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문학창고

후처기(後妻記) / 요점정리 / 임옥인

by 송화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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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소개

 

임옥인(林玉仁: 1915- )

함북 길주 출생. 함흥 영생 여고를 거쳐 일본 나라(奈良)여고 졸업. 1939년 <문장>에 <봉선화>, <고영(孤影)>, <후처기>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등단. 8 15 이후 월남하여 이화 여대, 덕성 여대 강사와 건국대 학장 역임. 그는 여성 특유의 섬세한 표현과 기독교 정신을 지닌 작품을 많이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그리운 지대>, <젊은 설계도>, <사랑이 있는 거리>, <힘의 서정> 등이 있다.



요점정리

배경 : 1930년대 말 어느 읍의 한 가정.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인물 : 나 - 여학교 교원. 의사 출신인 애인에게 버림을 받고 노처녀로
           있다가 비록 재혼이긴 하 지만 자신의 결혼 조건에 맞는
           남성과 결혼을 함.
주제 : 한 여인의 자아 각성과 생의 근원에 대한 애정의 추구.

 

이해와 감상

  임옥인의 <후처기>는 1940년 <문장> 11월호에 추천받은 작품으로, 그녀의 출세작인 동시에 당시 여류로서는 보기 드물게 주인공의 심리와 행동을 밀도 있게 그려낸 소설이다.

근대소설의 리얼리즘 기법을 사용하여 소설의 구조를 간결하고 부드러운 여성적 문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보이는 섬세한 표현과 회상을 삽입하는 수법은 작품의 친근성을 높이는 효과를 주고 있다. 이러한 기법상의 효과는 작가가 여성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본다.

임옥인의 40년에 걸친 창작 활동은 <후처기>를 비롯한 60여 편의 단편과 10여 편의 장편에 집약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 시대 이후 8 15 해방과 6 25 사변 등 수많은 사회적 격동 속에서 여성 계층의 생활사를 압축하여 평면적으로 부각시켰고 기독교 정신에 기저를 둔 의식과 전통적 관습에 젖은 의식의 교착을 극복하려는 여인상을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임옥인 소설의 문학사적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줄거리

  경성에서 차를 타고 시댁이 있는 S읍까지 가는 동안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내가 물어보는 말에 대해서 겨우 대답할 뿐, 신혼 3일만에 하는 여행으로선 쓸쓸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은 첫인상과 같이 무뚝뚝하고 말이 없을 줄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일평생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과 함께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가슴엔 벌써 불안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후회할 수는 없었다. 전처와 사별하고 두 아이까지 있는 남편과 결혼한 것은 그가 나의 결혼 조건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와 결혼했고 지금은 시집으로 가는 길이다. 시집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마 싸늘한 눈길들일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시부모는 인사를 받자마자 곧 시골집으로 가 버렸다. 그리고 오십쯤 되어 보이는 여자가 나타나더니 거만한 말투로 "내 딸 대신 온 사람이요? 아이들 데리고 고생하겠소."하고 한 마디 내뱉았다. 그녀는 전처의 어머니였다.

남편이 병원으로 나가자 나는 심란해졌다. 그래서 피아노에 앉아 건반을 두드렸다. 그러자 남편의 장모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조금 있다가 전처 자식인 영수와 복희가 돌아왔다. 영수는 숫제 가까이 오려고도 하지 않고 복희는 "저게 누구야. 난 싫어, 할머니."하고는 어디선가 빗자루를 가져 와 내 등짝을 갈겼다. 일이 이렇게 되자 나는 결단을 내렸다. 우선 남편의 장모를 내몰았다. 그리고 식모도 내보내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허드렛일을 시작했다. 아이들도 꽉 잡아서 외할머니와 접촉하지 못하게 했다. 집 안에 남아 있는 전처의 자취를 될 수 있는 대로 재빨리 없애려고 했다. 그녀가 입던 옷도 다 뜯어서 가능한 한 다른 것으로 이용했다. 그리고 전처가 남편과 찍은 사진들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우거나 찢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생활비도 아주 절약해서 썼다. 저자에 나가서는 돈을 아주 아껴 썼다. 남편의 장모에게도 불필요한 지출을 거의 하지 않도록 했고 시골에서 시부모가 와도 보통 식사 때와 똑같이 차려 내었다. 한번은 시골에서 시어머니가 명란젖을 아주 맛있게 담궈 보내 왔다. 집에서 날것으로 먹기도 하고 두부 찌개에도 조금씩 넣어서 먹었다. 그리고 남은 것은 장에 이고 나가서 팔기도 했다.

그러니 자연 사람들의 발길이 멀어지게 되었고 여학교 때 친구인 덕순이만이 나를 찾아주었다. 둘은 가끔 속에 있는 사연들을 죄다 털어놓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덕순이가 남편의 전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전처인 복희 엄마 역시 남편의 첫 부인이 아니었다. 조혼(早婚)으로 만난 첫 부인과는 피차 정이 없어서 갈라섰다는 것이다. 첫 부인과 헤어지기 전에 복희 엄마는 임신을 하였고 그 사실을 안 첫 부인이 질투로 인해서 악담과 행패를 부리자 남편은 애초 정이 없었던 첫 부인과 갈라서고 복희 엄마와 결혼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후 복희 엄마가 죽자 남편은 방성통곡을 하며 일체 고기를 먹지 않기까지 했다고 하였다. 덕순이로부터 전처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물론 마음이 심히 편치 못했다. '손끝 하나 까딱 않고 놀고 먹던 전처가 남편의 마음을 독차지하다니….'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겹치자 나는 그런 사실을 알려준 덕순이조차 밉살스러워져 그녀와도 절교해 버렸다. 그리고는 일하는 것에만 보람을 느꼈다.

그런 나에게 기쁜 소식이 찾아왔다. 그것은 뱃속에 새 생명이 깃든 것이었다. 나는 이러한 새 세계에 처해 있으면서도 내 뱃속에서 커가는 내 아이의 태동을 빙그레 웃으며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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