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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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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달 떠 온다 달 떠 온다 우리 마을에 달 떠 온다 강강술래

저 달이 장차 우연히 밝아 장부 간장 다 녹인다 강강술래

우리 세상이 얼마나 좋아 이렇게 모아 잔치하고 강강술래

강강술래 잘도 한다 인생일장은 춘몽이더라 강강술래

아니야 놀고 무엇을 할꼬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강강술래

늙고 병들면 못 노니라 놀고 놀자 놀아 보세 강강술래

이러다가 죽어지면 살은 녹아 녹수가 되고 강강술래

뼈는 삭아 진토가 되니 우리 모두 놀고 놀자 강강술래

어느 때의 하세월에 우리 시방에 다시 올래 강강술래

우리 육신이 있을 적에 춤도 추고 노래도 하고 강강술래

놀고 놀고 놀아 보자 질게 하면 듣기도 싫다 강강술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칭칭이도 고만하자 강강술래

요점 정리

작가 : 미상

연대 : 미상(조선 후기)

갈래 : 민요[집단가요, 유희요(遊戱謠), 선후창요(先後唱謠) ]

형식 : 4음보 연속체

성격 : 현세적, 낙천적, 집단적, 유흥적, 민중적(서민들이 중심이 된 노래)

사상 : 우리 민족의 현실적 유희관이 담겨 있음, 현세 중심적 인생관

구성 : 선후창의 연창 형식, 후렴구

표현 : 반복법, AABA구조, 청유형 어미가 많이 사용됨, 직설적인 표현으로 현재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놀이의 즐거움이 가중될수록 인생의 유한함과 덧없음이 강조되고 있다.

제재 : 달맞이, 유한한 인생

주제 : 현재적 즐거움을 강조, 젊었을 때 즐겁게 놀아 보자, 현세적 유희를 주창, 인생의 덧없음과 현재적 유희, 유한한 인생을 즐김, 인생은 유한하니 즐겁게 노닐며 살기를 원함

내용상 특징 : 우리 인생은 유한하므로 즐겁게 노닐면서 살자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현세적인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짧은 작품에 녹아져 표현되고 있다. 매우 현실적인 목적에서 불려졌던 이 노래는 현실적 목적이 사라지고 문학적 형상화가 중심이 되면서 내용상의 세련미를 획득하였다고 할 수 있으며, 서민들의 욕망이 꾸밈 없이 표출되고 있다.

운율적 특징 : 반복과 변조를 통해 노래를 전개하고 있는 이 작품에서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구절이 두 번 반복된 후 다른 구절이 한 번 나오고, 다시 처음에 반복된 구절이 한번 더 나오는aaba형식의 운율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운율은 우리 문학 작품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형식으로, 이러한 운율이 사용된 작품으로는 '청산별곡' , '해' 등의 현대시가 있다.

채집지 : 경상남도 거제

내용 연구

달 떠 온다 달 떠 온다 우리 마을에 달 떠 온다(AABA로 민요의 전형적 형식) 강강술래

저 달이 장차('앞으로'의 뜻으로 미래의 일을 말할 때 사용됨) 우연히(아무 까닭 없이) 밝아 장부(대장부, 사내) 간장(간장과 창자 여기서는 마음 속) 다 녹인다[저 달이 장차 우연히 밝아 : 정월 대보름이나 한가위처럼 꼭 밝아야 하는 날도 아닌데 달이 매우 밝게 빛난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노래하는 이들의 마음이 전이(轉移)되어 더욱 밝은 것처럼 보임, 만단정회(萬端情懷) : 온갖 정과 회포.)] 강강술래 - 달이 떠 기뻐하는 모습

 

우리 세상이 얼마나 좋아 이렇게 모아 잔치[집단적 축제라는 의미를 알 수 있음]하고 강강술래

강강술래 잘도 한다 인생일장[인생은 한바탕]은 춘몽이더라[인생일장은 춘몽이더라 : 말을 자수에 맞게 표현한 것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통해 강강술래라는 놀이를 즐기자는 것을 한층 강조하고 있음] 강강술래 - 세상의 기쁨과 인생의 덧없음

 

