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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문제점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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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의 문제점

 

 

'가부장 제도'라는 말은 전근대적인 대가족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근대적인 핵가족 속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가정의 어디가 '가부장적'인지 실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가부장제는 이미 소멸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를 알고 나면 우리 생활이 얼마나 가부장적인가를 쉽게 알 수 있다.

 

가부장제는 어원적으로 '아버지의 지배(rule of fathers)'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아버지가 어머니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것을 좀더 엄밀하게 정의하자면, ()에 기초하여 남성 우위의 형태로 권력이 배분되고 나아가 역할이 고정된 관계와 규범의 총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최근 여성 해방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며, 그러한 성 지배에는 일정한 물질적 기초가 있다고 말한다. 즉 가부장제의 물질적 기초란 남성에 의한 여성 노동력의 지배를 말한다. 이 지배는 여성이 경제적으로 필요한 생산 자원에 다가가는 것을 배제함으로써, 그리고 여성의 성적 기능을 통제함으로써 유지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제는 남성이 태도를 바꾸거나 의식을 변경함으로써 폐기할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은 현실의 물질적 기반, 즉 제도와 권력 구조를 변경시킴으로써만 달성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가부장 제도는 개별적인 남녀 사이에도, 친족 집단 속의 남성 구성원과 여성 사이에도 존재한다. 근대의 가족 제도 아래서는 단혼(單婚)*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곧 여성에 대한 성 지배의 제도적 기초가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신 생활을 하거나 이혼 등을 통해 단혼 관계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곧 성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제도로서의 가부장제는 모든 사회 영역을 횡단적으로 관통하면서 침투하여 그것들과 깊숙이 얽혀 있기 때문에 단혼이란 직접적인 성 지배를 꾀하더라도 여타의 사회 영역에서 여전히 성 지배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즉 여성은 남성 친족의 특정한 구성원에게 직접적으로 종속되어 있지 않다 하더라도 그들은 결국 남성 지배라는 전반적인 문화에 종속되어 있다. 물론 연애 결혼이란 이데올로기 역시 가부장제의 덫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로맨틱한 사랑은 '아버지의 권력'으로부터 딸을 해방시킬지는 모르나 그 대신 여자를 점차 '남편의 권력'에 종속시킨다. 연애라는 에너지는 아버지의 지배라는 중력권에서 벗어나려는 원심력 쪽으로 작용하며, 남편의 지배 밑으로 들어가는 자발적인 자기 방기(放棄) 쪽으로 작용한다.

 

남성이 자기의 이익을 지키는 '가부장제 전략'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여성을 임금 노동*에서 배제하는 것이고, 둘째는 여성의 노동을 남성의 노동보다 낮게 자리 매겨 여성을 그 곳에 묶어 두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가사 노동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가사 노동은 가정 내에서 '주부'라는 이름의 기혼 여성에 의해 무상으로 수행된다. 가사가 엄연한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성의 노동과 그것을 구분한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처럼 그것은 보답을 바라지 않는 이타적이며, 비공리적, 비타산적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궁극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둠으로써 좀더 자유롭고 분방한 생활을 하기 위한 사회적, 제도적 장치이다. 여성은 이러한 제도를 통해서 남성에게 종속 당하며 노동을 대가 없이 착취당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성은 노동과 노동 생산물에 대한 자기의 결정권을 갖지 못하며, 결국 부불(不拂)* 노동자가 되는 것이다.

 

둘째는 고용 구조 전반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동일 직종에서 근무하더라도 여성은 남성에 비해 2/3도 채 안 되는 보수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남성에 비해서 일의 양이나 질에서 전혀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훨씬 적은 보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인 것이다.

