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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訣別) / 전문 / 지하련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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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별(訣別) / 지하련


 

 

어젯밤 좀 티격거린 일도 있고 해서 그랬던지 아무튼 일부러 달게 자는 새벽잠을 깨울 멋도 없어 남편은 그냥 새벽차로 일찌감치 관평을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형례(亨禮)가 눈을 떴을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어젯밤 다툰 일이다. 하긴 어젯밤만 해도 칠원 관평은 몸소 가봐야 하겠다는 둥, 무슨 이사회가 어떠니 협의회가 어떠니 하고 길게 늘어놓는 남편의 이야기가 그저 좀 지리했을 뿐 별것 없었다면 그도 모르겠는데, 어쩐지 그게 꼭 '이러니 내가 얼마나 훌륭하냐'는 것처럼 대뜸 비위에 와서 걸리고 보니 형례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자연 주고받는 말이란 것이 기껏,

"남의 일에 분주헌 건 모욕이래요."

"남의 일이라니, 왜 결국 내 일이지."

이렇게 나오지 않을 수 없었고, 이렇게 되고 보니 딴집으로만 났을 뿐 아직 한집안일 뿐 아니라 큰댁에서 둘째아들을 더 믿는 판이고 보니, 하긴 남편의 말대로 짜장 그렇기도 한 것이 형례로선 더 노꼴스럽게 된 판에다가,

"여자가 아무리 영리해도 바깥일을 이해 못 험 그건 좀 곤란해."

하고 짐짓 딴대리에서 거드름을 부리는 것은 더 견뎌 낼 수가 없어서 이래서 결국 형례 편이,

"관둡시다. 관둬요."

하고 덮어 버리게 된 이것이 어젯밤 사건의 전부고 그 내용이지만, 사실은 이런 따위의 하잘것없는 말을 주고받은 것뿐으로 그저 그만이어도 좋고 또 남편이 이따금 이런 데서 그 소위 거드름을 부려 봐도 그리 죄 될 것 없는, 이를테면 아내의 단순한 트집이어서도 좋을 경우에 형례는 곧잘 정말 화를 내는 것이 병이라면 병이다. 더구나 형례로선 암만 생각해 봐야 조금도 다정한 소치에서가 아닌데도 노상 정부더리는 제가 도맡아 놓고 하게 되는 결과가 노여울 뿐 아니라 항상 사태를 그렇게만 이끄는 남편의 소행이 더할 수 없이 능청맞고 괘씸할 정도다.

간밤에도 물론 이래서 잠이 든 것이지만, 막상 아침에 깨고 보니 결국 또 손해본 사람은 저뿐이다. 지금쯤 분주히 관평을 하고 있을 남편에 비해서 이렇게 오두마니 누워 천장 갈비만 헤이고 어젯밤 일을 되풀이하는 제가 너무 호젓해해서인지는 모르나, 아무튼 일찍 일어났댔자 별로 할일도 없고 또 일찍 일어나기도 싫어서 그냥 멍청히 누워 있으려니 어듸난 거미줄 한 나불이 천장 복판에서 그네질을 한다. 형례는 어쩐지 그곳에 몹시 마음이 쓰이려고 해서 일어나 그걸 떼버릴까 생각는 참인데,

'여잔 왜 관평을 하러 다니지 않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 때문에 문득 실소하려던 맘 한 귀통에서 별안간 야단이 난다.

'그깐 일――'

하고 발칵하는 것이다. 다음 순간 형례는,

'웬일일까? 내가 이렇게 비위를 잘 상하게 되는 것은 그를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제법 맹랑한 생각이다. 하지만 그로서는 또 뭘 그렇게 치우쳐 다잡아 볼 것 없이, 그저 남편을 사랑한다고밖엔 도리가 없는 것이, 이러지 않고는 사실 일이 너무 거창해서인지도 모른다. 정말 이래서 그는 그저 인망이 높다는 남편의 좋디좋아 뵈는 그 눈자위가 가끔 비위를 상해 줄 뿐이라고 생각해 버리는지도 모른다.

뭘 별로 생각하는 것도 없이 그저 이러쿵저러쿵 누웠으려니,

"아지머니 웃말댁에서 놀러오시라요."

심부름하는 아이가 말을 전한다.

형례는 얼른 이불을 거두고 일어났다.

웃말댁이라면 그저께 정희(貞熙) 혼인이 있은 집이고 정희는 먼 촌 시뉘라기보다 더 많이 여학교 때부터 절친한 동무다. 제바람에 가볼 주제는 없었지만 아무튼 꽤 궁금하던 판이라, 부리나케 세수를 한 후 그는 '서울신랑'――그 걸패 좋다는 청년을 함부로 머릿속에 넣어 보면서 어느 때보다도 조심껏 화장을 한다.

"저녁에 아저씨가 오셔도 웃말댁에 갔다고 여쭈고 집안 비우지 말어라."

형례는 문밖을 나섰다.

너무 맘써 치장한 때문인지 언제라도 입을 수 있는 흰 반회장저고리에 옥색 치마가 쨍한 가을볕살에 눈이 부신다. 어째 횟박을 쓴 것처럼 분이 너무 많이 발린 것도 같고 입술이 주홍처럼 붉은 것도 같아서 뒤뚝뒤뚝 얼울한 판인데,

"아이갸, 새댁 나들이 가나베, 잔칫집에 가요?"

하고 마을집 노인이 인사를 한다.

"네."

하고 그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려니, 어쩐 일로 노인이 꼭 얼굴만 보는 것인지…… 그는 귀밑이 화끈하다.

'망할 노인네, 속으로 무슨 흉을 잡으려구.'

형례는 괜히 이런 당찮은 속알치를 부리고, 역부로 얼굴을 쳐들다시피 하고는 황황히 큰길을 나섰다.

