시죠?
남자 (계속 혼잣말처럼) 덤, 난 당신을 사랑해…….
여자, 남자에게 다가온다.
여자 뭘 하구 계세요?
남자 덤……. 저어, 내 재산이 얼마쯤 될까, 그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여자 하필 이럴 때 그런 걸 생각하셔요?
남자 부자의 인색한 버릇입니다. 그런데 난 재산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생각
지도 말자, 그렇게 마음먹었습니다. 이젠 됐습니까?
여자, 남자의 어깨에 기댄다. 사이.
하인, 위압적으로 한 걸음씩 남자에게 다가온다.
두려워지는 남자, 그 꼴을 여자에겐 보이고 싶지 않다.
남자 눈을 감아요.
여자 감고 있는걸요, 이미.
남자 난 지금 행복합니다.
여자 저두 행복해요.
하인, 남자에게 덤벼든다. 호주머니를 뒤져서 소지품들을 몽땅 떨어 간다.
남자 이번엔 자질구레한 여러 가지 것들이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난 자꾸만 행복해집니다.
여자 (눈을 감은 채 미소를 짓고 있다.)
남자 그렇습니다, 덤. 여러 가지 것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그것들이 떠나갔습니다. 뭐, 놀랄 건 못 되지요. 그저 시간이 지난 것뿐이니까요. 어떤 나무는요, 가을이 되자 수천 개의 이파리들을 몽땅 되돌려 주고도 아무 소리 없습니다. 덤, 나는 고양이 한 마리를 길러 봤었습니다. 고양이는 차츰 늙어지고, 그래서 시간이 다 지나가자 그 생명을 돌려주고도 태연했습니다. 덤, 덤, 덤……, 난 뭔가 진실한 걸 안 것 같습니다. 덤, 덤. 그래요. 난 이제 자랑거리 하나가 생겼습니다. 그런 진실을 알았다는 것, 나에게는 그게 유일한 자랑이 될 겁니다.
여자 너무 겸손하신 자랑이에요.
남자 뭘요. 그런데 덤, 당신에겐 뭐 자랑거리가 없으십니까?
여자 있구말구요, 보시겠어요?
남자 봅시다, 어디.
여자, 남자와 함께 의자로 돌아간다. 의자 위에 놓여 있던 핸드백을 열고 그 속에서 얼굴만을 커다랗게 찍은 사진 석 장을 꺼낸다.
하인, 시계를 보더니 탁상 위에 놓였던 남자의 모자를 냉큼 집어 간다.
남자 이번엔 모자가 의자에서 떠나갔습니다. 다행이군요. 모자는 작습니다, 의
자는 크구요. 만약 의자가 모자에게서 떠나갔더라면 얼마나 큰 손실이겠습니까?
여자 이걸 좀 보세요.
남자 뭔데요, 그게?
여자 할머니, 어머니, 그리고 제 사진이에요. 저희 집 가문의 여인들은 대대로 미인이라는 걸 증명하는 거죠.
남자, 사진들을 바라본다. 하인, 모자를 가져가다가 멈춰 선다. 그의 시선이 아래로 움직여서 사진을 들여다본다. 남자, 하인을 밀어낸다.
남자 뭘 봐? (여자에게) 당신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여자 제일 젊으니까 그렇죠.
남자, 사진 중에서 여자 본인의 것을 들어 여자의 얼굴에 대고 한참 동안 바라본다.
남자 그러니까, 이게 지금의 당신이군요?
여자 네.
남자 몇 살인가요, 실례지만?
여자 스물둘이에요.
남자 스물두울. 꽃다운 처녀시군요.
남자, 다음엔 어머니의 사진을 얼굴에 대어 준다.
남자 시간이 좀 지났습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여자 조금 늙지, 어떻게 돼요?
남자 이젠 이 얼굴이 당신입니다. 몇 살이십니까?
여자 (조금 쉰 목소리로) 마흔다섯이에요.
남자 마흔다섯. 중년 부인이시군요.
남자, 할머니의 사진을 여자의 얼굴에 대어 준다.
남자 시간이 더욱 지났습니다. 이젠 이 얼굴이 당신입니다. 몇 살이시죠?
여자 (푹 쉰 목소리로) 일흔 살이 넘었어요.
남자 일흔 살이 넘으셨다, 늙으셨군요.
남자, 얼굴에 대었던 사진들을 탁상 위에 내려놓는다.
남자 재미난 놀이를 해 봤지요?
여자 네, 재미있었어요.
남자 짐작하셨겠지만, 이 놀이의 재미는 시간이 지나간다는 데 있습니다.
