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故鄕) / 요점정리 -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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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현진건(玄鎭健,1900- 1943)

대구 출생. 호는 빙허(憑虛). 1918년 일본 동경 성성중학(成城中學) 중퇴. 1918년 중국 상해의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 입학했다가 그 이듬해 귀국.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관계함. 특히 <동아일보> 재직시에는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선수 손기정의 일장기 말살 사건에 연루되어 1 년간 복역함. 이 사건 이후 서울 자하문 밖에서 양계를 하다가 실패하고, 폭음으로 얻은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처녀작은 1920년 <개벽> 12월호에 발표된 <희생화>이고 주요 대표작으로는 <빈처>(1921), <술 권하는 사회>(1921),  <타락자>(1922)   <할머니의 죽음>(1923),   <운수좋은 날>(1924),  <B사감과 러브레터>(1924), <불>(1925),< 사립정신병원장>(1926)  <고향>(1922) 등과 함께 장편 <무영탑>(1938), <적도>(1939) 등이 있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우리 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 전기의 작품 세계는 1920년대 우리나라 사회와 기본적 사회 단위인 가정 속에서 인간 관계를 다루면서 강한 현실 인식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했고, 그 때의 제재는 주로 모순과 사회 부조리에 밀착했었다. 그리고 1930년대 후기에 와서는 그 이전 단편에서 보였던 강한 현실 인식에서 탈피하여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

<현진건의 문학적 특징>
흔히 현진건의 문학적 특성을 사실주의적 경향, 단편소설의 기틀 확립, 서사적 자아인 '나'란 일인칭의 자기 고백적 형식 및 반어적 대립구조 등으로 규정한다. 즉 그 스스로도'시간과 정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문학인 다음에야 조선의 땅을 든든히 디디고 서야 할 줄 안다'고 밝히고 있듯이 현실 재현에 대한 정직한 솔직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사진사적인 수법상으로서의 것만은 아니다. 1920년대의 사회적 현실의 음영을 '조선의 얼굴'이란 총체성으로 귀납해 놓고 있어서 리얼리스트로서의 면모를 잘 드러내고 있다.

한편 비교적 근대적 형태의 단편소설은 한국문학의 경우 1920년대에 와서야 그 본격적인 면모를 지니게 되는데, 특히 현진건은 간결성, 일관성, 통일성 등으로 단편적인 생의 단면을 효과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단편에 능한 작가이다.

그의 문학은 자기 노출적 셩향이 농후한데, 이같은 점은 서술의 시점 설정을 일인칭인 '나'로 설정해 두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같은 소설에 있어서의 '나'는 시의 경우의 '나'가 흔히 서정적 자아로 일컬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사적 자아'이다. 이런 일인칭 서술자의 빈번한 제시는 주로 스스로의 경험 영역의 회상이나 보고와 관련되기 때문에 그만큼 주관적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 작가는 이러한 주관적인 시점을 통해서도 거리의 근접화를 피한 자기 말소적인 표현의 제시를 보이고 있으며, 현실의 전기적 허구화보다는 자아를 통한 현실의 현실적 고정화로서의 기록적 재현성을 꾀하고 있다.

그의 소설 구조는 거의 대립적 병력구조라는 것이 특징이다. 명암, 행불행, 정신 대 물질, 빈부의 대립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대립은 때로는 비극적 아이러니와 손을 잡지만 때로는 희극적인 아이러니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흔히 기대화 현실, 언술과 진의의 표리적 양면성, 상황과 상황의 괴리와 대립으로 규정지어지는 이 아이러니와 이원적인 대조는 그의 소설의 구조적인 미학이 되어있다. 인격의 표리적 이중성이 대립된 <B사감과 러브테터>나 물질적인 부유 대 정신적인 것의 상호결핍적 병렬화를 그린 <빈처>나, 상황을 급진적으로 역전시키는 <운수좋은 날> 같은 것이 모두 그러한 구조 위에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참고자료 : 한국문학 대사전>

 

요점정리

갈래 : 단편 소설
배경 : 시간 -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 공간 - 서울행 열차 안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경향 : 사실주의
특징 : 작중 화자의 이야기 속에 주인공 '그'의 이야기가 내부 서사를 이루고
         있다.
주제 : 일제의 수탈로 인한 우리 민족의 비참한 삶.
인물 : 나 ='그'와 우연히 한 열차에 동승하여 '그'를 관찰하고 '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 당대 지식인으로 초반에는 애써 현실을 외면하려
               들지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조선의 현실을 재인식하고 '그'와 공
               감대를 형성하게 된다.
         그 : 외관상 말수가 많고 다소 천박해 보이는 인물로 이 소설의 주인공.
               일제 강점기의 박해받는 식민지 농민의 전형적 인물로 볼 수 있다.
               초반부에서는 현실 수용적인 나약한 인물로 그려지지만, 후반부
               에서는 미약하나마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과 저항성을 보여 주고
               있다.

