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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군은(感君恩)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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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군은(感君恩)

사해 바다의 깊이는 닻줄로 잴 수 있겠지만

임금님의 은덕은 어떤 줄로 잴 수 있겠습니까?

끝없는 복을 누리시며 만수무강하십시오.

끝없는 복을 누리시며 만수무강하십시오.

밝은 달빛 아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태산이 높다고 하지만 하늘의 해에 미치지 못하듯이

임금님의 높으신 은덕은 그 하늘과 같이 높으십니다.

밝은 달빛 아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아무리 넓은 바다라고 할지라도 배를 타면 건널 수 있겠지만

임금님의 넓으신 은택은 한평생을 다한들 갚을 수 있겠습니까?

밝은 달빛 아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일편단심뿐이라는 것을 하늘이시여 아소서.

백골이 가루가 된다한들 단심이야 변할 수 있겠습니까?

밝은 달빛 아래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며 지내는 것도 역시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요점 정리

작자 : 상진(尙震)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정도전' 혹은 '하윤'으로 보는 견해도 있음

갈래 : 악장

연대 : 명종 때

형식 : 4장으로 분연된 속요체 악장

성격 : 교술적, 예찬적, 목적적, 송축가

표현 : 임금의 은덕을 극단적인 대상과 비교하여 과장적으로 찬미

주제 : 임금의 은덕과 송축

출전 ; 악장가사

 

내용 연구

이해와 감상

전 4장으로 된 속요체 악장으로 군왕의 성덕이 끝이 없음을 칭송하는 내용의 노래이다. 형식적으로 볼 때, 분절체로 되어 있다거나 후렴구가 있는 점 등은 고려 속요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노래는 작품 속의 비유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상투적이며, 필요 이상으로 과장법이 구사되고 있을 뿐 아니라, 문학적인 긴장이 결여되어 있는 등 문학성이 높은 작품으로 보기 힘든 요인이 많으며, 무엇보다도 내용에 있어서 독창성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정형적이고, 상투적이다. 또한 귀족적 문학의 한계 때문에 얼마지나지 않아서 사라져 버렸다. 각 연의 끝에 보이는‘亦君恩(역군은)이샷다’는 맹사성의 <강호사시가>와 송순의 < 면앙정가>, 신흠, 조존성의 시조 등에도 나타나는 구절이다. 그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 몸이 칩지 아니해옴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맹사성의 < 강호사시가>중에서

이 몸이 이렁굼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송순의 <면앙정가>중에서

백 년을 이리 지냄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신흠의 시조에서

무어라 聖世躬경(성세 궁경)도 亦君恩(역군은)이샷다.

- 조존성의 시조에서

심화 자료

상진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 기부(起夫). 호 송현(松峴)·범허재(泛虛齋)·향일당(嚮日堂). 시호 성안(成安). 1519년(중종 14) 별시문과(別試文科)에 급제, 1544년 중종이 죽자 춘추관지사(春秋館知事)로 《중종실록(中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그 후 1558년 영의정이 되었다. 1563년(명종 18) 치사(致仕)를 청했으나 불허되고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로 전임된 뒤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으며 궤장을 하사받았다.

감군은

조선 초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악장(樂章). 왕에 대한 송축가(頌祝歌)이며 향악의 곡명이기도 하다. ≪악장가사≫와 ≪고금가곡≫에 가사가 전한다. 지은이와 지은 때는 전하지 않는다. 지은이를 상진(尙震)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상진은 1493년(성종 24)에 나서 1564년(명종 19)에 죽은 사람이다.

이 작품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24년 2월 기록에 “왕께서 관습도감에게 전지를 내리되 이후 조정에서 사신(使臣)의 위안 잔치 때나 정재(呈才)가 없는 행주(行酒) 때에 〈낙양춘 洛陽春〉·〈환궁악 還宮樂〉·〈감군은〉·〈만전춘 滿殿春〉·〈납씨가 納氏歌〉 등의 노래를 섞어 주악하라.”는 말 중에 〈감군은〉이 보인다. 세종 24년은 상진이 태어나기 전이다.

따라서 조선왕조실록 명종 19년 윤2월 기록의 “상진이 임종 때 자제들에게 말하되 내가 죽거든 비를 세우지 말고 다만 단갈(短碣 : 무덤 앞에 세우는 작고 둥근 비석)에 ‘공은 늦게 거문고를 배워 항상, 감군은 한 곡만 탔을 따름이다.’ 라고 새겨라.”라는 말 속에는 자신이 〈감군은〉을 지었기 때문에 그 노래만 항시 불렀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지는 않다.

또한 지은이를 정도전(鄭道傳), 또는 하륜(河崙)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하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가사는 모두 4절이고 각 절은 5행이다. 각 절에 공통적으로 붙은 후렴은 다음의 3행이다.

향복무강(享福無疆)悧샤 만셰(萬歲)肩 누리쇼셔

향복무강(享福無疆)悧샤 만셰(萬歲)肩 누리쇼셔

일간명월(一竿明月)이 역군은(亦君恩)이샷다

후렴을 제외한 원 가사는 4구체로 볼 수도 있고, 또 큰 2구로 볼 수도 있다. 내용은 1·2절은 왕의 덕택이 바다와 같이 깊고 태산과 같이 높다는 것, 3절은 왕의 은택을 다 갚을 수가 없다는 것, 4절은 일편단심으로 충성을 다하겠다는 것이며, 후렴은 만세 동안이나 복을 누리라는 축원으로 되어 있다.

이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 악보는 ≪대악후보 大樂後譜≫(권5·6)·≪금합자보 琴合字譜≫·≪양금신보 梁琴新譜≫·≪백운암금보 白雲庵琴譜≫이다. 〈감군은〉이 실려 있는 고악보(古樂譜) 중에서 ≪금합자보≫와 ≪양금신보≫는 합자보(合字譜)로 되어 있어 현보(絃譜)에 속함을 알 수 있다.

특히, ≪대악후보≫(권6)·≪양금신보≫·≪금합자보≫에 실려 있는 〈감군은〉에는 ‘개청(皆靑)’이 나올 뿐만 아니라 요성(搖聲)이 쓰인 점으로 보아 현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악후보≫ 권5의 〈감군은〉은 요성이 전혀 없고 종지형이 권6의 〈감군은〉에 비하여 고형(古形)이고 장구장단이 나타나 있지 않는다.

그러나 권6의 〈감군은〉은 간음(間音)이 첨가되어 있고 요성이 출현하며 변형된 종지형을 가지고 있고 장구장단이 나타나 있다. 이와 같은 점에서 ≪대악후보≫ 권5의 〈감군은〉이 같은 책 권6의 〈감군은〉보다 오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世宗實錄, 明宗實錄, 增補文獻備考, 大樂後譜, 琴合字譜, 梁琴新譜, 白雲庵琴譜, 感君恩攷(김성언, 한국고전시가작품론, 集文堂, 1992).(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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