큰길 옆 음식점 앞에선 무던히 키가 작고 다부지게 생긴 엿장사가 어느 우대 사투리론지 엿판을 치며 얼싸녕을 빼고 있다. 그 옆에 우무룩한 애들, 손자를 앞센 노인, 뒷짐을 지고 괜히 주춤거리는 얼주정꾼, 이렇게 숱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암만 생각해 봐도 어쨌든 그 앞을 지나칠 용기가 없을 성싶어서, 형례는 숫제 되돌쳐서 좁은 길을 잡았다. 좁은 길로 가면, 학교 뒤 긴 담을 돌아서도 논둑길로 큰길 두 배나 가야 하고, 그보다도 길이 험해서, 애써서 바투 신은 버선발에 흙알이 들어가면 낭패다. 그는 뉘 집 사립가엔지 죄없이 하늘거리는 몹시 노란 빛깔을 한 채송화 포기를 일부러 잘근 밟으며 짜증을 냈지만, 아무튼 굳이 이 길을 잡은 그 사람 됨됨을 비록 스스로 자조한다친대도, 영 갈 수 없었던 것은 의연 갈 수 없었던 것으로, 어찌할 수는 없다.

형례가 좁은 길을 거진 다 빠져나려고 했을 때다. 마침 고 삼가람 길에서 그는 공교롭게도 명순(明順)이와 마주쳤다. 명순이는 몹시 호사를 하고, 사내아이도 그 남편도 이 지방에서는 잘 볼 수 없는 값진 옷들인 성싶다.

"어디 가니?"

"나 온천에 좀 가."

대답하는 명순이는 밝고 다정한 얼굴을 해서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다.

두 사람은 인차 헤졌다.

학교 뒤 긴 담을 돌아나오려니,

'저런 게 행복이라는 걸까.'

하는 야릇한 생각에 선뜻 걸린다.

생각하면 형례는 전부터 명순이 같은 애들이 그리 좋지 않은 폭이다. 명순이만 두고 말해도 처음 시집갈 땐 그렇게 죽네 사네 싫다던 아이가, 시집간 지 얼마가 못 돼서부터 혹 동무들이 찾아가도 조금도 탐탁해하지 않는 대신, 날로 살림 잘한다는 소문이 높아 가는 것부터가 싫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개개 두고 볼라치면 학교 때 공부 못하고 빙충맞게 굴던 것들이 시집가선 곧잘 착한 말 듣고 잘사는 것이 참 이상하고 알 수 없는 속내이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걸 부럽게 여길 맘보다는 일종 멸시하고 싶은 생각이 더 컸던 성싶다. 하지만 웬일로 이제 이렇게 긴 담을 끼고 호젓이 생각하노라니 그 귀엽고…… 고운 생각을 담옥담옥 지녔던, 죽은 숙희라든가, 남편과 이혼을 하고 지금은 진남포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른다는 지순이라든가, 또 계봉이나 이제 형례 저 같은 사람보다도 명순이 같은 애들이 훨씬 대견하고 그저 그만이면 그만으로 어째 훌륭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음 순간 그는 맘속으로 가만히,

'지순이는 뭘 하구 있을까? 무슨 바엔가 찻집에 있다는 소문이 정말이라면 그건 명순이처럼 곧 남편이 좋아지지 않은 죄고, 음악이 취미라고 해서 축음기 판을 무수히 사들이고 오켄지 뭔지 하는 데서 가수들이 오는 날이면 숱한 돈을 요릿값으로 없애곤 하던 그 남편을 끝내 싫어한 죄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어쩐지 이런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보다 몇 배 더한 이상한 노여움을 어찌할 수가 없다. 발 아래 폭삭폭삭 밟히는 흙알을 한줌 쥐어 누구의 얼굴에고 팩 끼얹고는 그냥 돌쳐서고 싶은 야릇한 분만(憤忏)이다.

마침 상호천이란 냇물을 끼고 내리 걸으면서 그는 맘속으로 퍼붓듯 숱한 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소린지 한참 중얼대고 나니까, 어째 맘이 허전한 것이 이상하게 쓸쓸한 정이 든다.

쟁평하니 남실거리는 여울물이 보였으나 그는 조그마한 돌멩이로 파문을 긋고 싶은 마음도 없이 그저 휘청휘청 걸었다.

어듸난 대사를 치른 마당이라고, 새끼 나부랭이·종이 조각·떡 부스러기, 이런 것들이 어수선히 널렸는데도 그게 상가나 무슨 불길한 마당과는 달라서 어쩐지 풍성풍성하고 훈훈한 김이, 어디서고 다홍 치마를 입은 신부나 귀밑이 파르란 신랑이 꼭 나타날 것만 같아서, 짐짓 대청 앞을 피하고 샛문으로 해서 정희가 거처하는 방 쪽으로 가만가만히 가려니까 아니나다르랴 정희가 뛰어나온다.

"요런 깍쟁이, 고렇게 새치밀 딴담. 그래 모시러 보내지 않았더면 안 올 뻔했지?"

정희는 야속하다는 듯이 눈을 흘긴다.

 



형례는 정희 태도가 하도 신부답지 않다기보다도 너무 전날 그대로여서, 어떻게 보면 그게 더 고와 뵈는 것 같기도 했지만 또 한편 이상한 감을 주기도 해서 어쩐지 얼굴이 달았다.

형례가 정희에게 이끌려 마루로 올라서려니 여지껏 아랫목에 앉아서 두 사람의 수작을 보고 있던 퍽 해맑게 생긴 사나이가 밖으로 나온다. 형례는 속으로 '저게 뭐니뭐니 하는 이 집 사위로구나――' 했다.