아니야 놀고 무엇을 할꼬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강강술래

늙고 병들면 못 노니라(죽음을 의미) 놀고 놀자 놀아 보세[현세적 유희관이 담겨 있고 향락적 자세가 보임] 강강술래 - 젊어서 놀자

 

이러다가 죽어지면 살은 녹아 녹수(綠水 : 푸른 물)가 되고 강강술래

뼈는 삭아 진토(塵土 : 먼지와 흙)가 되니 우리 모두 놀고 놀자[인생의 유한함을 표현한 말로 육신이 죽은 후에는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니, 저승으로 떠나기 전에 현세에서 즐기며 살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현실적 삶의 중요성을 말함] 강강술래 - 인생은 유한(有限)하다

 

어느 때의 하세월에 우리 시방[시방(時方) : 비슷한 말로 지금(只今), 금시(今時), 현재(現在); 막, 마악, 바야흐로]에 다시 올래 강강술래

우리 육신이 있을 적에 춤[집단적인 축제라는 것을 '잔치'와 '춤'을 통해서 알 수 있음]도 추고 노래도 하고[한 번 죽음을 맞이하면 지금의 시대로는 다시 올 수 없으므로 지금 이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 강강술래 - 현세(現世)에서의 삶을 강조

 

놀고 놀고 놀아 보자 질게 하면 듣기도 싫다[놀이의 후렴에 해당하는 '강강술래'를 길게 '강강수월래'로 늘려서 하면 놀이가 지루해져 듣기 싫어짐을 강조하는 말로, 세상을 빠르게 강하게 즐겨야 한다는 의식이 들어 있다.] 강강술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칭칭이도 고만하자['칭칭이'란 쾌지나 칭칭 나네로 여기서는 '강강술래'를 뜻하고 강강술래 놀이 중에 서로 엉키며 도는 과정으로, 놀이마저 지루해져 그만두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통해 인생무상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 강강술래 - 인생의 덧없음

선후창과 주제 전달 : 강강술래는 한 사람의 선창자와 여러 사람의 후창자가 서로 협동하면서 하나의 노래를 만들어 간다. 이 노래의 주제는 '젊음을 즐기자'로 볼 수 있는데, 그러한 주제가 일관되게 유지됨은 물론, 선후창을 반복할수록 점차적으로 심화된다. 이는 주제를 선창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달이 떠 온다. 달이 떠 온다. 우리 마을에 달이 떠 온다. 강강술래

저 달이 앞으로 점차 이유없이 밝아져 사나이의 가슴을 온통 녹인다. 강강술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가 이렇게 모여서 잔치하고 강강술래

강강술래 놀이를 잘도 한다.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과 같구나. 강강술래

아니 놀고 무엇을 할 것인가 놀아 보세 놀아 보세 젊어서 놀아 보세 강강술래

늙고 병들면 놀 수 없으니 놀고 놀아 보자 놀아 보세 강강술래

이러다가 죽어지면 살은 녹아 푸른 물이 되고 강강술래

뼈는 삭아 진토(塵土)가 되니 우리 모두 놀고 놀자 강강술래

어느 세월에 우리 이곳에 다시 올 터인가 강강술래

우리 몸이 있을 적에 춤도 추고 노래도 하면서 강강술래

놀고 놀고 놀아 보세 길게 하면 듣기도 싫다 강강술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칭칭 감는 것도 그만 하자 강강술래

1. '강강술래'를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aaba' 형식의 운율이 사용된 구절을 찾아보자.

이끌어주기 :

이 작품의 운율적 특징을 이해하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차원에서 설정한 활동이므로 '강강술래' 사설에 직접 표시를 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혹 'aaba'는 반복과 변화의 형식이라는 점을 설명해 주는 것도 필요하다.

예시답안 :

다음과 같은 두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달 떠온다 달 떠온다 우리 마을에 달 떠온다

a a b a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a a b a

(2) 조사, 발표 이 작품처럼 aaba 운율을 사용한 고전 시가와 현대시 작품을 한 편씩 찾아 발표해보자.

