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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체소설(假傳體小說)에 대해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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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체소설(假傳體小說) 개관

 

명칭과 개념

 

설화문학의 한 형태로 구소설의 원형이 되었다. 가전은 설화에서 탈피하여 우화·의인화 수법을 써서 지은 짧은 전기체의 설화로서, 그 내용은 대개 사람들을 경계하고 권선(勸善)할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고려 중기 이후 설화문학은 가전체의 수법에 의해서 소설에 가까운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전체는, 설화문학이 발전하여 높은 독창성을 발휘하게 되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의 대부분은 물건을 의인화해서 쓴 것으로 가전체라 부르게 된 까닭도 이 때문이다.

발생과 특징

 

중국은 당대(唐代) 한유(768 - 824)의 '모영전(毛潁傳)' 이 최초의 작품이고,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임춘의 '국순전(麴醇傳)'과 '공방전(孔方傳)' 이 남아 있는 문헌상 최초의 작품이다. 사물이나 동물, 식물을 의인화해서 내용, 속성, 가치를 주로 표현한 것이다. 마치 사람의 일대기(傳)처럼 표현하고, 또 중 역사책인 사마천의 〈사기〉의 열전(列傳)처럼 사신(史臣)의 평이 붙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가전체 문학의 특징

 

인간이 아닌 사물을 의인화하여 허구적으로 입전(立傳)한 작품을 가전 또는 가전체라 하고, 가전을 포함하여 가전의 전통을 이어받은 일련의 작품을 가전체 소설이라고 한다.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사물의 의인화

2. 풍자적 주제

3. 함축적 수사

4. 계세징인[세상 사람들을 경계하고 징벌함.]의 목적

가전체 문학의 목적

 

계세징인(세상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일깨워줌)을 목적으로 지은 이야기로, 임춘(林椿)의 《국순전(麴醇傳)》을 위시하여 고려 중, 후엽에 크게 유행했으며 조선시대에도 여러 문인들에 의해 꾸준히 창작되었다. 1931년 변영만(卞榮晩)이 창작한 《시새전(施賽傳)》도 가전의 전통을 이은 작품이다. 중국 한유(韓愈)의 《모영전(毛穎傳)》이 최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사의 다양한 문제를 의인화라는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수법으로 다루면서 비평하고 있기 때문에 강한 풍자성과 함께 포폄(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의식을 수반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또한 의인화하여 그 가계와 생애 및 성품, 공과를 서술하기 위해 대상이 되는 사물에 얽힌 여러 전고(典故)를 많이 도입하고 있어 자못 현학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보통이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가전의 형식을 벗어나 본기체(本紀體), 연의체(演義體) 등의 작품들도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임제(林悌)의 《수성지(愁城誌)》, 정태제(鄭泰齊)의 《천군연의(天君演義)》 등이 대표작들이다. 그러나 가전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들도 꾸준히 창작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대화와 행동을 부각함으로써 평면적 서술을 지양한 유본학(柳本學)의 《오원전(烏圓傳)》과 같은 작품들이 있는가 하면 송세림(宋世琳)의 《주장군전(朱將軍傳)》처럼 풍자보다는 해학을 주조로 한 희필적인 작품들까지도 생겨났다.

가전체와 문학사적 위치

 

가전의 전기(傳記)형식과 허구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후대의 소설 발생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즉, 고전 소설이 대부분 '∼전'이라는 제목 아래 개인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 허구적 서사물이라는 점에서 가전은 고전 소설과 통한다. 그러나 가전은 소설 그 자체는 아니다. 아직 역사적 전거(典據: 근거로 삼는 문헌상의 출처)를 관념적으로 나열하고 있어 작품 내적 세계의 독자성이 확보되지 않고 있으며, 서술적 형상화에 크게 미흡하기 때문이다

현전하는 가전체 문학

작품명

연대

작자

내용

출전

배열부전

공민왕

이숭인

왜구에게 죽음으로써 항거하여 절개를 지킨 한 열부의 의로운 행실을 찬양

동문선

국선생전

고종

이규보

술을 의인화하여 군자의 처신을 경계함

동문선

국순전

인종

임춘

술을 의인화하여 술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씀

서하선생집

죽부인전

공민왕

이곡

대나무를 의인화하여 절개를 나타냄

동문선

정시자전

고려말

석식영암

지팡이를 의인화하여 인세의 덕에 관하여 경계

동문선

청강사자

현부전

고종

이규보

거북을 의인화하여 어진 사람의 행적을 기림

동문선

저생전

고려말

이첨

종이를 의인화함

동문선

공방전

인종

임춘

돈을 의인화하여 재물을 탐함을 경계함

동문선

화왕계

신라

설총

가전체의 근원으로 보고 있음

 

