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설문학/현대소설

바위 / 김동리 / 해설

송화은율 2022. 9. 9.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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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 김동리 / 해설

길잡이  
 
     

1936 <신동아>에 발표. 토속적 샤머니즘,  복바위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아들과의 재회라는 비원(悲願)을 기원하면서 천형(天刑)을 감내하며 살다 간 한 문둥이 여인의 삶을 형상화하였다. 한국인의 한()과 토착 정서를 짙게 나타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해와 감상  
 
     

<1>바위 1936 5 신동아55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며, 그의 작품 중 초기작에 속한다. 이 작품은무녀도와 마찬가지로 자연의 목적물을 숭배하는 민간 신앙을 소재로 하는 한편, 그 당시의 민족적 비애와 존재 문제의 나상을 토착적 시점과 회고적 낭만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바위는 작가가 두 번에 걸쳐 개작할 만큼 애착을 가진 작품으로 그의 두술 미학 본령과 시적인 수사학으로 짜여져 있다.바위라는 제목의 상징적 의미는 샤머니즘의 표상이다. 복을 주는 바위라 하여 '복바위', 소원을 이루어 준다 하여 '원바위' 따위로 부르는 것처럼 바위는 민간 신앙의 풍습에서 많은 사람들의 소원성취를 위한 대상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인이 '복바위'에 비는 기원은 일종의 종교의식으로,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비스런 능력을 빌어 작중의 인물의 처한 상황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이를테면 주인공이 바위를 '가는'행위에서 그 바위는 물질의 바위가 아닌 성화된 바위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둥이 여인의 바위를 가는 행위' '영원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이 이루는 조화의 율동'이며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미 신화적 제의적 성격을 나타낸다.

 

이 작품은 인간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여인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 자신을 되돌아 보게 한다. 그녀가 아들을 만나게 해 달라고 비는 '복바위'는 원죄 때문에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이건만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는 자기 중심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들려주는 바가 크다.바위는 이러한 주제 의식뿐 아니라 표현면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다. '존재의 벽'을 상징한 바위는 물론 기러기 우는 가을등의 상징과 이 작품이 지닌 탁월한 미학을 드러낸다.이와 같이 주술 종교적 세계로 사건을 전개한 김동리의 작품으로는 바위외에 무녀도가 있다.

 

<2>

이 작품은 육신의 저주받음과는 상관 없이 지극한 모성애의 극치를 보여 주고 있는 작품 으로 소망과 구원에의 인간적인 실상을 문제삼고 있다. 즉 복바위(영험의 성소(聖所))라는 토속적인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하여, 아들과의 재회라는 비원(悲願)을 바위에 기구하면서 천형 (天刑)을 감내하며 살다 간, 한 문둥이 여인의 한스러운 일생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여인의 일생은 겹치는 불행 속에서도 묵묵히 운명에 순종하는 전통적 한국인의 삶의 한방식으로 김동리의 숙명론적 인생관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기에 문둥병이라는 천형을 받고 있는 주인공의 삶이 처절하다는 느낌 대신에 그 어떤 신비적인 느낌을 준다. [무녀도]와 주제면 에서 전근대적 요소의 소멸 내지는 무속 세계의 소멸 혹은 토속적 샤머니즘의 패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김동리가 두번이나 개작할 만큼 애착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며, 김동리의 주술(呪術) 미학의 본령과 시적인 수사학으로 짜여진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재가 문둥이라는 면에서 서정주의 [문둥이]라는 시와의 관련성을 살필 수 있고, 숙명성이라는 면에서는 백석의 시 <여승>과 관련지을 수 있다. 복바위를 갈면 자기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속설은 우리 나라 도처에 깔려 있는 토속적인 믿음으로, 자기가 소원한 바를 이루기 위해 영검 있는 물건에 정성을 바치는 행위는 한국인들 심층에 자리잡고 있는 하나의 신앙이다. 이러한 행위와 소원이 우연히 실현될 때는 움직일 수 없는 하나의 믿음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을 맹신(盲信)하게 된다.

 

병은 더 깊어지고, 추위는 더 심해지며, 기거하던 토막(土幕)마저 불타는 절망의 극한 상황에서 술이 어머니가 걸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복바위를 통한 자기 소원의 성취이다. 이 복바위는 아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것이다. 그러므로 복바위를 통해 아들을 만나고자 하는 소원은 절대적이다.

 

다만, 그녀의 절대적 믿음은 토막(土幕)의 소멸과 함께 무너진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복바위를 끌어안고 죽는다. 이 상황은 역설적이게도 그녀의 믿음이 얼마나 완강한 것이었는가를 말해 주며, 죽은 뒤에라도 자식을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했기 때문에 행복한지 모른다. 이런 점에서 작가는 토속적 샤머니즘을 근대적 관점에 의해 비판하기보다는 등장 인물의 삶에 질서와 전망(展望)을 부여하는 원초적 신앙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이것이 작가가 뜻하던 구경적(究竟的) 의 의미인지도 모른다.