여자 (사진들을 가리키며) 그래두요, 이렇게 곱잖아요? 늙어서도 어여뻐야 정말 미인이래요.
남자 그렇지요. 잘 말씀했습니다. 정말 재미라는 거는요, 시간을 초월하는 데 있습니다. 시간, 흥, 지나가라지요. 우리는 그저 재미있음 그만입니다. 아, 덤! 당신은 어여쁘고, 거기에다 또 참된 재미가 뭔지 그걸 아십니다! 덤, 난 완전히 당신에게 매혹되었습니다. 아, 지금 나는 내 정신이 아닙니다!
여자 저도 그래요!
남자 난 너무 황홀합니다!
여자 그렇다니까요, 저두!
남자 바로 이겁니다! 인생이란 이런 거예요! 그런데 덤, 만약 이 순간에 (곁에서 시간을 재고 있는 하인을 가리키며) 이 억센 하인이 내 옷을 벗겨 간다면…….
여자 왜 벗겨 가요?
남자 만약입니다, 만약에…….
여자 그래도 옷을 벗겨 가선 안 돼요.
남자 그러니까 만약입니다. 만약에, 내 옷을 벗겨 간다면 당신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지금 가지고 있는 그 참된 재미를, 그 행복을, 그 황홀을 따악 깨셔야 하겠습니까?
여자 (어리둥절해지며)……글쎄요.
남자 참된 건 영원하다지요?
여자 ……글쎄요.
남자 어디 그럼 시험해 봅시다.
남자는 이미 저고리를 하인에게 빼앗기고 있다. 당황한 여자는 “……글쎄요.”만 연발하고 있다.
남자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직 바지가 남았습니다.
여자 바지가…….
남자 네, 비록 맨발에다 웃저고리는 안 입었습니다만 당신을 사랑하기에 전혀 부끄럽지 않은 모습입니다. 정식으로 청혼하겠습니다.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여자 왜 난폭한 하인을 그냥 두시죠? 당장 해고하세요.
남자 하인은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여자 그냥 두시니까 자꾸 빼앗기잖아요.
남자 빼앗기는 건 아닙니다. 내가 되돌려 주는 겁니다.
여자 당신은 너무 착하세요.
남자 글쎄요, 내가 착한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내 태도 하나만은 분명히 좋다구 봅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되돌려 주면서도 당신에 대한 사랑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줄기는커녕 오히려 불어나고 있습니다. 아, 나의 천사님, 아니 덤이여! 구두와 넥타이와 모자와 자질구레한 소지품과 그리고 옷에 대해서 내 사랑은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지 아십니까? 오로지 당신 하나에로만 모아지고 있는 겁니다! 내 청혼을 받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하인, 돌아와서 두 남녀에게 우뚝 선다.
여자 어마, 또 왔어요!
남자 염려 마십시오. 나도 이젠 그의 의무를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여자 그의 의무? 의무가 뭐죠?
남자 내가 빌린 물건들을 이 하인은 주인에게 가져다주는 겁니다.
하인, 남자에게 봉투를 하나 내민다. 남자는 봉투에서 쪽지를 꺼내 읽더니 아무 말 없이 여자에게 건네준다.
여자 ‘나가라!’ 나가라가 뭐예요?
남자 네, 주인으로부터 온 경고문입니다. 시간이 다 지났으니 나가라는 거지요.
여자 나가라……. 그럼 당신 것이 아니었어요?
남자 내 것이라곤 없습니다.
여자 (충격을 받는다.)
남자 모두 빌린 것들뿐이었지요. 저기 두둥실 떠 있는 달님도, 저 은빛의 구름도, 이 하늬바람도, 그리고 어쩌면 여기 있는 나마저도, 또 당신마저도…….
(미소를 짓고) 잠시 빌린 겁니다.
여자 잠시 빌렸다구요?
남자 네, 그렇습니다.
하인, 엄청나게 큰 구두 한 짝을 가져오더니 주저앉아 자기 발에 신는다. 그 구둣발로 차 낼 듯한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남자 결혼해 주십시오. 당신을 빌린 동안에 오직 사랑만을 하겠습니다.
여자 …… 아, 어쩌면 좋아?
하인, 구두를 거의 다 신는다.
여자 맹세는요, 맹세는 어떻게 하죠? 어머니께 오른손을 든…….