조선시대 가전체 문학

 

조선시대에는 정수강(丁壽岡)의 〈포절군전 抱節君傳〉, 이덕무(李德懋)의 〈관자허전 管子虛傳〉, 유본학(柳本學)의 〈오원전 烏圓傳〉, 이이순(李淳)의 〈화왕전 花王傳〉 등이 지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 가전의 특징은 의인화된 서술의 방법을 본기체(本紀體) 형식에 확대·적용한 작품들이 출현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임제(林悌)의 〈수성지 愁城誌〉와 〈화사 花史〉, 김우옹(金宇)의 〈천군전 天君傳〉, 정태제(鄭泰齊)의 〈천군연의 天君演義〉, 정기화(鄭琦和)의 〈천군본기 天君本紀〉가 그것이다.

이들 작품은 식물세계를 의인화한 〈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람의 마음을 의인화한 것으로서, 심성가전(心性假傳)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가전과 그 확대형인 심성가전은 이처럼 오랫동안 유지되었는데도 가전과 몇몇 사대부 문인들 사이에서만 창작, 향유되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이들 작품이 극히 난삽한 전고(典故)와 소수 문인들끼리의 현학적 기상(奇想)에 많이 의존했을 뿐 아니라, 현실 체험과 동떨어진 가공성과 고답적 관념을 추구하는 데 골몰했기 때문이다.

정수강(丁壽岡)의 〈포절군전 抱節君傳〉: 조선 연산군·중종 때에 정수강(丁壽崗)이 지은 가전체소설. 목판본. ≪월헌집 月軒集≫ 권5에 실려 있다. ‘포절군’은 절의를 품은 군자라는 의미로 대나무를 의인화한 이름이다. 딴 이름으로 죽존자(竹尊子)·관자허(管子虛)·차군(此君) 등이 있다. 〈포절군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포절군은 기주(菫州 : 원문은 ○州)출신이다. 선조 황(篁 : 대숲)이 해곡(亦谷)에 은거하다가 황제의 눈에 띄어 전악(典樂)이 되었다. 그의 자손으로 위천(渭川)의 적적(騁騁)과 수양(首陽)의 고죽군(孤竹君)이 있다. 포절군은 고죽군의 후예이다.

포절군은 지기가 없음을 한탄하고 조래(緖徠)로 옮겨 십팔공(十八公 : 소나무)과 함께 방외(方外)의 벗이 되고자 하였다. 그러다가 기욱(淇奧)의 승경을 보고 거기서 머물렀다. 그리고 위(衛)에 공이 있어 벼슬하였다(詩經 衛風 淇奧章을 변용). 포절군은 진(晋)나라의 죽림칠현이 찾아와 술에 취하여 무례히 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라의 중신들이 술에 취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음을 개탄하였다. 그리고 나서 황주(黃州) 석가산(石假山)에 은둔하였다.

포절군은 흑제(黑帝 : 겨울)와 동군(東君 : 봄)이 때를 다툴 때도 절개를 굽히지 않았다. 이를 본 소식(蘇軾)이 제(帝)에게 상주하여 포절군이라는 작호를 내리기를 권하였다. 임금이 포절군에게 소상(瀟湘)을 주어 탕목읍(湯沐邑)을 삼게 하였다.

송나라의 왕안석(王安石)이 법을 고친 뒤에 그는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같은 병을 얻어 조갈증으로 죽었다. 자손으로 차군이 있다. 〈포절군전〉의 서술자는 사평(史評)에서 포절군을 열장부(烈丈夫)라 이르렸다. 포절군의 정신이 자손에게 끼쳐 차군에 봉해졌으니, 향명(香名)이 천지와 함께 남을 것이라고 예찬하였다.