 

<3> '생의 구경 탐구'라는 김동리의 문학의 바탕에는 의외로 샤머니즘적 세계관이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외래문화와 대비해서 본다면 샤머니즘은 토속적이고 고유한 문화 양식이라고 규정될 수도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샤머니즘이 민족정신을 구현하는 보편적인 문화 양식이라고 하는 의견에 최소한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이 점만으로 본다면, 우리는 샤머니즘이 당대의 보편적이며 핵심적인 문화 양식이 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우리 정신사의 기저 층에 자리잡고 있는 근원적인 체험들과 무관하지 않으리란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그것은 1930년대 후반의 우리 정신사에서 샤머니즘을 내세운 문화 논리가 어떤 타당성을 지닐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문제이다. 샤머니즘이 우리 문화의 바탕에 놓인 원초적 경험이라고 하더라도 당대의 현실에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이런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시대와의 불화를 비껴가기 위한 도피의 양식으로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위)는 이런 질문들 앞에서 다소 미진한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 뿐이다. 주인공인 어머니의 운명은 문둥병이라는 천형에 의해 이미 제약되어 나타난다. 따라서 관심의 초점은 무엇이 비극적인가가 아니라 이 비극이 어떻게 전개되며 어떻게 마무리 지어질 것인가에 놓인다. 그녀는 대체로 운명에 순응적이지만 아들 술이가 그리워질 때 자신의 운명에서 고조되는 한을 느낀다. 숙명과 사무치는 모성간의 대결이 갈등의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갈등은 그녀의 운명의 내부에서 생성된 것이어서 아직 현실성을 띠지 않으며, 그녀의 의지로 치유할 수 없는 것이어서 결국 숙명이라는 범주 안에 포함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녀의 행위를 끌고 가는 힘이나 정당하게 해주는 요소는 갈등이 아니라 숙명이다.

 

이제 그녀에게 열려진 현실은 복바위를 통해 자신의 기원을 달성하는 길뿐이다. 복바위는 그녀의 갇힌 운명에서 현실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이자 절대적인 의지물이다. 그러기에 몸이 성한 사람들로부터 온갖 천대와 위협을 받아가면서도 아들 술이를 다시 만나게 해 달라고 비는 그녀의 기원은 쉽게 물러설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복바위로 나아갈 수 있는 거점이 되었던 토막이 불살라지는 것을 보는 순간 마침내 의지도 사그라 들며 그녀는 복바위를 끌어안은 채 죽음을 맞이한다. 복바위는 현실이 아니라 현실의 입구에 우뚝 서서 그녀의 출입을 막고 있던 문지기였던 것이다.

 

그녀는 현실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는 인물이다. 우리가 그녀를 통하여 목격하는 것은 운명의 힘에 항거할 수 없는 미적으로 변용된 허무주의이다. 그녀의 삶이 '생의 구경'속에 놓인 인간의 궁극적인 운명의 모습을 형상하고 있다 할지라도 결국 아무런 현실 대응력도 지니지 못한 것이라면 (바위)는 삶을 담아 내고자 하는 문학의 사명과 동떨어진 신비로운 이야깃거리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위험이 있다.

핵심 정리  
 
     

 갈래 : 단편소설  성격 : 샤머니즘적, 휴머니즘적

 표현 : 현재형과 과거형의 혼용

 배경 : 가을에서 겨울 사이, 마을과 기차 다리 주변

 주제 :  소외당한 한 여인의 비원(悲願)과 절망, 그리고 죽음

 문둥이 어머니를 통해 나타난 인간 본연의 모성

등장 인물  
 
     

술이 어머니(아주머니) : 문둥병에 걸려 한스럽게 사는 여인, 아들을 다시 만나기 위한 일념으로 복바위를 갈다가 죽는다.

술이 : 근면하고 효성이 지극했던 인물. 그러나 장가갈 밑천으로 저축해 둔 돈을 어머니 약값으로 다 써 버리자 집을 나간다.

술이 아버지(영감) : 성격이 거칠고 술에 탐닉하는 인물. 고달픈 삶이 계속되자 아내의 독살을 꾀한다.

구 성  
 
     

 발단 : 기차 다리 밑에 모여 사는 거지와 병신, 문둥이 등의 생활상. ‘아주머니 문둥이의 고뇌.

 전개 : 모친의 병 구원으로 장가 밑천을 다 써 버린 아들의 가출과 자기를 독살하려던 영감과의 이별.

 위기 : 복바위에서의 비원과 장터에서의 아들과의 만남.

 절정 : 아들의 복역 소식과 불에 타는 토막(土幕)

 결말 : 복바위를 안고 죽음.

줄거리  
 
     

읍내에서 가까운 기차 다리 밑에는 한 떼의 병신과 거지, 문둥이들이 모여 산다.

그 중 가장 신참자인 아주머니 문둥이는 이곳에 오기 전에는 영감, 아들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었다. 아들은 장가 밑천으로 일백 몇 십 원을 저축했다가 대부분을 어머니의 약값으로 날려 버리자 나머지 이십여 원을 술과 도박으로 없애고는 집을 나가 버린다. 영감은 아들이 떠난 뒤 아내를 구박하다가 아내를 죽이려고 독약을 넣은 떡을 먹인다. 그녀는 사경(死境)을 헤매다가 모진 목숨을 끌고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난다.

 

여인은 노숙과 구걸 행각 끝에 기차 다리 옆의 복바위에 돌을 갈면 소원을 성취한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서 복바위를 갈기 시작한다. 그런지 보름만에 아들을 만나게 되나 한 사나흘 뒤에 온다는 말만 남기고 아들은 사라진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밤낮으로 복바위를 갈러 다니던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아들은 무슨 죄 때문인지 6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은 듯한데, 여인이 다시 복바위에 갔을 때 자기의 토막이 불타고 있었다. 그녀는 불타는 토막을 바라보며 복바위를 안고 죽어 간다. 이튿날, 복바위를 더럽혔다며 마을 사람들이 죽은 여인에 대해 욕을 퍼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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