이끌어주기 :

aaba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구절이 두 번 반복된 후 다른 구절이 한 번 나오고, 다시 처음에 반복된 구절이 한 번 더 나오는 형식이라는 점을 이해한 후, 구체적인 작품을 통해 이를 확인하도록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aaba 형식이 우리의 어법에서도 자주 쓰인다는 점을 통해 이러한 형식이 우리의 보편적인 어법의 하나라는 점을 이해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도록 지도하는 활동이 요구된다.

학생들이 이미 학습한 작품 중에서 aaba 형식의 운율을 찾도록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전에 배운 작품에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 또한 그 작품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러한 운율이 우리의 언어생활과 어떤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함께 생각해 보도록 과제를 추가해서 제시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시답안 :

고전 시가 작품 중에는 고려 속요인 '청산별곡'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작품은 작은 aaba 형식이 다시 더 큰 aaba 형식에 포함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살어리(a)살어리랏다(a) 靑山(쳥산)애(b)살어리랏다(a). 멀위랑 다래랑 먹고

A A B

靑山(쳥산)애 살어리랏다.

A

그 외에도 '가시리'(가시리(a)/가시리잇고(a)/바리고(b)/가시리잇고(a)//날러는/엇디 살라 하고/바리고/가시리잇고)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일부 사설시조에서도 나타난다.(‘창(窓)내고쟈 창을 내고쟈,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쟈’,‘귀또리 져 귀또리 어여쁘다 져 귀또리’ 등).

현대시 작품 중에는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나는 왕이로소이다./나는 왕이로소이다./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박두진의 '해'(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고운 해야 솟아라.)등에서 발견된다.그런가 하면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서는 연 단위의 aaba 형식을 엿볼 수 있다. 즉 1,2,4연은 각 연의 종결 어미에서 보듯이 유사한 의미상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3연만이 이들 연과 다른 의미와 통사구조를 지니고 있다.

(3) 이 노래의 내용을 보면 달라지는 부분과 반복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래 방식의 특징과 장점에 대해 말해 보자.

이끌어주기 :

작품의 형식적 특징을 파악하고 이것을 통해 작품 창작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목적이 있다. 선창과 후창의 형식을 알고,이것이 작품을 계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특징임을 학생들 스스로 이해하도록 하고 구체적으로 적용해 보도록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예시답안

‘강강술래’는 한 사람이 선창(先唱)을 하면 모인 무리들이 ‘강강술래’라는 후렴구를 제창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노래부르기 방식은 집단적인 놀이를 할 때 통일성과 놀이의 정연성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러한 노래부르기 방식은 사설을 덧보태 내용을 늘여 표현하는 데에 유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강강술래’란 부분은 후렴구로 계속 반복하면 되므로, 선창에 해당하는 부분은 계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민요로는 ‘옹헤야’가 있다.

이해와 감상

강강술래는 정월 대보름날이나 팔월 한가위에 남부 지방에서 행하는 민속놀이로 여러 사람이 예쁜 한복을 입고, 함께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빙빙 돌면서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놀이로 중요 무형 문화재 제8호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순신(李舜臣)과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군에 비하여 아군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玉埋山) 허리를 빙빙 돌도록 했다.

바다에서 옥매산의 진영을 바라본 왜병은 이순신의 군사가 한없이 계속해서 행군하는 것으로 알고, 미리 겁을 먹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근처의 마을 부녀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추던 관행이 강강술래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강술래〉의 기원은 이순신의 창안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 있다.

한자로는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라고 표기하고,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해석은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원시시대의 부족이 달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유습(풍습)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대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달의 운행원리에 맞추어 자연의 흐름을 파악하였고, 따라서 우리 나라 세시풍속에서 보름달이 차지하는 위치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즉, 달이 가장 밝은 추석날이나 정월대보름날이면 고대인들은 축제를 벌여 춤과 노래를 즐겼고, 이것이 정형화되어 〈강강술래〉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전승된 〈강강술래〉를 이순신이 의병술(擬兵術)로 채택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널리 보급되고 더욱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후에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 그 부녀자들이 당시의 일을 기념하기 위해 연례 행사로 이 놀이를 하던 것이 민속 놀이로 퍼졌다고 한다. 일종의 군가가 유희요로 변화된 것으로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짧은 형식에 잘 녹아 있다고 볼 수 있다.

