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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春香)- 김영랑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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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랑

 

 

큰 칼 쓰고 옥()에 든 춘향이는

제 마음이 그리도 독했던가 놀래었다

성문이 부서져도 이 악물고

사또를 노려보던 교만한 눈

그 옛날 성학사(成學士) 박팽년(朴彭年)

오불지짐에도 태연하였음을 알았었니라

! 일편 단심(一片丹心)

 

원통코 독한 마음 잠과 꿈을 이뤘으랴

옥방(獄房) 첫날밤은 길고도 무서워라

서름이 사무치고 지쳐 쓰러지면

남강(南江)의 외론 혼()은 불리어 나왔느니

논개(論介)! 어린 춘향을 꼭 안아

밤새워 마음과 살을 어루만지다

! 일편 단심(一片丹心)

 

사랑이 무엇이기

정절(貞節)이 무엇이기

그 때문에 꽃의 춘향 그만 옥사(獄死)한단말가

지네 구렁이 같은 변학도(卞學徒)

흉칙한 얼굴에 까무러쳐도

어린 가슴 달큼히 지켜주는 도련님 생각

! 일편 단심(一片丹心)

 

상하고 멍든 자리 마디마디 문지르며

눈물은 타고 남은 간을 젖어 내렸다

버들잎이 창살에 선뜻 스치는 날도

도련님 말방울 소리는 아니 들렸다

삼경(三更)을 세오다가 그는 고만 단장(斷腸)하다

두견이 울어 두견이 울어 남원(南原) 고을도 깨어지고

! 일편 단심(一片丹心)

 

(문장18, 1940.7)


<감상의 길잡이>

 

영랑이 그 동안 일관되게 고집해 오던 내 마음의 서정 세계를 버리고 현실 세계로 방향을 돌리게 된 때는 1930년대 말엽으로서 일제의 한민족 말살 정책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다. 이 시는 <독을 차고>와 함께 그 같은 영랑의 변화를 한눈에 알게 해 주는 작품으로, 죽음을 무릅쓰고 일편 단심을 지키는 춘향의 애틋한 정절을 세조의 불의(不義)에 맞서 죽음으로 충절을 지킨 사육신과, 촉석루에서 순국(殉國)한 의기(義妓) 논개의 우국(憂國)에 대응시켜 노래하고 있다. 작품의 발표 시기가 1940년인 것을 고려하면, 이 시의 창작 의도가 단순히 춘향의 사랑과 정절만을 예찬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잊혀진 역사와 문화를 노래함으로써 식민지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민족 의식을 고취시키는 적극적 의미가 숨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함께 가사나 민요에 바탕을 둔 정형적 운율로써 순수 서정 세계만을 펼쳐 보인 초기시에 비해, 이 작품은 자유율을 구사하여 시의 산문화(散文化)라는 표현의 변화뿐 아니라, 제재면에서도 개인적인 문제로 국한되었던 편협한 시각을 벗어나 역사와 문화로 확대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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