정희는 그저 얼떨떨해 있는 형례에게 자리를 권하랴 이야길 건네랴, 뭘 또 차려 오게 하고, 한참 부산하다.

"얘 덥단다. 내가 왜 시집왔니, 아랫목으로만 밀게――"

형례는 도무지 적당한 말이 없어 곤란하던 차라 아랫목으로 앉힌 것을 다행으로 아무렇게나 말한 것인데,

"너 시집 좀 와보렴!"

하고 정희가 말을 받고 보니 영문없이 또 귀밑이 확확하다. 하긴 정희의 이런 말버릇이 이제 처음도 아닌 게고 또 뭘 이대도록 무안을 탈 것도 없지만 어쩐지 그는 왼편 바람벽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말았다. 그랬는데――하필 그곳엔 체취가 풍기도록 고대 벗어 건 것만 같은 넥타이가 끼워진 와이셔츠며 양복이 걸려 있어 여지껏 정희가 처녀였다는 사실과 이상하게 엉클어져, 그는 또 한번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얼마나 즐거우냐?"

그는 급기야 애꿎은 정희를 놀리고 만 셈이다.

"너 이러기냐?"

하는 듯이 정희는 고 초랑초랑한 눈으로 장난꾼처럼 잠깐 형례를 쳐다봤으나 인차 무슨 맘으론지,

"얘, 너 서울 가서 살잖으련?"

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묻는 것이다.

"너희 서울엘 내가 뭣 하러……."

"언젠가 왜 너희 신랑 서울로 취직된다더니 그것 정말이냐."

정희는 제 말을 계속한다.

"쉬 갈지도 모르지만 아마 그이 혼자 가게 될 거다."

"건 또 무슨 재미람. 그래 너희 신랑이 혼자 가서 있겠다든?"

"그럼 넌 혼자 가질 못해서 가려는 게로구나."

"요런, 내가 내 이야길 했어, 내가 간댔어?"

하고 정희가 대받질이다.

결국 형례가,

"얘 관둬라, 듣기 싫다."

하고 말을 끊었지만, 그는 정희와 오래도록 앉아서 이런 이야길 주고받을수록, 어쩐지 맘이 수수하다.

정희의 잉어처럼 싱싱한 청춘이, 말과 동작으로 되어 눌리는 것처럼, 설사 그게 주책없어 뵌다구 한대도 아무튼 이상한 힘으로 압박감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다.

형례가 한동안 그저 흥을 잃고 앉았으려니,

"너 내가 시집간다니까 처음 생각이 어떻디?"

하고 정희가 말을 건다.

"어떻긴 뭐가 어때, 그저 가나 부다 했지!"

"어떤 사람에게로 가나 했지?"

"그래 어떤 사람에게로 갔단 말이냐!"

이래서 정희는 첨 '그이'와 알게 되던 이야기, 연애를 하던 이야기, 결혼하기까지의 실로 숱한 이야기를 들려준 셈이다.

형례는 정희가 은연중에 결혼을 늦게 하는 사람은 으레 의지가 강하고 이상이 높다는 자랑을 하는 것 같아서,

"그야 좋은 연애를 해서 결혼하는 게 가장 이상일진 몰라두 연애라구 다 좋을 수야 있나."

하고 자칫하면 불쾌해지려는 감정을 자그시 경험하면서도 웬일인지 또 한편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마치던 해 정희와 도망갈 약속을 어기던 일, 별로 맘이 내키지도 않는 것을 어머니가 몇 번 타이른다고 그냥 시집갈 궁리를 하던 일, 생각하면 아무리 제가 한 일이라도 모두 지랄같다.

그는 역부러 사과 한쪽을 집고,

"너 언제 시집 가니?"

해서 생각을 돌리려고 한다.

"아직 잘 몰라."

정희는 온통으로 있는 사과를 집는다.

"나 안 먹는다, 목이 마른 것 같아서……."

"그럼 식혜 가져오랴?"

"아―니."

"대체나 아인 까다롭기두 해."

"까다롭긴 네가 까다롭지 뭐."

"내가 뭐가 까다뤄."

"여태 골랐으니 말이다."

"못된 거 같으니라구. 어디서 말재주만 뱄어?"

형례는 조금도 맘에 있어 계획한 말도 아니면서 정희 말마따나 결국 말재주로 놀려 주게 된 것이 우습고 또 어째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다시 뭐라고 말을 건네려는데 별안간 밖에서 떠드는 소리가 난다.

"그 술상 하나 내오소, 원…… 아니 서울사위를 보문 다 이런가? 그 서울사위 이리 좀 나오게그려, 내 좀 보세그래."

하고, 정희 끝엣당숙이란 양반이 술이 거울거울해서는 익살을 부리는 판이다.

이 통에 정희가 듣다가 혹 신랑이 노여워할 말이나 하지 않을까 맘이 켜지는지 그만 초조한 얼굴로,

"풍속이 다르니까 이해야 허겠지만서두 사람들이 너무 무관하게 구는 통에 불안해요. 더구나 떠드는 건 질색인데."

하고 낯빛을 어둡힌다.

"아인 숭겁기두, 그이가 질색인데 네가 왜 야단이냐 글쎄."

그는 정희 말을 받아서 이렇게 허투루 놀리기는 했어도 정희가 어느새 이처럼 참견하려 드는 그 맘이 암만 생각해도 이상할 뿐 아니라 객쩍으리만치,

'정희는 반했나 보지, 제 말마따나 사랑하면 반하게 되나 보지. 제가 반하는 것은 남이 저헌테 반하는 것보담 어떨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 드는 것이다.

 



"너 왜 잠자코 있니? 내가 수선을 떨어 불쾌하냐?"

"미쳤어."