이해와 감상1

 

중요 무형 문화재 제8호로,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하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놀이이다. 강강술래를 할 때는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앞소리, 선창을 하면, 놀이를 하는 일동은 뒷소리, 합창으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춘다. 유래는 임진왜란 때, 당시 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사의 수가 많음을 보이기 위하여, 또 왜군이 우리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특히 전쟁 지역 부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 지대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강강술래'라는 말은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 :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에서 온 것이 아니고, 우리말에서 유래한다. '강강'의 '강'은 주위 또는 '원圓'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 '순라(巡邏)'에서 온 말로서 '경계하라'는 뜻이니,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생각된다. 싸움이 끝난 뒤 그곳 해안 부근의 부녀자들이 당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례 행사로서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이 여성 민속 놀이가 되었다.

심화 자료

메기고 받아 부르기

메기고 받아 부르기 방식(선후창 방식)은 앞소리꾼이 앞소리를 메기면 뒷소리꾼들이 후렴으로 뒷소리를 받는 형식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 민요는 앞소리꾼의 능력에 따라 사설의 길이나 변화가 결정된다. ‘강강술래’나 ‘맷돌노래’와 같이 노래를 부를 때, 선창하는 앞소리는 앞소리꾼의 사설 중복이 다양하지만 뒷소리꾼은 한 사람이고 뒷소리꾼은 여러 명이다.

메기고 받아 부르기는 노동요나 의식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에 많이 부르는데 ‘논매기 노래’ , ‘보리타작 소리’ , ‘달구질 소리’ 등이 그것이다. 또 집단놀이를 할 때 놀이꾼의 일정한 율동을 요구하면서 메기고 받아 부르면 전체가 질서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 앞소리꾼이 사설을 불러가면 뒷소리꾼은 다같이 ‘강강술래’나 ‘에이야라차’를 반복함으로써 놀이나 일의 효과적인 진행을 가능하게 한다. 앞소리꾼은 가창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기억력과 창작력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이를 민요사회에서 총기있는 창자라고 한다. 이 중에서 전문적인 쪽으로 이행한 사람은 그 고장 명창이라는 대접을 받는다.

메기고 받아 부르기 사설의 특징은 모든 행위를 동시에 이루어 무엇이 집중적으로 반복되도록 하여 효율성을 높이는 데 필요한 것이다. 노래 현장에서 전승자들은 이미 그 사설의 공감대를 가지고 가창하는 것이므로 고정된 노래 항목을 앞소리꾼이 재현도 하지만 즉흥적으로 창작할 수 잇고 뒷소리꾼은 누구나 길들여진 후렵을 동시에 반복한다. 앞소리 사설은 다양한 내용을 지니며 주변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고, 뒷소리 사설은 단순하고 고정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많다. (출처 :김선풍 외, ‘민속 문학이란 무엇인가’)

강강술래

전라남도 서남해안지방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주로 해남·완도·무안·진도 등 전라남도 해안일대에서 성행되어왔다. 노래와 무용과 놀이가 혼합된 부녀자들의 놀이로 주로 추석날밤에 행하여지며 정월대보름날밤에 하기도 한다. 명칭은 ‘강강수월래’ 또는 한자로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로 표기하는 일도 있으나 ‘강강술래’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진양조로 느리게 노래를 부를 때는 ‘강강수월래’로 길게 발음된다.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전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이순신(李舜臣)과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적군에 비하여 아군의 수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차림을 하게 하고, 옥매산(玉埋山) 허리를 빙빙 돌도록 했다.

바다에서 옥매산의 진영을 바라본 왜병은 이순신의 군사가 한없이 계속해서 행군하는 것으로 알고, 미리 겁을 먹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근처의 마을 부녀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추던 관행이 강강술래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강강술래〉의 기원은 이순신의 창안에서 비롯된다는 주장이 있다.