남자 글쎄 그건……. (탁상 위의 사진들을 쓸어 모아 여자에게 주면서) 이것을 보여 드립시다. 시간이 가고 남자에게 남는 건 사랑이라면 여자에게 남는 건 무엇이겠습니까? 그건 사진 석 장입니다. 젊을 때 한 장, 그다음에 한 장, 늙구 나서 한 장. 당신 어머니도 이해할 겁니다.
여자 이해 못 하실걸요, 어머닌. (슬프고 낙담해서 천천히 사진들을 핸드백 속에 담는다.) 오늘 즐거웠어요. 정말이에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여자, 작별 인사를 하고 문전까지 걸어 나간다.
남자 잠깐만요, 덤…….
여자 (멈칫 선다. 그러나 얼굴은 남자를 외면한다.)
남자 가시는 겁니까, 나를 두고서?
여자 (침묵.)
남자 덤으로 내 말을 조금 더 들어 봐요.
여자 (악의적인 느낌이 없이) 당신은 사기꾼이에요.
남자 그래요, 난 사기꾼입니다. 이 세상 것을 잠시 빌렸었죠. 그리고 시간이 되니까 하나둘씩 되돌려 줘야 했습니다. 이제 난 본색이 드러나구 이렇게 빈털터리입니다. 그러나 덤,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봐요. 누구 하나 자신있게 이건 내 것이다, 말할 수 있는가를. 아무도 없을 겁니다. 없다니까요. 모두들 덤으로 빌렸지요. 눈동자, 코, 입술, 그 어느 것 하나 자기 것이 아니구
잠시 빌려 가진 거예요. (누구든 관객석의 사람을 붙들고 그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가리키며) 이게 당신 겁니까? 정해진 시간이 얼마지요? 잘 아꼈다가 그 시간이 되면 꼭 돌려주십시오. 덤, 이젠 알겠어요?
여자, 얼굴을 외면한 채 걸어 나간다. 하인, 서서히 그 무거운 구둣발을 이끌고 남자에게 다가온다. 남자는 뒷걸음질을 친다. 그는 마지막으로 절규하듯이 여자에게 말한다.
남자 덤, 난 가진 것 하나 없습니다. 모두 빌렸던 겁니다. 그런데 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이 가진 건 뭡니까? 무엇이 정말 당신 겁니까? (넥타이를 빌렸었던 남성 관객에게) 내 말을 들어 보시오. 그럼 당신은 나를 이해할 거요. 내가 당신에게서 넥타이를 빌렸을 때, 그때 내가 당신 물건을 어떻게 다뤘었소? 마구 험하게 했었소? 어딜 망가뜨렸소? 아니요, 그렇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빌렸던 것이니까 소중하게 아꼈다간 되돌려 드렸지요. 덤, 당신은 내 말을 들었어요? 여기 증인이 있습니다. 이 증인 앞에서 약속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덤 당신을 빌리는 동안에, 아끼고, 사랑하고, 그랬다가 언젠가 시간이 되면 공손하게 되돌려 줄 테요. 덤! 내 인생에서 당신은 나의 소중한 덤입니다. 덤! 덤! 덤!
남자, 하인의 구둣발에 걷어챈다. 여자,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다급하게 되돌아와서 남자를 부축해 일으키고 포옹한다.
여자 그만해요!
남자 이제야 날 사랑합니까?
여자 그래요! 당신 아니구 또 누굴 사랑하겠어요!
남자 어서 결혼하러 갑시다, 구둣발에 차이기 전에!
여자 이래서요, 어머니도 말짱한 사기꾼과 결혼했었다던데…….
남자 자아, 빨리 갑시다!
여자 네, 어서 가요!
- 막.
요점 정리
지은이 : 이강백
갈래 : 희곡(단막극), 풍자극, 실험극
배경 : 현대, 어느 저택
성격 : 풍자적, 희극적, 물질적
사상 : 물질만능주의인 배금주의에 대한 비판
구성 - 남자는 여자의 미모에 호감을 표시함->여자는 남자의 부유함에 호감을 보임->하인은 빌린 시간이 다 된 물건들을 하나씩 남자로부터 회수함->남자의 정체(가난함)가 드러남->여자가 떠나려 함-> 남자가 인생의 의미를 깨닫고(모든 것이 잠시 빌린 것이고 덧없는 것) 진실한 사랑을 고백함->여자가 마음을 돌려 결혼을 승낙함.
발단 : 가난한 남자가 결혼을 하기 위해 ‘넥타이, 시계, 라이터, 구두, 양복, 집, 하인’ 등 모든 것을 남에게 빌린 후 맞선을 보기로 한 여자를 기다린다.