구성 : 액자 구성

발단 :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보게 된 '그'의 기이한 차림새와 일본인, 중국인의 모습.
전개 : '나'와 '그'의 대화. '그'의 사람된과 대강의 사정.
위기 : 농토를 잃고 고향을 떠나 파란 많던 유랑 생활을 하던 '그'의 과거 이야기.
절정 : 옛 연인과의 불행한 해후(邂逅) 이야기.
결말 : 술에 취하여 부르는 노래.
 


이해와 감상

 1926년 <조선일보>에 <그의 얼굴>이란 제목으로 발표된 단편소설. 그 해 단편집 <조선의 얼굴>에 <고향>으로 개제(改題)하여 수록한, 일제의 식민지 수탈 정책을 비판한 작품이다. 그 내용의 적나라함 때문에 일제에 의해 판매 금지를 당했다.

일제의 수탈로 인해 농토를 잃은 우리 농민은 소작인으로 전락하거나 날품팔이로 전전하며 유랑의 길을 걸었다. 이 <고향>은 이러한 우리 민족의 실상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당시 일제의 검열이 있었음에도 어떻게 이런 작품이 발표될 수 있었던가를 생각하게 하는, 치열한 작가 정신이 드러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특별한 흥미를 주는 극적인 사건이나 특징적 인물도 등장하지 않지만, 일제 강점기의 한국 농민의 비참한 생활상을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현진건은 '그'라는 인물을 통해 농촌의 황폐화된 모습과 수탈 당하는 농민의 생활상을 고발하고 있으며, '그'의 옛 애인을 통해서는 식민지 여성의 수난상을 보여 주면서 일제의 식민 정책에 강한 저항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상징법과 구체적인 외양(外樣) 묘사, 어조의 변화 등에 의한 점층적인 성격 표출, 대화의 사용에 의한 효과적인 사건 서술, 노래의 제시를 통한 주제의 집약 등의 기법으로 광범위한 제재를 단편의 형식 안에 수용, 형상화하기에 성공했다. 특히, 작품 말미에 삽입된 민요는 이 소설의 주제 전달에 이바지하고 있다.

다만, '그'에 대해 '나'가 지니는 동정적 태도가 너무 지나치게 영탄적 문체로 제시된 점은 서술의 미숙성과 함께 당대 사회를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데 한 한계로 작용한다.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 해설체의 결함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이다.

 

줄거리

  '나'는 서울행 기찻간에서 기이한 얼굴의 '그'와 자리를 이웃해서 앉게 된다. 이 좌석에는 각기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짜르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거리는 일본인과 '기름진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띠운' 중국인 사이에 한국인 '그'와 '나'가 합석하고 있다. 즉, 세 나라 사람이 모이게 된 것이다.

'그'라는 사나이에 대하여 '나'는 처음에 남다른 흥미를 느끼고 바라보다가 이내 싫증을 느껴 애써 그를 외면하려 하였지만, 그의 딱한 신세 타령을 듣게 되자 차차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된다. 마침내 술까지 함께 마시게 되고, '나'는 '그'의 얼굴에서 '조선의 얼굴'을 발견한다. '그'는 정처 없이 유랑하는 실향민이었으며 '나'는 '그'의 유랑의 동기와 내력을 듣는다.

