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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프로스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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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않은 길 / 프로스트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피천득 옮김

 

가지 않은 길

 

노랗게 물든 숲 속 두 갈래 길을

다 가 보지 못할 일이 서운하여서,

풀섶 속에 길이 구부러지는,

눈 닿는 데까지 오래오래

우두커니 선 채로 바라보았네.

 

그리곤 나는 갔네, 똑같이 좋고,

사람이 밟지 않고 풀이 우거져

더 나을지도 모르는 다른 길을,

사람이 별로 다니쟎기론

두 길은 실상 거의 같았네.

 

그리고 두 길은 다 그날 아침

밟히쟎은 가랑잎에 덮혀 있었네.

아 첫째 길은 훗날 가리고 하고!

길은 길로 이어짐을 알았기에

돌아오진 못하리라 생각했건만.

 

세월이 오래오래 지난 뒤에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리.

두 길이 숲 속에 갈라져 있어

사람이 덜 다닌 길을 갔더니

그 때문에 이렇게도 달라졌다고.

 

김종길 옮김


 

걸어 보지 못한 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잣나무 숲 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을

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나은 듯도 했지요.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사람이 밟은 흔적은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두 길은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아, 먼저 길은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두 갈래 길이 숲 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정현종 옮김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

한 사람의 나그네라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 걸은 자취가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을 걸음으로 해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그 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 적어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 묻혀 있었습니다.

아, 나는 뒷날을 위해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다른 길에 이어져 끝이 없었으므로

내가 다시 여기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갈라져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것으로 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라고.

- 천승걸 옮김-


The Road Not Taken

 

Two ro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uth;

 

Then took the other, as just as fair,

And having perhaps the better claim,

Because it was grassy and wanted wear;

Though as for that the passing there

Had worn them really about the same,

 

And both that morning eqully lay

In leaves no step had trodden black.

Oh, I kept the first for another day!

Yet knowing how way leads on to way,

I doubted if I should ever come back.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h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

I took the one less travel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요점 정리

작자 :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피천득 옮김

갈래 : 자유시. 서정시

율격 : 내재율

성격 : 관조적. 상징적, 사색적, 교훈적

어조 : 독백조의 담담한 어조

심상 : 시각적

구성 :

1연 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 안타까움 - 당황과 아쉬움

2연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선택함 - 결단

3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 진행

4연 선택한 길로 인해 운명이 결정되었음 - 회상

제재 : 길

주제 : 선택하지 못한 인생의 행로에 대한 아쉬움, 선택으로 인해 달라지는 인간의 운명, 선택한 길에 대한 자부심과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의의 : 인생에서 마주치는 선택의 문제와 선택하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평이하게 표현하였다.

특징 : 서술적(화자가 문장의 내용을 객관적으로 진술하는 문장. 평서형 어미로 문장을 끝맺는데 '하얀 눈이 왔다' 따위이다.)인 표현으로 담담한 어조로 인생과 존재에 대한 내면 심리를 철학적으로 사색하였고, 구체적인 사물인 길에 관념적 의미를 부여하여 시상을 전개함.

출전 : <프로스트 시집>

내용 연구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생의 갈림길, 선택의 기로와 순간]로 났었습니다.(삶의 과정은 흔히 '길'에 비유되고, 길을 걸을 때 선택이 필요하듯, 인생도 항상 선택으로 이어진다는 뜻으로, '길'은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사람은 누구나 자기 앞에 두 가지 이상의 길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길'은 '자연의 길'과 '인간의 운명'을 상징하는 중의적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시적 화자의 선택의 갈등, 인간의 운명적 한계가 담겨 있는 말로 인간은 자신의 인생길에서 하나만 선택해야 하기 때문에 선택하지 못하는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을 경험하게 된다. 갈 수 없는 다른 길에 대한 호기심과 망설임이 담겨져 있는 구절)

오랫동안 서서[호기심과 망설임 때문에]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미래에 대한 호기심 및 신중한 선택을 위한 고민](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과 호기심이 담겨 있는 표현으로 가지 못하는 길을 알 수 있는 데까지 살펴 본다는 것으로 가지 못하는 길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망설임의 표현의 심리라는 점에서 이 시를 읽는 독자들에게 충분한 공감을 준다. ) - 한 길을 선택해야 하는 안타까움 - 당황과 아쉬움

 

그리고, 똑같이[어느 인생이나 가치가 있다는 의식이 깔림] 아름다운 다른 길(여기서의 길은 삶의 길, 인생을 상징)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선택의 이유로 시적 화자의 성격이 의지적이고 적극적임이 드러남]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시적 화자의 선택의 의지가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 선택이 외적인 강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 길[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지금은 아무도 가지 않아 풀이 우거졌지만, 나와 다른 사람들이 그 길을 가게 됨으로써 그 길도 다른 길과 같이 될 것입니다. 어느 길을 선택하든 한번 가기로 작정한 인생의 길이라면 최선을 다해 주어진 길을 성실하게 가라는 교훈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 -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선택함 - 결단

 

그 날 아침 두 길[인생의 갈림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타인의 길 즉, 평탄하고 평이한 길을 따라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시인의 자부심과도 통한다. 또는 선택의 순간에 아무런 외적 영향력도 작용하지 않았다는 뜻.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가 적어서 한길을 선택하였지만, 가지 않은 길에도 그와 같이 느껴지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향수를 나타낸 것이다.)

 

- 이 부분에서 다른 번역본을 보면 '낙엽을 밟은 자취 적어(길의 정체와 도달점을 알 수 없음) / 아무에게도 더럽혀지지 않은 채'(미래의 인생이기에) -

 

아,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시적 화자는 지금 선택하지 않은 나머지 길도 언젠가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았으나, 실제로는 그럴 수 없을 것이라 점을 깨닫고 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사람의 삶에는 항시 어떤 선택이 끊임없이 놓여지고 그 길은 끝없이 펼져진다는 뜻. 길이 연달아 이어짐을 말한다.)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하나의 선택은 다른 하나의 포기를 의미한다. 흔히 우리는 선택의 순간에 뒷날 다시 선택하지 않을 일을 하게 되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의 선택이 어떤 인생을 결과지을 것인지 알 수 없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길은 결국 다른 길과 끊임없이 이어져서 그 끝을 볼 수 없고, 그러다가 다시금 가지 않은 길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없었던 것으로 하여 인생을 되돌릴 수는 없다는뜻. 한번 걸은 길, 한번 선택한 길은 되돌아 올 수가 없음을 의미한다.) -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 - 진행

 

훗날에 훗날에(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나이에)나는 어디선가

한숨[아쉬움과 미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누구나 자신이 선택한 길을 되돌아보면 자기가 걸어온 길을 후회하며 이야기할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함에 대한 자각이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역정을 회고하는 자세로, 그 길이 가치가 있었던지 없었던지 누구나 자기의 살아온 운명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고하게 되는 것이다. 또는 시적 화자가 후회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음을 깨닫고 달관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적 화자는 지금 그 선택을 돌이킬 생각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금 그와 같은 한숨을 쉬고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선택이나 결정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다. 삶에 대한 겸허한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미개척 분야, 평범하지 않은 인생, 새로운 인생을 의미하는 말로 시적 화자는 평이하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뜻으로 시인의 자부심이 담겨 있음)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삶에는 모든 인과응보인 이유가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표현으로 어떤 한 길을 선택함에 따라 운명과 삶이 모두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함). - 선택한 길로 인해 운명이 결정되었음 - 회상

(1) 작품 선정의 취지

이 작품 역시 앞의 두 작품과 같이 시어의 함축적 의미와 표현 방법을 공부하도록 구성되었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함축적 시어에 대해 한층 심화된 학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 작품은 시어의 상징성에 초점을 맞추어 구성되었다. 작품의 중심 소재가 일상적인 의미에서 출발하여 추상적 의미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어의 상징성을 공부하기에 매우 유용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2) 지도의 핵심

이 작품에서는 '길'의 상징적 의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소재인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은 운명 앞에 나타난 두 갈래의 인생 행로와 상호 관계를 지으며 펼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교사는 학생들이 시의 상황과 화자의 태도나 심리 등을 통해 '길'의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3) 작품 연구

프로스트는 미국 뉴잉글랜드의 버몬트 농장에서 청경우독(請耕雨讀 : 날이 개면 논밭을 갈고 비가 오면 글을 읽는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일하며 공부함을 이르는 말로 유사어에 '주경야독'이 있음.)의 생활을 오래 하였다. 그 경험을 살려 후에 이 지방의 소박한 농민과 자연을 노래함으로써 현대 미국 시인 중에서 가장 순수한 고전적 시인으로 꼽힌다. 이 시는 그러한 자연 생활을 토대로 삶에 대한 통찰을 보인 작품이다.