그러나 정희는 뭘 별로 더 의심하려는 기색도 없이 그저 장난감을 감춘 소녀처럼 또랑또랑 형례를 쳐다보며,

"참 우리 인사할까, 그이허구."

하고 묻는다.

"싫다, 얘――"

어리둥절해서 거절을 했을 때 정희는 몹시 섭섭한 얼굴을 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이야길 많이 했고 그때부터 소개할 것을 약속했다고 하면서, 사람을 잘 이해한다는 것과 과히 인상이 나쁘지 않으리라고까지 말을 한다.

형례는 제가 거절한 것이 무엇으로 보나 정말이 못 될 뿐 아니라 응당 알고도 시치미를 뗀, 이를테면 저보다는 깍쟁이 같은 속인 줄은 조금도 모르고, 그저 안 돼 하는 정희에게 일종 죄스런 생각이 들기도 해서,

"그렇게 자랑이 하고 싶다면 내 인사헐 테니 작작 그만두자꾸나 얘."

하고 쉽사리 대답해 버렸다.

두 색시가 저녁상을 받고 앉았는데 정희 어머니가 들어왔다.

많이 먹으라는 둥 혼인날 왜 안 왔느냐는 둥, 인사치레하랴 딸 걱정, 사위 자랑하랴, 갈피를 못 잡는 주인마나님의 부산한 이야기를 귓곁으로, 형례는 제 생각에 기울었다. 고 좀체로 웃을 것 같지 않은 모습이 제법 무심하게, 별로 말도 없이 그저 인사만 하던 신랑의 태도가 어쩐지 이상한 불쾌와 더불어 괸 물을 도는 맴쟁이처럼 뱅뱅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정희 어머니는,

"이제 시집이라고 훌 가버리면 그만인데, 자주 놀러오게이, 이따가 밤참 먹고 오래 놀다 가게이――"

하며 쉬 큰방으로 올라갔다.

어머니가 나가자 정희도 따라 수저를 놓으며,

"왜 그만 먹니?"

하고 쳐다본다.

"넌 왜 그만 먹니?"

둘이는 웃었다.

별 의미도 없는 그러나 몹시 다정한 웃음을 웃으면서도 어쩐지 형례는 점점 맘이 편칠 못하고, 자꾸 어두워지려고 해서 곤란했다. 그런데다 정희가 멋모르고 자꾸 이야길 꺼내 놔서 더욱 딱하다. 그래서 그만 이빨이 쏜다고든지 두통이 심하다고든지 해서, 피해 볼까도 생각해 봤으나, 그러나 그럴 수도 없을 것 같아서,

"한번 보구 그런 걸 어떻게 아니."

하고 말을 받았다.

"깍쟁이 같으니라구……."

"그럼 꼭 좋단 말을 해야 헌단 말이지, 그래 참 좋더라."

말이 떨어지자 형례는 도두세우고 앉은 종아리를 사정없이 얻어맞았다.

"아이 아퍼. 너 막 셀 쓰누나, 난 갈 테다."

하고 형례는 종아리를 만진다.

그는 비단 장난엣말로뿐 아니라, 정말은 조금 전부터 그만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했니, 맘놓구 때려서 아프냐?"

눈이 퀭해서 잠자코 앉았는 형례를 보자, 미안한 듯이 정희가 말을 건넨다. 그는 속으로 또 괜히 딴대리를 잡누나 하면서,

"쑥스럽다 얘, 허지만 네 기쁨에 내가 공연한 희생을 당헌 셈이니 사관 해야 허지 않어?"

하고 되도록 다정한 낯빛을 한다.

정희가 거진 방바닥에 닿도록 절을 하고, 서로들 웃고 하는 판에,

"새댁들이 뭘 이리 크게 웃나?"

하고 정희 큰오라범댁이 문을 연다. 일갓집 젊은댁들이 모여서 신랑 신부 데려오라고 야단이 났으니 빨리 큰방으로 가자는 것이다. 먼저 오라범댁을 보낸 후 정희는 왜 오늘따라 오랬느냐고, 짜증을 내다시피 하는 형례를 졸랐다.

"다들 모여서 논다는데 빠지면 섭섭할 것 같애서 그랬지 뭐, 하긴 나두 별루 가구 싶은 건 아냐. 하지만 안 가면 또 뭐니뭐니 말썽이 귀찮지 않어? 그리고 그이들허구 놀아 보면 구수헌 게 의외로 재미있다, 너――"

하며 정희는 은근히 형례의 그 타협하지 못하는 곳을 나무라는 것이다. 형례는,

"그래, 내 혼인놀이라는데 아무렇기로니 네가 빠져야 옳단 말이냐?"

하고 짐짓 채치는 정희 말이 아니라도, 아무튼 가야 할 것만 같아서 일어나긴 했지만, 대소가 젊은이들이라면 모두 형례와는 동서뻘이거나 아주머니뻘이겠는데, 어쩐지 그는 전부터도 이 사람들을 대하기가 제일 거북했다. 따지고 보면 자기네들도 다 소학교라도 마친 사람들이고, 이보다도 나들이 갈 때라든가 무슨 명일날 같은 때 볼라치면 고운 옷은 잘 입는 것 같은데도, 어째 형례만 보면 연상 살금살금 갸우뚱거리는 것만 같고, 암만 애를 써도 그 사람들과는 도저히 어울리질 않는 것만 같아서, 오히려 완고한 할머니들을 대하기보다도 더 힘이 들고 싫었다.

"암만해도 난 그만둘까 봐."

형례는 한번 더 주저한다.

"아인, 뭐가 그리 무섭냐."

정희는 갑자기 어른티를 부리고 말하는 것이다.