한자로는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라고 표기하고,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해석은 바로 여기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강강술래〉는 원시시대의 부족이 달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유습(풍습)에서 비롯된 민속놀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대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달의 운행원리에 맞추어 자연의 흐름을 파악하였고, 따라서 우리 나라 세시풍속에서 보름달이 차지하는 위치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즉, 달이 가장 밝은 추석날이나 정월대보름날이면 고대인들은 축제를 벌여 춤과 노래를 즐겼고, 이것이 정형화되어 〈강강술래〉로 전승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전승된 〈강강술래〉를 이순신이 의병술(擬兵術)로 채택하여 승리를 거둠으로써 널리 보급되고 더욱 큰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놀이의 진행과정 및 방법은 다음과 같다. 추석이 가까워지면 소녀들에 의하여 〈강강술래〉가 시작된다. 이른바 ‘아기 강강술래’이다. 소녀들이 수명 또는 10여명이 모여 손과 손을 잡고 마당에 원을 그리면서 빙빙 돌며 노래하고 춤을 춘다.

이렇게 며칠을 계속하다가 음력 8월 14일 밤이나 15일 밤에는 어른들에 의해 본격적인 〈강강술래〉가 벌어진다. 동쪽 산 위에 만월이 솟아오르기 시작하면 젊은 아낙네와 큰애기들이 마을의 넓은 마당이나 평지에 모여든다. 20∼30명의 젊은 부녀자들이 모이고 달이 뜨면 아낙네들은 손과 손을 잡고 오른쪽으로 돌면서 〈강강술래〉를 시작한다.

목청 좋고 소리 잘 하는 여인이 맨 앞에 서서 메기는 소리를 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강강술래” 하고 받는 소리를 한다. 노래는 처음에는 진양조의 느린 가락으로 부르다가 중모리·중중모리로 차츰 빨라져서 마지막에는 자진모리로 매우 빠르게 부르며, 이에 따라 춤도 빠른 속도로 추게 된다. 한바탕 뛰고 노는 시간은 일정하지 않고, 맨 앞에서 노래를 선창하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길 수도 짧을 수도 있다.

‘강강술래’ 소리는 구절마다의 후렴이며, 가사는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가창자에 따라 즉흥적으로 얼마든지 길게도 짧게도 부를 수가 있으며, 가락 또한 완급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시집살이노래〉나 〈베틀가〉가 중간 중간에 삽입될 수도 있고, 타령이나 노랫가락의 구절이 삽입되는 수도 있다. 가락은 육자배기와 마찬가지로 미·라·시·도·레의 전형적인 남도악의 계면조로 되어 있다.

○진양조

(선창) (후렴)

술래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술래좋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떠온다 달떠온다 강강술래

동해동창 달떠온다 강강술래

팔월이라 한가위날 강강술래

술래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각시님네 놀음이라 강강술래

(중략)

○중모리·중중모리

오동추야 달은밝고 강강술래

우리임생각 절로난다 강강술래

임아임아 노이나마라 강강술래

너줄라고 해온보신 강강술래

너안주고 누구를줄까 강강술래

(중략)

○자진모리

술래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좋다 술래돈다 강강술래

앞에가는 군사들아 강강술래

발맞춰서 뛰어가세 강강술래

곁에사람 보기좋게 강강술래

먼데사람 듣기좋게 강강술래

억신억신 뛰어가세 강강술래

(하략)

〈강강술래〉의 춤은 우리 나라 춤 가운데서 유일하게 손을 잡고 추는 집단무용으로 원무(圓舞)를 기본으로 하고, 중간에 여러 놀이가 삽입된다. 왼손을 앞으로 하고 오른손을 뒤로 돌린 자세에서 왼손으로 앞사람의 오른손을 잡고, 오른손으로 뒷사람의 왼손을 잡아 원형을 만든다. 잡을 때는 손가락을 오므려서 상대방의 손가락과 얽어 쥐게 된다.

선창자의 노래에 맞추어 서서히 발을 옮겨 원을 그리면서 왼쪽으로 돈다. 처음에는 진양조로 느린 가락에서 시작하는데, 이를 ‘늦은강강술래’, 또는 ‘긴강강술래’라고 한다. 그러다가 중모리·중중모리장단의 ‘중강강술래’에서는 보통 걸음보다 약간 느린 걸음으로 돌다가 가락이 차츰 빨라지면서 가볍게 어깨놀림이 시작되고, 손의 잡음도 넓어지면서 원이 넓게 벌어진다.