배경이 되는 숲을 소박한 표현으로 제시한 서두로 시작하여 마지막 부분의 날카롭고 비판적인 인생 고백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어조로 반성적 사색의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길'이 인생을 함축한다고 볼 때, '길'은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을 제약하는 여러 문제들과 그에 대처하면서 겪는 시련과 좌절, 고뇌와 꿈, 그리고 희망의 엇갈림 등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길'을 단순히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이분법적 문제로 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깊은 회의(懷疑)와 겸허한 자세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를 포착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불완전하므로 자신의 결론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교과서에 수록된 번역시는 이러한 시인의 묘한 심리 상태를 잘 살리고 있으며, 특히 인간의 보편적 갈등을 평이한 일상어를 통해 간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더불어 문장을 분명하게 종결하지 않음으로써 시인이 제시하고자 한 삶의 문제에 대해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친해지기

1) 한 번의 선택에 의해 운명이 바뀐 예를 찾아보자.

꼼꼼히 읽기

이 시는 숲에 난 실제의 길을 통하여 인생에서 걸어온 길을 성찰하는 작품이다. '갈림길'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원숙한 안목으로 관찰하여, '선택의 기로 - 선택 - 아쉬움'의 연속인 인간의 보편적 갈등 양상을 평이한 시어로 간명하게 표현하였다. '가지 않는 길'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간직하면서도 운명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삶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지도방법 : 시적 상황을 이해시키기 위한 사전 활동이다. 자신 또는 자신의 주변에서 있었던 일이나 책, 신문, 방송 등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일게 된 경우를 발표하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의적인 선택의 경우를 예로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든지 하는 경우는 이 시의 상황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예시답안 :

"저는 세조 때의 사육신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그들은 단종이냐 수양대군이냐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섰었지만 결국 단종을 택하고 단종의 복위를 위해 노력하다가 발각되어 처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수양대군을 택했더라면 살아 남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 영화를 누렸을지도 모릅니다. 개인의 운명은 비참하게 끝났을지라도 역사는 사육신의 그런 행위를 칭송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되리라 생각합니다."

꼼꼼히 읽기

1)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시적 화자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는 부분을 지적해 보자.

지도방법 : 시적 상황을 이해하고 시적 화자의 심리 상태까지 파악해 보는 활동이다. 먼저 시적 상황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시적 화자는 어떤 심리 상태일까를 추리해 보게 한 뒤 그러한 상황이 드러난 부분을 찾도록 한다.

풀이 :

1연에서 두 갈래의 길이 시적 화자의 앞에 놓여 있고, 시적 화자는 두 길을 모두 갈 수 없어서 안타깝다고 했다. 따라서 '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한 사람의 나그네라'라는 부분에 시적 화자의 심리적 갈등이 잘 나타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 길이 ∼ 멀리 보았습니다

2) 이 시의 시적 화자가 선택한 '사람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의 의미를 설명해 보자.

지도 방법 : 현실의 상황을 적용하여 시적 의미를 파악해 보는 활동이다. 특히 이 시는 인생의 문제로 확대 적용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도록 한다. 즉, 인생의 행로(行路)나 좀더 좁게는 학문의 분야와 관련시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풀이 :

일상 생활에서 '사람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이란 말 그대로 사람들이 비교적 적게 지나간 길이며, 이는 곧 미개척(未開拓) 분야를 뜻한다. 이것을 인생의 길로 보면 많은 사람이 추구하지 않은 삶의 형태로, 가능성과 의미는 커도 앞날이 확실하지 않은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학문의 길로 생각한다면, 우리나라에선 비교적 생소한 '미래학(未來學)'과 같은 분야를 선택하는 경우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길을 대하는 시적 화자의 태도 및 정서'

두 갈래의 길

아름다운 길

선택하지 않은 길

미련, 아쉬움

아름다운 길

선택한 길

신념

3) 2로 보아 시적 화자는 어떤 성격의 인물인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시적 의미를 통해 시적 화자의 성격을 유추해 보는 활동이다. 이 활동은 성격에 대한 개념 규정까지 해야 한다는 점에서 교사는 인간의 성격적 유형을 미리 제시해 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낙천적 성격', '비관적 성격', '진취적 성격' 등과 같은 성격 유형을 제시한 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적용해 보도록 한다.

풀이 :

'사람 걸은 자취가 적은 길'을 선택했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흥미가 강하고 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자 하는 의욕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새로운 것에 대해 강한 호기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시적 화자는 진취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길'의 상징성

탐구 / '길'의 상징성

 

'상징'은 원관념 없이 보조 관념만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어느 대상이 다른 대상을 표시하거나, 본래의 고유한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 기법을 말한다. '길'은 우리가 늘 걸어다니는 '도로'라는 의미 이외에도 '방법, 수단, 과정, 방향, 도리, 미래, 전망' 등의 추상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삶의 길', 즉, '인생'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 상징 : 원관념 없이 보조 관념만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

- '길'의 상징적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길'의 추상적 의미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1) 어떤 일을 하는 방법이나 수단. 예)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 억울한 사정을 해결할 길이 없다.

2) 살아가는 과정이나 방면. 예) 배움의 길에 들어서다. / 친구를 잘못 사귀어 나쁜 길로 빠졌다.

3) 어떤 자격으로서의 도리나 임무. 예)스승의 길 / 정치가의 길

4) 시간의 흐름을 통해 전개되는 과정. 또는, 사회·역사적인 발전의 방향, 예)인류 문명이 발전해 온 길/ 근대화의 길로 들어서다.

 

형태적 속성

시간의 흐름, 인생

기능적 속성

방법이나 수단, 방면이나 분야, 도리나 임무

위치적 속성

도중, 여정, 과정

지도 방법 : '상징'을 제대로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징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상징은 문학적 상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흔히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주는 것이 좋다. '천사', '돼지' 등과 같은 친구들의 별명도 결국 그 사람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게 해 주는 상징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 주면, 비교적 쉽게 상징의 의미를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4) 이 시에 사용된 '길'의 함축적 의미에 대해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상징적 의미를 파악해 보는 활동이다. 원관념이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대뜸 그 의미를 파악해 내기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시적 상황과 시적 화자의 태도나 심리 등을 통해 접근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사전 속에 있는 다양한 의미를 활용할 수도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 좋다.

풀이 :

'길'은 우리가 늘 걸어 다니는 '도로'라는 의미 이외에도 '방법, 수단, 과정, 방향, 도리, 미래, 전망' 등의 추상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삶의 길', 즉 '인생'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시는 삶의 과정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으므로 여기서의 '길'은 '삶의 길', 즉 '인생'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시야 넓히기

(1) (가), (나)를 비교해 보고, 어떠한 느낌이 드는지 돌아가면서 발표해 보자.

지도 방법 : 대조적인 상황을 비교해 보는 활동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든지, 어떤 쪽이 좋다든지 하는 활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양쪽에서 받은 느낌을 솔직하게 발표하되 그내용을 대조적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지도해야 한다.

예시 답안 :

(가)는 숲 속의 모습으로 사람이나 인공적인 물건이 전혀 없는 자연의 길이다. 따라서 매우 조용하고 정적(靜的)인 느낌이 든다. 반면 (나)는 사람들이 오가고 자동차가 달리며, 밤인데도 불이 환하게 비춰진 길이다. 따라서 복잡하고 동적(動的)인 느낌이 든다.

(2) (가), (나)의 두 길을 인생길에 비유한다면, 각각의 길을 걷는 것이 어떤 삶이 될 것이지 말해보자.

지도 방법 : 상징적 상황을 인생에 적용해 보게 하는 활동이다. 반드시 (1)에서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1)과의 연계성을 강조하면서 사고의 과정까지를 정확히 짚어 주여야 한다.

예시 답안 :

(가)는 조용하고 정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에 어울리는 삶도 조용히 사색하거나 문명과는 거리를 둔 것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의 길이나 끝없는 구도(求道)의 길인 종교적 삶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반면 (나)는 복잡하고 동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삶, 활동적인 삶이 어울릴 것이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이끌어 가는 정치가의 삶이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경쟁을 해 나가는 운동 선수의 삶 등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표현하기

살아오면서 자신의 선택 중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선택은 어떤 것이었는지, 그리고 그렇게 후회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지도 방법 :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발표하게 하는 활동이다. 실제의 경험을 조직화하여 발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활동이기 때문에 '언제, 어떤 선택을 했었는가?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 선택 후, 어떠한 결과가 나타났는가? →그 선택을 통해 얻은 교훈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짜임새 있게 발표하게 한다.

