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몸? 뚱뚱한 몸?
by 송화은율반응형
마른 몸 이상화하는 ‘프로아나’가 생기는 까닭
또 다른 요인은 ‘인정 욕구’와 ‘자기 통제감’이다. 거식증은 음식 먹는 것을 ‘통제’해 자기 자신에 대한 만족과 보상, 영향력을 확인하는 욕구와도 밀접하다. 프로아나 계정을 살펴보면 ‘예쁜 딸’이 되어 사랑받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많다. 이전의 바람직한 자식 모델이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면, 양육자가 아이를 SNS에 올리거나 영유아·청소년의 외모를 일상적으로 평가하는 환경에서는 ‘마르고 예쁜 것’이 새로운 효도가 된 것이다. 이외에도 개인의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방어기제, 혹은 대응 방식(록산 게이는 <헝거(Hunger)>에서 강간당한 후 폭식으로 몸을 불린다), 유전적·신경생물학적 요인 또한 작용한다.
개인적으로는, 몸에 관해 말하지 않는 것부터 실천할 수 있다. 칭찬까지 포함해 ‘보디 토크’ 하지 않기. 또 내 이야기다. 한때 13㎏을 뺀 적 있다. 가는 곳마다 축하와 칭찬을 들었다. 그런데 한 모임에서만은 아무도 그 큰 변화를 알아주지 않았다. 서운했다. 그러나 다시 체중이 불어났을 때, 유일하게 그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만은 두렵지 않았다. 내 몸이 어떻든, 내가 불안과 공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회는 너무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작은 공동체가 방공호가 되기도 한다. 프로아나의 세상이 ‘살이 찌면 끝나’는 것이라면, ‘살이 쪄도 그럭저럭 괜찮은 세상’도 존재한다고 알려주고 싶다. 작아도 엄연히 존재하고, 그 거대한 불안과 공포는 당신의 잘못이 아니며, 다이어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는 없겠지만 신발 안의 돌멩이처럼 좀 거슬려도 그럭저럭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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