대구 근교의 평화로운 농촌의 농민이었던 '그'는 동양 척식 주식 회사에 의하여 농토를 빼앗겼다. 떠돌이가 되어 간도(間島)로 떠났으나 거기서 부모는 굶어 죽고, 구주 탄광을 거쳐 다시 폐허의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나 무덤과 해골을 연상하게 하는 고향에서 '그'는 이십 원에 유곽(遊廓)에 팔려 갔다가 질병과 부채(負債)만을 안고 돌아온 옛 연인과 해후했다. 그는 괴로운 심정으로 일자리를 찾아 지금 경성으로 올라가는 중이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어릴 때 부르던 아픔의 노래를 읊조린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 묘지로 가고요―.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심화자료

 
고향의 인물 ,구성, 문체에 대해

인물 : 주인공 '그'의 성격은 두드러진 데가 없다. 개성보다는 시대적 배경을 상징하는 전형이 더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말 수가 많고, 좀 덤벙거리며, 직선적인 감정파이면서 현실을 보는 비판적 안목도 있으나, 거기에 매달려 심각해하지는 않는 허랑한 인물이다. 현실에 부때끼면서 좌절하지 않고, 그때 그때 적응하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아 나서는 점에서 적극적인 저항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량하고도 끈기로 버티어 나가는 일제하 우리 농민들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구성 : 이 작품의 구성은 담화의 시간이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의 시간과 다르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현재의 차안의 묘사가 먼저 나오고, '그'로부터 듣는 과거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현재의 취흥과 민요로 이어지는 3단식 구성으로 되어있다.

문체 : 인물묘사에서는 객관적 사실적 문체가 두드러지나 부분적으로 주관적 감정이 상당히 개입된 해설체로 되어있다. 주인공에 대한 태도가 동정적으로 되어감에 따라 서술자가 객관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나'의 심정에 동조해서 그대로 문면에 드러낸 경우가 많다. 대화에 나타나는 사투리는 인물의 신분이나 상황의 현장감을 살리는 것 뿐 아니라, 핍박의 압력에 무디어져 버린 감정을 드러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 1922년 <개벽> 7월호에 수록된 <고향>은 러시아 작가 치리코프의 작품을 현진건이 번역한 것임

◎ 주인공 '그' : 유랑하는 실향민. 조선의 농민.
                           고향(대구 근교)→간도→구주 탄광→고향

◎ 결말의 민요(어릴 때 '그'가 부르던 노래) : 당시의 사회상을 집약적으로 제시함.
            ① 피폐한 현실에 대한 풍자.
            ② 작품의 현실감을 더해 줌.

◎ 작가의 현실 인식
           1920년대 농촌의 피폐한 모습을 고발함.
           일제 식민지 수탈 정책 비판.


 

작품 읽기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중에서 생긴 일이다. 나는 나와 마주앉은 그를 매우 흥미있게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두루마기격으로 기모노를 둘렀고, 그 안에서 옥양목 저고리가 내어 보이며, 아랫도리엔 중국식 바지를 입었다. 그것은 그네들이 흔히 입는 유지(기름칠한 종이) 모양으로 번질번질한 암갈색 피륙으로 지은 것이었다. 그리고 발은 감발을 하였는데 짚신을 신었고, 고부가리로 깎은 머리엔 모자도 쓰지 않았다. 우연히 이따금 기묘한 모양을 꾸미는 것이다. 우리가 자리를 잡은 찻간에는 공교롭게 세 나라 사람이 다 모였으니, 내 옆에는 중국 사람이 기대었다. 그의 옆에는 일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는 동양 삼국 옷을 한 몸에 감은 보람이 있어 일본 말로 곧잘 철철대이거니와 중국 말에도 그리 서툴지 않은 모양이었다.(외양 묘사를 통해서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과 인물의 삶의 편력을 제시) (발단 :그에 대한 나의 관심)

"도꼬마데 오이데 데수까(어디까지 가십니까)" 하고 첫마디를 걸더니만 동경이 어떠니 대판이 어떠니 조선 사람은 고추를 끔찍이 많이 먹는다는 둥 일본 음식은 너무 싱거워서 처음에는 속이 뉘엿거린다는 둥 횡설수설 지껄이다가 일본 사람이 엄지와 곤지 손가락으로 짜르게 끊은 꼿꼿한 윗수염을 비비면서 마지못해 깟댁깟댁하는 고개(일본인의 행동을 통해 전형적인 일본인의 성격을 묘사)와 함께 "소오데수까(그렇습니까)"란 한마디로 코대답을 할 따름이요 잘 받아 주지 않으매 그는 또 중국인을 붙들고서 실랑이를 한다. "니쌍나올취―" "니씽섬마" 하고 덤벼 보았으나 중국인 또한 그 기름 낀 뚜우한 얼굴에 수수께끼 같은 웃음을 띄울 뿐이요 별로 대꾸를 하지 않았건만, 그래도 무에라도 연해 웅얼거리면서 나를 보고 웃어 보였다. (중국인의 무뚝뚝한 대륙성 기질을 인상적으로 전형화함)