예시 답안 :

"저는 여기 있는 다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중학교 때 공부를 꽤 잘했습니다. 모든 과목에서 손꼽히는 성적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지원할 때, 부모님의 권유도 있고 이미 진학한 우리 중학교 선배의 모습도 좋아 보여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과학 고등학교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2학년이 된 지금 저는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수학과 과학에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전 시와 소설을 읽는 것이 좋고 친구들과 사회적인 문제를 놓고 토론하는 것이 훨씬 즐겁고 흥미에 맞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중학교 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제 적성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도 않고 무턱대고 과학고를 선택한 것이 제가 후회하게 된 원인인 것입니다. 예전에 나왔던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는 광고 문구처럼, 무엇을 선택할 때에는 매우 신중해야 합니다. 특히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할 때는 더욱 심사숙고하여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선택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위 시와 아래 시와 공통점으로 적절한 것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참고 자료

눈 내리는 밤 숲가에 멈춰 서서

이게 누구의 숲인지 나는 알 것도 같다.

하기야 그의 집은 마음에 있지만……

눈 덮인 그의 숲을 보느라고

내가 여기 멈춰 서 있는 걸 그는 모를 것이다.

 

내 조랑말은 농가 하나 안 보이는 곳에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밤

숲과 얼어붙은 호수 사이에

이렇게 멈춰서 있는 걸 이상히 여길 것이다.

 

무슨 착오라도 일으킨 게 아니냐는 듯

말은 목방울을 흔들어 본다.

방울 소리 외에는 솔솔 부는 바람과

솜처럼 부드럽게 눈 내리는 소리뿐.

 

숲은 어둡고 깊고 아름답다.

그러나 나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

 

-프로스트(정현종 옮김), '불과 얼음', 민음사, 1973.

도우미 : 프로스트의 시의 특징인 명상적인 경향이 차분한 독백조로 잘 나타나 있는 작품이다. 이 시에서 어둡고 깊고 아름다운 숲은 인생을 상징하고, 잠은 죽음을 상징한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적막한 숲가에서 "여기서 만족하며 안주할 것이냐, 아니면 이상을 향해 더 나아갈 것이냐?" 하는 선택을 두고 생각하다가, 마침내 "잠자기 전에 몇십 리를 더 가야 한다."고 다짐한다. 즉 죽음이 오기 전에 남은 인생을 개척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약속한 것이다. 이렇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 인생의 이상을 찾아가겠다고 하는 이 시행에서 자연과 인생의 조화를 바탕으로 한 명상의 경지를 찾아볼 수 있다.

더 읽을거리

- 영미문학연구회 엮음, '영미문학의 길잡이 2', 창작과 비평사, 2001.

- 이창배, '영미시 걸작선', 동국대학교출판부, 1998.

- 신인호 외, '알기 쉬운 현대시(하)', 새날, 1997.(출처 : 김윤식 외 4인 공저 '문학교과서지도서')

 

1. 이 시를 읽고 문학과 삶, 언어의 관계에 주목하여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1) 이 시는 결국 인생이란 어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말해보자.

 

이 시에서 화자는 두 갈래 길을 모두 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숲길을 선택한다. 그 길은 사람의 흔적이 적으므로 걸어가는 의의가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결국은 걷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다. 우리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인생이란 어떤 길을 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길을 가면서 후회 없이 충실한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무엇이나 지나간 것을 더 아쉽게 여긴다는 의미의 '놓친 고기가 더 크다'는 속담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사실(풍경)과 암시(인생 항로)가 병행되면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서두에서는 소박하게 숲의 풍경을 말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서는 사람의 가슴을 찌르는 듯한, 인생의 고백을 진술하고 있다.

숲에 대한 특별한 인상보다는 보통 사람들도 체험할 수 있는 사실을 형상화하고 있는 데서 공감대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자기가 선택한 인생의 길에 대한 후회와 보람 사이에서 방황하는 복잡한 개인의 심리까지도 표현하고 있다.

문제는 '한숨을 쉬며'하는 이야기라는 데 있다. 항상 옳은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어떤 선택이든 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시는 선명히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선택함으로써 계속될 수 있는 역정(歷程)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시이다.

다시 말해서 이 작품은 숲의 배경을 소박한 표현으로 제시한 서두로부터 마지막 부분의 날카롭고 비관적인 인생의 고백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어조로 반성적 사색의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구조적으로 '풍경'이라는 사실의 측면과 '인생 항로'라는 암시의 측면을 평행선적인 구도로 유지함으로써 일종의 시적 격조(格調)를 만들어 내고 있다.

'길'이 인생의 주제를 함축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현대인의 일상적 삶을 제약하는 여러 문제들과 그에 대처하면서 겪는 시련과 좌절, 고뇌와 꿈 그리고 희망의 엇갈림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은 단순히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현대인의 고뇌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 길밖에 갈 수 없음을 깨닫는 삶의 본질적 성찰을 보이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이 길은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 길은 바로 상징의 다의성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소박한 전원의 정서를 인생의 문제로 승화시킨 서정시이다. 제재는 숲 속에 난 두 갈래의 길이며, 주제는 삶에 대한 희구와 인생행로에 대한 회고이다. 숲 속에 나타난 두 길은 운명 앞에 나타난 두 갈래의 인생행로와 상호관계를 가지며 펼쳐진다.

제1연에서 서정적 자아인 나는 어느 가을날 숲 속에서 두 갈래의 길을 만나 망설이다가, 제2연에서는 그 중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하고, 제3연에서는 선택한 길을 가면서 다른 길은 훗날을 위하여 남겨 두고, 제4연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길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회상하는 내용으로 시상을 전개했다. 특히 마지막 제4연에는 작가의 사상이 드러나 있다.

시의 원제가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인 것을 보면 자신이 걸어온 길보다는 걷지 않았던 길에 대한 미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에 나오는 길은 바로 인생의 길이다. 인간은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으므로, 바로 여기에서 인생의 고뇌와 인간적 한계가 생겨난다.

이처럼 외면적 표현과 내면적 음영(陰影)이 이중적인 이미지로 제시되어 있는 것이 시의 특징이다. 즉, 외면적으로는 자연풍광인 숲 속을 쉽고 단순하게 노래하고 있으나, 인생을 담담하게 관조하는 내면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중의적(重義的)으로 표현했다.

이해와 감상1

이 시는 갈림길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원숙한 안목으로 관찰하여, '선택'과 '망설임' , '아쉬움'이 뒤따르게 마련인 인간 삶의 근원적인 상황 조건과 심리 상태를 평이한 언어를 통해 생생히 드러내고 있다. 가지 않는 길에 대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간직하면서도 운명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삶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다.

'길'이 인생의 주제를 함축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현대인의 일상적 삶을 제약하는 여러 문제들과 그에 대처하면서 겪는 시련과 좌절, 고뇌와 꿈 그리고 희망의 엇갈림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시인은 단순히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현대인의 고뇌를 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이 길밖에 갈 수 없음을 깨닫는 삶의 본질적 성찰을 보이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해와 감상2

이 시는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갈림길이라는 평범한 소재를 통해 삶의 길에 깃든 근원적인 상황 조건과 심리 상태를 드러낸다. 길이 인생의 주제를 함축한다고 느끼는 순간 우리는 현대인의 일상적인 삶을 제약하는 여러 문제와 그에 대처하면서 겪는 시련과 좌절, 고뇌와 꿈 그리고 희망의 엇갈림을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시인은 단순이 이것이냐 저것이냐라는 이분법의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회의와 겸허한 자세 자체가 삶의 진정한 의미라는 통찰을 넌지시 제시함으로 이분법의 자세를 극복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면서도 결국 인간은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자신의 인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고 말함으로써 인간의 의지가 미치지 않는 운명도 부정하지 않는 철학적이고 관조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있다.

심화 자료

프로스트 (Frost, Robert Lee) [1874.3.26~1963.1.29]

 

프로스트(1954)

일상적인 언어와 익숙한 리듬, 평범한 생활에서 취한 상징을 사용하여 뉴잉글랜드 지방 생활의 평온함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생애

아버지 윌리엄 프래스콧 프로스트 2세는 뉴잉글랜드 출신으로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 루이스타운의 한 사립학교 교장으로 일하다가 스코틀랜드 태생의 교사 이자벨 무디와 결혼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샌프란시스코로 가 그곳에서 신문기자가 되었다. 1885년 그가 폐결핵으로 죽자 미망인과 두 아이들(여동생은 1876년에 태어났음)은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매사추세츠의 로렌스까지 가야만 했다. 그후 가난했던 프로스트의 어머니는 캘리포니아로 돌아오지 못하고 매사추세츠와 뉴햄프셔에서 교사로 근무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돌보았다. 그녀는 아들 로버트의 성격과 문학 발전에 강한 영향을 끼쳤다. 어머니의 스코틀랜드인다운 성실함과 강한 신앙심이 실용성과 신비주의를 혼합한 프로스트의 시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리라 짐작된다.