전에도 이런 경우엔, 일쑤 정희에게 야단을 맞는지라,

"무섭긴, 누가 무섭대?"

하고 그는 일부러 나지막한 대답을 하려는데,

"그럼 뭐냐, 너 그것 결국 못난 거다!"

하고 정말 야단을 하는 것이다.

 



형례는 정희가, 너무 윽박지르려고만 하는 것처럼 자칫 노여운 정이 들려고도 해서,

"못나두 헐 수 없지 뭐."

하고 말해 버린다.

"글쎄, 그렇게 말험 그건 또 딴 게지만, 아무튼 가야 해요, 고대 잘 놀다가 뭐가 무섭다구 도망한 것처럼 되면 그 화나지 않어?"

정희는 두 손을 한데 모으고,

"자, 갑시다, 제발 가주시옵소서――"

하고 비는 듯이 흉내를 한다.

형례는 하는 수 없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정말 오라버니처럼 친절한 것이 오늘따라 더 가슴에 와서,

"아인 극성이기두 해."

하고 따라나왔지만, 축대를 내려서면서 그는 맘속으로,

'누구에게나 귀염을 받을 수 있는 사람, 되따에 갔다 놔도 사귀고 살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맘이 착한 사람이 아닐까.'

싶어져서, 어쩐지 외로운 정이 들었다.

두 색시가 들어서려니,

"야, 이 신부는 본래 이리 비싸나? 자넨 또 언제 왔는가?"

하고 형례에게도 인사를 할래, 모두 왁자건하다.

"신부는 신랑 옆으로 가고, 자넨 이리 오게."

그 중 나이 지긋한 정희 종숙모가 농을 섞어 가며 자리를 치워 준다.

"신부는 신랑 옆으로 가라니께, 원, 신식 신부도 부끄럼을 타나?"

이래서 방 안은 한바탕 짜글했고, 형례는 도무지 태도가 얼울해서 난감했다. 함부로 웃고 떠들 수는 세상엔 없고,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려니 뭘 대단히 뽑스리기나 하는 것처럼 주목이 오잖을까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사실은 이것보다도, 정희와 나란히 앉은 때문인지, 신랑이 자꾸만 보는 것 같아서 영 곤란했다.

이어 방 안엔 한참 공론이 분분하다.

"뭘 해서라두 오늘 밤엔 좀 단단히 턱을 받아야만 할 겐데 화투를 하자니 사람이 많고, 우리 윷으로 나서 볼까?"

"장가청에 웬 윷은――"

"아, 워낙 신식이거든――"

정희 종숙모가 사람좋게 익살을 부려서 형례도 웃었다.

"어쩔꼬? 신랑 편 신부 편, 갈라서 판을 짤까?"

"그러다가 신부가 지면 어짤라고."

"그게사, 절양식 중양식이라고, 아무가 진들 누가 알리, 우리는 그만 한턱만 받으면 되는 판 아닐까서."

이래서 방 안은 또 끓어올랐고, 윷판은 벌어진 셈이다.

"윷이야!"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하고,

"모야! 모면 모개에 있는 놈 개로 잡고 방으로 들거라!"

이 모양으로, 웬일인지 점점 신부 편이 우세를 취해 가는데, 형례는 다행히 신부 편이어서, 줌이 사뭇 버는 윷가락을 잡을 차례가 또 왔다.

"자, 요번에 자넨 뭣보다도, 윷이나 도로 해서 윷길에 있는 두동백이 놈을 먼저 잡고 가야 하네."

형례는 어쩐지 진작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고 팔이 후들후들해서, 그냥 아무렇게나 던진다고 던진 것이 하필 걸로 나, 이미 걸길에 가 있는 신부 편 말을 쓴다면, 뒷길로 도에 가 있는 신랑 편 말이 죽는 판이고, 그 도에 가 있는 말은 또 공교롭게도 고대 막 신랑이 보내 놓은 말이다. 별안간 와― 소리를 치는 손뼉이 일어났다.

여지껏 별로 흥겨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 굳이 승부를 다투려고도 않던 신랑이, 판국이 이리 되고부터는 약간 성벽을 부려 보려는 자세였으나, 결국 윷길에 가 있는 신부 편 말을 놓치고 승부는 끝이 났다.

손뼉을 치랴, 신랑을 놀리랴 방 안은 한참 부풀었다.

"초장부터 졌으니 누가 쑥인구."

"아이갸, 곧은 눈썹 잡고는 말도 못 한다지."

이렇게 웃고 떠드는 통에 요리상이 들어오고 신랑의 노래를 청하고 한참 신이 난다.

형례는 더운 체하고 정희와 훨씬 떨어져 문 옆으로 와 앉았다. 그랬는데도, 노래는 여자가 하는 법이라고, 겨냥을 정희에게로 돌리려는 신랑의 눈과 그는 또 한번 마주쳤다.

그러지 않아도 속으로,

'정희가 내 말을…… 혹시 여학교 때 이야기라도, 긴찮은 말이나 하지 않었나.'

하는 객쩍은 생각 때문에 괜히 초조한데다가, 덥쳐서,

"잠깐 봐두 노래 잘할 분이 퍽 많은 것 같은데, 첨 온 사람 대접할 겸 좀 듣게 하십시오."

하고 신랑이 말을 해서 그는 더욱 당황하다. 그랬는데 다행으로 신랑의 말이 떨어지자,

"저 신랑, 그라나믄 한양낭군 아닐진가, 왜 저리도 약을꼬――"

하고 벅작건하는 통에 형례는 겨우 곤경을 면했다.

대체로 신랑이 그리 재미있게 굴지 않는 폭인데, 정희도 그저 허투루 노는 판이라 처음부터 뭐가 그리 자잘치게 재미로울 게 없는 상 바른데도, 사람들은 그저 신랑이고 신부란 생각 때문인지 무척이나 유쾌한 모양이다.