전개 : 초조한 기다림 끝에 맞선을 보기로 한 여자가 도착한다. 남자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부자인 것처럼 위세를 부리면서 처음 보는 여자의 미모에 반해 결혼하려 한다.
절정 : 약속된 시간이 되면서 남자가 빌린 물건을 하인이 하나씩 빼앗아 가기 시작하고, 빈털터리인 남자의 실체가 드러난다.
하강 : 빌린 물건을 모두 빼앗긴 남자의 처지를 알게 된 여자가 떠나려 하자, 남자는 소유의 본질과 헌신적 사랑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여자에게 결혼해 줄 것을 설득한다.
대단원 : 여자는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 후 그곳을 떠나자고 한다.
제재 : 어떤 남자의 결혼담
주제 : 소유의 본질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
특징 :
① 특별한 무대 장치가 없고 관객을 극중으로 끌어들임.
② 관객을 극중으로 끌어들임 : 배우가 객석에 내려가 관객의 물건(넥타이)을 빌렸다 돌려 줌
③ 우의적인 기법을 사용하여 소품 하나까지도 세밀하게 상징화했고, 이야기책의 내용을 극중의 현실로 바꾸는 기법을 사용함 : 이 작품은 '빈털터리 사기꾼의 결혼 성공담'이라는 서양 이야기책의 내용이 바탕이 됨
④ 익명성을 통해 남자, 여자, 하인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냄.[한 남자는 단 한 시간 만에 결혼을 하게 된다. 이는 어찌 보면 현대인의 진지하지 못함을 비판하는 것으로도 비춰질 수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를 고려해 볼 때, 그것은 한 남자가 종국에 주장하는 것, 곧 소유하는 사랑보다는 헌신적인 사랑의 중요성을 역설하기 위한 극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인물 :
여자 : 남자의 맞선 상대자 - 물질적 요소에 끌림 / 사랑의 진실을 확인함 - 남자의 물질적 요소에 끌림. 어머니의 교훈과 남자의 진실된 사랑을 확인함
남자 : 이야기책 속의 주인공이자 결혼을 하기 위해 많은 물건을 빌려 부자 행세를 한다. 빌린 물건으로 사랑을 갈구함/ 본래의 모습을 폭로를 당함/ 본질적인 사랑만을 호소함/ 사랑을 성취함 - 빌린 물건으로 사랑을 갈구하다 본래의 모습(가난)을 폭로 당함. 본질적인 사랑만을 호소하여 사랑을 성취함
하인 :남자가 빌린 시간이 끝난 물건을 회수한다. 기계적으로 행동함/ 남자의 물건을 박탈함 - 시간을 상징함. 남자의 물건을 박탈하며 거짓을 폭로함. / 관객에게 소도구를 빌려 오는 역할도 한다.
이 작품은 : 빈털터리인 한 남자가 예쁜 아가씨와 결혼을 하기 위해 벌이는 여러 가지 일들을 우스꽝스럽게 그리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수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남자가 부자처럼 꾸미기 위해 빌린 물건들에는 시간이라는 제약이 붙어서 남자는 시간이 지날 때마다 물건들을 빼앗기게 되고 결국 빈털터리임이 밝혀진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의 진심을 알고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들이 가진 것은 모두 빌린 것이며, 진정한 사랑만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 이 작품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대화를 나누고 결혼을 약속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단막 희극이다. 극 중에서 가난한 남자가 결혼을 하고 싶은 욕심에 갖가지의 것을 빌려 부자인 체하고 여자는 그런 거짓 부유함에 속아 대화를 이어나간다. 하지만 하인은 남자가 빌렸던 ‘넥타이, 시계, 라이터, 구두, 양복, 집’ 등을 차례대로 빼앗아 간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 ‘소유와 진실’의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즉 소유라는 것은 본래 누군가로부터 빌렸던 것이라는 점. 거짓에서 벗어나 진실한 태도를 보였을 때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점 등이 작품의 전개 과정에서 형상화되는 것이다.
내용 연구
하인[남자가 빌린 물건을 회수하는 역할], 또 다시 남자에게 달려들어서 넥타이를 풀어낸다. 남자는 빼앗기지 않으려 힘껏 저항하지만 하인의 억센 힘을 당해 내지 못한다. 결국은 빼앗기고, 하인은 기계적인 동작으로 넥타이를 가지고 나간다. 여자는 두 남자의 다툼에 놀란다.
여자왜들 그러시죠?[하인과 남자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함]
남자(씩씩거리면서 웃고 있다.)[이중적 태도] 이번엔 넥타이가 내 목에서 떠나갔습니다. <중략>
여자넥타이를…… .