어린시절 프로스트는 야구와 축구를 무척 좋아했고 책에는 별 취미가 없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어머니의 열성으로 그는 뉴햄프셔의 세일럼 그래머 스쿨을 가까스로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러나 로렌스에 있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의 태도는 바뀌어, 1892년 그 학교를 졸업할 때는 후일 그가 결혼하게 된 엘리노 미리엄 화이트와 함께 졸업식 고별사를 할 만큼 뛰어난 학생이 되었다. 시에 대한 관심은 그가 편집인이던 학교신문에 이미 여러 편의 시를 발표했던 사실에서 잘 드러나며, 졸업식 고별사에서도 그는 시인의 경험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했다. 프로스트의 할아버지는 그가 법률가가 되기를 바라고 졸업하던 다음 해 가을 그를 뉴햄프셔의 하노버에 있는 다트머스대학으로 보냈다. 그러나 단조로운 학과 공부에 적응하지 못한 프로스트는 한 학기가 채 못 되어 학교를 떠났다. 그뒤 몇 년 간 로렌스에 있는 집에서 시를 쓰며 때로 학교교사, 방적공, 신문기자로 돈을 벌면서 지냈다. 1895년 결혼한 뒤 2년 동안 그와 그의 아내는 어머니를 도와 조그마한 사립학교를 운영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잡지 등에 시를 기고했으나 빛을 보지는 못했다. 그가 처음으로 시를 써주고 원고료를 받은 것은 1894년 주간 문학잡지 〈인디펜던트 The Independent〉에 실린 〈나의 나비 : 비가 My Butterfly : An Elegy〉였다.

1897년 가을 프로스트는 고등학교 수준의 라틴어와 그리스어 교사가 되기 위해 하버드대학에 들어갔다. 그는 이들 과목에서 훌륭한 성적을 얻었으나 병 때문에 2년이 채 못 되어 공부를 중단했다. 결핵일지도 모른다는 경고를 듣고 그는 생활방식을 철저히 바꾸어 매사추세츠 머슈언에서 가금(家禽) 사육사가 되었다. 이런 모험은 처음에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1900년 할아버지가 그를 위해 사두었던 뉴햄프셔 데리의 한 농장으로 이사했다. 프로스트의 첫 아들은 1896년에 태어났으나 그가 이사하기 전에 죽었고, 2번째 아이인 딸은 당시 1세가 채 안 된 때였다. 데리에 살면서 4명의 아이가 더 태어났고 농부로서 실패한 프로스트는 다시 교사가 되었다(1906~12). 프로스트의 훌륭한 걸작시 대부분은 그가 데리에 있을 때 씌어진 것이지만 그때는 어느 편집자도 그의 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1911년 프로스트는 1901년에 죽은 할아버지로부터 농장을 물려받았지만 즉시 농장을 팔고 그 다음해에는 시작(詩作)에만 전념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영국으로 갔다. 그는 버킹엄셔의 비컨스필드에 정착한 뒤 데리에서 썼던 서정시를 모아 정리했다. 이 원고는 런던의 한 출판업자에 의해 1913년〈소년의 의지 A Boy's Will〉로 출간되었다. 그 다음해 같은 출판업자에 의해 이야기체 시모음집 〈보스턴의 북쪽 North of Boston〉이 나왔다. 영국 비평가들의 열렬한 찬사가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출판업자 3명이 출판의뢰를 해올 정도였다. 영국에서는 E. 파운드, E. 토머스, W. W. 깁슨, T. E. 흄, L. 애버크롬비 등과 친교를 가졌다. 전원으로 오라는 조지아의 시인 깁슨과 애버크롬비의 권유를 받아들여 1914년 글로스터셔의 시골로 이사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이후 1915년 2월 프로스트는 미국으로 돌아왔으며, 그무렵 그의 시집 2권이 뉴욕에서 출판되었다. 그후 뉴햄프셔의 프랭코니아에 한 작은 농장을 샀고, 그의 시가 미국인들에게 따뜻한 환대를 받게 되자 그의 무명시절도 막을 내렸다. 그는 암허스트대학의 영문학 교수(1916~20), 미시간대학교의 시학 교수(1921~23), 애머스트대학(1923~25), 미시간대학교(1925~26)의 교수로, 그후 1938년까지는 애머스트대학의 시간강사로 일했다. 1939~43년 하버드대학교의 랠프 왈도 에머슨 펠로, 1943~49년에는 다트머스대학의 인문과학교수로, 1949년부터 죽을 때까지는 애머스트대학에서 심프슨 렉처러로 한직(閑職)을 유지했다.

생애와 활동

프로스트는 지극히 복잡한 사람이었다. 친구라고 부를 정도로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인정이 많고 적극적이며, 남을 돕는 일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이런 우애관계는 1909년 프로스트가 뉴햄프셔 데리빌리지의 핑커턴 아카데미에 있을 때 그의 제자였던 존 바틀릿과 맺은 친교가 대표적이다. 이 우애는 바틀릿이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마거릿 바틀릿 앤더슨의 〈로버트 프로스트와 존 바틀릿 : 그 우정의 기록 Robert Frost and John Bartlett : The Record of a Friendship〉(1963)에 기록되어 있다. 데리의 농장시절에도 프로스트는 자질이 별로 없는 농부였다. 그후 그는 자기가 너무 게을러 농부로 성공할 수 없었다고 고백하곤 했다. 데리의 농장으로 가기 전에 이미 그는 열정적인 식물학자가 되어 있었다. 그결과 농장경영보다는 농장에 심었던 각종 식물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아이들이 식물학에 관한 흥미를 나눌 수 있을 만큼 자라자, 그는 산책 길에 아이들을 데리고 자기 농장보다 더 먼 곳까지 다녀오곤 했다. 〈소년의 의지〉에는 농사보다는 식물에 관심을 보인 시가 더 많다. 프로스트는 계속 농장 일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농사일을 직접 하는 것은 잘 하지 못했으나 농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고, 또 뉴욕에서 출간된 2권의 시집에는 농부다운 목소리로 노래한 시들이 많다. 그러나 프랭코니아에 농장을 산 지 몇 개월이 못 되어 그는 애머스트대학의 교수직을 받아들였고 가족과 함께 매사추세츠로 이사했다. 그후 수년 간 프랭코니아의 농장은 별장일 뿐이었다. 그가 고향을 떠나 타관을 떠돌면서 시 낭송회를 열 때도 시와 연설에서 자신을 뉴잉글랜드의 농부라고 소개하기를 좋아했다. 비록 프로스트가 농사일을 잘하는 농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농부가 되고자 했던 그의 욕망만이 시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결론지으면 안 된다. 농장은 그의 동료 교수들과 그의 독자들과의 사교에 별장 이상의 역할을 했다. 프로스트에게서 자연은 종교적인 중요성을 지닌 것이었다. 그는 매일 넓은 풀밭을 건너고 농장의 숲을 지나, 때로는 그보다 더 멀리 친구의 농장까지 돌아다니기를 좋아했고, 그의 이웃들은 프로스트가 그들 농장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러한 산책이 그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었고 새로운 시를 발견하게 했다. 그의 걸음걸이는 식물학자와 꼭 같았고, 그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들꽃의 이름을 댈 수 있었다. 1939년 부인이 죽던 해에 그는 버몬트 립턴의 브레드로프 영어학교 근처에 상당한 규모의 농장을 샀다.

