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긍지(矜持)의 성주(城主) / 요점정리 / 전병순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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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전병순(田炳淳: 1929- )

전남 광주 출생. 숙명여대 국문과 졸업. 1951년 <신문학>에 <준교사>를 발표하고, 1960년 <여원>에 <뉘누리>가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 그녀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인간 본성의 준열한 탐색을 추구한 작가이다.

주요 작품으로는 <피는 꽃 지는 꽃>, <현부인>, <독신녀>, <긍지의 성주>, <강원도 달비 장수>, <삼대> 등이 있다.

 

이해와 감상

 <긍지의 성주>는 1963년 <여원>에 발표된 중편 소설로서, <강원도 담비 장수>, <이단> 등과 함께 실천적 삶 속에서의 개성적 인간 세계를 추구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인간들의 숙명적 연대(連帶)의 장(場)인 사회, 즉 개인으로서는 홀로 존립할 수 없는 집단적 삶의 무대인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가치를 지니게 마련인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고 있다. 소설 문학에 있어서 사회성과 예술성의 배합은 작가가 고심하는 부분이지만, 이른바 '남성 스케일'의 허실에 대하여 용의 주도하게 추구한 작품이다.

 

줄거리

 화가인 이태호는 전통적인 남존여비의 속물 근성의 대변자로 알려져 있으나, 남성다운 기개도 지닌 출중한 정신주의자다. 바걸(bar girl) 최경자와의 동거 생활에 파탄이 오자 이태호는 서울을 떠나 낙향하여 가정을 꾸민다. 장래성이 있는 그림도 포기하고 평범한 교직 생활에 접어든다.

그러나 격변기에 그는 자녀와 부인을 남겨 두고 단신 월남하여 홀아비 신세로 만년 실직 상태에서 허덕일 때 친구인 조성구를 통하여 신흥 부호가 된 최경자를 15년만에 만나게 된다. 지난날 돈에만 눈이 어둡던 지독한 악녀 최경자가 크게 성공한 지금, 이태호에게 다시 함께 살자고 제의해 온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얹혀살아야 하는 최경자의 호의에 승복할 이태호가 아니었다. 망해 버린 삼화 무역을 정리하는 대로 개간지를 확보하여 정착하려는 꿈은 한결같을 뿐이다. '아무래도 농사나 지으며 살고 싶네.' ― 이것이 그의 일관된 신념이었다.

한편, 비교적 건실한 은숙이라는 여인도 태호오 함께 살기를 바라고 있었고, 단골집의 설옥이마저 태호와 개척지에 가서 그의 자존심을 지켜 주면서 함께 살 각오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빌딩을 거느린 최경자가 거듭해서 지난날을 뉘우치고 고독을 호소해 오면서 그림을 계속할 수 있도록 제반 여건을 보장해 준다고 제의해 온다 해서 그러한 애원에 흔들릴 천하의 이태호가 아니었다. '남자로서 남 보기 초라한 모습으로 그 여자 앞에 서게 된 사실에 분노를 느낄' 뿐만 아니라, '남자로서의 자부심이 도저히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특히, 받는 것 보다 주는 편에 서는 데서 보람을 느끼는 남성 특유의 기질이 강한 태호가 보이는 '멀쩡한 대장부가 어찌 일개 부녀자의 보호 아래 살아야 한단 말이오?' 하는 태도는 다소 허세로 보이기는 해도 태호란 인물의 남성 본연의 면모를 엿보게 한다.

비록 불운에 자학할망정 최경자와 암합(暗合)할 수 없는 것처럼 어엿한 직장인이 되기 전에는 부유한 미망인 은숙과도 함께 살아 줄 수 없다는 것이 태호의 입장이다. 마침내 향로봉 기슭 초원 지대의 개간지를 구입한 그는 설옥이를 데리고 가서 농사나 함께 지을 계획을 한다.

그러나 조성구의 알선으로 신일 제약 경리 책임자가 된 태호는 이 회사가 최경자 소유라는 내막을 알게 되자 노기를 품고 사직한다. 남성으로서의 긍지 때문에 적당한 타협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또한, 가엾은 설옥과 함께 하기로 한 개척 사업 계획도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다. '서로 사랑에 자신이 없고', 그녀의 건강에 의지해서 '다만 편의상 합쳐 살려는 출발 자세'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자책감이 새삼스러워진 까닭이다.
'남잔데!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 힘으로 살아가야지!'
태호의 이러한 결단은 정신적 자립 노선의 선언이요, 여성 협조에 대한 먼로주의를 천명한 것이며, 끝내 꺾일 수 없는 '긍지의 성주'다운 자세를 과시하고도 남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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