남자그것엔 관심 없습니다.
여자왜 빼앗기셨죠? (옆에 와 부동자세로 서 있는 하인을 흘겨보며) 그것두 난폭하게.[여자는 남자의 물건이 모두 빌린 것이라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남자그렇지요. 난폭하게 주인을 덮치는 그런 하인에겐 난 전혀 관심 없어요. 오히려 당신 어머니의 성품이 너그러우신지…….[남자는 여자의 관심을 돌리려고 애를 쓰고 있음]
여자하지만요, 저는…… . (입을 다물어 버린다.)
남자알았어요. 문제는 빼앗긴 물건인가 본데[화제를 전환하려는 것을 실패함], 그야 되돌려 받기 어렵지는 않습니다. (하인에게 큰 소리로) 여봐, 가져와! (묵묵부답. 까치발을 딛고 일어나서 그의 귀에 속삭인다.) 여봐! 그 가져간 것 오 분만 더 빌려 주게.[남자가 기죽지 않으려고 여자 앞에서 큰소리치고 있음을 알 수 있음 – 허장성세(虛張聲勢) : 실속은 없으면서 허세만 떠벌림.]
하인(대답이 없다.)
남자딱 오 분만 더. 사정해도 안 되겠나, 응?
하인(반응이 없다.)
남자좋아, 좋다구.
여자뭐래요, 하인이?
남자네, 날더러 잘해 보라구 그럽니다. - 하인에게 빌렸던 물건을 빼앗기는 남자
남자, 관객석을 투덕투덕 걸어 다니다가 넥타이를 맨 남성 관객 앞에 앉는다.[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앰으로써 무대 위의 상황이 연극적 상황임을 관객에게 인식시키고 있음]
남자물론 그래요, (속상하다는 듯 담배를 피워 물고, 상대방에게도 권하며) 저 인정사정도 없는 하인이 날더러 잘해 보라구 그런 말 한마디 하진 않았어요.[고뇌 상징] 하지만 말입니다, 나도 그래요, 기죽을 필요야 없는 겁니다. 그렇잖아요? 도대체 지가 뭐라구 겨우 심부름이나 하는 주제[하인의 임무]에……. 속 좀 상합니다만, 그야 뭐 그건 당신에게도 마찬가지니까 말해 보나 마나겠구……. 저어, 당신 넥타이 참 좋습니다. 정말 좋아요. 아름다운 색깔, 기막히게 멋진 무늬, 딱 오 분만 빌립시다. 정확하게 오 분만. 더 이상은 어기지 않겠습니다. 빌려 주시렵니까? (남성 관객으로부터 넥타이를 빌려 착용하며) 고맙습니다. 빌린 동안에는 소중히 다룰 겁니다. 사실 이건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인데……. 혹시 모르긴 하지요, 당신도 누구에게서 빌려 온 건지는[이 세상의 모든 것은 빌린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돌려주어야 한다는 소유에 대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음]. 아무튼 잘 사용하고 돌려 드리겠어요. 자아, 그럼 당신은 시간을 재고, 난 이만. <중략>- 관객에게 넥타이를 빌리는 남자
여자갑자기 이런 말을 하면 놀라시겠지만요…….
남자말해 봐요, 뭐든지.
여자저는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남자놀랬습니다, 갑자기.
여자네, 태어난다는 건 언제나 갑자기죠. 그래서요, 저는 태어날 때 제 기분이 어떠했는지 모르겠어요. 아무튼 그냥 그렇게 이 세상에 나온 거죠. 그리구, 어렸을 때 제 별명이 뭔지 아시겠어요? 덤이에요, 덤.
남자덤?
여자네. 왜 조금 더 주는 것 있잖아요. 그거래요, 제가. 아버진 사랑을 주고, 그리고 또 덤으로 저를 어머니에게 주었죠. 그러니까 덤 아니겠어요? 덤, 이 말 속엔 뭔가 그리운 게 있어요. 덤, 덤, 덤…… 아버진 덤이 태어나자 달아나셨대요. 말하자면 뺑소닐 치신 거죠[자기 존재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드러냄]. 나중에 알고 보니 사기꾼이었구, 어머니에게 보여 줬던 그 많은 재산은 모두 다 잠시 빌렸던 거래요.
남자덤, 덤, 덤.
여자하지만요, 저는 아버질 미워 안 해요. 그분에겐 뭔가 덤이라는 옛 이름처럼 그리운 데가 있어요. 혹시 그분도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셨던 건 아닐지[아버지를 이해하려는 여자의 착한 마음을 알 수 있음]……. 안 그래요?