자진모리장단의 ‘자진강강술래’에서는 가락이 급해지며 춤도 여기에 맞추어 빨라진다. 발디딤은 ‘하나’에 왼발 무릎을 굽혀 올리면서 원주 상으로 양발을 뛰고, ‘둘’에는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교차하여 힘차게 왼발로 마당을 밟는다. 이러한 동작을 반복하면서 원주 상을 돌아가다가 속도가 아주 빨라지는 마지막에는 손을 힘차게 흔들면서 1박에 두발을 연달아 뛰면서 돈다.

그래서 아낙네들은 ‘한바탕 뛰자.’고 한다. 이렇게 원무를 추다가 흥이 나면 중간에 다른 놀이들이 삽입된다. 예컨대 〈남생이놀이〉·〈멍석말이〉·〈고사리꺾기〉·〈청어엮기〉·〈문열기〉·〈기와밟기〉·〈쥔쥐새끼놀이〉·〈가마등〉·〈도굿대당기기〉·〈수건찾기〉·〈품고동〉·〈봉사놀이〉 등이 잇달아 놀이를 한층 즐겁게 만든다.

〈남생이놀이〉는 원무의 원 안에 두세 사람이 자유롭게 뛰어들어 가락에 맞추어 손을 위로 들거나 춤추면서 뛰어다니다가 제자리로 들어가면, 다음에 다른 사람이 뛰어들어 같은 모양의 춤을 추게 되는 것을 말한다. 〈멍석말이〉는 마치 멍석을 말듯이 맨 앞의 선두가 작은 원으로 춤 형태를 바꾸고 모두 한 덩어리가 되면, 속에서부터 풀며 나오는 춤이다.

〈고사리꺾기〉는 춤추는 사람들이 모두 앉고 맨 앞의 선두가 일행을 끌고 앉은 사람의 팔 위로 차례로 넘어가서 모두 일어서는 동작이며, 〈청어엮기〉는 어깨 밑으로 빠져나가는 동작, 〈문열기〉는 모두 허리를 굽혀서 앞사람의 허리를 두 팔로 끌어안고 두 사람이 팔을 들고 만든 문 밑으로 빠져나가는 동작이다. 〈쥔쥐새끼놀이〉는 꼬리따기놀이와 같은 동작으로 상대방의 꼬리를 잡으려고 한다.

〈가마등〉은 가마타기놀이의 모의희(模擬戱)로 두 사람이 손을 잡아 井자형으로 가마모양을 만들어 그 위에 한 사람을 태우고 마당을 돌아다닌다. 이 놀이는 편을 갈라 일정한 거리까지 갔다오는 경주를 벌이기도 한다.

이와 같은 놀이들에는 동요풍의 노래가 삽입되어 불려진다. 〈강강술래〉에 이처럼 여러 유희가 혼합되는 것은, 1년에 한 번 맞이하는 만월의 명절에 흥겨운 판이 벌어져 여러 놀이가 한 마당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놀이나 노래에 일정한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고, 이끌어 가는 사람에 의하여 얼마든지 신축성 있게 놀이가 진행될 수 있다. 또한, 한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초저녁부터 시작하여 밤이 깊도록 놀기 때문에 선창자도 교체되고 이에 따라 놀이도 다양하게 전개될 수 있다.

196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 계승되고 있다. 예능보유자로 창(唱)에 양홍도(梁紅道)와 김길임(金吉任)이 인정되었는데, 이 중 양홍도가 사망한 뒤에 최소심(崔小心)이 인정되었으나 사망하였고, 그 뒤 1993년 박용순(朴龍順)이 인정되었다.

≪참고문헌≫ 韓國民俗學論攷(任東權, 集文堂, 1971), 韓國民俗大觀 4-歲時風俗·傳承놀이-(高麗大學校民族文化硏究所, 1982), 重要無形文化財解說-놀이와 儀式篇-(文化財管理局, 1986).

필자 : 任東權(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강강술래

 

호남·영남 중에서 특히 전라남도 해안 일대에서 성행되는 <춤노래(무용가)>의 하나. 달이 휘영청 밝은 정월 대보름날이나 8월 한가윗날에 마을 부녀자들 여럿이 모여, 서로 손을 잡고 원형으로 둘러서서 강강술래의 노랫말을 되풀이하며, 떼춤[群舞]을 추며 돌아간다. 처음에는 중중모리장단으로 슬슬 나가다가 나중에는 자진굿거리의 빠른 속도로 춤과 노래가 바뀐다.