평가

프로스트의 시는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층의 독자에게 호소력을 갖는다. 이는 그의 시가 여러 가지 다른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어 읽는 사람마다 그의 시에서 기쁨을 발견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는 20세기의 여러 시인들이 시도했던 실험적인 방법을 피했고 '새로운 옛 방법'에 만족한다고 거듭해서 말했다. 그는 19세기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로부터 일상생활의 사건이나 상황, 그리고 보통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것에 가까운 언어를 서정적인 시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는 그의 시를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에 유행하던 감성적인 시와는 달리 '시적이지 않은 시'가 되게 했다. 또 19세기의 영국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에게서 극적인 독백과 대화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고대 그리스와 라틴 작가들 중 특히 테오크리토스와 베르길리우스를 공부했으며 그결과 대화체 전원시, 즉 에클로그의 목가적인 전통을 세웠다. 프로스트를 읽는 이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치는 자연적인 대상의 외양과 시골 사람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관찰한 그의 기록에서 기쁨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의 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자연과 사람에 대한 관찰 그 이상이다. 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부터 그는 그가 상상하는 시골풍경에 상징적·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그결과 그의 대표적인 시들은 그의 외적 자아와 내적 자아의 관계, 또한 타인·자연·우주와의 직접적인 관계를 뛰어넘어 심오한 종교적 신념에 바탕을 둔 가치를 설명한다. 폭넓은 그의 시에는 공포와 두려움의 분위기를 지닌 것도 있지만 확신이 주류를 이룬다. (출처 : 브리태니커백과사전)

프로스트의 시 세계

우리가 프로스트의 시를 읽어 보면, 외견상 단순해서 쉽게 여기기가 쉽다. 그러나 이같은 외견과는 달리, 많은 경우 그의 시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그리고 그는 언어와 감정의 절제를 중시한다. 그의 시에는 구어체가 많이 쓰여지지만 언어의 낭비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는 시적 진술에서 자아의 개입을 피한다. 어떤 교훈을 전달할 때에도 진정한 의도는 함축적 비유로 가리워진다. 그는 삶의 문제를 다루면서 제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드러내지 않는다. 인생이란 모순 투성이다. 인생은 비극과 희극의 쌍곡선이고, 미와 추, 혼돈과 통일을 함께 한다. 프로스트는 어느 쪽이나 극단을 피한다. 그는 중도주의자다. 아마 삶의 진실은 극과 극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이에서 찾아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말해서 프로스트의 시는 쉬운 말, 뉴잉글랜드식 논리, 그리고 소박한 낙천주의를 담고 있다. 그는 시를 어떠한 문학적 기교들보다도 더 효과 있게 하는, 삽상(颯爽)한 재치와 날카로운 관찰을 지닌 간결하고도 알기 쉬운 말로 썼다. 프로스트는 철학자는 아니다. 그는 인생을 그 자체로서 파악하였으며, 사람들의 악한 면뿐만 아니라 선한 면도 보았다. 그는 아마도 20세기의 최고의 서정 시인일 것이다. 시는 가슴이 뭉클한 것으로 시작한다. 시는 표현을 지향한 이룰 수 없는 표현이다. 만족을 찾으려는 일종의 노력이다.

프로스트의 자연관

프로스트의 시에 나오는 자연은 거의 인간과 관련된 것으로 생의 해명을 위한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프로스트가 냉철하게 파악한 현실로서의 자연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는다. 즉, 그가 그리는 자연은 아름답고, 일시적으로 지친 인간에게 도피처를 제공하며, 바른 마음으로 인간사를 생각할 수 있도록 친절을 베풀어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며 인간에 대해 철저히 무관심하기도 하다. 따라서, 자연의 인간에 대한 적의는 프로스트 시의 기본적인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자연이 적대적인 힘으로 파악되더라도, 원한을 삼거나 격분하는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건강한 사실주의와 근본적 낙관주의를 통하여 나름대로의 균형을 얻으며 전체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탄으로 바뀌는 것이다. 프로스트는 인간이 냉담한 자연에 굴복하지 않고 좌절과 소외감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꿋꿋하게 살아가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번역은 시의 맛을 다르게 한다

노랗게 물든 숲 속 두 갈래 길을

다 가 보지 못할 일이 서운하여서,

풀섶 속에 길이 구부러지는,

눈 닿는 데까지 오래오래

우두커니 선 채로 바라보았네.

 

그리곤 나는 갔네, 똑같이 좋고,

사람이 밟지 않고 풀이 우거져

더 나을지도 모르는 다른 길을,

사람이 별로 다니쟎기론

두 길은 실상 거의 같았네.

 

그리고 두 길은 다 그날 아침

밟히쟎은 가랑잎에 덮혀 있었네.

아 첫째 길은 훗날 가리고 하고!

길은 길로 이어짐을 알았기에

돌아오진 못하리라 생각했건만.

 

세월이 오래오래 지난 뒤에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리.

두 길이 숲 속에 갈라져 있어

사람이 덜 다닌 길을 갔더니

그 때문에 이렇게도 달라졌다고.

김종길 옮김

김종길 번역시에 대한 설명

1연에서는 인생의 두 가지 길에서 어느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안타까움과 그 선택의 순간에서 야기되는 망설임 등이 표현되어 있고, 2연에서는 시적 화자가 선택한 길에 대한 합당한 이유를 말하고 있으며, 3연에서는 시적 화자가 가지 않은 또 하나의 길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보여주고 있다. 4연에서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보이면서, 스스로 선택한 길로 인해 자신의 삶이 결정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 시의 의미 내용은, 사실 인간 삶의 보편적인 조건과 심리 상태로서 독자들에게 친근하고 절실한 공감력을 불러 일으키며,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새삼 하나뿐인 각자의 인생을 성실하게 잘 꾸려 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노랗게 물든 - 일이 서운하여서, : 인간이 지닌 원초적인 호기심과 망설임이 담겨 있다. 이 길이 인생의 길이라면 과감한 결정과 선택을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두 갈래의 길은 인간 삶의 근원적인 조건이다.

눈 닿는 - 바라보았네. : 한 길을 선택하고 나서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다. 그것은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하고 할 수 있다.

돌아오진 못하리라 생각했건만. : 한 번 간 길은 되돌아오기 어려운 이치를 알로 있었지만.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리 : 인생을 살고 난 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자기가 걸어온 길을 후회하며 이야기하리. 이것은 인간이 지닌 불완전한 심성에서 오는, 후회일 수도 있다.

1. 이 시에서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인생과 길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한 점이 많고,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비유 중 하나다. '길'이 가진 특성을 이해하고 '인생'에 대비해 보게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길은 인생과 여러 가지 면에서 유사하다. 지나온 길을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지난 날을 경험하여 알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길로 갈지는 예상만 할 뿐, 직접 알기는 어렵다. 우리의 인생도 미래의 일을 예측하기 어렵다. 또한 인생은 가면서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갈래를 만나게 되고, 그것은 마치 갈래길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과 같다.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져 길로 떠나 보내는 것과 같이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이렇듯 인생과 길은 여러 가지로 유사하므로 옛날부터 인생을 지칭하는 대표적인 비유로 사용되어 왔다.

2. 이 시에서 '사람이 적게 간 길'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해 복, 그에 해당할 만한 사례를 찾아보자.

교수·학습 방법 :

'사람이 적게 간 길(the one less traveled by)'은 일종의 모험이지만 그만큼 자신이 그 길을 개척해 나아간다는 것에 매력이 있다.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실제 경험한 일들을 나누어 보고, 역사적으로도 어떤 사람들이 있었는지 자유롭게 이야기해 본다.

예시 학생 활동 :

이전의 사람들이 적게 갔었던 길을 선택하여 걷는 것은, 앞날에 대한 걱정과 적당한 모험을 해야 하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만큼 스스로의 삶의 길을 개척해 나가고 앞으로 자신의 길을 걸을 많은 사람들의 표상이 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고 매력적이다. 역사적으로도 자신에게 쉽게 다가올 수 있는 길이 있었으나 이를 버리고 자신만의 길을 가서 훗날 아름다운 평가를 받거나 성공한 사람이 많다. 신학을 공부하여 신부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코페르니쿠스나 케플러는 스스로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고 그 길에 매진하여 우주를 바라보는 물리적인 법칙을 후세에 남겼다. 최근에도, 의사라는 보장된 직업이 있었으나, 자신의 의지를 위해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사로 나서서 성공한 사업가 안철수 씨도 그러한 사람중 하나이다.

3. 이 시가 평이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문학의 보편성이라는 관점에서 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격언이나 잠언의 글들은 평이하나 무게가 있고, 삶의 진실한 한 일면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한다. 프로스트의 시 역시 복잡한 철학적 탐색보다는 평이하면서도 소박한 시어로서 우리에게 작은 발견을 던져준다. 문학의 보편성이란, 곧,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과 누구나 바라는 희구를 지적하는 것이며, 공감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제에 접근하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사람이면 누구나 자신의 인생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자신이 택하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의 감정을 갖게 된다. 프로스트의 이 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늘 고민하는 문제에 대해 간결하면서도 무게 있는 시어로 우리의 공감을 자아낸다. 그러한 공감은 비단 그 나라 사람뿐만이 아니라 인생길의 갈래에 대해 고민한 모든 이들에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4.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발표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주변의 이야기, 역사 속에 등장했던 인물들, 가족이나 자기 자신의 이야기 등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다. 학생의 '쓰기' 및 '말하기'의 태도를 점검해 보도록 한다.