남자덤, 덤, 덤…….
여자어머니에겐 안됐지만요, 덤이라는 그 점이 저에겐 좋아요. 왠지 홀가분하더군요. 이런 말을 하면 어머닌 화를 내시곤 한답니다. 하긴 그렇죠. 고생 많으셨어요. 홀로 덤을 낳아 키운다는 건……. 그만둘까요, 제 이야기?
남자덤[덤이라는 여자의 표현에 공감과 연민을 드러내고 여자에 대한 별명으로 부름], 더 해 주세요.
여자그래서 어머니는요, 단단히 벼르시는 거예요. 이 덤을 키워서는 결코 사기꾼에게 주지 않겠다구요. 전 어머니 말을 이해해요.[딸을 버리지 않을 진실한 남자에게 시집보내려는 의지. 자신과 같은 불행한 삶을 살게 하지 않겠다는 여자 어머니의 마음을 알 수 있음]
남자나두 알 만합니다.[여자에게 공감과 연민을 드러냄]
여자고마워요.
남자뭘요, 고맙기는요.
여자사실 이런 덤 이야긴 처음인걸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답니다. 그냥 가슴속에 덮어 두었었죠. 그러고 보면 당신은 참 친절하신 분이에요.[여자가 남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음]
남자덤[남자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 있는 사기 행각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킴].
여자네?
남자아, 아뇨. 그저 불러 본 겁니다.
여자그 목소린 그저 불러 본 건 아닌데요?
남자저어, 아닙니다.
그의 눈은 물기에 젖어 있다.
남자는 일어나 넥타이를 풀어 그것을 빌렸던 남성 관객에게 가서 되돌려 준다.[소유의 본질은 빌린 것이라는 것을 드러냄 - 무소유]
남자빌린 걸 되돌려 드립니다. 시간[인간의 유한성]은 정확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슬퍼진 건 무슨 까닭일까요? (관객석을 거닐며 그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린다.) 덤, 덤, 덤, 난 당신을 사랑해. 덤, 덤, 난 당신을 사랑해……. - 여자의 ‘덤’ 이야기에 공감하는 남자
- 이강백
심화 자료
‘소재’의 의미 : ‘최고급 저택, 라이터, 시계, 구두, 넥타이’ 등은 남자가 결혼하기 위해 준비한 것으로 물질적 부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남에게 빌린 것으로 시간이 되면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므로 절대적 소유라는 것은 없음을 보여 준다. 또한 ‘덤’은 여자가 자신의 존재를 냉소적으로 보고 있음을 말해주며, 이는 남자로 하여금 자신의 사기 행각을 반성하게 하고, 여자를 이해함으로써 결국에는 진정한 사랑을 하게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 라이터 : 남자의 부를 드러내는 소재
- 하인 : 시간의 경과에 따라 소지품의 회수를 담당하는 기계적 역할, 시간, 인간의 숙명을 드러내는 존재
- 시간 : 인간의 유한성, 주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
- 사진 : 젊음도 세월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는 점을 깨닫게 하는 소재
- 넥타이 : 물질을 과시하려는 욕구나 허영을 의미하며, 또한 시간 제한을 두고 빌린 물건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소유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를 지님.
- 경고문 : 남자의 정체를 폭로하고 위기를 불러옴
- 구둣발 : 남자에게 물리적 위압
- ‘덤’의 의미
: 여자의 입장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드러내는 표현
: 남자는 덤이라는 여자의 표현에 공감과 연민을 드러내고 여자에 대한 별명으로 부름
: 남자로 하여금 자신이 하고 있는 사기 행각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킴
: 모든 것이 잠시 빌린 것이고 덧없는 것임을 암시하는 단어
소유와 무소유, 역설의 논리 : 남자는 빌렸던 모든 것을 시간이 되어 돌려줌으로써 소유라는 것이 의미가 없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덤이라고 여기는 여자에게 사랑을 얻어 낸다. 결국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진정한 것, 즉 사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언젠가는 돌려주어야 하는 무의미한 것인데, 이것들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느라 정작 인생의 값진 것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묻고 있는 것이다.