이 민속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3가지 설이 있는데, 먼저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적군에게 위세를 보이고 적군이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곳곳에 불을 놓고 이 춤을 추게 했다는 설로서 목포·남해도를 발생지로 본다. <강강>을 <강강(江江)>이라 보고 또 <강>은 주위, 원(圓)이라는 호남 지방의 방언이다. 둘째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심을 통일해야 한다는 목적에서 이 노래를 지어 부녀자들로 하여금 부르게 했다는 설이 있으며 역시 목포와 남해도를 발생지로 본다. 세번째는, 고려시대에 진주의 어느 산골의 농부 김수월이 진주 목사에게 사랑하는 아내 세루홰[沙里花]를 빼앗겨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자살했는데, 그의 원혼(寃魂)을 위로하기 위한 굿에서 발생했다는 설로서, 진주를 발생지로 본다.

<술래>는 <순라(巡邏)>라는 말로서 경계라는 뜻의 군호라고도 하고, 또 <강강>이 굿할 때의 징소리인 <꽝꽝>에의 변음이며, <수월래>는 <수월>의 변음이라고 한다. 강강술래가 강강수월래로 기록되어 온 것은 이 곡이 가락을 길게 빼어 부를 때 진양조가 되므로, <술래>가 <수월래>로 들린 것이라는 설이 이론적으로 타당하다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설은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고,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지어붙이는 수도 있다. 그 기본형은 다음과 같다.

1. 산아 산아 추영산아 <후렴> 강강술래(수월래)/2. 높이 떴다 백두산아/3. 잎이 피면 청산이오/4. 꽃이 피면 화산(花山)이요/5. 청산, 화산 넘어가면 우리 부모 보련마는/6. 남의 부모 명자씨는 책장마다 실렸는고/7. 해는 지고 달 떠온다/8. 하늘에는 베틀놓고/9. 구름잡아 잉어(잉아) 걸고/10. 달은 잡아 북 만들고/11. 별은 잡아 무늬 놓고/l2. 째깍째깍 잘도 짠다/13. 그 베 짜서 무엇하나/14. 우리 오빠 장가갈제/15. 가마 휘장 두를라네/16. 하늘에는 별이 총총/17. 대밭에는 대가총총. 원무 외에 고사리꺾기·기와밟기·쥐잡기놀이 등도 한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8 호. 정종수(출처 : 파스칼세계대백과사전)

강강술래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놀이이다. 강강술래를 할 때는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앞소리[先唱]를 부르면, 놀이를 하는 일동은 뒷소리[合唱]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춘다. 유래는 임진왜란 때, 당시 수군통제사(水軍統制使)인 이순신(李舜臣)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세의 많음을 보이기 위하여, 또 왜군이 우리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특히 전지(戰地) 부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지대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싸움이 끝난 뒤 그곳 해안 부근의 부녀자들이 당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례 행사로서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이 전라도 일대에 퍼져 전라도 지방 특유의 여성 민속놀이가 되었다.

‘강강술래’라는 말은 한자의 ‘强羌水越來’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말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강강’의 ‘강’은 주위 ·원(圓)이란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로 된 ‘巡邏(순라)’에서 온 말로서 ‘경계하라’는 뜻이니, 이는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주위의 뜻인 ‘강’이 둘 겹친 것은 특히 주위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술래’가 ‘수월래’로 들리며, 그렇게 기록되기 쉬운 것은, 진양조(晋陽調 또는 진양)로 길게 뽑을 때 ‘수월래’로 들리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그러므로 표기는 ‘강강술래’라고 하는 것이 옳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강강술래

영남·호남 해안지방과 도서지방에 널리 분포된 민속놀이 또는 민요.