〈포절군전〉은 포절군의 선계(先系)와 그의 일대기를 서술한 전형적 전기형식이다. 이야기의 생동감이 없이 예찬으로 일관되어 있다. 포절군이 죽림칠현의 행동을 비판하고, 소식이 포절군의 절의를 귀감으로 삼기 위하여 군으로 봉해야 한다는 상주 등에서, 작자 정수강의 사상적 근거와 현실인식의 태도를 볼 수 있다.

작자는 유가적 사상을 기저로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정변과 사화로 인한 포폄(褒貶 : 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함.)이 불공평하였던 관료사회의 현실을 비판한 것이다.

≪참고문헌≫ 月軒集, 韓國假傳硏究(安秉烈, 二友出版社, 1986).

이덕무(李德懋)의 〈관자허전 管子虛傳〉: 조선 후기에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가전체소설(假傳體小說). ≪청장관전서 靑莊館全書≫ 중 ≪영처문고 叛處文稿≫에 실려 있다. 〈관자허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관씨(管氏)의 본성은 죽씨(竹氏 : 대나무)이다. 그의 선조가 황제에게 발탁되어 황종의 음률을 만들게 되었다. 후손 고죽군(孤竹君)이 자허(子虛)를 낳았다. 그는 속이 비고 외모는 고결하였다. 마침 황제가 인재를 구하는 명을 내리자 생성옹(生成翁)은 자허를 천거한다. 이에 황제는 상림원(上林苑)에서 그를 빈(賓)으로 맞았다.

그러나 자허는 오히려 인사도 없이 뻣뻣하고 거만하였다. 황제는 그의 오만한 절개를 높이 사서 “가슴속 서 말이나 되는 가시를 없앨 만하다.”고 칭찬하였다.

자허는 그 뒤에 아들 여덟과 딸 하나를 두었다. 곧 붓(筆 필)·화살(箭 전)·퉁소(簫 소)·제기(頭 변)·죽간(簡 간)·낚싯대(竿 간)·지팡이(莖 공)·발(簾 렴) 그리고 기춘현부인(菫春縣夫人)이다. 관자허는 그 뒤 60세에 두심병(亘心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손들은 대대로 위천에 봉해져서 뭇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관자허전〉은 고죽군의 아들 자허가 생성옹에 의해 황제에게 천거되어 크게 쓰임을 받고 자손들이 번창하였다는 것으로서 대나무를 의인화한 가전체작품이다.

황제의 조서에는, 화왕(花王 : 모란)과 초제(草帝 : 파초)를 물리치고 꿈에 동군(東君)이 보낸 한 신하의 형상을 문여가(文與可 : 宋代의 書怜家)에게 명하여 화상으로 그려 전국에 구하다가 얻은 인물이 관자허라 하였다.

관자허는 속이 비고 밖은 꿋꿋하여 고인의 풍도와 군자의 절개가 있다고 추천되었다. 그의 여덟 아들은 모두 죽구(竹具)들이며 외딸은 부채를 형상화하였다.

〈관자허전〉의 결말에는 ≪사기 史記≫의 필법을 빈 찬(贊)이 붙어 있다. 대나무의 절개를 의인화한 최식(崔寔)의 〈죽존자전 竹尊者傳〉, 이곡(李穀)의 〈죽부인전 竹夫人傳〉, 정수강(丁壽崗)의 〈포절군전 抱節君傳〉등과 더불어 창작기교가 뛰어난 작품이다.

≪참고문헌≫ 管子虛傳의 假傳的性格(蘇在英, 語文論集 23, 高麗大學校國文學硏究會, 1982).

유본학(柳本學)의 〈오원전 烏圓傳〉: 조선 후기에 유본학(柳本學)이 지은 가전체소설. ≪문암문고 問菴文藁≫ 상책(上冊)에 실려 있다. 유본학은 득공(得恭)의 맏아들로 생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생년이 대략 1770년경으로 추정된다.

그는 〈오원전〉 외에도 〈김풍헌전 金風憲傳〉·〈김광택전 金光澤傳〉·〈이정해전 李廷楷傳〉·〈전시적전 全時牝傳〉·〈박열부전 朴烈婦傳〉 등 모두 6편의 전을 썼다. 다른 전은 대부분 기인(奇人)의 행적을 남기는 데 치중하였으나, 〈오원전〉은 섬세한 필치로 인생사를 가탁하여 표현하고 있다.