<보충>
희극 :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연극의 대본
특징
: 무대 공연을 전제로 한 문학
: 갈등의 문학(희극의 내용을 전개하는 기본적인 원동력은 다양한 갈등임)
: 행동의 문학(눈앞에서 사건을 펼쳐 보여 줌)
: 현재 시제의 문학(사건을 현재의 시점으로 재현하여 보여 주는 문학이기 때문임)
: 대사를 통해 모든 사건이 전개되기 때문에 작가의 개입이 불가능한 문학
무대 형상화 요소
무대 – 배우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할 때 필요한 공간
조명 – 인물의 심리, 극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해 상황에 맞게 무대를 비추는 장치
의상 – 인물의 신분, 계층, 성격 등 배역에 맞게 준비된 옷
소품 – 무대 위에 배치되거나 무대 장치에 덧붙여 연기를 도와주는 소도구
배경 음악 – 극중 상황에 맞추어서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음악
음향 효과 – 극중의 상황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효과음으로 여러 가지 소리를 내어 극이 실감나게 함.
배우의 연기 – 배우가 극중 역할에 맞게 적절한 몸짓이나 음성으로 드러내는 모든 행위
소도구 – 기본적으로 극의 사실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은 작품의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 사건의 발단을 암시하거나 주제를 부각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소도구의 종류 -
무대 위의 소품 : 한 예로 거실을 기준으로 하면 소파와 테이블, 텔레비전, 전화기, 화분, 오디오, 신문, 주전자, 휴지통 등이 됨.
인물 관련 소품 : 인물의 복장과 신발, 부착하고 있는 장식품 등
소극장 – 규모가 작은 극장으로, 대극장의 상업성을 지양하고 예술성을 추구하며 관객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만들어졌다.
이강백 (1947~ )
희곡 작가. 전라북도 전주 출생. 1971년“동아일보”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다섯’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우화와 비유로 비사실주의 작품을 주로 써서 ‘알레고리의 작가’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작품 세계는 인간의 실존적 고뇌를 정교한 논리로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등단 이후 거의 해마다 창작희곡을 내놓았다. 주요작품으로는 ‘결혼’,‘ 영월행일기’,‘ 느낌, 극락 같은’ 등이 있다.
이 작품은 한 빈털터리 남자의 결혼을 제재로 하여, 소유의 본질과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희곡이다. 이 작품에는 다양한 실험적 기법들이 나타난다. 이러한 기법들을 찾아보고, 그 효과가 무엇일지 생각하며 감상해 보자.
지도 방안 : 이 작품은 일반적인 희곡과 달리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상연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기존의 극에서 볼 수 없었던 점을 찾으면서 작품을 감상하도록 안내하여 이 작품에 나타난 실험적 기법과 그 효과를 알 수 있도록 지도한다.
예시 답안
이 작품은 별다른 무대 장치가 없고, 관객과 무대의 절대적인 구획도 없이 극이 전개됨으로써 관객들의 극중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남자는 초조하거나 극 속의 상황이 답답할 때, 관객에게 하소연하거나 동의를 구한다. 관객을 상대로 한 이러한 극적 행위는 관객으로 하여금 극에 대한 흥미와 집중도를 높이게 한다. 또한 이 작품에 쓰인 소품은 관객들의 것이다. 자신의 소지품이 연극의 소품으로 사용됨으로써 관객은 연극에 친밀감을 느끼고 작품의 주제를 보다 실감 나게 느끼게 된다. 남자의 물건이 하인에게 매몰차게 빼앗기는 상황에서 그 물건의 원래 주인이었던 관객은 극이 전하고자 했던 의미에 대해 더욱 적극적으로 사고하게 된다.
‘결혼’의 극장주의
1인칭 해설자의 극장주의(관객들로 하여금 시종 그들이 연극을 관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만드는 것)가 강력한 작품은 이강백의 ‘결혼’같은 경우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물건을 빌리기까지 하며 주인공은 1인칭 화자가 진행하는 극중 시간을 실제 공연 시간과 일치시킴으로써 공연한다는 사실 자체를 의식하게 하는 극장주의의 극치를 보여 주기도 한다. 1인칭 서술자 주인공의 또 다른 유형은 서술자가 될 수 있는 대로 극적 환상의 범주 내에 머물면서 소극적인 태도로 말하는 고백자 유형이며 이들의 언술 내용은 내면의 느낌, 감정 등의 정서적인 것들이다.