예시 학생 활동 :

얼마 전에 보았던 영화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프로도 배긴스'도, 평범한 마을의 소년으로, 또 그 마을의 후계자로 어렵지 않게 살아갈 수 있었지만, 운명처럼 의도하지 않은 길에 빠져 그것을 헤쳐 나가게 되었다. 일상의 경우에서도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고, 그렇게 가지 못한 길에 대한 회한으로 평생을 순탄치 못하게 살아간 사람도 많다. 우리 할아버지만 해도, 젊은 시절 전쟁의 회오리 속에서 하던 모든 것을 중단하시고 전혀 다른 길로 가야만 하셨다. 할아버지는 일생 동안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늘 무엇인가 아쉬운 듯 했고, 늘 자신과 싸우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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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를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김기림의 '길'

나의 소년 시절은 銀빛 바다가 엿보이는 그 긴 언덕길을 어머니의 상여(喪輿)와 함께 꼬부라져 돌아갔다.

내 첫사랑도 그 길 위에서 조약돌처럼 집었다가 조약돌처럼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푸른 하늘 빛에 호져 때없이 그 길을 넘어 강(江)가로 내려 갔다가도 노을에 함북 자주빛으로 젖어서 돌아오곤 했다.

그 강(江)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 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 갔다.

가마귀도 날아가고 두루미도 떠나간 다음에는 누런 모래둔과 그리고 어두운 내 마음이 남아서 몸서리쳤다. 그런 날은 항용 감기를 만나서 돌아와 앓았다.

할아버지도 언제 난 지를 모른다는 마을 밖 그 늙은 버드나무 밑에서 나는 지금도 돌아오지 않는 어머니, 돌아오지 않는 계집애, 돌아오지 않는 이야기가 돌아올 것만 같아 멍하니 기다려 본다. 그러면 어느새 어둠이 기어와서 내 뺨의 얼룩을 씻어준다.

제재 : 길, 헤어짐

주제 : 길 위로 여읜 사람들에 대한 깊은 애상

작가 소개 : 김기림(金起林, 1908∼?) :

시인·평론가. 본명은 인손(仁孫). 호는 편석촌(片石村). 함북 출생.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모더니즘 문학 운동을 선언하고, 그 이론을 소개하는 한편, 그에 입각한 시를 썼다. 6·25 전쟁 때 납북되었다. 시집에 <바다와 나비>, <기상도>, 시론집에 <시의 이해>, <시론(詩論)> 등이 있다.

(1) '가지 않은 길'의 시적 화자의 태도와 이 시의 시적 화자의 태도를 비교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길'이라는 소재를 놓고 두 시인이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 또 '길'이라는 것의 어떤 특징을 잡아서 노래하고자 하는지 살펴본다. 그것을 통해 시인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예시 학생 활동 :

'가지 않은 길'의 시적 화자는 '길'을 '떠나 보내는 길'로 파악하고,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길 위로 여읜 사람들을 추억한다. 어머니, 첫사랑, 잃어버린 기억 등을 길 위로 떠나보낸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을 통해 그들을 찾으러 떠나거나 추적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길의 초입에서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그럼 면에서 여기의 시적 화자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다. 그러나 '가지 않은 길'의 시적 화자는 '길'을 자신이 주체적으로 선택하는 '인생의 길'로 파악한다. 자신은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밟아 나갔으며, 지나간 길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음을 피력한다. 즉, 이 시의 시적 화자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2) 이 시에 나타난 길은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에 나타난 길과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위 (1)번 문제와의 연계 속에서 파악한다. (1)번이 시적 화자를 문제 삼고 있다면, (2)번은 시의 주제와 관련된다.

예시 학생 활동 :

이 시의 '길'은 이별의 길이고, 망각의 길이며, 상심의 길이다. 시적 화자는 이 길 위에서 많은 것을 떠나 보냈다. 길을 바라보는 시인의 마음은 어둡고 고통을 수반한다. 하지만 '가지 않은 길'의 길은 과정으로서의 길이다.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이 있지만 온전히 받아들여야 하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운명의 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 길에 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2. 자신이 걸어온 인생길에 있었던 두 갈래 길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고, 선택하지 않은 다른 길을 갔다면 현재 어떤 모습이었을지 발표해 보자.

교수·학습 방법 :

각자가 가진 다양한 경험을 다른 친구들과 공유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도 논의해 본다.

예시 학생 활동 :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예술 학교를 진학할 것인가,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할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었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 해 왔던 미술을 그만두고 그것을 나의 일생의 취미로 남기는가, 아니면 이것을 나의 평생의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었다. 결국 나는 식구들의 조언과 내가 이해하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으로 예술 학교에 진학하였고, 지금 이렇게 학교를 다니고 있다. 지금은 나 자신의 모습에 만족하지만, 가끔은 그냥 그때 인문계 학교로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아마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하려고는 하고 있겠지만, 또 지금의 나처럼 예술 학교를 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가끔은 생각할지도 모른다.

문학 작품에서 '길'의 의미

사람·자동차·비행기·배 등이 왕래하는 곳. 길은 크게 나누어 세 가지 뜻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 둘째는 방도를 나타내는 길, 셋째는 행위의 규범으로서의 길이다.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은 구상적 실체로서 본래는 단순히 보행을 위한 육상교통의 수단으로서의 길만을 가리켰다. 이런 뜻에서 길을 정의한다면, 사람이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오갈 수 있게 된, 거의 일정한 너비로 땅 위에 뻗은 공간적 선형(線形)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에서는 그 길의 양태나 규모에 따라서 ‘길’ 앞에 어떤 관형어를 붙여 오솔길·고샅길·산길·들길·자갈길·진창길·소로길·한길·지름길 따위와 같이 의미를 구체화하여 사용한다. 이와 같은 보행을 위한 육상 통로는 교통기관이 발달함에 따라 개념이 확대되고 다양화되어 실체가 없는 관념적 통로까지를 일컫게 되었다.

그리하여 물위를 다니는 배의 통로는 뱃길, 철제의 궤조(軌條: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나 전철의 통로는 철길, 항공기가 다니는 공중의 통로는 이를테면 하늘길이 될 것이다.

이러한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에서 뜻이 분화되어 어떤 일에 취해야 할 수단이나 방법을 뜻하는 방도(方途)라는 개념이 파생되었다. ‘무슨 길이 없을까?’, ‘손쓸 길이 없다.’라고 할 때의 길은 교통 수단의 길이 교통 이외의 수단으로까지 확대된 개념이다.

또 교통 수단으로서의 길은 정신 문화가 깨쳐지면서, 특히 동양 사람들에 의해서 철학적 의미가 부여되었다. 서양에서는 흔히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세상은 무대로, 사람은 배우로 관념하는 데 대해서, 동양에서는 인생이 곧잘 여행에 비유된다. 이때 세상은 여관으로, 사람은 나그네로, 인생살이는 길 가는 것으로 관념하는 일이 많다.

이백(李白)이 〈춘야연도리원서 春夜宴桃李園序〉에서 “천지는 만물의 여관이요, 세월은 백대의 과객이라.”고 한 생각도 여기서 나온 것이요, 요즘 우리 가요에 “인생은 나그네길……” 하는 노래가 불리고 있는 것도 같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다.

유교나 불교·도교 할 것 없이 동양 사상에서는 그 이념을 길[道〕이라 하고, 사람이 마땅히 취해야 할 심성이나 행위를 도의니 도덕이니 하여 길로써 표현한다.

왕도정치(王道政治)니 공맹지도(孔孟之道)니 하는 말이나, ‘군자 대로행’이니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는 우리 속담의 길도 모두 도의(道義)의 상징으로 쓰인 것들이다.

이때의 길은 최초의 개념인 교통 수단과는 동떨어진 것이지만, 사람들이 추상적인 ‘도’를 숭상한 데서 다시 실체로서의 길도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왕도(王道)는 곧 치도(治道)’라 한 ≪예기≫의 표현이나 하천에 다리 놓는 일을 인생 제도(濟度)의 실천적 행위로 해석하는 불가의 사고에서 그 구체적 사례를 엿볼 수 있다.

사실 통로라는 개념 속에는 교량이나 나제통문(羅濟通門) 같은 터널까지 포함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또 길은 구조상으로 길어깨〔路肩〕와 측구(側溝: 물이 잘 빠지도록 차도와 인도의 경계를 만든 얕은 도랑)까지를 포함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대전회통≫ 교로조(橋路條)에는 측구의 구격까지 명시되어 있는 것이다.

