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소설문학/현대소설

전광용의 ‘꺼삐딴 리’ - 해설 / 줄거리 / 감상의 길잡이

송화은율 2022. 4. 2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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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용의 꺼삐딴 리’ - 해설

 

작가 : 전광용(全光鏞, 1919 - 1989)

호는 백사(白史). 함남 북청 출생.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 졸업. 서울대 교수 역임. 1939<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동화가 당선되고, 1955<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흑산도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이 작가의 특징은 철저한 현장 조사에 의한 창작에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리얼리티에 있다. 대표작에는 진개원, 충매화, 초혼곡등이 있고 1962꺼삐딴 리로 동인문학상을 수상했다.

 

등장 인물

이인국 박사 : 외과 의사. 철저한 변절적 순응주의자

 

줄거리

수술실에서 나온 이인국 박사는 응접실 소파에 파묻히듯이 깊숙히 기대어 앉았다.

그는 백금 무테안경을 벗어 들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등골에 축축히 땀이 잦아들어감에 따라 피로가 스며왔다. 두 시간 이십 분의 집도 위장 속의 균종적출 환자는 아직 혼수상태에서 깨지 못하고 있다.

 

이인국 박사는 수술을 끝내고 나오며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역정을 돌이켜보던 그는 문득 미국에 유학을 떠나 있는 딸 나미의 편지를 생각한다. 그 편지에는 기필코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딸의 고집이 담겨 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그토록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닥쳐왔음을 깨닫는다. 상대는 동양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교수.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자신이 외국인 교수 앞에서 딸의 미국 유학을 주장했고, 또한 그 외국인 교수가 한국여성과 결혼하고 싶다고 했을 때에도 찬성했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는 담배 파이프를 지그시 깨문다. 백인 사위에 흰둥이 손자라,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지 않을 수가 없다. 이 같은 사실을 그는 자신의 후처인 혜숙에게 말한다. 그러나 혜숙은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는 듯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입맛을 다시며 미국 대사관의 브라운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선다. 차을 타고 달려가면서 그는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38 이북인 그의 고향에는 해방이 되자 느닷없이 소련군이 진주해 들어왔다. 그는 착잡한 심정으로 진주군의 탱크 행렬을 바라보았다. 벌써 며칠째 붐비던 그의 병원에는 이제 개미새끼 한 마리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친일파라는 오명과 함께 치안대에 연행되어 온갖 욕설과 구타에 시달렸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그는 삶을 희구하는 가녀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감방에 감금된 그는, 감방 안에 이질이 만연하자 형무소장의 명령에 의해 응급치실에서 일하게 된다. 그는 온갖 정성을 다해 환자들을 치료했다. 다른 무엇보다도 스텐코프라는 소련인 군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였다. 그의 눈에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혹이 들어왔다. 그는 그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겠다고 자청하고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스텐코프는 그를 환대하였다. 그는 그뒤, 스테코프의 추천에 의해 하나뿐인 아들 원식이를 모스크바로 유학보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해에 6.25사변이 터지고 말았다. 전쟁 중에 남쪽으로 내려온 그는, 역시 자신의 기술과 수완으로 상당히 높은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단지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들의 소식을 생사조차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자동차가 브라운의 관사에 닿는다. 브라운과 만나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동안 그는 브라운의 얼굴이 자꾸 스텐코프의 환영과 겹쳐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브라운으로부터 자신의 미국행에 대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뿌듯한 무엇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는 브라운의 관사를 나오면서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그리고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에서, 또한 월남을 결행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미국에 가서도 반드시 그러하리라고 확신을 가진다. 택시를 타고 느긋하게 달리는 그의 눈에 들어오는 가을 하늘은 더욱 높고 푸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인국 박사는 캘리포니아 특산 시가를 비스듬히 문 채 지나가는 택시를 부러 세웠다.

그는 스프링이 튈 듯이 복스에 덜썩 주저앉았다.

반도 호텔로......”

차창을 거쳐 보이는 맑은 가을 하늘은 이인국 박사에게는 더욱 푸르고 드높게만 느껴졌다.

 

 

감상의 길잡이

 

< 감상의 길잡이 1 >

이 작품은 변절적인 순응주의자, 즉 카멜레온같은 인물을 모델로 하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 해방 직후의 북한에서는 친소파, 월남 후에는 친미파로 시류에 편승해 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한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노예적 속성을 비판함과 아울러 민족사의 비극을 암시한다. ’꺼삐딴은 영어의 ‘Captain(우두머리라는 뜻)’ 에 해당되는 러시아어로, 해방 후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들이 쓰는 말을 흉내내어 쓴 것인데, 꺼삐딴 리라는 제목에서도 힘 있는 것에 기대어 주체성을 망각하는 자들의 병든 인식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냉정하게 세태 변화를 담는 객관적 수법이 이 이인국이라는 주인공의 성격을 창조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주인공은 환자의 증세와 아울러 환자의 경제 정도를 진찰한다는 이중성을 보인다. 주인공은 전형적이고 평면적이며 출세 지향적인 인물로 묘사되고 있으며, 작가는 이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삶의 가치를 반성하고 있으며 시류에 편승하는 기회주의적인 처세술을 비판하고 있다. 신심리적인 수법과 몽타쥬 수법을 쓰고 있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유진오의 김강사와 T교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많은 유사점을 보이고 있다.

