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개인과 사회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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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사회의 조화

 

인간과 사회성

 

중국 고대의 사상가인 순자(荀子)는 제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사람은 말보다 빠르지도 않고 소보다 힘이 세지도 않은데 왜 말이나 소를 부릴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이에 대한 순자의 대답은 "사람은 사회를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즉 인간이 만물을 지배하는 영장(靈長)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사회를 만들어 개인의 능력을 조직하고 효율적으로 발휘하게 하기 때문이다.

 

순자가 지적했듯이, 인간은 사회를 구성하는 사회적 존재이다. 인간을 사회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이 집단 생활에 참여하면서 그 집단과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만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인간은 집단 속에서 공동의 목적을 위해 일을 분담하기도 하고, 거래와 타협을 하면서 공존하는 방식을 모색하기도 한다. ,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으로서 일정한 의식과 절차를 스스로 학습하고 다른 구성원에게도 학습시켜 그것을 지키도록 자신과 타인에 통제를 가함으로써 공동체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여러 가지 사회 관계를 맺으면서 사회화의 과정을 경험한다. 어머니가 태아에게 들려주는 노랫소리나 어머니가 섭취하는 음식에는 모두 그 사회에 대한 정보가 들어있다. 태아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어머니의 행동의 영향을 받아 이미 사회화 과정을 체득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화의 과정은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사회 윤리의 학습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화의 과정은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 곧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이고, 사회 윤리는 바로 그러한 방식을 일정하게 규정하는 의식(儀式)과 절차를 뜻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적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운 개인, 더 나아가 사회와 단절된 개인을 상정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본질을 포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개인은 날 때부터 자신을 사회 관계 속에 포함시키려는 경향을 가진다. 인간은 주어진 조건에 적응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 관계와 유리될 때 생존이 위태롭다는 것을 민감하게 포착하고 젖먹이가 어머니의 가슴에 밀착하듯 사회에 밀착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써 정의한 것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스스로를 사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사회화 과정, 즉 사회 윤리를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구속을 느낀다. 이것은 어쩔 수 없다. 인간이 사회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작게는 가족 관계에서부터 크게는 국가라는 대조직 사회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회 관계의 구속과 규정을 받아들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윤리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행위를 일정한 틀로 질서 지우는 일이다. 하지만 구속을 느끼게 되면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것도 인간의 고유한 성향이다. 그래서 인간이 사회로부터 규정된다는 사회적 피규정성을 강조하는 대신에 자유를 희구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사상도 생겨나게 되었다.

 

자유주의 사상과 개인

 

인간이 자유를 희구하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하는 자유주의 사상이 나타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근대 이전에는 주로 개인보다는 사회, 혹은 집단이 강조되었고, 그에 따라 개인의 주체적 자유보다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의무가 더 중시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적어도 자본주의가 출현하기 이전까지는 사회의 기본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었다. 원시 공동체 사회에서 개인은 홀로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자연 환경으로 인해서 집단으로 무리 지어 살면서 공동으로 생산하고 공동으로 분배하는 사회였다. 그리고 봉건 사회만 하더라도 사회적 생산의 기본 단위는 가족이었지 개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당시에는 사회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유와 권리를 확보하는가 하는 문제보다는 개인의 희생을 담보로 사회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관심거리였다. ''보다는 '우리'가 강조되었던 시대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공동체가 정의롭고 평등한 인간 관계로 구성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당시의 공동체는 계급적으로 분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공동체의 질서를 재생산해 내는 것은 거기에 속해 있는 모든 개인의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17세기가 되면 상품 생산이 진행되면서 개인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사회의 생산력이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종전의 장원 제도의 틀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부를 형성하는 개인들이 등장했던 것이다.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서 개인의 생활을 좀더 풍요롭게 영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흔히 신흥 자본가라 부르는 이들은 법적으로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이들은 봉건제에서 살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자율적인 개인이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상품 생산이 확대되면서 이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갔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자유주의 사상가들은 이들을 이성을 가진 존재, 그래서 스스로의 행위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천부적인 권리를 가진 존재로 파악하였다. 그러한 천부적인 권리 중의 하나가 자유로울 권리, 곧 자유권이었다. 이렇게 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전에 공동체의 유지를 위한 희생의 의무를 짊어지고 있었던 개인,  ''는 오히려 '우리'를 압도하게 되었다. 사회보다는 개인이, 공동체보다는 자아가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 시대의 잘못된 공동체 의식을 파괴하는 데 기여하였다.

 

하지만 ''의 강조는 곧 '' ''의 적대 관계를 낳았다. 개인의 자유, 특히 물질적인 재화의 소유 자유가 무한정 용인됨으로써, '' ''의 이익이 충돌할 때 갈등을 조정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오히려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저해하였다. 사회가 갈등 구조 속에 빠져 있는 한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도 그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상가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다시 조정하기 시작하였다. 인간에게 주체적 자유를 갈망하는 개인성과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를 필요로 하는 사회성이 공존하는 한 어느 한 측면을 억압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수정 자유주의 사상과 사회주의 사상이 출현하였다.

 

만약 우리가 개인성과 사회성, 혹은 자유에 대한 열망과 사회화의 필요성을 모순된 것으로 파악한다면 살아가면서 항상 무엇인가에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그 부족함은 자유에 대한 갈증일 수도 있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서 나타나는 소외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개인과 사회의 모순을 완화하는 것뿐이다. 적절히 개인의 자유를 양보하여 사회와 결합하면서, 동시에 적절히 사회와 거리를 두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개인성과 사회성의 조화

 

문제를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은 개인성과 사회성이 모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이 둘의 조화를 염두에 두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기초로 해서만 정의로운 사회의 건설이 가능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전제로 해서만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도외시한 '정의 사회 구현'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는 모든 전체주의 국가의 역사가 잘 증명해 준다. 우리 나라의 가까운 역사에서도 반공, 경제 개발, 국가의 안정 등이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의 기본권 행사를 제한하고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을 찬양한 학설은 폐기되고, 그것을 미화한 교과서는 다시 씌어지고 있다. 또한 사회 정의를 전제하지 않고 개인의 자유만을 추종하는 것의 폐단은 이미 수정되어 버린 초기 자본주의 역사가 잘 보여 준다.

 

개인성과 사회성은 관념이 아니라 실천 속에서만 조화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두 가지이다. 우선 우리가 추구하는 자유가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기여하는 것인가를 반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 자유의 의미를 파악하는 일이 필요하다. 자유를 단순히 모든 강제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자유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한 그러한 자유는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는 단순히 모든 강제와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당한 강제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또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이성적 자아가 원하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렇게 자유를 이해한다면 자유의 추구는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기여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의 구현을 방해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검토하는 일이다. 곧 우리 사회가 정의로운가를 반성하는 일이다. 사회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에게 가해지는 구속과 규범화가 이성적 자아의 눈으로 볼 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라면 그 사회에는 문제가 있는 셈이다. 이런 상태를 그대로 용인한다면 사회의 발전은 물론이고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도 기대할 수 없으며 필연적으로 개인과 사회는 갈등을 겪게 된다. 개인이 사회의 질서에 저항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갈등을 생산적인 것으로 전환시켜 보다 나은 사회를 건설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단순히 사회화가 일정하게 우리를 구속한다고 해서 무조건 사회와 갈등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한 구속은 사회적 존재로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며, 그것에 저항한다고 해서 발전된 무엇이 창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개인과 사회가 협동 관계를 갖는다면 그것은 스스로의 자유를 포기하는 일이다. 이러한 상태를 극복하고 개인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이 가능하도록 협동하는 일,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가장 바람직한 관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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