〔발생과 그 어원〕

우리말로 ‘길’이라고 읽을 수 있는 단어가 문헌상 처음 보이는 것은 신라의 향가에서일 것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우리말을 적을 국자(國字)가 없었으므로 한자를 빌려서 그 음 또는 새김으로 우리말을 적는 향찰(鄕札) 표기였다.

먼저 진평왕대에 융천사(融天師)가 지은 〈혜성가 彗星歌〉와 효소왕대에 득오(得烏)가 지은 〈모죽지랑가 慕竹旨郎歌〉에 각각 ‘道尸’라는 단어가 똑같이 나오는데 향가 연구가들은 예외 없이 이것을 ‘길’이라 해독하고 있다.

향가에는 이 밖에도 길을 뜻하는 말로 ‘노(路)’ 또는 ‘도(道)’도 보이고 있어 그것들은 ‘길’로, 또는 한자음 그대로 읽을 양면의 해독이 가능하겠다.

그러나 ‘道尸’의 경우는 ㄹ받침으로 관용된 ‘尸’를 첨기함으로써 ‘道尸’의 ‘道’가 ‘도’라 읽지 않고 ‘길’이라 읽는다는 것을 밝히고 있어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길’이라는 말은 한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순수한 우리말로 써내려 왔을 것으로 추측해도 좋을 것이다.

고려 시대에 내려와서도 그런 흔적이 발견된다. 1100년 무렵의 고려어를 한자로 적어 전하는 송나라 손목(孫穆)의 ≪계림유사 鷄林類事≫ 고려 방언조의 ‘행왈기림(行曰欺臨)’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간다는 말을 고려사람들은 ‘기림’이라 하더라는 것이다. ‘欺臨’은 글자대로 읽으면 ‘기림(ki-lim,ki-rim)’이겠으나 아마도 ‘길님(kil-nim)’의 연철(連綴) 표기일 것이다.

‘길’은 물론 ‘道’요, ‘님’은 ‘가다(行)’의 옛말인 ‘니다’의 명사형이 분명하다. 이로 미루어볼 때 신라어 ‘길’은 고려에서도 그대로 쓰이다가 조선 시대를 거쳐 자연스럽게 오늘날까지 일관하여서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길’이 한글로 명백히 표기되어 ≪훈민정음≫과 같은 시대에 지어진 ≪용비어천가≫에도 용례가 나오고 있다.

그러면 과연 ‘길’이라는 말은 언제부터 쓰였으며 그 어원은 무엇일까? 본디 길은 인류의 생존사와 함께 생성, 발전한 것이므로 ‘길’이라는 말도 우리 민족사와 함께 발생한 원초적 어휘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길’이란 인간의 의식(衣食)과 주거(住居) 사이를 연결하는 공간적 선형이라 할 수 있다.

원시인들이 의식의 재료인 조수(鳥獸)·과실·어패(魚貝) 따위를 주거인 굴혈로 운반하기 위해 반복 통행하면서 생긴 발자취가 곧 길의 원초적 형태였다면, 그들의 생활에서 가장 많이 반복 통행한 곳은 식수원(食水源)과의 통로였을 것이다.

따라서, 일정한 주거와 일정한 식수원인 골짜기와의 연결선에서 길의 첫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요, 동시에 길의 어원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옛 기록들에 나타난 것을 보면 우리 선민들은 산골짜기에서 굴을 파고 산 것으로 되어 있다. 즉, ‘골(ko:l)’에서 ‘굴(ku:l)’을 파고 살면서 ‘길(kil)’을 따라 물을 먹으러 다녔다고 상상할 때 어떤 어원적 암시를 얻어낼 수 있다.

여기서 모음의 차이가 나타나지만 분화 전의 원형 모음을 ‘·(아래아)’라 한다면 ‘골(谷, 洞)’과 ‘굴(穴居)’과 ‘길(徑·路)’은 모두 동일한 ‘可’을 어원으로 하고 있는 것이 된다.

이것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 즉 주거처인 ‘골’에 있는 ‘굴’에서 식수원인 ‘跏올’과의 사이를 잇는 통로가 곧 ‘길’인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분화되기 전의 공통 어원은 모두 ‘可’이었으니, 따라서 길의 어원도 ‘可’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길’이라는 말은 선사 이전부터 있어온 말이 아닐까 한다.

〔역 사〕

앞에서 길은 인류사와 함께 생성, 발달해왔다 하였으나, 그것이 사료로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아프리카 알제리 영내의 사하라 사막에서 발견된 타시리 나젤 암벽화 중 ‘소의 시대’라고 분류된 서기전 45∼15세기기(期)에 소를 타고 여행하는 그림과 배의 그림이라 하니 길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전부터 있어 왔는가는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우리 나라에서의 길의 역사는 민족의 이동과 정착 과정에서부터 더듬어야 할 것이나 이 방면의 연구가 아직 미진한 상태이므로 섣불리 언급할 수 없고, 삼국의 성립에서부터 사료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의 역사적 문헌에서의 길은 ‘도로(道路)’ 또는 ‘도(道)’나 ‘노(路)’ 등 한자어로 표현되어 있다. 물론 우리말의 길이 도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관념상으로는 이미지가 다소 다르다.

우리말의 길이라 하면 좀더 자연스런 통로를 연상하는 데 비해 도로라 하면 이른바 신작로 이후의 인공으로 정비된 고규격의 길을 연상한다. 우리 국어 사전에도 도로는 “사람이나 차들이 편히 다닐 수 있도록 만든 비교적 큰 길” 따위로 주석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한자에는 길을 뜻하는 글자가 10여 자가 있어 각기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지만, 길의 규모에 따라 많이 쓰이는 글자는 경(徑)·도(道)·노(路)의 셋이다.

≪주례 周禮≫의 주석에 따르면 “경은 우마를 수용하고, 진(軫)은 대거(大車)를 수용하고, 도는 승거(乘車) 한 대를 수용하고, 도는 두 대를 수용하고, 노는 세 대를 수용한다.”고 하였다. 짐작컨대 경은 우리의 오솔길이나 소로길에, 도는 그보다 좀 나은 길에, 노는 가장 큰 길에 해당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의 역로 이름을 ‘운중도(雲中道)’ 따위와 같이 모두 ‘도’로 썼는가 하면 조선 시대의 법전에는 ‘도성내 도로’와 같이 ‘도로’라 하다가 ‘대로·중로·소로’와 같이 ‘노’를 쓰기도 하여 일정한 기준이 없었다.

삼국사에서 도로와 관련된 자료가 비교적 많은 나라는 신라이다. 신라는 서기전 37년경 이미 경주를 중심으로 6촌이 흩어져 있었는데, 이들로부터 추대된 혁거세왕은 6촌을 순회하면서 민정을 살피고 농잠을 장려하였으며, 서울에 성을 쌓아 금성(金城)이라 하였다는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 제1 시조 혁거세거서간 17년조 및 21년조의 기록으로 미루어 경주와 6촌 사이에 육로가 열려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세기 중엽에는 영로(嶺路)가 개척되어 156년(아달라왕 3)에는 계립영로(鷄立嶺路)를 개척하였고, 이듬해에는 왕이 장령진(長嶺鎭)을 순행하였으며, 158년에는 죽령(竹嶺)을 개척하였다고 했으니 국내 전역에 걸쳐 통로가 제법 정비되었을 것이다.

434년(눌지왕 22)에는 백성에게 우거지법(牛車之法)을 가르쳤다 하였으니 이것을 민간에 소달구지 사용을 장려한 것이라 해석한다면 부분적으로나마 꽤 큰 규격의 도로가 있지 않았나 추측되기도 한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487년(소지왕 9) 역참제(驛站制)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우역(郵驛)의 설치와 관도(官道)의 치수(治修) 기록이다.

584년(진평왕 6)에는 육상 교통을 담당하는 기관인 승부(乘府)가 설치되고, 678년(문무왕 18)에는 해상 수송을 담당하는 선부(船府)가 설치되는 등 교통 체계가 제법 확립된 것 같다.

고구려는 북방 계통과 중국 계통의 문화가 전파되는 경로로서의 지리적 조건 때문에 삼국 중 가장 먼저 개화한 나라로서 서울을 5부로, 지방도 전국을 5부로 나누었다.

평양으로 천도한 뒤에는 국내성과 평양, 그리고 지금의 서울에 3경을 둠으로써 3경을 잇는 간선, 5부를 연결하는 준간선, 그리고 각 중심성과 그 관할하에 있는 작은 성들과를 연결하는 지선으로 도로망이 조직되었으리라 짐작되나 그 구체적 기록이 없다.