‘오원’은 고양이를 의인화한 것이다. 주인공 오원은 노나라 사람으로, 도둑을 잘 지키어 천거되었다. 임금의 총애를 받게 되어 오정후(烏程侯)에 봉해지고 조서산(鳥鼠山)을 식읍으로 받았다. 그 뒤에 오원은 임금의 사랑을 믿고 교만해져서 동료들에게 횡포를 부렸다.

사냥꾼 노령(盧令)과 사이가 벌어져 다투다가 임금의 총애를 잃게 된다. 그 뒤 수라상 위에 놓인 구운 생선을 훔쳐 먹으려다 들켜서 쫓겨나 길에 버려졌다. 그리고는 민가에서 구걸과 도둑질로 연명하다 병으로 죽었다. 자손은 무척 번성하여 나라에 두루 퍼졌다.

책 끝에서 작자는 “이는 곧, 노망이 나면 상도(常道)를 잃는다 함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여 사람의 도리를 깨우치고 있다. 또한, 사람에게 처음과 끝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라고 하면서 모든 일에 있어서 지나침을 경계하였다.

이 작품은 고양이를 가탁하여 약삭빠른 인물의 처세를 보여줌으로써 가전체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참고문헌≫ 李朝漢文小說選(李家源, 民衆書館, 1961), 韓國假傳文學選(金昌龍, 正音社, 1985).

이이순(李淳)의 〈화왕전 花王傳〉: 조선 후기에 이이순(李蓬淳)이 지은 가전체문학(假傳體文學). 저자의 문집인 ≪후계집 後溪集≫ 권6에 들어 있다.

〈화왕전〉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모란의 일종인 요황(姚黃)은 낙양출신으로 자태가 아름다워 왕으로 추대되었다. 왕은 은일(隱逸)로 벼슬을 하지 않던 매화와 대나무·국화를 불렀지만 국화만 오지 않았다. 왕은 매화를 촉군태수(蜀君太守)로 삼아 매화의 덕을 빌려 인재를 올바르게 뽑고, 대나무를 통평후(通平侯)로 삼아 간언(諫言)을 맡게 하였다. 모란의 또 다른 종류인 위자(魏紫)를 왕후로 삼았다. 작약(芍藥)을 광릉(廣陵)에서 찾아 재상으로 삼으니 정치가 매우 잘 이루어졌다.

왕이 나이가 들수록 사치가 심하여졌다. 해당화(海棠花)가 예쁘다는 말을 듣고 불러 별궁에 두고 정사를 게을리하였다. 대나무가 간언을 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가을의 신인 욕수(闢收)가 가을바람을 몰아 이르니, 모든 사물이 다 꺾이고 왕도 상교(商郊)에서 죽어 나라가 마침내 망하게 되었다. 작약은 왕과 함께 죽고, 대나무는 절개를 겨우 지켰으며, 매화는 대유령(大庾嶺)에 버려졌다. 오직 대나무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 ≪시경 詩經≫에 명철(明哲)로 몸을 보호한다고 한 말이 국화에게 적용된다.

이어 태사공왈(太史公曰)로 시작되는 논평이 붙어 있다. 부귀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늘 경계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 국화의 절개가 군왕의 영화보다 낫다고 하고 있다.

〈화왕전〉은 설총(薛聰)의 〈화왕계 花王戒〉에서 마련된 꽃을 의인화하여 정치의 득실을 풍자한 유형을 잇고 있다. 조금 이른 시기에 제작된 임제(林悌)의 〈화사 花史〉, 김수항(金壽恒)의 〈화왕전 花王傳〉과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참고문헌≫ 李朝漢文小說選(李家源, 民衆書館, 1961).(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전체 소설

 

어떤 사물이나 동물을 의인화하여 그 일대기를 사전정체(史傳正體)의 형식에 맞추어 허구적으로 입전(立傳)한 소설. 가전체소설은 가구(假構 ; 허구)된 주인공의 행적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감계(鑑戒 ; 지난 잘못을 거울로 삼아 다시는 잘못을 되풀이하지 아니하도록 하는 경계)를 주는 것이 목적이므로 매우 풍자적인 문학형식이다.

논자에 따라서는 의인전기체(擬人傳記體)라고도 한다. 우화와 함께 의인문학의 일부로 취급하기도 한다. 가전의 특징은 주인공이 의인화된 사물이기 때문에 그 가계(家系)와 행적을 사실(史實)에 가탁하기 위하여 많은 고사를 이끌어 쓴다.

