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 시가의 전개
by 송화은율개화기 시가의 전개
전통시가(시조, 가사) ⇒ 개화가사(개화, 계몽, 4.4조)
⇒ 창가(신문명 찬양, 개화, 율조의 다양화 : 6.5조, 7.5조, 8.5조 등)
⇒ 신체시(신교육 사상, 개화의식, 율조의 파괴)
⇒ 근대자유시(외형률 배제, 개인 정서)
개화가사와 창가
1890년대 중반기 이후 우리의 문화계에는 자주 독립의 정신과 문명 개화의 이념을 터득한 새로운 세대의 문필가들이 등장했으며, [독립신문], [황성신문], [제국신문], [대한매일신보], [만세보] 등의 근대적인 신문이 간행되었는데, 이를 배경으로 우리 문학은 자기갱신의 양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개화기 문학은 물론 봉건적인 양식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한, <과도기적 성격의 문학, 이행기적 성격>의 문학이었으나 거기에 포함된 상대적으로 새로운 요소들은 명백하게 근대지향적인움직임을 나타냈다.
근대적인 문학의 전조(前兆)는 무엇보다도 시가의 영역에서 일찍이 나타났다. (위의 각 신문)에는 율문 양식을 빌어 시사성이 강한 정보와, 우국(憂國)경세(警世)의 내용을 전달한 시가들이 상당수 발표되었는데, 이런 작품들을 통해 우리의 시가는 새로운 차원을 열기 시작했다. 개화기 시가는 대략 <개화가사>, <창가>, <신시> 세 종류로 나눌 수 있겠다.
개화가사란 재래적인 가사의 형식을 계승한 것으로서 4·4조 또는 3·4조의 자수율을 가진 시가이다. 개화가사는 <대조션 쥬독립 국 노>, <국가>, <동심가>, <쵸당가> 등 [독립신문]에 게재된 애국·독립가류와 [대한매일신문] ‘사회등(社會燈)’란을 중심으로 발표된 저항가류로 대별된다.
창가는 음악, 특히 가곡 곡조와의 상관관계가 완전히 불식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개화가사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그 곡조가 우리 주변의 재래적인 가락이 아니라 서구에서 유입된 악곡이었다는 점에서는 개화가사와 구별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개화가사란?
개화가사는 어느 것이나 그 내용만이 개화사상을 담았다뿐이지 가락은 구태의연한 고가(古歌)가사이다. 따라서 이러한 개화가사는 모두 전래의 타령(打令)조, 낭송(朗誦)조나 가야금 거문고에 맞춘 것이 아니면 쾌지나 칭칭나네식 민요조로 한 사람이 먹이고 중인(衆人)이 받아서 가창하는 형식을 취했을 것이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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