강강수월래라고도 한다. 196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목포·무안·해남·영광·장흥·순천·화순 등 해안일대와 완도·진도와 같은 섬에서 성행하였다. 정월 대보름, 8월 한가위와 같은 연중행사 때, 달 밝은 밤 부녀자들이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춤과 노래를 함께 하는 강강술래는 소리춤의 하나로 원무형태(圓舞形態)의 춤이다. 세시풍속과 관련된 점으로 미루어 그 발생을 조선시대로 짐작할 수 있다. 유래에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강강수월래(江江水越來)라 하여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군사놀이로 창안했다고도 하고, 마한 때부터 전승된 가장 오래된 민속춤의 하나라고도 한다. 또한 달을 맞이하고 추수를 감사하는 의식에서 나왔다고도 하며, 한자어로 의미를 붙여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는 뜻에서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는 이야기도 있다.

강강술래는 흥(興)과 사기(士氣)를 돋우는 춤으로, 춤이 끝나면 휴식을 취하고 여흥으로 다른 소리춤과 놀이 등을 즐긴다. 놀이의 종류는 지방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전라남도 해남군 문내면 좌수영 일대에 전승·연희되는 놀이로는 늦은 강강술래, 중강강술래, 자진강강술래, 남생아 놀아라(남생이놀이), 고사리꺾자(고사리꺽기), 청어엮자(청어엮기), 청어풀자(청어풀기), 기와밟기, 문열어라, 덕석몰이, 덕석풀기, 쥔쥐새끼놀이, 가마등, 도굿대당기기, 수건찾기, 품고동, 봉사놀이 등이 있다. 이같은 여흥놀이에는 담넘기·덕석몰이·고사리꺾자·여물썰기·기와밟기와 같은 농경모의(農耕模擬)의 춤과 남생아 놀아라, 바늘귀 끼기와 같은 성모의(性模擬)의 춤, 청어엮자와 같은 풍어모의(豊漁模擬)의 춤이 있다. 문지기놀이·쥔쥐새끼놀이 등의 군사놀이와 노르시름·행기돌기·콩동방동과 같은 체력단련놀이를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강강술래를 비롯해 여흥놀이로서 소리춤과 놀이를 하면서 밤새도록 논다.

강강술래의 편성은 선도자(先導者)의 앞소리와 춤꾼들의 받는 소리가 융합된 응답식 소리로 연희하거나, 돌림소리꾼의 앞소리와 춤꾼들의 받는 소리로 연희하는 수가 있으며 구성은 원무(圓舞)나 나선무(螺旋舞)로 진행된다. 이밖의 소리품이나 놀이는 원형을 비롯하여 1렬행렬형(一列行列型)·2열대립형·개인놀이형이 있다. 강강술래는 가사의 내용에 따라 그 춤의 성격이 규정된다. 강강술래가 남성 유혹, 여성의 한(恨), 달과의 대화, 풍자, 효도사상, 인정 등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핵심은 달에 대한 동경에 있다. 율동적인 면에서는 활달하고 전투적이며, 또 한편으로는 다양한 모의적 성격을 띠고 있다.

강강술래는 떠는 목, 평으로 내리는 목, 꺾는 목의 3음음계로 이루어진 계면조이다. 이 놀이는 진양조로 하는〈느린(늦은) 강강술래소리〉 또는〈진강강술래〉에 맞추어 원을 그리며 손을 잡고 돈다. 이때 진양조 선소리(진도지방에서는 설소리라 함)로 매기고 '강강술래'라고 받는 소리를 한다. 중모리조로〈중강강술래소리〉를 하면서 손과 발을 맞추어 원을 그리며 걸어간다. 이어서 자진모리조로〈자진강강술래소리〉를 부르면서 손과 발을 힘차게 구르며 뛰고, 원을 그리며 돌아간다. 이 가운데〈중강강술래〉는 진도지방에서만 전승되고 있다.

참고문헌

 

중요무형문화재 지정자료 - 강강술래 : 임동권, 연세대학교 도서관, 1965

강강술래 : 김창호, 과학출판사, 1955

강강술래소고 〈한국민요학〉 1 : 박순호, 한국민요학회, 1991. 5

노래와 놀이 - 강강수월래 〈전통문화〉 134 : 김원석, 1983

강강수월래의 유래와 어원에 대하여 〈전라문화연구〉 창간호 : 박순호, 전라향토문화연구회, 1979

강강술레 〈문화재〉 2 : 임동권,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66

강강술레고 〈제주도〉 21 : 임동권, 제주도청, 1965

강강술레민속고 〈학술계〉 1 : 최상수, 1958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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