그리고 사전(史傳)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평결부에서 사관의 말을 통하여 강한 포폄의식(옳고 그름이나 선하고 악함을 판단하여 결정하는 의식)을 보임인다. 그러므로써 사람들에게 감계를 주려 하는 점이다.

가전은 중국 사마천(司馬遷)의 ≪사기열전 史記列傳≫이 그 뿌리라 할 수 있다. 중국 한유(韓愈)의 〈모영전 毛穎傳〉이 처음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고려 중기 임춘(林椿)의 〈국순전 鞠醇傳〉 이후에 흔하게 제작되었다.

고려 때에 가전이 나오게 된 이유는 무신란으로 말미암아 세력을 잃게 된 문인들이 그들의 문학적 역량을 과시하면서 불편한 심사를 우의적으로 담기에 가전이 알맞은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고려시대의 가전 작품으로는 임춘의 〈국순전〉과 〈공방전 孔方傳〉, 이규보(李奎報)의 〈국선생전 鞠先生傳〉·〈청강사자현부전 淸江使者玄夫傳〉, 이곡(李穀)의 〈죽부인전 竹夫人傳〉, 식영암(息影庵)의 〈정시자전 丁侍者傳〉, 이첨(李詹)의 〈저생전 楮生傳〉 등의 일곱 편이 ≪동문선≫에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는 불교가 성했으므로 불교 가전이라 할만한 것도 지어졌다. ≪동문선≫에 실려 있는 〈정시자전〉 외에도 혜심(慧諶)의 〈죽존자전 竹尊者傳〉과 〈빙도자전 氷道者傳〉이 전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혜심의 작품은 ≪고승전 高僧傳≫의 형식을 표방하고 있음이 특징이다.

가전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도 정수강(丁壽崗)의 〈포절군전 抱節君傳〉, 이덕무(李德懋)의 〈관자허전 管子虛傳〉, 유본학 (柳本學)의 〈오원전 烏圓傳〉, 이이순(李蓬淳)의 〈화왕전 花王傳〉, 황현(黃玹)의 〈황의공자전 黃衣公子傳〉, 현대인물인 변영만(卞榮晩)의 〈시새전 施賽傳〉 등의 전통적인 가전의 모습을 갖춘 작품들이 한문학이 막을 내리는 시기까지 계속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남성중(南聖重)의 〈화사 花史〉와 안정복(安鼎福)의 〈여용국전 女容國傳〉 등의 가전체소설이라 할만한 작품들도 있다. 마음을 천군(天君)으로 의인화한 천군소설(天君小說, 또는 心性假傳) 계통의 작품들이 나타나고 있다.

천군소설계의 작품들은 내용상으로도 심학(心學)의 영역인 심통성정(心統性情)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형식상으로도 사전체(史傳體)의 전통적인 것 외에 기·실록·편년체 본기·연의계장회소설(演義系章回小說)의 형식을 차용한 작품까지 나타나고 있다. 전통적인 가전과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사전체로는 김우옹(金宇裵)의 〈천군전 天君傳〉과 이옥(李鈺)의 〈남령전 南靈傳〉이 있다. 기체(記體)로는 임영 (林泳)의 〈의승기 義勝記〉가 있다. 실록체로는 유치구(柳致球)의 〈천군실록 天君實錄〉이 있다.

본기체로는 임제(林悌)의 〈수성지 愁城誌〉와 정기화(鄭琦和)의 〈천군본기 天君本紀〉가 있다. 장회소설체로는 정태제(鄭泰齊)의 〈천군연의 天君演義〉가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天君小說硏究(金光淳, 螢雪出版社, 1980), 假傳硏究(曺壽鶴, 語文學 29, 1973), 中國假傳文學硏究(安秉卨, 中國學報 15, 1974), 假傳에 대한 異見散考(安秉卨, 明知語文學 7, 1975), 高麗後期擬人文學의 形成과 文學史的 意義(金光淳, 高麗時代의 言語와 文學, 1975), 假傳에 대한 異見 續考(安秉卨, 明知語文學 8, 1976).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가전체 문학과 소설의 비교

가전체의 특징

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교훈적이고, 의인화의 기법이 사용됨

소설과의 공통점

허구적이며, 서사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

소설과의 차이점

인간이 아닌 사물을 주인공으로 하고, 교술적 성격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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