사람들은 꼭 신랑의 노래를 들어야만 하겠는지, 장가온 신랑은 본시 닭도 되고 개도 되는 법이니 못하면 닭의 소리도 좋고 개소리도 좋다고 떠들어댄다.

그러나 이 통에도 셈센 아주머니라고 정희 숙모가,

"아이구, 노래는 무슨 노래, 신랑 눈치 보니께 저녁내 실갱이해도 노래할 것 같잖구만. 그만해도 많이 놀았을 바야 백죄 장성한 신랑 신부한테 궁뎅이 무겁다는 욕 먹지 말고 어서 먹구 일찌감치들 가세, 가."

하고 익살을 부려서 사람들은 또 한판 웃었다.

헤져 가는 사람들 틈에 껴서 형례도 가려고 하는 것을 정희가 굳이 잡았다.

"오늘 밤엔 선생으로 뫼실 테니 더 좀 놀다 가라, 얘."

하고 어리광을 피우고 졸라서,

"그래 자별하니 선생 노릇 좀 하고 놀다 가게, 그래."

하고 정희 어머니도 정희 편을 들고 모두들 웃는 통에 형례는 어쩐지 몹시 무안을 타서,

"얘가, 얘가 괜히 자랑을 못다 해서 이러는 것이래요."

하고 말하려는 것도 그만 못 하고, 그냥 끌려서 정희 방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아인 첨 봤어, 이따가 어떻게 혼자 가니?"

"아이 무셔 쌀쌀둥이, 이쁜 눈 가지구 누깔이 그게 뭐냐 글쎄, 누가 너더러 혼자 가래? 이따가 내 어련히 데려다 줄라구."

"싫다. 얘."

"싫건 그만두렴."

이렇게 정희가 싱글싱글 겅중대서 결국 둘이는 웃고 만 셈이다.

주위가 차차 조용해 가자 정희는 또 이야길 꺼내 놓는다.

"얘, 넌 이기는 게 좋으냐, 지는 게 좋으냐?"

다리를 쭉 뻗고 마주 앉아선, 발끝을 요롱요롱하고 정희가 묻는 말이다.

"건 또 무슨 소리야."

"아니, 넌 신랑헌테 이기냐 지냐 말이다."

형례는 정희의 언제나 버릇으로 앞도 뒤도 없이 툭 잘라 내놓는 말이라든가, 어린애 같은 그 표정이 우습다기보다도 어쩐지,

'결국 끝에 가선 저희 신랑 얘기를 헐 게다!'

하는 생각이 들자, 이번엔 방정맞으리만치 폭 솟구려는 웃음을 참아야 할 판이다. 이래서 형례는 간신히 짓는다는 게 너무 지나치게 점잖을 정도로,

"그래, 난 잘 모르니 너부터 말해 보렴."

하고 정희를 본다.

"깍정이 같으니, 그래 난 지는 게 좋다. 일부러래두 지려구 해, 어떠냐?"

"그럼 되우는 좋아하는 게지."

"그래 좋아하기두 해. 허지만 그보다도 이기구 보면 영 쓸쓸할 것 같구 허전할 것 같어서 그런다, 너――"

정희는 눈썹을 째긋이 하고 아주 진실하다.

"그럼 행복이란 널 위해서 준비됐게?"

"아인 남의 말을."

하고 정희는 때리려는 시늉을 한다.

 



"아니고 뭐냐, 좋아해서 지고 싶고, 지면 만족하고, 설사 그곳에 어떤 희생이 있대도 즐겨 희생하는 곳엔 고통이 없는 법 아냐?"

"너 왜 이렇게 막 뻐기니, 무섭다 얘, 관두자."

이번엔 정희가 얻어맞을 뻔한다.

형례는 뻐기는 것까지는 좀 거짓말일지 모르나, 아무튼 너무 정색한 것을 깨닫자,

"그럼 너만 뻐기련?"

하고 어름어름 웃으면서도 어쩐지 부끄럽다.

정희는 아닌게아니라 제가 지는 것으로 해서 조금도 자존심이 상할 리 없다는 설명과 지고도 만족하다면 그 사람은 행복할지 모른다는 것을 말하면서――'그이'를 오라고 해서 같이 이야기하고 놀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형례는 웬일인지, 거의 폭발적으로 콱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나 원 그렇대두, 글쎄 누가 너희 신랑을 못 봤다구 이렇게 야단이냐 말이다."

형례는,

"이런 심보하고는 전 소라통이야 왜――"

하고 토라지려는 정희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소라통이 아니면 뭐냐 그럼."

하고는 그저 웃었다.

조금 후에 형례는 전에 달라 별 대꾸도 없이 그저 시무룩해 있는 정희를 발견하자 흠칫,

'너무 심히 굴지 않았나?'

하는 후회가 난다.

제가 슬플 때라든가 기쁠 땐 꼭 어린애처럼 순진해지는 정희인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형례로서는, 정희가 하는 노릇을 단지 자랑으로만 볼 수는 없다.

형례는 속으로,

'제가 좋아하는 내가, 제가 좋아하는 그이와 친했으면…… 제가 좋아하듯 서로 좋아했으면…… 하는, 이를테면 정희다운 맘씨가 아닐까?'

싶어서 더욱 짓궂게 군 것이 미안해진다.

"너 노했니?"

"……"

"못났다 얘, 어쩜 그렇게 생판이냐."

"뭐가 생판이야?"

"어린애란 말이다."

"어린애래두 좋아."

한순간 둘이는 이상하게 부끄러운 어색한 분위기에 싸였으나, 그러나 인차 정희는 훨씬 명랑해져서,

"이따금 난 네가 몰라줘서 쓸쓸탄다."