그것은 마치 짐승을 놀리는 요술쟁이가 구경꾼을 바라볼 때처럼 훌륭한 제 재주를 갈채해 달라는 웃음이었다. 나는 쌀쌀하게 그의 시선을 피해 버렸다. 그 주적대는(아는 체하며 마구 떠들다) 꼴이 어쭙지않고 밉살스러웠다. 그는 잠깐 입을 닫치고 무료한 듯이 머리를 덕억덕억 긁기도 하며 손톱을 이로 물어뜯기도 하고 멀거니 창 밖을 내다보기도 하다가 암만해도 지절대지 않고는 못 참겠던지 문득 나에게로 향하며 "어디꺼정 가는 기오"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을 붙인다.

"서울까지 가오."

"그런기오. 참 반갑구마. 나도 서울꺼정 가는데. 그러면 우리 동행이 되겠구마."

나는 이 지나치게 반가워하는 말씨에 대하여 무어라고 대답할 말도 없고 또 굳이 대답하기도 싫기에 덤덤히 입을 닫쳐 버렸다.

"서울에 오래 살았는기오?"

그는 또 물었다.

"육칠 년이나 됩니다."

조금 성가시다 싶었으되 대꾸 않을 수도 없었다.

"에이구, 오래 살았구마. 나는 처음 길인데 우리 같은 막벌이꾼이 차를 내려서 어디로 찾아가야 되겠는기오? 일본으로 말하면 '기진야도' 같은 것이 있는기오."

하고 그는 답답한 제 신세를 생각했던지 찡그려 보였다. 그때 나는 그의 얼굴이 웃기보다 찡그리기에 가장 적당한 얼굴임을 발견하였다. 군데군데 찢어진 겅성드뭇한 눈썹이 올올이 일어서며 아래로 축 처지는 서슬에 양미간에는 여러 가닥 주름이 잡히고 광대뼈 위로 뺨살이 실룩실룩 보이자 두 볼은 쪽 빨아든다. 입은 소태나 먹은 것처럼 왼편으로 삐뚤어지게 찢어 올라가고 조이던 눈엔 눈물이 괸 듯, 삼십 세밖에 안 되어 보이는 그 얼굴이 십 년 가량은 늙어진 듯하였다. 나는 그 신산(맛이 맵고 씀. 세상살이의 고됨)스러운 표정에 얼마쯤 감동이 되어서 그에게 대한 반감이 풀려지는 듯하였다. ('그'에 대한 동정에 의해 '나'와 '그'의 대화가 본격화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서술자인 '나'의 '그'에 대한 태도와 어조의 변화가 이 소설의 중심적인 진행이다.)

"글쎄요, 아마 노동 숙박소란 것이 있지요."

노동 숙박소에 대해서 미주알고주알 묻고 나서,

"시방 가면 무슨 일자리를 구하겠는기요."

라고 그는 매달리는 듯이 또 재우쳤다. (독촉하다)

"글쎄요, 무슨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는지요."

나는 내 대답이 너무 냉랭하고 불친절한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러나 일자리에 대하여 아무 지식이 없는 나로서는 이 외에 더 좋은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어디서 오시는 길입니까."

"흥, 고향에서 오누마."

하고 그는 휘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그의 신세타령의 실마리는 풀려 나왔다. (전개 : 대화를 통해 느끼는 주인공 '그'의 됨됨이) 

 



