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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차고 / 김영랑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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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차고 / 김영랑

 

 

내 가슴에 독(毒)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 일 없는 새로 뽑은 독

벗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버리라 한다.

나는 그 독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

 

독 안 차고 살어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버리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 모래알이 될 것임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이 바야흐로 내 마음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 가리라

막음 날 내 외로운 혼(魂) 건지기 위하여.


요점 정리

 

지은이 : 김영랑

시대 : 1930년대

갈래 : 참여시

성격 : 상징적, 의지적, 직설적, 참여적, 저항적, 우의적

어조 : 결연한 남성적 어조

제재 : 식민지의 극한 상황

주제 : 타협하지 않는 순결한 삶을 향한 의지 / 식민지 현실에 대한 대결 의식과 삶의 의지

특징 :

① 주정적 정감의 직서적 표출로 극적 구성(대화 형식)

② 현실의 상황을 우의적이고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③ 두 삶의 자세가 드러나고[벗 : 현실에 안주하려는 순응적 자세 ↔ 나 : 현실 저항적 자세] 자아와 세계와의 대결 구조

출전 : <영랑시선, 정음사, 1949>

 

 

내용 연구

 

내 가슴에 독(毒)[죽음의 이미지. 정신적 순결을 지키려는 의지 = 일제에 대한 저항과 대결 의지 = 매서운 지조와 의지]을 찬 지 오래로다.

아직 아무도 해(害)한[해친]일 없는 새로 뽑은 독[순결함. 강렬함]

벗[현실 순응적 인물]은 그 무서운 독 그만 흩어 버리라 한다.[죽음의 독(독에 대한 벗의 인식) 현실에 순응하는 삶을 권유]

나는 그 독[정신적 순결을 지키는 독(독에 대한 나의 인식)]이 선뜻 벗도 해할지 모른다 위협하고[벗의 충고와 나의 대답], - 독을 차고 살아가는 나의 태도

    

독 안 차고 살아도[현실에 순응하며 그럭저럭 살아도] 머지않아 너 나 마주 가 버리면[너와 내가 모두 죽으면]

억만 세대(億萬世代)가 그 뒤로 잠자코 흘러가고[오랜 세월이 지나고]

나중에 땅덩이 모지라져[닳아 없어져] 모래알이 될 것임[닳아 없어져 우리 존재의 덧없음 / 모래알 : 무상감]을

‘허무(虛無)한듸!’ 독은 차서 무엇하느냐고? - 허무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진 벗의 충고

 

아! 내 세상에 태어났음을 원망 않고 보낸[암울한 시대적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

어느 하루가 있었던가, ‘허무한듸!’ 허나[그러나 - 의미의 역전이 이루어짐 / 시상의 전환]

앞뒤로 덤비는 이리 승냥[화자가 독을 차고 맞서고자 하는 대상 - 일제의 강압과 횡포. 화자의 내면적 순결을 위협하는 부정적 세력]이 바야흐로 내 마음[정신적 순결함 / 순결한 삶에의 의지]을 노리매

내 산 채 짐승의 밥이 되어 찢기우고 할퀴우라 내맡긴 신세임을[일제에 대항하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 - 독을 찬 배경으로 독을 차고 살 수밖에 없는 ‘나’의 처참한 현실

 

나는 독을 차고 선선히[의연한 자세. 거침없이, 당당하게] 가리라[정신적 순결을 지키려는 의지의 표명]

막음 날[마감하는 날 / 죽는 날] 내 외로운 혼[정신적 순결, 순수한 시의 세계, 일제에 저항하는 민족 정신(3연의 ‘내 마음’과 호응)] 건지기 위하여[궁극적 목적]. - 나의 결의

 

 

이해와 감상

 

 일제 강제 점령하에서 작가의 치열한 삶의 자세와 대결 의지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그러한 상황에서 작가가 순수 서정의 세계에서 나와 현실 상황과 대결하는 자세를 시화(詩化)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제재인 ‘독(毒)’이 뜻하는 바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험난하고 궁핍한 현실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대항 의식이며 순결의 의지다. 이 원망스러운 세상에서 단지 육신의 안일만을 추구하며 산다는 일이, 맑고 평화로운 ‘마음’의 세계를 지향해 온 영랑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었으리라. 그래서 현실 순응주의를 버리고 그는 끝내 ‘외로운 혼 건지기 위하여’ 현실에 맞서 저항할 것을 결의한다.

 

프란츠 파농의 말을 빌면, 식민지 시대의 민중들은 ‘제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이다. 앉아서 ‘짐승의 밥’이 되기보다는 저항함으로써 ‘혼(魂)’을 건지겠다는 영랑의 결의는 그가 살았던 한 시대를 넘어서서 현실에 항상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깊은 물음을 주는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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