하며 트집까지 부린다.

전에도 이런 경우엔 맡아 놓고 정희가 해결을 지어 줬지만, 형례는 진정 마음으로 이날처럼 고마운 적은 별로 없다. 그리고 또 이날처럼 그걸 모른 척해 본 적도 없다.

"모르긴 뭘 몰라?"

하고 형례는 되도록 남의 말처럼 무심하려는데,

"그럼 데려오랴?"

하고 다그쳐서 그는,

"너두, 참――"

하고 당황한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정이 훨씬 넘어서야 형례는 정희 집을 나섰다. 혼자 가도 괜찮다고 사양을 했지만, 결국 세 사람은 가까운 길을 버리고 해안통을 나란히 걸었다.

중앙 잔교를 지나서 뗏목으로 만든 긴 나룻가엘 나서려니 조그막씩 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언제 보아도 호수 같은 바다가 안전에서 찰싹거린다.

"왜 안개가 끼려구 할까."

뽀얀 안개가 산에고 바다에고 김처럼 서려 있어 조금도 가을 같지가 않다.

"왜 안개가 낄까?"

이번엔 신랑이 묻는다.

"혹 비가 오려면 안개가 낀대지만……."

정희는 말끝을 맺지 않고 하늘을 본다.

신랑도 따라, 그저 은하수를 헬 것만 같은 하늘을 쳐다봤다. 아지랑이가 꼈든, 안개가 꼈든, 유리알처럼 영롱한 하늘이 사뭇 높아서 하늘은 아무리 봐도 가을 하늘이다. 그러나 그게 조금도 북방 하늘처럼 쇄락한 감을 주지 않는 것이 더욱 연연한 정을 주지 않는가? 음산한 가을비가 오다니, 모를 말이다.

정희는 이제 여름밤을 보라고 연신 자랑이다. 정희 말을 들으면 비가 오려고 하는 전날 밤과 비가 갠 날 밤이 여름밤치고도 제일 곱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늘만 고운가?"

고, 신랑이 웃음엣말로 정희 말을 받으며 힐끗 형례를 봤다.

형례는 잠자코 있기가 어쩐지 거북해서,

"첨이세요?"

하고 그저 얼핏 나오는 말을 한 것이지만, 제가 생각해 봐도 대체 뭐가 첨이냐는 것인지 모를 말이라 더욱 어색했다.

정희는 신랑이 이제 첨 와본다는 것과, 대단히 좋은 곳이라고 형례 말에 인사를 하자, 더 신이 나서 섬으로 낚시질을 가 조개를 캐고 소라를 따는 이야기, 섬의 밤은 무척 꺼멓고 이심이가 산다는 바윗돌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신랑이 짐짓,

"바닷가 색시들은 사나울 게라."

하고 말을 해서 형례도 웃었다.

"왜 바다가 얼마나 좋은데 그래. 우린 되우 슬프거나 외로울 땐 갑자기 바다가 그리워지고, 풍랑이 몹시 이는 바다에 가서 죽고 싶대요."

"건 또 웬일일까, 물귀신의 넋일까."

하고 신랑이 웃고 정희 말을 받으며,

"이러다간 내일 동하게 되리다."

해서 색시들은 자지러지라고 웃었다.

정희는 신랑이 그 큰 소리로 웃지들이나 좀 말라고 하는 것이 더 우습고 재미있다는 듯이, 남해서 배를 타고 여수로 가려면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원귀가 있는 섬이 있는데, 혹 비가 오려는 날 어선이 그곳을 지나노라면 아주 구슬픈 울음 소리가 들린다는 이야기, 또 옛날에 어떤 총각이 돌치라는 아주 조그만 섬에 가서 고기를 낚고 살았는데, 하루는 달밤에 고기를 낚노라니 아주 머금어 빼친듯한 처녀가 홀연히 나타나서 밤마다 놀다가는 꼭 새벽이면 눈물을 흘리고 물속으로 들어갔단 이야길 장난꾼처럼 재잘대며,

"알고 보니 그게 바로 인어였대요."

하고 사부랑거린다.

"정말 인어라는 게 있을까?"

형례는 싫도록 들어 온 이야기지만 어째 이상한 생각이 수룻이 들어서 정희보고 말한 것인데,

"그럼 있지 않구요."

하고 신랑이 말을 받았다.

'내 보기엔 당신네들부터 수상한 것 같수다.'

하는 것처럼 색시들의 얼굴을 보며 웃는 것이다.

형례는 전에 없이 아름답고 즐거운 밤인 것을 확실히 느낄수록 어쩐지 점점 물새처럼 외로워졌다. 저와 상관되고 가까운 모든 사람이 한낱 이방인처럼 느껴지는 순간, 그는 저와 가장 멀리 있고 일찍이 한 번도 사랑해 본 기억이 없는 허다한 사람을 따르려고 했다. 별안간 눈물이 쑥 나오려고 한다. 그는 정희가 볼까 봐서 머리를 숙인 채,

"몇 시나 됐을까?"

하고 말을 건넨다.

"글쎄."

조금 후 일어나는 색시들을 따라 신랑도 일어서면서 왜들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느냐고 해서 셋이는 모두 웃었다.

세 사람이 새로 된 매축지를 거진 다 돌아나려고 했을 때 어디서 기다란 기적이 아삼푸레 들려 왔다.

"정말 날씨가 궂으려나 보지?"

정희가 혼자말처럼 사분거린다.

"무슨 징조로 자꾸 비가 온대는 거요?"

하고 신랑이 물어서, 이제 막 들리는 기적 소리가 바로 날이 궂을 때 들린다는 것과 그게 바로 낙동강을 지나는 열차의 신호라고 정희가 설명을 한다.