그의 고향은 대구에서 멀지 않은 K군 H란 외딴 동리였다. 한 백 호 남짓한 그곳 주민은 전부가 역둔토(역토와 둔토. 역이나 지방 주둔군의 경비를 충당하는 논밭. 농민에게 대여되어 소량의 소작료를 받았다)를 파먹고 살았는데 역둔토로 말하면 사삿집(개인집) 땅을 붙이는 것보다 떨어지는 것이 후하였다. 그러므로 넉넉지는 못할망정 평화로운 농촌으로 남부럽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뀌자 (일제 치하가 되자)그 땅은 전부가 동양척식회사의 소유에 들어가고 말았다. 직접으로 회사에 소작료를 바치게나 되었으면 그래도 나으련만 소위 중간 소작인이란 것이 생겨나서 저는 손에 흙 한 번 만져 보지도 않고 동척엔 소작인 노릇을 하며 실작인에게는 지주 행세를 하게 되었다. 동척에 소작료를 물고 나서 또 중간 소작인에게 긁히고 보니 실작인의 손에는 소출의 삼 할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죽겠다', '못 살겠다' 하는 소리는 중이 염불하듯 그들의 입길에서 오르내리게 되었다. 남부여대(남자는 지고 여자는 이고. 가난한 사람의 떠돌이 삶)하고 타처로 유리하는 사람만 늘고 동리는 점점 쇠진해 갔다. (당시대의 시대상황을 개관 -일제에게 수탈당하는 우리 농촌의 현실 )

지금으로부터 구 년 전 그가 열일곱 살 되던 해 봄에(그의 나이는 실상 스물여섯이었다. 가난과 고생이 얼마나 사람을 늙히는가) 그의 집안은 살기 좋다는 바람에 서간도로 이사를 갔었다. 쫓겨 가는 운명이거든 어디를 간들 신신하랴. 그곳의 비옥한 전야도 그들을 위하여 열려질 리 없었다. 조금 좋은 땅은 먼저 간 이가 모조리 차지를 하였고 황무지는 비록 많다 하나 그곳 당도하던 날부터 아침거리 저녁거리 걱정이라 무슨 행세로 적어도 일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먹고 입어 가며 거친 땅을 풀 수가 있으랴. 남의 밑천을 얻어서 농사를 짓고 보니 가을이 되어 얻는 것은 빈주먹뿐이었다. 이태 동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버티어 갈 제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병을 얻어 타국의 외로운 혼이 되고 말았다. 열아홉 살밖에 안 된 그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악으로 악으로 모진 목숨을 이어 가는 중 사 년이 못 되어 영양 부족한 몸이 심한 노동에 지친 탓으로 그의 어머니 또한 죽고 말았다.

"모친꺼정 돌아갔구마" "돌아가실 때 흰 죽 한 모금 못 자셨구마" 하고 이야기하던 이는 문득 말을 뚝 끊는다. 그의 눈이 번들번들함은 눈물이 쏟아졌음이리라. 나는 무엇이라고 위로할 말을 몰랐다. 한동안 머뭇머뭇이 있다가 나는 차를 탈 때에 친구들이 사준 정종병 마개를 빼었다. 찻잔에 부어서 그도 마시고 나도 마셨다. 악착한 운명이 던져 준 깊은 슬픔을 술로 녹이려는 듯이 연거푸 다섯 잔을 마신 그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후 그는 부모 잃은 땅에 오래 머물기 싫었다. 신의주로 안동현으로 품을 팔다가 일본으로 또 벌이를 찾아가게 되었다. 구주 탄광에 있어도 보고 대판 철공장에도 몸을 담아 보았다. 벌이는 조금 나았으나 외롭고 젊은 몸은 자연히 방탕해졌다. 돈을 모으려야 모을 수 없고 이따금 울화만 치받치기 때문에 한곳에 주접(몸을 잠시 의탁하여 거주함)을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화도 나고 고국 산천이 그립기도 하여서 훌쩍 뛰어나왔다가 오래간만에 고향을 둘러보고 벌이를 구할 겸 서울로 올라가는 길이라 한다.

"고향에 가시니 반가워하는 사람이 있습디까?"

나는 탄식하였다.

"반가워하는 사람이 다 뭐기오, 고향이 통 없어졌더마."

"그렇겠지요. 구 년 동안이면 퍽 변했겠지요."

"변하고 뭐고 간에 아무것도 없더마. 집도 없고 사람도 없고 개 한 마리도 얼씬을 않더마."

"그러면 아주 폐농이 되었단 말씀이오."

"흥, 그렇구마. 무너지다가 담만 즐비하게 남았즈마. 우리 살던 집도 터야 안 남았겠는기오."

하고 그의 짜는 듯한 목은 높아졌다.

"썩어 넘어진 서까래, 뚤뚤 구르는 주추(주춧돌)는 꼭 무덤을 파서 해골을 헐어 젖혀 놓은 것 같더마. 세상에 이런 일도 있는기오? 백여 호 살던 동리가 십 년이 못 되어 통 없어지는 수도 있는기오, 후!"