그러나 고분의 벽화에 그려진 기마도(騎馬圖)나 귀인이 타던 소수레 등은 당시 길의 상태를 어느 정도는 짐작하게 한다.

백제는 한강 유역과 금강 유역을 장악하고 전국을 남·북·동·서의 4부로 행정 구역을 편제하였다가 웅천으로 천도한 뒤에는 왕도와 전국을 각각 5부씩으로 가르고, 왕도 5부는 5항(巷)씩, 전국 5부는 10군(郡)씩으로 갈라 편제하였으므로 이들 행정 구역 상호 간에 연결된 도로망을 상상할 수 있으나 역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고려 시대에는 995년(성종 14)에 10도(道)를 제정, 설치하였고 1173년(명종 3)에는 7도와 5도가 있다고 하였다. 이 중 5도는 북계(北界)의 운중도·흥화도(興化道)와 동계의 명주도(溟州道)·삭방도(朔方道)·연해도(沿海道)가 그것인데, 이 중 연해도를 제외한 나머지 4도는 역도(驛道)의 이름과 중복되는 것으로 이 때의 ‘도’는 길을 뜻하는 도와 행정 구역의 도를 혼용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시대의 길은 체계적인 역도로서 전국적으로 정비되었다. 22개의 역도는 대로·중로·소로의 3등급으로 가르고 모두 525개의 역참을 두었다. 역참은 다시 6과(科)로 등급을 나누어 1과에는 75인, 6과에는 7인 하는 식으로 등급에 따라 역정(驛丁)을 배치하였다.

〔길을 소재로 한 글〕

길은 예로부터 우리 생활과 밀접하므로 길을 소재로 한 글이 많다. 먼저 우리 격언이나 속담에 나타난 길의 예를 찾아보면, ‘길로 가라 하니까 뫼로 간다.’, ‘길을 두고 뫼로 가랴.’, ‘길 닦아 놓으니 용천배기 먼저 간다.’, ‘시앗 싸움엔 길 아래 돌부처도 돌아앉는다.’, ‘길을 알면 앞서 갈 것이지.’,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이 아니면 하지를 말라.’ 등이 있다.

고시조에 읊어진 길에는 이황(李滉)과 같이 도의(道義)의 뜻으로 쓴 길도 있고, 장만(張晩)과 같이 실체의 길을 뜻한 것도 있다. “고인도 날 못보고 나도 고인을 못뵈/고인을 못 뵈와도 예던(행하던) 길 앞에 있네/예던 길 앞에 있거니 아니 예고 어이리.”(이황),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구절양장(꼬불꼬불한 산길)이 물도곤 어려왜라/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만 하리라.”(장만)

김동인(金東仁)의 단편 〈배따라기〉에는 주인공이 살아 있는 한 탐색이 계속되어야 하는 숙명의 길이 나타나 있다고 김용희(金鏞熙)는 분석하였다.

즉, 형수가 물에 빠져 죽은 데 대해 형에게 원망을 품고 떠나가는 아우의 육로는 구도자의 고행길이요, 형이 찾아 나서는 뱃길은 아내의 죽음에 대한 속죄의 길로서 여기서는 영원히 만날 수 없음을 암시하는 숙명이 표현되어 있다는 것이다.

시인 장순하(張諄河)는 길을 제재로 한 시를 10여 편 연작으로 발표한 바 있는데 그 중 ‘길 시리즈 ②’라고 부제가 붙은 〈지쳐 누운 길아〉 한 편을 보기로 한다. 여기에 표현된 길은 실체로서의 길과 인생이라는 상징적인 길이 뒤섞여 나타나 있다.

“어디에나 길은 있고/어디에도 길은 없나니/노루며 까막까치/제 길을 열고 가듯/우리는 우리의 길을/헤쳐가야 하느니. //땀땀이 실밥 뜨듯/잇고 끊긴 오솔길/신발끈 고쳐 매며/한 굽이는 왔다마는/호오호 밤부엉이가/어둠을 재촉한다. //날 따라 다니느라/지쳐 길게 누운 길아/한심한 눈을 하고/한숨 몰아 쉬는 길아/십자가 건널목에는/신호등도 없어라.”

≪참고문헌≫ 三國史記, 三國遺事, 大典會通, 古時調集, 韓國道路史(韓國道路公社, 1980), 現代文學(1986.9.).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길의 사전적 의미

 

1.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 시원하게 뚫리다.]

2. 항로(航路). [배로 가는 ~.]

3. 도중(途中). [퇴근하는 ~에 가게에 들렀다.]

4. 시간이나 공간을 거치는 과정. [우리 민족이 걸어온 ~.]

5. 목표로 하는 방향. [경제 성장에의 ~.]

6. 방법이나 수단. [타협할 ~이 없다.]

7. 사람으로서 해야할 도리. [자식으로서의 ~.]

8. 여정(旅程). 행정(行程). [미국 방문 ~.]

9. 방면이나 분야. [그 ~의 전문가.]

 

어떤 곳에서 다른 곳으로 걷거나 탈 것을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땅 위에 내어진 일정한 너비의 공간. 흔히 길은 삶의 도리, 질서, 형이상학적 원리나 법칙성 또는 道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인생, 세계, 원초적 우주 질서 등으로 비유되어 생의 방식을 의미하기도 한다. 한편 길은 집이나 고향으로부터 멀어진 방랑이나 방황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길은 풍찬노숙(風餐露宿)의 고난을 상징한다.(출처 : 고려대 출판부, 시어 사전)

 

관련 작품

 

1. 김소월, '길'

2. 한용운, '나의 길'

3. 김여정, '길'

4. 마종하, '두 길·14'

5. 오규원, '길'

6. 최승자, '未忘 혹은 備忘·14'

7. 고은, '道斷'

8. 조병화, '길'

9. 이성선, '구름과 바람의 길'

10. 이태수, '구부러진 길'

11. 홍윤숙, '길'

12. 문인수, '길'

13. 김완하, '길'

14. 이명주, '가을 그림자'

15. 신경림, '철길'

16. 김명인, '길'

17. 김지하, '길'

18. 이상희, '길·2'

19. 돈연, '백개의 이야기·44'

20. 김사인, '길'( 참고 자료 김종해 선생님 제공)

상징(象徵, Symbol)

① 어느 대상이 다른 대상을 표시하거나, 본래의 고요한 의미 외에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표현 기법이다.

② 상징은 의미의 암시성과 다의성을 지닌다.

③ 비유에서는 원관념:보조 관념=1:1의 유추적 관계를 보이지만 상징에서는 1:다수의 다의적 관계이다.

④ 상징의 종류

㈀ 관습적 상징(고정적 사회적 제도적 상징)

일정한 세월을 두고 사회적 관습에 의해 공인되고 널리 보편화된 상징

십자가 → 기독교, 비둘기 → 평화

㈁ 개인적 상징(창조적 문화적 상징)

관습적 상징을 시인의 독창적 의미로 변용시켜 문화적 효과를 얻는 상징

윤동주의『십자가』에서 십자가의 의미→윤동주 자신의 희생 정신을 나타냄.

(ㄷ)기타 상징

1. 자연적 상징 : 자연물이 인간에게 주는 보편적 의미의 상징

해→희망, 밤→절망

2. 우의적 상징 : 풍자적 우희적 통로로 상징하는 것

빼앗긴 들→일제 치하의 조국

3. 기호적 상징 : 약속에 의해 정해진 것

숫자, 문자, 부호, 신호

4. 원형적 상징 : 시대와 공간에 관계없이 신화 이후에 문화에 빈번하게 되풀이 되어 나타나는 상징

날개에서의 『방』→단군 신화에 나오는 『동굴』의 원형 상징.

상징과 은유의 차이점

은유는 두 대상간의 유사성을 통한 유추적 결합을 추구하는 데 반하여 상징은 상관성이 먼 상징어를 연결함으로써 의미가 확대, 심화되는 언어 사용의 방법이다. 여기서 '길'은 인생의 운명을 대신한 것으로 작가가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여 만든 창조적 상징인 것이다. 아무리 창조적이라 하여도 그 사물의 형태나 성격을 무시하고는 형성되지 않는다.

상징

은유

① 암시적, 다의적임.

② 한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남

-작품 전체를 지배.

③ 상징 의미가 상징 뒤에 숨어 있음

① 비교, 유추적임.

② 한 편의 작품에서 1회적으로 나타남

- 특정 부분과 관계.

③ 원관념과 보조 관념의 관계가 명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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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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