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세월이 가면 - 박인환

by 송화은율
반응형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을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치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이름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시집 박인환 시선집, 1955)


 

<핵심 정리>

 감상의 초점

박인환의 시작(詩作) 활동 마지막 시기의 것으로 󰡔목마와 숙녀󰡕와 함께 대표작으로 꼽힌다. 명동 어느 술집에서 작가는 이 시를 읊었고, 친구 김진섭이 즉흥적으로 작곡하였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노래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이 시는 전쟁을 통해서 맛본 비운과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좌절감과 상실감을 노래하고 있다. 잃어버린 기억을 더듬어 보헤미안처럼 고뇌하고 방황하는 시인의 찢긴 삶의 모습이 도시적 이미지를 통해 간결하게 드러나고 있다.

 성격 : 도시적, 감상적 회고적

 특징 : 도시적 감상주의와 보헤미안적 기질, 허무주의

 표현 : 이미지에 의존하기보다는 직설적인 내면 정서 표출

 구성 :  상실의 슬픔(1)

 옛날의 추억(2)

 삶의 허무함(3)

 상실의 슬픔(4)

 제재 : ‘그 사람의 상실

 주제 : 사라지고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과 상실의 슬픔.

 

 

<연구 문제>

1. 화자가 처한 어두운 시대적 상황을 암시하는 두 어절의 시구를 쓰라.

<모범답> 그늘의 밤

 

2. 이 시는 떠나버린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애상적인 노래이다. 이렇듯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들을 함축하고 있는 시어를 지적하라.

<모범답> 나뭇잎

 

3. 이 시는 1956년 환도 후, 폐허가 된 명동의 어느 술집에서 시인이 시를 읊자 친구가 샹송 풍의 즉흥곡을 지었다고 한다. 시인은 무엇을 어떻게 읊고 있는지 한 문장으로 쓰라.

<모범답> 과거에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추억을 도시적 감각과 서정으로 읊고 있다.

 

4. 이 시에 드러나 있는 정서를 20자 내외로 쓰라.

<모범답> 상실한 것들을 가슴에 남겨 두는 그리움의 애상감

 

 

<감상의 길잡이>(1)

이 시는 구체적인 이미지 제시를 통하여 시인의 체험의 실체를 보여 주는 대신, ‘그 사람이 떠나버린 상실의 아픔과 슬픈 자아의 모습이 전면에 나타남으로써 애상적인 분위기가 주조를 띤다.

 

참담한 전쟁을 통해서 겪은 비운과 시대적 불안함에서 비롯되는 삶의 중압감은 시인으로 하여금 체념과 무력감에 젖게 하며, 그의 시는 쉽사리 감상에 빠지고 만다. ‘그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가슴에 남은 추억을 읊조리며 방황하는 화자는 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한다. 도시적 소재와 문명어를 통해 삶의 허무를 체념적 감상주의로 노래하고 있다. 특히, ‘유리창’, ‘가로등’, ‘공원’, ‘벤치 등의 시어는 후반기 동인들의 시에서도 흔히 발견되는 것인데, 박인환은 도시와 문명과 현실에서 시의 테마와 언어를 찾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을 상실한 시대, 삶의 지향성을 잃은 상황에서 화자 는 가슴에 남은 옛 추억과 아름다운 환상만을 떠올리며 후미진 도심(都心) 밖 언저리를 거닐면서 허무에 젖어 보는 것이다. 특히, 마지막 연의 서늘한은 허무 의식과 상실의 슬픔이 비장감으로 고조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박인환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이 시의 화자 역시 아름다웠던 시절에대한 동경과 그리움을 통해 어두운 시대가 안겨 준 상실의 슬픔과 고뇌를 밟으면서 방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감상의 길잡이>(2)

<목마와 숙녀>와 함께 박인환의 대표적 작품으로, 샹송 스타일의 곡을 붙여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이 시는 낭만적 시의 정수라 할 만하다. 31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박인환이 불안한 시대 의식과 위기감, 허무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한 잔의 술과 이 같은 낭만적 시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우수 어린 시인으로 만든 것은 천부적으로 타고난 감상적 성품이라기보다는 시대적 운명일 것이며, 그에게 <세월이 가면>과 같은 시는 커다란 정신적 위안제가 되었을 것이다.

 

3년간이나 계속된 전쟁 속에서 도시는 온통 폐허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 남은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상실하고 철저하게 상호 무관심한 개인 주의적 경향으로 바뀌게 되는데, 이러한 황폐한 분위기에서 시인은 따스한 인간애에 목이 말랐을 것이고, 세월에 따라 흘러간 사랑이 그리웠을 것이며 그 사람과 사랑을 나누던 유리창 밖 가로등 / 그늘의 밤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 벤취를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갈 수록 더욱 황폐해 가는 전후(戰後) 도시적 분위기에서 그의 가슴은 점점 서늘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사람 이름이 잊혀지고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그 눈동자와 입술은 언제나 서늘한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라는 애뜻한 이 사랑 노래는, 영원히 현대인들에게 신선한 감동과 가을비 같은 촉촉한 서정성을 전해 주며 길이 남아 있기에 충분할 것이다.



 

반응형

블로그의 정보

국어문학창고

송화은율

활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