이런 작품에서 1인칭 화자의 서술은 극의 서술 구조의 프레임을 잡아주는 데 그칠 뿐, 극의 진행에는 소극적이거나 방관적인 경우가 많다. 아마도 내면적 고백이나 정서적 느낌 위주로 실제 극을 이끌어 가기는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 김방옥,“ 열린 연극의 미학”(문예마당, 1997)
‘결혼’의 희극적 성격
이강백의 ‘결혼’은 빈털터리 사기꾼의 결혼 성공담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가 조금도 무리가 아닌 것이 이 작품의 처음과 끝을 사건 중심으로 쫓아가 보면 ‘빈털터리 사기꾼 남자의 결혼 의지->결혼을 위한 전략->결혼 성공’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 작품의 곳곳에서 희극적인 의장들을 만나게 되지만, 이러한 부분적인 의장들에 앞서서 이 작품이 처음보다 끝이 행복하게 끝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희극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강백의 ‘결혼’은 이처럼 빈털터리 사기꾼 남자의 결혼 성공담을 담고 있는 희극 작품이지만, 단순하게 웃고만 넘어 갈 수 없는 인생의 깊은 이치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작가 소개> 이강백 1947년 12월 1일 전북 전주 출생.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다섯」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는 등단 이래 1970년대의 억압적인 정치‧사회 상황하에서 제도적인 폭압 체계를 상징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한 작가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그는 제도적인 폭압 하에서 신음하는 개개인의 비극적 현실을 보여주기보다는 그러한 현실 이면에서 횡행하고 있는 권력의 위선을 폭로하는 데에 더욱 주안점을 두었다 「셋」(1972), 「알」(1972), 「파수꾼」(1974)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결혼'에서 '시간'의 기능
'결혼'은 시간에 관한 희곡으로 볼 수 있다. 시계로 측정되는 물리적 시간이 극을 끌어가는 기본 축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 극에 나타난 시간 경험 자체가 극 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혼'에서 극중에 설정된 시간은 실제 극이 상연되는 시간의 길이와 일치한다. '결혼'은 남자 주인공이 저택을 빌린 '45분간'의 시간 동안 진행된다. 그리고 45분이 다 하고 남자 주인공이 쫓겨나는 순간 끝을 맺게 된다. '결혼'에 사용되는 대부분의 소품은 결말을 향해 긴장을 가속화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의 흐름을 무대에서 사라지는 물건들의 움직임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가시화한다. 즉, 이 극에서 소품은 단순히 소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의 주제 의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의미로서 작용하고 있다. 이 극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는 남자 주인공에 의해서만 23번 사용된다. 이는 물리적 시간이 남자 주인공에게 억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자는 시간에 대해 초조해 하고, 강박 관념을 느끼며 마치 시간의 대리자 역할을 하고 있는 하인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 한다 – 김윤미, ‘이강백 희곡의 시간성 연구’중에서
'결혼'의 주제 의식
'결혼'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가를 빌렸다가 되돌려 준다는 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젊음, 생명, 자연 현상들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빌리고 또 되돌려 주어야 할 것들로 형상화해 놓았다. 그 밖에도 이 작품에서 '시간 속에서 빌림 · 되돌려 줌'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 것으로 애정, 특히 남녀 간의 사랑을 들 수 있다. 아마도 작가가 이 작품 속에서 가장 공들여 형상화하고자 했던 '시간 속에서의 빌림 · 되돌려 줌'의 모습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작품의 표제가 보여 주고 있듯이 이 작품은 남녀 간의 사랑과 결합 양식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숙고하게 만드는, 어찌 보면 미처 덜 다듬어진, 그러면서도 인간의 삶의 모습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희극이라 평할 수 있겠다.
항목 | 내용 및 효과 |
무대장치 | 일반적인 희곡과 달리 이 작품은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소극장이나 응접실 등에서 행해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무대 장치를 통해서 관객이 극중 인물에 대해 친밀감을 느낄 수 있게 되며, 관객의 극중 참여를 유도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
상징적 소재와 인물의 행위 | 시간을 상징하는 회중시계를 소재로 활용하고 시간의 경과에 따라 하인이 물건을 회수하는 등 상징적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려 주어야 한다는 주제 의식을 전달하게 되는데, '빌리다'라는 어휘의 반복 사용을 통해 이러한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
배우의 대사 | 주인공이 어떤 이야기책을 읽는 데서 대사가 시작되는데, 그 책의 내용과 극중 사건이 일치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관객에게 극중 상황을 자연스럽게 알려 주는 효과를 얻게 된다. 또한, 등장 인물이 관객에게 질문을 하는 등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기도 한다. |
관객의 역할 | 관객의 물건을 연극의 소품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사건 전개 과정에서 관객을 증인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이는 관객이 연극에 동참하여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효과뿐 아니라 극중 인물의 가치관과 정서를 드러내며 극적인 리듬을 조절하게 된다. 그리고 관객은 소유의 절대성이 약화되는 경험을 하는 등 작품의 주제를 보다 실감 있게 느끼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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