하고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드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둬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 (이 소설의 첫 발표당시의 제목이 '조선의 얼굴'이었다.  당시의 현실을 보여주고자 하는 작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 위기 :그의 고향에서의 삶과 유랑 생활의 어려움 폐촌이 된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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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나는 이런 말을 물었다.

"그래, 이번 길에 고향 사람은 하나도 못 만났습니까."

"하나 만났구마, 단지 하나."

"친척 되시는 분이던가요."

"아니구마, 한이웃에 살던 사람이구마."

하고 그의 얼굴은 더욱 침울해진다.

"여간 반갑지 않으셨겠지요."

"반갑다마다, 죽은 사람을 만난 것 같더마. 더구나 그 사람은 나와 까닭도 좀 있던 사람인데……."

"까닭이라니?"

"나와 혼인말이 있던 여자구마."

"하―!"

나는 놀란 듯이 벌린 입이 닫혀지지 않았다.

"그 신세도 내 신세만이나 하구마." (그여자의 삶을 통해 조선의 모습을 뚜렷이 부각기키려는 의도)

하고 그는 또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그 여자는 자기보다 나이 두 살 위였는데 한이웃에 사는 탓으로 같이 놀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자라났었다. 그가 열네 살 적부터 그들 부모 사이에 혼인말이 있었고 그도 어린 마음에 매우 탐탁하게 생각하였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열일곱 살 된 겨울에 별안간 간 곳을 모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아비 되는 자가 이십 원을 받고 대구 유곽에 팔아먹은 것이었다. 그 소문이 퍼지자 그 처녀 가족은 그 동리에서 못 살고 멀리 이사를 갔는데 그 후로는 물론 피차에 한 번 만나 보지도 못하였다. 이번에야 빈터만 남은 고향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읍내에서 그 아내 될 뻔한 댁과 마주치게 되었다. 처녀는 어떤 일본 사람 집에서 아이를 보고 있었다. 궐녀(그여자)는 이십 원 몸값을 십 년을 두고 갚았건만 그래도 주인에게 빚이 육십 원이나 남았었는데 몸에 몹쓸 병이 들고 나이 늙어져서 산송장이 되니까 주인 되는 자가 특별히 빚을 탕감해 주고 작년 가을에야 놓아 준 것이었다. (당시 유곽의 풍토를 드러내면서, 한 사람의 삶을 철저히 파멸시키는 일제 당시의 상황에 대한 고발적 의도 )궐녀도 자기와 같이 십 년 동안이나 그리던 고향에 찾아오니까 거기에는 집도 없고 부모도 없고 쓸쓸한 돌무더기만 눈물을 자아낼 뿐이었다. 하루 해를 울어 보내고 읍내로 들어와서 돌아다니다가 십 년 동안에 한 마디 두 마디 배워 두었던 일본 말 덕택으로 그 일본 집에 있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녀의 삶에 대한 요약적 제시. 단편 소설의 특성인 단일성을 위해)

"암만 사람이 변하기로 어째 그렇게도 변하는기오? 그 숱 많던 머리가 훌렁 다 벗어졌더마. 눈은 푹 들어가고 그 이들이들하던 얼굴빛도 마치 유산(끈끈한 기름 모양의 유독성 액체. 황산)을 끼얹은 듯하더마."

"서로 붙잡고 많이 우셨겠지요."

"눈물도 안 나오드마. 일본 우동집에 들어가서 둘이서 정종만 열 병 따라 뉘고 헤어졌구마."

하고 가슴을 짜는 듯이 괴로운 한숨을 쉬더니만 그는 지낸 슬픔을 새록새록이 자아내어 마음을 새기기에 지쳤음이더라.('- 이더라'는 이전 고전소설 신소설의 흔적) (절정 :혼인 말이 있던 여인의 비참한 신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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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다 하면 무얼 하는기오."

하고 쓸쓸하게 입을 다문다. 내 또한 너무도 참혹한 사람살이를 듣기에 쓴물이 났다.

"자, 우리 술이나 마저 먹읍시다."

하고 우리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한 되 병을 다 말리고 말았다. 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렸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일제의 농토 강탈 정책. 신작로는 그 상징)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식민 정책에 대한 비판자들에 대한 탄압)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망국의 비운 속에 죽어가는 노인들)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혹독한 가난으로 인한 여인들의 고난상)

출전:조선의얼굴(19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