 

성적 불평등을 야기하는 주요 기제인 가부장제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다양한 기질과 특성을 획일적으로 규정하여 왜곡된 성역할을 고착시킨다. 여성에게는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규정하고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서 자아 정체감이 없는 의존적인 존재로서 규정짓는 반면, 남성은 일생 동안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역할 규정을 통해 사회적 존재 가치를 직업과 수입에 따라 평가받게 한다. 가정 내에 한정된 성역할은 여성의 적극적인 자아 개발이나 사회적 활동 참여를 저해하고 심리적, 정서적 측면만을 부각시켜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반면, 남성은 여성처럼 울거나 두려움을 표현해서는 안되는 남성다움을 강조함으로써 자연스러운 감정적 표현과 친밀한 인간 관계 형성 등 정서 발달을 왜곡시킨다. 이러한 고정화된 성역할은 여성에게는 스스로 자존심을 저하시키고 부정적인 모습을 갖게 하는 반면, 남성들에게는 개인의 다양한 자질과 특성의 개발을 막아 심각한 인간성의 왜곡을 가져오게 한다.

 

사유 재산을 중심으로 하는 계급 사회의 출현으로 평등한 생산 관계가 계급 관계로 변함에 따라 가족은 단순히 종족을 번식하는 관계를 넘어 재산의 상속과 계급을 유지하는 기능을 하게 되었다. 남녀간 애정과 부모 자식간 혈연 관계라는 가장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할 가족은 사유 재산과 계급 유지라는 목적에 종속되었다. 특히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낭만적인 사랑에 근거한 핵가족 이데올로기를 통해 가족을 가족성원간의 정서적, 심리적 안정을 주는 도구적 목적으로 전락시켜 여성의 역할에 더욱 제한을 가하였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를 필수적으로 만들었다. 특히 여성들의 사회 참여는 경제 활동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왔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의 경제 활동은 자아를 개발하며 사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이라기보다는 남성 중심의 경제 활동의 여백을 보충하며, 한편에서는 자본가들의 이윤 확보를, 다른 한편에서는 부족한 가계 경제를 보충하기 위해서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성의 일차적인 위치는 가정이라는 가부장제의 성별 분업 체계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경제 활동에서 각종 차별과 불이익을 감수하며, 가사 노동과 경제 활동이라는 이중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결국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평등한 남녀 관계가 유지되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적 계급 사회에 대한 검토가 관건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형식적 의미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를 출현시켜 남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문제인 신분상, 법제상 남녀간 차별을 철폐하였다. 그러나 실제 사회의 관행은 성별 분업과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 그리고 계급 사회의 모순으로 여성은 남성에 의존적인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사회 전반적인 교육 수준, 특히 여성들의 교육 수준 향상에 따라 여성의 현실에 대한 자각과 경제적 자립 능력의 향상은 성적 불평등의 해소를 통해 남녀가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고 나아가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여건이 형성되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제 활동 참여는 여성 스스로 경제적 자립 기반을 구축하여 남성에 의존하지 않는 주체적인 독립된 실체로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초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현재까지 여성의 교육 확대나 의식 수준 향상, 그리고 경제 호라동의 확대가 여성의 지위 향상과 성적 불평등의 완전한 해소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전문화된 사회화 과정은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의미와 평가 절하를 통하여 성적 분리와 성차별을 심화시키고 있다. 명확한 공사구분 아래 여성을 가정의 영역에 한정시키며 사회 활동의 배제를 위한 여성 의식을 강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0년대 이후 한국의 여성들은 성적 불평등에 대한 자각과 함께 여성 문제를 공론화시켜 사회적인 주요 문제로 부각시키고 이를 해소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1990년대 들어오면서 여성들은 정치 참여를 통한 좀더 실질적인 차별적 제도개선과 성적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1987년 남녀고용평등법, 1989년 가족법, 1990년 영유아보육법, 1993년 성폭력특별법 등을 제정 또는 개정하여 성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 성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 사회의 성적 불평등 해소에는 큰 진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모든 인간은 자신의 인간적인 존재를 실현하고 발전시킬 권리가 있다. 동등한 권리를 가진 인간으로 여성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당위적 권리가 있다. 현실 사회의 성적 차별은 직접적으로는 여성의 삶을 왜곡하지만 간접적으로는 남성의 삶까지도 왜곡해 인간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피지배당하고 억압당하는 성으로서 여성에 대한 억압은 자기 자신의 인간성뿐 아니라 계급 차별과 성차별에 따라 왜곡된 남성의 인간성까지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적 불평등, 즉 여성 문제의 해결은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변혁과 인간 해방을 의미한다.