 

< 감상의 길잡이 2 >

꺼삐딴 리19627사상계109호에 발표하여 그 해 동인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기주의자이며 기회주의자인 전형적 인물을 통해서 사회 지도층 인물들의 그러한 행태를 비판하고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단편 소설이다.

작가로 출발하였으나 신소설을 연구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결과 국문학자로서 독보적인 업적을 쌓았다. 또한 그는 소설가로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쳐 사회 의식이 투철한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그의 소설들은 냉철한 사실적 시선을 바탕으로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하면서 인간의 존엄성과 끈질긴 생명력을 추구하려는 일관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전광용은 현장 답사를 통해 확인하는 등 작품 소재의 충분한 소화로 분단의 비극과 우리 나라가 처한 정치. 경제. 문화적 상황을 등장 인물을 통하여 훌륭하게 형상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그의 문장 표현은 간결하고 정확하다는 점이 특징이기도 한다.

 

꺼삐딴리에서도 그러한 특징들을 잘 살리고 있다. 작가는 뛰어난 변신술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주인공이인국’, 지조도 신념도 없는 이인국,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하면서 오로지 자신과 자기 가족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이인국이란 인물을 통하여 철저한 이기주의와 기회주의의 전형을 보여 준다.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개인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종합 병원에 버금가는 명성과 수입을 올린다. 그의 병원은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청결과 다른 병원에 비해 두 배나 되는 비싼 병원비를 특징으로 하여 성장한다. 그리고 환자들을 선별해서 받아들인 까닭에 그의 병원을 이용하는 대상은 일제 때는 주로 일본인들이었고 지금은 권력층이나 재벌에 속한 축들이 대부분이다.

 

이인국은 미국 대사관 브라운 씨와의 약속을 생각하면서 애지중지하는’18금 회중시계를 꺼내 본다.여기서 이야기는 30년전 제국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 돌아가며 그의 전력이 나온다.

 

일제 시대에는 철저한 친일파로 행세하여 아이들을 일본인 소학교에 보내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한 이인국은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할 정도로 처신하여국어 상용(국어 상용)의 가()’라는 액자까지 받았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인들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워 형무소에서 풀려난 사상범을 냉정하게 외면해 버린다.

 

광복이 되고 소련군이 진주하자 이인국은 변신을 꾀하지만 치료를 거부했던 사상범 춘식이의 밀고로 러시아인에게 붙잡혀 아끼던회중시계도 빼앗기고 감독에 갇힌다. 그러나 그는 빠져나갈 방도를 찾으며 러시아어를 부지런히 공부한다. 마침 의료 요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이인국은, 실력자인 스텐코프에게 잘 보여 아끼던 회중 시계까지 수소문해서 돌려받고 집으로 돌아온다.

 

이인국은1.4후퇴 때 월남한 후에 또다시 변신. 친미 행동으로 일관하여 영어를 부지런히 배우고. 능란한 처세술을 발휘하여 병원의 고객을 권력층과 재벌과 같은 부유층으로 제한하면서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한다. 미국인의 도움으로 딸까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그런데 믿었던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말을 듣고는 커다란 실망을 느끼지만, 그 딸을 만나기 위해 귀중한 골동품을 미국 대사관에 선물하고 국무성을 초청비자를 허락받고 의기양양해 돌아오면서 .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샅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 양키라고 다를까......혁명이 알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라고 하는 데서 그의 인물됨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 작품은 10개의 장절로 구성되어 있다. 첫장과 끝장이 현실이고, 8장은 주로 과거의 회상으로 된 역전적 구성이다. 이러한 구성에서는 시간 문제가 중요한 구실을 하는데,‘회중시계가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매개체로써 아주 중요하게 쓰인다. 이 회중 시계는 역사적 전환기마다 변신하는 이인국의 행동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다.

 

시대에 따라 약삭빠르게 변신하는 속물 근성은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나 널려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지도층들이 역사 발전을 저해하면서도 주도해 나가는 참담한 현실을 자각 전광용은꺼삐딴 리에서 형상화하여 날카롭게 풍자 비판하는 한편, 새로운 도덕 의식의 필요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핵심 정리

(갈래) 단편, 본격 소설

(주제)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변신하면서 적응해 가는 인간의 풍자. 시대 상황에 따라 변신술에 능한 기회주의적 인간상 비판.

(시점) 전지적 작가 시점

(성격) 풍자적, 냉소적, 비판적

(경향) 신심리주의적 수법

(표현) 몽타쥬 수법

(구성) 역순행적 구성

(인물) : 이인국-주인공. 의사. 일제 말기광복소련군 진주미국 대사관 출입의 과정이라는 역사적 수난기를 통해서 카멜레온처럼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신하는 인물의 전형.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

(배경) : 시간적 배경은 일제 말기에서 광복 직후와 6.26직후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환기의 시대적 현실이고, 공간적 배경은 과거는 주로 북한을 배경으로 현재는 서울을 주된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

(출전) <사상계(思想界)>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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