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소녀 - 임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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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녀 - 임학수

 

 

분홍 저고리와 긴 치마자락

기름도 안 바른 머리단과 숫된 마음색,

한마디 묻는 말에도 가벼이 낯 붉히고

때때로 눈 처들면 그 맑은 웃음마저

너무나 수줍은 조선의 소녀

오직 그대만이 나의 사랑이외다.

 

원망이란 모르고 한갓 믿음뿐

몸과 팔 연약하면서도 절갤랑 굳나니,

내 만일 조심스레 그 손을 어루만지면

()처럼 고개 숙이고 다시 들줄을 몰라

너무나 유순한 조선의 소녀

오직 그대만이 나의 사랑이외다.

 

봄 오면 두던에 올라 아지랑이 나는 새로

한가히 허리굽혀 나물 캐기 노래하며,

가을들 금()이랑에 철늦은 잠자리 쫓아

어린 사슴처럼 어여삐 그 다리의 뛰노는 양

너무나 천진스런 조선의 소녀

오직 그대만이 나의 사랑이외다.

 

<석류, 자가본, 1937>


작가 : 임학수(1911-?) 전남 순천 출생. 경성 제대 영문과 졸업. 1930년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1931동아일보우울, 여름의 일순, 1947신생(新生)나그네의 꿈, 1949피리 흘러 오는 밤에등을 발표. 조선문학가동맹에 관여하다가 월북.

 

초기 시편들은 자연에 대한 친화성을 바탕으로 그 신비와 구원을 추구하여 탐미적 경향을 보였다. 후기에는 중국의 거대한 자연에 주목하여 광막호탕(廣漠豪宕)한 시경과 일종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노래하는 현실 초탈의 시풍으로 변모하였다.

 

시집으로 석류(한성도서주식회사, 1937), 팔도풍물시집(인문사, 1938), 후조(候鳥)(한서도서주식회사, 1939), 전선시집(戰線詩集)(대동출판사, 1939), 필부(匹夫)(고려문화사, 1948)와 역시집 현대영시선(現代英詩選)(학예사, 1939) 등이 있다.

 

< 감상의 길잡이 >

이 작품은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까지 활발한 시작 활동을 보여준 임학수 시인의 초기작이다. 6행을 한 연으로 하여 모두 세 개의 연으로 이루어진 이 시는, 각 연의 뒷부분에서 같은 서술형을 반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또한 각 연은 한 가지씩 조선 소녀의 미덕을 칭송하는 데 바쳐졌다. 그 미덕은 순서대로 수줍음, 유순함, 천진함 등인데, 여기에 시인의 전통적이며 보수적인 여성관이 잘 반영되어 있다.

 

자세히 각 연을 살펴보면, 첫연은 치마 저고리 차림의 소박한 모양새, 그리고 맑은 웃음을 가진 조선 소녀에 대한 사랑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연은 연약한 몸에 비해 굳은 절개를 강조하고 있으며, 세번째 연은 계절따라 자연 속에 어우러져 뛰노는 모습, 곧 나물 캐며 노래하거나 잠자리를 좇는 천진하고 귀여운 모습이 그려져 있다. 시인에게는 이렇게 조선의 소녀를 애틋이 사랑하는 것이 조선을 사랑하는 것과 구별되지 않았을 것이다. [해설: 이희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