 

<용어 설명>

 

단혼 : 일부일처(一夫一妻)의 결혼, 일부일처혼.

방기 : 내버림, 돌보지 아니함.

임금 노동 : 노동자가 임금을 받고 상품으로 판매하는 노동.

부불 노동 : 대가가 지불되지 않는 노동.

119.대중 매체와 가부장적 질서

 

가부장제(patriarchy)란 용어는 여성학 혹은 여성 해방주의에서 빈번히 언급되지만 그 정의에 대한 합의는 없다. 이 용어는 이름 그대로 '아버지의 지배'를 의미한다. 가족 성원 중에서 아버지의 유산이 아들에게 이어지는 등의 남성 중심의 가족 질서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서의 남성 중심의 질서를 의미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부장제라는 기표의 외연적 기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사회적 의미 혹은 함축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밝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대중 매체와 여성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여성 해방주의가 과연 대중 매체의 어떤 면과 싸우기를 원하는지를 파악하는 일과도 토하기 때문이다. 가부장제가 단순히 남성의 지배를 의미한다면 우리는 대중 문화 속의 남성 중심적 사상만을 폭로하고 거세하는 솔직한 전략을 구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가부장제가 그 이상이라면 여기서는 계급적 지배와 남성적 지배를 동시에 의미하는 것이라면 싸움의 전략을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학자인 베버는 이 용어를 전통적인 사회에서 드러나는 사회적 권력의 한 유형이라고 보았다. 전통 사회의 가족에서는 상속을 바탕으로 가족 성원 중 한 사람이 다른 성원들에 대해서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는데 이를 가부장제적 권력 관계라고 보았다. 그런 점에서 베버의 정의에서는 단순히 남/여 관계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중세 봉건 제도에서의 권력 관계로 파악되는 경향이 있다. 이후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가족내 남성의 지배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남성의 지배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의도 여전히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가부장제와 농경 사회에서의 가부장제는 분명 다를 것이다. 일반적인 정의는 시간적, 공간적 차이에 대해서 침묵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여성 해방주의자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남성들의 지배'의 일반적인 정의를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소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1)시간/공간에 따른 가부장제 모습의 변화, 2)가부장제가 가능하게 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려. 만약 그러한 요소들이 고려되지 않는다면 가부장제란 개념은 설명적이 되기보다는 기술적인 것으로 남게 될 뿐이라고 본다.

 

우선 다양한 페미니즘의 연구들에서 가부장제는 어떻게 언급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이를 통해서 대중 매체와 가부장제 질서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고 연구 영역은 어떻게 정해질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급진적 페미니즘에서 가부장제라는 용어는 '남성이 보편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모든 방식'을 의미한다. 대중 매체의 존재 자체도 남성의 문화와 언어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의 경우 가부장제의 기원보다는 대안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가부장제를 유지해 주는 여성의 재생산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들이 강구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즉 남성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여성의 재현에 대한 여성적 통제, 여성만의 언어의 사용 등 분리주의를 내세운다. 그리고 여성이 주체가 되고 여성만을 위한 대중 매체의 등장을 주장하게 된다.

 