형례는 이 야심하면 흔히 들을 수 있는 이 기적 소리가, 이제 웬일로 칼날보다도 더 날카롭게 별똥보다도 더 빠르게 가슴에 오는 것인지, 별 까닭도 없고 어디 논지할 곳도 없어 더 크고 깊은 억울함에 그냥 목놓아 통곡하고 싶은 감정을 자그시 깨물며 머리를 숙인 채 잠자코 걸었다.

세 사람이 거진 형례 집 앞까지 왔을 때,

"미안합니다, 괜히 이렇게……."

하고 형례가 그 뒷말을 몰라하는 것을,

"또 뵙겠습니다."

하고 신랑이 얼른 말을 받아 주었다.

형례는 꼭 지쳐진 대문을 열고 들어서선, 빗장을 꽂고 다시 고리를 걸었다.

남편은 벌써 돌아와서 잠이 들었던 모양으로,

"새도록 무슨 마을인가?"

고 제법 농을 섞은 꾸지람을 했다.

형례가 자리에 누울 제쯤 해서 남편은 담배에 불을 댕기며,

"뭘 하는 사람이래?"

하고 말을 건넨다.

"그냥 공부하는 사람이래요."

하고 형례가 말을 받으니까 남편은 짐짓 좀 피식이,

"아 여태 학굘 다녀?"

하고 묻는다.

"꼭 학굘 대녀야만 공불 허나?"

좀 생파르게 대답하는 아내의 말이 있은 지 얼마 있다가 남편은 일부러 푸―푸― 소리를 내고 연기를 뿜으며 혼자말처럼,

"공불 허는 사람이다? 좋은 팔자로군."

하고 흥청거린다.

형례는 남편의 이러한 태도가 어쩐지 마땅찮았다. 자기도 역시 그 나이 또랜데도 무슨 자기보다는 훨씬 어린 사람의 이야기나 하듯 오만한 그 표정이 어쩐지 비위에 거슬린다. 그래서 짐짓,

"건데 여간 침착한 사람이 아니야요."

하고 말을 해봤다. 그랬더니 남편은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응, 얼굴도 잘나구."

하며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이때 형례에겐 쏜살같이,

'내 맘을, 내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를 자기대로 짐작헌 게다. 그래서 이것이 그 노염의 표정인 게다!'

이렇게 생각이 들자 또 뒤미쳐서,

'이런 때 남편의 표정이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이 든다. 형례는 알 수가 없었다. 웬일인지 분하다.

"왜 동무 남편임 좋건 좋다고 허는 게 뭐가 어떻고, 왜 나쁘담――"

하고 형례는 그만 미리 덜미를 잡으려는 시늉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이렇게 말을 시작하고 보니, 뭘 한번 억척같이 버티어 보구 싶은 애매한 충동이 느껴졌다. 그래서,

"말해 봐요. 내일 광골 써붙이든지 세상 밖으로 쫓아내든지 한번 맘대로 해보세요. 허지만 난 당신처럼 거짓말은 헐 줄 몰라요……."

하고 허겁지겁 저도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사실 형례는 한번 불이 번쩍하도록 맞고 싶었다. 그러면은 차라리 뭔지 후련할 것 같았다. 그러나 남편은 형례가 하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내가 뭐랬다구……."

하며 거의 당황해서 일어앉는다.

"당신은 번듯하면 날 잡구 힐난하려 들지만, 원, 허 것 참. 그래 내가 어쨌단 말이오. 왜 남이라구 좋단 말 못 허란 법 있나? 그리고 또 당신이 뭘 그리 좋단 말을 했기에, 내가 어쩐다구 이러우? 자, 그러지 말래두 그래. 괜히 평지에 불을 일워 티격태격하면 그 모양이 뭣 되우, 그저 당신은 아무것두 아닌 것 가지고 이러지 말우. 내 암말두 않으리다."

하고 괜히 쉬쉬한다.

'아무것두 아닌 것 가지고…… 내 암말도 않으리다.'

하고 남편이 하던 말을 되풀이해 본다. 암만 생각해도 이게 아닌 성싶다. 맞장구를 치는 것도 이게 아니고, 당황해하는 것도 이거여서는 못쓴다. 아무튼 도통 이런 게 아닌 것만 같다.

얼마 후 형례는,

'내가 아주 괴상한 짓을 할 때도 그는 역시, 모양이 뭐 되우 내 암말두 않으리다 할 건가?'

싶어진다. 이렇게 생각하고 보니 어쩐지 정말 꼭 그러할 것만 같다. 동시에,

'이렇게 욕 주고 사람을 천대할 법이 있느냐?'

는 외침이 전광처럼 지나간다. 순간 관대하고 인망이 높고 심지가 깊은 '훌륭한 남편'이 더할 수 없이 우열한 남편으로 한낱 비굴한 정신과 그 방법을 가진 무서운 사람으로 형례 앞에 나타났다. 점점 이것은 과장되어 나중엔,

'그가 반드시 나를 해치리라.'

는 데서 그는 오래도록 노여웠다.

웬일로 밤이 점점 기울수록 악머구리떼처럼 버러지들이 죽게 울어댄다.

'저 기다랗게 끼록끼록 하는 것은 지렁이일 테고, 끼뜩끼뜩 하는 것은 귀뚜라미일 테지만, 저 솨르르솨르르 하고 쪽쪽쪽 하는 벌레는 대체 어떤 형상을 한 무슨 벌레일까? 왜 저렇게 몹시 울까?'

싶다. 갑자기 밀물처럼 고독이 온다. 드디어 형례는 완전히 혼자인 것을 깨닫는다.

 

출전:문장21(194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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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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