이 경우 위에서 설명하고자 한 가부장제의 역사적 특수성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가부장제란 보편적인 현상으로 설명되며 분리주의란 명제도 대안으로써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들의 경우 대중 문화 전만을 가부장제적 문화 질서로 파악한다. 여성에 대한 편견 혹은 포르노 등과 같은 폭력들을 열거하고 그 상징적 폭력을 행하는 것이 대중 매체 등과 같은 문화 제도라고 설명한다. 그러한 폭력적인 가부장제적 문화 질서를 벗어나기 위한 여성들만의 문화, 남성의 언어가 포함되지 않은 여성들만의 언어 등을 대안으로 내놓는다. 이미 많은 여성학자들이 지적했듯이 우리 나라는 한국의 특수성, 그리고 현상황에 대한 전면적인 거부 전략 등으로 인해서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에서는 가부장제라는 용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적인 불평등이 단지 비합리적인 선입견의 문제이고 그것은 합리적인 논의를 통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회 문제라고 생각하며 여기서 기존의 대중 매체는 편견을 극대화하고 재생산한다고 본다. 여성들이 대중 매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제작하고 많은 사회적 제도를 조직해서 그 편견들이 다시 이용되지 않도록 감시할 것을 제안한다. 궁극적으로는 국가가 개입되는 법의 질서 등으로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지닌다. 결국 대중 매체에 많은 여성 종사자들이 진출하여 여성에 대한 편견과 싸우고 또한 여성들의 지위를 제대로 밝히는 편견이 없는 대중 매체를 만들기를 그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여기서는 가부장제적인 요소를 인간들간의 조화로운 이해를 통해서 타파할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끊임없이 교육하고 그 교육이 사회에서 실천됨으로써 잘못된 관념이 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결국 가부장제가 가능하게 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려가 빠져 있는 셈이다. 경제적 제도나 가부장제적 제도에 대한 적절한 설명 없이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대중 매체와 가부장제의 관계 논의에서도 개인 제작자의 노력 그리고 개인들에 대한 제도적 규제 등으로 가부장제적 요소를 제거할 수 있으리라는 조금은 허약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맑스주의 페미니즘과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는 가부장제에 계급적인 요소를 포함시키려 한다. 맑스주의의 경우 계급적인 요소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파악하며 사회주의의 경우 계급 억압과 성적 억압 그리고 다른 사회적 모순 등을 등가적인 것으로 본다. 성과 관련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맑스주의 페미니즘의 경우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계급 이데올로기로 설명하고 있으며 사회주의 페미니즘에서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논의는 성 이데올로기의 자율성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맑스주의에서는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로 인하여 여성들에 대한 착취가 정당화될 수 있게끔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대중 매체란 것도 결국 자본주의의 질서에서 자본의 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므로 자본주의의 경제적 토대가 안정성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페미니즘의 경우 맑스주의의 견해를 일부분 받아들이지만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의 경제적 질서로부터의 자율성도 인정한다. 즉 계급적인 요소와 가부장제적인 요소의 중첩으로 인해서 가부장제라는 것이 유지되고 재생산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대중 매체는 가부장제의 정당성과 재생산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기구로 설명된다.

 

가부장제에 대한 상이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남/여의 차별을 구축하고 재생산 해낸다는 의미에서 대중 매체에 대한 논의가 강조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중 매체를 통한 성차별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가부장제라는 것은 사회의 물리적 제도, 즉 국가, 가족, 정부 등 모든 사회적 제도가 남성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습을 묘사하는 용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중 매체와 대중 문화를 논의하면서 보이는 가부장제에 대한 관심은 가부장제라는 문화적 의미가 생산되고 재생산되고 있는지 그것이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제도가 바로 남녀 불평등에 대한 사고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남녀의 불평등을 조장하는 사회적 제도들과 그것들에 대한 관념적 사고간에는 분명 언어 세계라는 매개체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현실과 이데올로기 사이에 관여하게 되는 언어의 세계, 상징의 세계가 해내는 역할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대중 매체가 쏟아내는 대중 문화란 언어의 세계로 구축되어 있다. 영화, 텔레비전, 잡지, 광고 그 모든 것들은 언어로써 현실을 구성하고 있다. 그 언어의 세계가 과연 어떤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추적하는 것이 우리가 알고자 하는 가부장제 문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접근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중 매체, 대중 문화와 가부장제가 연결되는 부분에는 언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며 그 언어의 효과에 대한 설명들이 등장하게 된다. 아울러 그 효력이 반감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설명하고자 한다.

 

이렇듯 광범위하게 가부장제에 대해서 설명해 놓고 나면 모든 것이 그 의미가 더 모호해지는 듯하다. 그렇지만 가부장제에 관한 대중 문화론적 설명은 어쩔 수 없이 대중 매체의 사회적 존재 상황에 대한 논의, 그리고 대중 문화의 언어적 구성에 대한 논의, 수용자의 주체 형성, 주체 형성 변용에 대한 논의를 포함시킬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된다. 영화든 텔레비전이든 여성 해방과 관련지어 설명하는 경우 이러한 가부장제에 대한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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